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하인리히 뵐플린 | 옮긴이 / 박지형
미술사의 기초 개념(Kunstgeschichtlichee Grundbegriffe)
근세미술에 있어서의 양식반전의 문제
1994년 6월 30일 초판 1쇄 발행
2006년 2월 28일 초판 9쇄 발행
지은이 /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옮긴이 / 박지형
발행처 / (주)시공사·시공아트(서울 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619-4)
- 미술사가들은 항상 예술가들의 조소대상이 되곤 했다. 그들은 부차적인 문제를 아주 중요한 것인 양 여기며 미술을 그 무엇의 표현으로만 이해하여 미술 외적인 영역에 주목하곤 한다. 이에 대하여 예술가들은 설령 예술가의 기질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어떻게 예술작품이 탄생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없으며, 라파엘이나 램브란트의 상이점을 규명하는 것은 정작 중요한 것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에 의하면 정작 열쇠가 되는 것은 차리르 규명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상이한 방식을 통해 같은 것, 즉 위대한 예술이 탄생될 수 있었던가를 규명하는 것이기 댸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미술사가들에 대한 의혹어린 시선 앞에서 구태여 그들을 변호하느라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화가들이 보편적 법칙을 항상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만큼, 미술사가들이 미술의 형식적 다양함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질이나 시대정신 또는 종족적 성격이라 불리워지는 조건들이 질료적 요소로서 개인과 시대와 민족의 양식을 형성하는 것을 발견해내는 것은 역시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단지 질적인 측면만을 분석한다든가 표현의 측면만을 분석해서는 사태 전체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 여기에 재현방식 그 자체라는 제3의 요소가 개입되는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찰해 보려는 점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자기와 관련된 특정 ‘시각적’ 가능성에 묶여 있다. 모든 것들이 모든 시대에 다 가능할 수 없다. 보는 것 자체도 고유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 ‘시각적 층’의 규명이 미술사의 가장 근원적인 과제임을 알아야 한다. [28p]
- 이의가 없다면 그와 같은 발전 과정을 일단 다음에 열거한 다섯 쌍의 개념으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1. 선線적인 것에서 회화적인 것으로의 발전 : 즉 눈의 궤도이자 지침으로서의 선의 형성과 그것의 점차적인 의미상실로서,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한쪽은 형체를 촉각적으로―윤곽선이나 면을 통해―파악하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단지 시각적인 겉모습만을 좇아 ‘가촉적’ 소묘는 포기하는 태도이다. 전자에서는 물체의 한계가 강조되는 반면 후자에서는 형태의 한계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로 드러난다. 조형적이고 외곽선을 강조하는 시각은 물체들을 고립시키는 데 반해 회화적으로 보는 눈은 그것들을 결합시킨다. 전자의 경우는 개별적인 구체적 대상을 견고하고 가촉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데 집착하며 후자의 경우는 보이는 전체를 부유하는 가상으로 파악하려 한다.
2. 평면적인 것에서 깊은 것으로의 발전 : 고전적 미술은 전체 형태를 이루는 각 부분들을 표현할 때, 동일한 층에 평면적으로 표현하지만 바로크는 튀어나오고 들어간 관계를 강조한다. 평평함은 선의 요소이며, 평평하게 늘어놓는 것은 가장 확대된 시야의 형태이다. 윤곽선이 점점 의미를 상실하자 평평함의 의미도 상실되고 눈은 사물을 근본적으로 들어가고 나온 관계로 결합한다. 그러나 그것은 질적으로 더 낫고 못하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고도의 기술과는 연관이 없는 근본적으로 다른 재현 방식이다. 이는 곧 우리가 논의한 ‘평면양식’이 결코 초보적인 미술이 아니라 단축법과 공간 인상에 대한 완벽한 습득이 이루어지고 나서 출현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3. 폐쇄적 형태에서 개방된 형태로의 발전 : 모든 예술작품은 자체 완결적이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결함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원리는 16, 17세기에 각각 너무도 다르게 해석되어 바로크의 해체된 형식과 비교해볼 때 고전적 구상은 닫혀진 형식의 예술로 통칭되어질 수 있따. 규칙의 완화, 기술적 엄격함의 해이해짐 등 어떤 말로 표현되든, 그 변화는 단순한 흥미유발로서가 아닌 근본적으로 새로운 재현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요소도 재현의 기본형식들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4. 다원성에서 통일성으로의 발전 : 고전적인 구성체계에서 각 부분들은 전체에 대해 매우 밀접한 관계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립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전기 이전 미술이 보여주는 중구난방식의 독립성과는 다르다. 부분은 전체에 의해 규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 고유한 독자성을 지닌다. 관찰자에게는 부분과 부분을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이 요구되는데 그 조작은 17세기가 수행한 전체적 파악과는 무척 다른 것이다. 두 양시에서 모두 통일성은 중요한 쟁점이었는데(고전적 단계 이전에는 이 개념은 아직 본연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단지 한 경우는 독립된 부분들의 조화를 통해 그 통일성을 달성하려 한 반면, 다른 한 경우는 한 주제로 부분들을 집결시키거나 지배적인 요소에 여타 요소를 종속시킴으로써 달성하려 한 차이가 있다.
5. 대상에 대한 절대적 명료성과 상대적 명료성 : 이 대조는 일단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의 대조와 관련이 깊다. 즉 그 차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촉각적인 느낌을 전달케 하는 재현과 사물을 보이는 대로 전체적으로 수용하여 비조각적으로 재현하는 것 사이의 차이이다. 15세기에는 단지 모호하게 예견되었고 17세기에는 스스로 포기된 완벽한 명료함에의 이상이 유독 고전적 시기에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은 자못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서도 거북한 인상을 줄 만큼 불명료해진 것은 아니고, 단지 소재의 명료성 그 자체가 더 이상 재현의 지상목표가 아니게끔 되었던 것이다. 이제 형태를 눈앞에 완벽하게 드러나게끔 하는 대신 중요한 특징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구성, 광선, 색채가 단지 형태를 명료하게 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기를 멈추고 그 자체로 독립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절대적 명료성의 흐려짐이 단순한 흥미유발 차원에서 감행된 적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 명료성은 인간이 대상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파악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 한 위대하고 포괄적인 재현 형식으로 미술사에 등장했다. 바로크가 뒤러나 라파엘의 이상으로부터 이탈한 것은 결코 질적으로 더 낫고 못하고를 의미하지 않고 세계에 대한 다른 조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32~34p]
- 아무도 ‘눈’이 제 스스로 발전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항상 다른 정싱적 영역과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에 죽은 모형처럼 덮어 씌워진 그러한 시각적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항상 보기 원하는 대로 보아 온 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법칙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은 상당히 농후하다. 이 법칙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미술사의 중심과제이자 기본과제일 것이다. [37p]
- 선적인 양식은 실재에 대한 초보적 암시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금물이다. 선적인 양식 역시 하나의 절대성을 지닌 양식으로 환각이란 측면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났다. 뒤러는 회화를 하나의 완벽한 ‘눈속임’으로서 이해하였으며 라파엘도 벨라스케스가 그린 교황 초상화 앞에서 결코 자기 자신이 뒤진다고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그림은 단지 전혀 다른 토대 위에서 그려진 것 뿐이다. 그러나 이 토대상의 차이는―반복해서 말하건대―모방적 의미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장식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미술사의 전개는 항상 동일한 목표하에 진행된 것도 아니며 늘 단지 실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의도를 간직한 채 양식을 교체한 그와 같은 것이 아니다. 회화적 양식은 결코 자연 모방이라는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더 발전된 단계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전혀 다른 해결 방식일 뿐이다. [52p]
-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러한 회화적 소묘 방식은 심지어 대상의 질감까지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조형적 형태에 대한 흥미가 줄면 줄수록 대상의 표면에 대한 관심, 즉 재질감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고조되어, 예를 들어 렘브란트의 작품에서는 뒤러의 작품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근육의 부드러움이 전해진다. [61p]
- 고전적 미술은 여기서도 명료한 잎새를 지닌 나무의 유형을 추구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뚜렷하게 낱낱의 잎새를 부각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는 충족시키기가 아주 까다로운 것이어서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이미 개별 형태는 덩어리를 이루게 되어 그 어떠한 뾰족한 붓으로도 세밀히 묘사해 낼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적 양식의 미술은 자신을 관철하여, 잎새를 더 이상 명료하게 그려낼 수 없게 되는 경우는 잎다발이나 잎더미 단위로라도 개별적인 확실성을 추구하였다. [78p]
- 그러나 회화적인 색채와 비회화적인 색채의 차이는, 전자가 색채를 고정된 요소로 소화되는 반면, 후자는 화면의 변모를 중요시하여 단일 색조의 대상들이 다양한 색채 속에서 자유로이 유희하는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빛의 설정에 따라 자연 상태의 색이 어느 정도 변함을 인정해 왔지만 이제 그 이상의 일이 벌어져 균일하게 드러난 기초색에 대한 관념은 깨지고 현상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색조를 통해 진동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계 전체 위에 색채는 마치 부유하는 상태로 영원히 움직이는 듯한 가상처럼 뒤덮이게 되었다. [82p]
- 시각적 가상과 관련을 맺는 대신, 가촉적. 실재적인 것에 대해 더 이상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게 됨에 따라 조각은 이제 전혀 새로운 영역에 대한 표현도 감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조각은 회화에 못지않게 순간적인 것을 재현하는 데 열중하게 되었으며 석재石材는 이제 그 어떠한 재질감도 마다하지 않고 표현하기에 이르러 반짝이는 시선, 비단의 반들거림, 근육의 부드러움 등등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고전적인 성향이 다시 고개를 들어 선과 가촉적 양감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할 때마다 으레껏 양식의 순수성이라는 관점에서 위와 같은 재질감 구사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곤 하였다. [87p]
- 바로크 흉상은 항상 풍부한 주름 표현을 선호한 듯하다. 얼굴에서 운동감이 느껴지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보조 수단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회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인물들의 움직임을 표현함에 있어 독특한 천상의 구름 행렬을 동원할 줄 몰랐던들 엘 그레코의 존재도 별 것이 아니었으리라. [92p]
- 회화적 효과를 노리는 조각의 경우, 상방에서 감상이 가능한 환조보다 벽면에 접하거나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 조각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크 양식은 평면에서 벗어나려는 성향을 띰에도 불구하고―이 점에 대하여서는 후에 다시 언급하겠다―감상자의 시점을 제한하여 설정하는 데 무척 집착한다. [94~95p]
- 엄격한 의미에서 건축적인 건축은 감상자의 그 어떠한 시점도 인정하지 않거나―그것은 늘 형태의 왜곡을 수반한다―모든 시점을 다 인정한다. 반면에 회화적 건축은 늘 감상자의 특정 위치를 염두에 두므로 브라만테의 성 베드로 성당같이 사방이 동일한 집중식 구조는 회화적 관점에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회화적 건축은 본래 의도한 효과를 좀더 확실하게 얻고자 언제나 감상자의 위치를 제한 성정한다. [100p]
- 고전적 취향은 항상 명료한 선과 가촉적인 윤곽을 선호한다. 평면은 늘 뚜렷한 윤곽을 띠며 입체 형태는 으레껏 가촉성을 띠어 이 양식 내에서는 일체가 온전한 모습으로 파악된다. 반면에 바로크 양식은 윤곽선의 의미를 무시하고 테두리를 흐림으로써 형태 자체를 복잡하게 하며 그 형태들간의 질서를 한층 더 미묘하게 만들어 버려 각 부분들에 대해 적절한 조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그만큼 더 난해하게 만든다. 결국 특정 시점 따위에 구애되지 않고 형태 전체가 (순수 시각적) 운동을 개시하게 되어 벽은 진동하고 공간은 곳곳에서 전율하는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101p]
- 운동감은 입체적인 현실성 대신 시각적 가상이 등장할 때에 비로소 달성된다. 이미 언급하였지만 건축 분야의 경우 그와 같은 효과가 회화에서처럼 현저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상주의적 장식이라는 말은 성립해도 인상주의적 건축이라는 말은 성립되기가 곤란한 것이다. [101~102p]
- 로코코 양식이 거울 벽을 선호하는 것도 단순히 밝은 것에 대한 애호를 넘어 실재적 평면인 벽면조차 비가촉적인 비평면, 즉 거울을 통해 반사되는 가상으로 처리하려는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102p]
- 각 시대는 ‘각자의’ 눈으로 사물을 파악하며 아무도 그러한 권리를 침해할 수 없으나 역사가로서는 한 대상이 본래 어떻게 보여지기를 요구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106p]
- 회화적 양식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건물의 내부에서이다. 내부 공간이야말로 가촉적인 것에 비가촉적인 매력을 불어넣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무한하고 광대한 요소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효과를 거두며 일종의 무대 세트 같은 효과나 내진적(內進的, tiefenhaft : 평면적flächenhaft 이라는 말의 대개념으로, 시각적으로 드러난 화면 깊숙이 삼차원적 공간감이나 동세가 느껴지는 상태를 의미한 -옮긴이 주) 시선, 광선이나 어둠 같은 요소를 본격적으로 동원해 볼 수 있다. 전체 구성에서 광선이 차지하는 의미가 독자적일수록 건물은 그만큼 더 시각적, 회화적 양상을 띤다고 할 수 있다. [110p]
- 1800년경에 새로이 고전주의가 대두됨에 따라 미술은 다시 단순성을 회복하게 되어 복잡한 형태는 정리되고, 직선과 직각은 다시 복권되었다. 이것은 당시 새롭게 대두된 ‘간결성’에 대한 열광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술의 전반적 토대가 다시금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간결한 것을 선호하는 쪽으로 취향이 바뀐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화적 감각이 다시 조각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선은 다시금 촉각치를 지니게 되었으며 일체의 형태는 가촉적 성향을 회복하게 되었다. [111p]
- 한편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우리가 보기에는 각자가 전혀 판이한 화가들인데도 공간 묘사의 측면에서 내진성을 강조하며 층구조를 통한 고정을 거부하는 등 아주 일치된 양상을 띠고 있다. 안쪽으로 치닫는 길, 단축법으로 묘사된 오솔길 등은 그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결코 전체 화면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바야흐로 그러한 모티브들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여 형태의 좌우병립이 아닌 전후 배열이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또 종종 아무런 구체적 대상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감상자는 공간 전체를 단숨에 수용하므로 새로운 양식은 그만큼 더 진면목을 발휘하게 된다. [144~145p]
- 사실 바로크 양식의 작품들 중에는 결집된 상을 결하고 있어서 과격하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종종 발견된다. 그러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힐데브란트의 바판도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비판을 고전기 이후 작품 모두에 대해 적용하여서는 안되다. 왜냐하면 별 흠잡을 데 없는 바로크 작품도 있기 때문이다. 게데가 이 흠잡을 데 없는 양상은 바로크 양식이 복고적 성향이 아닌 본연의 모습을 띨 때 나타난다. 일반적인 시각의 발달 과정을 겪는 동안 조각 역시 르네상스와는 다른 것을 지향하게 되었으며 고전적 미학이 지닌 낡은 용어로는 더 이상 기술될 수 없는 한 양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평면을 인정하되 전체적으로 그것을 크게 강조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156~157p]
- 대칭성에 대하여 논하노라면 대뜸 장중한 효과가 떠오른다. 대칭성은 세속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는 적합하지 못한 반면, 기념비적 장면 연출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맥락에서 대칭성은 늘 하나의 중요한 표현 요소로 인정되었으나, 여기서도 시대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181p]
- 회화는 경우에 따라 구축적 양상을 띨 ‘수 있지만’ 건축은 구축적일 ‘수밖에 없다’. 회화는 구축적 성향에서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고유의 진가를 발휘하지만 건축에 있어 구축적 구조의 지양이란 자기 부정이나 다를 바 없다. 회화의 경우는 실제 구축적인 요소라고는 액자 테두리뿐이며 이 테두리조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면과의 관계를 점차 상실하지만 건축 예술은 본질적으로 구축적이며 단지 장식적 요소만이 다소 자유롭게 표현되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상 미술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구축적 요소의 위축과 같은 과정이 건축에서도 진행되었다. 여기서 비구축적인 단계라는 말을 쓰기가 주저된다면 ‘폐쇄됀 형태’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의 ‘개방된 형태’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210~211p]
- 폐쇄된 형태라는 원칙은 이미 통일체로서 화면 개념을 전제로 한 것이다. 구축적 원리하에서건 좀더 자유로운 질서하에서건 전체 형태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뤄야만 비로소 전체는 법칙성을 띤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일성에 대한 감각은 아주 점진적으로 발전하였다. 미술사의 어느 특정 단계를 가리켜 이제 통일성이 구현되었다고 딱 꼬집어 지적하기란 어렵다. 여기서도 역시 상대적 가치가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219~220p]
- 바로 이와 같은 차이가 15세기와 16세기의 화면구성에서 발견되는 차이점이다. 즉 15세기는 산만함을 그 특징으로 하여 때로는 고립된 형태로 인한 조야함을, 때로는 극단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인한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면, 16세기에는 결속이 돋보여 모든 형태들은 각각 뚜렷한 형태를 띰에도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다. [220p]
- 그 외의 인물들에게서 발견되는 변화도 한마디로 일반성을 위해 개별성을 버렸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은 이처럼 원칙적으로 독립적 부분들의 조화를 통한 다원성에 연연하지 않고 각 부분들의 개별적 의미가 약화되는 절대적 통일성을 추구한다. 이로 말미암아 중심 주제는 여태껏 유례없이 강렬하게 돋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발견되는 차이점은 다름아닌 민족적 취향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분명 이탈리아인들은 개별 부분들을 또렷하게 강조하는 것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세이첸토 시기와 칭퀘첸토 시기를 비교하였을 떄의 차이점도 결코 무시될 수 없으며 또 같은 북유럽이라 해도 렘브란트와 뒤러의 차이는 확연하다. [222~223p]
-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장식적 규준이 대상 파악의 형식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렘브란트의 그림들은 뒤러의 그림들과 비교해 다른 체계를 통해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대상 자체를 다르게 보고 있다. 다원성과 통일성은 모두 그로 말미암아 대상의 내용을 수용하고 형태를 취하게 되는 일종의 그릇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임의의 장식적 형식이 세계 전체에 대하여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소재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인 것이다. 이 말은 사람들이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뿐만 아니라 대상 자체를 선별해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위 자연 모방은 장식적인 충동이 가해져 새로운 장식적 의미를 띠게 될 때 비로소 예술적 의의를 지니게 된다. 모방적 요소와 상관없이 다원적 미와 통일적 미의 개념이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은 바로 건축분야에 의해 입증된다. [224p]
- 뒤러의 저 장중한 목판화「성모 마리아의 임종」(1510)도81은 각 부분들이 나름대로 전체에 귀속되어 있으면서도 전적으로 독립된 기능을 수행하며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작품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이 작품은 구축적 구도를 보여주는 탁월한 예이다.―모든 것들이 명료한 기하학적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 못지않게 독립된 요소들로 이루어진 (상대적)병립 구성이라는 상황도 하나의 새로운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다원적 통일성의 원리라고 명명하기로 하자. [225p]
- 명백한 병립이나 명료한 대조는 이제 융합이라는 원칙에 의해 대체되었다. 노골적인 대비는 파괴되었으며 뚜렷한 윤곽을 지닌 것이나 따로 똑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은 사라졌다. 형태와 형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을 통해 끊임없는 운동이 매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바로크적 통일성이 지배하는 노도와 같은 화면에서도 몇몇 소재들은 불쑥불쑥 강하게 강조되어 렌즈가 빛을 수렴시키듯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소묘를 통해 가장 강렬한 형태를 이루는 이와 같은 지점은 바로 광선이나 색채가 절정을 이루는 것에 비견될 만한 것으로서 바로크 미술을 고전적인 미술과 근본적으로 대별시킨다. 고전적인 미술에서는 모든 것이 균등하게 강조되는 반면 바로크미술에서는 하나의 주요 지점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강렬하게 강조된 대상은 결코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으며 단지 전체적인 동세 속에서 그것의 절정을 장식할 뿐이다.[228p]
- 색채 사용 측면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고전기 이전의 화가들은 아무런 체계적 연관 없이 색상을 마구 늘어놓음으로써 ‘울긋불긋하게’ 채색한 반면, 16세기에는 선택과 통일 즉 극명한 대비 속에서도 서로 균형을 이루는 조화의 원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체계가 명료하게 성립된 셈이었다. 모든 색채는 전체에 대하여 그 나름의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여 마치 건물을 떠받치는데 필수불가결한 기둥들과 같은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원리는 때로는 철저히 일관되게, 때로는 덜 일관되게 발전하였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다원적인 색채 구사를 근간으로 하는 고전적 시기는 다음 시기가 보여주는, 색의 농담을 근간으로 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232p]
- 말하자면 이제 화면은 어떤 특정한 색조를 띠게 되는 것이다. 소묘적 관점에서 균질적 명료함이 포기되었던 것처럼 색채 효과면에서도 이제 중간색이나 무채색의 둔탁함을 배경으로 순색을 돋보이게 하는 데 관심을 집중되게 되었다. [233p]
- 16세기 회화의 다원적 통일성은 화면 위에서 각 대상들을 골고루 강조한다는 특징으 ㄹ띠고 있다. 고전적 통일성의 경우 전체적인 장면에서는 물론 주요 등장물과 부수물 간의 구별이 되며 고전기 이전의 작품과는 다르게 어디에 사건의 핵심이 놓여있는가가 확연히 드러나지만, 바로크 양식의 기준에서 보면 이 또 한 제한된 의미의 통일성일 뿐 다원적 양상을 띤 것에 불과하다. 즉 부수적 형태도 어쨌거나 나름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235p]
- 이러한 상황은 전신상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신상의 경우는 자유로이 움직이는 몸체가 그 대상이므로 긴장감이나 이완감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다. [239p]
-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렘브란트가 여기에서 만족하여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1661년에 그가 그린 「직물조합 이사들」도90은 아주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어서 후기의 렘브란트의 전기 렘브란트에 대한 반대 급부인 듯 느껴질 정도이다. 이 작품에는 다섯 명의 신사와 시종 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신사들 중 그 누구도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으며 「해부학 강의」에서와 같은 격심한 집중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한 점으로 모아지는 조작된 광선 따위는 없으며 빛과 그림자는 화면 전체에 자유로이 퍼져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낡은 양식에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서의 통일성은 바로 절대적 위력을 행사하는 운동의 연관에 기인한다. [241~242p]
- 이러한 병립 구성이 반드시 구태의연한 낙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악센트를 보합적으로 배치하는 미의식에 전적으로 부응하는 것으로 풍속화처럼 훨씬 자유로운 분야에서조차 준수되었다. [243p]
- 물론 그 말도 타당성을 지니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표현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장식 원리로서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몇몇 강조점만을 지닌 단일화라는 도식이다. 이러한 도식으로 인해 형태들은 유연성을 띠게 되었으며 결국 개별적인 것과 전체 사이에는 새로운 통일감과 연관이 성립되게 되었다. [255p]
- 그러나 북유럽적 양식이 요구하는 것은 인물을 여럿 등장시키는 것 그 자체라기보다는 화면에서 한 형태가 여타 형태와 불가분이 관계에 놓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258p]
- 개별 부분이 독립적 생명력을 발하는 가운데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대신, 이제 부분은 전체를 지배하는 주요 모티브로 귀속되게 되었으며 전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그 의미와 아름다움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떄 완벽함에 대한 알베르티의 고전적 정의, 즉 거기서 조금만 변화시키거나 떼어내거나 하기만 해도 전체적 조화가 깨지고 마는 그런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는 정의는 르네상스 양식에서뿐만 아니라 바로크 양식에도 썩 잘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건축물은 양식을 불문하고 하나의 완벽한 통일체를 이루지만 고전적 양식에서 말하는 통일성과 바로크 양식에서 말하는 통일성은 그 의미가 다르다. 브라만테의 경우, 이전 작가들의 산만성과 비교했을 때는 마치 통일성의 대변자인 것 같지만, 그의 기준에 비추어 통일적인 것도 베르니니의 기준에서 보면 다원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260p]
- 그러나 모든 시대에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통합적 구성은 개별적인 부분들을 통한 아름다움의 단계를 거친 후에나 가능하다. 통합적 구성은 개별적인 부분들을 통한 아름다움의 단계를 거친 후에나 가능하다. [264p]
- 이미 언급하였듯이 바로크 양식에서는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늘 존재한다. 그것은 어느 한 주요 모티브에로 전체 인상을 집약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이 주요 모티브는 부수적인 모티브를 비독립적인 요소로서 포용하면서 동시에 그 부수적 모티브들의 보조를 전적으로 필요로 하여 단독적으로는 결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269p]
- 민족적 상상력은 사사건건 차이를 드러내어 이탈리아인들은 북유럽인들에 비해 독립된 부분을 선호하였으며 그것의 독립성을 결코 온전히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독립된 부분들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일단 만들어지고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이 장 서두에서의 언급을 상기해보면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이 부분 ―기둥, 벽면, 구획 공간을 막론하고―을 안정된 완결체로 이루어나가는 독특한 방식에 있다. 그러나 게르만적 상상력은 부분에 대하여 결코 그와 같은 독자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조직된 체계를 통한 아름다움은 근본적으로 라틴적인 개념인 것이다. [2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