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로저 새빈 | 옮긴이 / 김학영
만화의 역사(Comics, Comix&Graphic Novels)
지은이 : 로저 새빈
옮긴이 : 김한영
펴낸날 : 2002년 12월 15일 초판 1쇄
펴낸곳 : 글논그림밭(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181-9 인성빌딩 2층)
서문
제 9 예술
유희와 창조, 자유의 공간
- 지난 15년 동안 만화는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겪었다. 인쇄 기술이 크게 발전했고 이와 더불어 만화 전문점에 대한 마케팅에서도 ‘직판’ 체제가 출현하여 만화책 생산에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다. 이것은 역으로 이전보다 더욱 복잡하고 상상력이 뛰어난 스토리와 그림이 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과거에 만화는 값싸게 제작된 일회용이고 수준 낮은 아동용 오락거리라는 이미지가 보통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사진에 가까운 고품질의 종이와 완전히 색칠된 그림이 일반적이고 성인을 위한 주제 또한 공포만화와 성애만화에서 정치풍자 성격의 다큐멘터리 만화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7p]
-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이 책은 만화가 ‘예술’이라는 주장과는 무관하다. 만화가 지금까지 예술이라는 안락한 세계에 초대받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최초의 순간부터 만화는 저급한 독자층을 위해 ‘상업적으로’ 대량 생산되는 상품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자동적으로 예술적 진실성과는 거리가 먼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만화들은 ‘세련된’ 그림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이런 이유로 현대예술계에서는 만화를 ‘발견된 오브제’나 ‘쓰레기 아이콘(trash icons)’으로 격하한다. 만화가들이 ‘예술갗로서 존경받지 못하고 소모품 취급을 받아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들이 창조한 주인공들이 전세계에 알려지는 경우에도 그들은 자신은 익명으로 남는다(슈퍼맨이 누구인지는 삼척동자도 알지만 누가 슈퍼맨을 창조했는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8p]
- 실제로 최근 들어 바로 이 특성에 대해 많은 ‘생각’이 출현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새롭고 세련된 만화가 선보였을 때 일각에서 만화라는 매체의 방식과 구조를 분석하는 저술이 출현했다. 이 연구들은 만화가 하나의 언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즉 만화는 글과 미술로 짜여진 일종의 천으로, 자체만의 독특한 구문론, 문법, 관례를 갖고 있어서 완전히 고유한 방식으로 사상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다. 이들 연구에서는 예를 들어 말과 그림이 병치되어 나름의 분위기를 생성하는 방식,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시간이 극적 효과를 내는 방식, 특별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 편집을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최종적으로 창작자의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 만화의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 등을 지적한다. [8p]
- 그의 뒤를 이어 만화 인쇄와 학계 모두에서 수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스콧 맥클루드의 위대한 저서[만화의 이해Understanding Comics](1993)가 출간되어 수많은 목소리를 하나로 엮어 냈다. 그 책은 아주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만화는 어떤 것이든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그 책 자체가 하나의 그래픽 소설로 출간될 정도였다. 맥클루드의 책이 최종적일 수는 없지만(어떤 연구가 최종적일 수 있겠는가?) 만화 매체의 기본 요소를 더 많이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는 반드시 권장되는 책이다. [9p]
1장 만화의 개척자들
인쇄술과 풍자산업의 결혼
- 만화 그 자체는 19세기의 발명품이지만 만화의 전례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에서 대중을 위한 그림이 생산된 것은 인쇄술의 발명 덕분이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대중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제작된 일러스트나 그림이 있었고, 나레이션이 들어간 연속그림도 있었다. 로마의 트라야누스 원주(서기 113년 완공), 노르망디의 바이외 태피스트리(1100년경)가 그 예이다. 그러나 이것을 보기 위해서는 사람이 여행을 해야 했다. 인쇄술이 발명된 후에는 그림이 사람을 찾아갔다. 접근성이라는 간단한 문제가 해결되자 ‘대중매체’의 시대가 도래했다. [11p]
- 풍자와 캐리커처가 그렇게 효과적이었던 한 가지 이유는 그림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릿한 목판화의 시대는 지나가고 인쇄술은 바야흐로 동판인쇄이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일단 완성된 그림은 에칭용 조각침으로 금속판 표면에 다시 새겨진 다음(특정 부위를 부식시키기 위해)산에 담그고 잉크를 바르는 과정을 거쳤다. 그것은 몇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해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로 인해 얻어지는 섬세한 결과물은 노력의 가치가 충분했다. [12p]
- 이 만화잡지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의 만화잡지에 거의 가까웠으며, 실제로 일부 역사가들은 그것을 만화잡지로 분류하고 있다. 글보다 그림에 비중을 둔 것, 연재만화를 더 많이 늘린 것, 익살을 강조한 것 등이 만화잡지로 발전하는 중요한 단계들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빠진 것이 있었다. 그것이 새로운 종류의 출판문로서 충분한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연속적인 중심인물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만화잡지라고 동의할 만한 최초의 출판물은 [앨리 슬로퍼의 반나절의 휴일Ally Sloper's Half Holidya](길버트 댈지엘, 1884)라는 이상한 제목의 잡지였다. 이 잡지는 싼 가격에(1페니)연재물, 시사물, 산문소설이 함께 실린 흑백 타블로이드판 주간 발행물이었고 잡지 제목의 출처인 알렉산더 슬로퍼가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 잡지는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만화 매체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잡지로 손꼽히는 이유는 최초의 만화잡지였다는 것 외에도 상업적·예술적으로 아주 많은 측면에서 표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15p]
- 1890년에 이르러 이른바 ‘반 페니의 혁명’을 예고하는 대량 출판의 홍수가 시작되었다. 아말가메이티드 프레스 사의 소유주인 25세의 출판업자 알프레드 하먼즈워스는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만화잡지를 출간했다. 사실 당시로서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비용 절감과 부수의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판매인들은 그 가능성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낮은 가격으로 이윤을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먼즈워스 역시 개인적으로는 싸구려 잡지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의 새로운 만화잡지를 ‘건전한 오락거리’로 만들어 독자들을 싸구려 잡지에서 멀리 떨어뜨리기를 바랐다(후에 그는 일련의 소설 잡지를 통해 이 운동을 전개했다).
그와 그 출판사가 1890년에 출범시킨 잡지의 이름은 [코믹 커츠Comic Cuts]였고(제목에 ‘코믹comic'이 들어간 최초의 출판문이었다). [18~19p]
- 새로운 만화잡지들이 비판대에 오른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화잡지는 무해한 철도 문학이 아니라 보다 사악한 어떤 것으로 비쳐졌다. (비록 하먼즈워스는 그 잡지들이 다른 각도에서 평가되기를 바랐지만) 가부장적인 중산층에서는 예전에 일페니 선정잡지를 비난했던 때만큼 열성적으로 이 새로운 형식의 노동자 오락거리를 공격했다. 비평가들은 그것이 두 가지 상반되 차원에서 ‘읽고 쓰는 능력에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첫째, 그림에 기초한 모든 출판물은 자연히 신문 자료에 비해 열등하다고 간주되었다. 독서는 ‘발전적인’ 도덕성과 관계가 있는 반면 만화는 정반대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었다. 둘째, 그들은 새로운 만화잡지의 조밀한 인쇄가 시력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어느 측면에서나 만화잡지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19p]
- 미국의 만화잡지는 아주 다른 경로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만화잡지의 어머니는 풍자만화 잡지가 아니라 신문의 연재만화였다. [19p]
- 미국에서 그림이 책의 판매를 끌어올렸다면 그것은 신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p]
- ‘황색 꼬마’ 이후 만화를 무기로 한 치열한 유통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백 종의 만화가 수준 높은 풍자에서 어처구니없는 익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유머러스한 주제를 담고 전국의 모든 신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만화가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신문 재벌들은 만화가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예술적 측면에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특히 뛰어난 만화가로 윈저 맥케이, 라이오넬 파이닝거, 조지 헤리만을 꼽는 데 동의한다. [20p]
- 20세기 첫 10년은 인기 있는 신문 연재만화를 모은 특별한 종류의 책이 출판된 시기로, 오늘날 우리가 ‘만화책’이라 부르는 것의 조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책들은 비정기적으로 출판되었고, 하드커버로 제작된 경우가 많았으며, 대단히 상업적인 주제를 선호했다. 당시에 ‘교양 있는’ 만화와 ‘교양이 낮은’ 만화를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엿보기 위해 이 책들이 다룬 만화를 분류해 보자면, 여우같은 할아버지와 꾸러기 브라운은 수십 권의 책에서 다루었고, 리틀 네모는 두 권의 책에서만 다루었으며, 상업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 파이닝거와 헤리만의 작품은 훨씬 나중까지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개 그러한 책은 책 속의 만화를 처음 실었던 신문사에서 출판했다.[24~25p]
- 신문 연재만화와 재판(再版)서적의 인기가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미국 사회의 일각에서는 그러한 출판문을 강하게 반대했다. 이것은 만화잡지를 공격했던 영국의 상황과 아주 비슷했다. 미국에서도 말과 그림의 혼합은 본질적으로 ‘올바른’ 독서를 해치는 저급한 형식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그러나 미국의 상황이 달랐던 점은 본래 존재했던 계급적 편견에 종교적·인종적 편견이 더해졌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일부 극단적인 그리스도교에서는 만화잡지가 일요일에 발행된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그리고 만화가 다른 종교를 믿는 도시의 이민자들에게 읽힌다는 사실이 새로운 차원의 반대 이유로 작용했다. [25p]
2장 코믹 만화, 만개하다
어린이부터 쥐새끼까지
- 코미디 만화의 위대한 시대는 1935년무렵부터 65년까지였다. 이시기에 영국과 미국에서는 만화잡지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초기의 한 만화에서 표현했듯이) ‘웃음이 빽빽이 들어찬’ 이 잡지들은 전무후무한 판매 부수―수천이 아니라 수백만 정도―를 기록했다. 주제는 풍자에서 익살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똑같은 공식을 따랐지만, 이제 독자층은 아동이 압도적이었고 이로 인해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이 폭발적 성장의 문화적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1965년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문화책을 ’즐거움을 일으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동용 출판물‘로 정의했다. [27p]
-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 영국 만화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겪었다. 갑자기 밝은 색채와 보다 깨긋한 그림 그리고 훨씬 더 민감한 감수성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더 이상 [앨리 슬로퍼의 반나절 휴일]과 같이 빽빡한 만화를 볼 때처럼 그림의 세부표현을 식별하기 위해 실눈을 뜰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만화잡지들은 단번에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게 제작되었다. 그 배경에는 소란스러운 코미디가 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흐르고 움직어야한다는 인식, 그리고 만화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즉각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놓여 있었다. [27p]
- 이 변화의 역사적 기원은 에드워드 시대 초기(1901-11)에서 발견된다. 약 10년의 기간에 걸쳐 성인용 만화잡지를 출판했던 업자들은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그에 따라 어린이를 위한 섹션을 기획했다. 여기에 실린 만화는 대개 재미있는 동물, 어릿광대 등이 등장했고 글의 분량은 최소화되었다. 이 증보판은 큰 인기를 얻었기 떄문에 다음 단계는 당연히 제대로 된 만화잡지를 출시하는 것이었다. 이제 어린이들도 약간의 구매력이 있었다. 용돈이라는 개념이 1800년대 후반부터 성립되었고(어린이들이 더 이상 일하러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잡지의 가격이 ‘토요일의 페니(어린이들이 토요일에 받는 용돈을 가리킴; 옮긴이)’보다 낮다면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만화잡지의 시각적 효과는 급격히 상승했다. 그림은 더욱 단순해졌고, 표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더 많은 색이 도입되었다. [27p]
- 게다가 만화는 아이들에게 비밀스런 공간이 되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힘과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어린이다운 환상을 펼칠 수 있었다. 그것은 장난과 가상의 폭력이 존재하는 세계였고, 초등학교 교수들이 ‘산란한 장난’이라 불렀던 유희의 세계였다. 무엇보다도 이런 이유로 만화는 어린이들과 강한 유대를 형성했다. 운동장에서 오가는 잡담은 대개 그 주에 새로 나온 만화 이야기였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모르는 아이가 있으면 그는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사실 만화의 주인공들은 아이들의 ‘친구’였다. [28p]
- 이 요소들은 1940년대를 거쳐 1950년대까지 계속되었고, 두 만화잡지의 인기는 갈수록 하늘을 찔렀다([비노]가 판매면에서 경쟁자인 [댄디]를 약간 앞서고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 구조들이 수정을 거쳐 계속 사용되었는데, 특히 어른들의 규칙을 위반하는 내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1950년대 아이들의 못된 장난을 다룬 만화는 세 명의 창작자 데이비드 로, 켄 리드, 레오 백슨데일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로는 잊혀지지 않는 등장인물을 창조하는 데 예사롭지 않은 감각을 지닌 뛰어난 창작자였다. 가장 유명한 주인공 ‘개구쟁이 데니스’는 번개에 맞은 듯한 머리의 장난꾸러기 소년으로 역시 번개에 맞은 듯한 털을 가진 개 내셔를 항상 데리고 다녔다.[32p]
- DC 톰슨이 만화 산업에 뛰어듦으로써 만화가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직원들의 근무 조건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창작자에 대한 보수는 여전히 페이지 수에 따른 매절로 계산되었고, 로열티는 전무했으며, 등장인물에 대한 결정권도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작품에 서명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는데, 표면상으로는 아이들이 그것을 그림으로 볼 수 있어서였지만 실제로는 창작자를 익명으로 감추는 것이 출판업자의 이익과 계약상의 관행에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DC 톰슨은 1926년 총파업 이후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했다. [32~33p]
- 여기에서 우리는 영구의 만화산업이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해외에서 들어오는 심각한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호황을 누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만화잡지가 공식적으로 배포된 것은 1959년부터였다. 그러나 미국은 1930년대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잡지 생산 국가로 부상해 있었다(아래를 보라). 해외의 경쟁자가 영국에 들어오지 않았던 한 가지 이유는 더 시급하게 수입할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세계대전 이후 영국 항구에 들어오는 배에는 군수품과 생활 필수품이 가득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미국문화에 대한 영국인들의 편견이었다. [33p]
- 미국만화를 편집한 영국 잡지도 있었다. 이 잡지들은 대개 소프 앤포터, L 밀러 앤 선과 같은 중소 출판사들이 미국 주인공에서 딴 이름을 붙여 흑백으로 제작했다. 이들 중 가장 인기 있던 잡지는 맨 처음 출판된[주간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Weekly](윌뱅크, 1936)로서, 놀랍게도 920호까지 발행되었다. 이 잡지는 영화를 통해 영국 어린이들에게 이미 친숙했던 다양한 디즈니 주인공들이 등장했고, 그라비어 인쇄방식의 선명한 그림을 보여주는 타블로이드판이었다. 이 잡지에는 미 전역에 배포되던 신문 연재만화 그리고 영국화가들의 작품이 함께 실렸다.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 다른 잡지들도 미국만화의 등장인물들을 연재만화의 기초로 이용했다. [33p]
- 역사적인 1960년대가 시작되면서 유통전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33p]
- 또 다른 변화는 글과 그림의 품질이 하락한 것이었다. 급박한 마감시간에 좇긴 것 외에도 리드나 백슨데일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모방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압박감 때문에 대다수의 연재만화는 모방적이고 단조로웠다. 농담은 너무 얄팍해서 유행하지 않았고 그림은 2류 수준을 맴돌았다(만화가의 보수가 질보다 양으로 계산되는 현실의 당연한 결과였다).[33p]
- 미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코미디 만화잡지가 크게 유행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그 기원은 신문의 연재만화였다. [34p]
- 마지막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이었던 엘지 크라이슬러 세가의 ‘심블 시어터Thimble Theatre'는 1919년부터 연재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뱃사람 포파이‘의 가족이 소개된 1929년부터였다. 그의 아내 올리브 오일(Olive Oyl)과 아들 스위피(Swee'pea)는 끊임없이 위협에 시달리지만 그때마다 용감한 뱃사람의 주먹이 날라와 적을 물리친다. 포파이의 힘은 항상 그의 비밀 무기인 시금치 한통으로 강력해진다. [34p]
- 만화 주인공들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재인쇄 서적 시장도 작은 호황을 누렸다. 특히 1920년대에는 10x10 인치 형식의 책으로 유명했던 커플스 앤 레온 출판사가 시장을 지배했다. 1930년대 초에는 휘트먼 퍼블리싱 사가 군림했다. 그들은 더 작은 정사각형 크기에 오른쪽 면에는 만화의 패널은, 왼쪽 면에 대본을 인쇄한 책을 출판했다. [34p]
- 다시말해 그 만화는 기본적으로 가정 코미디 형식이었고,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곧 어린 독자들 사이에 거대한 시장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그들만을 겨냥한 만화책이 더욱 많이 생산되었다.
주요 연령층이 뚜렷하게 뒤바뀐 것은 1940년대 동물 만화가 발전하면서였다. 물론 의인화된 등장인물은 신문 연재만화가 시작된 이래로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제 델이라는 이름의 출판사는 디즈니 영화사와 특허 계약을 맺고 동물만화 장르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델의 주요 잡지인 [월트 디즈니의 만화와 이야기 Walt Disney's Comics and Stories](1940)는 22년간 발행되면서 도널드 덕, 미키 마우스를 비롯한 여러 주인공들의 독창적인 모험담을 발표했다. 이 잡지가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만화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판매가 급증했다는 것과 그림의 질을 최고로 끌어올린 것에도 그 이유가 있었다. [35p]
- 디즈니 열풍은 곧 다른 만화영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잡지를 자극했다. 그 중에는 특히 워너 브라더스, MGM, 월터 란츠, 한나-바버라가 제작한 영화와 TV 프로에서 유래한 잡지들이 유명했다. 델사는 다시 한번 선두에 서서 워너스 사와 특히 유리한 조건으로 라이센스 계약을 맺었고, 그 결과물로서 1941년 [루니 툰스와 멜리 멜로디스]를 발행했다(마지막 패널은 항상 ‘여러분,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말로 끝냈다). 뒤이어 개별 주인공들만 등장하는 잡지가 나왔다. [벅스 버니](1942), [포키 피그](1942), [대피 덕](1953)이 대표적이었다. 일부 연재물은 원작이었지만 그 밖에는 고전적인 카툰을 각색한 것들이다(이 작업은 대개 그 유명한 텍스 애버리가 지휘했다). [36p]
- 그들은 또한 아동 주제를 변형시켜, [꼬마 유령 캐스퍼](1952) 그리고 두 후속편[굉장한 꼬마 유령 스푸키Spooky The Tuff Little Ghost](1955)와 [착한 꼬마 마녀 웬디Wendy the Good Little Witch](1960)로 대표되는 초자연적인 어린이가 주인공인 만화잡지를 발행했다. [37p]
- 사실 이 아동용 만화잡지들(재미있는 동물과 어린이가 등장하는 잡지들)은 수치상으로는 만화 시장을 지배했지만, 출판사들은 보다 나이든 독자층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로 구성된 시장이 어린이 시장과 나란히 존재했는데 그 시장은 두 가지 경로로 확인되었다. 첫째, 신문 연재만화를 재인쇄한 만화책이 꾸준히 팔려 나갔고, 이와 동시에 인기 있는 주인공의 원작들로만 구성된 만화책이 발행되었다. -중략-
둘째, 다양한 연령의 독자층의 경우에는 만화영화 외에도 다른 종류의 매체들이 만화와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스크린에서 만화책으로 자리를 옮긴 주인공은 만화영화의 주인공들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실제 코미디언들도 똑같은 경로로 만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예를 들어 [빌코Bilko], [내 사랑 루시I Love Lucy]. [비버리 힐빌리스The Beverley Hillbillies], [비윗치드Bewitched]도 만화로 각색되었고, ‘세 명의 정보원The Three Stooges' 그리고 ’애봇과 코스텔로‘가 등장하는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다. [37~38p]
- 10대들은 또한 1950년대부터 유행했던 풍자만화의 주요한 표적시장이었다. 이 특별한 분야를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만화책은 엔터테이닝 코믹스 사(EC)가 출판한 [매드Mad](1952)였다. 이 출판사는 맥스의 아들 윌리엄 게인즈가 경영했으며 이전부터 공포 만화잡지로 악명이 높았다(3장을 보라). [매드]의 창작자이자 1호부터 28호까지 편집위원으로 활약했던 하비 쿠르츠만은 유머 만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후에 이렇게 썼다. ‘[매드]를 위해 내가 개발한 스타일은.... 떠들썩한 표면 아래 놓인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풍자와 패러디가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말하고 있는 것의 표적이 정확할 때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풍자와 패러디는 창작자가 제재 속에 담겨 있는 근본적인 결점이나 거짓을 폭로할 때에만 효과가 있다.... 풍자/패러디 작가는 단지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실제 세계의 모습을 상기시키고자 노력한다.’ [38p]
- 1955년에 도입된 만화규약에는 성인용 주제의 축소를 골자로 하는 일련의 억압적 기준이 부과되었다. 대부분의 코미디 만화잡지들은 검열과 무관하게 살아남았으나(델 사는 그들의 잡지를 조사위원회에 제출할 필요조차 없었다), [매드]는 형식을 바꿔야만 했다. 1954년 이후로 [매드]는 흑백의 일반 잡지로 발행되었다. [38p]
- 그러나 이 모든 코미디 만화잡지와 만화 산업 전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화가와 작가들에 대한 착취는 영구에서와 똑같이 심각한 문제였다. 미국의 전통적인 작업방식은 제작과정을 화가, 작가, 잉크기술자, 인쇄기술자로 쪼개서 분담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익명성을 존속시켰고 집단 행동을 가로막았다. 노조를 조직하기란 (몇 번의 시도는 있었지만) 거의 불가능했고, 일반적으로 만화가는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로 간주되었다. 영국에서처럼 보수는 그림의 매수로 계산되었고 로열티나 저작권은 전무했다.([매드]의 팀은 형편이 나았다. EC의 보수기준은 비교적 높았고 화가들은 항상 작품에 사인을 했다.)[41p]
- 영국과 미국의 코미디 만화에 대한 설명을 마감하기 전에, 만화가 하나의 매체로서 사회적 인식에 미친 영향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양국의 만화 산업은 아동과 10대의 여가 활동에 큰 요인으로 작용했고, 그 인기는 어린들이 간과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간단히 말해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몰입했고, 그러한 이유로 만화에 대한 견해가 형성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만화는 이제 신문 독자 투고란과 라디오 프로의 토론 주제가 되었다. 문제는 만화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였다.
당연히 의견의 일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자 두 개의 대립된 견해가 형성되었다. 1차 대전 이전에 성인용 만화에 쏟아졌던 비판들이 이제는 그 후손인 소년만화에 맞게 수정되었다. 과거와 똑같이 사람들은 그림으로 된 이야기가 글로 된 이야기보다 본질적으로 열등하므로 아동들이 만화에 너무 빠지면 읽기 학습 능력이 지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측컨대 이 견해는 만화에 담긴 글이 이전 어느 때보다 적다는 사실에 기인했을 것이다(적어도 조밀한 활자가 독자의 시력을 해친다는 과거의 불평은 더 이상 적용될 수 없었다). 만화가 ‘노동자 계급의 읽기 능력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1914년 이전의 편견은 여전히 굳건했다. 특히 아동들의 경우에 만화는 ‘교양이 낮은’ 것이고,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독자의 배경과 지능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영국으로 건너간 미국만화는 또한 TV에 사로잡힌 저속한 문화의 증거로 간주되었다. 여기에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만화는 정말로 해로운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했다. 체계적으로 이론화된 적은 없지만 분명 이러한 견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따라서 수많은 상류계층과 중산층 가정에서는 만화를 허락하지 않았다(이 때문에 만화는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집밖에 몰래 만화를 감춰 두고 읽었다). [41~42p]
- 이렇게 해서 만화는 무해하고 재미있는 것, 어린이들이 원기를 발산하는 방법, ‘타고난’ 모험심과 장난스러움을 분출하는 통로로 여겨지게 되었다. 물론 제약이 있었다. 어린이 독자에게는 성인 세계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허용되지 않았다(섹스, 사실적 폭력, 성인들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암시한다면 그 낭만적 환상은 즉시 깨졌을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도 업급되었다. 한 만화비평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스럽고 유순한 아이들을 존재의 고통으로부터, 어른들의 사소한 원한, 증오,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오염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신성한 어린이의 세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행복과 순수함과 환상이 지배하는 그 곳에 사악함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만화책은 나무를 오르고 새총을 쏘고 술래잡기를 하는 유년의 환상을 담게 되었다. [43p]
3장 액션과 모험의 세계로
주먹, 총성 그리고 범죄와 공포
- 영국에서 모험만화는 1950년 이후에야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모험만화의 기초는 소설 잡지의 오랜 전통 속에 살아 있었고, 1차대전 이후에는 신문 연재만화를 통해서도 선보인 적이 있었다. 예술적 차원에서 이 장르는 새로운 사항들을 요구했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그 스타일은 항상 ‘사실적’ 이어야 했고, 따라서 세부 묘사에 새로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어린 독자들에게는 사실적 정확성이 모험만화에서 발하는 마법의 큰 부분으로 작용했다. 여러 만화가들이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탱크 상단의 포탑 형태를 잘못 그리거나 특정한 시대에 맞지 않는 검을 그리면 불평 불만의 편지가 날아들곤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전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영화적 기법도 필요하게 되었다. 파노라마, 클로즈업, 롱샷, 흥미로운 ‘컷’ 등이 점점 더 액션 만화의 기법으로 요구되었다. 이것이 만화 자체에서 개발한 것인지 영화에서 빌려온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44p]
- 모든 잡지들이 대동소이했고, 주로 유혈 장면을 좋아하는 10대 이전의 독자층을 겨냥하여 일정한 공식에 따라 제작된 모험만화를 실었다. 무엇보다도 전쟁이 주된 주제였고 주요 등장인물은 대개 군인이었다.[49p]
- 그러나 단골로 등장하는 내용과는 별도로 모험만화는 또한 초현실주의라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다. 출판사들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창작자들에게 때때로 새로운 실험을 권장했다. 창작자들은 모험적인 주제에 대한 새로운 ‘각도’를 선보였다. [49p]
- 유머 만화 장르에서처럼, 출판사들은 매주 발행하는 잡지의 양을 늘리는 방식으로 시장을 지배하려 했기 때문에 줄거리는 부실해지고 그림은 기계적으로 되어갔다. 섬뜩한 분위기와 무관하게, 대부분의 만화들은 판에 박은 듯 진부했고, 매주 ‘돈벌이를 위해’ 줄거리를 쥐어 짜냈기 때문에 아주 어린 독자들도 금방 식상할 정도였다. 1970년대에 닥친 모함만화의 위기는 부분적으로는 출판업자들의 자업자득이었다. [50p]
-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잡지들이 하나의 특정한 하위 장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전략에 힘입어 발전한 주제는 전쟁이었다. 전쟁은 오랫동안 만화 산업의 대들보였기 때문에 DC 톰슨과 IPC는 당연히 이 주제에만 집중한 잡지들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이 그 초점이었다. [51p]
- 교육적인 만화잡지도 방향을 잡았다. 이 장르의 선두 주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룩 앤 런Look and Learn](IPC/플리트웨이, 1962)였다. 이 잡지는[이글]의 높은 생산가격과 높은 도덕적 어조를 그대로 따랐다. 부모들은 자식들, 특히 이들을 위해 이 잡지를 구입했다. 고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을 그린 만화와 가령 내연기관과 같은 주제들을 다른 ‘어떻게 작동하나요?’가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돈 로렌스의 뛰어난 공상과학 만화 ‘트리건 제국The Trigan Empire'을 곧바로 펼쳐 읽었다. 그것은 폭력이 난무하는 ’미래형‘ 액션물이었다. [53p]
- 미국에서 모험만화 잡지는 서로 다른 뿌리 즉 신문 연재만화와 싸구려 소설에서 유래했고, 양자가 융합된 결과였다. 전자인 신문연재만화의 발생은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고, 후자는 기본적으로 1930년 사이에 두 출판물은 과거의 값싼 소설을 대신했고(p34를 보라), 새로운 종류의 선정적인 소설을 소개했다. 이에 따라 서부활극, 애정, 범죄, 공상과학과 같은 소설 범주가 특히 유행하게 되었다. [53p]
- 이 초기의 모험물들은 만화는 항상 재미있어야 한다는 관념에 도전함으로써 멜로드라마식의 만화가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929년 1월 펄프소설과 연재만화가 정식으로 결합하여 ‘타잔’이라는 눈부신 대작을 낳았고, 산문소설에만 갇혀 있던 두 주인공이 신문 연재만화에 등장하게 되었다. [53p]
-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모험만화 장르는 대폭발을 일으켰고, 그와 함께 미래의 만화 산업을 결정할 양식상의 변혁이 수반되었다. [54p]
- 이와 같이 모험만화는 새로운 미학을 발전시켰다. 대부분은 단편소설 형식으로 시작했지만, 단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연속극 스타일의 연재만화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출판업자들은 예술적으로 꾸민 신문 연재만화의 추상적이고 시적인 환상을 거부하고 보다 표현적인 양식을 선호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강렬한 색채의 대담하고 화려한 그림이었다. [54p]
- 미국 만화책의 첫 10년인 1940년대에 가장 큰 장르는 초인영웅 만화였다. 이 책들은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을 겨냥했지만, 그 유래는 펄프소설이었고, 따라서 종종 정치적·사회적 의미가 함축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틀을 완성한 주인공은 1938년 [액션 코믹스]1호(내셔널 피리어디컬스)로 탄생한 ‘슈퍼맨’이었다. 공상과학 펄프소설의 팬이었던 두 10대 소년 제리 시걸과 조 셔스터의 손에 창조된 슈퍼맨은 궁극적인 힘에 대한 환상을 상징했다. 위기에 처한 크리톤 행성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막강한 힘과 인간의 몸을 갖고 태어난 이 외계인은 총알보다 더 빨리 날 수 있고, X레이 시력으로 건물을 뚫고 볼 수 있으며, 맨손으로 거대한 물체를 들 수 있었다. 시걸은 후에 이렇게 설명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삼손과 헤라클레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장사들이하나로 합쳐진 주인공을 머리 속에 그려 보았다.’ 이 밖에도 창작자는 예수와의 유사성도 인식하고 있어야 했다. 슈퍼맨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받고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신비한 능력은 각진 턱 그리고 파랑과 빨강의 말쑥한 의상과 함께 곧 그를 상징적 인물로 만들었다. [57~61p]
- 슈퍼맨의 중요한 파트너인 ‘배트맨’은 [탐정 만화Detective Comics]27호(내셔널 피리어디컬스, 1939)에 맨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지하세계의 범죄자와 맞서 싸우는 ‘망토를 두른 십자군 전사’로서 슈퍼맨보다 훨씬 더 어두운 분위기로 묘사되었다. 밥 케인이 창조한 배트맨은 대단한 초자연적 능력을 소유하지는 않았고, 초기 이야기는 네 가지 요소―그의 운동 능력, 신뢰할 만한 동료 ‘로빈’, 한밤의 어둠, ‘만능 벨트’ 속에 감춰진 일련의 장치들―에 의존했다. 시간이 지나지 그는 혁신적인 적들과 대면하게 되었다(이 적들은 부분적으로 딕 트레이시에 등장하는 섬뜩한 악당들의 영향으로 창조되었다). 가장 악명 높은 적은 ‘펭귄’과 ‘투페이스’였고 가장 골치 아픈 적은 ‘조커’였다. ‘조커’는 희생자들의 얼굴에 기괴한 미소를 새기고 떠나는 대단히 가학적인 악당이었다.
배트맨도 하나의 독립적인 책으로 발행되었고, 또한 여러 매체로 각색되었다. 그의 신화도 시대에 맞게 변해 갔다. 처음에 그는 기괴한 인물이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고통스러운 영혼의 소유자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 숨어 지내는 사람이었다. 초기의 만화들은 특유의 음울한 색조와 검은색 잉크의 대담한 면 처리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후에 더 어린 독자층에 맞추기 위해 이야기는 점차로 ‘가벼워’졌다. 이 경향은 배트맨 만화가 텔레비전 시리즈의 영향으로 ‘나긋나긋한’ 코미디물이 변해 가던 1960년대에 최고조에 달했다. 다시 그 후에는 ‘뿌리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것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자극했다(p 167과 pp 173-4를 보라).
[슈퍼맨]과 [배트맨]은 곧 매달 수백만 부씩 팔리면서 미국 시장을 지배했다, 내셔널 피리어디컬스(후에 DC 코믹스로 이름을 바꾸었다)를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두 책은 초인영웅의 상호보완적인 패러다임을 세웠다. 초자연적 힘 대 초인적 운동능력, 힘 대 기지, 낮 대 밤―그 후 1940년대에 수많은 책들이 이것을 모방했다. [61~62p]
- 두 번째 예로 조 사이먼과 잭 커비의 [캡틴 아메리카](마블, 1941)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인의 애국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캡틴 아메리카는 유전학적으로 설계된 초인 병사로 성조기와 비슷한 의상을 입었으며, 창간호 표지에는 그가 히틀러의 턱에 주먹을 먹이는 그림이 실렸다. 이 만화책은 또한 떠오르는 별 커비의 그림으로 유명했다. 그는 발레 같은 싸움 장면 속에 더 많은 운동성을 부여하기 위해 패널의 배치를 다양하게 실험했다. 세 번째 예로 [원더 우먼](내셔널 피리어디컬스, 1942)이 있었다. 아마존의 초인적인 공주 원더우먼은 만화 주인공으로 성공한 몇 안 되는 여성 중 하나였다. [62p]
- 1940년대와 함께 미국의 만화산업도 꾸준히 발전했다. 초인영웅이 시들면서 다른 장르들이 인기를 얻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자 애국적인 초인들은 일시적으로 매력을 잃었다. 시장을 다시 활성화하려는 노력으로 출판사들은 나이든 독자층을 겨냥했고, 그 결과 주제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펄프소설로 인기를 누렸던 장르들 중 만화로 다시 태어난 많은 것들―서부극, 탐정, 범죄, 전쟁, 공상과 공포 등―이 이제 신문판매소의 선반 위에서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66p]
- 범죄만화는 ‘실화’를 다룬 성인용 잡지에 더 가깝고 지미 캐그니가 등장하는 갱스터 무비류의 반항적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탐정만화와는 달랐다. 그들은 더 어른스럽고 대단히 폭력적이었다. 폭력배와 살인자를 포함하여 여러 범죄 유행을 픽션과 논픽션의 혼합으로 다룬 이 만화책들은 소형기관총을 난사하고 암흑가를 피로 물들이는 내용으로 가득했으며, 천박한 미녀도 필수적으로 등장했다. [66p]
- 미국의 전쟁만화는 2차 세계대전에 초점을 맞추었고 독일인과 일본인에 대해 인종 차별주의적인 내용을 실었다는 점에서 영국과 똑같았다(때로는 일본인들을 ‘저패너지스Japanazis'로 불러 특별한 효과를 냈다). 또한 훨씬 더 많은 책들이 1950년대 초의 한국전쟁을 다루었다. [워 액션War Action]과 [워 어드벤처War Adventure](둘 다 아틀라스, 1952)는 한국인을 일본인과 똑같은 ’노란 피부의 악마‘로 묘사하면서 과거의 공식을 이어갔다. [66p]
- 1950년대 초 미국만화의 마지막 장르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악명 높았던 공포만화였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공포만화는 1940년대 초, ‘괴물’ 만화들이 인기를 누렸을 때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하나의 장르로 독립한 것은 주로 살육이 난무하는 줄거리 때문에 인기를 얻으면서 유명해진 1950년대였다. 사실 많은 작품들이 현재의 공포영화보다 더 끔찍했고, 목을 베고, 내장을 꺼내고, 눈알을 파내는 등의 장면을 섬뜩할 만큼 세부적으로 묘사했다. [67p]
- 미국에서 만화의 폭력성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대중적 예절의 수호자들’은 결국 인내의 한계에 부딪혔다. 미국은 물론이고 미국만화가 느리지만 꾸준히 유입되던 영국의 팬들에게는 유감스런 일이었지만 이제 만화 매체는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몇 년 후 만화는 정치적 반동과 검열의 칼 앞에 속죄양이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만화산업 전체가 거세되고 재조직화될 운명에 놓였다.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여러 계층들이 (영국에서는 보다 약한 정도로)두 개의 뚜렷한 장르, 범죄만화와 공포만화를 반대한 것이었다. [68p]
- 이런 식으로 대서양을 사이에 둔 양국의 대중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만화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어린이들이 공포물과 범죄물이 아닌 다른 종류의 액션 만화나 유머 만화를 읽는 것을 보고도 부모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혹 신경 쓰는 경우라도 가볍게 나무라는 정도였다), 이 새로운 공포만화와 범죄만화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다시 한번 만화는 ([픽처 포스트]의 기사제목에 찍힌 물음표가 의미하듯이) 큰 도전에 직면했고, 가능한 결과는 오직 한 가지, 검열뿐이었다. [68p]
- 청문회가 끝난 후 출판업자들은 자체 규제 단체인 미국 만화잡지 협회The Comics Magazine Association of America(1945년 설립)를 결성해야 했다. 그 후로 이 협회는 ‘만화규약국The Comics Code Authority’이라는 심의기관의 감독 하에 만화 출판에 대한 관리 규약을 시행했다. 이 ‘규약’은 금지조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섹스에 관한 언급, 과도한 폭력, 권위에 대한 도전 등이 금지되었다. 규약은 새로 발행되는 모든 만화를 규약국에 제출하여 승인 여부를 결정 받는다는 협의 하에 시행되었다. 심의를 통과한 책은 표지에 ‘만화규약국에서 승인함’이라는 도장이 찍혔고, 통과하지 못한 책은 배포가 금지되었다. 영국 국회는 ‘어린이와 젊은이에게 해로운 출판문에 관한 법령’(1955)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불법적인 만화책이 영국에 들어오거나 재인쇄되는 것을 사실상 금지했다. [68p]
- 이로써 미국만화 산업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일부 시리즈가 취소되자 판매는 즉시 격감했다. 모든 장르가 사실상 파괴되었다. 공포만화와 범죄만화가 특히 심한 타격을 받았지만, 전쟁, 서부극, 애정, 심지어 초인영웅 만화까지도 큰 영향을 받았다. EC는 거의 파산 지경이었지만([매드]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실제로 파산했을 것이다―pp 38-41을 보라), 수많은 출판사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그것은 일종의 재앙이었다. 부모와 교육자들에게 만화규약은 마음의 평화를 의미했지만, 아이들에게는 무미건조하고 ‘안전한’ 오락거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어떤 의미도 없었다. 1955년 이후 만화계는 그 이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68p]
- 미국에서 새로운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출판사는 마블이었다. 마블사는 전쟁과 공포 만화에 크게 의존하던 기존의 노선을 버리고 규약에 적합한 초인영웅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DC 코믹스 사와 경쟁할 의도 하에 편집자 겸 작가 스탠 리와 화가 잭 커비는 새로운 시리즈물을 기획했다. 그들은 만화의 구성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면 새롭고 흥미로운 계열의 책이 나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에 따라 낡은 공식과는 정반대로 마블 사는 초인영웅들을 인간화하여,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한 성격을 부여했다. [68~69p]
- 그러나 마블 사의 최대 히트작은 1936년 [놀라운 스파이더맨The Amazing Spider-Man]이었다. 이것도 리Lee-커비Kirby 콤비의 작품이었지만 그림은 스티브 디코가 그렸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책벌레 소년으로, 과학 실험 도중에 방사능을 가진 거미에게 물린다. 그 후로 그는 벽을 기어오르고, 천장에 매달리고, 거미줄을 뽑아내는 능력을 갖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이야기가 독자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독자들이 주인공의 사춘기적 고민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혼란스러운 순간에도(일부 이야기에서는 피터 파커의 책꽂이에 실존주의 책들이 가득 꽂혀 있다) 최소한 올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결정적인 반전으로서 고약한 초인악당 그린 고블린이 등장하면 그 모든 것은 대단히 효과적인 공식이 되었다. [74p]
- 마블 사는 다른 주인공들도 쏟아 냈다. 가장 유면한 것으로는 또 다른 ‘4인조’(비스트, 사이클롭스, 아이스맨, 엔젤; 후에 마블 걸이 합류한다)를 다룬 [엑스-맨The X-Men](1963)이 있었고, [복수자들The Avengers](1963)은 헐크와 토르, 그리고 보다 덜 유명한 주인공들인 아이언맨, 앤트맨, 워스프를 팀으로 묶었다. [실버 서퍼The Silver Surfer](1968)는 명상에 잠긴 채 파도를 타는 외계인이 세계를 파괴하는 갤럭투스와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였다. [74p]
- 마블 사는 초인영웅의 새로운 물결을 전에 없이 과대 선전했다(가령, ‘환상적인’, ‘믿을 수 없는’, ‘막강한’ 등의 형용사). 실제로 스탠 리는 회사의 이름이 등장인물들만큼 유명해질 것임을 확신했다. 그들은 단순한 초인영웅이 아니라 ‘경이로운(Marvel) 초인영웅’이기 떄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만화책들은 수집에 적합하게 디자인되어서, 하나를 사면 시리즈 전체를 사야 했다(그리고 다른 모든 시리즈들도 함께 수집하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작품에 등장했기 떄문에 한 시리즈의 팬이라도 다른 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또한 많은 주인공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우주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후에 ‘마블 유니버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리는 독자들에게 그들이 일종의 감식가 클럽에 속해 있으며 오늘날 만화 팬에 해당하는 집단의 일부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로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광고로 취급했다. 독자들에게 우리 모두가 외부 세계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내부 집단”의 일부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74p]
- 마블의 성공은 만화 산업 전체에 활려글 불어넣는 효과를 발휘했다. DC 코믹스 사는 두 초인영웅 슈퍼맨과 배트맨을 부활시켜 경쟁을 벌였다. 슈퍼맨은 신화적인 능력에 특별한 요소들이 더해졌고(가령, 여러 유형의 크립톤 인간, 팬텀 존(‘유령지대’)의 개념, 초능력 개 크립토와 같은 새로운 동료들), 커트 스완의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으로 작품의 질이 높아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배트맨은 아담 웨스트가 주연하고 1966년에 시작한 TV 프로의 폭발적인 시청률을 등에 업었다. 새로 나온 배트맨 만화는 배트모빌(자동차)과 배트 케이브(동굴)과 같은 새 요소들이 가미되었고, TV 프로를 따라 전체적으로 나긋나긋하고 엉성한 분위기로 바뀌어 새로운 세대의 독자에게 맞추고자 했다. [74p]
- 초인영웅 만화는 1960년대 말까지 계속 성공했으며 한때는 ‘최신 유행’으로 각광받았다. 한편으로는 만화를 자주 참조하고 인용했던 대중미술(팝아트)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신세대로 떠오른 히피족 대학생들이 만화 팬임을 자처했기 떄문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은 마블 사와 스탠 리였다. 마블 코믹스 사는 ‘팝 아트 프로덕션’이라는 상표를 사용했고, 리는 각지의 대학을 순회하는 한편 학생과 교수들이 보낸 편지를 자랑스럽게 독자란에 실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렇게 만화가 성인층을 흡수한 것은 미국만화가 가진 보다 세계적인 감수성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같은 일이 영국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74~75p]
- 워렌의 세 번째 주요 출판물인 [뱀피렐라Vampirella](1966)는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다른 행성에서 온 섹시한 흡혈귀가 등장했다(‘저 흡혈귀와 키스할 수 있다면 죽는 것도 아깝지 않아!’). [76p]
- 미국만화는 1960년대에 다시 일어섰지만, 만화산업의 고용조건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모험만화 장르는 항상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악명이 높았고(펄프소설 산업의 유산이었다). 자유계약의 ‘임시고용’ 제도 그리고 직업이 작가, 화가, 제본업자, 인쇄업자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현실 때문에 어떤 노동조합도 결성되기 어려웠다.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만화가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76~78p]
4장 소녀만화, 여성만화
애정으로 울고 원더우먼으로 날다
- 마블 사가 내놓은 최초의 성공작은 미스터 판타스틱(Mr Fantastic), 휴먼 토치(The Human Torch; '인간 횃불‘), 더 싱(The Thing; ’물질‘), 인비저블 걸(Invisible Girl; ’투명 소녀‘)로 구성된 [환상의 4인조Fantastic Four](1961)였다. -중략- 마블 사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1962년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를 발행했다. 그것은 브루스 배너라는 과학자가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된 후 초인적 힘을 지닌 초록색의 짐승으로 변하는 이야기였다. ’인간과 괴물의 중간인 헐크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만화 역사상 가장 놀라운 주인공들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했다!‘는 자화자찬 식의 광고도 등장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영감을 얻은 이 이야기는 당시 ’원자탄의 위협‘에 대한 세간의 공포심을 등에 없었다. -중략-
그러나 마블 사의 최대 히트작은 1963년 [놀라운 스파이더맨The Amazing Spider-Man]이었다. 이것도 리Lee-커비Kirby 콤비의 작품이었지만 그림은 스티브 디코가 그렸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책벌레 소년으로, 과학 실험 도중에 방사능을 가진 거미에게 물린다. 그후로 그는 벽을 기어오르고, 천장에 매달리고, 거미줄을 뽑아내는 능력을 갖게 된다. 표면적으로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이야기가 독자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독자들이 주인공의 사춘기적 고민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혼란스러운 순간에도(일부 이야기에서는 피터 파커의 책꽂이에 실존주의 책들이 가득 꽂혀 있다)최소한 올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결정적인 반전으로서 고약한 초인악당 그린 고블린이 등장하면 그 모든 것은 대단히 효과적인 공식이 되었다.
마블 사는 다른 주인공들도 쏟아 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또 다른 ‘4인조’(비스트, 사이클롭스, 아이스맨, 엔젤;후에 마블 걸이 합류한다)를 다룬[엑스-맨The X-Men](1963)이 있었고, [복수자들The Avengers](1963)은 헐크와 토르, 그리고 보다 덜 유명한 주인공들인 아이언맨, 앤트맨, 워스프를 팀으로 묶었다. [실버 서퍼The Silver Sufer](1968)는 명상에 잠긴 채 파도를 타는 외계인이 세계를 파괴하는 갤럭투스와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였다. [69~74p]
- 마블 사는 초인영웅의 새로운 물결을 전에 없이 과대 선전했다(가령, ‘환상적인’, ‘믿을 수 없는’, ‘막강한’ 등의 형용사). 실제로 스탠 리는 회사의 이름이 등장인물들만큼 유명해질 것임을 확신했다. 그들은 단순한 초인영웅이 아니라 ‘경이로운(Mavel) 초인영웅’이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만화책들은 수집에 적합하게 디자인되어서, 하나를 사면 시리즈 전체를 사야 했다(그리고 다른 모든 시리즈들도 함께 수집하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작품에 등장했기 때문에 한 시리즈의 팬이라도 다른 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또한 많은 주인공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우주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후에 ‘마블 유니버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74p]
- 초인영웅 만화는 1960년대 말까지 계속 성공했으며 한때는 ‘최신 유행’으로 각광받았다. 한편으로는 만화를 자주 참조하고 인용했던 대중미술(팝아트)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신세대로 떠오른 히피족 대학생들이 만화 팬임을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74p]
- 성차별은 훨씬 더 큰 문제로 간주되었다. 대부분의 모험만화는 남성들이 남성 독자를 위해 창작한 것이어서, 여성이 좋게 묘사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한 이미지에 대해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여성이 대개 ‘조력자’로 등장하여 종속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간호사, 유모, 가정부), 흔히 ‘희생자’와 같은 구성상의 요소로 이용된다는 것(구조를 기다리거나 폭력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모든 여성이 가슴이 깊이 파인 옷을 입고 다리가 아주 길게 그려지는 등, 성적 대상으로 묘사된다는 것. 1960년대 말에 여권 운동이 초래한 새로운 인식으로 인해 만화 산업이 여성 인물을 다루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출판업자들은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장르적 관습을 섣불리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은 1980년대까지도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변화가 시작된 후에도 대게는 표면적 차원에 그치고 말았다. [78~79p]
- 보다 정교해진 최근의 과학적 분석에서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자신의 환경에 따라 만화를 해석하며, 그에 따라 ‘그들 자신의 행동 게획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확정적인 증거는 없으며, 만화의 영향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79p]
-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기간에는 유머만화와 모험만화 장르가 크게 발전했지만, 확인된 독자층은 주로 8세에서 12세 사이의 소년들이었다. 소녀들을 위한 유머 만화가 초기에 발행되기도 했지만, 그 후로는 점점 더 외면 당하는 추세였다. 출판사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아동 시장의 나머지 절반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가? [81p]
- 여기에 1950년부터 여성 만화가 가세하기 시작했다. 여성 만화는 대개 모험만화 형식을 따랐지만 당시에 유행했던 ‘여성의 관심’이라는 개념을 반영했다(그것은 소년 만화에서 그랬듯이 등장인물의 역할을 아주 조잡하게 유형화하는 것을 의미했다). [81p]
- 일부 영국 출판사들이 보다 성숙한 소녀 독자층을 겨냥했던 반면, 어떤 출판사들은 8세에서 12세의 연령층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DC 톰슨도 이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다. [82p]
- 몇 가지 다른 측면들도 새로웠다. [번티]를 비롯한 경쟁자들과는 달리 [재키]의 등장인묻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들은 직장에서 돈을 벌었고, ‘자유’를 즐겼으며, 모두가 대도시에서 신세대 직장인들과 어울리며 생활했다. 그들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출판사가 의도했던 독자들보다 성숙했는데, 분명 이것은 큰 매력이었다. [84p]
- [재키]는 영국 소녀만화의 마지막 성공작이었다. 그 후로 소녀만화가 쇠퇴하게 된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텔레비전의 보급이 한 요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창작자들에 대한 열악한 보수체계도 빼놓을 수 없다. 재능 있는 작가와 화가들은 소년만화 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예 정해진 공식이 되었다. 소년만화 분야에서는 보수가 높고 대우가 좋은 미국 출판사로 스카우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녀만화에는 대개 2류 만화가들만이 남았기 때문에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의 독자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84p]
-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영국 만화는 다양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 즉 거의 모든 만화가 남성에 의해 창작되고 그려졌다는 점이다. 여성 창작자는 설 자리가 없었고, 큰 출판사에 고용된 남성 창작자들은 대개 두 세 개의 소년만화와 소녀만화를 동시에 그렸다. [84p]
- 이 당시 미국만화의 지배적 장르였던 초인영웅 만화는 처음에는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1941년 한 여성 주인공이 [올 스타 코믹스](내셔널 피리오디컬스, 1940)에 첫선을 보이면서 기존의 흐름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바귀고 말았다. 원더 우먼이라는 이름의 이 주인공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슈퍼맨의 성공에 힘입어 1942년 하나의 책으로 독립한 이 초인여성 만화는 특히 소녀층을 대상으로 기획되었으며, 사상 최초로 여권운동이 만화로 구현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솔직한 에로티시즘으로 소년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윌리엄 몰튼 마스턴이 창조한 원더 우먼은 심리적 측면에서 가히 혁명적이었다. 마스턴은 탁월한 경력의 심리학 박사로서, 거짓말 탐지기의 전신인 혈압측정 장치를 개발한 적도 있었다. 당시에 그의 이론은 여성이 남성보다 정직하다는 것이었고, 이 이론과 여성의 심리에 관한 다른 몇 가지 개념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만화를 이용했다. 원더 우먼은 여성이 자시느이 잠재력을 실현해야 하고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와 여성이 해방된 사회는 이전의 가부장적 사회보다 더 세심하고 따듯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녀는 범죄를 징벌하는 일만큼이나 범죄자의 사회 복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설득이 통하지 않는 경우에만 힘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마스턴은 이 만화가 유행하여 미국의 정치적 상황 변화를 반영하기를 원했지만(그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예견했고, 남성 노동력이 군에 징집된 결과로 국내에서 여성운동이 부활하고 있음을 인식했다), 또 한편으로는 [원더 우먼]에 대한 욕구가 신화적 차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20세기 아마존 여전사들의 비밀스러운 고향이자 남자들이 발을 붙일 수 없는 땅인 파라다이스 섬을 배경으로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기원 이야기를 창안했다. 그 불멸의 초인여성 부족을 통치하는 히폴리테 여왕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녀가 바로 다이아나 공주이다. 그녀는 ‘아포르디테만큼 사랑스럽고, 아테나만큼 지혜롭고, 아레스 만큼 날새고, 헤라클레스만큼 강하다’. [87~88p]
- 그러나 심리학자로서 마스턴은 남성 독자들도 원더 우먼이 발산하는 프로이트 식의 성적 이미지에 이끌릴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악명 높았던 사실은 올가미에 묶이는 장면을 비롯하여 채찍, 사슬, 수갑 등에 결박당하는 장면이 도처에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만화 편집자 셸던 메이어가 주범으로 의심받았지만 그는 단지 동조자에 불과했다.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스턴은 어떤 상징체계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광범위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만화책이 예상보다 잘 팔렸던 것 같다.’[88p]
- [원더 우먼]은 1940년대 초 한동안 눈부신 판매고를 기록한 후(대부분이 남성 독자들이었다고 전한다) 쇠퇴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자 정치적 환경도 변화를 맞이했다. 군인들이 해외에서 돌아오자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려는 압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47년 마스턴이 사망한 후로 이야기는 더욱 평범해지고 말았다. 창작자들이 교체되는 와중에 여주인공은 (‘놀라운 아마존 여전사’라는 볼품없는 소제목처럼) 그저 평범한 초인영웅으로 전락했다. 그녀는 이제 주먹과 소도구에 의존하여 악당을 때려잡는 동시에 사랑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해, 비록 [원더 우먼]은 현재까지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1940년대부터 계속 발행되고 있는 극소수의 만화책에 속하지만, 그녀는 결코 처음과 같지 않았다. [88p]
- 오랜 기간에 걸쳐 [원더 우먼]을 모방한 몇몇 만화들이 발행되었다. 1940년대에는 [미스 퓨리](마블, 1942), [캡틴 마블]과 짝을 이루는 [메리 마블](포셋, 1945), [블랙 캣](하비, 1946)이 출간되었다. 그 후 슈퍼맨의 10대 사촌인 슈퍼걸이 [액션 코믹스](1959)에 첫선을 보였고, 1972년에는 하나의 책으로 독립했다. 1960년대 마블의 초인영웅 목록은 1970년대와 1980대 들어 [미시스 마블](1977), [스파이더 우먼](1978), [여자 헐크She-Hulk](1980)으로 더욱 보강되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원더 우먼과 같은 신화적 성격이나 당당한 태도를 갖지는 못했다. [88~89p]
- 특히 소년만화의 조연들을 새로운 만화책으로 독립시켜, 1945년에는 [수지], 1949년에는 [케이티 키니], 1950년에는 가장 유명한 [베티와 베로니카](아치와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금발과 갈색머리의 두 소녀)를 출판했다. 모든 만화가 비슷한 스타일을 따랐다. 등장인물은 항상 소녀용 짧은 양말(바비 삭스)을 신은 예쁜 여자들이었고, ‘데이트’와 관련된 사고와 오해가 단골 소재였다. 이 만화들은 욕망과 진실한 사랑이라는 문제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춘기를 이상화시켜 표현했지만, 수준 높은 도덕적 맥락을 벗어나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케이티 키니]는 옷과 패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약간 다른 내용을 제공했다. 이 주인공의 별명은 ‘핀업 퀸’(사진을 벽에 꽂아둘 만큼 예쁜 여자; 옮긴이)이었고, 그녀의 옷장은 만화의 줄거리만큼이나 큰 관심거리였다. 독자들은 케이티가 입을 옷의 디자인을 직접 그려서 보내곤 했다. [89~90p]
- 이런 종류의 만화는 1950년대까지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1960년대에는 사멸하기 시작했다. 보다 대중적인 내용을 담은 [조시](아치 퍼블리케이션스, 1963), [버니](하비, 1966), [불안한 10대Tippy Teen]등이 추가로 발간되었지만, 소녀 만화의 전성기가 지나갔다는 사실은 갈수록 분명해졌다. 짧은 양말과 순결한 사랑이 한물 간 이유도 있었지만, 10대를 지향한 TV프로와 영화가 실질적인 요인이었다. [90p]
- 또한 몇몇 출판업자들은 섹스로 일관된 만화를 발행하는 등 음란한 내용으로 빠지는 경향도 생겨났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크게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55년 만화규약이 시행된 후에는 표현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애정만화는 예전과 같은 색깔을 유지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출간을 중단했다. 1960년대까지 계속 출판된 애정만화의 수는 거의 40개에 달했지만, 과거에 비해 덜 혁신적이고 덜 관능적이었다. 이에 따라 값싼 전율을 열망하는 여성들의 시장은 다시 잡지 쪽으로 이동했다. [90p]
- 애정만화는 특별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1950년대에 미국 애정만화는 부도덕하고 음란하고 비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규약이 시행되면서 큰 탄압을 겪어야 했다. 이후 1960년대에 여성해방 운동이 일어나자 그때까지 살아남았던 애정만화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공격을 받았다. 이제 여권운동 비판가들은 여성의 삶에는 ‘남자를 잡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에서는 [재키]가 여권운동가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90~91p]
5장 언더그라운드 만화
완전한 자유를 위한 오디세이
- 1960년대 말은 히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고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동시에 예술적으로 혁신적인 유머러스한 만화책들이 새로운 물결을 이루어 등장한 시기였다. 이름이 암시하듯이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주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실 많은 측면에서 주류와는 정반대였다.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어린이 시장을 이용하는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문화를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마약, 반전 운동, 록뮤직, 그리고 무엇보다도 섹스와 같은 주제들을 의미했다. 이런 이유로 이 새 만화책들은 차별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X등급이란 의미의 ‘X'를 강조하기 위해 ’코믹스comix'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92p]
- 언더그라운드는 미국에서 먼저 발생한 다음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 유래는 다양했으며, 어떤 것은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유래는 [매드Mad]의 영향이었다. -중략-
둘째, 대학잡지라는 경로가 있었다. -중략-
셋째, 만화규약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에게 부정적인 자극을 제공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1950년대의 충격을 직접 경험했고, 때로는 소중하게 수집한 만화책들이 부모의 손에 찢기거나 불살라지는 것을 경험한 당사자들이었다. 이제는 보복의 시대가 도래했다. 만화규약이 ‘폭력 금지’, ‘섹스 금지’, ‘약물 금지’, ‘사회적 표현 금지’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 언더그라운드 코믹스는 그 모든 범주를 최대한 탐닉했다. 만화규약이 본질적으로 만화가 실제 세계의 의미를 말하지 못하게 막았다면, 이제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그것을 무시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다시 일깨우기 시작했다. [92p]
- 그 유행은 1967년경부터 1975년까지 지속되었고, 수천 종의 코믹스가 자체 생산 체계로 출간되었다. 기존의 만화와는 달리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생산라인 시스템으로 제작되지 않았다. 작가와 화가, 인쇄공과 활자공이 팀을 이뤄 한 편집자의 관리하에 작업한 것이 아니었다.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는 자기 작품의 모든 면을 직접 관리했다. 무엇보다도 창작자는 마감시간에 관계없이 그 자신의 속도에 따라 작업해기 때문에, 어떤 코믹스 만화는 한 회만 발행된 후 수명을 다하거나 계속 발행되는 만화 중에도 어떤 것들은 호와 호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벌어지는 등 실망스러운 결과가 발생하곤 했다. [94p]
- 후에 그(크럼)는 다음과 같은 말로 두 책에 담긴 내용을 정당화했다. ‘사람들은 “언더그라운드 만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언더그라운드 만화를 가장 정확히 정의하자면 그것은 완전한 자유(의 조건에서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것을 잊는다. 내가 한 일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우리를 가리키면서 “안 돼, 이것은 그릴 수 없어” 또는 “저것은 표현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모두 그릴 수 있었다.’ [95p]
-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결코 크럼으로 시작해서 크럼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뒤어난 만화가들이 아주 많았으며, [잽]은 대단히 독창적인 작품으로 그들의 초점이 되었다. 그 책은 최고의 창작자들을 샌프란시스코로 불러모았고(많은 사람들이 크럼처럼 그곳으로 이주했다), 선집 형태로 재출판되는 것은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공식이 되었다. [103p]
- [잽]은 언더그라운드 만화운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진열장이지만, 그 외에도 다른 훌륭한 코믹스 만화책들 그리고 [잽]의 테두리 밖에서 일했던 뛰어난 창작자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시카고에서 들어온 [비주 퍼니스](비주 퍼블리싱, 1968)가 아마도 두 번째로 유명했던 선집이었을 것이다. [매드]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 책은 제이 린치Jay Lynch가 편집했다. [103~104p]
- 이상과 같이 코믹스 만화와 여성 코믹스 그리고 공포만화 장르로 구성된 이 시기의 상황을 살펴보았으므로, 그로부터 우리는 [잽]이 발간되 후 몇 년 내에 코믹스 운동이 무시할 수 없는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코믹스 집단이 미국 전역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출현했고, 매달 수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대부분이 보잘것없는 것들이었고, 인쇄되는 양도 수백 부에 그쳤으며 배포되는 양은 훨씬 적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107p]
- 그러나 더 많은 만화가 제작됨에 따라 무가치한 작품도 어쩔 수 없이 늘어났다. 사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도덕률에 따라 누구라도 뛰어들었기 때문에 언더그라운드 만화 중에서 형편없는 작품이 많았다. 코믹스 만화는 종종 아마추어적이고 남성 우월적이고 별로 재미가 없다는 점에서 그 주요한 장점은 또한 주요한 약점이기도 했다. ‘자기 표현’은 또한 ‘자기 탐닉’을 의미했고, [잽] 한 권이 출판되는 사이 아마추어 코믹스는 백 권이 출간되었다.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미국을 모방하면서 발전했다. 처음부터 미국 코믹스가 수입되었고, 수입된 책은 신속하게 팔려나갔다. 초기의 미국 코믹스가 무단으로 발행되었고, 때로는 미국에서 발표되기 전에 먼저 나오기도 했다. 크럼과 셸튼이 특히 인기 있었고, 세관이 허용한 다른 창작자들의 작품도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107p]
- 미국 만화는 공짜였기 떄문에 그들은 또한 수많은 작품들을 재인쇄할 수 있었다. 계약을 맺지 않은 상황에서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은 작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고 영국 편집자들은 마음껏 무단복제를 할 수 있었다. [110p]
- 1970년 중반에 이르자 언더그라운드의 쇠퇴가 눈에 띄게 분명해졌고 마지막 국면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연대기적으로 영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늦게 전개되었고, 대서양 너머 미국에서는 1973-4년경 이미 사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우익 언론들은 1960년대 말부터 코믹스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그들은 코믹스가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폭력과 변태적 섹스와 약물 복용을 찬양하는 데 여념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수위를 한 단계 높여서 반 포르노 로비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압력에 밀려 대법원은 1973년 외설과 관련하여 지역 사회가 헌법 수정 제1항의 기준을 결정할 수 있도록 재정권을 넘겨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련의 ‘반 불요품’ 법이 통과되어 마약 관련 물품의 판매를 불법화했다.
연쇄적 파산이 불가피했다. [잽4호]는 뉴옥 주에서 외설로 판정받아 판매가 금지되었다. [공중 납치범 만화Air Pirates Funnies](에어 파이리츠, 1971)는 디즈니로부터 미키 마우스를 섹스와 약물 복용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고소 당해 패소 판결을 받았따. 이와 비슷한 예들이 줄을 이었다. 동시에 헤드 숍들도 기소 당해 문을 닫아야 했다. 마약 금지법은 헤드 숍에서 판매하던 코믹스 만화, 포스터, 잡지, 기타 물품들을 공격하기에 아주 편리한 방법이었다.
기존의 권력구주에 의한 이 강공은 광범위한 결과를 몰고 왔다. 소송비용은 막대했고 이미 빠듯한 예산에 의존하던 출판사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문을 닫지 않은 출판사들은 대개 코믹스의 내용을 순화시켜 법에 저촉되지 않는 출판물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116~117p]
-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압의 결과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미국과 똑같이 심각한 쇠퇴 국면에 빠졌다. [역겨운 이야기]는 그 재판으로 사실상 종말을 고했고 [코즈믹]은 1975년에 수명을 다했다. 코즈믹을 소생시킬 의도로 기획된 책들도 실패를 거듭했다. [IT]는 재도약을 위한 몇 차례 산발적인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1973년에 중단되었고, [오즈]도 같은 해에 생을 마감했다. 다른 코믹스 창작자들과 출판업자들은 강한 내용을 삭제하는 등 자체 검열을 시작했다. -중략-
전체적으로 볼 때 몇몇 출판 부문에서는 지나친 상업주의로 인해 그들 자신의 몰락을 재촉했다. 자유방임으로 사업하던 시대는 끝이 났다. 이제 많은 출판업자들이 단기간에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치 너무 늦기 전에 돈을 벌어들이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만 같았다. 몇몇 출판업자들은 주류 만화에서 보여주었던 것보다 더 심한 최악의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 중에는 주류 만화를 변조해서 다른 분야들 특히 상품 광고에 이용하는 행위도 포함되었다. 그 결과 당연한 일이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는 창작자들 사이에는 과거에 창작했던 모든 것의 저작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17~118p]
- 마지막으로, 주류 만화산업 자체가 코믹스 만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미 1970년대 초부터 [내셔널 램푼National Lampoon], [플레이보이]등과 같은 주류 잡지에는 언더그라운드 스타일의 그림과 유머가 스며들고 있었다. 이때 마블 사가 뛰어들었다. 마블은 [코믹스 북Comix Book]이라는 이름의 정기간행물을 출판할 것을 제안했다. 코믹스 창작자들이 참여의 대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은 신문판매소에서 받아줄 만큼 작품의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었따. 상당수의 만화가들이 제안에 동의했으며 여기에는 슈피겔만, 윌리엄슨, 로빈스 그리고S 클레이 윌슨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책은 1974년에 창간되었고 5호까지 발행되었다(또한 p151을 보라). 이 당시 언더그라운드는 분명 어려움에 빠져 있었으므로 일부 창작자들에게 마블 사의 모험은 생존의 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창작자들에게 그것은 최후의 상징적 패배를 의미했다. [118p]
- 유머러스한 코믹스는 자연 선택 과정을 거쳐 생존했다. 미국 코믹스의 침체가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 중 하나는 허약만 만화들이 점차로 소멸해 갔다는 점이었다. 특히 살아남은 헤드 숍에서 앞으로는 새롭고 확인되지 않은 작품을 취급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지자, 봇물처럼 쏟아지던 기회주의적 돈벌이 만화들이 점차로 사라졌다. 그 결과 독창적인 창작자들은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기분으로 창작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최고로 손꼽히는 성공작들을 생산했다. [119p]
- 그러나 장점이 무엇이든 이 후기의 물결은 언더그라운드 만화를 계속 생존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고, 1970년대가 흘러감에 따라 쇠퇴의 기조는 더욱 강해졌다. 코믹스 운동은 히피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지금은 히피 문화 자체가 죽어가고 있었다. 우선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이 원래의 목표점에서 빗나가고 있었다. 반문화의 항의가 집중되었던 베트남전은 1975년 사이공 철수와 함께 끝이 났다. 이와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었던 정치인들도 하나씩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닉슨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났고, 히스도 같은 해에 선거에서 패배했다). [126p]
- 이런 문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히피 세계의 자아상은 1976-7년 펑크의 출현과 함께 또 한번 큰 타격을 입었다. 펑크는 새로운 종류의 반문화로서, 일관된 협의 사항에 기초한 운동이라기보다는 항의의 목소리에 가까웠으며, 모든 히피를 ‘적’으로 규정했다. 갑자기 긴 머리, 마약 흡연, 플레어 스커트, 코믹스 만화가 멋과 흥미를 잃게 되었다. 헌트 에머슨은 [스트리트 코믹스Street Comix]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77년도에 우리는 펑크라는 것에 밀려났다. 그 전에 우리는 수준 높은 그림과 작품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펑크가 그 모든 것을 끝냈다. 우리가 지난 3-4년 동안 투쟁하면서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거부당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코믹스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코믹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펑크에 대해서는 6장과 8장에서 더욱 자세히 살펴볼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그것이 최후의 일격이었다는 점만을 확인하기로 하자. 그것은 과거와의 정신적 단절이었고, 그 후로는 과거로 복귀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 [126p]
- 그런데 코믹스 만화 매체의 역사에 기여한 사실은 논란의 여지없이 명백하지만, 여전히 성가신 문제가 하나 남는다. 그것은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정치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돌이켜 보면 코믹스 만화는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자처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독특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 자체도 반체제를 암시했고, 이데올로기 운동과 연계를 맺었던 것도 중요한 일면이었다.
사실 이 운동의 대의에 구멍을 내기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일이다. 예를 들어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조직적인 ‘지하’ 운동은 조국이 점령당했거나 파시즘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저항 운동을 전개하는 존경할 만한 방식이었다. 그것은 나체 대항하거나 보다 최근의 예로 남미의 독재정권에 맞서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과 영국은 일부 창작자들이 아무리 강하게 주장한다 해도 그와 똑같은 정치적 범주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액면 그대로 보자면 ‘언더그라운드’에서 일한다는 생각은 매력적인 동시에 결국에는 자기기만에 불과할 수 있었다. [128p]
- 그러나 전복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정의인 것은 사실이다. 코믹스는 ‘그 자신의 주장대로’ 진정한 반문화의 일부였다. 그것은 해방과 유토피아 이상에 기초하여 주류 문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따. 철학자 데이비드 부셰David Bouchier의 말에 의하면 그 반문화는 ‘진보한 산업사회에서 창조된 사상과 존재의 형식을 거부했다. 그것은 산업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독창적인 도전이었고, 가장 큰 파괴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관점으로 보는 사람에게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충분히 혁명적일 수 있다. 그것은 반문화의 수단이었고 그 반문화의 보다 큰 목표들과 일관성을 함께했다. 사실 코믹스 만화에 수많은 단속과 공판이 가해졌다는 사실은 기존의 권력이 무시할 수 없는 위협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결말은 기존 권력의 승리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코믹스의 공격을 강하게 무력화시킨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난폭하고 불법적이었던 것들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고 합법화한 결과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언더그라운드의 실패가 그 파괴력을 약하게 만드는가? 그 답은 분명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28p]
6장 변신과 합체
쇠퇴하는 만화 산업의 생존 전략
- 1960년대 말 후부터 주류 만화 산업의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만화 유통은 급격히 감소했고, 출판사들은 망하거나 통합되거나 재인쇄 만화에 의존했다. 미국만화는 만화규약 이후 재기에 성공했지만 규약 이전의 판매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이제 미국만화도 침체기에 들어선 것이 확실했다. 만화 산업은 위기를 맞이했고 그 위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 전문적인 ‘팬 숍’에 의존하여 새 시장이 성장했지만(7장에서 다룰 주제이다) 신문판매소 시장은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1990년대 중반 신문판매소 진열대에서 만화가 차지하는 공간의 거의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131p]
- 침체의 한 가지 이유는 텔레비전의 보급이었다. 양자의 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텔레비전 혁명의 다양한 단계가 도래할 때마다(1960년대 흑백TV, 1970년대 컬러TV, 1980년대와 1990년대 비디오와 쌍방향 컴퓨터 게임) 만화는 감소 추세를 보였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물론 특정 매체의 발전이 자동적으로 다른 매체의 쇠퇴를 초래하지는 않지만(만화의 성장이 전통적인 소설을 파괴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최소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만화의 침체에는 다른 요인들이 있으며, 이 요인들은 대개 만화 그 자체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 [131p]
- 영국에서 만화의 쇠퇴는 급격히 시작되었다. [131p]
- 이렇게 불안한 배경 하에 영국 출판업자들은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이기 위해 다른 전략들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때로―아주 가끔씩―그 전략들은 성공적으로 들어맞았고, 어던 만화책들은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침체기를 훌륭히 견뎌 왔다. 어찌되었든 신문판매소의 수는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았고, 여전히 잠재적으로 매우 유리한 판매망이었다. 그것을 이용하려면 더 이상 낡은 방식에 의존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출판업자들은 두 가지 경로를 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하나는 새로운 만화책들을 다른 매체들(영화, TV 프로, 컴퓨터 게임, 심지어는 장난감 산업)과 ‘묶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독자들(10대와 성인) 중간의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중략-
이용하기 가장 좋은 원천은 영화 산업이었다. 어린이나 10대를 위해 출시되는 거의 모든 새 영화는 만화로 제작되었다. 영국 회사들은 출발이 늦었다. 영화와 결합한 가장 흥미로운 예로 [해머의 집House of Hammer](1976, 탑 셀러스/퀄리티)은 이전의 해머 공포영화들([드라큘라], [미라] 등)을 연재만화 형식으로 각색한 것이었다. 그러나 1982년 미국 대기업의 자회사인 마블 UK의 설립과 함께 그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미국만화를 재인쇄하거나(책을 들여오는 것보다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었음) 자체적으로 만화를 생산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처음부터 영화를 각색한 만화를 많이 생산했다. 가장 유명한 히트작은 [스타 워즈](1982)(원작의 줄거리를 확대했음), [인디아나 존스](1984)였다. 1990년대에는 또 다른 미국 회사의 영국 자회사 다크 호스 UK가 일련의 만화책들을 발행했다. 그 중에는 [에일리언스](1991), [터미네이터](1991), [주라기 공원](1993)등이 있었다.
TV도 풍부한 자료를 제공했다. 이 방면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만화책은 의심할 여지없이 [10대 돌연변이 영웅 거북이들Teenager Mutant Hero Turtles](플리트웨이, 1990)이었을 것이다. [132~133p]
- 만화 회사들은 여전히 절망감에 빠진 상태였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더하여 컴퓨터 게임과 장난감 사업으로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컴퓨터 게임에서 빌어온 가장 큰 성공작은 ‘고슴도치 소닉’과 함께 ‘스트리트파이터’과 ‘모탈 컴뱃’(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과 같은 다수의 격투기 이야기가 실린[소닉 더 코믹Sonic the Comic](플리트웨이, 1993)이었다. 장난감 시장을 등에 업은 만화책들은 다음과 같다. 로봇 집단 이야기를 그린 [트랜스포머스](마블 UK, 1984)(또한 TV 만화영화 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인기는 다소 덜 했지만 여자아이들의 장난감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이야기를 꾸민 [신디], 미국 병사 장난감을 똑같이 다룬 [액션 맨](둘 다 타워 매거진스, 1995). 마블 UK는 장난감 산업과 가장 밀접했던 출판사로, 다음과 같이 과장된 논평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들은 장난감 회사의 고객고나리 부서에 편입하기로 결정했따. 그들은 장난감 회사로 하여금 토요일 아침 TV광고를 내보내게 하고, 수익성이 충분하면 특허권을 사서 큰 돈을 번다. 트랜스포머, 조이드, 우주의 지배자, 잔인한 겟어롱 갱단 등이 모두 그러하다. 질이나 내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반들거리는 표지에 최신 유행의 장난감 이름만 인쇄되어 있으면 충분하다...’[133p]
- 몇몇 출판물들이 크로스오버 시장에서 산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는 전략이었다. 이 방식으로 제작된 만화책은 그 자신의 특징으로 독자층을 확보하는 경우가 드물고, 따라서 만화책 고유의 개성이나 전통적인 ‘독자 충성심’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133p]
- 영국 크로스오버 만화에서 1960년대 이후 신문판매소에서 취급했던 만화 중에는 특히 3구너이 주목할 만하다. -중략- [2000AD](IPC/플리트웨이, 1977), [데드라인](톰 에스터, 1988), [비즈](하우스 오브 비즈, 1979) -중략- 세 권의 만화책은 각기 다른 이유로 경제적 성공을 누렸지만, 몇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세 권 모두 선집이었고, 둘째 세 권 모두 나이든 독자층을 겨냥했으며, 셋째, 만화책 본래의 형식에서 멀어지면서 갈수록 잡지 형식을 선호했고, 넷째, 1970년대 후반에 유행하던 펑크 운동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
마지막의 네 번째 요소는 아주 미세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당시의 만화는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히피 운동의 영향을 받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펑크의 영향을 반영했다. 다만 펑크적 감수성을 정의하기가 더 어려울 뿐인데, 그 이유는 비록 펑크가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흔드는 조니 로튼의 음악을 뛰어넘어 더 깊은 의미로까지 확대되는 하나의 이념이었음이 분명해도, 거기에는 히피 문화가 추구했던 것과 같은 정해진 목표가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133p]
- [2000AD]는 [액션]이 남긴 공백을 뛰어넘을 의도로 기획되어 1977년 창간되었다. 그것은 [액션]과 똑같은 펑크적 태도를 취했으나 비슷한 논쟁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미래로 방향을 맞출 예정이었다. 공상과학 장르는 두 가지 이점이 있었다. 첫째는 전임자격인 [액션[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 빌어올 아이디어가 많다는 점이었다(당시의 할리우드 히트작으로는 [롤러볼Rollerball], [제3 미지와의 조우Col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스타 워즈]가 있었다). 둘째 만화가들이 영국만화보다 인기가 있었던 미국만화를 더욱 쉽게 모방할 수 있게 되었다. [134p]
- 그러한 크로스오버 이야기로서 가장 뛰어난 예는 [2000AD]의 대표작이었던 ‘저지 드레드Judge Dredd'였다. 저지 드레드는 폭넓은 독자층으로부터 공감을 자아냈고 다음과 같은 문구로 소개되었다. ’21세기 메가 시티 원Mega City One에서의 삶은 거칠고 잔인하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는 비열한 자들만 살아남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이 혼란 속에서 과격하고 새로운 정의가 출현했다. 이제 이곳의 법과 질서는 새로운 세력관인 판관들이 집행한다. 그들은 판사이자 배심원이자 집행인이고, 그들 중 가장 강인하 자는 저지 드레드이다. 저지 드레드가 바로 법이다!!‘ 그렇다. 드레드는(대개는) 거칠었지만 또한 공정했기 때문에 그의 (강철 같은) 파시스트에 가까울 정도로 가혹한 행동은 독자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아이들은 과도한 폭력을 좋아했고 거리의 쓰레기들을 쓸어 버리는 그의 무자비한 행동을 사랑했다(’비열한 놈, 10년형을 내리겠다!‘). 이와 동시에 어른들은 멋지게 표현된 풍자를 보면서 킬킬거릴 수 있었다. 이 작품에는 메가 시티의 민주화 운동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고 아파트 블록에는 정치인과 대중문화 스타들의 이름이 붙어 있었으며, 드레드의 과격한 방법에는 블랙 유머가 짙게 배어 있었다(그는 범죄에 비해 지나친 형벌을 내렸다). 이 작품의 뿌리는 분명 초인영웅 장르였지만 드레드는 미국만화의 초인영웅들보다 복잡한 인물이었다. 즉 그에게는 정치적 양면성이 부여되어 있었고 이것이 그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한 비평가의 글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드레드는 단지 드레드이다. 그는 거리를 떠도는 조무래기 펑크족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 자신의 반쪽을 발견한다... 그 만화는 우리를 “미국적” 상황에 놓은 다음, 대처식Thatcherite 법과 질서가 완전히 구현된 미래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드레드는 분명 영웅이자 악당이다...‘ [137~138p]
- [2000AD]의 성공은 경쟁자들을 불러왔다. 급강하하던 만화 산업이 탈출구를 발견하자 그와 비슷한 공상과학 만화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DC톰슨은 현재 [2000AD]에서 활약하거나 미래에 하게 될 창작자들(마이크 맥마흔, 그랜트 모리슨, 캠 케네디)의 작품을 실은 [스타블레이져](1979)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책은 10대 초반 독자들에게서 인기를 끌었다. 훨씬 더 작은 출판사 퀄리티 코믹스는 보다 야심찬 [워리어](1982)를 잡지 형식으로 발행했다. [138p]
- 경쟁자들이 실패한 상황에서 [2000AD]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첫 번째 가장 어려운 문제는 창작자들이 노동 조건과 보수가 더 좋은 미국 출판사에서 일하기 위해 계속 떠난다는 것이었다. 밀스, 무어, 볼랜드, 기번즈를 비롯한 여러 만화가들이 이미 미국으로 떠난 상태였다. 플리트웨이는 그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이전과 똑같은 계약만을 고집했고,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젊은 피를 수혈하려는 노력만을 반복했다. 이것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여, 비교적 무명이었던 그랜트 모리슨, 피터 밀리건, 가스 에니스와 같은 창작자들 그리고 사이먼 비즐리, 글렌 패브리, 브렌단 맥카시와 같은 화가들의 재능에 힘이비어 두 번째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다(그들 중 대부분이 어렸을 때 그 만화책을 탐독하던 독자들이었다). 물론 이들도 유명해진 후에는 결국 미국으로 떠났다.
두 번째 문제는 미국 경쟁자들이 계속해서 영국 만화를 조금씩 앞지른다는 것이었다. 7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초인영웅 만화를 좋아하는 열광적인 팬 집단이 출현했는데, 이들 집단의 성장은 신문판매소 시장의 쇠퇴와 비례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0AD]는 보다 미국적인 모습과 감각을 채택했다. 1986년 그랜트 모리슨과 스티블 요웰의 아주 유명한 작품인 ‘제니스Zenith'([2000AD]의)가 최초의 초인영웅 만화로 선을 보였으며, 외양의 측면에서는 미려한 종이와 완전 컬러 그림으로 잡지에 더 가까운 형식을 취했다.
이와 동시에 팝과 록의 요소를 강화하여 NME(New Musical Express)와 [페이스The Face]를 읽는 독자층에게 다가가려 했다. -중략-
그러나 ‘더 멋지게’ 변신하여 독자 연령층을 높이는 이 정책은 단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불가피하게도 전통적인 어린이 독자층은 점차 이탈했는데, 장기적으로 이것은 예상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나이 많은 독자층이 그 결손을 메울 만큼 충분히 유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39~140p]
- 새 만화들이 의미하는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비참했다. 급격히 분출된 이 새로운 출판 활동은 198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영국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던 상황에서 새 책을 창간하는 것은(특히 가격이 비싼 ‘성인용’은) 현명하지 못한 정책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출판사들은 [2000AD]의 특별한 지속력, 그리고 쇠퇴하고는 있었지만 팬들이 각별히 충성스러웠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못했다. [141p]
- 단 하나의 진정한―그러나 별로 크지 않은―수확은 [저지 드레드: 더 매거진Judge Dredd: The Magazine]이었다. 이 책은 현재까지 살아남았고,1 995년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저지 드레드[(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막대한 광고에 힘입어 한때는 상승세를 타기도 했다. 영화는 원작의 차가운 유머를 살리는 데 성공했고 스텔론은 각진 턱을 가진 주인공으로 완벽했지만, 줄거리보다는 특수효과를 선호했고 따라서 예상보다 소폭의 (10대)관객에게만 호응을 얻었다. 영화는 혹독한 비평에 시달렸고(끔찍하다는 의미의 ‘Dreddful'이 대표적인 판정이었다), 박스오피스의 순위도 형편없었다. 플리트웨이는 영화 개봉에 맞춰 10대 이전의 독자를 겨냥한 [저지 드레드: 미래의 집행관]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드레드 만화책을 창간하기로 결정했지만 영화개봉 후 계획은 곧 취소되었다. [141~142p]
- 영국의 세 가지 성공 케이스 중 두 번째는 [데드라인]으로, 창간의 주역인 브렛 어원스와 스티브 딜런은 [2000AD]의 다양한 작품(드레드도 포함)에서 일한 경험을 이 책에 반영했다. 그러나 [데드라인]은 항상 아주 다른 성격을 유지했으며 무엇보다 모험보다 유머를 강조했고 팝 음악에 대한 산문체의 글을 첨가했다. 사실 이 책은 성인 유머 만화와 음악/유행(style) 잡지의 중간이었다. 이에 따라 ‘스타일 만화’라는 용어가 곧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음악과의 관련성은 상품으로서 핵심적인 강조점이었다. [데드라인]은 후에 ‘인디 밴드’라는 이름을 얻게 될 그룹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스스로) 최신 유행에 정통한 출판물임을 주장하는 동시에 펑크적 색깔을 분명히 했다. -중략-
[데드라인]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만화 회사가 아니라 톰 애스터라는 돈 많은 개인이 발행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제작비용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탓에 내부는 컬러가 아니었고 창작자들에게도 충분한 보수가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이유 때문에, 다른 책들이라면 판매 부진으로 중단되었을 몇 번의 위기에도 이 책은 계속 발행될 수 있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이 책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어졌다. [142p]
- 그러나 가장 성격이 강한 동시에 1호부터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주인공은 앨런 마틴과 제이미 휴렛이 만들어 낸 ‘탱크 걸’ 이었다. [에일리언]처럼 강한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된 주인공 탱크 걸은 빡빡 깎은 머리에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여성 무법자였다. 그녀는 술에 취한 채 탱크를 타고 호주의 오지를 떠돌면서 캥거루와 잠을 자고 여기저기 싸움을 건다. 이 섹시한 무정부주의자는 ‘슈퍼맨도 바지를 벗기고 싶어하는 여자’이다. 줄거리 전개가 대단히 빨랐고 짤막한 농담과 재치가 전편에 가득했으며 그림은 깔끔하고 생생했다―또 하나의 컬트가 출현한 것이 첫날부터 분명했다.
탱크 걸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는 것은 지나친 일일 수 있지만 몇 가지 의미는 짚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런던의 술집에서 유행하는 패션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었고(처음에는 짧게 깎은 머리와 부츠, 이후에는 1970년대의 복고풍), 이것이 그런 종류의 독자층에게 매력으로 작용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그녀는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그려졌지만 여성 독자층에게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상투적인 모습에서 탈피한 여성 주인공으로서는 특이한 일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마블 만화에 등장했던 가슴 끝이 뾰족한 섹스의 여신이 분명 아니었다. 당연히 그녀는 곧 다양한 여권운동 단체의 마스코트가 되고, 후에는 ‘라이어트 걸riot girl' 밴드들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143~144p]
-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데드라인]의 판매는 부진했고, 급기야 1990년대 초에는 잡지 쪽으로 선회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수많은 조치가 취해졌다―기사의 수를 늘리고 만화의 비중을 줄였다. 컬러를 보강하고 전체를 고급 종이로 바꿨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만화가인 라이언 휴즈가 외양을 고치는 일에 착수했다. [144~145p]
- 이러한 보충과 개선의 노력과 별도로 1995년 영화 [탱크 걸]의 출시와 함께 판매가 증가할 것이라는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할리우드 영화 [탱크 걸]은 레이첼 텔러레이가 메가폰을 잡고 로리 페티가 주연을 맡았으며 사운드트랙에는 영화에 어울리는 많은 인디 록 음악이 깔렸다. 그러나 이 필름에는 원작의 무정부주의적 유머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영화 평론 역사상 가장 혹독한 비평 속에 영화는 보기 좋게 폭발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데드라인]에 완전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상황을 무마할 수 잇는 방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톰 애스터는 결국 그해 후반에 자신의 출판물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영화의 영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가 개봉될 무렵에는 [탱크 걸]에서 파생된 여러 권의 만화책들이 이미 제작되고 있었다. 이 책들은 그해 후반에 출판되었다. [145p]
- 미국에서 만화산업의 위기는 영국보다 더 강한 충격을 동반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만화규약 이후 시작된 판매량 감소는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출판사들은 빠른 속도로 도산해 나갔다. 경쟁이 줄어들자 1960년대 이후에는 마블 사와 DC코믹스 사가 급속이 축소되고 있는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했다. 두 출판사는 자칭 ‘연구와 개발의 시대’를 표방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새 아이디어를 찾는 일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만화 역사가들이 ‘마블 시대’가 끝날 때부터 전문적인 팬 운동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기를 ‘암흑 시대’라 칭하는 것에는 위와 같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149~150p]
- 마블이 맨 처음 해결책을 들고 나왔다. 주어진 기회를 항상 잘 이용했떤 이 출판사는 당시 로버트 E 하워드Robert E Howard의 소설에 대한 관심, 특히 야만인 코난이라는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이용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야만인 코난’은 역사 이전의 신화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그린 이야기로, 다소 우둔해 보이지만 엄청난 근육질에 검과 도끼로 완전 무장한 주인공이 예쁜 공주들을 구하고 사악한 마법사와 기상천외한 괴물들을 물리치기 위해 갖가지 모험을 겪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는 원래 1930년대 펄프 잡지에 첫선을 보였는데, 1960년대 중반 페이퍼백 문고판으로 재인쇄되어 다시금 열정적인 새 독자층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것은 이른봐 ‘검과 마법’이야기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70년에 창간된 [야만인 코난Conan the Barbarian]은 하워드의 오랜 팬이었던 로이 토머스가 대본을 쓰고 젊은 영국인 배리 윈저 스미스Barry Windsor-Smith가 그림을 그렸다. 이 책은 기존의 ‘마블 세계’와 어울리지 않았기 떄문에 어떤 면에서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코난은 초인영웅과 비슷했기 때문에 동일한 독자층에게 다가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그는 또 한 명의 초인영웅이었다. 게다가 토머스와 윈저-스미스는 훌륭한 팀웍을 이뤘다. 즉 토머스의 이야기는 원작의 의미에 충실했고 윈저-스미스의 그림은 커비류의 역동성에 아르누보의 장식성까지 겸비했다.
한 가지 제약은 만화규약이 허락하는 폭력의 양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블 사는 1971년 흑백 잡지 형식으로 [야만인 이야기]를 펴냈고 1974년에는 마블 최고의 잡지 [야만인 코난의 검The Savage Sword of Conan]을 펴냈다. 이제 등장인물들은 마음껏 피를 흘릴 수 있었고, 코난은 사상 유례없이 잔인한 ‘죽음의 마법사들’, 코끼리의 신들, 거대한 거미들과 여한 없이 싸울 수 있었다. 이 잡지들은 ‘성인 전용’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여성의 노출이 더 자유롭게 허용되었다.―10대가 주류인 독자층에게는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두 잡지는 또한 1980년대 아놀드 슈와르츠제네거 주연의 코난 영화 시리즈가 만들어질 수 있는 모태가 되었다. [150p]
- 마지막으로 70년대 말 모든 사람이 고대하던 영화 [슈퍼맨](1978)이 개봉되어 만화책 판매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렸다. ‘강철 인간’이 스크린 위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는 사상 유례 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주인공의 카리스마를 잘 연기했으며 영화에 사용된 특수효과는 당시로서는 정말로 특수했다(‘사람이 하늘을 나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슈퍼맨 영화는 속편이 계속 이어졌을 뿐 아니라, 할리우드가 초인영웅 만화를 새로운 관객을 위한 영화로 각색하여 크게 성공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슈퍼맨이 남긴 교훈은 1980년대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막대한 예산으로 제작한 배트맨 영화로 나타났다. [151p]
- 공포만화 장르는 더 활기차게 부활했다. 앞에서 살펴보았뜻이 공포만화의 인기는 1960년대 만화규약 이후 워렌 사의 중요한 책들([크리피], [이어리]. [뱀피렐라])과 함께 다시 부활했고, 스카이월드(Skywald)를 비롯한 몇몇 출판사의 책([사이코], [나이트메어] 등)과 함께 197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따. 이제 마블 사가 그 역할을 이어받아 각기 다른 연령층을 겨냥한 여러 잡지들을 창간했다. 최초의 책들은 아동용 공포물이었는데, ‘뱀파이어 모비어스’, ‘악의 여왕 사타나’ 등의 재미있는 작품들이 실린 [좀비 이야기Tales of the Zombie], [드라큘라는 살아 있다!Dracula Lives!],[해방된 괴물들Monsters Unleashed], [뱀파이어 이야기Vampire Tales]등이 대표적이다. [151p]
- [드라큘라](1979)는 스페인 출신의 일류 만화가 에스테반 마르토의 120쪽짜리 단행본이었다. [151p]
- 가장 큰 발전은 공상과학 장르에서 이루어졌다.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책은 고급스런 종이로 제작한 공상과학 선집 [헤비 메탈Heavy Metal](헤비 메탈, 1977)이었다(머리를 흔드는 음악 장르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처음에는 유럽에서 성인용 만화의 새 바람을 일으킨 프랑스 만화책 [메탈 위를랑Metal Hurlant](Les Humanoides Associes, 1975)의 영어판으로 발행되었다. 당시 유럽만화는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와 1960년대 말 프랑스 학생운동(그리고 그에 수반된 문화적 표현)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며, 공상과학 장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메탈 위를랑]에는 사이키델릭하고 매우 과장된 미래의 모험여행과 심각한 풍자 이야기가 뒤섞여 있었고, 대개 여성의 나체그림이 풍성하게 실렸다. 엄청난 제작비용이 들어간 이 책은 대부분의 만화가 완전한 컬러로 인쇄되었고, 잡지와 품질이 같은 종이를 사용한 덕분에 창작자들은 에어브러시 기법을 이용하여 컬러 그림을 부드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151~152p]
- 최고의 창작자이자 프랑스 공상과학 만화의 대가 ‘뫼비우스’의 많은 작품들이 여러 해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아르작Arzach’, ‘밀페된 창고The Airtight Garage', '잉칼Incal
이 대표적이었다―p 221을 보라). 그의 그림 스타일은 로버트 그럼의 영향을 받았지만 훨씬 더 사실적인 필치로 만화에 정교함을 도입했다. 심지어 그가 창조한 공상과학의 세계들은 실제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할리우드가 [블레이드 러너], [제국의 역습]과 같은 영화에 그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152p]
- 질적인 면에서 [만화로 보는 서사시Epic Illustrated]보다 훨씬 떨어졌지만 생존 기간은 거의 비슷했던 [1984]는 워렌 사에 의해 1978년 창간되었고, 중간에 [1994]로 이름을 바꾸어 1983년까지 발행되었다. 이 볼품없는 흑백 만화책은 진지한 가식을 멀리하고 섹스 장면을 지면 가득 실었다(이 책의 표제 중에는 ‘자극적인 성인 판타지 만화’라는 암시적인 문구가 있었다). 몇몇 만화들은 오늘날 ‘에로틱 고전’으로 재평가되고 있지만(가령 프랭크 손의 ‘알리자르의 기타Ghuta of Alizarr'), 일반적으로 만화를 사랑하는 팬들은 이 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한다. [154p]
- 결론적으로 1970년대에 시작된 미국 만화출판의 한 시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예전과는 달리 주류 만화에도 나이든 독자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시기로서 더욱 중요하다.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보다 성숙한 주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는데, 그 운동의 사고방식(정치보다 섹스와 폭력에서)을 이어받은 마블과 DC코믹스와 같은 출판사들이 새로운 10대 시장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10대 시장은 다음 10년에 걸쳐 발전하게 될 완전 새로운 만화 마케팅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다. 그 기초는 바로 만화의 ‘팬덤’(fandom, 특정 분야의 팬 전체를 가리킴; 옮긴이)이자 다음 장의 주제이기도 하다. [154p]
7장 새로운 주류의 출현
팬들을 겨냥한 성인용 만화
-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만화책의 마케팅과 디자인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고 이것은 다시 만화책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과거의 신문판매소 시장이 빠른 속도로 쇠퇴했고 이와 동시에(단지 만화책만을 판매하는) 팬 숍에 기초한 보다 전문적인 판매망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당연히 출판업들의 사업 방향에 영향을 미쳐 1990년대 중반에는 모든 만화책의 90퍼센트 이상이 이 경로를 통해 판매되었다. 불과 몇 년 만에 팬 숍 시장은 하나의 작은 만화 소매망에서 새로운 주류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157p]
- 변화의 기원은 1960년대 마블과 DC코믹스가 펴낸 책들을 좋아하는 충실한 팬 집단이었다. 두 출판사 중 만화책을 수집용으로 디자인했던 마블 사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팬들은 좋아하는 시리즈를 빠짐없이 수집했고 스티브 디코, 짐 스테랑코, 닐 아담스, 잭 ‘킹’ 커비와 같은 만화가들을 종교적으로 숭배했다. 나이가 들면서 보다 열렬한 일부 팬들은 우편 배달 사업을 시작했고, 함께 모여 정기적인 시장(‘마트’)과 집회(‘콘’;convention의 약어)를 열었고, 그들 자신의 팬 잡지인 팬진을 발행했다. 이것이 만화 팬덤(fandom)의 시작이었다. 초기에 만화 팬덤은 오래 전부터 확립되어 있던 공상과학 팬 집단의 방식에 크게 의존했다. 사실 두 하위문화는 공상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팬 숍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팬덤은 196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성장했다. 이 시기에 히피의 헤드 숍은 신문판매소와는 다른 만화 시장이 존재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었다. 1960년대 말 최초의 팬 숍들이 출현하여 주로 우편 배달 방식으로 만화와 공상과학 출판물을 판매했다. 1970년에 느리지만 꾸준하게 증가하던 팬 숍의 수는 1980년대에 들어서자 급격히 증가하여, 80년대 말에는 영국에 400개, 미국에 4,000개의 팬 숍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것은 팬 숍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독립적인 하위문화로 생존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이 하위문화는 특정한 것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팬’이란 말은 결국 ‘fanatic광적인’의 약자이다). 팬 숍에는 수많은 초인영웅 만화가 진열되었는데, 외부인의 눈에 그것은 같은 주제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장난 같았지만 만화 팬에게는 그 모든 책들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런 이유로 팬 숍의 고객은 대략 12세에서 25세의 남성에 국한되었다. 여성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팬 숍에 진열된 만화는 근육질의 강인한 남성들이 세상의 지배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 판타지였기 때문에,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출판업자들은 다른 주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157p]
- 사람들은 만화 팬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것도 아주 쉽게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팬덤이 하나의 창조적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친구를 사귀고, 만화의 예술 형식에 관해 견해를 표현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팬진은 등장인물들의 인간관계를 깊이 생각하고, 줄거리를 재구성해 보고, 그것을 풍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팬진은 또한 초보 작가의 시험무대로서 수많은 전문 만화가들에게 최초의 발표 기회를 제공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만화 팬들에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식으로 충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수집에 대해 말하자면 일부 투기꾼들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은 경매회사들이 상태가 좋은 만화책들의 천문학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58p]
- 뿐만 아니라 1970년대의 침체기 이후 팬 숍은 출판업자들이 상업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이 되었고, 만화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해주었다. 도매업자들의 입장에서는 팬 숍에 책을 직접 공급하면 반품되는 물량이 없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출판업자들이 팬 숍에 광고자료를 보내 근간 서적을 홍보하면 팬 숍에서는 매출과 재고 자료에 기초하여 구체적인 물량을 주문했다. 이 ‘직접 판매’ 시스템은 발행 부수를 조절하고 낭비를 줄여 모든 사람에게 효율성을 높여 주었다. 그것은 신문판매소 시스템을 완전히 압도했다.
시장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자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새 출판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 퍼시픽, 퍼스트, 이클립스와 같은 출판사들은 신문판매소에서는 마블이나 DC코믹스와 경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팬 숍에 영업을 집중하면 충분한 이익을 거둘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초인영웅 만화를 발행하여 자신의 몫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창작자들에게 인세를 지급함으로써 두 대형 출판사를 등진 인기 만화가들을 끌어들였다. 이것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여, 결국 만화계 전체가 이 선례를 따르게 되었다. 이런 과정으로 팬 숍은 만화출판의 중심이 되었다. 이제 미국과 영국의 대형 출판사 대부분은 전적으로 이 시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158p]
- 마블 사는 [엑스멘X-Men]을 개작하여 최고의 팬덤 만화로 만들었다. 이 책의 새로운 방향은 팬 숍 판매망이 확립되기 이전인 1975년에 시작되었지만 1980년대에 이 책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팬 숍을 이용한 만화 팬 덕분이었다. 개작을 거친 [엑스맨]에는 원래의 다섯 주인공 중 세 주인공(‘엔젤’, ‘아이스맨’, ‘마블 걸’)이 ‘울버린’, ‘나이트크롤러’, ‘스톰’으로 교체되었고, 그 밖에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추가되었다. 새로 구성된 팀은 과거의 공식에 활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새로운 독자를 창출했다. 그들 중 특히 인기가 높았던 ‘울버린’은 손목에서 돌출되는 거대한 금속 발톱으로 살인하는 것을 즐기는 늑대인간 타입의 인물이었다. -중략-
새 [엑스맨]은 ‘팬 만화’ 스타일을 확립했다. 크리스 클레몽(14년 동안 스토리를 이끌었다)의 이야기는 독자를 강하게 끌어들이는 심리적 깊이와 모든 호를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스토리 전개가 궁금해지는 복잡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엑스맨의 주인공들은 독특한 돌연변이였고 각자의 행동과 특징은 사춘기, 민족, 성의 특성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들이 사랑, 이별, 결혼, 출산, 죽음, 그리고 특히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차별대우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매력을 끝없이 높여 줄 뿐이었다. 그림 또한 팬들을 사로잡을 만 했다. 존 바이른John Byrne, 마크 실베스트리, 존 로미타 2세, 짐 리Jim Lee는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인기 만화가로 떠올랐다. [158~159p]
- 마블 사가 승승장구하는 사이 다른 출판사들은 그에 맞설 방법을 모색했다. 영원한 라이벌 DC 코믹스 사는 1950녀대와 1960년대에 활약했던 두 팀을 부활시켰다. 1980년에 먼저 [초인영웅 부대The Legion of Superheroes]가 부활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10대 거인들 Teen Titans]이 [엑스맨] 스타일의 개작을 거쳐 [새로운 10대 거인들The New Teen Titans]로 다시 태어났으며 최초의 주인공 ‘로빈’, ‘원더 걸’, ‘키드 플래시’에 ‘스타파이어’, ‘체인지링’, ‘레이븐’, ‘사이보그’가 합류했다. 두 번째 책이 마블 작품과 경쟁할 수 있엇떤 것은 조지 페레즈의 뛰어난 그림 덕분이었다. [159p]
- DC 코믹사와 같은 수준으로 경쟁할 수단이 없었던 독립 출판사들은 풍자로 대응했다. 1980년대가 끝날 때까지 ‘10대 돌연변이’를 무자비하게 패러디한 작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유행에는 선두주자인 [10대 돌연변이 닌자 거북이Teenager Mutant Ninja Turtles](미라지, 1984)의 성공이 자극제가 되었다. 우리는 6장에서 이 만화가 엄청난 아동물 유행(영화, TV프로, 수많은 장난감)의 기초가 된 경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닌자 거북이]의 최초 형태는 팬을 겨냥한 성인용이었고 풍자적이었으며, 발행 부수가 몇천에 불과한 흑백 출판물이었다. 이 ‘10대 거북이 팀’은 순전히 웃음을 위해서만 행동했는데, 만화 문화를 더 깊이 아는 독자일수록 그들의 익살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159p]
- 팬 지향적인 출판의 이 첫 번째 발전기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출판업자들은 그 운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팬 시장에 엑스맨 스타일이 아닌 다른 영웅들이 들어설 자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확신이 증가함에 따라 보다 성숙한 내용과 품질로 제작된 새로운 만화책들이 창간되었다. (어차피 팬들은 과거의 독자들보다 나이가 많고 소비 규모도 클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성인용 만화’의 급격한 인기가 시작된 지점이었고, 주류 만화의 역사에서 예술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발전이 시작된 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파생된 만화 출판물에는 정치적인 내용, 사회적 패러디, 그리고 도덕적 양면성을 내포한 작품이 더 많이 실렸을 뿐 아니라 영화적인 센스와 폭력이 자유롭게 표현되었다. 한 마디로 그 책들은 만화규약의 족쇄를 간단히 부숴 버렸다(팬덤의 보호 아래 보복의 두려움 없이 규약을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아직도 초인영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출판업자들은 기존의 공식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것은 상업적으로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출현한 새 장르는 일종의 기이한 잡종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어랜애 같은 형식(초인영웅만화)에 어른스러운 의미가 혼합된 것이었다.
예술적으로 볼 때 그 만화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 야심적이었고 만화가들 또한 실험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전면 채색, 콜라주, 멀티미디어 기법이 보편화되었고, 때로는 최상의 품질에 도달하기 위해 사진과 같은 고급 종이에 인쇄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1980년대의 디자인 혁명이 최고조로 꽃을 피워 인쇄술, 패널 배치, 그리고 특히 표지 제작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160p]
- 진정한 의미에서 유행의 시작은 1980년대 초에 팬들이 좋아했던 떠오르는 스타 프랭크 밀러가 실패의 수렁에 빠져 있던 마블의 한 초인영웅 시리즈를 재구성하여 내놓은 [데어데빌]이었다. 원래는 눈 먼 초인영웅이 나머지 예리한 감각을 이용하여 범죄와 싸운다는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밀러는 여기에 새로운 특징들을 추가했다. 대표적인 예는 전쟁 영화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숨막히는 전투 장면과 새로운 적―여성 자객 일렉트라―의 등장이었다. 일렉트라는 후에 주류 만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주인공이 되었다. 밀러는 또한 짐 스테랑코가 개척한 편집 기술(빠른 장면전화; 옮긴이)을 최대한 활용했고, 보다 사실적이고 추악한 배경을 설정함으로써 줄거리에 새로운 위기감을 도입했다. 팬들은 그것을 사랑했고, [데어데빌]은 곧 [엑스맨]의 뒤를 이어 마블 사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60p]
- 마지막으로 이글 출판사는 [2000AD]에 실렸던 ‘저지 드레드’를 재포장한 책 [저지 드레드](1983)를 미국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그러나 성인용 만화가 본격적으로 이륙을 시작한 것은 1986-7년이었다. 그때까지 출판업자들은 성인용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대신 엑스맨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두 권의 만화책이 상황을 변화시켰고 그 성공에 힘입어 만화산업의 에너지는 나이 든 독자층을 향해 극적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그것은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밤의 기사 돌아오다Batman: the Dark Knight Returns](1986), 그리고 앨런 무어와 데이브 기번즈의 [워치맨Watchen](1986)이었다. 둘 다 DC 코믹스가 발행했으며 팬을 확보한 작가와 화가들이 창작한 초인영웅 개작 만화였다. 또한 직접 판매 만화책으로는 처음으로 팬덤 외부로부터 많은 비평이 쏟아졌고 진지한 신문 평론의 대상이 되었다.
[배트랜: 밤의 기사 돌아오다]는 박쥐인간 신화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여 1960년대의 연약한 성격과는 아주 다른 인물을 창조했다. 이 책에서 배트맨은 내면의 악마에 사로잡힌 차갑고 비틀어진 마음의 소유자로, 조커와 숙명의 결전을 벌이기 위해 은거지를 박차고 나오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 후 펼쳐지는 살육의 과정에서 그의 자경주의(自警主義)적 동기가 밝혀지고 세상은 환호한다. 밀러에게 이 새로운 배트맨은 ‘보통 사람보다 더 크고 더 강한 도덕적 힘과 정의감을 가진 인물로서 기꺼이 악을 심판하고 세상을 구하는 주인공’이었지만, 일부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의 철학적 입장이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162p]
- [워치맨Watchmen]도 은거지를 박차고 나온 초인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밤의 기사]와 같은 우익적 관점을 피하고 그러한 영웅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보다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사색한 작품이었다. 일종의 40대 엑스맨 집단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워치맨들은 파멸의 순간에 미국을 구하기 위해 돌아오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성공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의 힘은 맨 처음 특이한 복장을 하고 나타났을 때와 똑같이 강력하지만, 그들의 정신은 파괴된 상태이다. (진정한 앨런 무어의 방식으로)그들은 종종 소름끼치는 행동을 통해 영적인 추구와 심리적 외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또한 총 12부로 구성된 줄거리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이전의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하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중략-
두 만화의 성공 요인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수준 높은 질이었다. 둘 다 독특한 방식으로 독자의 흥미를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다른 만화들을 압도했다. 둘쨰, 배트맨은 이미 일반 대중에게 아주 잘 알려진 주인공이었기 떄문에(특히 1960년대 TV 시리즈를 통해), ‘제품 인지도’에 기초하여 높은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었다. 셋째, 두 만화의 성공은 원래의 작은 형식을 폭이 넓은 판형으로 새롭게 포장하여 ‘그래픽 소설’로 마케팅한 것에 기인했다.
세 번째 요소는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어떤 면에서 ‘그래픽 소설’이란 개념은 출판사의 광고담당 부서에서 만들어낸 일종의 과장 광고였다. 출판사들은 ‘그래픽 소설’이라는 새 이름으로, 특히 만화와의 관련성 대신 그것이 소설이라는 인상을 심어 줌으로써 보다 광범위한 대중에게 성인용 만화를 팔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출판문이 실제로는 초인영웅 이야기지만 사람들에게 문학의 ‘새 바람’으로 인식되어 팔리기를 희망했다. 심지어 대중매체와 신중하게 조율하면 팬 숍의 영역 밖에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었다.
그에 따라 만화산업은 주류 언론에 평론을 요청하기 시작했고 팬덤의 경계 밖에서 만화를 광고하기 시작했다(인기 만화가는 인기 소설가처럼 큰 돈에 ‘팔리곤’ 했다). 일반 잡지에 실린 DC 코믹스의 한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다. ‘만화를 볼 나이는 지났다. 그렇다면 그래픽 소설이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이제 만화 산업은 다른 서적출판 부분과 똑같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165p]
- 사실 ‘그래픽 소설’에는 과장 광고 이상의 어떤 것이 있었다. 우선 그것은 광고부서 직원들이 꾸며 낸 만큼 새로운 것이 아니라, 19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본래 그것은 말 그대로 그래픽 형식에 담긴 소설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주제의 통일성을 가진 책 형식의 긴 만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중략-
그래픽 소설이 만화출판의 변두리에서나마 그렇게 오랫동안 생존했던 이유이자 독자와 창작자 모두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이야기 전개의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해 기존의 만화보다 이야기가 더 길었기 때문에, 긴장을 구축하고 분위기를 만들고 인물의 성격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제공했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작품의 질이 만화보다 더 좋았기 때문에 더 우수한 시각적 효과를 제공했다. 실제로 어떤 만화가들은 일반 만화책보다 그래픽 소설로 출판하기를 선호했다.
[밤의 기사]와 [워치맨]의 영향은 일반적인 상상과는 달리 만화에 혁명을 일으킨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픽 소설’의 가능성을 새로운 독자층에게 인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과장 광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87년의 집중적인 광고 덕분에 그래픽 소설은 번화가 서점과 공공 도서관에 마련된 그래픽 소설 전문 서가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주요 일간지의 문학 섹션에 수많은 평론이 실림으로써 앨런 무어, 프랭크 밀러 등의 유명 만화가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주류 서적 출판사들이 그래픽 소설 시장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후 펭귄, 골란Gollancz, 맨더린, 박스트리를 비롯한 여러 출판사들이 그래픽 소설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165p]
- DC 코믹스는 또한 앨런 무어의 흘러간 이야기를, 결말을 보충하고 컬러 물감을 입혀 그래픽 소설로 다시 펴낸 [복수 V for Vendetta](1990)로 큰 히트를 기록했다. 새 주인공은 무정부주의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보다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p139를 보라). [167p]
- 이 대성공을 이끈 선두주자는 [스파이더맨] 개정판이었다(1990년에 다시 1호부터 발행되었다). 팬들의 인기가 높았던 토드 맥팔레인이 쓰고 그린 이 작품은 그림 스타일이 대단히 화려하고 줄거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등 미래 지향적인 경향을 추구했다. 또한 같은 호에서도 표지가 여러 가지 다양한 색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팬들은 색깔별로 모든 책을 수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만화 역사상 최고인 30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러나 뒤이어 출판된 [엑스 포스X-Force](1991)는 이 수치마저 뛰어넘어 350만으로 추정되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엑스맨]에서 파생된 이 작품은 로브 리펠드Rob Liefeld의 역동적인 그림이 특별한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성공의 진짜 비밀은 창간호에 딸린 다섯 장의 엑스 포스 카드에 있었다. 만화 한 구너에 카드 다섯 장이 주어졌고 완벽주의자들은 그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마블 사의 또 다른 히트작으로는 [실버 서퍼Silver Surfer]와 [울버린Wolverine]을 개작한 책이 대표적이었다. [172p]
- 1993년에 DC 코믹스 사는 자사 최대의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그것은 DC 코믹스 최고의 영웅인 슈퍼맨을 죽이는 것이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최근 이 주인공의 인기가 갑자기 시들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영화들은 1980년대 말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했고 존 바이른이 개작한 [슈퍼맨]만화와 경합을 벌였는데, 이에 따라 팬들의 의견이 둘로 분열되기도 했다(이 1980년대 슈퍼맨은 리브와 모습이 똑같았고 과거 어느 때보다 ‘인간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슈퍼맨은 배트맨 영화와 만화에 밀리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따. 그의 오랜 라이벌이 다시 한번 그를 때려눕혔던 것이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주인공을 죽이는 것은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유서 깊은 방법이었지만(‘로빈의 죽음’이 대표적인 예였다), 슈퍼맨같이 위대한 인물을 가지고 노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팬 시장은 상당히 믿을 만했고 특히 다양한 판촉방법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기념 완장과 [데일리 플래닛]의 잡보난 기사가 그 예였다). 그러나 더욱 확실한 성공을 위해 DC 코믹스는 주류 언론에 기사가 실릴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밤의 기사]와 [워치맨]이후로는 처음으로 대중매체의 주목을 어느 정도 획득할 수 있었다.
‘슈퍼맨의 죽음’은 주인공의 출생을 종교적 비유로 이야기했다(p61을 보라). 작품 속에서 그는 둠스데이(‘최후의 심판일’)라는 (잘어울리는) 이름의 괴물이 저지르려는 ‘살육 전쟁’을 막고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얼마 후 그를 보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결국 몇 명의 친구들이 그의 무덤을 확인한다. 무덤은 비어 있다. 단순한 공식이었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전체 이야기가 한 권의 그래픽 소설로 다시 발행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개별 호들은 DC 코믹스 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물론 슈퍼맨은 오랫동안 죽은 상태로 있지 않았다. 그를 사칭하는 다양한 사기꾼들이 복잡한 줄거리를 연기하고 사라지자, 그는 다시 예전처럼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172~173p]
-1986년에 설립된 다크 호스는 수준 높은 만화책을 출판한다는 명성을 쌓았으나 90년대 이전까지는 상업적인 대성공을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들은 영화 만화를 발행하여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에일리언스](1988), [프레데터](1989), [터미네이터](1990)가 인기를 누렸다. 세 만화는 마치 원작 영화의 후속편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서로의 주이공들을 끌어들인 새로운 만화책들을 추가로 발행했다(예를 들어, [에얼리언스 대 프레데터], 1990). 또한 다크 호스의 만화 [마스크](1991)는 영화로 각색되어 대히트를 기록했다. 원래 초인영웅 이야기에 공포 장르 분위기를 풍자저으로 덧입힌 이 판타지 만화는 1994년 짐 캐리 주연의 할리우드 코미디로 다시 태어났다. [173p]
- 세 번째 출판사는 상업적 측면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이미지 코믹스Image comics였다. 이 출판사는 전통적인 마블 체제에서는 정당한 작업의 대가를 받을 수 없다고 느낀 작가와 화가들이 마블 사를 등지고 설립한 ‘창작자 소유’ 회사였다. 그들이 놓친 대가는 상당했다. 문제의 창작자들 중에는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들을 만든 토드 맥팔레인, 짐 리, 로브 리펠드가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몇 가지 측면에서 그들의 모험은 위험을 안고 있었지만 최초의 세 출판물이(모두 어쩔 수 없이 초인영웅 만화였다) 성공함으로써 그들의 낙관론이 정당했음이 입증되었다. 우선 리펠드의 [영블러드](1992)는 판촉용 교환카드에 힘입어 독립만화의 최고 판매기록을 단숨에 갱신했다. 두 번째로 맥팔레인의 [스폰Spawn](1992)도 기록을 갱신했고, 세 번째인 리의 [와일드 캐츠](1992)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후 이미지 코믹스는 DC 코믹스를 판매순위 3위로 밀어냈다. [174p]
- 이미지 코믹스의 책들이 그렇게 괄목한 만한 성공을 거둔 이유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 책들은 만화 산업의 위대한 창작자들이 마블의 공식을 다시 한번 적용한 결과물이었다. (후에 또 다른 최고의 창작자들이 합류했다. 에릭 라슨, 마크 실베스트리, 윌스 포타시오가 그들이었다.)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 책들은 모두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대부분의 작품들이 당시 유행하던 공포나 공상과학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스폰]의 주인공 스폰은 메피스토 타입의 인물이자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면 가차없이 팔다리를 잘라버리는 냉혈한 이었다. 그 밖에 몇몇 작품들은 사이버펑크 경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팬들의 미학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 외에도 이 책들은 컴퓨터 채색이라는 특이하고도 놀라운 방법을 사용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이미지 코믹스의 시리즈 최첨단 이미지를 부여했다. [174p]
- 그렇다면 우리는 1990년대 새로운 주류 만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어떤 측면에서 마블, DC 코믹스, 이미지 코믹스는 초인 영웅 장르가 시작된 이래 확립되어 온 기존 공식들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그들은 새로운 감각을 도입했다. 이전에 비해 폭력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으며, 과거의 초인영웅 이야기속에 깔려 있던 본질적 순수함이 구식으로 밀려나고 냉소주의 첨단유행의 자리를 차지했다. -중략-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만화와 다른 매체간의 결합이 더욱 중요시되엇따는 점이다. 특히 출판업자들은 만화가 영화로 제작되면 훨씬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했다. 돌이켜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옳은 생각이었지만,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출판사들은 영화제작 능력이 있는 다국적 기업의 일부(또는 자매 회사)라는 지위를 무자비하게 남용했다. 예를 들어 DC코믹스는 타임워너 소유였고, 마블은 뉴월드 영화사를 소유한 기업의 자회사였으며, 다크 호스는 20세기 폭스 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174p]
- 물론 이 모든 상황은 할리우드의 오늘을 엿 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우선 특수효과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장대한 배경과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에 있어 만화가 영화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이 옳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오늘날 영화 예산은 편당 3천만―5천만 달러가 보통이고 컴퓨터 제작과 에니메이션 기술이 발전하여 만화의 거의 모든 효과를 재현해 내고 있다. 만화가 마침내 2차원에서 3차원의 세계로 진입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174p]
8장 대안적 전망
주류를 넘어서는 대안 만화의 새 물결
- 새 대안만화는 워낙 다양했기 때문에 그 개념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정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류 만화와 대조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가장 뚜렷한 차이는 초인영웅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더 나아가 픽션 만화(스릴러, 서부극, 공포만화, 공상과학), 자전 만화, 정치만화, 풍자만화 등의 장르 구분이 가능했다. 또한 산문 소설이나 영화와 관련된 것들도 있었다. 주류 만화의 일부에서는 자신이 ‘성인용’임을 공언해 왔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그것은 종종 마케팅 전략에 그쳤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대안만화는 틀림없는 성인용이었다.
사실 장르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안만화는 주류 만화가 도달하지 못한 영역까지 활동범위를 넓혔다. 이것은 대개 대형 출판사들이 자전 만화와 같은 장르에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고 보았기 떄문이었다. 그러나 또한 급진적인 정치문제, 섹스, 극한적인 공포 등의 주제들이 대안만화를 통해 빛을 보게 된 것은 주류에서 그것을 다룰 능력이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대안만화는 같은 종류의 주류 만화보다 더 극단적으로 흘렀고, 기성 사회의 검열로부터 더 철저한 압박을 받곤 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안만화는 반문화적 경향들을 이용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특히 펑크는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펑크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어난 현상이었지만(대략 1976년부터 1979년 사이),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언더그라운드 히피 문화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작용을 했다. 따라서 대안만화의 첫 번째 물결은 보다 반항적이 공격적인 문체를 보여주었고, 히피보다는 펑크족이나 포스트펑크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고, 사이키델릭이나 판타지 양식보다는 펑크 그림 양식을 반영했다. 이것은 ‘자연발생적인’ 스타일에서, 펑크로부터 영감을 받은 ‘신표현주의’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림들이 나올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후의 만화들은 이를 토대로 발전했으며, 새로 출현한 레이브, ‘인디’, 트레블링과 같은 하위문화들의 관심사를 반영했다. [177p]
- 대안만화 자체를 일반화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누가 구입했는가를 논하기는 더욱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 독자층이 [엑스맨] 부류의 만화를 구입한 사람들과는 크게 달랐으며, 같은 서점을 이용했지만 두 독자층이 같은 만화를 구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대안만화의 독자들은 그들 자신이 어느 정도 ‘대안적인’ 사람들이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전 시대에 ‘원대한 정치적 프로젝트’를 믿었던 히피들과는 달랐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반(체제)문화 성향을 띤 사람들이었다.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더 폭넓게 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어느 대안만화 창작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안만화를 구입하는 사람들과, 소규모 음반사 레이블이 붙은 이 얼터너티브 록 음반 그리고 리서치, 아모크, 패로 하우스, 룸패닉스Loompanics 같은 소규모 출판사들이 발행하는 책들 사이에 진정한 크로스오버(장르간 혼합; 옮긴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스필버그 영화를 보러가지 않아요[웃는다]. 그들은 [필름 스레트Film Threat](영화평론 잡지; 옮긴이)를 읽습니다. 영화 매체는 그들 관심 밖인 것 같아요.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반 기업문화”라고 해야 할까요. 그 사람들은 기업에서 생산하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든 기꺼이 구입합니다.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진실에 더 가깝고 불쾌하지 않도록 순화되었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178p]
-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만화와의 관련성 외에도 [로]의 디자인에는 펑크를 비롯한 다른 하위문화들의 영향이 엿보였다. 앞에서 우리는 펑크가 어떻게 대안만화 전반에 스며들었는가를 보았다. 그러나 [로]의 경우 펑크는 선택적으로 차용되었으며, 보통 반어와 신표현주의적 장치를 거쳐 해석되었다. 예를 들어 각 호의 목차에는 펑크 미학과 관련이 있는 ‘겹침 인쇄overprints'나 ’누락drop outs' 같은 디자인 개념이 적용되었다. 또한 7호에는 ‘해지고 찢어진’ 방식을 적용하여 표지의 오른쪽 귀퉁이를 찢은 채로 발행했다(이렇게 찢어낸 조각들을 무작위로 추려서 각 책의 1면 모서리에 하나씩 붙여 놓았다.) 이런 괴팍하고 재치 있는 요소들 때문에 [로]는 항상 새 느와르 사실주의를 보여준 자크 타르디, 아방가르드적 기발함을 만화에 도입한 스페인 출신의 하비에르 마리스칼 등이 있었다. 특히 네덜란드 출신의 유스트 슈와르트는 우아한 선과 세련된 소묘로 차가운 반어를 표현했고 잡지의 초기 성격을 정착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88~189p]
- 그러나 1980년대 만화에 끼친 영향으로 말하자면 [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책은 흘러간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이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신인 만화가들이 가진 풍부한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했다. 비록 후기에는 주류 출판에 흡수되었지만 대안만화 선집의 전통을 다시 부활시켰고, 그 과정에서 대안만화 전반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었다. [189p]
- 헤르난데즈 형제의 [미스터 X](보텍스, 1984)는 스피드에 중독된 신비한 건축가가 미래의 도시를 방문하는 색다른 이야기였다. 1990년대에는 사이버펑크와 환경파괴와 같은 현대적 주제들이 더 많이 다뤄졌다. [204~208p]
- 공포 장르도 활기를 띠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은 스티븐 비셋이 편집한 [타부](스파이더베이비 그래픽스, 1988)였다. 이 선집은 공포만화가 1950년대에 누렸던 ‘판매금지’의 지위에 복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그 내용은 유혈과 충격으로 가득했다. [208p]
- 공포 장르에는 또한 도덕적으로 ‘위반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극단적일수록 미적·창조적 가치가 높다는 믿음으로 제작된 만화들이었다. 이 책들은 ‘도덕적 경계를 위반하는’ 문화적 유행을 자극했다. [208p]
- 대안만화의 논픽션 분야는 자전 만화, 전기 만화, 정치 다큐멘터리의 세 장르로 나뉜다. 먼저 자전 만화를 이야기하자면, 이 분야의 책들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서술했기 때문에 그 형식은 유머 만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209p]
- 새로운 정치만화들이 [슬로우 데스]나 [아나키]와 같은 과거의 언더그라운드 정치만화와 달랐던 점은 서로의 정치적 대의가 다른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끝났고, 새로운 전쟁이 발발했는데 특히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 전쟁이 대표적이었다. 또한 동구권의 몰락으로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감소했으며, 이와 동시에 지구의 자원 파괴가 보다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마지막으로 여성운동, 흑인운동,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그들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쟁취했던 것을 다시 빼앗으려는 80년 이후의 정치적 반동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강화해 나갔다. [213p]
- 그러나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또 하나의 차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작은 출판’이다. 작은 출판은 창작자가 손수 제작하여 판매하는 방식으로, 발행 부수는 수십에서 수천까지 다양했지만 대개는 몇백 부에 그쳤다. 작은 출판물은 펑크 팬진이 폭발적으로 출현하던 1970년대 말에 모습을 드러냈고, 초기 만화들은 대부분 사진 복사기로 매우 조잡하게 제작되었다(보다 야심찬 사람들은 잉크롤러 복사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창작자들은 완전히 비영리적이었기 떄문에 투자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았으며, 들어간 돈을 회수하는 경우도 드물었다(언더그러안드의 초기 역사와 매우 비슷했다). 판매가 가장 큰 문제였다. 간혹 마음씨 좋은 만화 숍 주인들이 진열 공간을 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은 출판업자들은 우편으로 거래를 해야 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작은 출판은 보다 세련된 모습을 보였다. 그 비결은 작은 출판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모임과 팬진을 활성화함으로써 보다 나은 조직을 갖춰 나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스타’ 창작자들도 탄생했다. 또한 데스크탑 컴퓨터를 이용한 출판 기술이 발전하고 인쇄가격이 감소함에 따라 소규모 만화책들이 보다 전문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광택이 아는 표지와 일반 서적 크기의 판형은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214p]
-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떄 대안만화는 주제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고 창조적 자유의 수준도 그만큼 뛰어났다. 그러나 자유에는 대가가 따랐다.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대안만화도 권력 체제의 분노를 자극했고, 그 결과 검열이 더욱 강화되었다. 미국과 영국의 우익 정권은 대안만화에 대한 탄압을 계속 유지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는 대처와 메이저의 정책을 똑같이 되풀이했는데, 이들은 모두 우익 대중매체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없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복음교회의 우익 강경 노선이 갈수록 목소리를 높였고, 미국에서는 이른바 ‘도덕적 다수’가 레코드, 비디오, 서적, 특히 만화를 포함하는 대중 문화 전반을 목표로 ‘십자군 전쟁’을 개시했다. [214p]
- 두 나라에서는 항의와 시위가 잇따랐고 필연적인 탄압과 구속이 그 뒤를 이었다. 영국의 넉커바우트 코믹스 사는 수많은 사건으로 경찰과 세관의 주목을 받았다. 1982년 이 출판사는 경찰에 마약과 관련된 책들을 압수당한 후 소송을 제기하여 런던 중앙 형사 재판소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1996년 그들은 다시 법정에 섰는데 이번에는 로버트 크럼의 만화와 관련된 외설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보이 코믹스 사도 끈질긴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여러권의 공포 만화가 외설적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만화 숍과 수입업자들도 기습의 제물이 되었다. [215p]
- 더 나아가 이 탄압은 만화가 사회적으로 여전히 다른 예술형식들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시비의 대상이 되었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소설로 출판되었다면 아무 문제 없이 용인되었을 것이다. 또한 미학적 근거로 볼 때 많은 것들이 변명할 여지가 없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창작의 노력에 대한 국가의 제재가 다른 매체였다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것은 사실이었다. 대중의 불평이 똑같은 내용으로 역사의 여러 지면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불행하게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더 나아가 만화가 예술적·문화적 성과를 쌓아가던 바로 그 시기에 탄압이 가해졌다는 사실은 궁극적으로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215p]
9장 유럽 만화 일본 만화
탱탱과 아스테릭스부터 망가와 아니메까지
- 만화는 전세계 많은 나라의 문화적 식단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어떤 면에서 만화는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보편적 언어’이고, 이로 인해 국경을 넘어 국제적으로 소통되는 일이 항상 존재해 왔다. 영국과 미국의 만화는 전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왔는데, 이 장에서 우리는 후자의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경로를 세부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기에는 범위를 축소하여 가장 중요한 두 지역인 유럽과 일본의 만화가 영어권의 만화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두 지역에서 만화가 문화적으로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 것은 영국과 미국에서처럼 만화가 한 번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물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오히려 만화는 소설, 영화, 텔레비전과 동등한 하나의 예술형식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아동만화가 시장 전체를 차지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런 면에서 유럽과 일본은 갈수록 독자의 연령층을 의식하는 영국·미국의 만화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편으로 이것은 그림 스타일, 판형, 작업방식 등과 관련된 많은 아이디어가 함부로 모방되어 왔음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어로 번역되거나 원문 그대로 유입된 유럽·일본 만화가 영국·미국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으로 확인하겠지만, 유럽·일본 만화는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자국에서만큼 높은 경우가 거의 없으며,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예를 제외하면 대개 비평가들의 칭찬과 대중의 무관심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217p]
-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중요한 만화 주인공은 벨기에 소년이었다. 1920년대에 탄생한 그가 영어권 시장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였다. 물론, 우리는 바로 ‘탱탱’을 이야기하고 있다. 탱탱은 세계적으로 디즈니의 최고 캐릭터들에 뒤지지 않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며, 그의 모험담은 유럽 만화로서는 독보적인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
1929년 조르조 레미가 창조한 탱탱은 신문에 딸린 아동용 부록으로 생을 시작했는데,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에 에르제라는 이름을 써넣었다. 주인공은 본래 보이스카웃이었고 통이 넓은 반바지를 입었으며, 아프리카, 극동, 남미, 심지어 달과 같은 이국적인 장소에서 곤경에 빠지곤 했다. 이야기는 분명 유머가 있었고, 대개 주인공의 친구이자 용맹한 뱃사람 하독 선장과 충직한 하얀 개 스노이가 함께 등장했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순수한’ 모험담이었던 이 이야기에서 종종 우익 서브텍스트가 발견되자 전쟁 기간과 직후에 에르지가 나치의 동조자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햇다.
창조적인 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작품의 수준이었다. 줄거리는 대개 창작팀이 검토했는데, 그들은 정확한 묘사를 위해 해당 지역을 답사하곤 했다. 마무리 그림작업을 위해 선택된 스타일은 정밀도가 높고 그림자를 배제한 것 때문에 ‘뚜렷한 선clear lin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선정적인 미국 방식과는 여러 면에서 정반대였다). 이 세부에 대한 관심은 개별 이야기들이 선집으로 묶였을 때(이 형식이 후에 영국·미국에서 ’그래픽 소설‘로 등장한다) 큰 효과를 발휘했다. 선집은 대개 48면 길이, 전면 컬러, 하드커버 형식으로 제작되어, 재미있는 만화책인 동시에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이 책들은 어들느에게까지 인기가 높았으며, 7세에서 70세까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선전되었다. [218p]
- 이 [탱탱] 선집은 영국에서 1958년부터 주류 서적 출판사인 메두인Methuen에 의해 판매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일반 만화책처럼 신문판매소에서 팔리는 대신 자동적으로 서점과 공공 도서관의 서가에 배포되었다. [218p]
- 탱탱은 상업적으로 기하급수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전세계적으로 저작권 계약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매체를 뛰어넘어 영화와 TV애니메이션 그리고 모든 종류의 판촉 상품으로 제작되었다. 오늘날에도 이 선집은 연간 300만 부가 팔리고 36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에르제는 1990년에 사망했지만 만화 매체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창작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그가 유럽 만화에 미친 영향은 종종 잭 커비가 미국만화에 미친 영향에 비유된다. 그의 뒤를 이은 유럽 창작자들은 ‘뚜렷한 선’ 유파의 추종 그룹이나 파생 그룹으로 분류되곤 한다. [218p]
- 유럽에서 만화 제작의 경제적 체제는 이 초기에 확립되었다. 탱탱의 엄청난 영향으로 확립된 기본틀(먼저 정기간행 잡지로 ‘먼저 발행되어’ 신문판매소에 배포된 다음, 개별 이야기들이 선집 형태로 다시 발행되는 방식)을 다른 책들도 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창작자들은 인세를 이중으로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대부분의 영국·미국 출판사들이 선호했던 ‘조립생산 고용 방식’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보다 나은 품질의 만화책이 나올 수 있는 탱탱 시스템을 선호했다. 몇몇 국가에서 이 방식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만화가 ‘보호’ 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1949년에 제정된 법으로 미국만화를 사실상 봉쇄했다. [218~219p]
- 사실 탱탱 이후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만화는 선집 시스템으로 발행된 프랑스 만화 ‘골 사람 아스테릭스Asterix the Gaul'였다. 이 만화는 화가 알베르 우데르조와 작가 르네 고시니의 작품이었다. 고시니는 미국에서 하비 쿠르츠만과 일했으며 당시 [매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만화의 내용은 작은 체구에 인상적인 콧수염을 기른 고대 프랑스인 아스테릭스, 그의 친구인 근육질 오벨릭스와 드루이드교의 사제 게타픽스 세 사람이 겪는 모험담, 특히 그들이 기원전 50년에 로마인들과 벌이는 싸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만화는 (성차별적 경향이 강했지만) 탱탱보다 훨씬 더 유머스러웠고 정치적으로 훨씬 더 자유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림 역시 보다 ’만화적‘이었지만, 아직은 뚜렷한 선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이스테릭스의 성공은 탱탱의 마케팅 공식을 따른 데서 기인했다. 만화는 먼저 잡지([필로트], 1959년부터)에 연재된 다음 선집으로 발행되었고, 그런 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각국 서점을 통해 판매되었다. [219p]
- 이 급진적인 불꽃은 1970년대 ‘성인을 위한 만화’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220p]
- 이 유행과 함께 ‘만화 문화’가 확고히 정착했다. 선집들은 창작자의 명성에 따라 팔려나갔고, ‘작갗 시스템이 성립되어 만화가는 영화감독이나 소설가와 대등하게 인정받았다. 만화비평은 영화비평에 버금가는 지적 분야로 자리잡았고, 그 결과 비평 잡지가 모든 나라에서 발행되었다(특히 프랑스에서는 ‘만화에 대한 보고서Cahiers de la bande dessinee'가 발행되어 영화 전문 저널인 ’카이에 뒤 시네마‘가 영화 발전에 기여했던 것과 똑같은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제도저인 뒷받침이 수반되었다. 대학들은 만화 강좌를 개설했고 정부는 만화 박물관과 연구 센터를 지원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8백만 파운드짜리 ’CNBDI'(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의 성공에 힘입어 탄생한 만화 전문 박물관; 옮긴이)를 건립했다. [220p]
- 영국·미국 시장에 끼친 전반적인 영향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시장을 파고든 장르는 공상과학 만화였다. 사실 유럽의 공상과학 만화는 원래부터 영어 만화의 전통과 밀접했다.[220p]
- ‘가장 우수한’ 공상과학 작가는 ‘뫼비우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에르제 이후 영미 만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인 장 지로Jean Giraud였다. 그의 선집은 다양하고 수도 많았으며, 내용 또한 마약이나 무의식과 관련된 [아르작Arzack]과 [밀폐된 창고The Airtight Garage]에서 선과 관련된 [잉칼Incal]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했다. 작품의 줄거리는 항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그림은 크럼에게서 영감을 받은 초기의 강렬한 스타일에서 보다 유연하고 뚜렷한 선으로 발전한 후기에 이르기까지 항상 놀라운 감도을 전해 주었다. 영국과 미국의 출판업자들이 그와 직접 계약하기를 갈망했던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1980년대에 마블 사를 통해 다수의 초인영우 만화책을 발행했고, [실버 서퍼]에 작품을 연재했다. [221p]
- 이탈리아 만화가 마티올리의 [생쥐 스퀴크]는 생쥐와 고양이의 소동을 유혈이 낭자한 화려한 색채로 그려, 톰과 제리 주제를 ‘공포 비디오’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집이었다. [224p]
- 이상의 책들은 단지 지난 20년 동안 영어로 번역된 수많은 유럽 만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상업적인 면에서 [탱탱]과 [아스테릭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책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역사의 창고에 쌓여 있다는 사실은 질적인 면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그래픽 소설들처럼 유럽 선집들도 적절한 마케팅이 부재했으며, ‘만화가 성장하고 있다’는 1980년대 말의 과대광고 이후에 찾아온 작은 침체기에 시달린 측면도 있었다. 같은 종류의 자국 만화들이 기반을 획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유럽에서 건너온 만화들은 더 힘들었을 것이 자명하다.
궁극적으로 유럽 만화의 영향은 생각보다 미세했다. 출판업자들에게 유럽 만화는 새로운 판형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또한 그래픽 소설이 부분적으로 유럽식의 선집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펜진의 발행자들에게 유럽의 방식은 만화비평이 반드시 창작자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으며, 만화 산업에서 주도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또한 유럽 시스템은 영미 창작자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그것은 만화를 그리는 일이 반드시 익명의 매력 없는 직업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또한 인세를 받는다는 개념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유럽만화의 성숙한 줄거리와 그림 스타일의 융통성은 영미 만화가들로 하여금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226~227p]
- 일본 만화(또는 ‘망갗)는 훨씬 늦은 속도로 보급되었다. 유럽 만화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의 산물인 동시에 거의 비슷한 만화 전통의 산물이었던 반면, 일본 만화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훨씬 더 이질적이었다. 일본 만화가 마침내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한 1980년대에도 그 영향은 특정한 (컬트적) 독자층에만 국한되었을 뿐 아니라, 팬 숍 네트워크를 통해 종종 높은 판매망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하위문화 속의 하위문화로 남아 있었다. [227p]
- 일본에서 만화 산업은 아동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1950년대에 만화는 유로 도서관에서 몇 엔을 내고 빌려 볼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만화는 전후 어린이들의 주요 독서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소년만화(‘쇼넨’)는 역사 모험담, 사무라이 이야기, 스포츠 등의 주제를 다루었고, 소녀만화(‘쇼지’)는 밀스 앤 분 스타일의 애정 이야기나 애완동물 이야기 등을 다루었다. 소년소녀 모두에게 호응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이런 종류의 유행을 최초로 일으킨 창작자는 데츠카 오사무였다. 디즈니 만화에서 영향을 받은 그의 만화는 그 후 20년 동안 대다수의 만화에 표준적인 스타일이 되었다. 그러한 작품 중 특히 [신보물섬]이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
1950년이 진행되는 동안 아동만화 중에서 공상과학이 중요한 장르로 부상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로봇 이야기를 그린 만화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분야에서도 데츠카 오사무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59년부터 1968년까지 [쇼넨 잡지]에 연재된 그의 [아톰 대사]는 피노키오 이야기를 개작한 것으로, 결코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는 21세기의 작은 로봇을 그렸다. 만화를 기초로 제작된 TV 애니메이션이 1963년 [우주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역시 데츠카 오사무의 기획으로) 방영되자 진정한 로봇 만화 열풍이 시작되었다. 수백 편의 모방작이 뒤를 이었고 종종 TV 시리즈로도 제작되었으며, 이러한 열풍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중략-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만화 산업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발전하면서 모든 분야의 독자층을 확보해 왔다. 그 역사는 다른 곳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지면을 빌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린 시절에 만화를 접했던 독자들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만화를 곗속 소비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일본 만화는 서양의 많은 나라에서 만화에 부여했던 치욕스러운 의미를 피할 수 있었다. 공상과학 만화는 계속해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이와 함께 다른 성인 장르들도 놀랄 만큼 다양하게 발전했다(끔찍한 공포만화에서 마작광 이야기, 비현실적인 코미디에서 요리 만화, 검사 이야기에서 예술감상 만화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일본에서는 만화를 보면서 차를 고치고,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정치적 선언을 검토하고, 심지어 보다 나은 성생활을 배운다. [227~228p]
- 경제적인 면에서 이러한 발전은 중대한 변화를 낳았다. 현대의 시작과 함께 일본 경제는 불황에서 탈출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만화 유통은 과거의 임대 시스템에서 구매 시스템으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갑자기 큰 돈이 모이자 만화 창작자들이 사회적 유명 인사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그들은 일본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을 이루었고 최고 인기 가수에 버금가는 팬들을 갖게 되었다. 판매는 끝없이 치솟았다. 1990년대 중반 만화는 일본의 전체 출판의 30-40%를 차지하고 연간 약 20억 부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228p]
- 일본만화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당한 번역비용 외에도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만화를 미국 시장에 팔려면 수많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특히 일본과는 반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을 수 있도록 지면을 거꾸로 정렬해야 했다. 게다가 일본식 음향효과를 영어에 맞는 의성어로 대체할 때에는 원래의 그림을 다시 손봐야 했다. [228p]
- 따라서 서양 출판사들은 국내 시장에 소개할 일본만화의 종류를 매우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 1980년대에 소개된 몇 권의 만화는 ‘문화적 수용성’을 기준으로, 그림이 자니치게 어렵지 않고 이야기가 기본적으로는 일본식이지만 너무 이질적이지 않은 것들로 선택되었다. [228p]
- 이때를 시작으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몇몇 단편작들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일본만화가 상업적으로 충분한 성고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백했다. 이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어떤 식으로든 만화영화(일본식 이름으로 ‘아니메’) 산업과 관계를 맺고 통일된 홍보활동을 시작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1980년대와 90년대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서양 관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출판업자들은 영화사와 비디오 제작사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서로 필요한 만큼 의존했고 공동의 미래를 추구했다. 만화 전문 숍들은 곧 일본만화와 비디오를 위한 진열대를 나란히 설치했다. [229p]
- 일본 애니메이션이 그렇게 막강해진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과거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은 1960년대에 TV 연속물로 맨 처음 유행했고, 그런 다음 더 큰 산업 분야로 흡수되어 완전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동관객을 위해 제작되었던 아니메는 점차 세련된 형식으로 발전하여 얼마 후부터는 아동과 10대와 성인을 위한 여러 단계의 작품으로 세분되기에 이르렀다. [229p]
- 아니메와 망가는 처음부터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유명한 아니메 제작자는 또한 망가 창작자이기도 했다(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만화가는 데츠카 오사무였다). 아니메의 제작비가 갈수록 증가함에 따라 망가에서 이야기를 빌려오는 방식이 점차 보편화되었다. [229p]
- 서양에서 텔레비전 아니메는 1960년대에 처음으로 영국과 미국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다. 데츠카 오사무의 [우주 소년] 시리즈가 특히 성공적이었다. [229p]
- 아니메 유행을 촉발한 동시에 일본만화 산업에 엄청난 상승효과를 일으킨 작품은 [아키라](1987)였다. 오토모 가츠히로(일본에서 데츠카 오사무 다음으로 유명한 아니메/망가 창작자)의 이 장엄한 공상과학 이야기는 1990년 영미 전역의 예술영화관에서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움으로써 폭넓은 대중적 관심을 끌게 되었다. -중략- 오토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키라]의 뿌리는 내가 어렸을 때 본 [데츠진28]과 같은 구식의 로봇 애니메이션에 있다. 실제로 그림을 그릴 때 나는 그 위에 내 자신의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내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흔히 작가는 자기가 쓰는 내용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나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230p]
- [아키라]는 단숨에 아니메와 망가를 ‘최신 유행’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유행이었다. 그 후로 [아키라]를 모방한 만화와 비디오가 봇물처럼 쏟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대개는 시끄럽고 거만한 스타일에 15세에서 25세의 독자를 겨냥한 공상과학물이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홈비디오 산업의 중요한 분야가 되었고 그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레이블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망가 산업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여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번역본들이 선을 보였다. [231p]
- 다작으로 유명한 시로 마시무네는 [도미니언Dominion], [애필시드Appleseed], [블랙 매직Black Magic](모두 이클립스) 등을 미국 시장에 내놓았다. 그 중 가장 성공한 작품 [껍질 속의 유령The Ghost in the Shell]은 엘리트 사이보그 집단을 역동적으로 그린 사이버펑크 이야기였다. 다카야 요시키의 유명한 작품 [가이버The Guyver]는 외계인이 만든 ‘가이버부대’와 흉측하게 생긴 ‘조아노이드들’의 대결을 장대하게 그린 폭력적인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대가인 나가이 고의 그래픽 소설 [마징가 Z](퍼스트, 1990)은 ‘거대한 로봇’의 모험담이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Nausicaa of the Valley of the Wind](비즈, 1993)는 한 나라의 공주와, 대립하는 두 파벌에 사로잡힌 그녀의 백성들, 그리고 ‘불이 악마’를 이용하여 ‘유독성 숲’을 파괴하려는 한쪽 파벌의 노력을 그린 세련된 환경학적 우화였다(그림은 1970년대 뫼비우스의 작품을 연상케 했다). [231p]
- 유머 만화도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은 코미디가 경계를 넘어 ‘여행’하기 어렵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 분야에서 중요한 창작자는 일본의 수많은 여성 만화가들 중에서도 많은 미국 팬들에게 ‘망가의 공주’라고 추앙받았던 다카하시 루미코였다. 그녀의 기발한 대표작으로는 어린 소년이 외계인 침략부대의 매우 귀여운 지도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룸: 야츠라 우르세이Lum:Yatsura Urusei](비즈, 1994)와, 비에 젖을 때마다 여자로 변하는 소년 이야기를 그린 [란마Ranma](비즈, 1993. 표지에는 ‘숨막히는 결투 장면, 여학생 패거리, 성이 뒤바뀌는 소동을 빠르고 박력있게 그린 이야기’라는 광고문이 실려 있었다)가 있다. 또 하나 언급할 가치가 있는 작품은 [곤Gon](만다린, 1990)이다. 1피트 키의 작은 공룡이 현대까지 살아남았지만, 동물의 왕국에서 잘 살아가지 못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대단히 훌륭한 그림으로 그려 낸 단편 모음집이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유머 장르에 속했지만 특이하게도 폭력적 분위기가 자주 등장했다. [232p]
- 일본만화가 유행한다는 주된 징표는 아마도 그 그림과 이야기 스타일이 서양 창작자들에게 (때로는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233p]
결론 만화, 열린 공간
새로운 수용의 시대로의 진입
- 우리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변화인지는 미결의 문제로 남아 있다. 1990년대에는 현대 문화가 식별이 불가능한 엄청나고도 결정적인 힘에 의해 단기간 동안 변형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유행이었다. 이 현상은 특히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된 분야에서 두드러졌는데, 그 요소는 바로 ‘디지털 혁명’을 둘러싼 희망과 두려움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시대적 유행이었다. [236p]
- 그러나 마냥 좋아하기 이전에 우리는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르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 먼저 디지털 혁명에 대해서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그것은 전화도 없고 비싼 컴퓨터도 없는 전세계 인구의 다수에게 혜택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실에서 출발한다면 인터넷과 만화가 같은 속성을 공유한다는 개념을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인터넷과 만화는 같지 않다. 하나는 싸고 하나는 비싸다. 하나는 이동이 가능하고 하나는 그렇지 못하다. (가능할 수도 있지만 버스에서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는 컴퓨터가 유리하다. 예를 들어 컴퓨터는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36p]
- 예술은 단지 예술계에 충격을 던질 뿐이지만, 훨씬 광범위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만화는 여전히 탄압을 받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23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