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문득 손가방 하나 들고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싶은 날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 같은 날.....
친정 엄마의 생신이다.
음력이 없는 독일에서 시간도 한국보다 8시간이나 늦은 이곳에서 어른들 생신을
때맞추어 챙기려면 미리 날짜 계산 해 놓고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는 기본이요.
핸디에 알람 기능도 추가 해 놓아야 잊지 않고 축하 인사를 드릴수 있다.
새벽 5시 빰 빠밤빰 빠바바밤 하고 머리맡에 두고 잔 핸디가 울려 댄다.
부리나케 축하 메시지를 카톡으로 보내며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짠해 온다.
우리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오늘 같은 날 엄마 팔짱 끼고 예쁜 거 사러도 가고
친구분들 모셔다 고기 굽고 작은 파티 라도 해 드릴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안함 과 아쉬움...
바람 같은 세월은 어느새 꽃 같던 새댁을 눈가의 주름이 고운 할머니로 만들어 놓았고
엄마가 작은 세상의 전부였던 꼬마는 그때의 엄마보다 훌쩍 더 나이를 실감하는 중년이 되어 있다.
나는 자꾸만 한국으로 향하는 들썩이는 마음을 애써 다독이고 우리의 순간이 담긴 사진 속에서
지난 시간들을... 추억 들을 더듬어 본다.
작년 봄 엄마가 우리가 사는 독일로 놀러를 나오셨더랬다. 그 덕분에 살면서
수시로 우리가 한국에 살았었다면....으로 떠올리던 보통 모녀 들의 일상 적인 소소한 것들을
하나하나 해볼 수가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에서....
엄마와 함께 시장을 보고....., 산책을 나가고......, 쇼핑을 가고...., 맛난 것을 먹으러 가고..., 여행을 다니고....,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순간 들도 많지만 중간중간 남겨 놓은 사진들은 그때 그 순간의
만져질 듯한 생생한 느낌과 소소한 추억들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유독 이뻐하는 늦둥이 막내 손자 와의 사진 속 엄마는 마냥 행복하다...
숲과 나무, 꽃을 좋아하시는 엄마의 모습 속에 그 옛날 엄마 에게도 있었을 소녀의 미소가 떠오른다...
아는 것도 많으시고 호기심도 많아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엄마는 여행을 가서도... 시장을 보러 가서도.... 쇼핑을 가서도...
언제 어느 때던 현지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망설임 없이 질문을 던지고는 하셨다,
그런데 그 용감함으로 무장된 한국어 + 바디랭귀지로 마치 만국 공통어처럼 용하게도 의사소통이 되시곤 했다
가끔은 일방통행 일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격의 없는 엄마의 모습에 이곳 사람들은 엄지 손가락을
높이 치켜 올려 주고는 했다.
많이 웃고... 즐거웠던... 시간들
그렇게 한 장 한 장 엄마와 함께 였던 사진들을 넘겨 보며 마치 어제 일인 듯 펼쳐지는
그리운 시간들과 마주 하며
엄마 생신인 데 가지 못하는 속상한 마음을 애써 달래 본다. 그리고 나직이 되뇌인다
지금 우린 멀리 떨어져 있어 손잡고 축하해 드릴수 없지만
추억 속에 우린 함께 여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나갈 거라고...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건강하세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