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 옮긴이 / 전대호
위대한 설계
저자 /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역자 / 전대호
발행처 /까치글방(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27-5)
초판 1쇄 발행일 / 2010. 10. 5
5 쇄 발행일 / 2010. 1. 10
1. 존재의 수수께끼
- 모형 의존적 실재론은 우리의 뇌가 우리의 감각기관들에서 온 입력을 해석한다는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 모형(model)이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할 경우, 우리는 그 모형과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개념들에 실재성 혹은 절대적 진리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똑같은 물리적 상황을 서로 다른 근본 요소들과 개념들을 써서 모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다. 만일 그런 물리 이론 혹은 모형 두 개가 똑같은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면, 한 모형이 다른 모형보다 더 실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마음대로 더 편리한 모형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다. [12p]
- M 이론(M-theory)이다. M이론은 궁극의 이론이 갖춰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속성들을 모두 갖춘 유일한 모형이며 우리가 지금부터 전개하는 논의의 상당 부분이 의지하는 이론이다.
M 이론은 통상적인 의미의 이론이 아니다. M이론은 다양한 이론들의 집합 전체를 일컫는 이름인데, 그 이론들 각각은 물리 세계의 특정 범위에 한해서만 관찰들을 타당하게 서술한다. 이는 지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구의 표면 전체를 단일한 지도로 보여줄 수는 없다. 세계 지도에 흔히 쓰이는 메르카토르 투영법(Mercator projection)은 북극과 남극 근처로 갈수록 면적들을 점점 더 크게 표현하며 북극과 남극은 표현하지 못한다. 지구 전체를 충실하게 표현하려면, 각각 한정된 영역을 표현하는 지도 여러 장을 사용해야 한다. 그 지도들은 서로 조금씩 겹치지만, 그 겹치는 부분들을 동일하게 표현한다. M 이론도 이와 비슷한다. M이론이라고불리는 다양한 이론들은 서로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모두 동일한 바탕 이론의 측면들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이론들은 그 바탕이론의 버전들이며 한정된 범위에만, 예컨대 에너지와 같은 특정한 양들이 작을 때에만 적용될 수 있다. 메르카토르 투영법에서 서로 겹치는 지도들과 마찬가지로, M이론의 다양한 버전들은 서로 겹치는 부분에서 동일한 현상을 예측한다. 그러나 지구의 표면 전체를 충실히 재현하는 평면 지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리세계 전체에서 얻은 관찰들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단일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13~14p]
2. 법칙의 지배
- 자연의 작동 방식에 대한 무지는 고대인들로 하여금 인간의 삶의 모든 면을 제멋대로 지배하는 신들을 발명하도록 이끌었다. 사랑의 신과 전쟁의 신이 있었고, 해의 신, 땅의 신, 하늘의 신이 있었으며, 바다의 신과 강의 신, 비의 신과 폭풍우의 신, 지진의 신과 화산의 신이 있었다. 신들이 기분이 좋으면, 인류는 좋은 날씨, 평화, 자연 재해와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누렸다. 신들이 기분이 나쁘면, 가뭄, 전쟁, 전염병, 유행병이 생겼다. 고대인들은 자연 속에서의 인과관계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신들은 불가사의한 존재였고 사람들은 신들의 처분에 맡겨진 듯했다. 그러나 약 2600년 전에 밀레토스의 탈레스(기원전 624?-546?)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연이 한결같은 원리들을 따르며 그 원리들을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들이 지배한다는 생각이 물러가고, 우주가 자연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되며 우리가 언젠가 해독하게될 설계도에 따라서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전면에 나서는 긴 과정이 시작되었다. [21~22p]
- 정확한 측정과 수학적 계산은 고대에는 어차피 어려운 일이었다. 계산을 할 때 매우 편리한 십진법은 고작 기원후 700년경에 인도 사람들이 산술을 강력한 도구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할 때에야 만들어졌다. 덧셈과 뺄셈을 나타내는 기호는 15세기에야 등장했다. 등호(등호)와 초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시계는 16세기에야 출현했다. [30p]
- 데카르트는, 모든 물리 현상은 운동하는 질량들의 충돌을 통해서 설명해야 하며, 세 법칙이 그 운동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 세가지 법칙은 유명한 뉴턴의 운동법칙들의 선구적인 존재였다. 그는 그 자연법칙들이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유효하다고 단언했으며, 운동하는 물체들이 그 법칙들에 복종한다고 해서 그 물체들이 정신을 지녔다고 할 수는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했다. 데카르트는 또한 오늘날 우리가 “초기 조건”이라고 부르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했다. 초기 조건은 임의의 시간 간격의 출발점에서 시스템(계)의 상태를 기술한다. 자연법칙들은 시간이 흐르면 시스템이 어떻게 진화할지를 주어진 초기 조건 아래에서 결정한다. 따라서 초기 조건이 정해져 있지 않을 경우, 시스템의 진화는 특정될 수 없다. 예컨대 시간 0에서 비둘기가 당신의 머리 위에서 배설을 한다면, 배설물의 낙하 궤도는 뉴턴의 법칙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시간 0에서 비둘기가 전깃줄에 가만히 앉아 있었느냐 아니면 시속 30킬로미터로 날아가고 있었느냐에 따라서 최종 결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물리학의 법칙들을 적용하려면, 시스템의 초기 상태를 알아야 한다. 또는 적어도 어떤 정해진 시간에 시스템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물론 법칙들을 이용해서 시스템의 과거를 추적할 수도 있다. [33p]
- 만일 법칙들이 자연을 지배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1. 법칙들의 기원은 무엇일까?
2. 법칙의 예외, 이를테면 기적은 존재할까?
3. 가능한 법칙들의 집한은 오직 하나뿐일까?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이 중요한 질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왔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케플러, 갈릴레요, 데카르트, 뉴턴의 대답-은 법칙들이 신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답은 신을 자연법칙들의 화신으로 정의하는 것과 다름없다. 신에게 구약성서의 신이라는 따위의 다른 속성들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신을 위의 첫 질문의 대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를 다른 수수께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요컨대 만일 우리가 그 질문의 대답에서 신을 언급한다면, 진짜 문제는 두 번째 질문이 된다. 기적, 곧 법칙의 예외가 존재할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전통적으로 선명하게 양분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저자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칙은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성서의 관점을 채택할 경우, 신은 법칙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예외를 허락해달라는 기도를 들어주는 존재이다. 신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치유하고, 가뭄을 서둘러 끝내고, 크로케 경기를 올림픽 종목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 데카르트의 견해와 정반대로, 거의 모든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이 법칙들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고 기적을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뉴턴도 그런 기적을 믿었다. 그는 신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행성들의 궤도가 불안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행성들은 서로를 중력으로 끌어당겨 서로의 궤도를 교란시키는데, 그 교란이 점차 누적되면, 결국 행성들이 태양과 충돌하거나 태양계 바깥으로 내던져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신은 행성들의 궤도를 계속 재조정해야 한다고, “천상의 시계가 작동을 멈추지 않도록 태엽을 감아야” 한다고 뉴턴은 믿었다. 그러나 라플라스(1749-1827)(정식 이름은 드플라스 후작, 피에르-시몽)는 그 건드림(교란)이 누적되지 않고 주기적일 것이라고, 즉 일정한 주기로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양계는 그처럼 스스로 자신을 재조정할 것이었다. 따라서 태양계가 현재까지 유지된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의 개입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라플라스의 입장이었다.
라플라스는 일반적으로 과학적 결정론을 분명하게 주장한 최초의 인물로 간주된다. 과학적 결정론이란, 어느 한 시점에서 우주의 상태가 주어지면, 완전한 법칙들의 집합에 의해서 우주의 미래와 과거가 철저히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기적이나 신의 능동적 역할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라플라스가 제시한 과학적 결정론은 위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근대 과학자들의 대답이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모든 근대 과학의 토대이며, 이 책 전체에서 중요한 원리가 된다.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할 때에만 성립하는 자연법칙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라플라스의 과학적 결정론을 인정하고 그에게 신과 그의 세계관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고 물었다. 라플라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그 가설은 저에게 불필요 했습니다.”
인간은 우주 안에서 살면서 다른 물체들과 상호작용하므로, 과학적 결정론은 인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과학적 결정론이 물리 과정들을 지배함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행동만큼은 예외로 삼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39p]
-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진화의 역사에서 언제 자유의지가 발생했을까? 남조류나 박테리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아니면 그것들의 행동은 자동적이고 과학법칙의 유효 범위 안에 있을까? 다세포생물만, 또는 포유류만 자유의지가 있을까? 침팬지가 바나나를 먹을 때, 또는 고양이가 소파를 물어뜯을 때, 우리는 그 동물들이 자유의지를 행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겨우 959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단순한 선형동물인 예쁜꼬마선충이 먹이를 먹는 것도 자유의지의 행사일까? 아마 그 녀석은 “저건 내가 저 뒤에서 잡아먹은 엄청 맛있는 박테리아야”하고 생각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도 먹이에 대한 취향이 확실하므로 최근 경험이 어떠했느냐에 따라서 구미가 당기지 않는 먹이를 참고 먹든지 아니면 더 나은 먹이를 찾으러 갈 것이다. 이것은 자유의지의 행사일까?
물론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생물학의 분자적 토대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생물학적 과저들이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되며 따라서 행성의 궤도와 마찬가지로 결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신경과학의 최근 실험들은, 알려진 과학법칙들을 따르는 우리의 물리적인 뇌( physical brain)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지, 그 법칙들과 별개로 존재하는 어떤 행위자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예를 들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뇌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연구한 결과, 뇌의 특정 구역들을 전기로 자극하면 환자가 손이나 팔이나 발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 또는 입술을 움직이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의 행동이 물리법칙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어떻게 자유의지가 작동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생물학적 기계일 따름이고 자유의지는 착각에 불과한 것인 것 같다.
인간의 행동이 정말로 자연법칙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행동은 워낙 많은 변수들에 의해서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결정되므로 실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그 예측을 위해서는 인간의 몸을 이루는 무수한 분자들 각각의 초기 상태를 알고 이를테면 그만큼 많은 방정식들을 풀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중략-
바탕에 있는 물리법칙들을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른바 유효이론(effective theory)을 채택한다. 물리학에서 유효이론이란 관찰된 특정 현상을, 그 바탕에 있는 모든 과정들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으면서 모형화하기 위해서 창조한 이론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한 사람의 몸을 이루는 원자 각각과 지구를 이루는 원자 각각의 중력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방정식들을 정확하게 풀 수 없다. 그러나 한 사람과 지구 사이의 중력은 그 사람의 몸무게를 비롯한 몇 가지 수들만 알면 어떤 실용적인 목적에도 부족함이 없이 기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복잡한 원자들과 분자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방정식들을 풀 수는 없지만, 화학이라는 유효이론을 개발했다. 그 유효이론은 세세한 상호작용들을 빠짐없이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원자들과 분자들이 화학반응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적절하게 설명한다. 인간과 관련해서 우리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유효이론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방정식들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와 그것에서 유발된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은 심리학이다. 경제학 역시 자유의지의 개념을 기초로한, 그리고 사람들은 행동의 선택지들을 평가하고 최선의 것을 선택한다는 전제를 기초로 한 유효이론이다. 이 유효이론은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에 제한적으로만 성공적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알듯이, 인간의 결정은 흔히 비합리적이거나 선택의 결과에 대한 불완적한 분석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는 까닭이다. [40~43p]
3. 실재란 무엇인가?
- 공상과학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에는 또 다른 유형의 대안적(代案的)실재가 등장한다. 그 영화에서 인류는 시뮬레이션된 가상실재(가상현실) 속에서 살지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가상실재는 지능이 높은 컴퓨터들이 인류를 불만이 없는 상태로 평온하게 관리하면서 인류의 생체 전기 에너지(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를 빨아들이기 위해서 창조한 것이다. 이것은 괜한 억지 설정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진짜 실재 속에서보다 “세컨드 라이(Second Life)"를 비롯한 웹사이트들의 시뮬레이션된 실제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더 좋아하니까 말이다. 혹시 우리는 어떤 컴퓨터가 창조한 연속극의 등장인물들에 불과한 것이 아닐지, 어떻게 알겠는가? [53p]
- 이 예들은 우리를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다음의 결론으로 이끈다. 그림이나 이론에 의존하지 않는 실재의 개념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형 의존적 실재론”이라는 입장을 채택할 것이다. 이 입장에 서면, 물리학적 이론 혹은 세계상은 (대개 수학의 성격을 띤) 모형과 그 모형의 요소들을 관찰 자료와 연결하는 규칙들이다. 이 입장은 현대 과학의 해석에서 기본 골격의 구실을 한다.
플라톤 이래로 철학자들은 실재의 본성을 논해왔다. 고전과학은 진짜 외부 세계가 있고 그 세계의 속성들은 관찰자에게 대해서 독립적으로 확정되어 있다는 믿음을 기초로 한다. 고전과학에 따르면, 대상들은 존재하고 속도와 질량 등의 물리적 속성들을 지니고 있으며, 그 속성들은 잘 정의된 값을 지니고 있다. 이 관점을 채택하면, 우리의 이론들은 그 대상들과 그 속성들을 기술하려는 노력이며, 우리의 측정과 지각은 그 속성들에 부합된다.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둘 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이며 둘 사이의 구분은 대수롭지 않다. 바꿔 말해서, 만일 당신이 주차장에서 자리다툼을 하는 얼룩말 떼를 본다면 그것은 진짜로 주차장에서 자리다툼을 하는 얼룩말 떼가 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보는 다른 모든 관찰자들은 똑같은 속성들을 측정할 것이며, 누가 보든 말든, 그 얼룩말 떼는 그 속성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철학에서는 이런 믿음을 일컬어 실재론(realism)이라고 한다. [54~55p]
- 모형 의존적 실재론(model-dependent realism)은 실재론과 반실재론이 벌여온 이 모든 논쟁과 토론을 우회한다. 모형 의존적 실재론에 따르면, 모형이 실재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고, 오직 모형이 관찰에 부합하느냐는 질문만 유의미하다. 금붕어가 본 풍경과 우리가 본 풍경에 관한 이야기에서처럼, 관찰에 부합하는 두 모형이 있다면, 한 모형이 다른 모형보다 더 실재에 가깝다는 말은 할 수 없다. 해당 상황에서 더 편리하다면, 어떤 모형을 써도 무방하다. 예컨대 관찰자가 어항 안에 있다면, 금붕어의 실재상이 유용하겠지만, 먼 은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지구에 있는 어항 속을 기준으로 삼아 기술하는 것은, 특히 어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서 움직일 것이므로, 어항 바깥의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불편한 방식일 것이다. [57~58p]
- 우리는 과학을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형을 만든다. 모형 의존적 실재론은 과학적 모형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창조하는 의식적, 무의식적 정신적 모형들에도 적용된다. 우리의 감각과 생각과 추론을 통해서 창조된 우리의 세계 지각에서 관찰자―우리―를 떼어낼 길은 없다. 우리의 지각은―따라서 우리의 이론이 토대로 삼는 관찰도―직접적이지 않고 오히려 일종의 렌즈에 의해서, 인간 뇌의 해석 구조에 의해서 형성된다. [58p]
- 모형 의존적 실재론은 우리가 대상들을 지각하는 방식에 대응한다. 눈을 통한 지각에서, 우리의 뇌는 시신경을 통해서 일련의 신호를 받는다. 그 신호들은 텔레비전 화면처럼 선명한 상을 만들지 않는다. 시신경이 망막과 연결되는 위치에 맹점이 있을 뿐 아니라, 시야 전체에서 해상도가 좋은 부분은 오직 망막의 중아에서 대략 시각(視覺) 1도 이내의 좁은 구역뿐이다. 그 구역의 폭은 당신이 팔을 앞으로 뻗고 엄지손가락을 세웠을 때 그 엄지손가락의 폭과 같다. 그러므로 뇌에 들어온 미가공 데이터는 상태가 아주 나쁘고 구멍까지 뚫어져 있는 그림이다. 다행히 인간의 뇌는 그 데이터를 처리한다. 양쪽 눈에서 온 입력을 조합하고, 가까운 지점들의 시각적(視覺的) 속성은 유사하다는 전제 하에서 구멍들을 메우게 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의 뇌는 망막에서 온 2차원 데이터 배열을 읽어서 3차원 공간의 인상을 창조한다. 요컨대 뇌는 정신적인 그림 혹은 모형을 구성하는 것이다.
뇌의 모형 만들기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사람들에게 사물이 거꾸로 보이도록 만드는 안경을 씌워 놓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뇌는 모형을 바꾸어서 그들이 다시 사물을 똑바로 보게 만든다. 이때 그들의 안경을 벗기면, 그들은 한동안 거꾸로 된 세상을 보다가 다시 현실에 적응하여 똑바로 된 세상을 본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의자를 본다”라고 누가 말할 때, 그 말의 참뜻은, 그가 의자에서 산란된 빛을 이용해서 의자의 상 혹은 모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설령 그 모형이 거꾸로 되어 있더라도, 운이 좋을 경우, 그의 뇌는 그가 의자에 앉으려고 하기 전에 모형을 수정할 것이다. [58~59p]
- 우리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애쓰면서 수많은 이론, 혹은 모형들을 구성해왔다. 예컨대 4원소 이론, 프톨레마이오스 모형, 플로지스톤(phlogiston) 이론, 빅뱅 이론 등을 말이다. 새로운 이론 혹은 모형이 채택될 때마다, 실재가 무엇이고 우주의 근본 요소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바뀌었다. 예를 들면 빛에 관한 이론을 생각해보자. 뉴턴은 빛이 “미립자들(corpuscles)" 즉,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뉴턴의 모형은 빛이 직선으로 나아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또 빛이 한 매질에서 다른 매질로―예컨대 공기에서 유리로, 또는 공기에서 물로―들어갈 때 굴절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립자 이론(corpuscle theory)은 뉴턴 자신이 관찰했으며 오늘날 뉴턴의 원 무늬(Newton's rings)라고 불리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쓸모가 없었다. 평평한 반사판 위에 볼록렌즈를 놓고 나트륨 조명과 같은 단색의 빛을 쪼이면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렌즈가 반사판에 닿은 지점을 중심으로 밝은 원과 어두운 원이 교대로 반복되는 동심원 무늬가 나타나는데, 이를 뉴턴의 원 무늬라고 한다. 빛의 입자 이론(particle theory)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빛의 파동 이론(wave theory)은 이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빛의 파동 이론에 따르면, 뉴턴의 원 무늬는 간섭(干涉,interference)이라는 현상 때문에 발생한다. 물결과 같은 파동은 마루들과 골들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두 파동이 충돌할 때, 만일 한 파동의 마루들과 다른 파동의 마루들이 겹친다면, 두 파동은 서로를 보강하여 더 큰 파동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일컬어 보강간섭(補强干涉, constructive interference)이라고 하며, 이 경우에 두 파동은 “동위상(同位想, in phase)"이라고 한다. 정반대로 두 파동이 만날 때, 한 파동의 마루들이 다른 파동의 골들과 겹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두 파동은 ”역위상(易位相, out of phase)"이라고 하며 서로를 소멸시킨다. 이것을 일컬어 상쇄간섭(相殺干涉, destructive interference)이라고 한다. - 중략-
19세기에 이 현상은 빛의 파동 이론을 입증하고 입자 이론이 틀렸음을 보여준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光電効果, 오늘날 텔레비전과 디지털 카메라에서 이용됨)를 빛의 입자 혹은 양자가 원자 하나를 때려 전자를 떼어내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빛은 파동의 행동도 하고 입자의 행동도 한다. [68~72p]
4. 대안 역사들
-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우리의 계산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물리적 과정들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연은, 어떤 시스템의 초기 상태가 주어졌을 때, 그 시스템의 미래 상태를 근본적으로 불확정적인 과정을 통해서 결정한다. 바꿔 말하면, 자연은, 심지어 가장 단순한 상황들에서도, 과정이나 실험의 결과를 명령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은 제각각 실현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다양한 경우들을 허용한다. 아인슈타인의 말과 정 반대로, 신은 모든 물리적 과정 각각의 결과를 결정하기 전에 주사위를 던지는 것 같다. 이 생각은 아이슈타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양자물리학의 창시자들 중 하나였음에도 나중에 양자물리학의 비판자가 되었다.
양자물리학은 자연이 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생각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양자물리학은 새로운 형태의 결정론을 향해서 우리를 이끈다. 그 결정론에 따르면, 어떤 시스템의 특정 시점에서의 상태가 주어지면, 자연법칙들은 그 시스템의 미래와 과거를 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미래들과 과거들의 확률을 결정한다. [90~91p]
- 양자적인 실재에 대한 파인만의 생각은 우리가 곧 소개할 이론들을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므로,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입자 하나가 위치 A에서 출발하여 아무 힘도 받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간단한 과정을 상상해보자. 뉴턴의 모형에서 그 입자는 직선 경로로 움직일 것이며, 우리는 특정한 미래 시점에 그 직선상의 정확한 위치 B에서 그 입자를 발견할 것이다. 파인만의 모형에서 양자적인 입자는 A와 B를 잇는 모든 경로를 시험하면서 각 경로에 대응하는 “위상(位相, phase)"이라는 수를 수집한다. 그 위상은 파동의 주기 안에서의 위치, 즉 파동이 마루에 있는지 또는 골에 있는지 또는 그 상의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 위상을 계산하는 파인만의 수학적 방법은, 모든 경로들에 대응하는 파동들을 전부 합하면 입자가 A에서 출발하여 B에 도달할 ”확률 진폭(確率振幅, probability amplitude)"이 산출됨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그 확률 진폭을 제곱하면 입자가 B에 도달할 확률이 나온다. -중략-
파인만의 이론은 어떻게 고전물리학과 전혀 다른 것 같은 양자물리학에서 뉴턴의 세계상이 발생하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파인만의 이론에 따르면, 각 경로에 대응하는 위상은 플랑크 상수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플랑크 상수는 매우 작기 때문에, 서로 가까운 경로들의 기여를 더할 때는, 파인만의 이론의 특성상 위상들이 대개 매우 다양해지고 따라서 위의 그림에서처럼 합산의 결과가 0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또한 그 이론에 따르면, 특정한 경로들에 대응하는 위상들은 정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경로들은 선호된다. 다시 말해 그런 경로들은 관찰된 입자의 행동에 대해서 다른 경로들보다 더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큰 물체들의 경우에는 뉴턴의 이론이 예측하는 경로와 매우 유사한 경로들이 서로 유사한 위상들을 지니기 때문에, 그 경로들의 합에 대해서 다른 경로들보다 월등하게 더 큰 기여를 한다. 따라서 0보다 미미하지 않을 만큼 큰 확률을 가진 유일한 도착점은 뉴턴의 이론이 예측하는 도착점밖에 없게 되며, 그 도착점은 1과 거의 같은 확률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큰 물체들은 뉴턴의 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운동한다. [96~100p]
- 관찰이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우리의 생각은 “과거”라는 개념과 관련해서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뉴턴의 이론에서 과거는 확정된 사건들의 연쇄로서 존재한다. 당신이 작년에 이탈리아에서 산 꽃병이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 있고 당신의 어린 아들이 그 곁에 서서 겁먹은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면, 당신은 그 불상사로 귀결된 사건들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의 손가락이 꽃병을 건드렸고, 꽃병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면서 산산이 부서졌다고 말이다. 더 나아가서 현재에 관한 데이터가 완벽하게 주어지면, 뉴턴의 법칙들은 과거를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도록 해준다. 뉴턴의 법칙들이 가진 이와 같은 특징은 좋든 싫든 세계의 과거는 확정되어 있다는 우리의 직관적인 이해와 잘 어울린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라도 과거는 존재한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마치 누군가가 과거를 연속해서 촬영해놓기라도 한 듯이 확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적인 버키볼은 발사지점에서 영사막까지 확정된 경로를 거쳤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관찰을 통해서 버키볼의 위치를 확정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관찰과 관찰 사이에서 버키볼은 모든 경로들을 거친다.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현재에 대한 우리의 관찰이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관찰되지 않은) 과거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불확정적이며 다만 가능성들의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우주는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단일한 과거 혹은 역사를 가지지 않는다.
시스템의 과거가 확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당신의 현재 관찰이 시스템의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103~104p]
5. 만물의 이론
- 1905년에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per)"를 발표했을 때 아인슈타인의 나이는 26세였다. 그 논문에서 그는 물리학의 법칙들, 특히 광속이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모든 관찰자들에 대해서 동일해야 한다는 간단한 전제를 채택했다. 곧 밝혀졌지만, 이 전제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왜 그런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제트 비행기 내부의 동일한 장소에서 시간 간격을 두고 두 사건이 일어난다고 상상해보자. 비행기 안의 관찰자가 보기에 그 두 사건의 사이의 거리는 0일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 있는 관찰자가 보기에 그 사건들의 사이의 거리는 0이 아니라 두 사건들이 일어난 시점들 사이의 시간 간격 동안에 비행기가 이동한 거리와 같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두 관찰자는 두 사건들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이것은 이상야릇한 상황이다. 두 관찰자가 동일한 물리적 과정을 보면서도 시간을 다르게 측정하니까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상황을 억지로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는 시간 간격에 대한 측정 결과는 이동 거리에 대한 측정 결과와 마찬가지로 측정을 하는 관찰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놀랍지만 논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 효과는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에 담긴 이른바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들 중의 하나이다. [121~123p]
-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물리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광속이 모든 기준 틀에서 동일하다고 전제할 경우,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은 시간을 공간의 세 차원과 별개로 취급할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은 얽혀 있다. 그렇다면 평범한 세 차원인 좌/우, 앞/뒤, 위/아래에 네 번째 차원으로 과거/미래를 추가해서 한꺼번에 다루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그렇게 결합된 시간과 공간을 “시공(時空, space-time)"이라고 부른다. 시공의 네 번째 차원인 시간은 공간의 세 차원과 별개가 아니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좌/우, 앞/뒤, 위/아래가 관찰자의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방향도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다양한 속도로 운동하는 관찰자들은 시공에서 시간의 방향을 다르게 선택할 것이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절대시간과 절대 정지(고정된 에테르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의 정지)의 개념을 제거한 새로운 모형이었다. [125~126p]
- 뉴턴의 운동법칙들에 따르면, 포탄, 크루아상, 행성 등의 물체는 예컨대 중력과 같은 힘을 받지 않으면 직선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아이슈타인의 이론에서 중력은 다른 힘들과 유사한 힘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물체는 측지선(測地線, geodesic)을 따라서 이동한다. 휘어진 공간에서 측지선은 평평한 공간에서의 직선과 마찬가지로 두 점 사이의 최단경로이다. 따지고 보면, 직선은 평평한 공간에서의 측지선이며, 대원은 지구 표면에서의 측지선이다. 물질이 없을 때, 4차원 시공에서 측지선은 3차원 공간에서의 직선과 같다. 그러나 물질이 있어서 시공이 휘면, 그 시공에 대응하는 3차원 공간에서 물체들의 경로도 휜다. 기존의 뉴턴 이론은 그 휨을 중력의 끌어당김으로써 설명했다. 시공이 평평하지 않을 때, 물체들의 경로는 휘어져서 물체들이 어떤 힘을 받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이 없을 경우 특수상대성이론과 일치하며 우리 태양계처럼 중력이 약한 환경에서는 뉴턴의 중력이론과 거의 똑같은 예측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완전히 똑같은 예측들은 아니다. 실제로, 만일 GPS 위성 항법 시스템의 경우에 일반상대성이론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매일 10킬로미터 정도의 오차가 누적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론이 개업한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장치에 적용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소한 일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진정한 중요성은 그 이론이 우주를 표현하는 전혀 다른 모형이며 중력파와 블랙홀을 비롯한 새로운 현상들을 예측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일반상대성이론은 물리학을 기하학으로 바꿔놓았다. 극도로 정밀한 현대의 테크놀로지 덕분에 우리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할 수 있는데, 그 이론은 지금까지 모든 검증을 통과했다. [128~129p]
- 초대칭 개념은 초중력이론이 만들어지는 데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지만, 그보다 몇 년 전에 이른바 끈이론(string theory)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개발되었다. 끈이론에 따르면 입자는 점이 아니라 진동의 패턴이다. 그런데 그 패턴은 마치 무한히 가는끈처럼 길이만 있고 굵기는 없다. 끈이론들 역시 무한들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옳은 끈이론에서는 모든 무한들이 제거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끈이론들은 또 다른 이상한 특징도 가지고 있다. 그 이론들은 시공이 4차원이 아니라 10차원일 때에만 일관적이다. 10차원 시공은 과학자들을 흥분시킬지는 몰라도, 만일 그런 시공에서 당신이 자동차를 주차한 장소를 잊어버린다면 고생을 제대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시공에 10개의 차원들이 있다면, 우리가 4개의 차원들 외에 나머지 차원들을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끈이론에 따르면, 그 나머지 차원들은 아주 작은 공간 속에 돌돌 담겨 있다.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서 2차원 평면을 상상해보자. 우리가 그 평면을 2차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평면에 있는 임의의 점을 지정하려면 두 개의 수(예컨대 수평좌표와 수직좌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2차원 공간으로는 빨대의 표면이 있다. 그 공간에 있는 특정한 점을 지정하려면, 빨대를 수직으로 세웠을 때 그 점이 어느 높이에 있는지, 그리고 그 높이에서 빨대를 수평으로 자르면 생기는 원에서 그 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빨대가 아주 가늘다면, 높이 방향으로의 좌표만으로도 점의 위치를 거의 정확히 알 수 있으므로 원형으로 감긴 또다른 차원은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빨대의 지름이 100만 곱하기 100만의 다섯 제곱 분의 1인치라면, 당신은 그 원형 차원을 전혀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끈이론가들은 시공의 네 차원들 이외의 나머지 차원들이 감지되지 않는 이유를 이와 유사하게 설명한다. 즉, 그 나머지 차원들은 아주 작게 감겨 있어서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끈이론에서 그 나머지 차원들은 이른바 내면 공간(internal space) 속에 감겨 있다. [145~146p]
6. 우리의 우주를 선택하기
- 빅뱅이 있었다는 생각을 모든 사람이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빅뱅(big bang)"이라는 단어는 1949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천체물리학자 프레도 호일이 정적인 우주를 믿으면서 빅뱅 이론을 조롱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빅뱅 이론을 뒷받침 하는 최초의 직접 증거는 1965년에야 나왔다. 그 해에 발견된,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희미한 마이크로파 배경복사가 그 증거였다. 이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CMBR)는 전자 레인지에서 작동하는 마이크로파와 똑같지만 훨씬 더 약하다. CMBR을 우리는 직접 관찰할 수도 있다. 텔레비전을 켠 뒤에 사용되지 않는 채널을 틀면 된다. 그러면 어지러운 점들이 보일텐데, 그것들의 몇 퍼센트는 우주배경복사로 인한 것이다. 우주배경복사는 마이크로파 안테나에 항상 끼어드는 잡음을 제거하려고 애쓰던 벨 연구소의 과학자 두 명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그 잡음이 안테나에 둥지를 튼 비둘기들의 배설물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 잡음의 기원은 더 흥미로웠다.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는 빅뱅 직후의 아주 뜨겁고 조밀했던 우주가 남긴 복사이다. 그 시절의 복사가 우주 팽창 과정에서 식어 오늘날 우리가 관찰하는 희미한 마이크로파가 된 것이다. 현재의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가 당신의 음식을 데운다면, 절대영도보다 겨우 3도 높은 온도―섭씨 영하 270도―까지 데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팝콘을 튀기는 데는 당연히 쓸모가 없다.
천문학자들은 뜨겁고 작은 초기 우주를 이야기하는 빅뱅 모형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들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최초의 1분여 동안에 우주는 전형적인 별의 내부보다 더 뜨거웠을 것이다. 그 기간에는 우주 전체가 핵융합로의 구실을 했을 것이다. 그때의 핵융합 반응들은 우주가 충분히 팽창하고 식었을 때 중단되었지만, 그 반응들의 결과로 물질 성분이 주로 수소로 그리고 23퍼센트 정도의 헬륨과 미량의 리튬으로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그 이론은 예측한다(이들보다 더 무거운 모든 원소들은 더 나중에 별들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 이 예측은 우리가 관찰하는 헬륨, 수소, 리튬의 양과 만족스럽게 일치한다. [161~162p]
- 통상적인 우주론은 우주가 단일하고 확정적인 역사를 지녔다고 전제한다. 우리는 그 역사가 과거에서 미래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물리법칙들을 써서 계산할 수 있다. 이런 연구 방법을 일컬어 “순행적(順行的, bottom-up)" 접근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파인만 역사 합에 의해서 표현된, 우주의 양자적 본성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주가 현재 특정 상태를 종착점으로 가진 모든 역사들의 기여를 합함으로써 얻어진다. 바꿔 말해서, 우리는 우주의 역사를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추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순행적인 추적은 잘 정의된 출발점과 진화 과정을 가친 단일한 역사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역사들을 역행적으로(逆行的, top-down), 즉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서 추적해야 한다. 일부 역사들은 다른 역사들보다 확률이 더 높을 것이며, 대개는 우주의 창조에서 출발하여 현재 상태에서 끝나는 어떤 단일한 역사가 역사들의 합에 지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주의 다양한 가능 상태들에 대응하는 다양한 역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론과 인과관계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파인만 합에 기여하는 역사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무엇이 측정되느냐에 의존해서 존재한다. 역사가 우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역사를 창조한다. [176~177p]
- 우리는 과학사의 전환점에 도달한 듯하다. 물리이론의 목표와 조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된 성싶다는 말이다. 가시적인 자연법칙들에 등장하는 근본적인 수들의, 그리고 심지어 자연법칙들의 형태는 물리학의 원리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 것 같다. 자연법칙에 등장하는 매개변수들은 다양한 값들을 가질 수 도 있고, 자연법칙들은 수학적인 일관성만 유지된다면, 어떤 형태라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양한 우주들에서 다양한 값들과 형태들을 자유롭게 취한다.[181p]
7. 가시적인 기적
8. 위대한 설계
- 지상의 사물들의 행동은 매우 복잡하고 아주 많은 영향들에 종속되기 때문에, 초기의 문명들은 그 현상들을 지배하는 패턴이나 법칙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점차 천문학 이외의 분야들에서도 새로운 법칙들이 발견되었고, 마침내 과학적 결정론이 등장했다. 특정 시점에서 우주의 상태가 주어지면, 완벽한 법칙들의 집합에 의해서 그 시점 이후에 우주가 어떻게 진화할지가 결정된다는 생각이 등장한 것이다. 그 법칙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타당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법칙들이 아닐 것이었다. 예외나 기적은 있을 수 없었다. 신들이나 악령들은 우주의 운행에 개입할 수 없었다.
과학적 결정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뉴턴의 운동법칙과 중력법칙은 우리가 알고 있던 유일한 법칙들이었다. 우리가 이미 서술했듯이, 그 법칙들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서 확장되었고, 우주의 다른 측면들을 지배하는 법칙들도 발견되었다. 자연법칙들은 우주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알려주지만, 우리가 이 책의 첫머리에서 제시한 왜냐는 질문들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215~216p]
- 이 생명 게임 우주가 흥미로운 까닭은 바탕의 “물리학”은 비록 단순하지만, “화학”은 복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다양한 규모에서 복합 대상들이 존재한다. 가장 작은 규모에서, 근본적인 물리학은 살아 있는 정사각형들과 죽어 있는 정사각형들, 그렇게 두 가지만 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더 큰 규모에서 글라이더, 깜박이, 고요한 생명이 있다. 그보다 더 큰 규모에서 글라이더 포(glider gun)를 비롯한 더욱 더 복잡한 대상들이 있다. [219~220p]
- 살아 있는 존재는 크기야 유한하며 안정적이고 자신을 재생산하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정의될 수 있다. 우리가 위에서 기술한 대상들은 재생산 조건을 만족시키지만 안정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교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대상들의 미묘한 메커니즘은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약간 더 복잡한 법칙들은 생명의 속성들을 모두 갖춘 복잡한 시스템을 허용할 것이다. 그런 시스템이 콘웨이의 생명 게임과 유사한 세계에서 하나의대상으로서 존재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런 대상은 환경적인 자극에 반응할 것이며 따라서 결정을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 대상은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있을까? 곧 자기의식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견해는 첨예하게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유일무이하게 인간만이 자기의식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자기의식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여러 행위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능력을 준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 어떤 것이 자유의지를 지녔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외계인과 마주친다면, 우리는 그 외계인이 단지 로봇인지 아니면 그 나름의 정신을 지녔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로봇의 행동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의 행동과 달리 철저히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적으로 우리는 예측 가능한 행동을 존재가 로봇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2장에서 말했듯이, 문제의 존재가 크고 복잡할 경우, 그런 식의 판단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울 수 있다. 우리는 3개 이상의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방정식들조차 정확하게 풀지 못한다. 인간 크기의 외계인은 설령 로봇이라고 하더라도 대략 1,000조 곱하기 1조 개의 입자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므로, 관련 방정식들을 풀어서 그 외계인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임의의 복잡한 존재가 자유의지를 지녔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자유의지가 그 존재의 근본 특징이라는 뜻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그 존재의 행동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계산들을 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224~22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