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은 엄마의 마음
일어나 앉기도 힘들어하던 아이가 어느덧 일어서고 한두 발자국 걷고 물리치료사와 함께 병실 앞 복도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우리는 딸아이의 퇴원을 손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덥고 아프고 힘들고 거기다 옆 침대 할머니가 내시는 다양한 코 고는 소리와 잠꼬대를 음악 삼아 늦게 까지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가.. 새벽에 잘만 하면 진통제 수액 끝났다는 알람이 울리고 누군가 들어와 바꾸어 주고 나서 조금 잘만 하면 이제 아침이니 아침 먹으라 빵 가져다주고... 양치해야 하고... 대충 먹고 졸고 있다 보면 또 누군가 혈압 재러 들어오고 그렇게 비몽사몽 있다 보면 회진 돌 시간이 오고 그러고 나면 물리치료사와 움직이는 연습 해야 하고 그다음엔 점심 먹고.. 등등
매일 그게 그거인 것 같으면서도 매 순간 조금씩 다른 병원 생활에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으나
하루 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 했다. 왜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집 보다 편안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 덥고 아프고 힘들고 의 세트메뉴이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이제 며칠 있으면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박혀 있던 관을 뽑고 치료하는 일들이 진저리 쳐지게 아팠어도...
"내가 그날 넘어진 것이 아니고.."를 시작으로 수술받게 된 이야기를 이웃들 에게 끝없이 전파? 하시는 이웃 침대 아이텔 할머니의 무한반복 전화 소리와 매번 5명 에서 6명이 한조를 이루어 오는 듯한 이웃 침대 할머니의 방문객 퍼레이드와 매번 일일이 소개해 주시는 할머니의 변함 없는 친절 에도 지침 없이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러던 딸내미가 원래 예정되었던 목요일이 아니라 그 이틀 뒤인 토요일에 퇴원한다는 사실에 입이 댓 발 나오기 시작하면서 퇴원 후 재활 치료에 관한 자세한 계획을 세우고 있던 도중 짜증이 폭발하면서 내게 있는 신경질 없는 신경질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속에서 올라오는 욱 하는 무언가를 삼키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 자리에 그대로 더 있다가는 "누가 다쳐서 식구대로 이렇게 힘들게 하래? 아픈 게 유세야? 엄마는 새벽잠 설쳐가며 도시락 싸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실에서 이러고 있는 게 재밌는 줄 알아?라는 맘에 없는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로 병원 1층 로비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갔다. 달달한 라테 한잔이라도 마시며 기분 전환이라도 해야 되겠다 싶어서... 그러면서도.. 침대 위에 달려 있는 빨간색 단추만 누르면 간호사 실에서 달려오도록 되어 있으니.. 급한 일 있으면 지가 누를 것이고.... 점심도 먹었고.. 물리치료까지 끝났으니 한두 시간쯤 혼자 있다고 큰일 날 일도 없지 해가며... 근데 아까 아파했던 그 자리는 괜찮을까? 속으로는 또 딸내미에 대한 잔걱정 타령 들을 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이다.
그렇게 혼자 앉아 달큼한 캐러멜 라테에 방금 튀겨 바삭한 감자튀김을 무슨 맛인지도 모르면서 꼭꼭 씹어 삼키며 화를 삭이고 있는데 카톡 하고 친정엄마에게 편지 같은 카톡이 왔다.
손녀는 좀 어떤지... 가족들은 잘 지내는지... 그리고 보호자가 잘 먹고 건강해야 환자를 잘 돌볼 수 있으니 잘 챙겨 먹으라는 내 걱정..
칠순이 훌쩍 넘은 친정엄마의 쉰 다된 딸 걱정에 엄마의 마음은 아무리 딸내미가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그날 결국 한시간 반의 자유시간을 쫑내고 쪼르르 다시 입원실로 올라가 아까 보다는 올라간 눈이 조금 내려오고 나왔던 입이 들어가 있는 딸내미의 수시로 저려 온다는 발을 말없이 주물러 주었다. 한참동안.....
그렇게...
순간순간 전쟁 같고 길게만 느껴지던 병원 생활을 뒤로하고 딸내미는 우리 집 텃밭의 호박꽃 꽃망울이 터지려고 하던 어느 토요일 오전에 집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되었다.
다 모이면 23명이 된다는 전가족 중에 한 명의 딸내미와 두 명의 손자만 더 보면 모두 만나볼 수 있었을 텐데.. 라며 우리의 떠남을 아쉬워하던 아이텔 할머니에게 빠른 쾌유를 빈다는 글귀를 예쁜 색종이에 한글로 적어 드리고 간호사 실에 초콜릿과 감사 카드를 남긴 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