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판교 테크노 밸리에 위치한 일본 우동 전문점이다.
어렸을 적에, 컴퓨터 학원이라는 것이 동네마다 생겨서 타자연습을 시키고는 했는데, (그런 것이 컴퓨터 학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식이 아주 우습긴 하다.) 당시 장문 연습에 들어가면 '우동 한 그릇'이라는 일본 소설이 하나 있었다. 그 이후로 '일본 우동'에 대한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래서 그런지 날이 조금만 추워도 이래저래 우동집이 생각나고는 한다.
이 가게를 가기 전까지 '우동 한 그릇'이라는 소설과 제일 잘 어울리는 가게는 충무로의 '동경우동'집이였는데, 소바니 우동의 맛을 보고는 이제 바뀌었다.
판교 테크노 밸리에는 IT 전문 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그렇다 보니 메뉴가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 이런 신도시 식당가 들이 가지는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치킨'집과 '중식당'이 가장 먼저 들어와서 장사를 하다가 세가 높아지면 철새처럼 떠나가고는 하는데, 판교는 애초부터 높은 임대료 때문인지 '가성비 높은' 중식당은 잠깐 동안만 존재했거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와중에도 '치킨집'들은 꿋꿋이 살아남는 걸 보면, 얼마나 마진율이 높은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IT업계의 식문화가 반대로 얼마나 단조로운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돈이 없어서 치맥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시도할 여유도 없고, 용기도 없다. 이 업계의 사람들이 입에 달고 하는 소리는 '사용자수'라든지, 얼마나 안정성 있고, 빠르게 구현했고,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2014년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존재했던 신박한 가게들은 전부 사라졌고, 그나마 체인이 아닌 곳을 찾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이런 가게는 언제까지 영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오로지 주인장의 인내와 끈기에 달려있을 따름이라 귀추가 걱정되면서도 궁금하다.
메뉴는 단출한데, '튀김'을 올리면 튀김 우동, '고기'를 올리면 '고기 우동'- 카레를 얹으면 '카레 우동'인 식이고- 비슷하게 밥에 '튀김'을 올리면 텐동, 카레덮밥, 등등 인 방식이다. 집중하고 있는 3가지 클래스는 '튀김', '고기', '카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뭘 올리면 그게 새로워 보이고 그것에 현혹되기 쉬운 것 같다. 마치 미스터 피자에서 '새우' 좀 올리고 씨푸드라고하거나, 다시 스테이크 조각 좀 올렸다고 '스테이크 피자' 신메뉴가 되는 식이다. 그런 것은 새로운 메뉴가 아니다. 그냥, '바뀐 것'이다. 그런 것은 취향인 것이고- 식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좀 더 근간인 것- 이 가게의 근간은 면이었다. 우동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으로 기본적으로 소화가 썩 잘되는 음식이 아니다. 솔직한 이야기로 방귀가 잘 나오는 음식인 것이다. (풋) 그래서 밀가루를 원재료로 하는 면요리, 면 자체의 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하나의 축은 소화가 잘 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나에게는 줄곧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 면요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질량/에너지 보존 법칙처럼 요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집의 면은 숙성을 시키는데, 그 맛과 질감이 묘하다. 일본 도심지에서도 이런 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우동집들과도 무언가 다르다. 물론 더 맛있다, 아니다- 와 같은 순위 경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은(우동이란 음식이 나온지 최소 몇 백 년은 넘었으리라) 장르에서 새로운 '맛'을 개척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 가게가 없어지거나 비로소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고 한 참이 지나야 아쉬움을 느끼는 그런 일이기 때문에, 시도조차 어렵고-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기도 쉬워서 나는 존경스러울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가게의 직원 구성이 재밌었는데, 모든 주문과 서빙은 여자(사장님?)분 혼자서 다 맡아한다. 딸이 있으신지 계산대 옆에 사진들이 줄줄이 붙어있고 그것이 꽤 사랑스럽다. 반대로 주방에는 아저씨 두 분이서 모든 음식을 만들어 내는데, 아무런 대사가 없다. 뭔지 쿨(90년대 댄스 남녀 혼성그룹)의 그런 구성, 혹은 나디아에 나오는 악당 3인조(여기에서도 여자가 두목으로 나온다, 이 알레고리- 도상은 일본 70~90년대 만화계에서 꾸준히 등장했다.)의 그런 느낌이 있다.
무개성적인 신도시의 오피스텔 건물 속 매트릭스에서 개성을 부여한 채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