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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09. 2017

프롤로그


이렇게 독일 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20 대 초반 나이만 으로는 꽃다웠던 그때 내 인생 처음으로 집을 떠나 여행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그 유럽 배낭여행에서 나는 생각 지도 않던 낯선 나라 독일에 꽂혀 남들은 취업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을 시간에 독일어라고는 당케(감사합니다)와 이 히 리베 디히(사랑해요) 뿐이 모르던 독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터넷도 핸디도 없던 그 시절 에는 공유 할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었고, 친척에 사돈의 팔촌 누가 독일로 유학 또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더라 로 시작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던 구전 동화 같은 몇몇 검증되지도 않은 주관적인 경험담들이 유학 정보의 대부분 이였다.


그때 유일하게 독일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를 받을 수 있었던 곳이 독일 문화원이었는데, 거기서 받아 온 커다란 독일 지도를 방 한가운데 길게 펴 놓고 독일의 가장 중간에 위치하던 도시 괴팅엔을 동그라미 쳐 놓고는 독일 딱 중간에 있으니 여기저기 다니며 학교를 알아보기도 쉽고 그 김에 짬짬이 여행도 할 수 있겠다 라는 순진무구한? 생각을 하던 멋모르던 때였다.

만약 그때도 지금처럼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면, 독일은 기차를 비롯한 대중교통 비용이 대체적으로 비싼 편이며 그렇게 중간에 콕 박혀 있는 도시에 살면 돌아다니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구체적인 사실과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내가 독일은 겨울이 길고 날씨가 좋지 않아 체력전을 요한다는 사실을 속속들이 알았더라면 용기 내어 혼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기는 하다 그러니 "무식하니 용감하다"또는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 매우 들어맞는 말이다.


내게도 있던 20대에 배낭여행으로 잠깐 스치듯 달랑 며칠 만난 도시 함부르크, 하이델 베르크, 뮌헨은 그당시 내가 알고 있는 독일의 모든 것이었으며 내가 독일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무턱대고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그 시절 우리 집안에는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나 때를 놓쳐?

우아한 싱글 라이프를 살고 있던 막내 고모와 사촌 큰언니가 내 위로 줄 서 계셨다.

그래서 정 많은 친척들과 친절한 이웃들은 골드미스 경계경보?를 울려대며 가뜩이나

딸내미 홀로 아무도 없는 타지에 보내려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친정 엄마에게 걱정을 빙자한 염장을 질러 대셨다.

"어유 그러다 이 집 큰딸까지 집안 내력에 들어가는 거 아녀?" 하고 말이다.

나는 취업을 하던지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라는 친척들과 이웃들의 염려? 와 충고를 가쁜 이 뒤로한 채 몇 년 안에 공부마치돌아오겠노라며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그렇게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 이렇게 20년이 넘는 세월을 독일에서 보내게 되리라고는 짐작도 못한 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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