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여행은 하마터면 취소될 뻔한 여행이어서 원래도 여행 계획을 그리 꼼꼼히 세우는 스타일들이 아닌 데다가 여행 준비보다는 출발할 수 있도록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 거이 뭔 말인고 하면, 우리 집 멍뭉이 나리가 예정보다 빨리 마법에 걸렸다 그래서 미리 예약해 둔 강아지 호텔도 그 어느 곳에서도 맡아줄 수 없다 했다.
그런데 다른 동네 사시는 친한 언니네서 우리가 없는 동안 나리를 맡아 주신다고 해서 다행히 여행을 취소하지 않고 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강아지 호텔 이야기는 여행기가 마무리되면 쓸 예정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정보 들, 가령 로도스섬에서 볼거리가 많은 곳은 어디인지, 이 동네 맛집은? 어느 곳은 빼놓지 말고 꼭 가야 하는지? 등을 뭐가 걸려 나올지 모르는 낚시를 하듯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생생히 건져 올렸다.
그렇게 우리의 무계획은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서서히 계획이 되어 갔다.
낯선 곳에서 여행을 할 때면..
예전 에는... 아이들이 특히나 늦둥이 막내가 어려서 유모차에.. 기저귀 가방에.. 짐도 많았고 애들이 많다 보니 한놈 화장실 다녀오면 다른 놈도 갔다 와야 하고 이놈이 뭘 두고 오면 저놈도 뭘 가지러 다시 호텔 방에 다녀와야 하고 해서 시간 맞춰 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차를 랜트해서 다니는 것이 가격 대비 시간도 절약되고 경비도 절감되고 몸도 더 편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어디 갈 때 준비하고 나서는데 꼴등은 항상 엄마다.
그리고 남편이 녹내장이 생기고부터는 눈이 불편 하니 낯선 곳에서의 운전은 많이 힘들어했다.
쉬러 왔는데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야 소리가 나오면 안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고 그곳의 대중교통들을 충분히 이용해 다녔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가지고 다닐 짐을 줄이는 방법도 알게 되고 옛날 옛적 배낭여행할 때처럼 우연히 가져다준 재미난 만남과 사건들도 생기고 무엇보다 그곳 현지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여행지에서 여행 가이드 들 만큼이나 그 동네를 훤히 꿰고 있는 분들이 단언컨대 택시 운전기사님 들이다.
우리는 호텔에 비치되어 있던 여행 팸플릿 플루스 인터넷으로 대강 모은 정보 들을 기사님들께 확인? 하며 또는 몰랐던 것을 득템 하며 여행 계획을 세워 나갔다.
그 첫 번째가 여행지 에서의 둘째 날 딸내미가 찾아 놓은 로도스의 맛집 탐방이었다.
움직이는 여행 가이드 택시 기사님들..
아침 이면 호텔 주차장 앞에 택시 들과 단체 관광버스들이 미리 예약한 여행객들을 싣고 어디론가 가기 위해 대기 중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나가면서 어딜 갈지 생각해 볼까? 하는 사람들은 호텔 로비에서 택시를 불러 달라고 이야기하고 십분 십오 분 정도 기다리면 택시가 온다.
그리스나 스페인의 섬들은 워낙 여행객들이 많고 혹여나 생길 수 있는 바가지요금을 막기 위해 거리다 요금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요금이 얼마다 라는 요금표 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그 요금은 어느 택시를 타던 동일하다.)
그런데 기사님 왈 우리 딸내미가 미리 알아둔 맛집 중 한 곳은 구시가지에 다른 한 곳은 신시가지에 있어 한번에 두 곳을 걸어서 돌아다니기에는 거리가 꽤 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 어디가 좋을지 두 곳을 가보고 결정 하기에는 거리도 멀고 힘도 들 거라는 이야기였다.
한낮에 태양은 이글 거렸고 점심 때는 다되어 가서 배도 살짝? 고프기 시작 한 때라 우리는 과감하게 구시가지를 택했다. 호텔에서 구시가지까지 10유로 한화로 만 삼천 원이었다.
센스 있고 인정 많은 기사님이 신시가지가 있는 항구도 덤으로 드라이브해 주셔서 일단 눈으로 둘러보고 우리는 왠지 동화 같은 옛날이야기 들이 술술 흘러나올 것 같은 구시가지에서 내렸다. 마마 소피아를 가기 위해...
찐 매력 로도스의 맛집 마마 소피아
센스 짱인 기사님은 우리가 마마 소피아에 가서 점심을 먹을 것이라 이야기했더니
거기 진짜 맛나다고 엄지 척을 했다. 자기도 가족과 몇 번 갔었는데 그때마다 친절하고 맛났다고
로도스의 전통식을 맛보고 싶다면 거기가 진짜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 말로 하자면 거기가 찐 이라는 말이다.
이름도 푸근한 마마 소피아는 구시가지가 시작되는 다리를 건너 성곽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골목 시장 같은 오밀조밀한 가게 들을 지나 만날 수 있었다.
그 아기자기 한 가게 들에는 가죽으로 만든 팔찌, 조개껍질로 만든 장식품, 햇빛 가리기 그만인 챙 넓은 모자들.. 로도스 가 크게 새겨져 있는 부채들, 입으나 마나 한 야시 꼴랑 한 원피스 들... 그리 색다른 것은 없었지만 그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게들이 품고 있는 분위기가 정스럽고 특별했다. 마치 우리네 시골 마을 장터처럼...
마마 소피아는 진달래 꽃 같은 진분홍의 예쁜 꽃나무를 안고 있는 제법 큰 식당이었다.
예약도 없이 점심시간에 갔는데 다행히 자리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를 마치 아는 사람 반기듯 반갑게 맞아 주며 자리를 안내해 준 분은 마마 소피아의 사장님 이셨다 그분은 영어도 독일어도 일상회화가 가능했고 유쾌한 분이었다.
이름에서 짐작한 데로 그 식당은 사장님의 어머님이 처음 만드신 곳이었고 형제들이 그곳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사장님은 외국어 능력만큼이나 어머님의 레시피와 식당에 대한 자부심으로 반짝반짝했고 신바람 나게 가게의 역사와 그리스 전통음식들을 설명할 때도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풍겨 났다.
그날의 점심 메뉴는 사장님 께서 강추하셨던 로도스 섬에서 그날 새벽에 잡아 올렸다는 싱싱함이 가득한 어제 이 시간까지는 바닷속을 질주하고 있었을 거라는 바다를 듬뿍 담은 그리스식 해산물 모둠 메뉴로 선택했다.
주방에서 조리하기 전에 원재료를 우리에게 가져와서 보여 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던 사장님의 부심 가득한 메뉴는 한상 가득 차려지는 양도 푸지고 맛도 어마어마했다.
거기다가 한국에 가야 먹을 수 있던 냉동 하지 않은 이름 그대로 생굴이 메뉴 접시 꼭대기에 장식품처럼 딸려 나왔다.
바다에서 해녀 언니가 방금 따왔을 것 같은 생굴을 보고 남편은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신나게 먹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였던지 음식을 세팅해 주었던 사장님의 동생이 손가락을 높이 들며 원더풀을 외쳤다. 그리고는 원래 우리 메뉴에 있던 양보다 더 많은 생굴이 담겨 있는 큰 접시를 들고 와서 남편 앞에 놓아주고는 선물이라 했다. 두 눈을 장난스레 찡긋 거리며 형님 몰래 쌔벼? 온 것이니 맛나게 먹으라는 말과 함께....
고맙다며 이렇게 안 주셔도 되는데.. 라며 머뭇 거리는 남편에게 마마 소피아의 부사장?(사장님의 동생이니까 우리 마음대로 부사장 만듦) 그분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생굴을 가리키며 19금을 연상케 하는 대사를 날리셨다.
"이게 남자한테 약 이에요. 오늘 밤 애들은 다 잠재우고..."
다른 때 라면 몹쓸? 농담에 민망해하며 못 들은 척했을 소심한 남편이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려 간간히 불어 주는 바닷바람과 손끝까지 차가워지는 맥주 한잔 그리고 공짜 생굴에 기분이 업 되어서는 이렇게 답했다.
"생굴 접시가 너무 작아서 오늘 약효 보려나 모르겠어요"
그 말에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지는 건 나 혼자뿐이고 아이들은 아저씨와 아빠가 공짜 해산물을 놓고 너스레를 떨며 웃든말든 그릴새우의 맛에 빠져 먹기 바쁘셨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때 그 농담에 반응을 보여 온 것은 옆 테이블이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할아버지 세 분이 우리와 같은 메뉴를 드시고 계셨고 약주도 한잔씩 하시며 노래도 흥얼흥얼 하시던 그리스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 세분 중에 한 분이 독일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젊은 시절 직장 때문에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사셨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
아테네에서 놀러를 오셨다는 그분들은 남편에게 자기네들은 손도 대지 않았다며 메뉴 접시들 꼭대기에 얌전히 올라가 있던 본인들의 생굴 접시를 내어 주었다.
아니라고 극구 사양을 해도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런다며 우리네 정 많은 시골 할아버지들처럼 굳이 주시겠노라 하니 남편은 못 이긴 척 받아서 허벌라게 먹었다."아따 오늘 효과 보겄네 "하는 마눌의 진담인지 농담 인지 헛갈리는 무서븐 소리에 컥컥 사래까지 들려 가며 말이다.
우리 옆 테이블 할아버지 들은 세분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인데 이렇게 함께 놀러를 와서 너무 행복하다며 흥얼흥얼 무슨 소리 인지는 알 수 없지만 뱃사공들이 노 저으며 불렀을 것 같은 그리스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간간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던 독일어를 하실 줄 알던 할아버지와 그리스 말로 뭐라 뭐라 하시며 웃으시던 두 분의 할아버지들은 서로 간에 별말씀 없이도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 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 떠나와 오랜 세월 독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분들의 그런 모습이 참 부러웠다. 그 연세에도 함께 여행 올 수 있었던 오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또 그 세월 동안 변함없이 만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세분의 우정이...
우리는 그렇게 바닷바람을 선풍기 삼아 흥얼흥얼 부르시는 그리스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후식으로 나온 달콤한 아이스크림까지 살뜰히 챙겨 먹으며 배도 마음도 행복하게 불렀던 긴 점심시간을 보냈다. 마마 소피아에서...
애정 하는 독자님들께...
안녕하세요. 모두 잘 지내고 계시지요.
코로나로 병원 근무 외에는 모든 활동 들이 잠시 멈춤을 하고 있어 남는 시간에 먹는 것이 낙이네 하고 줄곧 먹고 지내다 보니 어릴 때 자주 부르던 동요가 떠오릅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이라던 동요 말이지요. 그렇게 둥글게 걷고 있는 이 브런치의 주인장 독일에서 인사드립니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독일의 저녁 은 한국은 벌써 새벽 이겠지요.
아직 로도스 섬 여행 후기 가 아마도 몇 편은 더 나올 것 같습니다. 여행 후기라는 것이 그때그때 따끈하게 써 내려 가야 느낌도 살고 글도 더 잘 써 지법인데 한참 지난 이야기이지만 사진으로 보아도 그때의 일들이 새록새록 하네요 아마도 이번 여름이었다면 그 여행 자체가 무산되었을 것이기에 그 시간과 추억들이 더 소중해진 덕분이겠지요.
혹시라도 여행기가 지루하시거나 취향이 아니신 분들은 제 브런치에 다른 매거진들을 탐방하시며 기다려 주시어요. 제가 별 볼 일 없는 글이지만 써놓은 것이 400개가 넘지 않습니까? ㅎㅎㅎ
사실, 매일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은 병원 이야기부터 여러 가지 다른 테마들이 쓰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합니다만 저의 부족한 인내심과 글발이 쓰다 말면 분명 안 쓸 것 같아서 생각 난 김에 여행 후기 다 쓰고 다음으로 넘어갈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럼 다음 편에 만나요...
대놓고 다음 편 스포일러... 인생샷 팍팍 터지는 화보 같은 그리스 섬 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