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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05. 2017

그때나 지금 이나 똑같은 추석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내게 뭔가를 내민다.

하얀 봉투 다.

그런데 그 안에 든 것은 심쿵 간질간질 한 연애편지도 아니요 두둑한 금일봉도 아니다.

참고로 나는 이제 후자 쪽이 당기는 적당히? 나이 들고 복근이 꽤 후덕해진 중년의 아줌마가 아니던가.


시큰둥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봉투 안에 누운 것은 전화번호와 주소가 빼곡히 적혀 있는 오래된 종이 들이다.

황당해 쳐다보는 내게 남편은 "오늘 한국은 추석이잖아, 알고 지내던 분들께 전화 한 바퀴 돌리라고..."한다.

나는 바빠 정신없는 아침부터 뭔 귀신 시 나라 까먹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눈을 치켜뜬 체

 "추석도 없는 독일 에 사는 분들께 추석 인사... 이따 시간 되면..."

이라고 얼버무렸다.

남편은 손을 흔들며 문밖을 나가는 순간까지 "마음을.. 음? 마음을..."이라며 갑작스레 내게 건넨 종이쪽지들 못지않게 뜬금없는 추임새를 남기며 총총히 출근길에 올랐다.


남들은 모른다 우리의 짧은 대화 속에 꽤나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조금만 더 보태면 은혼식이 머지않은 부부는 함께 해온 세월만큼이나 서로 에 대해 훤하다.

척하면 척 까지는 아니어도 탁 하면 아하 정도는 된다고나 할까?

그러니 그....... 에 들어 있을 속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어쩔 땐 몰랐으면 싶은 마음도 말이다.


남편이 내게 떨구어? 놓고 간 종이들 속에는 그동안 우리가 독일에서 3개의 주 세 개의 도시를 돌며 만났던 한국 분들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촘촘히 적혀 있다. 그러나 이미 한국으로 귀국하신 분들이 태반이요.

아직 독일에 살고 계신 분들과도 연락 못하고 산지가 언젠데....

나는 괜스레 선수를 빼긴 어린아이처럼 무안해져서는... 자기가 언제부터 알뜰히 때 되면 인사를 챙긴다고... 체... 옛날엔 다 내 일 있었구먼.. 흥

해가며 구시렁거렸다.


사실 그동안  다는 것은 핑계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일방통행 연락은 오래 못 간다 라는 것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웬만한 인사는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전달이 가능한 sns 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즘...

나는, 왠지 예전에 알던... 그러나 만난 지 아니 연락 한지 한참은 되는 지인 들과 전화 통화한다는 것이 다소 뻘쭘하고 어색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 속마음을 뻔히 아는 남편은 내게 마음먹고 오늘 두루두루 전화해 보라는 것이다. 추석을 핑계 삼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인터넷도 없고 핸디도 없던 그 시절 에는 추석 명절 또는 설 명절이 되면

저 하얀 봉투 안에 얌전히 누워 있는 종이 들에 적혀 있던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이웃에 살던 한국 가정 들을 초대하고 특히나 혼자 사는 유학생 들을 두루 초대하고는 했었다.


혼자 있으면 더 한국에 계신 가족들이 그리워 외로워지는 시기 이므로 알고 지내던 분들 빠짐없이.... 좁은 기숙사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기 산적에 각색 전, 잡채... 명절 음식도 만들어 나누어 먹고 함께 둘러앉아 송편도 빚고... 독일에 지천인 솔잎도 뜯어다 깔고 폭폭 쪄서는 나누어 먹으며 독일의 쟁반 만한 달님에게 소원들도 빌어 보고... 비록 짝퉁이어도 명절에 큰집 같은 분위기를 내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모두 그때는... 그 시절에는.. 그랬었는데 중의 한 가지가 되어버렸다.


어느 순간,저 나달 나달 한 종이에 적혀 있던 전화번호 중에  이미 무용지물이 된 것들이 많아지고...

더 이상 그렇게 왁자지껄 하게 모이지도 않으며

다른 도시에 계신 분들 과는 어쩌다 한번 sns를 통해 살아 있음을 인증하는 정도가 다 이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독일에 살고 있고.....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둥근 보름달과 추석 명절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데 말이다.

세상이 조금은 더 여유로웠던 아날로그 시대에서 빠르고 빨라 따라가기도 버거운 디지털 시대로 와 버린 탓일까?

아니면 그 변화의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내 마음도 그만큼 버석 거리며 물기 빠진 꽃잎처럼 달라져 버린 탓일까? 오늘따라 유난히도 휘영청 밝아 쟁반만 한 달님께 물어보면 대답해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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