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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일에 유행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짧은 말 한마디가 비싼 값을 치를 수 있다.

by 김중희

경고! 위험한 전화!
얼마 전 요즘 독일의 신종 보이스 피싱 방법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또 그 피싱 방법으로 인해 우리 직원의 친구가 법정 다툼까지 갔다는 현실 버전을 전해 들은 게 며칠 전이다. 말로만 그 전화를 내가 바로 받게 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지만 말이다.
10시 이전엔 절대 이런 말하지 마라


우리는 무언가 꺼리거나 금기시하는 것을 터부 또는 터부시 한다라고 말한다.

특별한 직업군에서는 유별난 환경과 상황 탓인지 자주 그런 것들을 접하고는 한다.

독일의 개인병원 에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터부가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아침 10시 이전에는 절대로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지? 또는 어쩐 일이래 월요일 같지 않게 한가 하네

따위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용하네 한가하네 를 내뱉는 순간 마치 누군가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기묘한 일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월요일인 아침이 딱 그랬다.

우리 병원의 신입 직원이 “어? 월요일인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라고 했다

기함할 소리에 모두가 이구동성 “아직 10 시안 지났어!”라고 외쳤고 합창하듯 모아진 소리가 공중에 퍼지기도 전에 병원 초인종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은 동시다발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 소리도 끊임없이 울렸다.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가 빚진 얼굴이 되어 버린 우리 병원 신입이는

이제 10시 이전에는 입에 지퍼를 채워 놓아야겠다며 울상이 되었고

그 와중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 이상한 전화가 왔다며 내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병원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뭔가 결정을 해야 하는 또는 오래 걸릴 것 같은 전화가 걸려 오면

직원들은 대부분 내게 들고 온다.

또 뭔 일인가? 싶어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어쩐지 이야기가 두서가 없었다 신입이기 왜 이상하다고 했는지 알만 했다.

나는 왠지 예전에 재밌게 보았던 개그콘서트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 당시 황해라는 코너에서 어리바리한 신입이 자주 하던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황하셨어요?"

본인이 당황해 놓고 상대방에게 묻는 역발상 블랙 코미디 상황 이라고나 할까?

그 어설픈 사기꾼의 모습이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사진출처:Focus

전화 속의 그녀는 횡설수설 마구 던져 놓듯 다급하게 자초지종을 늘어

놓았다.

요약해 보자면 그녀는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팔았다.

그런데 물건을 택배로 보내자마자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그 거래가 사기라는

사기 알람이 떴다고 했다.

"네 그래서요?"라고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뭘까? 했다

그러면 그 사이트에 전화를 걸거나 경찰에 전화를 해야지 왜 우리 병원에 전화를

했을까?'

게다가 택배를 받게 되면 자기한테 그걸 다시 돌려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인가

그녀의 말은 매우 수상하고 이상했다. 여러 가지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째 우리 병원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 가입을 한 적이 없다.

둘째 누군가 우리 병원 주소를 도용했다 쳐도 독일에서 우편물의 주소지가 잘못되었을 경우

즉 그 주소지에서 우편물을 받을 사람이 없을 경우 보낸 사람에게 다시 되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수취인불명이라는 택을 붙이고 말이다

그런데 뭘 다시 돌려보내 달라는 걸까?


나는 만약 우리 병원의 주소가 피싱에 이용되었다면 어떤 경로로 주소지가 중고 거래 사이트로

들어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던 그녀가 진짜 피싱을 당했다면 말이다.

나는 상냥하게 "저희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 가입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 주소와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전화기 속 그녀는 '뭘 그런 쉬운 걸 물어보세요?'라는 듯 깨발랄하게

"인터넷이요!"라는 게 아닌가

사진출처 :Swr

보통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무언가 거래를 했다면 그 상대방도 회원으로 가입이 되었어야 했을 테고

그렇지 않다 해도 상대방이 주소와 전화번호를 거래 한쪽에서 보내 주었다고 해야 맞지 않나?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무척이나 수상한 그녀에게

다시 친절하게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전화하신 분의 성함을 알 수 있을 까요?"

그랬더니 "네? "하고는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상야리꾸리한 독일에서 못 들어본 이름을 읊어 댔다.

마치 그 코미디 프로에서 보이스 피싱을 하던 여직원이 "리쟈오밍 이요!"라고

얼결에 본인 이름을 대답했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다시 "성함의 철자를 차분히 불러 주시겠어요? 라며 "택배를 받으려면

보내는 이의 성함과 주소는 알아야 하지 하지 않겠어요?라고 했고

상대방은 무척이나 당황한 듯했다.

무심결에 본인의 이름을 실토했는데 상대방이 그걸 철자로 정확히 알려 달라고 할지는 예상도 못했던 거다.

그야말로 그 콩트에서처럼 "당황하셨어요?"라고 할 뻔했다.


자기 이름의 철자를 갑자기 다른 것으로 지어서 불러 주려니 이건가 저건가 헤매더니

주소와 우편 번호는 아무것이나 찾으려 검색을 하는지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이건 아니지

라며 혼잣말을 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러다 급기야 죄송하단다

보통 본인의 이름과 살고 있는 곳 주소와 우편번호를 검색해 보아야 알 수 있던가?

나는 "그럴 수 있죠 당황하지 마시고 그럼 택배를 받는 분 성함은 어떻게 되죠?"

라고 물었다.


상대방은 허를 찔린 듯 흡하고 급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여과 없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기다렸다.

보이스피싱이 틀림없고 업계에 신입이 일 것이라는데 오늘 점심을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참을 머리 굴리는 듯 보이던 상대방은 요하네스 슐러라는 우리로 하자면

홍길동 씨요 같은 이름을 둘러 댔다.

나는 "피싱을 당하신 게 틀림없나 봅니다 제가 알기로 저희 건물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분이 없어요"라고 했다.


낮게 탄식을 하던 상대방은 "제가 보낸 택배를 받으시면 제게 돌려보내 주시겠어요 네?"

라고 했다.

나는 "글쎄요 제가 택배를 받게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확답을 들릴 수는 없겠네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상대방이 애원이라도 하듯 다시 말했다

"그러니 혹시라도 받게 된다면 말이죠 네?"라며 마치 네라는 대답을 꼭 듣고야 말겠다는 듯

네!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네는커녕 "아니요 여긴 일반 가정집이 아니라 병원이에요

진료 시간 이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택배가 언제 올 줄 알고요!"

라고 했다


상대방은 긴 한숨을 내뿜으며 전화를 끊었다.

귓가에 맴도는 뚜뚜뚜하는 통화 종료음 들으며 나는 백 프로 신종 보이스피싱였음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렇다 요즘 독일에서 자주 사용되는 신종 보이스피싱 중에 하나는 상대방이 하고 대답하는 것을 녹취했다가

부분만 똑 따서는 음성 가입으로 가능한 것들을 본인도 모르게 가입시켜서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나 귀가 어두우신 어르신들이 네? 뭐라고요?"라고 반복해서 묻던가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아 네! 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걸려드는 거다.

30대 여성인 우리 병원 직원의 친구는 무심결에 말한 "네, 그렇군요!"라는 말의 때문에

이상한 곳에 본인도 모르게 가입이 되어 법정 소송까지

가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간단한 짧은 대답 한마디로 비싼 값을 치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바쁜 월요일 아침 다행히 신종 수법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 덕에 잘 피해 나갔다.

어쩌면 상대방이 어리바리한 덕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요 샛 말로 웃픈 날이었다.

그 어리바리했던 피싱범 때문에 웃기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은 덮어놓고 의심과 경계부터 해야 하나?

싶어 슬프기도 했다

어쩐지 점점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고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살면서 티브이 뉴스나 신문에서 접하는 사건 사고들이 특별히 정해진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도 있는 일들 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날이다.

독일 보이스 피싱범과의 한판이었다.

대문사진 출처:Tvo

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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