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장 앞에서
정해 놓은 날은 빨리도 간다
정해 놓은 날은 빨리도 간다고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9일 전부터 딸내미의
친구 들은 하나 둘 손으로 자르고 붙이고 해서 만든 빨갛고 예쁜 사각의
통 속에 선물을 담고 문을 만들어 달고 날짜를 붙여 남은 날을 함께 헤아 렸다.
이렇게....
9일 남았다, 8일 남았다 , 3일 남았다.
마치 크리스마스 달력처럼 문 하나 열 때마다 나오는 아기자기한 선물 들이 친구들의
딸내미를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 져 그 마음들이 예뻐서
울컥...
이제 진짜 정말 얼마 안 남았구나 싶어서 또 울컥...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 거리는
엄마는 일 년이나 딸내미를 못 보는구나 하는 막연한 마음이 하루하루 날짜가 당겨질 때마다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하나 라도 더 챙겨 보내야 할 텐데 잊어버리는 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것들로 머릿속도 마음도 연신 바쁘기만 했다.
독일의 김나지움 10학년 11학년 에는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면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아이들이 기간도 다양하게 3개월, 6개월, 1년 동안 다른 나라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현지의 아이들과 현지어로 함께 수업도 받고 스포츠 등의 특별활동도 하고 다양한 문화체험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등 영어권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아이들이 많다.
오고야 만 그날
8월 24일 새벽 5시 딸내미의 친구들은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새벽같이 이별 선물을 손에 들고 모여들었다. 각자 집도 다르고 한참 멀리 사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 시간에 모인 아이들이 놀라워 내가 웃으며 물었다.
" 얘들아 너네 어제 모여서 함께 밤샜니? 그랬더니 아이들은 합창이라도 하듯
"아니요~ 알람 시계 여기저기 맞춰 놓고 잤어요" 한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 그 어디쯤 되는 고등학교 2학년의 아이들이 알람 시계 하나 가지고는 안심이 되지 않아 머리맡에 발밑에 문 앞에 흩어 두고 잤을 모습이 그려져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친구들의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끝으로 딸내미의 짐이 하나 둘 차에 실렸다.
이제는 출발해야 할 시간 차 앞에서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아이들은 아쉬움이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쪼로미 서서는 친구를 향해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 귀엽고 짠한 모습이 점이 되어 보일 때 아우토반으로 향하던 우리 앞에는 이제 막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긴장하면 배가 아픈 엄마를 닮아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다던 딸내미는 친구들이 선물한
걱정과 두려움을 잡아먹는 인형 그리고 하나하나 손글씨로 적어 접어 놓은 응원의 메시지 들을 손에 꼭 쥔 체 씩씩하게 홀로 비행기를 타러 갔다. 아프지 말고 잘 다녀 오라며 등 두드려 주던
엄마의 귓가에 " 엄마 울면 안 돼 "라고 속삭이던 딸내미를 들여보내고 어느새 흘러내리는 눈물을
갈무리하며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노래
"헤일수 없는 수많은 밤을... 짜자잔짠.."
"그래, 앞으로 365일 수많은 밤을 텅 빈 딸내미 방을 쳐다보며 보고 싶어 뒤척이고
잘 있나 걱정돼서 뒤척이겠지..."
출국장 안으로 사라져 버린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딸내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20년도 훨씬 전에 그렇게 독일 가는 비행을 홀로 태워 보냈던 딸내미의 뒷모습을 보며
내 엄마도 그리 하셨겠지....
그때 하나 라도 더 챙겨 보내려는 엄마와 이제 그만 됐다고 손사례 치며 내가 하던 그 레퍼토리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지금 나와 딸내미가 그대로
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돌아 나오던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그 한없이 긴 길 앞에 예전에 내 뒷모습을 보며 집으로 향했을 엄마와 딸내미의 등을 보며 집으로 향하는 나 그리고 딸, 아들을 어디론가로
보내며 이 긴 길을 마주 하고 있을 또 다른 엄마 들의 마음을 그려 본다.
"헤일수 없는 수많은 밤을..이라는 노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