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개념의 역사

지은이 / W. 타타르키비츠 |

by Joong

예술개념의 역사
글쓴이 : W. 타타르키비츠(Wladyslaw Tatarloewicz)
발행처 : 열화당(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72-9)
초판발행 : 1986. 9. 10
4쇄발행 : 1990. 3. 10


1. 초기의 예술개념
- '예술(art)'이라는 말은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아르스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를 직역한 것이다. [25p]


- 그리스 때의 테크네(로마, 중세, 심지어는 근세 초, 르네상스 때까지도 쓰였던 아르스)는 솜씨(skill), 즉 물품, 가옥, 조각상, 선박, 침대, 단지, 옷가지를 만드는 데 요구되는 솜씨뿐만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고, 토지를 측량하며, 관중을 사로잡는 데 요구되는 솜씨를 뜻하였다. -중략- 이런 솜씨는 법식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발휘될 수 있기 때문에, 법식이나 계율(precepts)을 갖지 않는 아트란 존재하지 못하였다. [25~26p]


- 고대인들과 교부철학자들은 훌륭한 기술(fine arts)과 범상한 기술(crafts)을 서로 분리시키기보다는 서로 연결시키는 착상을 보다 강하게 하였다. 실제로 그들이 예술을 훌륭한 기술과 범상한 기술로 나눈 바는 없었으며, 대신에 그들은 각 기술의 실천상 정신적인 노고만 요구되느냐 육체적인 노고도 요구되느냐에 따라 훌륭한 기술과 범상한 기술로 갈라 놓았다. [27p]


- 중세 때, 영역 규정이 가하여지지 않았던 보다 광범한 아르스는 엄정히 말해서 보다 완벽한 종류의 아트, 즉 자율적인 예술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자율적인 예술에 속하는 것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음악 등 오로지 과학에 해당되는 일곱 가지였다(여기서 음악은 화성이론, 음악학으로 통용되는 것을 말함). [27~28p]


- 중세의 회화와 조각은 어떠하였던가. 이 두가지는 교양학과에도 그리고 기술학과에도 들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모두 일정한 계율에 의해서 진행되는 솜씨좋은 제작, 즉 예술로 이해되었음은 의심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육체노동을 요구하는 그만큼 교양학과로는 간주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왜 기술학과로 거론되지도 못하였는가. 이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이 내려질 수 있다. 즉, 그 강령상 일곱 가지로 제한된 기술학과의 명단에는 가장 중요한 것들만 수록되어야 했었고 그런 중요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유용성이었던지라, 그림이나 조각 같은 시각예술에 있어서 유용성은 부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로 지칭하는 그런 아트가 옛날에는 기술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바로 그런 연유에서 기술학과의 명단에도 좀체로 수록될 수 없을만큼 중요시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29p]


2. 근대에 있어 예술개념의 변천
- 고대에 성립된 예술개념들의 체계는 르네상스 때도 통용되면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어떤 변천의 역사가 개시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가장 널리 통용되는 옛날의 예술개념에 있어 두 가지 사태가 벌어졌다. 첫째로, 공예와 과학이 예술의 범위에 들게 되었다. 둘째로, 공예와 과학이 떨어져나감에 따라 예술로 남게된 것들은 긴밀한 단일체를 이룩함과 동시에 솜씨, 기능, 인간적 산물로 이루어진 별도의 부류를 형성하게 된다. [30p]


- 당시의 불길한 경제적인 상황도 뜻밖에 미술가들을 거든 셈이되었다. 중세 후기에 융성하였던 상업과 산업이 당시에는 쇠퇴하였으며 이전가지 진행되었던 모든 형태의 자본투자도 불확실한 것으로 판명나자, 예술품은 다른 것들보다 좋았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은 투자대상으로 취급되기 시작하였다. [31p]


- 도안예술이라는 개념이 나와 지니전을 보긴 하였지만, 오늘날의 예술개념 체계는 아직 달성되지 못하였는데, 즉 도안예술이 아직 음악, 시, 연극 등과 결합되지 않았으며, 이들 예술 모두를 함께 묶는 공통의 개념이나 용어는 없었다. [34p]


3. 미술(Fine Arts)
- 15세기 중엽 인문학자 Gianozzo Maneti는 여러 예술들 중에서 '지성적인' 혹은 '총명한' 예술로 번역될 수 있는 '총명한(artes ingenuae)'만을 따로 떼내었다. [35p]


- Marsiglio Ficino는 마네티보다 근 반세기 전에 이 점에 대하여 논술하였으나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달성하였다. -중략-
"웅변가, 시인, 조각가, 건축가 등 창작인들에게 영감을 부여하는 것은 음악입니다."
피치노는 그런 예술들 공통의 기반을 음악에서 찾아내었으며, 그가 따로 떼어낸 예술들은 그의 착상과 일관되게(비록 그가 '뮤즈의'라는 형용사를 쓰지 않았지만) '뮤즈의' 예술로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36p]


- 카프리아노는 1555년에 피치노의 것과 유사한 부류의 예술들을 따로 떼어내었으나 그 근거와 명칭은 달랐던바, '고상한' 예술로 지칭하였다. 그는 "고상한 예술이라는 명칭은, 우리들의 가장 고상한 감각들과 가장 포용력넓은 기관들의 대상이자 항구적인 특성을 지닌 시, 회화, 조각과 같은 예술들만의 것입니다"고 서술하였다. [37p]


- 로도비코 카스텔베트로는 1572년 공예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사물들을 만들어내는 반면, 회화, 조각, 시 같은 예술들은 사물과 사건을 기억 속에 보존시키는 데 이바지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그런 예술을 '기억 보존용의 예술(arti commenmorative edella memoria)' 로 명명하였다. 이들 예술은 앞서의 '뮤즈의' 또는 '고상한' 예술과는 약간 범위가 달랐는데, 예컨대 건축은 속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37~38p]


- 16, 17세기에 몇몇 저술가들은, '고상한' 혹은 '기억의' 예술을 실질적으로 다른 예술로부터 준별시키는 바는 그 회화적인 성격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 예술은 추상적인 사항과 도식을 차용하지 않고 그림을 취한다는 생각을 개진하였다. 또한 그렇게 종류가 서로 다른 회화와 시 같은 예술을 함께 연결시키는 것은 그 회화적인 성격이다. -중략- 모든 고상한 예술은 이미지를 갖고 작업한다고 주장하였다. [38p]


- 에마누엘레 테자우로(Emmanuele Tesauro)는 1658년 예술상의 완전함은 정교함이나 정묘함에 있었는바, "모든 정묘한 것은 형상적인 것이다." 문예, 연극 작품, 회화, 조각, 무용에는 은유(메타포)가 들은 반면에 수공예 생산품에는 은유가 없다. 예술은 은유를 통해 존속한다. 바로 이 점이 모든 예술만이 지닌 공통된 특징이다. [38~39p]


- 17세기 후반 프랑스와 블롱델(Fracois Blondel)은 건축과 더불어 시, 웅변, 희극, 회화, 조각 나아가서는 음악과 무용을 열거하였다. 단적으로 그는 그의 선행자들이 정묘한, 고상한 등등으로 지칭하였고, 18세기에 '파인아츠 체계'의 골간을 이룰 예술가들만을 열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블롱델은 이들 예술에서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원천인 하모니에 준하여 공통된 기반을 확인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이들 예술이 미를 통하여 작용한다는 생각과 이들 예술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은 바로 이 예술들의 미라는 생각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블롱델은 '미술'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고 단지 미술에 해당하는 개념을 제시하였을 뿐이다. [39p]


- 1747년 프랑스인 샤를로 바뜨(Charles Batteux)는 자신의 논저에서 '미술(beaux arts, fine arts)'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었다. 그의 광범하게 읽혀진 저서의 제목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술이란 용어는 그리하여 고정되고, 그에 대한 개념도 확립을 보게 되었다. -중략- 이 용어의 범위는 명백하였는바, 바드는 회화, 조각, 음악, 시, 무용을 다섯 가지 파인아츠로 열거한 다음 건축과 웅변을 이와 유관한 것으로 덧붙였다. 이 목록은 보편적으로 수용되었다. 파인아츠의 개념이 확립되었을뿐더러 파인아츠의 명단과 체계도 확립되었는데, 후에 건축과 웅변이 첨가되어 수적으로는 일곱으로 되었다. [40~41p]


- 18세기 중엽 이래로 수공예는 수공예이지 예술이 아니며, 과학도 과학이지 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도 없게 인정받았다. [41p]


- 확실히 19세기에는 파인아츠라는 용어가 완전히 받아들여졌다. 바로 그때 '예술(아트)'이라는 말의 의미는 변화하였다. 즉 예술의 범위는 좁아져서 공예와 과학은 내버려두면서 오로지 파인아츠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략- '파인 아츠'라는 명칭은 한결 좁은 예술 그룹, 시각예술 분야에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이전에 '도안예술'로 호칭된 예술들과 동일한 것이었다. [41p]


- 이 이론은 바로 파인아츠의 명칭과 개념을 정초시켰던 바뜨의 저술에 담겨 있었다. 그는 저명한 저술가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결 영향력이 컸던 저술가였다. [42p]


- 바뜨가 피력하였던 파인아츠 이론을 요약하면, 파인아츠 전체의 공통된 특징은 현실의 '모방'이라는 점이다. -중략- 고대(보다 정확히 말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예술은 독창적인 것과 모방적인 것 둘로 양분되었는데, 모방 또는 미메시스는 2천년 이상 거론되어 오는 동안 회화, 조각, 시에 국한되어 검토되었을 뿐 건축과 음악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바뜨는 파인아츠 전체 부분을 모방적인 성격의 것으로 취급하고, 파인아츠의 전반적인 이론을 모방을 토대로 정초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런 이론이 올바른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인아츠 이론은 엄청난 대중성을 누렸다. [42p]


- 고대-중세적인 예술개념(진화의 출발점)은 투박하게 세련되지 않은 것이었지만, 명료하였기에 단순하며 정확한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던 반면에, 진화의 종착점인 오늘날의 예술개념은 고대-중세의 것보다 범위가 좁고, 보기에 따라서는 한결 잘 정의된 것이겠지만, 사실은 정의되지 않은 것이며 정의를 회피한다. [43p]


-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이후인 보다 최근의 예술사조들에 등장하는 예술은 그러한 정의에 더이상 동조하지 않는바, 미는 예술을 다른 것과 구분시키는 준별적인 특성이 아닐뿐더러 필수불가결한 특성도 아니다. 현대예술을 설명해내고 싶어하는 이론가들도 그러한 예술정의를 거부하고 있다. 미를 통하여 예술을 정의하는 것이 타당한지의 여부에 대한 의문들은 이미 1900년경에 표명되었다. 그 반세기 후에 예술에 대한 정의는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이 거의 보편적인 확신으로 화하였다. [44p]


- 오늘날 예술은 낡은 옛 예술개념에 들어맞지도, 애당초의 정의에 부응하지도 않게되었다. [45p]


4. 예술의 범위에 대한 새로운 논점들
- 하지만 예술개념을 이렇게 고정시키는 일은 환상임이 드러났다. 19세기에 예술이라 하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영역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46p]


- 예술적 취향의 가구와 다양하게 만들어진 소위 예술품이라는 것들의 지위도 논쟁의 여지를 안고 잇따. 이런 것들을 자신의 파인아츠 체계 속에 포함시키는 일 따위를 바뜨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런 것들은 '예술적(artistic)'이라는 형용사를 얻게 되었으며, 도자기, 유리제품, 예술적 취향의 융단과 무기가 예술 수집품목에도 오르고, 박물관에 전시되기에 이르렀다. [47p]


- 윌리엄 모리스와 예술제작자 조합은 예술을 순수예술과 실용예술로 구분하는 태도를 해롭다 해서 적극적으로 배척하였으며, 쟁이들의 공예를 참된 예술 영역에다 재편입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확실히 한 점의 아름다운 도자기에 비극적인 깊이나 깊은 공감을 주는 표현성이 결여되어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를 기화로 해서 도자기를 예술 영역 외부에 설정시킨다는 것은, 예술은 미뿐만 아니라 사상과 표현에 연관되어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과 다름없다. [47~48p]


- 무엇이 예술작품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기준은 많으면서도 오히려 불확실하다. 이론상 그 유일한 판별기준은 미였다. 실천에 있어서는 사상적인 내용, 표현, 진지함, 도덕적인 성실성, 독특한 개별성, 비상업적인 목적성 등과 같은 고려사항들이 한몫을 하였다. 오늘날에는 이들 요구사항들과 제약들 중의 상당수가 간단하게 젖혀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론적인 난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고대의 예술개념은 명료하며 잘 정의된 것이었긴 하나, 더이상 오늘날의 요구조건들에 부응하지 못하고 역사적인 유물로서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의 예술개념은 원칙상 수용될 수 있으나, 극도로 무디어서 날카롭지 못한 느낌을 주고 있다. [48p]


- 근대의 예술관념이 적용되는 테두리로서 서로 상이하면서도 때로는 모순되는 해석 영역을 다음과 같이 최소한 다섯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1. 자유방임적인 예술해석의 경향과 엄정한 예술론이 양극단에서 자리잡고 있다.
2. 몇몇 경우의 예술개념은, 시각예술은 물론 음악과 시 그리고 문학 일반까지 포괄한다. 또다른 경우에 있어 예술개념은 시각예술에만 국한되고 있다.
3. 어떤 물품의 제작자의 목적이나 목적달성 그 어느 쪽이 고려되느냐에 따라 그 물품은 예술작품 아니면 비예술로 간주될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 사이에는 강력한 연결선이 있음은 의심할 나위도 없는 것이지만, 표면적인 예술적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는 경우도 무수하게 있으며, 역으로 예술작품이되고자 의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으로 간주되는 경우도 있다. 대장장이는 훌륭한 방패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시계공도 훌륭한 시계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건만, 우리는 그런 물건들을 예술작품으로 상찬하기도 한다.
4. 어떤 맥락에서 '아트'란 말은 특수한 솜씨를, 또다른 맥락에서는 숙달된 활동의 산물을 뜻한다. 우리가 '네덜란드인의 아트'라고 말할 적에는 전자를, '네덜란드의 아트'라고 말할 적에는 후자, 즉 여느 화가의 솜씨가 아니라 화가의 실제 그림을 뜻하게 된다.
5. '아트'란 말은 일반적인 의미와 많은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예술 전체를 뜻할 수도 있고, 수많은 형식의 개개의 예술을 뜻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회화, 조각, 음악 등과 같은 여느 특정 예술을 뜻할 수도 있다. [49~50p]


- 파인아츠와 상업적인 대량생산물 간의 경계선이 비록 오랫동안 확립되어 왔건만 결코 완벽하지는 못하다. [50p]


- 예술의 매체들은 최근 수십년 동안 그 역할 영역을 엄청나게 신장시켜 왔다. 이들 매체도 예술상의 몇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도리어 이제는 예술이 이들 매체의 몇 가지 특징을 차용하는 입장에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런 상호교류의 움직임은 그런 매체들의 강점이 될 정도로 큰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그런 매체들의 기법이 예술계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많이 예술이 그런 매체들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51p]
- 이와같이 오늘날 예술개념의 외적 범위는 이전보다 더 폭이 너르다. 즉 바뜨의 원래 명단에는 빠졌던 원예, 사진 그리고 영화 같은 것들도 포용되고 있다. 또 오늘날의 예술개념은 추상화, 전자음악 그리고 반소설처럼 옛날 예술이 새로운 형식으로 된 것도 합류시키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예술개념은 저급한 문화와 의사소통 매체 속으로 흠뻑 젖어들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내릴 예술정의는 이 광범하며 잡다하게 뒤섞인 영역 전체를 포괄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51p]


5. 예술개념에 대한 논점들
- 예술은 의도적인 인간활동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예술에 대해 확고하게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정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52p]


- 1. 예술을 다른 것과 차이나게 하는 예술 자체의 특징은 예술이 미를 산출한다는 점이다. 이런 고전적인 예술정의는 18세기에 확립되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전수되었다. -중략- 그러나 미라는 것은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가장 너른 뜻으로 미는 즐거움을 주는 여하한 것으로 의미할 것인데, 미는 개념으로서의 구실보다는 일종의 감탄사, 즉 마음에 든다는 뜻을 나타내는 표시로서의 구실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좁은 뜻으로 흔히 미는 형식들의 평형상태, 명료성, 조화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인다. -중략0 이런 식의 정의가 그렇게 오랫동안 존속하여 왔다는 사실은 미가 지닌 이중의 의미에서 기인하는 즉, 미의 보다 너른 의미와 보다 전문화된 의미 둘 다 상황에 따라 예술정의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을 경우 언급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식의 예술정의가 지나치게 너르거나 지나치게 좁았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53~54p]


- 2. 예술은 다른 것과 차이나게 하는 예술 자체의 특징은 예술이 현실을 재현하거나 재생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이런 식의 예술정의는 통상적으로, 예술은 현실을 모방한다는 형태를 취하였다. -중략- 이런 정의는 모든 예술에 대해 적용될 수는 없고 오로지 회화, 조각 혹은 시 같은 모방적인 예술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중략- 그러나 앞서 미에서 드러났던 애매모호성은 모방개념에서도 드러나는바, 숱하게 상이한 의미를 모방개념에서 짚어낼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에 있어 모방이 사물의 겉모습만을 재현해내는 것인 반면에, 데모크리투스에 있어서는 실제 자연의 소산을 복제해내는 것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또다른 뜻으로 쓰였다. -중략- 결론적으로 보아 이런 식의 예술정의가 아주 인기를 누리긴 했지만 역사적인 과거의 유물 이상으로 존재하기는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54~55p]


- 3. 예술을 다른 것과 차이나게 하는 예술 자체의 특징은 형식의 창조라는 점이다. 예술은 사물을 형태지우는 것이거나 달리말해서 조성해내는 것이다. 예술은 물질과 정신에 형식을 부여한다. -중략- 이런 견해가 예술정의상 한몫을 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아주 철저하게 이런 예술정의를 내린 사람은 영국인 클라이브 벨과 로저 프라이, 그리고 폴란드인 비트키비츠였다. -중략-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예술정의 가운데, 이 정의가 가장 현대적인 것이다. -중략-
하지만 이런 식의 정의마저 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형식(form)이라는 말이 형체(shape), 구성(construction), 때로는 구조(structure) 등의 다양한 용어와 번갈아가면서 쓰인다는 까닭에서만 그런 난점이 지적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 각 용어는 서로 밀착되어 있다. 진정한 장애물은 이들 각 용어가 애매모호한 뜻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각각의 용어는 좀더 너른 뜻으로나 좀더 좁은 뜻으로 사용될 수 있다. 비트키비츠가 구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또 구성을 창조해내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었고 또한 그럴 것'이라고 말할 적에 그가 의미하는 소위 '추상적인' 구성이다. 벨과 프라이도 그렇게 하였다. -중략-
그러나 통상적인 어법에서 우리가 찾아내는 '형식'의 의미는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보건대 지나치게 너른 것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물질(재료, 소재)에다 형식을 부여하는 것은 예술가가 아닌 산업디자이너, 기술자, 그리고 노동자들도 할 수 있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예술이 형식 창조로 정의될 경우, 여기서 특별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형식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명확히 밝혀 둘 필요가 있다. 아름답거나 미적으로 효력을 갖는 형식들이라고 말하여야 할까? 그러나 이런 식의 언급은 단순히 우리를 앞서의 예술정의에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그 정의 역시 결함있는 것임은 이미 드러난 대로이다. 우리가 형식 대신 형체(shape), 구조(structure)라는 용어로 바꾸어도 문제의 국면은 바뀌지 않는다. 모든 존재하는 사물은 각기 나름의 형체, 구조 또는 형식을 지닌다. 따라서 그런 따위의 형체, 구조 혹은 형식이 예술 자체의 특별난 특징일 수 없다. 다소간 특정한 형체, 구조, 형식이 찾아져야 한다. 몇몇 예술가들과 이론가들은 예술은 '순수한' 형식과 관계있다고 말한다. 순수한, 혹은 가끔 지칭되는 대로 본질적인 형식은, 재현적이거나 다른 기능과는 떨어져 독립해있으며, 말하자면 자력으로 존립하고 진술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식의 예술은 비예술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형식들을 결코 경멸하지 않는다. 그런 비예술적인 형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나 우리가 앉는 의자의 형식들로서, 이런 물품들의 기능적인 형식은 예술적인 호소력을 높여 줄 것이다. 더구나 초상화와 풍경화에서 발견되는 따위의 소위 부대적(extrinsic)인 것으로 지칭되는 '재현적인' 형식들은 예술에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 기능적인 형식이든 재현적인 형식이든 '순수한' 형식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내려진다. 가령 형식이 예술 특유의 특징이라면 그런 형식은 아무것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굳이 순수한 형식일 필요도 없다. 여느 형식이든 그에 의존하는 예술정의는 지나치게 너른 것으로 드러난다. 또한 순수 형식에 의존하는 예술정의는 지나치게 좁은 것으로 드러난다. [55~58p]


- 4. 예술을 다른 것과 차이나게 하는 예술 자체의 특징은 표현이다. 이 정의에 이르러 우리는 이제 작가의 활동에서 작가 '활동의 동인에로 관심이 옮겨지며 예술가의 의도에 관심의 초점을 모으게 된다. 이 정의는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것으로서, 19세기 이전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중략- 앞서의 다른 정의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표현을 통한 정의에서도 해묵은 애매모호성이라는 난점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으나, 표현이라는 용어의 '가장 일반적인' 뜻을 적용한다 하여도 예술정의는 여전히 '지나치게 협소할' 뿐이라는 차이는 있다. 왜냐하면 표현은 오로지 몇몇 예술 유파들의 목적하는 바이어서 모든 예술의 독자적인 특징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례만 들어 보면, 모든 구성주의 예술은 이런 식의 예술정의의 테두리를 벗어날 것이다. [58p]


- 5. 예술을 다른 것과 차이나게 하는 예술 자체의 특징은 예술이 미적경험을 산출한다는 점이다. 앞의 정의와는 다르게 이번의 정의는 이제 예술이 수용자에 대해 가하는 효과에다 초점을 모은다. 이렇게 강조점이 이동한 것은 20세기가 들어설 무렵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을 보편적인 추세였다. 이 정의는 미에서 예술 고유의 특성을 찾는 정의와 흡사하다. 실제로 후자의 정의에서는 예술은 미의 경험을 산출해낼 수 있는 것으로 주장된다.
그런데 이 정의 역시 앞서의 것들과 똑같은 난점을 지니고 있다. '미적경험'이라는 용어는 '미'라는 말보다 더 명료하지도 않으며 또 모호한 구석이 덜 한 것도 아니다. 이 정의가 나타내는 그대로, 이 정의는 명백히 지나치게 너른데, 왜냐하면 미적경험은 예술 이외의 여타의 사물에 의해서도 산출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58~59p]


- 6. 예술을 다른 것과 차이나게 하는 예술 자체의 특징은 예술이 충격을 낳는다는 점이다. 앞서의 정의처럼 이 저으이 역시 예술이 수용자에게 가하는 효과를 고려하지만, 그러나 그런 효과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가장 최근에 나타난 이 예술정의는 우리시대의 특징적인 산물이다. 현대의 많은 화가들, 작가들, 음악가들은 미적이기보다는 한결 더 압도적인 충격을 주는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을 자신들의 과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략- 달리 말해 일진광풍이 인체에다 기분을 남기는 그런 식으로, 예술의 기능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중략- 바로 앞의 정의에서 예술은 차분한 정서에서 황홀경에 이르기까지의 너른 범위의 경험을 산출하는 것인 반면에, 이 정의에서는 그러한 범위가 황홀경에서 충격에로가지 확장될 것이 요망되고 있다. 바로 이 정의는 아방가르드들에게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다른 부류의 몇몇 예술에도 적용될 수 있으나, 특히 보통 고전적인 예술로 지칭되는 것들과는 심히 불화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59~60p]


- 물론 이들 정의 각각, 특히 위에서 거론된 여섯 가지 기본적인 정의들 각각이 나름대로 일말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정의에서는 몇몇 예술작품이나 몇가지 유형과 조류가 논거의 필요상 빗대어 인용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 정의 중 그 어느것도 통상적으로 예술이라 호칭되는 것의 전체 영역을 공정하게 다룰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61p]


- 이전에는 무엇으로 호칭되었든 간에 다양한 아트(예술)들이 아주 동떨어지게 따로따로 취급되었던바, 시각예술은 음악과 문학과는 유리되었고 순수예술은 응용예술과는 다른 어떤것이 있다. 겨우 근대에 와서야 이들 서로 다르고 유리된 사물과 활동들은 모두 대중들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단일한 부류로 합체되기 시작하였으며, 예술을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들이 행하여졌다. 이러한 시도들이 직면하는 난점들은 이미 본 대로이다. 그에 따라 그런 시도들이 실패하자 자포자기의 태도가 잇달았으며, 오늘날 내려지는 결론은, ‘예술’에 대한 포괄적인 한 가지 정의는 아주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취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62p]


6. 예술정의의 거부
- 미국의 미학자 베이츠(M, Weitz)는 자신의 논고 「미학에서의 이론의 역할(The role of theory in aesthetics」(1957)에서 예술은 개방적인 개념 (an open concept)이라고 하는 견해를 개진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예술의 필요 충분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떠한 예술이론도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일뿐더러 실천을 통해서도 달성되기 어려운 것이다.” 예술의 창조성 속에는 “언제나 예술가는 이전에는 결코 창조되지 못하였던 것들을 창조한다. 따라서 예술의 존재 조건이 사전에 설정될 수는 없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63~64p]


7. 한 가지 대안 - 예술정의
- 예술에는 서로 다른 기능들이 많이 있다. 예술은 현존하는 사물들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현존하지 않는 사물들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예술은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관계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내면적인 삶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술은 예술가의 내면적인 삶을 자극하는 동시에 수용자의 내면적인 삶도 자극한다. 예술은 수용자에게 만족을 주는 동시에 수용자에게 감동을 안겨 주고 분발시키며 인상을 부여하고 충격을 주기도 한다. 이들 모두가 예술의 기능에 속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간과되지 말아야 한다. [67p]


- 인간의 행위에는 그 종류가 많다. 몇 가지 행위는 일정한 원인에 따라 좌우되며, 다른 행위들은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여진다. 어떤 사람이 춤추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춤을 추겠지만, 그러나 그 사람은 피난처를 구하기 위해 집을 짓는다. 하지만 가령 그 사람이 예술활동을 한다면 이 활동에는 원인(예컨대 무엇을 형체로 만들고 싶은 충동)과 목적 두 가지 모두가 들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예술개념 속에 내재하는 한 가지 난점이다. 또다른 난점은, 예술활동은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좌우되고 다양한 목적들에 이바지한다는 사실 속에 도사리고 있다. 예술가의 목적은 수용자의 목적과는 다를 것이고, 서로 다른 작품들이 비슷한 목적들에 이바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작품들이 서로 다른 목적들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 [68p]


- 예술이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활동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더구나 예술은 우연의 반영이나 소산이 아니라 ‘의도적인(conscious)'활동이다. [69p]


- 바로 예술정의에서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효과 양쪽 모두가 고려되어야 한다. [71p]


- 예술은 사물을 재생하거나 형식을 조성하며 경험을 표현하는 의도적인 인간 활동으로서, 이러한 재생, 조성, 표현의 산물은 환희나 정서 혹은 충격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에 대한 정의도 위의 것과 별단 바르지 않게 내려질 수 있다.
예술작품은 사물을 재생해 둔 것이거나 형식을 조성해 둔 것이거나 혹은 경험을 표현해 둔 것이어서 환희나 정서 혹은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72p]


- 예술을 엄정하게 가려내는 이러한 관점은 디오니시스오스와 미켈란젤로에 의해서만 주창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미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며, 고고한 원리에서 파생된 기준을 취하는 사람들이 그런 선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정신적인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는 것들만이 예술로 호칭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름다운 컵이나 안락의자보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포스터나 비엔나 왈츠보다는 램브란트나 베토벤의 작품에 예술이 한결 더 농후하게 담겨 있음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중략- 그래도 이들 두 가지 부류의 필수적인 욕구들 간의 경계선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결론삼아 말하건데, 초월적인 호소력을 지닌 예술마저도 감미로운 오락물로 전환되는 수가 가끔 있다.[76p]


8. 대안적 예술정의와 관련 이론들
-가령 예술이 모방, 조성,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기능들을 우리는 왜 그리고 얼마만큼 수행해 나가는지, 왜 그리고 무슨 목적에서 우리는 사물을 모방하고, 형식을 조성하며, 경험을 표현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예술상의 이런 활동들의 원천과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들에 비해 비교적 간단한 해답들이 수세기 동안 내려져 왔으며 그 중에서 특히 다음의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로, 이상의 모방, 조성, 표현은 각기 인간의 ‘자연스런 충동’이자 욕구이다. 그런 결과 예술이 갖는 이상의 기능들은 여타의 목표나 원인을 증거로 제시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원는 고로 우리는 모방하고 조성하며 표현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물음을 제기하고 더 이상 설명을 하려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둘째로, 이상의 활동들은 하나의 목표를 가지는데, 그 목표란 다음과 같이 아주 단순한 것이다. 즉 우리가 몸소 모방하고, 조성하며, 표현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즐거움을 보기 때문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도 능히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을 물품들을 산출하게 된다. 이 쾌락주의적인 설명 이외의 다른 설명은 있을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세 번째로 나오는 것은 ‘예술에 대한 무지’를 용인하는 해답이다. 다분히 회의주의적인 성격의 것이다. “학식있는 자는 예술의 의미에 익숙하지만, 무지한 자는 예술이 제공하는 즐거움에 익숙하다”고 하는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의 경구를 떠올리면서 회의주의자는 예술이론이란 찾아진 적도 없으며, 예술이론이 없어도 충분히 예술에서 즐거움이 찾아지므로 예술이론 없이 지내야 한다고 강변할 것이다. [77~78p]


9. 오늘날의 상황
- 1. 현재의 예술 상태를 이해하자면, 19세기 예술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9세기 예술의 생김새는 온르날의 예술의 생김새와는 정반대였다. 무엇보다도 원리에 순응하는 경향이어서 일반의 취향과 또 그에 연관된 인습에 복종하였다. 오늘날의 예술은 정반대로 원리에 반발한다. 19세기 예술과 오늘날의 예술은 사사건건 분열되는데, 새로운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산출해내려고 고투한 인습적인 19세기 예술에 정반대로 역행하는 것이 오늘날의 예술이다. 또한 19세기 예술은 관객의 비위를 틀어놓기보다는 즐겁게 만들길 갈망하였다. 이 점에서도 오늘날의 예술의 자세는 정반대이다. 새로운 예술은 대립함으로써 옛 예술로부터 튕겨나왔다. 반항적인 예술가들 무리를 ‘아방가르드(avant-garde)’라고 이름지으면서 그간의 사태를 간단하게 제시할 것 같으면, 19세기 이래의 급변한 예술계는 파문받은 아방가르드, 전투적인 아방가르드, 승승장구의 아방가르드라는 삼단계로 요약된다고 말할 수 있다. [80~81p]


- 이들 투쟁적인 아방가르드는 예술에서 자유가 용인될 뿐만 아니라 엄정히 요구되는 그러한 상황을 재빨리 도래시켰다. 예술가들에 대한 제약들이 종언을 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일차대전 이후, 특히 이차대전 이후에 아방가르드는 승승장구를 달렸다. 인습을 깨뜨리는 전위예술가들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찾는 대상으로 되어 추앙받으면서 높은 보상을 받게 되었다. 보수적인 예술가들은 격퇴되어 수세에 몰렸으며 아방가르드를 모방함으로써 몸을 사렸다. 그때 이후로 아방가르드만이 예술가축에 들게 되었다. 전투적인 아방가르드가 모더니즘으로 지칭된다면 양차대전 이후의 시기는 후기모더니즘으로 불릴 것이다. 이제는 아방가르드만 존재하는 고로 더 이상 아방가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81~82p]


- 자신들의 예술적 재능에 힘입어 아방가르드가 승리를 쟁취한 것이겠지만, 그러나 아방가르드들 자신의 매력으로 작용한 아방가르드 특유의 유별남에도 힘입은 바 있었다. 이 유별남 역시 아방가르드의 강령으로 되었던바, 아방그르드는 ‘도처에서 변화시키지 못할 이유가 뭐람?’하고 자부한다. 유별남은 아방가르드를 저 높이 올려진 아방가르드를 유별남만이 그 위치를 고수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전위의 예술이 인습적인 예술과 유별나게 달랐던 게 옛날 일이었지만, 이제는 전위의 예술들 간에도 서로 유별남이 돋보이며, 전위의 예술은 끊임없이 새롭게 존재하여야만 한다는 것이 저간의 상황이다. 승승장구의 아방가르드에 있어서 형식의 변화는 거의 매년 부단히 일어난다. [81~82p]
- 그런데 승승장구의 아방가르드의 특징은 무엇인가. 승승장구의 아방가르드도 형식 조성이나 경험 표현 따위의 방법으로 작업을 하는가. 물론 그렇게 한다. 시간이 흐룰수록 승승장구의 아방가르드는 극단적인 형식 조성이나 경험 표현에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승승장구의 아방가르드도 법식(규율)이나 기질에 얽매이는 예술인가. 물론 그렇다. 한편으로는 법식을 갈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질에 얽매인다. 또 기량이나 형상학상의 능숙함도 원하는가. 물론 원하며, 작가 자신의 환경이나 시대 추세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이제 이런 아방가르드도 전문성을 띠는 작업으로 되지만 그럴수록 빠짐없이 ‘모두가 예술가’, ‘예술은 길거리에’라는 구호가 튀어나오고 있다. [83p]


- 이천년 간의 진전이 있은 후에 확립된 예술개념에는 다수의 속성소들이 있다. 1. 예술은 ‘문화’의 일부라는 점, 2. 예술이 ‘솜씨’에 힘입어 연유한다는 점, 3. 자체 내의 특수한 성질 때문에 예술이 이 세상에서 별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4. 예술의 목표는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며, 예술의 의의는 예술작품 속에 있고 작품 때문에 예술이 가치를 갖게 되니 ‘예술’이라는 명칭은 예술가의 솜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해서도 부여된다는 점들이 예술의 속성으로 드러난다. -중략-
프랑스의 예술이론가 몰르는 “더이상 예술작품은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적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고 한다. -중략-
예술 분야에서 우리시대는 기존의 것에 대한 대립으로 경도되고 있다. 이런 반발(박물관이 예술의 운명을 좌우할 수는 없다). 개별적인 경험을 일반화 시킴으로써 독단으로 흐르는 미학에 대한 반발. 예술적 다양성을 소거시키는 따위의 극히 조리가 서지도 않는 활동들에 대한 반발. 살아있는 창조성을 경직시키는 형식에 대한 반발. 사적인 관심사로서의 예술. 예술가와 우주 간의 사적인 대화로서의 예술을 정지시키는 따위의 예술을 사회적인 시각 일변도로 처리하는 데 대한 반발. 예술작품의 관객, 관람자, 청취자에 대한 반발(그들은 필요하지 않다). 예술가에 대한 반발(해프닝에서 이미 저작권은 그 의의를 상실하였다). 예술작품 자체에 대한 반발(창조성의 산물이란 불필요하며, 이미 우리는 예술작품들로 둘러싸여 있다). 예술정의 자체에 대한 반발. ‘예술(art)’이란 용어 자체에 대한 반발. [84~87p]


- 우리는 새로움을 욕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렇게 추구하는 데 끝이 있겠는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역사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오늘날 그토록 활기찬 변화에 대한 욕구 역시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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