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Aug 06. 2020

로도스 섬의 린도스 해수욕장

사진으로 하는 그리스 섬 여행


신전에서 내려가는 길


당나귀 택시를 타고 올라간 린도스의 신전은 아름다웠으나 굉장하게 더웠다.

그 어디에도 제대로 빛 가릴 곳 하나 없이 그야말로 땡 볕이었다.

체감 온도로는 이미 40도 가 넘어가고 있었다.

역사적 유물은 나중에 사진으로 더 감상하기로 하고 일단은 시원한데 앉아 뭐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신전 앞에서 대기 중인 당나귀 택시 타고 편하게 내려가라는 아저씨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리는 왔던 길을 걸어 내려 가 보기로 했다.


서있기도 힘들게 더운 길을 사람까지 실어 날라야 하는 당나귀에게 이건 너무 못할 짓이다 싶어서였다.

이 땡볕에 저길 을 어찌 내려 가나 하며 마냥 멀게만 보이던 내려오는 길은 오밀조밀 한 동네 구경도 하며 생각보다 괜찮았다.

발이 아프다고 했던 남편도 우리가 그릴이 되는 것 같다던 막내도 이길만 내려가면 시원한데 앉아서 차가운 것을 마시고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 인지 모두 힘을 내고 걸었다.



내려오는 길 중간중간에 예쁘게 꾸며 놓은 작은집 들에서 딱 봐도 휴가 온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기도 하고 아이들과 해변으로 가려는지 수영복 차림으로 나오는 가족들도 있었다.

아마도 이 골목의 집들은 린도스 주민들이 살고 있기보다는 주로 휴가기간에 여행객들에게 대여해 주는 작은 펜션 들이였나 보다.

바다를 마주하고 난 골목에 아기자기 하게 들어 찬 집들을 지나쳐 가며.. 순간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멀리 바다가 보이고 일 년 내내 햇빛 가득한 섬에서 휴가 같은 노후를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여보야 우리 나중에 은퇴하면 여기처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리스 섬 어딘가에 작은 빌라에서 살아도 좋지 않을까?"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이렇게 이야기했다."좋지, 그런데  여행 이 아니라 사는 거면.. 땡볕 받으며 올리브 따고 염소도 키우며 시장이라도 보러 가려면 이렇게 등산하듯이 다녀야 할 텐데.. 괜찮겠어?" 한다.

이론... 띠... 현실감 팍팍 돋는다... 그려, 알겠소...

눈뜨면 바다가 보이는 건 여행으로만 하는 걸로..


냉면 대신 샐러드


남의 집 구경하다 어느새 골목 하나를 내려오니 하얀 집들이 마치 액자가 된 듯 신전에서 신들이 걸치고 다녔을 법한 화려한 색감의 샬랄라 한 옷들과 굵직굵직한 열매 들로 만든 장식품들이 그림처럼 전시되어 있는 자그마한 옷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 시미 섬 가서 건진 원피스처럼 가격이 2유로 3유로 하면 집에서 입을 홈도 레스로 생각해 보겠건만 여름용 이불보처럼 생긴 것이 30유로 40 유로가 넘고 있었다. 몸매가 마네킹 급이어야 저런 드레스도 벨트와 장신구로 핏 살려 가며 입지 이 몸매로 독일 집에서 입고 있으면 이웃집에서 저 아줌마 하루 종일 이불 빨래 널고 있네.. 할 것 아닌가... 사지도 않을 옷들 보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혼자 남의 가게 옷 품평회 하며 구시렁거리다 보니 어느덧 하산했다. 골목 입구부터 보이는 예전 우리 동네 집 앞 슈퍼처럼 아이스크림에 사탕에 과자 들 주르미 내어 놓고 팔고 있는 자잘한 슈퍼들이 푸근함으로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그 길 안쪽에 커다란 선풍기가 문 앞에 보이고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짜고 있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정스런 슈퍼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마음은 한국에서 예전에 살던 동네 귀퉁이에 와있는 듯싶어 식당에 들어서며 "이모 여기 물냉 둘에 비냉 둘이요"라고 외치고 싶었건만.. 입으로는 완 샐러드, 투 웹, 완 기로스 플리즈를 외치고 있었다.



파라솔 없는 비치 의자는 반칙이다.


간단히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그 예쁘다는 린도스의 해수욕장을 갔는데, 유명한 곳이여 그런지 신전에 올라 갈려다 너무 더워 이곳으로 직행 한 사람들인지... 바글바글 했다.

오후에 들어섰어도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볕은 여전히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파라솔 의자는  빈 곳이 없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가 간신히 구한 자리는 파라솔 없이 의자만 덩그러니 있었다. 아마 그래서 남아 있었나 보다,

옷가방이랑 짐들도 있는데 온 가족이 가방 들고 물속에 들어가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교대로 왔다 갔다 하려면 그래도 앉을 의자라도 있어야지 싶어 10유로 내고 그 의자를 쓰기로 했다.

해수욕장에서 파라솔 없는 의자는 기차로 보면 입석인데... 그 말은 영어가 짧아 못하고 간단히 파라솔 없는 의자인데 세일해 주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오렌지색 머리에 빨간 비키니 입고 어깨에 까마귀 모양 문신이 돋보이던 파라솔 의자 관리하는 처자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지갑에서 거스름돈을 내어 주며 파라솔 있는 의자 나오면 바로 자리 바꿔 준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가지고 온 짐을 의자 위로 내려놓았다.



딸내미는 긴 의자에 수건을 깔고 오일을 바르며 자기는 일광욕을 하고 있겠으니 가족들은 바닷물 안에 들어가서 놀고 오라는 것이다.

우리는 교대로 놀기로 하고 바다에 들어갔다. 물속에서도 고개를 내고 있으니 몸은 시원해도 머리는 따끈했다. 열 받은 머리를 식히려 바닷물에 머리를 담갔다 꺼내니 짠물이 눈 속으로 들어가 눈물이 났다.

눈은 따갑고 머리는 뜨겁고 선크림 바른 몸은 미끄덩 거렸다.

잠시 물밖에 나가서 세수라도 하려고 돌아서니 저 멀리 눈에 확 띄는 파라솔 없는 의자에 앉은 딸내미가 열라 손을 흔든다.

구릿빛으로 썬텐하려다 익게 생겼던 게다. 우리는 그날 지겨운 인간들이 집에 갈 생각들을 안 하고 계속 버티고 있는 바람에, 그렇게 식구대로 돌아가며 파라솔 없는 의자에서 벌서듯 앉았다가 물속으로 들어가 식히고 다시 교대하고를 반복하며 10유로어치의 의자 값의 뽕을 뺐다.

집 떠나면 고생이요 사서 고생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한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도스의 하얀 신전 린도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