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의 내면과 매체표상

지은이 / 김현숙 외

by Joong

식민지 근대의 내면과 매체표상
2006년 5월 10일 인쇄
2006년 5월 20일 발행
지은이 김현숙 외
펴낸이 박현숙
찍은곳 신화인쇄공사(110-320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58-1 종로오피스텔 606호)
펴낸곳 도서출판 깊은샘


- 근대 사회에서 개인의 내면을 생산하고 구성하는 근원은 근대의 규율권력과 제도적 장치, 그것에 의해 통제되는 일상적 삶의 체계와 습속에 있다. 근대적 주체의 내면이란 그러한 통제장치와 그것을 통해 형성된 규범적 '인간'의 형상을 내면화하고 자기화함으로써 성립된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규율권력이 부여하는 그러한 규칙과 질서, 통제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고 따라서 스스로 선택하여 스스로 행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개인 내부에서 발생하는 과정이다. 내면이란 그 통제장치들을 통해 주어진 규범적 인간의 형상에 대한 동일시와 내면화를 거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표상'(representation)이다. 주체의 내면은 그러한 표상들의 체계 안에서, 그런 조건 속에서 비로소 구성된다. 그 표상들의 체계는 근대적 내면의 구조를 결정하는 가능한 경험의 지평이자 일종의 선험적인 장으로서 기능한다. 이전까지 개개인 속에서 독립되어 있던 여러 경험들이 표상들과 그것을 표상으로서 떠받치는 코드에 매개되어 상호 공명하면서 그 속에서 균질적인 내면의 구조가 상호주관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근대적인 문화매체에 의해 유통되고 소비되는 문화적 표상들이다.
근대체험의 내면화와 새로운 글쓰기
이은주
- 당대가 담론화했던 시문에서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할 것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이라는 말과 '생명'이다. 그것은 현실적인 문화경험을 전달하는 소재적 범주의 논의를 넘어 개인의 경험이 또 다른 개인의 경험에 자극을 주어 인생에 있어 세태의 변환까지도 고려할 수 있는 글쓰기와 글읽기의 역동성을 함의하고 있다. 이 요건은, 자기의 현실경험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통해 공감 가능한 개인이 탄생함으로써 충족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시문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를 드러내기를 요구하는 시문체에의 당대적요구는, 정작 개인의 특성과 진정성을 드러내는 글을 탄생시키기보다 모든 글에 '나, 자기, 자신, 스스로, 정감, 고통스럽다, 아프다, 괴롭다, 슬프다' 등의 어휘를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고 과용하게 만든다. -중략-
매체에 범람했던 위와 같은 유형의 시문들은 제도화의 작업과 함께 그대로 강제성을 띠면서 유사한 양식의 텍스트들을 대량으로 생산, 유통시키는 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세계를 내면화하고 그것을 다시 객관화시키는 것으로써 자기를 보여주게 되는 글쓰기 방식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던 당대의 매체들은 직접적인 어휘를 범라멬 하는 것으로 자기(감정)를 표현했다고 하는 수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48~49p]
- 매체에 범람했던 위와 같은 유형의 시문들은 제도화의 작업과 함께 그대로 강제성을 띠면서 유사한 양식의 텍스트들을 대량으로 생산, 유통시키는 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세계를 내면화하고 그것을 다시 객관화시키는 것으로써 자기를 보여주게 되는 글쓰기 방식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던 당대의 매체들은 직접적인 어휘를 범람케하는 것으로 자기(감정)를 표현했다고 하는 수준에 있었기 떄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49p]
- 문제는 이러한 슬픔과 외로움의 토로가 1910년대 중반 이후 매체에 등장하는 고백형식의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너무나 전형적인 감정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글쓰기 현상이 문학사적으로 획기적인 변화의 징후들을 내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앞서 살핀 인식의 변화를 증거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실상 그 글 뒤에 있는 사적 개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50p]


- 이로써 이 텍스트는 일기체라는 형식을 선택하여 개인의 글쓰기를 천명하면서도 개인성을 위치시켜야할 곳에 계용적 태도를 고수하던, 당대 범람했던 시문들의 숨은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다. 이런 성격의 글들이 광범위하게 소통되면서 근대 경험을 재구성하는 개인의 글쓰기로 정식화되고 있는 것은 당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는 충분히 남겨지는 셈이다. [52p]


- 그들은 새로운 글쓰기라는 계기를 상호 모방, 재생산, 반복의 메커니즘으로 특권화 시키면서 조선의 근대 주체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언표 사용조차도 특권적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대의 독서와 글쓰기가 아무리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매체를 통해 그것을 실천하고 주도할 수 있는 계층은 신지식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개인 내면을 드러내는 글쓰기가 ‘낭만화된 계몽’이든 ‘계몽적 낭만’이든 유사한 양식으로 존재하면서, 계몽적 글쓰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한 시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62p]


잡지 만화와 만평으로 본 여성
-작가 의식을 통한 식민지적 근대를 중심으로
- 식민지적 근대는 서구적 근대와 대비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서구적 근대에 기대면서 그것과 끊임없이 경쟁을 하는 복합성을 지닌다. 이런 동력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문화매체들이다. 우리가 근대역사를 살필 때 일상세계를 점유한 미디어의 표상들, 근대의 이미지와 기표들, 근대적 물건들과 상품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근대화를 경험하고 욕망하는 상상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그것이 규율화되는 공적 영역과 전통의 구속을 받는 사적 영역의 충돌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85p]


- 만화와 만평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한 시대의 정신을 표상하며 첨예한 시사 내지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다는 데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만화와 만평은 당대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근대가 여성 표상을 통해 어떻게 식민지적 근대성을 획득해 나갔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88p]


- 서구 문화와 전통적인 인식이 한 자리에서 만나 식민지적 근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美展所見」(별건곤, 1927. 7)<그림 5>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두 컷 짜리 만화이다. 서양화를 바라보고 있는 조선인의 시선은 근엄하고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그들이 입고 있는 조선 옷은 갖출 것을 다 갖춘, 그래서 꿀릴 것이 하나도 없는 위품 그 자체다. 그 곳에는 서구 문명, 즉 서양화를 한번 좀 보자라는 벼름이 자리 잡고 있다. 한 어르신이 “남이 못 알아보도록 그리는 것이 요즘 시태”라고 그림을 평을 하자, 다른 어르신이 뭔 그림인지 “두 시간째나 드려다 보와도 도모지 알 수가” 없다라는 말로 받아친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 무슨 그림이냐는 답변일 것이다. 그들의 풍자는 “신OO파의 미술! 불가해의 예술! 대중이 알게 그리면 큰일나는 예술!”이라고 말한 작가의 평으로 이어지면서 절정에 달한다. 미전과 그림은 서구 문화이자 일종의 상품이다. 그런데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을 작가는 알 수 없음, 당혹, 대중과 함께 하지 않는 예술로 응축시키고 있다. 강요된 서구 문화를 체험하고 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지점에서 여성의 누드화는 ‘망측한’ 대상이 되고 만다. “저런이도 잇나”라고 묻고있는 아이의 말은 달리 해석하면 ‘저런 사람이 없잖아’이다. 그러니 저렇게 벌거 벗고 있는 여자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에술이다 하더라도 옷을 벗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때 작가의 빈정거림은 사회적 시선의 조롱과 맥을 같이 한다. 작가는 ‘연애편지문학과 함께 곡 잘 팔닐 그림’으로 평하면서 예술작품을 볼품없는 상품으로 떨어뜨린다. 설명하자면 서양화로 대변되는 서구적 근대는 ‘추상적인 이미지’와 ‘육체의 드러남’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식민지적 근대는 예술이라면 ‘명확’해야 하고 육체는 ‘감춤’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수준에 있다. [93~94p]


-만화와 만평에 나타난 근대적 여성상은 서양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시대에 따라 머리 모양과 옷의 맵시만 다를 뿐이지 서양적 이미지를 추종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에서 그러하다. 만화와 만평에서 서구적 근대를 표상하는 것은 단발머리와 뾰족구두, 그리고 짧은 치마이다. 「유선형시대」(사해공론, 1935. 10)라는 만화는 네 컷 이상의 연속된 줄거리가 있는 코믹스로, 여성의 몸 관리와 유행에 주목함으로써 근대여성의 표상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육체는 유선형으로 바뀌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은 여전히 부적응의 상태에 있다. 이런 부조화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이 만화의 작가는 유행하고 있는 육체적 미인의상을 ‘유선형’으로 못 박음으로써, 사회적 인식이 이미 한복에 가려진 육체에서 ‘유선형’으로 드러나거나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95p]


- 『신여성』(신여성, 1933. 1)에 있는 코믹스 「살사리와 뚱뚱이」<그림 7>에 나타난 여성의 상은 아주 복잡하고 양면적이다. 「살사리와 뚱뚱이」에 나오는 부인은 여성상위를 누린다는 근대적 이미지와 한복에 쪽진 머리를 하고 있는 전근대 이미지가 묘하게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 만화는 남편의 우스꽝스러운 언행을 통해 가정이 여성중심으로 재빠르게 재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략-
이제 한복을 입고 있으면서 다소곳한 여성상은 당대 코드에 맞지 않을뿐더러 다른 한편으로 서구적인 여성상을 전적으로 미인으로 추켜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그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서구적인 여성상을 그리기에는 아직 어설프다. 그러니까 만화와 만평에 나타난 여성상은 외양이든 의식이든 서구적인 근대의 상을 지녀야 하지만 여전히 전근대적인 여성상을 포기하고 있지 않는 수준에 있다. [97~99p]
- 이때 작가의 의식은 단지 작가의 의식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당대 시대정신과 사회의 관심을 제대로 읽어야만 하는 것이 만화가의 일차적인 역할이기 때문이다. [106p]


잡지의 서적 광고와 내면화된 근대
-『청춘』과 『개벽』을 중심으로
김한식
- 광고는 소비자의 취향과 함께 취향을 이끌어가는 ‘앞선’ 사람들의 의식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109p]


- 주지하다시피 근대 초기 잡지에 실린 서적 광고는 단순한 상품 광고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상품으로서의 서적이 갖는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바, 서적은 단순히 소비되는 물건이 아니라 근대를 보급하는 중요한 매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출판 ‘운동’이 ‘민족 자강과 계몽의 열정’의 의해 이루여졌기에 그 광고의 내용에도 다른 상품의 광고가 따르지 못하는 절실함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109~110p]
- 형식면에서도 신문과 잡지의 광고에는 차이가 있었다. 신문 광고가 이미지에 의지하는 짧은 광고 위주였던 데 비해 잡지 광고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세히 풀어 설명해 주는 방식을 택했다. 신문 광고가 상품의 이미지와 인상을 통해 소비를 부추겼다면 잡지 광고는 상품의 특성을 설득하기 위해 독자에게 ‘호소’하려 했던 셈이다. [111p]


- 1900년대 이후 광고를 이끌어 간 매체 역시 신문이었다. 『한성순보』등 개화기 신문은 물론 『동아일보』, 『조선일보』등의 신문은 적극적으로 광고를 실었다. 1920년대에는 이미 광고의 과잉과 신뢰성을 문제삼을 정도에 이른다. [114p]


- 예전의 독서는 자체로 지고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통해 세속적인 무엇을 얻으려는 목적을 갖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대의 책은 상품이자 매체이면서, 또한 일종의 도구로 여겨졌다. 근대의 모든 책은 ‘매뉴얼manual’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책 속에 담긴 지식과 정보는 모두 무엇인가를 위한 기능적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115p]


- 1920년대 초반 ‘문화운동’은 주로 청년회 운동, 교육진흥운동, 물산장려운동 등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주체는 역시 1910년대 새로이 형성된 신지식층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여러 길 중 하나가 잡지의 발행이었다. 『개벽』광고에 실린 잡지의 성격도 초반에는 개조론이나 문화운동을 전면에 내세우던 잡지에서 후기로 갈수록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된 잡지들로 추세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119p]


- 물론 이 당시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사회개조론적 경향은 현실적인 사회제도의 개조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측면’에서 사회개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관념적 성향’이 짙은 것이었다. 1920년대 여러 운동에서 이러한 정신적 측면이 더욱 중시되었던 데에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던 ‘문화주의’ 사조의 영향도 큰 것이었다. [124p]


- 서구 위인전 읽기의 열풍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조선 시대 이전부터 인생의 교사와 반면교사를 얻기 위해 각종 전기물을 읽는 일은 이미 지배층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는데, 개화기에 접어들어 중화 영웅들의 위치를 서양 영웅들이 차지하여 훨씬 더 강력한 숭배심을 유발하게 됐다. 서구 영웅을 학습하고 그 정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당시 개화파 인사들에게는 하나의 상식처럼 되어 있었다. 서구에서 이식된 영웅관념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그러한 상식이 배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영웅’이라는 용어는 원래의 뜻과 다른 뜻을 갖게 된다. 뛰어난 한 신하에서, 영웅은 일약 국가와 국민을 살리는 국민국가의 지도자이자 모든 국민들의 일률적인 숭배 대상으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뛰어난 개인이라는 생각보다 국가와 사회 전체를 책임지거나 그것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새롭게 부각되게 되었다. 때로 국가나 사회 구성원 전체의 합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지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126~127p]


- 서적 그것도 소설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위대함이다. [130p]


- 『개벽』 20호에 실린 잡지 『부인』광고를 살펴보자 -중략- 이 광고의 가장 큰 특색은 다른 광고와 달리 한글을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했다는 점이다.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였고, 여성의 문자 해독 수준을 남성의 그것과 다르게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35p]


- 기본적으로 광고는 자본의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근대 초기 서적 과고는 상품이며 동시에 계몽의 수단이었던 서적의 특징을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었다. 이 시기 저자들은 독자와 동등한 자리에 서 있다기보다는 독자를 이끌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141p]


- 광고는 소비자들을 근대의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수단이다. 소비를 통해 경험하는 근대는 일상에 가장 가깝고 가장 오래 기억되는 근대일 수 있다. 이때 내면화되는 근대의 모습은 제도의 일방적인 수용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위생, 패션 등을 그 대표적인 영역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서적 광고는 이 점에서 일반적인 상품광고와 구분된다. 서적 광고는 서적을 통해 설명되었을 계몽자들의 사상을 앞서서 혹은 뒤에서 독자들에게 강조했다. 이들이 강조한 내용들에는 받아들여야 할 근대 외에도 설계하고 이끌어 가야 할 근대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었다. [141p]


근대 교육의 정착과 피식민지 주체
- 일제하 초등교육과 『조선어독본』을 중심으로
강진호
- 갑오경장(1894) 이후 근대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교육 전담 부서인 학무아문(學務衙門)이 설치되고, 다음 해에는 ‘홍범 14조’가 발표되면서 언문일치 원칙의 법제화, 신분제와 과거제도의 폐지가 단행되고 문명개화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이 자각되어 종래의 경서(經書)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실용성과 공익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근대교육에 대한 열기는 이후 한층 고조되어 전국 각지에 근대식 학교를 세우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을사조약(1905)의 체결과 한일합방은 이런 흐름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대신 일제에 의한 식민주의 교육으로 대체되는 비운을 맞는다. [143~144p]


- 조선총독부는 공립 보통학교를 확충해서 1918년에는 ‘삼면일교(三面一校)’원칙을 세워 전국 각지에 학교를 증설하였다. 이런 정책은, 식민지체제가 본질적으로 군사적 강점에 의해 그리고 경제적 착취를 위해 성립한 민족적 지배의 역사적 체제라는 사실을 감안하자면, 교육을 통해 체계가 필요로 하는 인적 자원과 지식적 권위를 생산하고자 했던 의도로 볼 수 있다. [145p]


- 시대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을 만드는 데 최근 교육의 목적이 있다면, 식민치하의 교육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교육과정은 단편적이고 사실적인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능력보다는 정보를 탐색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 자기 주도적인 평생학습 능력과 효율적인 의사소통, 그리고 협동적 문제해결 능력 등을 중요한 목표로 제시한다. 그것은 이른바 구성주의 철학의 도입에 따른 주관적·상대적 지식관에 바탕을 둔 것으로 기존의 객과적·절대적 지식관과는 방향을 달리한다. [148~149p]


- 그런데 교재는 그와는 정반대의 내용만을 제시하여 인간을 수동적 객체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식민정책에 순응하는 무저항의 주체를 양산코자 하고 있다. 교과서 전반이 근대적 계몽과 합리주의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제한적으로밖에 관철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런 점에서 『조선어독본』은 우리 교육의 오랜 병폐로 거론되는 주입식 교육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시사해 주기도 한다. [151p]


- 『조선어독본』에 수록된 조선 관련 역사와 인물들은 ‘조선어’ 교재라는 성격상 불가피하게 수록된 기능적 단원으로, 조선 사람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이라든가 그에 대한 자부심 등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중략- 인물이 지닌 역사적 맥락과 배겨잉 생략된 채 단지 교훈적 특성만이 서술된 까닭인데, 그런 인물을 그대로 수록한 해방 후의 『초등 국어돈본』(1946)과 비교해 보면 한층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159~160p]


- 일제의 교육이란 ‘충성스러운 시민’을 만드는 무국적의 교육이었던 관계로 근대적 지식을 제공하면서도 한편으론 봉건적 위계를 강조하여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존중받고자 하는 의도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런 양면성은 피지배자를 파악하여 지배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해 ‘나를 닮아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식민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나와 같아서는 안 된다’는 모순된 요구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런 허용과 금지가 뒤섞인 양가성에 의해 피식민지 주체는 규칙을 따르면서 동시에 어기는 모순적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163p]


- 언급한 대로, 식민적 지배 관계에서 지배자는 ‘나를 닮아라. 그러나 같아서는 안된다’라는 양가적 요구를 한다. 이런 허용과 금지의 양가적 요구에 의해 피지배자는 지배자를 부분적으로 닮을 수밖에 없다. ‘부분적 모방’인 ‘흉내내기’(mimicry)를 통해 피지배자는 항상 ‘결함’이 있는 ‘혼종’이 되고, 궁극적으로 식민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 [166~167p]


- 식민지 근대화는 식민화가 진행될수록 계속 확대되고 궁극적으로 일본적인 것 자체를 무조건 추수해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체계를 형성한다. 그 결과 일본적인 것에 대한 선망과 자기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을 야기하고, 일선동조, 내선일체의 황국식민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171p]
근대의 헤테로토피아, 극장
이종대
- 특정시대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새로운 계층의 출현, 정치·사회적 변혁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17~18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실학과 중상주의 정신은 중인 계층의 형성을 촉발시켰고, 그들은 1900년대 초에 이르러 불완전하나마 도시민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이른바 새로운 계층의 출현을 가능케 한다. 더욱이 이 시대가 조선왕조가 붕괴되고 이민족으로부터 강제로 식민 지배를 받았던 시대라는 점에서는 정치·사회적 변혁의 시기였지만 개인에게는 자본주의의 도래로 인해 일상적 삶과 욕망에 대한 지평의 전환(Horizontwandel)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그래서 친숙한 것과의 결별과 낯선 것과의 만남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여 새로운 내면이 축조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79p]


-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상실의 고통도 엄청난 것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급격하게 도래한 일상적 가치관의 혼란, 이를테면 ‘모던보이, 모던걸, 백화점, 은행, 까페, 자유연애로 포장된 성의 개방풍조, 성의 상품화 등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을 바꾸어 놓을 만한 것들이었다. 이 시기의 개인은 눈만 뜨면 바뀌는 온갖 제도와 낯선 문물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굳게 믿어왔던 권위들이 힘없이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고, 자신들의 삶을 유지시켜온 기본적인 경제질서조차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려 생존을 위협받게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이데올로기들이 서로 부딪쳐 우열을 가르는 혼란스러운 현장의 중심에 서있었다. [180p]


- 근대의 극장은 백화점과 더불어 당대의 대표적인 헤테로토피아의 공간이다. 그곳은 근대 계몽기획의 기반인 ‘학교’이면서 동시에 비루한, 그러나 절제하기 어려운 욕망의 경험장으로, 낯선 서사와 실물과 똑같은 재현물, 그리고 소문과 풍문으로 듣던 이국 풍경과 그들의 사는 모습 등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장소였다. 또한 극장은 당대의 매우 이질적인 계층들이 모여 자유롭게 서로를 응시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동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무시할 수 없었던 극장의 경영주들이 남자석과 여자석을 분리시키고 상/중/하에 의한 좌석구분으로 계급간의 접촉을 줄이려고 시도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계급 갈등을 더욱 부채질했으며,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여자석에는 일상의 공간에서는 좀처럼 접촉이 힘든 여학생과 기생이 동석할 수 잇었으며, 남자석 역시 노동자와 양반자제들이 함께 앉을 수 있었다. 거기서 관객들은 다양한 자신의 신분과 상이한 젠더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으로 동질적인 경험을 하면서 ‘대중’이 되어간다. [182~184p]


- 집필시기가 1920년대 말로 추정되는 김정진의 「약수풍경」은 자유연애라는 명목아래 지금의 공원에 해당되는 약수터에서 “훤한 대낮”에 벌이는 남녀의 노골적인 수작과 그것을 본 청년들이 약수터에서 처음 만난 여교사와 간호사에게 접근하는 모습을 예사로운 일로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중략- 그것은 마치 극장 풍경과 유사하다. 연인들의 애정행각이 무대와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풍경이라면 청년들은 관객이 되어 그것을 감상하고, 자신에게도 그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욕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시대인들이 무대와 스크린을 통해 간접 체험한 연애 장면에 자극을 받아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수비게 자기게 된다. 그것은 공원과 극장처럼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이 가능한 공간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화된다. 그러한 행동이 가능한 것은 공원과 극장이 자기방어기제(Self=defecne system)가 약화되는 공간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후상(Retention)의 힘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 영화는 동시대인들에게 남녀의 연애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쳐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노출이 심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교태가 깃든 몸짓 등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그러한 영화가 상영되면서부터 영화의 내용과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흉내낸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여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190~191p]


- 대중이 된 그들을 위해 극장은 문화산업의 중심이 되었으며, 그러는 동안 내면 공간이었던 극장 ‘안’과 현실인 극장 ‘밖’이 별도로 존재하다가 점차 그 구분이 희석되었다. 극장 ‘안’에서의 패션과 헤어스타일, 음악과 춤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또 다른 산업의 발흥을 촉발시켰고, 현실 도피처였던 극장은 오히려 현실을 주도하는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의 극장은 이미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관람’의 장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곳은 이미 도시인들이 형성한 하나의 헤테로토피아-패션을 위한 다양한 쇼핑 공간이면서 동서양의 다채로운 음식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오락을 즐길 수 있는-이자 유력한 문화거점으로 자리잡았다. 그곳은 근대 초기의 극장이 생성시킨 대중, 일상과는 다른 또 다른 집단과 삶을 담지하고 있을 것이다. [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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