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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09. 2017

9살짜리 막내가 만든 어린이 김밥


한동안 독일 날씨가 춥다 덥다를 반복하며 마치 변덕스러운 4월 날씨가 두 달이 지속되는 듯

뒤죽박죽 날씨가 연이어 있었다.

5월은 푸르다만 이리 추워서 되겠니? 싶은 나날이 계속되자 히스타민 불내성을 가지고 있어

혈액순환장애를 달고 사는 나는 몸이 한없이 무겁고 쉬이 지치고 있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초저녁도 되지 않았는데 눕고 싶기만 한날.

다행히 강습은 없었지만 그래도 울 식구들 밥 굶길 수야 없으니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 하는 날

며칠 전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제는 불고기, 어제는 비빔밥, 오늘은 뭘 할까? 하다

냉장고에 있는 것만 털어서 간단하게 김밥을 싸기로 했다.

재료 준비로

고슬 고슬고슬하게 밥하고, 소시지, 오이, 당근, 어묵, 계란지단, 계 맛살 자르고 기름 살짝 두르고

소금 후추 치고 볶고, 부치고 해서 준비하고 밥에 참기름 소금 양념 해 놓으니 김밥 말 준비 완료~!

그런데 김밥이라는 것이 재료 준비 하기도 때로 귀찮을 때가 있지만 몸이 안 좋을 때는

김밥을 마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다.

에고 김밥 말아야지 하며 끙끙 거리고 있으니 옆에 있던 9살짜리 울 막내

"엄마, 오늘 김밥은 내가 만들게 앉아 있어" 하는 거다.

막내의 기특하고 귀여운 제안에 "그래, 너덜너덜한다 해도 네가 해준 김밥은 맛나게 먹어 주마"

하는 마음으로 김발을 고이 넘겨주었다.


우리 막내는 또래보다는 훨씬 크지만 아직 주방에 서서 일하기에는 아담한 관계로 주방 옆 작은 서재의 책상 위에 김밥 만들 준비를 해주고 어떻게 하나 앉아서 지켜보기로 했다.

짜아식이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김 발 위에 김 한 장을 척 올려놓더니 밥을 제법 골고루 펴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여기저기 밥풀 떼기 꽃 처럼 상위에 흩날리고 있었으나 저만하면 아주 양호하다.


원래 김밥에는 단무지가 들어 가야 제맛이라 생각하는 남편을 위해 단무지는 필수인데 집에 없어서

그마저도 패스했고, 종종 우엉, 또는 깻잎, 루꼴라 또는 빨간색 피망, 아보카도, 등의 다양한 채소를

함께 넣어 만들던 보통의 우리 집 김밥과 다르게 재료가 많이 빈약 하지만 막내는 지가 좋아하는 재료는 다 있다며 이건 어린이 김밥이란다.


평소 장난기도 많고 사춘기 전야제인 듯 실쭉삐쭉 모드일 때도 많은 막내가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 오동통 한 손으로 분홍색 소시지, 초록의 오이, 희고 빨간 계 맛살, 노란 계란지단, 간장에 물엿 넣고 살짝 볶은 갈색 어묵

밥 위에 차례로 덥석 덥석 얹어 서는 돌돌돌 꼭꼭 말아서 짜잔 하고 김발을 폈는데 멀쩡한? 김밥이 나왔다.


"오우 막내야 엄마 놀랬다. 네가 만든 김밥이 엄마 강습에 오는 독일 아줌마들보다 훨씬 멋지다

울 막내 정말 재주 있는데 "라고 칭찬을 해주었더니 멀쩡하게 말아진 김밥 신바람 나게 썰어 접시 위에 쪼로미 담아낸다.

우리 집 9살짜리 꼬맹이 덕분에 한상 가득 고소한 참기름, 소금, 밥풀에 흩어진 식재료들과 김밥이 어우러진

행복한 저녁 식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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