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역사

지은이 / 움베르트 에코 | 옮긴이 / 이현경

by Joong

미의 역사
지은이 움베르토 에코
옮긴이 이현경
발행처 주식회사 열린책들(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21-2 파주출판도시 내)
발행일 2005년 10월 15일
초판 1쇄 2009년 12월 30일 초판 4쇄


서문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 ―혹은<우아한>,<사랑스러운>,<숭고한>,<경이로운>,<화려한>같은 표현들과 함께 ― 우리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경우에 아름답다는 것은 선하다는 것과 같아 보이는데, 사실 수 세기 동안 미와 선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경험을 토대로 판단할 경우,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을 선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에 대한 사랑, 정직하게 벌어들인 재산, 세련된 고급 요리 등이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경우, 우리는 그 선을 소유하고<싶어 한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선이다. 고결한 행위가 선한 것으로 판단되었을 때, 우리는 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혹은 우리가 선한 행위로 생각하는 모범적인 행동에 고무되어 그렇게 가치있는 행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혹은 영웅의 장렬한 죽음, 헌신적으로 나병 환자를 돌보는 일, 목숨을 바쳐 자식을 구하는 부모들의 희생적인 삶 등, 이상적인 어떤 원칙에 부합하지만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들을 선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 일이 선한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기주의 또는 두려움 때문에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선으로 인정하지만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되는 다른 사람의 선이다. 우리는 그런 행위에 감동을 받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갈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직접 행하기보다는 바라보며 감탄하는 쪽을 택하는 그 고결한 행위를<아름다운 행동>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선을 아름다운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게 해주는, 거리를 유지하는 그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면, 우리가 소유 여부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즐길 때 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8p]


-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을 때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설사 그것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일지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다. 물론 여기서 위대한 화가의 그림을 보고 그것을 소장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혹은 그것을 매일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혹은 경제적으로 큰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림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태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여러 형태의 이런 열정, 질투, 소유욕, 시기, 탐욕은 미에 대한 감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10p]


- 우리를 안내하게 될 또 다른 척도는 근대 사회가 미와 예술 사이에 부과해 놓은 엄밀한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분명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10p]


- 이 때문에 우리는 미에 대한 다양한 모델들이 동시대에 어떻게 공존했는지, 그리고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서로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14p]


비교표
Chpater Ⅰ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인 미
1. 뮤즈의 합창
-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 미에 대한 자율적인 규칙 같은 것은 없었다. 적어도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를 때까지 그리스 인들에게는 진정한 미학과 미의 이론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37p]


- 아름다운 대상이란 형식에 의해 감각을, 무엇보다도 눈과 귀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측면들만이 대상의 미를 표현하는 유일한 요소들은 아니다. 인체의 경우, 정신과 성격이라는 성질 역시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데, 이것들은 육체의 눈이라기보다는 정신의 눈으로 감지된다. 이러한 언급들을 토대로 우리는 처음에는 미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미는 그것을 표현하는 다양한 기법들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단일한 규칙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41p]


2. 예술가들의 미
- 이집트 예술과 비교해 볼 때, 그리스의 조각과 회화는 예술과 일반 상식의 결합을 통해 힘을 얻어 거대한 진보를 한다. 이집트 인들은 건축과 회화에서, 추상적으로 정해져서 엄격하게 준수되는 규범에 종속되어 시각의 요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반면, 그리스 예술은 주관적인 시각을 제일의 위치에 놓았다. 화가들은 아름다운 형식의 객관적인 정확성을 존중하지 않는 원근법을 창안했다. [42p]


- 후대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리스 조각은 추상적인 신체를 이상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는 신체의 종합을 통해 이상적인 미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이룬 정신 물리학적 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형식미와 영혼의 선함이 표현되었다. [45p]


3. 철학가들의 미
- 소크라테스는 미학적인 범주를 최소한 셋으로 나누면서 예술적 실천을 개념적 차원에서 정당화하고 싶어 한 것 같다. 그 세 범주는 부분의 조립을 통해 자연을 표현하는<이상적인 미>, (눈을 그려 넣어 그것을 더욱 사실적으로 보이게 한 프락시텔레스의 조각에서처럼) 시선을 통해 영혼을 표현하는<정신적인 미>, 그리고<유용한(혹은 기능적인) 미>이다. [48p]


- 수 세기 동안 세밀하게 완성된 미에 대한 중요한 두 개의 개념이 플라톤으로부터 탄생하게 된다. 각 부분들의 조화와 비례로서의 미(피타고라스에게서 유래한)가 그 하나이고 『파이드로스』에서 제시해 신플라톤주의에 영향을 준 광휘로서의 미가 다른 하나이다. 플라톤에게서 미란 우연히 그것을 표현하는 물리적인 매개체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어떤 감각적 대상과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빛날 수 있는 것이다. [48~50p]


Chpater Ⅱ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1. 델피의 신들
- 그러므로 이 세계에 대한 지배는 델피 신전 벽에 새겨져 있는 네 개의 금언―<가장 정확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한계를 지켜라>,<오만함을 증오하라>,<지나침이 없게 하라>―같이, 정확하고 측정 가능한 조화와 일치한다. 바로 이러한 규칙들의 토대 위에 그리스 인들의 미에 대한 이상이 세워져 있다. [53p]


- 니체에 의해 근대에 와서야 주제화되긴 했으나 정반대되는 성질을 지닌 두 신이 그렇게 같은 신전에 함께 존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개 그것은 언제나 존재하고 주기적으로 현실화되는 가능성, 즉, 아름다운 조화 속에 카오스가 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표현한다. [55p]


- 실제로 모든 미가 감지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되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을 완벽하게 지각할 수 없다고 할 경우, 현상과 미 사이에 위험한 틈이 벌어지게 된다. 예술가들은 가능한 한 그 틈을 좁혀 보려고 애쓰지만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철학자는 이 세계의 조화미는 우연적인 무질서로서 드러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틈을 있는 대로 벌리려고 한다. [56p]


2. 그리스 인들에서 니체까지
- 일반적으로 그리스 예술과 서양 예술은 동양의 예술 형식들과는 달리 작품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을 선호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의 조각은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모래로 이루어진 티베트의 만다라는 상호 작용을 한다. 그리스의 미는 그렇게 촉각, 미각, 후각보다는 대상과 관찰자 간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감각들인 시각과 청각에 의해 표현된다. [57p]


Chpater Ⅲ 비례와 조화로서의 미
1. 수와 음악
-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6세기사이의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 로 불리는 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을 때(그리고 그것이 물, 무한한 것, 공기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이 세계를 단 하나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정돈된 전체로 정의하려고 했다. 이것은 세계를 하나의 형식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리스 인들은 형식과 미 사이의 동질성을 분명히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지만 우주론, 수학, 자연 과학, 그리고 미학을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 분명하게 이 사실을 입증한 사람은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였다. [61p]


- 만물은 질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존재의 조건인 동시에 미의 조건인 수학적 법칙의 구현이기 때문에 질서 있게 구성되어 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음악의 소리를 조절하는 수학적 비례, 음저의 토대가 되는 비례, 현의 길이와 음 높이 사이의 관계를 처음으로 연구한 학자들이다. 음악적 조화에 대한 사고는 미의 생산을 위한 모든 규칙과 엄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비례에 대한 이러한 사고는 고대를 거쳐 5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쓰인 보에티우스의 작품을 통해 중세로 전달되었다. [61~63p]


2. 건축의 비례
- 그리스 신전의 크기, 기둥들 간의 간격을 규정하거나 건물의 여러 면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비율은 음정을 규정하는 비율과 똑같이 일치한다. 숫자의 산술적 개념에서 여러 지점들 간의 비례에 대한 기하학적·공간적 개념으로 이행하려는 생각은 피타고라스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64p]


3. 인체
- 초기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조화란 짝수와 홀수의 대립뿐만 아니라 유한과 무한, 통일성과 다양성, 좌측과 우측, 여성과 남성, 직선과 곡선 등의 대립에서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피타고라스와 그의 직계 제자들은 상반되는 두 개의 요소가 대립할 때에는 한 개의 요소만이 완전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홀수, 직선과 정사각형이 아름답고 적절한 것이라면 반대되는 것들은 오류, 악의 부조화를 나타낸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와 다른 해답을 제시했다. 그는 우주에 통일성과 다양성, 사랑과 증오, 평화와 전쟁, 정지와 운동처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듯 보이는 실재들인 대립자들이 존재한다면 이 대립자들 간의 조화는 그중 하나가 사라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둘이 계속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데서 성취된다고 말한다. 그럴 경우 조화는 대립자들의 부재가 아니라 그들 간의 균형이다. [72p]


- 기원전 6세기의 예술가는 시인들이 말하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자신이 어느 봄날 아침 사랑하는 아가씨의 얼굴을 바라보다 감지했을 수도 있는 그 아름다움을 실현시켜야 할 의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돌로 표현해야 하고, 아가씨에 대한 이미지를 하나의 형식으로 구체화시켜야만 했다. 아름다운 형상을 만드 ㄹ때 제일 먼저 요구되는 조건들 중 하나는 바로 정확한 비례와 균형이다. 그래서 조각가는 두 눈을 똑같이 만들었고, 양쪽으로 땋은 머리도 똑같이, 가슴도 똑같이, 다리와 팔도 비례에 맞게 정확하게, 옷의 잔주름도 똑같이 리듬감 있게, 그 조각상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만한 매혹적인 미소의 입술 모퉁이는 균형에 맞게 조각했다. [73~74p]


- 균형simmetria만으로는 매혹적인 미소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 외에도 우리는 다시 비례라는 아주 엄격한 개념과 마주하게 된다. 2세기 후인 기원전 4세기에 폴리클레이토스는 그 조각이 각 부분들의 적절한 비례에 대한 모든 규칙을 구현해기 때문에 후에 카논이라고 불리게 된 작품을 제작한다. 그런데 카논을 지탱해 주는 원리는 동일한 두 요소 사이의 균형을 토대로 한 것은 아니었다. 신체 각 부분은 기하학적 의미의 비례 관계에 따라, 즉 A:B=B:C로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 뒤 비트루비우스는 전체상을 세분해 얼굴은 전체 키의 10분의 1이 되어야 하고 머리는 8분의 1, 가슴 길이는 4분의 1 등으로 신체의 적절한 비율을 표현한다.
그릿의 비례 규범은 이집트의 경우와 달랐다. 이집트 인들은 크기를 미리 정해놓은, 같은 형태의 작은 사각형들로 이루어진 격자망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키가 모눈 18의 길이가 되어야 한다면 다리의 길이는 자동적으로 모눈 3의 길이가 되어야 하고 팔 길이는 5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에서는 미리 정해진 길이가 없었다. 머리가 몸체에, 몸체가 다리에 비례하기만 하면 되었다. 기준은 유기적이었고, 각 부분의 비율은 신체의 움직임, 원근의 변화, 바라보는 사람의 위치와 관련된 조각상의 형세에 따라 결정되었다. [74p]


4. 우주와 자연
- 추한 것들도 비례와 대조를 통해 세상의 조화에 한몫한다. 미는 이러한 대립자들의 대조를 통해서도 탄생한다(이것은 이미 중세 철학 전반에 퍼져 있던 공통의 확신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괴물들도 창조의 개념 안에서 타당한 존재 이유와 존엄성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질서 내에서의 악도 그것이 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다. [85p]


5. 다른 예술들
- 수학적 연구가 그 엄밀함의 측면에서 절정에 도달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 이론과 그 실천에서였다. 원근법 자체는 기술적인 문제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원근법을 제대로 사용하는 게 올바르고 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측면이 흥미롭다.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에 관한 이론과 실천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원근법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다른 문화, 다른 시대의 그림들이 부적절하고 추하다고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86~87p]


6. 목적과의 일치
- 중세 사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비례만이 아니라 완전성(즉 모든 사물이 자신에게 속해야 할 모든 부분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그래서 불구인 인체는 추하다고 할 수 있다)과 광휘(눈부시게 빛나는 색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기 때문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 비례란 재료의 적절한 배치일 뿐 아니라 재료를 형식에 완벽하게 적용시키는 것을 뜻한다. [88p]


- 원칙은 사물 각각에 의도되어 있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퀴나스는 수정으로 만든 망치가 추한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게 된다. 수정 망치는 표면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자신의 기능에 부적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란 사물들 간의 상호 협력이다. 이 때문에 서로를 받쳐 주고 밀어 주며 견고하게 건물을 지탱시켜 주는 돌들 상호간의 행위를<아름답다>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성과 그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사물 간의 적절한 관계이다. 간단히 말해 비례란 우주라는 바로 그 통일체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인 원리이다. [88p]


7. 역사 속에서의 비례
- 조화라는 순수하게 이상적인 개념에 이렇게 닻을 내리는 것은 중세 초기 같은 위기의 시대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런 시기에는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몇몇 가치에 대한 인식 속으로 몸을 숨기려고 하는 한편, 육체, 감각, 물리적인 성질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을 의심의 눈으로 보았다. [91p]


- 수학적 규칙으로서의 비례에 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논문들을 고찰해 보면,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관계는 건축과 원근법에 관련된 측면에서만 만족스러운 듯하다. 회화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의 미는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해 보려고 애쓰다보면 이론의 완변성과 변화하는 취미 사이에 간격이 벌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91~92p]


- 결과적으로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이 비례의 미에 대해 말해 왔고, 또한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지배적 원리가 여러 시대에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례의 의미는 수차례 변화한 듯하다. 손가락과 손길이 사이의 올바른 비례, 손과 나머지 신체 간의 적당한 비례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그 하나이다. 정확한 비례를 정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취미의 문제였다. [92p]


- 비례를 엄격한 규율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 속에 비례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18세기에 비례가 미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비례에 반대하는 버크의 주장이 등장하게 된다. [95p]


Chapter Ⅳ 중세의 빛과 색채
1. 빛과 색채
-<암흑의 시대>라는 전통적인 이미지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색채적인 면에서조차 중세를<어두운>시기로 상상한다. 중세시대에, 사람들은 밤이 되면 불빛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살았고 마을과 도시의 거리는 위험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너무 어두웠다.
그렇지만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그리고 적어도 전기가 발명되기 전 시대의 고유한 특징이다. [100p]


- 예를 들어 바르크 회화에서는 사물들이 빛의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양감의 작용 속에서 빛의 구역과 어둠의 구역이 표현되어 있다(예를 들어 카라바조나 조르주 드 라 투르 회화의 빛을 보라). 하지만 중세의 세밀화에서는 빛이 사물들로부터 사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보인다. 사물들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한다. [100p]


- 중세의 전성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시대 이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견해를 부활시키며) 미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즉 비례, 완전성, 그리고 명료성claritas이 필수적임을 상기시켰다. [100p]


2. 빛으로서의 신
-<명료성>미학의 기원 중 하나는 수많은 문명에서 신은 빛과 동일시된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셈 족의 바알, 이집트의 라, 페르시아의 아후라 마즈다는 모두 태양이나 빛의 은혜로운 행위를 상징하는 신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플라톤의 이데아의 태양으로서의 선의 개념과 맞닿게 된다. [102p]


- 『엔네아데스』(I, 6)에서 플로티노스는 단순한 형태로 인해 각 부분의 균형미를 끌어낼 수 없는 태양의 색과 빛, 혹은 한밤에 눈부시게 빛나는 별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자문한다. [102p]


- 플로티노스(3세기)
『엔네아데스』, I, 6
색채의 단순미는 질료의 어둠을 지배하는 형식에서, 그리고 이성이자 이데아인 영적인 빛의 현전에서 기인한다. 이로서 모든 물체 중에서 불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많은 요소들 중 불은 이데아의 수준에 이르러 있다. 무형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모든 물체들 중 가장 가벼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위치상으로 가장 높이 있다. 홀로 있으면서 다른 요소들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면, 다른 요소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사실 불은 스스로를 차갑게 할 수 없지만 다른 요소들은 스스로를 불태울 수 있다. 처음에 색채를 가진 것은 불이며 이 불로부터 다른 요소들은 형상과 색채를 가지게 된다. 불은 이데아이기 때문에 선명하게 환히 빛난다. 그보다 하위에 있는 사물들은 그의 빛이 사그러지면 사라져 아름다움도 끝나 버리고 만다. 그것들은 색채의 전체적인 이데아에 관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03p]


3. 빛, 부, 가난
4. 장식
- 일반적으로 장식 중에서 기본적인 것은 빛과 색에 기초한 것이다. 대리석은 그 하얀색 때문에 아름다우며 금속은 거기서 반사되는 빛 때문에 아름답다. 대기 역시 아름다운데, 그것은 대기를 가리키는<ase-aeris>가<aurum>, 즉 황금의 광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아시도루스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자신의 어원학적 방법을 이용해 이렇게 단언한다). 사실 대기는 황금과 마찬가지로 빛이 비치자마자 눈부시게 빛난다. 귀금속들은 그 색깔 때문에 아름다운데, 그 색깔이 태양의 빛과 정제된 재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두 눈은 반짝일 때 아름다우며 청록색의 눈이 가장 아름답다. 아름다운 신체가 될 첫 번째 요건 중 하나는 장밋빛 피부이다. 그리고 실제로 어원학자 이시도루스는<venustas>, 즉<신체의 미>는<venis>, 즉 피라는 뜻에서 유래된 반면<formosus(미)>는 피를 움직이는 열기인<formo>에서 유래했다고 추론한다. 창백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sanus>도 피sangue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런 글들에서 젊은 나이에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고,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시대에 건강한 외형을 가진 신체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다. [113p]


5. 시와 신비주의에서의 색채
6. 일상적인 삶에서의 색채
7. 색채의 상징주의
- 색채에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중세의 상징주의에서 하나의 사물은 그것이 보이는 상황에 따라 상반된 두 개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사자는 때에 따라 그리스도를 상징할 수도 있고 악령을 상징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중세는 거의 10세기 동안 지속되어 그 긴 시간 동안 취미와 색채의 의미에 대한 확신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초기에 파란색은 초록색과 더불어 가치가 없는 색으로 간주되었는데, 아마도 처음에는 선명하고 밝은 파란색을 만들어 낼 수 없어서 파란색 옷이나 그림들이 단조롭고 칙칙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21p]


8. 신학자와 철학가
- 『헥사에메론(천지 창조 60일간의 이야기)』에 대한 주해서에서 로버트 그로스테스트는 질적 원리와 양적 원리 사이의 대립을 풀어 보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빛을 최고의 비례, 비례 그 자체로 정의한다. 최고의 비례인 동일성은 빛의 근원으로서 분할 가능한 창조주의 미를 정당화한다. 신은 가장 단순하며 최고의 조화이며 스스로의 비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26p]


Chapter Ⅴ 괴물들의 미
1. 추의 미적 표현
- 어느 문화에서든 미의 고유 개념 곁에는 늘 추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131p]


-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학 이론들은 추를 미의 반명제, 물리적이든 도덕적이든 미의 토대가 되는 비례의 규율(제3장 참조)을 침범하는 부조화, 혹은 한 존재가 자연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빠진 결핍의 상태로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거의 변함없이 지켜진 원칙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자. 즉 추한 존재ㅘ 사물들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술은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모방의 미는 추를 수용 가능하게 만들어 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에 이르기까지 이런 사고를 보여 주는 증거들은 적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고찰들을 깊이 생각해 본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자연적으로 우리에게 혐오감을 주는 추는 존재하지만, 물리적·도덕적 측면으로 이해된 추의 추함을<아름답게>표현하고 공표한 예술을 통해 그것을 수용할 수 있고 심지어 기분 좋게 느낄 수 있게 되기까지 한다. [133p]


2. 전설적이고<불가사의한>존재들
- 중세 사람들은 불가사의한 것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후대에 이국적으로 간주될 것이 그 시대에 취한 형식이었다.
중세 후기의 많은 여행자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을 나섰는데 이것은<불가사의>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그것을 찾으려고 애썼다. [142p]


3. 우주적 상징 체계에서의 추
- 어쨌든 중세 시대의 신비적이고 신학적인 사상은 어떤 식으로든 이 괴물들의 존재가 이 우주에서 정당함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두 개의 길을 택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전통적인 우주적 상징 속에 그것들을 삽입시킨다. 이렇게 우리가 초자연적인 사물들을 신비하고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형식으로 빅 위해 성 바오르의 격언에서 출발하게 되면, 모든 세속적인 존재들, 동물, 식물 혹은 돌멩이까지 모두 도덕적 의미(우리에게 선행과 악행을 가르쳐 주는 것)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의 형식 혹은 태도를 통해 초자연적인 실재를 상징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143p]


- 자연에 역행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자연에는 거스르는 존재들이다. 여섯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처럼, 신의 계획에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재료의 결함에 의해 사소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기이한 것portentuosa>은<경이로운 것portenta>(뭔가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것)과는 다르다. [147p]


4. 미에 필수적인 추
5. 자연적 호기심의 대상으로서의 추
-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괴물에 대한 태도가 변하게 된다.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앙브루아즈 파레 같은 의사들과 울리세 알드로반디와 존 존스턴 같은 자연주의자들,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와 카스파르 쇼트같이 불가사의하고 신기한 것들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전설의 매력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 그들의 논문에서 놀라운 기형과 더불어 세이렌이나 용 같은 진짜 괴물들도 열거하게 된다.
그렇지만 괴물은 그 자신의 상징적인 힘을 상실하게 되며 그저 자연적인 호기심의 대상으로 비치게 된다. 이제 문제는 그것을 아름답거나 추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를, 그리고 때로는그 해부학적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다. 아직도 환상적이기는 하지만 그 기준은 이미<과학적>이 되었다. 관심은 신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적인 것으로 변했다. [152p]


Chpater Ⅵ 양치기 소녀에서 천사 같은 여인으로
1. 성스러운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
2. 귀부인과 음유 시인
- 어찌 되었든 프로방스 음유 시인들의 시가 등장하고 그 뒤를 이어 브르타뉴 어로 쓰인 기사 소설들과 이탈리아 청신체파가 등장했으며, 이 모든 텍스트에서 순결하고 승화된 사랑의 대상으로 열망하지만 다가설 수 없는, 종종 다가설 수 없기 때문에 열망하는 여인의 특별한 이미지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11세기경이었다. [161p]


3. 귀부인과 기사
4. 시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음유 시인들에게서 영향받은 게 틀림없는 이탈리아 청신체파의 시인들은 도달할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신화를 세밀히 완성시켜 나갔는데, 이들은 억압된 육체적 욕망에서 신비한 영혼의 상태로 주제를 옮겨 놓게 된다. 여기서도 청신체파의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천사 같은 여인은 그들에 대한 수많은 해석을 낳게 하는 데 기여했다. [169~171p]


- 그렇기는 하지만 천사 같은 여인을 그리는 청신체파의 이상은 퇴폐주의가 시작될 무렵에(제8장 참조), 육감적이고 신비한 다의적인 종교성을 띤 분위기에서 라파엘 전파에 의해 다시 수용된다. 라파엘 전파는 단테적 여성상을 꿈꾸게 되는데(그리고 표현하게 되는데), 그 여성상은 하늘의 영광 혹은 죽음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허약한 성질을 벗어나 맑고 영적이지만 병적인 관능성을 지닌, 더욱 육체적인 갈망이 대상이 되어 되살아난다. [174p]


Chpater Ⅶ 14세기와 15세기의 마술적 미
1. 창조와 자연 모방 사이의 미
- 15세기에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한 점에 모이게 되는 요인들―이탈리아에서의 원근법의 발견, 플랑드르에서의 새로운 회화술의 확산. 자유 7과목에 미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사보나롤라에 의해 조장된 신비주의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미는 현대인인 우리의 눈에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일관성 있는 것으로 생각된 이중적인 방향에서 이해되었다. [176p]


- 가시적 세게에 대한 인식은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규칙에 따라 정리된 초감각적 실체를 인식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예술가는 아무런 모순 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창조자>인 동시에 자연의<모방자>가 될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분명하게 밝혔듯이, 모방은 자연적인 요소로 서로 보완된 개개의 형상들을 재창조하기 때문에 자연에 충실한 연구이자 발명인 반면, 기술적인 혁신(여인들의 얼굴에 나타난 미를 수수께끼같이 만들어 버리는 그 유명한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 같은)과 형식의 능동적인 반복을 요구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178p]


2. 가상
- 회화에서 원근법의 사용은 사실 창조와 모방의 합치를 의미한다. 현실은 정확하게 재현되지만 동시에 그것은 관찰자의 주관적 관점을 따른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주체에 의해 관찰된 미를 대상의 정확성에<덧붙이는>것이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에 따르면 그림은 열려 있는 창문이다. 그 안에서 원근법적인 공간은 다양한 차원을 만들어 낸다. 공간은 이제 경험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색채로 가득한 엄격하게 분리된 면들의 순간에 따라 배열된다. [180p]


3. 초감각적인 미
4. 비너스
- 무엇보다 피치노에 의한 신화의 재해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비너스의 이미지 위에 신플라톤주의적인 상징주의가 응축되어 있다.<존경할 만하고 찬미할 가치가 있는>사랑의 두 단계를 표현한 『향연』의 「성스러운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에서, 단일한 미의 이상을 두 가지로 구분해서 표명한 천상의 비너스와 세속의 비너스를 상징하기 위해 특히 이 쌍둥이 비너스를 참조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언급한다(피코는 그 중간 위치에 두 번째 천상의 비너스를 세우게 될 것이다). [188p]


Chpater Ⅷ 귀부인과 영웅
1. 귀부인……
2. ……그리고 영웅
- 반면 여성을 따라 다니는 다양한 동물들(티치아노의 「토끼의 성모」에 나오는 토끼에서부터 담비까지, 오색 방울새에서부터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등장하는 개에 이르기까지)은 때로는 여인들의 온순함을, 때로는 불가해한 모호성을 암시한다. [205p]


- 가난한 농부를 그린 또 다른 위대한 화가 브뢰겔에게서 마침내 실제 삶의 가혹함은 형식미를 짓눌러 버리며, 동물들은 플랑드르 평야의 민중들에게 전해지는 속담들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신비적인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205p]


3. 실제적인 미……
- ,이러한 변화에는 종교 개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더욱 일반적으로는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일어난 사회적 변화가 뚜렷하게 접목되어 있다. 여성의 이미지는 점진적인 변화 과정을 겪는다. 여성은 다시 옷을 입었고 농가의 안주인, 교사, 집사가 된다. 예를 들어 앤 불린의 관능적 미에서 헨리 8세의 세 번째 아내 제인 시모어의 완고함으로 옮겨 간다. 초상화들은 입을 꽉 다물고 어떤 감정의 흔적도 보이지 않은 채, 뒤러의 수많은 여인들처럼 빈틈없는 여주인의 얼굴로 그려져 있다. [206p]


4. ……그리고 관능미
- 궁정 세계는 우리가 다음 세기에 보게 될 우아한 춤 동작의 선회 속에서 그렇게 와해되어 가기 시작한다. 마니에리스모와 바로크 형식 혹은 카라바조와 플랑드르적 사실주의 형식 속에서 고전미가 붕괴되어 가면서, 이미 꿈, 놀라움, 불안 등 미를 표현하는 다른 형식들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12p]


Chpater Ⅸ 우아에서 불안정한 미로
1. 주관적인 다양한 미를 향하여
- 그렇게 하여 르네상스적은<매너>는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 속에서 전복된다. 르네상스는 수학과 관련 학문의 발달을 통해 대이론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는데, 수학의 진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불안한 조화들을 발견해 내게 되었다. 지식에 헌신한 결과 인간의 영혼은 평온한 것이 아니라 어둡고 우울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지식의 진보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서 밀어내 창조의 주변부로 던져 버렸다. [214~216p]


2. 마니에리스모
- 계산 가능성과 측정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객관성의 기준이 되지 않았으며, 차츰 복잡해져 가며 비례의 질서를 중단시키는 공간(뒤틀린 원근법, 왜곡된 상)을 표현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로 변하고 말았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마니에리스모가 완전히 이해되고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우연은 아니었다. 척도, 질서와 비례의 기준이 미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미는 필연적으로 주관적이고 불분명한 기준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220p]


- 아르침볼디는 당근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객관적 규칙이 아니라 오로지 대중의 동의, 궁정의<일반적 의견>에 의해서 미를 그려 냈다. [220p]


- 그러나 요즈음에는 그와는 달리 르네상스 시대의 대부분이―라파엘로가 생존해 있을 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가 사망한 1520년 직후부터―마니에리스모의 시대였다고 인정하고 있다. [222p]


3. 학문의 위기
- 이러한 열망과 불안,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이 시대의 학문으로 시야를 넓혀 본다면, 코페르니쿠스 혁명과 계속되는 물리학과 천문학의 발달에 의해 인문주의적 자아에 가해진<나르키소스적 상처>에서 일반적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우주의 중심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한 인간을 사로잡은 절망감은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관련된 인문주의적이고 르네상스적인 유토피아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었다. 정치적 위기, 경제 혁명,<철의 세기>의 전쟁, 다시 창궐하는 페스트,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우주는 인간을 위해 특별히 창조된 것이 아니며, 인간은 이 우주의 창조자도 이 우주의 주인도 아니라는 발견에 힘을 실었다. 역설적이게도 학문의 거대한 진보는 학문 자체의 위기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점점 더 복잡해지는 미에 대한 탐구는 천게의 법칙은 단순히 고전적 조화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끊임없이 복잡해진다는 케플러의 발견을 수반하게 된다. [225p]


4. 멜랑콜리
5. 예리함, 기지, 기상주의……
6. 완전성을 향한 긴장
- 창조와 수정을 거치면서 특정한 관계와 형식의 그물망이 자연적이고 구속력 있고 객관적인 모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로크 시대는 말하자면 선과 악을 넘어선 미를 표현했다. 추를 통해 미를, 거짓을 통해 진실을,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할 수 있었다. [233p]


Chpater Ⅹ 이성과 미
1. 미의 변증법
- 18세기에 바로크적 미가 삶의 감미로움에 자신을 맡긴 귀족들의 취미 속에서 존재 이유를 찾은 반면, 신고전주의의 엄격한 논리는 그 당시에 부상하던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특성인 이성, 규율과 계산 가능성이라는 신앙에 적합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궁정의 노(老)귀족 옆에서, 훨씬 젊고 활력적이며 기업가적인 기질을 가진 귀족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당시에 이미 사실상 부르주아의 풍습과 취미를 따르고 있었고, 근대적이고 개혁적이었으며, 이들은 『백과전서』를 읽고 살롱에서 토론을 했다. 그러나 18세기의 상인, 공증인과 변호사, 작가, 언론인과 판사 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사회 계층 속에서 한 세기 뒤에 부르주아 사회의 전형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이러한 특징들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239p]


2. 엄격성과 자유
3. 저택과 정원
4.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
- 물론 고고학적 탐구는 18세기 후반에 유행했다. 이러한 탐구를 통해 머나먼 대륙으로의 여행에 대한 열정이 드러났고, 유럽적 규범 밖의 이국적인 미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탐색, 발굴, 유적지에 대한 주목만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고대와 기원에 대한 진정한 열정의 시작을 가리키는 폼페이 유적지 발굴(1748)보다 불과 십여 년 앞선 에르콜라노 발굴(1738)에 대해 대중들이 보였던 무관심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두 번의 발굴 사이에서 유럽의 취미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결정적인 요인은 고전적 세계에 대한 르네상스적 이미지는 사실상 퇴폐주의 시대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고전적 미가 사실은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러한 미를 거부하고<진정한>고대를 찾고자 했다. [244p]


- 흄에 따르면, 비평가는 자시느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외적인 관습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능력이 있을 때에만 미적 취미의 기준들을 결정할 수 있었다. 비평가의 판다능ㄴ 건전한 분별력과 편견에서 자유로운 태도 같은 내적인 자질과 방법, 고상함, 경험 등에 토대를 두어야 했다. 이 비평가는 앞으로 보게 되듯이, 어떤 여론을 전제로 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 사상은 유통, 토론, 그리고 시장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의 대상이 된다. 그와 동시에 비평 활동은 고전적 규범으로부터 취미가 완전히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가정하게 된다. 이것은 마니에리스모에서부터 시작된 움직임으로, 흄에게서 회의주의(흄 자신이 주저 없이 긍정적 의미로 자신의 철학에 부여한 용어)에 가까운 미학적 주관주의로 귀착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논제는 미는 사물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비평가의 머릿속에서, 즉 외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관람자의 머릿속에서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244~246p]


5. 영웅, 육체, 폐허
- 지금까지 그렇게 욕조에 있는 시신을 그린 화가는 아무도 없었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에서, 역사적 진실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존중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자연의 냉담한 재생산이 아니라 모순되는 감정들의 혼합을 의미하게 된다. [249p]


6. 새로운 사상, 새로운 주제
- 18세기의 지식인과 예술가는 굴욕적으로 종속되어 있던 후원자와 보호자에게 점점 더 구속받지 않게 되었고 번창하는 출판 산업 덕택에 어느 정도 경제적 독립을 성취하기 시작했다. -중략-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도 정치와 철학의 중요 주제들을 개괄하고 널리 알리는 대중적인 서적의 편집자로 일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그와 같은 책들을 거리의 행상인들이 팔았다. 그렇게 해서 책은 지방의 오지까지, 주민들 중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반 정도밖에 안 되는 마을에까지 널리 퍼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이 혁명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252~254p]


7. 여인과 열정
- 바로크적 귀부인의 뒤를 잇는 여인들은 그들보다 육감적인 면에서는 훨씬 떨어지지만,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숨을 조이는 코르셋에서 벗어났으며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굽이치게 했다. [259p]


- 일기는 초기 낭만주의의 내부에 포함되어 있던 문학 형식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논쟁을 통해, 감정은 단순한 정신의 동요가 아니라, 이성과 감각과 함께 인간의 세 번째 능력이라는 확신이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감정, 취미, 열정은 비이성적이라는 부정적인 아우라를 상실한다. 그리고 이성에 의해 재정복될 때 그것들은 이성 그 자체의 독재에 항거하는 투쟁의 주역이 된다. [260p]


8. 미의 자유로운 유희
- 18세기 미학은 취미의 주관적이고 비규정적인 여러 측면들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경향의 정점에서, 이마누엘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미를 관조함으로써 생산되는 무관심적 만족을 미적 체험의 토대로 제시했다. 미는 개념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고 개념으로 환원되지도 않은 채로, 무관심한 태도로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적 취미는 즐거움 혹은 불쾌함에 따라 대상(혹은 표현)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즐거움의 대상이 우리가 미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의 대상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우리는 우리의 판단이 보편적인 가치를 지녀야만 하고 모두가 우리의 판단에 동의해야만 한다고(혹은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취미 판단의 보편성은 그것이 응해야 할 개념의 존재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미에 대한 보편성은 주관적이다. 그것은 판단을 내린 사람의 편에서 보면 합당한 주장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보편적 인식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우아한 장면을 표현한 와토의 그림이 직사각형이라는 것을 지성으로<느끼는 것>, 혹은 모든 신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여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성적으로<느끼는 것>은 대상이 된 그림이 아름답다고<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 사실, 지성과 이성은 모두 인식의 영역과 도덕의 영역에서 각기 행사하는 지배권을 포기하고 이성에 의해 부여된 규칙에 따라 상상력과 자유로운 유희를 벌이게 된다. [264p]


9. 잔혹하고 음울한 미
Chpater Ⅺ 숭고
1. 미에 대한 새로운 이해
- 다른 시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신고전주의는 미를 우리가 아름다운 것으로 지각하는 대상의 성질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다양성 속의 통일>혹은<비례>와<조화>와 같은 고전적 정의에 의지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호가스에게는<아름다운 선(線)>과<우아한 선>이 존재했다. 말하자면 미의 조건들은 대상의 형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18세기에는<천재>,<취미>,<상상력>,<감정>같은 다른 용어들이 미에 부여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용어들은 미에 대한 새롱누 개념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천재>와<상상력>은 확실히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거나 생산해 내는 사람의 능력과 관련되어 있는 반면,<취미>는 그 미를 감상하는 사람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모든 용어들은 대상의 성질이 아니라 주체(미를 생산하는 사람과 그것을 평가하는 사람 모두)의 자질, 능력 혹은 성질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이전 세기에 주체의 미적 능력과 관련된 용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통찰력>,<기지>,<예리함>,<에스프리>같은 개념을 생각해 보자), 주체의 권리가 미의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였다. [276p]


2. 숭고는 위대한 영혼의 메아리다
3. 자연의 숭고
- 그러나 18세기 말에 숭고에 대한 사고는 무엇보다 예술적 체험이 아니라 자연적 체험과 결부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 내에서 무형의 것, 고통스럽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여러 세기가 지나는 동안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과 무시무시하며 경악할 만하고 고통스러운 사물 혹은 현상들이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281p]


- 하지만 이 시기에 미적 즐거움의 세계는 두 개의 영역으로, 즉 미의 영역과 숭고의 영역으로 나뉘게 되었다. 물론 이 두 영역이 (아름다운 것과 사실적인 것, 선한 것과 좋은 것, 아름다운 것과 유용한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구별할 때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다. 숭고의 체험이 미의 체험에 속해 있던 많은 특징들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281~282p]


- 18세기는 새로운 지방과 새로운 풍습을 알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여행가들의 세기였다. 그들은 이전 세기처럼 정복욕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감동을 경험하기 위해서 여행을 했다. 그렇게 해서 이국적인 것, 흥미로운 것,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특이한 것, 놀라운 것에 대한 취미가 발전했다. [282p]


4. 폐허의 시학
5.<고딕>양식의 문학
6. 에드먼드 버크
- 버크는 숭고와 미의 효과에 대한 진정한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고 단언하지만 사실상 그는 다음과 같은 자문한다. 공포가 어떻게 기분 좋은 것이 될 수 있는가? 그의 대답은 이렇다. 그것은 공포가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추적해 오지 않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주장에 주의를 기울여 보도록 하자. 이 주장 속에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부터의 거리, 그러니까 그것에 대한 일종의 무관심이 포함되어 있다. 고통과 공포는 그것이 실제로 해가 되지 않는 한 숭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291p]


7. 칸트의 숭고
- 미와 숭고 사이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한 사람은 바로 『판단력 비판』(1790)을 쓴 이마누엘 칸트였다. 칸트는<무관심적 만족, 목적 없는 합목적성, 개념 없는 보편성, 그리고 법칙 없는 합법칙성>을 미의 특징으로 보았다. 그는 우리가 아름다운 사물을 소유하려는 생각 없이 그것을 즐길 수 있으며 아름다운 사물이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는 존재 그 자체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마치 규율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즐기게 되지만 사실 그것 자체가 규율이 된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꽃은 아름다운 사물의 전형적인 본보기가 되며 우리는 개념 없는 보편성이 어떻게 미의 일부분을 형성할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꽃이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특별한 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미학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꽃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하는 필연성은 원리를 토대로 한 이성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다. [294p]


- 숭고에 대한 체험은 다르다. 칸트는 숭고를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 두 종류로 나눈다. 수학적 숭고의 전형적인 예는 별이 뜬 하늘의 모습이다. 여기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우리의 감각 능력이 미치는 곳을 넘어서 있다는 인상을 주며,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이성(우리의 오성이 증명할 수 없는 신, 세계, 자유에 대한 이념을 우리가 전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능력)이 감각만으로 포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조차 하나의 직관으로 포용할 수 없는 무한을 가정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우리의 이 수학적 숭고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상상력과 오성의<자유로운 유희>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불안하고 부정적인 즐거움이 탄생하는 데, 이것은 우리가 가질 수 없는 무엇인가를 원할 수 있는 우리 주체성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역학적 숭고의 전형적인 예는 폭풍우가 칠 때의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의 영혼을 뒤흔드는 것은 무한한 공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무한한 힘에 대한 인상이다. 여기서도 우리의 감수성은 굴욕을 당하게 되고, 이로부터 다시 한 번 불안감이 생기게 된다. 이 불안감은 우리의 위대한 도덕적 감정에 의해 보상받는데, 이 도덕성과 대적하면 자연의 힘은 무기력할 분이다. [294p]


Chapter Ⅻ 낭만주의적인 미
1. 낭만주의적인 미
-<romantic>,<romanesque>,<romantisch>같은 용어들의 언어학적 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낭만주의적 취향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17세기 중엽에<romantic>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소설 같은 like the old romances>과 동의어였다. 1세기 뒤에는 다소<공상적인 romanesque>혹은<그림 같은>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루소는<그림 같은>이라는 의미에 주관적이고 결정적인 중요한 요소를 덧붙였다. 바로<알 수 없는 그 무엇je ne sais quoi>이라는 표현으로 모호하고 불명료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 [303p]


2. 낭만주의적인 미와 소설적인 미
- 두 번째로 고전적 규범과 낭만주의적 취미 간의 논쟁에서, 다양하고 놀랍고 보기 드문 이미지들의 보고로서의 역사에 대한 시각이 등장한다. 고전주의는 이러한 시각을 부차적인 것으로 몰아 버리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여행이 유행하면서 이국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이 숭배되어 다시 중요시되었다. 동시대인들조차 종종 참을 수 없어 했던 것 같은, 비범할 정도로 노련하고 완벽에 대한 감각을 지닌 앵그르의 기교와, 경이롭고 이국적이고 격렬한 미를 향한 긴장을 표현하는 들라크루아의 상대적으로 거친 붓놀림을 비교해 보는 것보다 이와 같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거리를 더 잘 표현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308p]


3.<알 수 없는 그 무엇>의 모호한 미
4. 낭만주의와 혁명
- 낭만적 인간은 자신의 삶을 소설처럼 살아가며, 저항할 수 없는 감정의 힘에 끌린다. 바로 여기서 낭만적 주인공의 우울이 유래한다. [314p]


5. 진실, 신화, 아이러니
- 그리스 사상에서(그리고<고전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그 이후의 모든 전통에서) 미는 진리와 일치했다. 진리는 어떤 식으로든 미를 생산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낭만주의자들은 미가 진리를 생산한다고 생각했다. 미는 진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창조해 낸다. 순수한 미라는 명분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낭만주의자들은 보다 큰 진리와 현실을 생산해 내는 미를 생각했다. [317p]


6. 음산함,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 절대자를 향한 격정과 운명의 수용을 향한 열정에서 볼 수 있듯이, 주인공의 죽음은 단지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이었다. 동일한 형식에서 자유와 세상에 대한 반란이라는 내용이 제거되면, 20세기의 파시즘들이 칭송하게 될(대개는 입에 발린 말로)<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키치적인 포장물이 될 것이다. [322p]


7. 서정적인 낭만주의

Chpater ⅩⅢ 미의 종교
1. 미의 종교
- 산업 사회의 억압, 거대한 익명이 군중을 수용하는 거대 도시의 확장, 확실히 미적인 것을 중시하지 않는 새로운 계급의 부상에 직면하여, 새로운 재료들의 순수한 기능성을 과시하는 새로운 기계들의 형식에 감정이 상한 예술가는 자신의 이상이 위협받는 것을 느꼈고,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민주적 사고를 적대적인 것으로 지각하게 되어 자신은<다르게>행동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미의 종교가 형태를 갖추게 된다. 혹은<예술을 위한 예술>의 깃발 아래에서, 미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실현시켜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사고가 등장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간주하고 살아가게 될 정도가 된다. [329~330p]


- 이로써 새로운 미의 사제들이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데, 그들은 낭만적 감수성의 모든 측면들을 과장하고, 쇠락의 순간으로 그것을 이끎으로써 극단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 대표자들은 자신들의 운명과 쇠락하는 위대한 고대 문명의 운명, 그리고 이미 야만인의 전리품이 된 로마 문명과 비잔틴 제국의 임종(천 년 전에 일어난)을 평행선상에 놓을 정도로 그 쇠락에 대해 깊이 의식하고 있었따. 쇠락의 시대에 대한 이러한 동경은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된 이 같은 문화적 분위기에 데카당스(퇴폐주의)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330p]


2. 댄디
- 예외적인 것에 대한 숭배를 보여 주는 최초의 징후는 댄디즘으로 나타나게 된다. 댄디는 19세기 초, 섭정기의 영국 사회에서 조지 브러멀에 의해 탄생했다. 브러멀은 예술가도, 미와 예술에 대해 숙고하는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에게서 미와 예외적인 것에 대한 사랑은 복장(의복이라는 의미와 생활의 실용성이라는 이중적 의미의 용어로서)으로 표현되었다. 단순성(때때로 기이함에 이를 정도로 과장된)과 동일시되는 우아함은 궤변과 자극적인 행동에 대한 취미와 결부된다. [333P]


- 그러나 19세기의 몇몇 예술가들이<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이상을 배타적이고 끈기 있는 장인적인 믿음으로 하나의 대상 안에 미를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이상으로 이해한 반면, 댄디는 (그리고 자기 자신을 댄디로 생각했던 예술가들 역시) 이러한 이상을 만족스러운 미의 모범으로 만들기 위해 예술 작품처럼<가꾸고>형성해 나가야 할 고유의 공적 삶에 대한 제의(祭儀)로 이해한다. 삶이 예술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예술이 삶에 적용되는 것이다. 예술로서의 삶. 생활 방식이 현상된 것으로서의 댄디즘은 자신의 모순점을 스스로 드러낸다. 댄디즘은 부르주아 사회와 그 가치(돈과 기술에 대한 숭배 같은)에 대한 저항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이 사회에서 주변적인 것이었고,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귀족적인(사람들에 의해 기괴한 장식으로 받아들여진) 표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댄디즘은 종종 그 시대의 편견과 관습에 대한 반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334p]


3. 육체, 죽음, 악마
4. 예술을 위한 예술
- 퇴폐주의적 감수성이 형태를 갖추어 가는 동안, 쿠르베나 밀레 같은 화가들은 인간의 현실과 자연을 사실적으로 해석하며, 낭만주의적 풍경을 대중적으로 만들면서 그것을 노동과 노역, 그리고 농부와 평민들처럼 낮은 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일상성 속에 되살려 놓는다. 그리고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인상주의자들에게는 미에 대한 막연한 꿈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욱 깊이 침투하려는 의도로 세밀하게, 거의 과학적이라고 할 정도로 빛과 색채에 대해 연구했다. [338~339p]


- 지식은 진실과 관련이 있고 도덕심은 의무와 연결되는 반면 취미는 우리에게 미에 대해 가르친다. 취미는 고유의 법칙을 가진 자율적인 능력이다. 만약 이것이 악을 경명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면, 그것은 악이 척도와 미와는 모순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이는 예술과 미의 관계가 과거에는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던 반면, 이 시대에는 ― 자연을 경멸하는 태도를 드러내려 안달하는 동안 ― 미와 예술이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쌍으로 뒤섞이게 된다. 예술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공적인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 [340p]


5. 거꾸로
- 취미에 관한 한, 이 시대에 살아남아 승리를 거둔 듯한 유일한 자연의 대상은 꽃이었다. 뿐만 아니라 꽃은 이탈리아에서<플로레알레floreale>로 알려진 장식 스타일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퇴폐주의는 꽃에 대한 강박 관념 속에 살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꽃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자연적으로 세공된 보석이라는 거짓 인공성, 양식화의 능력, 장식, 보석, 아라베스크로의 전환 가능성, 식물계에 스며들어 있는 연약함과 쇠락의 느낌, 삶에서 죽음으로의 빠른 이행 때문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릴 수 있다. [342p]


6. 상징주의
- 퇴폐주의보다 훨씬 더 문학적이고 예술적이었던 운동은 상징주의였다. 상징주의 시학은 예술적 전망과 세계에 대한 전망을 동시에 제시했다. 이러한 상징주의의 출발점에는 샤를 보들레르의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보들레르는 산업화되고 상업화, 기계화된 도시를 배회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정신성을 끌어들이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던 그곳을 말이다. 신문들은(이미 발자크가 부패하고 위조된 사고와 취미를 만들어 내는 요소로 지목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적인 도식으로 평이하게 만들어 버렸다. 차츰 개가를 올려 가고 있던 사진은 현실을 잔인하게 정지시켜 렌즈를 보고 아연해하는 시선에 인간 얼굴을 고정시키며, 묘사에서 미세한 아우라를 제거해 버리고 상상력의 가능성을 ―많은 현대인들이 평가하듯― 죽여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강렬하고 보다 진실하고 보다 미세하며 깊이 있는 경험의 가능성을 어떻게 재창조할 수 있을까? [346p]


7. 미적 신비주의
8. 사물 속의 환희
- 상징주의는 전 유럽을 관통했던 강력한 사조로서 오늘날까지 그 아류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주요 흐름에서 현실을 이해하는 하나의 다른 방식, 즉 사물들이 계시의 원천이라는 사고방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353p]


9. 인상
- 그 당시에 상징주의는 이미 현실과 접촉하는 새로운 기법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가고 있었고, 미에 대한 탐구는 하늘을 포기하고 재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도록 예술가들을 이끌었다. 이러한 과정이 점차 진행됨에 따라,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인도했던 미의 이상마저도 잊어버리고, 예술을 미적 환희의 기록과 자극으로서가 아니라 인식의 도구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359p]


Chpater ⅩⅣ 새로운 대상
1. 빅토리아조의 견고한 미
- 격동의 1848년에서부터 세기말의 경제적 위기에 이르는 시기를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부르주아의 시대>로 정의했다. 이 시기에 부르주아 계층은 상업과 식민지 정복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신들의 가치를 표현함으로써 정점에 도달한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도덕적 관습, 미적·건축적 규범, 상식, 패션, 공적인 태도, 장식의 규율 등 모든 것이 부르주아―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헤게모니를 장악한 영국<빅토리아조의 부르주아>―적이었다.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군사력(제국주의)과 경제력(자본주의)뿐 아니라 자신들의 미를 과시했다. 이러한 미에는 귀족 계급의 것과 구별되는 부르주아 고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실용성, 견고성, 내구성 등이 반영되어 있었다. [361~362p]


- 빅토리아조의 세계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부르주아의 세계는) 순수하게 실용적인 의미에서 삶과 경험의 단순화에 의해 지탱되는 세계였다. 사물들은 모호성, 복합적인 특징, 다의성을 통해 불필요한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옳거나 그르거나, 아름답거나 추한 것이었다. 부르주아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사이의 딜레마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외적인 세계에서(증권 거래소에서, 자유 시장에서, 식민지에서) 그들은 이기주의자였고, 가정이라는 닫힌 울타리 내에서는 훌륭한 아버지이자 교육자이며 박애주의자였다. 부르주아에게는 도덕적 딜레마가 없었다. 그는 자기 집에서는 도덕주의자이자 청교도였지만 집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위선자였고 프롤레타리아 지역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난봉꾼이었다. [362p]


- 그러므로 빅토리아풍의 미학은 미의 영역이 실용적인 기능을 도입함으로써 야기된 근본적인 이중성을 표현했다. 모든 물건이 그것의 통상적인 기능을 넘어 상품이 되고 모든 사용 가치(사물의 실제적인 혹은 미적인 목적)에 교환 가치(사물과 일정액의 화폐와의 등가성)가 덧붙여지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대상의 미적 향유조차 대상의 상업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결국 미는 여분의 것이 아니라 가격과 일치하는 것이 되었다. 한때 모호함과 불명확함이 차지했던 공간은 이제 대상의 실제적인 기능으로 다시 채워졌다. 차츰 형식과 기능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대상의 발전 과정은 이러한 이중성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363p]


2. 철과 유리 : 새로운 미
- 영국에서도 19세기의 새로운 미는 과학, 산업과 상업의 힘을 통해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었다. 그와 같은 힘들은, 과거에는 지배권을 행사했으나 이제는 사라져 버린 도덕적·종교적 가치들을 대체하도록 운명지워져 있었다. [366p]


- 철과 유리로 구성된 건물에서 표현된 미는 영국에서는 중세로의 회귀(퓨진 칼리일)와 신고딕(러스킨, 모르시)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이론가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이론가들의 활동은 중앙 예술 공예 학교Central School of Arts and Crafts의 설립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미로의 회귀라는 퇴행적 유토피아와 기계 문명의 새로운 미에 대한 거부에 근거를 둔 이러한 적대감이, 미는 사회적 기능을 표현해야 한다는 확신에 이의를 제기―와일드가 그랬던 것처럼―하지 않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단지<어떤>기능이 건축물에 반영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366~367p]


3. 아르 누보에서 아르 데코까지
- 아르 누보는 책 장식에서 시작되었다. 가장자리 장식, 전체적인 틀, 제목의 글씨 등으로 인해 책은 장식들로 다듬어진 미와 물체의 일반적인 기능이 결합된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일반적이고 널리 퍼져 있는 상품에 대한 장식의 이러한 확산은 새로운 물결 모양의 선으로 구조적 형식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미는 곧 쇠로 만든 창틀, 파리의 지하철 입구, 건물, 가구를 점령하게 된다. 아르 누보는 나르키소스적인 미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물에 비추어 보며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밖으로 투영시킨 나르키소스처럼 아르 누보에서 내적인 미는 외부의 대상으로 투사되어 그것을 점령하고 자신의 선들로 그것을 감싼다. [368~369p]


- 아르 누보의 형식적인 요소들은 1910년부터 데코 스타일에 의해 발전되었다. 데코 스타일은 추상화와 뚜렷한 기능주의를 향한 왜곡과 단순화라는 아르누보의 특성들을 물려받았다. 아르 데코(이 용어는 60년대에 이르러서야 등장하게 되었다)는 유겐트슈틸에서 도상학적인 모티프들 ―정형화된 꽃다발, 젊고 날씬한 여인들의 모습, 기하학적인 도식, 나선과 지그재그―을 찾아내어 입체파, 미래주의자와 구조주의자들의 경험에서 도출한 요소들로 그것들을 풍부하게 발전시키는데, 형식이 기능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유겐트슈틸의 자유와 장식의 풍요로움은, 유행하는 취미를 의식적으로 수용하면서 더욱더 정형화되어 가는 다지인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된다. 아르 누보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미는 더 이상 미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게 되었고 기능적인, 품질과 대량 생산 사이의 신중한 통합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미의 특징의 예술과 산업 사이의 화해이다. 즉 이것은 적어도 일정 부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데코 제품이, 아르 데코가 생산해 낸 연약하고 호리호리한<위태로운 여인>과 분명하게 대립되는 파시스트 여성의 미에 대한 공식적인 규범들이 존재했던 이탈리아에서까지 놀랄 만큼 널리 퍼지게 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371~372p]


4. 유기적인 미
5. 일상용품 : 비평, 상품화, 대량 생산
- 20세기 예술이 가진 특징 중의 하나는 삶을 상품화시키는 시대의 일상용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다. 모든 사물들이 상품으로 환원되고 교환 가치에 의해서만 통제되는 세계에서 사용 가치가 점차 사라져 가는 현상은 일상용품의 성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사물은 유용하고 실용적이고 상대적으로 경제적이며, 유행하는 취향과 어울리고 대량으로 생산되어야만 했다. 이것은 상품의 유통 과정 내에서 미의 질적인 측면들이 양적인 측면으로 전복되는 일이 점점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능이 사물에의 만족 여부를 결정한다. 긜고 최초의 모델 이후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기능은 더 좋아지고 만족은 높아진다. 간단히 말해 사물은 미와 의미를 결정지어 주는 유일성 ―<아우라>―이라는 특징을 상실하게 된다. 새로운 미는 재생산이 가능하지만, 또한 일시적이기 쉽다. 그리고 이러한 미는 상품의 생산, 분배, 소비로 이루어진 유통 과정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서, 소비하거나 싫증이 나서 재빨리 다른 물건으로 대체하도록 소비자를 유인해야만 한다. [376~377p]


- 상품의 세계는 그것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는 별도로 자신의 이미지로 현대 인간의 지각을 만족시키는 부인할 수 없는 능력을 획득했다. 그렇게 해서 예술가와 일반인을 구별 짓는 특징이 점차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비판을 위한 여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인간이든, 사물이든, 모든 임의의 대상―메릴린 먼로의 얼굴에서부터 완두콩 통조림까지, 만화에서 버스 정거장의 무표정한 군중에 이르기까지―은 자신의 존재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시되는 방식을 결정짓는 사회적인 좌표를 토대로 자신의 미를 획득하거나 상실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예술의 과제가 되었다. [377~378p]


Chpater ⅩⅤ 기계의 미
1. 아름다운 기계?
-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자동차이든 컴퓨터이든 상관없이 아름다운 기계라고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기계가 아릅답다는 생각은 아주 최근에 생긴 것이고, 17세기 말경에 그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인식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가 기계에 대한 진정한 미학을 완성한 것은 한 세기 반도 안되었다. [381p]


- 그렇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인간은<복잡한 기계들>, 신체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장치들도 고안해 냈다. 풍차나 물방아를 생각해 보면 된다. 이러한 기계들의 장치는 내부에 감춰져 있다. 그리고 언제든 움직이기 시작하면 혼자 계속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기계들에 대한 공포는 인간 기관의 힘을 몇 배로 늘리면서 자신들의 힘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 기계들을 작동하게 하는 숨겨진 장치들이 신체에 위험했기 때문에(복잡한 기계 장치에 손을 댄 사람은 다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풍차의 커다란 날개, 시계 톱니바퀴의 톱니, 한밤중에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시뻘건 두 눈을 살아 있는 것으로―기계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때문에―지각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계들은 인간 혹은 동물과 유사해 보였다. 그리고 이<유사하다>는 것속에 기계의 괴기스러움이 담겨져 있었다. [382~383p]


2. 고대에서 중세까지
- 그렇지만 헤론은 이러한 발명품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호기심에 의한 놀이나 신전에서 기적의 환영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인공물로 이해했다. 이와 같은 태도는 중세까지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386p]


- 중세의 기록들은 종종 기계 사자내 새, 하룬 알 라시드가 샤를마뉴에게 보냈다는 자동인형 혹은 비잔틴 궁정에서 크레모나의 리우트프란도가 보았다는 자동인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기록들은 이 기계들을 놀라운 물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기계들에 생명을 불어넣은 숨겨진 메커니즘이 아니라 그것이 주는 사실적인 인상, 즉 그 외관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387p]


3. 15세기에서 바로크 시대까지
- 확실히 폰타나에게서 이미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기계공들의 특징이 도리 기술과 예술 사이의 동요가 나타났다. 이제 우리는 서서히 실제적인 행위들의 가치가 복권되고 기계공에 대한 존경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88p]


4. 18세기와 19세기
- 기계는 『백과전서』의 삽화 속에서도 신고전주의적 미의 기준인 그 합리적 효율성 때문에 찬미되었다. [393p]


-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시인들 역시 기계에 대해 미적인 열광을 분명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393p]


5. 20세기
Chapter ⅩⅥ 추상적 형식에서부터 재료의 심층까지
1. 바위에서 석상을 찾다
- 현대 예술은 재료의 가치와 풍요로움을 발견했다. 이것은 예전의 예술가들이 재료로 작업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거나, 이 재료로부터 그들의 창조적 구성과 암시, 장애물과 자유가 나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중략- 그러나 예술가들이 항상 재료와 대화해야 하고 그 속에서 영감의 원천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재료 그 자체는 무형의 것이며, 미란 재료 위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형식을 새기고 난 뒤에야 탄생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401p]


2. 재료에 대한 현대의 재평가

- 미학이 재료에<대해>, 재료와<더불어>, 재료<속에서>작업하는 것의 중요성을 철저하게 재평가하는 동안, 20세기의 예술가들은 재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은 조형 예술의 모델들을 포기하고 가능성 있는 형식의 왕국을 탐험하도록 예술가들을 떠밀 정도로 강렬했다. 그렇게 해서 대부분의 현대예술에서 재료는 더 이상 작품의 밑바탕만이 아니라 그 목적이자 창조적 담화의 대상이 된다.<앵포르멜informel>이라고 불리는 회화에서 얼룩, 균열, 덩어리, 박편, 물방울 얼룩 같은 것들의 승리를 찾아볼 수 있다. [402p]


3. 레디메이드
4. 재생산된 재료에서부터 산업 재료, 재료의 심층까지
- 자신들에게 운명 지워진 소비 주기를 마치고 나서, 가장 쓸모없는 물건이 된 이 대상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무용성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결핍에서 비롯된 빈곤함에서 다소 자유로워지게 되면서 예기치 않았던 미를 표현하게 된다. [409p]


- 마지막으로 한때 현미경으로 눈의 결정체를 관찰하며 그 미에 탄복할 수 있었듯이, 오늘날에는 섬세한 전기 기술들이 재료의 심층에서부터 예기치 않았던 형식적인 미를 찾아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레디메이드의 새로운 형식이 탄생하게 된다. 이것은 장인이 만들어 낸 물품이나 산업 생산품이 아니라 자연의 심층, 즉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이다. [409p]


Chapter ⅩⅦ 미디어의 미
1. 도발의 미 혹은 소비의 미?
2. 아방가르드, 혹은 도발의 미
- 현대 예술 중 단 하나의 경향만이 비례 미학의 시대를 상기시키는 기하학적 조화에 대한 사고를 되찾았다. 바로 추상 미술이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에서 클라인, 로스코, 혹은 만초니의 대형 단색 캔버스에 이르는 이런 경향은 자연에의 예속과 일상생활에의 예속을 모두 거부하면서, 순수한 형식들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시회나 박물관을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추상적인 그림들 앞에서<이것은 뭘 그린 것일까>라고 말하며<이것도 예술인가>라고 항의하듯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례와 수의 미학을 토대로 하는 이러한<신피타고라스적인>회귀는 현대의 감수성에 반해, 일반인들이 미라고 느끼는 것에 반해 이루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고대의 신비주의적 의식과 다르지 않게, 종교적 의식 냄새를 풍기는 무대 행사를 연출하는 현대 예술의 다양한 흐름들(해프닝, 예술가가 자신의 신체에 그림을 그리거나 훼손시키는 이벤트, 라이트 쇼나 음향 현상 속에 관중을 개입시키기)이 있다. 이런 의식의 목적은 아름다운 사물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유사 종교 체험―비록 신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관능적이고 원시적이긴 하지만―에 있다. [417p]


3. 소비의 미
- 이 지점에서 미래 세계의 방문자는 맷 미디어가 제시한 미의 모델이 어떠한 것인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두 개의 단절점이 동일한 시기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모델들 사이에 있다.
첫 번째 단절점은 동일한 시기에 등장하는 모델들 사이에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영화는 그레타 가르보와 리타 헤이워스에 의해 구현되는<팜 파탈>이라는 모델과 클로데트 콜베르나 도리스 데이에 의해 구현되는<이웃집 여자>라는 모델을 동시대에 제시한다. 또한 건장하고 남성적인 존 웨인과 온화하고 어딘지 모르게 여성적인 더스틴 호프먼을 동시에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게리 쿠퍼와 프레드 아스테어는 동시대인이었고 다소 왜소한 프레드는 다부져 보이는 진 켈리와 춤을 추었다. 유행은 「로베르타」에서 등장하는 것 같은 화려한 여성복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코코 샤넬의 중성적인 여성복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매스 미디어는 완전히 민주적이어서, 천성적으로 이미 귀족적인 우아함을 타고난 사람들뿐 아니라 풍만한 육체를 지닌 노동자 계급 여성에게도 미의 모델을 제공한다. 또한 날씬한 오드리 헵번은 아니타 에크베르크의 풍만한 육체와 겨룰 수 없는 여성들을 위한 미의 모델이 된다. 한편 리처드 기어의 세련된 남성미를 지니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예민한 감수성의 알 파치노와 프롤레타리아적 매력을 지닌 로버트 드 니로가 있다. 마지막으로 마세라티의 미를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는 미니 모리스의 적당한 미가 있다. [425p]


- 두 번째 단절점은 한 세기를 둘로 나눠 놓는다. 간단히 말해, 20세기의 처음 60년 동안 매스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상적 미는<위대한>예술가들의 제안을 상기시킨다. 프란체스카 베르티니나 리나 데 리구오로 같은 은막의 여왕들은 단눈치오의 초췌한 여인들과 근친이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의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상은 리버티 혹은 아르 데코의 섬세한 미를 상기시킨다. 다양한 제품 광고는 미래주의,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자의 영향을 다시 느끼게 한다. -중략- 간단히 말해, 그림들이 지배적인 미적 감수성의 발달에 어떻게 순응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를 따라가 보기만 하면 된다. [426p]


- 그러나 한편에서 팝아트가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예술의 차원에서, 상업, 산업, 그리고 매스 미디어의 세계에서 유래한 이미지들을 취하고, 다른 한편에서 비틀스가 전통에서 유래한 음악 형식들을 솜씨 있게 재생했을 때, 도발의 미와 소비의 미 사이에 벌어져 있던 간격은 더욱 좁아졌다. 더군다나, 여전히<고급>예술과<대중>예술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반면,<고급>예술은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분위기 속에서 구상적인 것을 넘어서는 동시에 전통을 새롭게 탐색하는 차원에서 구상적인 것을 재고하는 새로운 실험적인 작업을 제공한다. [426p]


- 매스 미디어는 그들 편에서 그 어떤 통일된 모델도, 단일한 미의 이상도 제시하지 않는다. 매스 미디어는 불과 일주일밖에 지속될 수 없는 광고에서도 아방가르드의 모든 실험들을 되살려 낼 수 있으며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 모델들을 동시에 제시할 수 있으며 심지어 20세기 중반의 구형 자동차 모델들을 재발견하여 제시할 수도 있다. -중략- 우리의 미래 방문자는 매스 미디어에 의해 확산된 미의 이상을 더 이상 규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관용의 대향연 앞에서, 전반적인 혼합주의 앞에서, 제어할 수 없는 완전한 미의 다신교 앞에서 항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426~428p]


옮긴이의 말
인용 저자 찾아보기
예술가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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