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발터 벤야민 | 옮긴이 / 최성만
발터 벤야민 선집 2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 외
2007년 11월 30일 제1판 제1쇄 발행
2008년 3월 15일 제1판 제2쇄 발행
2009년 2월 15일 제1판 제3쇄 발행
2009년 9월 20일 제1판 제4쇄 발행
2010년 10월 20일 제1판 제5쇄 인쇄
2010년 10월 25일 제1판 제5쇄 발행
지은이 발터 벤야민
옮긴이 최성만
펴낸이 박우정
펴낸곳 도서출판 길 (135-891 서울 강남구 신사동 564-12 우리빌딩 201호)
해제
현대 매체미학의 선구자, 발터 벤야민
최성만(이화여대 교수·독문학)
1. 현대예술론, 매체미학, 지각이론
- 이미 1924년 『일방통행로』에서 벤야민은 지식 전달과 글쓰기의 수단으로서 인쇄된 책이 낡은 형식이 되고 구텐베르크 시대가 종말을 고해가고 있음을 적시하였다. 그는 또한 매체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신문과 광고의 문화가 확산되어가면서 그 수직적 읽기가 인쇄된 책의 수평적 읽기를 대체하고, 읽기 행위가 이미지적·단속적·충격적·촉각적 성격을 띠게 되면서 비평적 글쓰기 방식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통찰하였다. 즉 그는 매체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현대가 매체의 시대라면 그것은 사람들이 현실을 지각할 때 기계장치의 매개에 의존하는 정도가 비상하게 커졌음을 의미한다. 기계라는 틀은 세계에 대한 ‘자연적’ 시각을 변형·왜곡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미리 틀 짓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적 지각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미학은 지각학 내지 감각학의 성격을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게 띠게 되며, 그에 따라 전통적인 예술론과 미학은 매체미학으로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문자가 이미지로 대체된다든지, 어느 하나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쪽의 판단은 소박하고 비변증법적인 판단이다. 왜냐하면 매체기술의 발달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적 문자들의 홍수 역시 인쇄된 문자와 마찬가지로 판독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술이 광고 문화의 확산을 통해 전통적인 기능과 형식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다면, 그 변화의 양상을 정밀하게 추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전시(展示)가치가 제의(祭儀)가치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게 되고 그로 인해 관조적 태도가 정신분산적 태도에 의해 밀려나는 현상, 시각적 요소 속에서도 신체성과 촉각성이 관철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 자체가 긍정적인 발전을 자동적긍로 담보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그렇듯이 새로운 시간지각과 공간지각을 ‘구성’하고 ‘조직’할 필요성이 생겨난다. 사진술적인 재현은 전통적 재현의 미학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재현된 실재의 본질을 드러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벤야민이 신즉물주의적 사진을 두고 비판했듯이 사물의 정밀한 사진적 재현은 사물의 본질을 가리고 단지 상업적인 소비의 대상으로 만드는 기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여기서 ‘사진을 어떻게 투입하느냐’라는 정치적 물음이 생겨난다. [7~8p]
2. 「사진의 작은 역사」
- 사진의 경우 새로운 기술이 미치는 파장은 자연의 관찰에 그것을 이용하는 데서 드러난다. 달리 말해 사진은 지각의 수단이다. 그런데 최초의 사진들은 마법과 기술의 경계 영역에서 “카메라에 비치는 자연은 눈에 비치는 자연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인간이 의식을 갖고 엮은 공간의 자리에 “무의식적으로 엮인” 공간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충동의 무의식적 부분을 정신분석을 통해 알게 되듯이 이러한 시각적 무의식(das Optisch-Unbewußte)의 세계에 관해 사진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Ⅱ/1, 371). 예를 들어 사람들이 걸어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미세한 순간만다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사진이라는 기술적 보조 수단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 사진을 정신분석에 유비시키는 이러한 사고는 기술복제 논문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다만 수용하는 대중 집단의 차원이 함께 고려되어 논의가 확장될 뿐이다. [12~13p]
기술은 이처럼 육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며, 또 그를 통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와 관념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변하게 된다.[13p]
- 아제의 사진들은 그가 보기에 현재에 이르러 주도적이 된 지각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새로운 지각은 바로 아우라적 지각과 대립되어 있는 지각이다. 곧 먼 곳의 일회적 나타남이 유발하는 마법의 자리에 ‘범행 현장’의 흔적을 기록한 것 같은 가까움이 들어선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일회성과 지속의 자리에 일시성과 반복이 들어선 것이다.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떼어내는 일, 다시 말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오늘날의 지각이 갖는 특징이다. 이 지각은 세상에 있는 동질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 너무나 커진 나머지 복제를 통해 일회적인 것에서도 동질적인 것을 추출해낼 정도이다”(Ⅱ/1, 379).[16p]
- 사진 이미지와 문자의 결합은 구성의 문제이고,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17p]
3.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 텍스트의 탄생사
2) 아우라의 붕괴
- 이러한 성찰에서 이제 “오늘날의 예술작품이 지닌 새로운 기능들중에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드러진 기능은 예술적 기능이지만, 이 예술적 기능 역시 사람들이 나중에 부차적 기능으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명제가 도출된다(Ⅵ/1, 358). [21p]
- 아우라가 ‘침잠’이라는 정관(Kontemplation)적 수용 태도를 요구한다면, 영화는 정신분산(오락) 속의 수용을 원하는 대중적 욕구를 충족한다. 벤야민은 이러한 대립을 “촉각적”(taktil, taktisch)―"시각적“(optisch)이라는 개념쌍 속에서 기술하는데, 그로써 그는 리글의 예술론의 중심 카테고리들을 다시 한 번 끌어들인다. [25p]
4) 문화정치학
5) 아도르노의 비판
6) 오늘날 기술복제 논문의 매체철학적 의미
- 오늘날 벤야민의 에세이가 갖는 매체철학적 의미를 프랑크 하르트 만(Fran Hartmann)은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지각의 메체에서 일어나는 심대한 변화를 진단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미학의 자리에 대중매체의 미학이 들어선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문화로 파악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것이며 동시에 기술에 의해서도 규정되어 있다. 예술작품의 미학은 예술의 제의(祭儀)속으롯의 침잠을 의미하고, 개별적인 것을 일회서의 아우라적 마법을 통해 거듭 확인하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들은 예술의 ‘원작’을 전혀 새로운 맥락으로 가져간다. 대중매체의 미학이 예술작품의 접근 가능성을 민주화하는 동시에 정신 분산과 기분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은 개인이 집단의 형상물 속에, 대중적 지각 속에 철저히 녹아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해방적인 것은 확대와 축소 사이를 오간다. 무의식의 영역을 폭로하는 기술을 통해 가능성들이 극대화되는가 하면(확대), 제작 경비와 포맷을 극소화하여 문화적 산문들의 보급이 유리해진다(축소). 셋째 효과를 들자면 복제인데, 이미 예술작품의 일부였지만, 이제 기술을 통해 고양되고 있고 민주화하는 잠재력을 내포한다.
문화적 코드를 근본적으로 재코드화하는 이러한 과정을 바라보는 벤야민의 시각은 단지 표면에서만 체념적이다. 이 표면 아래에서 벤야민은 이러한 변화를 어떤 현대의 철학자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지식의 생산방식에 미치는 결과까지도 그는 고려한다. 벤야민은 이미 책의 종말과 새로운 매체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 모델의 위기와 문화적 도구의 변화는 서로 조건을 짓는다. 이로써 철학적 미학은 변화하게 되는데, 그것은 지각에 관한 순수학문이 될 수 없고 정치적·사회적·기술적 조건들을 내포한다. 문화산업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의 비판이 이윤동기가 모든 정신적 형상물들에 확산되는 것을 비판했다면, 벤야민은 정신적 생산수단들의 사회화가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문화의 기회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있다“
7) 종합적 평가
옮긴이의 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2판)
1
2
-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항상 복제가 가능했다. 사람들이 만든 것은 늘 사람들이 모방할 수 있었다. 그러한 모방은 예술 실기 연습을 하려는 제자들에 의해, 작품을 널리 보급하려는 장인들에 의해, 마지막으로는 이윤을 탐하는 제3자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에 비해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좀 새로운 현상이다. 기술적 복제라는 이 새로운 현상은 역사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그러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면서 관철되었다. 목판이 등장함으로써 비로서 처음으로 그래픽이 기술적으로 복제 가능하게 되었다. 인쇄를 통해 문자의 복제가 가능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그래픽이 판화로 복제되어왔다. 인쇄를 통한 문자의 복제 가능성이 문학에 불러일으켰던 엄청난 변화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터이다. 그러나 세계사적인 척도에서 보면, 이러한 변화는 매우 중요한 변화이기는 하지만 세계사 전체에서 일어난 여러 변화들 중 하나의 특수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43p]
3
- 가장 완벽한 복제에서 한 가지만은 빠져 있다. 그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이다. 그러나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이 일회적인 현존재에서 그 작품이 존재하는 동안 처했던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 이 역사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예술작품이 물질적 구조에서 겪어온 변화들뿐만 아니라 그것이 편입된 소유관계의 변화도 포함된다. 물질적 구조에서 일어난 변화의 흔적은 화학적 또는 물리적 종류의 분석들을 통해서만 발굴할 수 있으며, 이러한 분석은 복제품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45p]
- 원작(Original)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이 원작의 진품성(眞品性)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루며, 이 진품성에 바로 그 대상이 오늘날 까지 그것 자체이자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는 정체성을 면면히 전해준 어떤 전통에 대한 관념이 기반을 둔다. 진품성의 영역 전체는 기술적 복제의 가능성에서 벗어나 있고, 물론 기술적 복제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복제의 가능성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러나 진품은 손으로 이루어진 복제에 대해서는 이것을 위조품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완전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서 수공적 복제보다 더 큰 독자성을 지닌다. 예컨대 기술적 복제는 사진에서는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렌즈로는 포착되지만 인간의 육안에는 미치지 못하는 원작의 모습들을 강조해서 보여줄 수도 있고, 또 확대나 고속촬영술과 같은 기계적 조작의 도움을 받아 자연적 시각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이미지들을 포착할 수 있다. 이것이 첫째 이유다. 둘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이 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원작의 모사(模寫)를 가져다놓을 수 있다. 기술적 복제는 원작으로 하여금 사진이나 음반의 형태로 수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해준다. 사원은 제자리르 떠나 예술 애호가의 작업실에서 수용되고, 음악당이나 노천에서 연주된 합창곡은 방 안에서 들을 수 있게 된다. [45~46p]
- 일반화해 말하자면,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낸다. 복제기술은 복제를 대량화함으로써 복제 대상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대신 대량으로 나타나게 한다. 또한 복제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 [47p]
4
- 다시 말해 사물을 자신에게 보다 더 “가까이 끌어 오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이 지닌 열렬한 관심사이며, 모둔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하는 경향이 바로 그 관심을 나타낸다. 대중이 바로 자기 옆에 가까이 있는 대상을 상(像) 속에, 아니 모사(模寫)속에, 복제를 통하여 전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나날이 제어할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 화보가 들어 있는 신문이나 주간 뉴스영화9Wochenschau)가 제공해주는 복제영상들은 상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상에서는 일회성과 지속성이 밀접하게 서로 엉켜 있는 데 반해, 복제물에서는 일시성과 반복성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50p]
5
-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작품으로 하역므 지금까지 의식에 기대어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복제된 예술작품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복제를 겨냥해서 제작되는 예술작품의 복제품이 되어가고 있다.예를 들면 사진의 원판으로는 다량의 인화가 가능하다. 어느 것이 진짜 인화냐고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술 생산에서 진품성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그 효력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예술의 모든 사회적 기능 또한 변혁을 겪게 된다. 예술이 의식에 바탕을 두었었는데,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 [52~53p]
6
- 이 형상물들에서는 그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유일하게 중요했다. 석기시대의 인간이 동굴의 벽에 모사한 사슴은 일종의 마법적 도구로서 단지 우연한 기회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시해 보여줄 뿐이었다. 기껏해야 그 사슴을 신령들이 본다는 사실이 중요했을 뿐이다. 제의가치 자체는 예술작품을 은밀한 곳에 숨겨두기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어떤 신상(神像)들은 밀실에서 승려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되고 있고, 어떤 성모상은 거의 일 년 내내 베일 속에 가려져 잇으며 또 중세 사원의 어떤 조각들은 지면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여러 예술 활동이 제각기 의식의 모태에서 해방됨에 따라 예술 활동의 산물들이 전시될 기회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곳저곳으로 옮겨질 수도 있는 흉상(胸像)의 전시 가능성은 사원 내부의 일정한 장소에 붙박여 있는 신상의 전시가능성보다 훨씬 더 크다. [54~55p]
- 제 1의 기술의 기술적 위업은 말하자면 제물로 바쳐지는 인간이고, 제2의 기술의 위업은 인간이 승선할 필요가 없는 원격조종 비행체들이 개발되는 선상에 놓여 있다. ‘이번 한 번만으로’〔일회성·궁극성〕가 제1의 기술에 해당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코 보상할 수 없는 실수거나 영원히 대속代贖하는 희생적 죽음이다). 그에 비해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즉 어떠한 경우에도 한 번만이란 없다, 반복성〕가 제2의 기술에 해당한다(제2의 기술에서는 실험이 중요하고, 이 실험을 통해 시험적 구성〔배치, Versuchsanordnung〕을 지칠 줄 모르게 변형해보는 일이 중요하다). 제2의 기술은 인간이 처음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인 간계를 가지고 자연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려고 시도했던 때에서 기원한다. 달리 말해 제2의 기술의 기원은 유희(Spiel)에 있다. [56~57p]
7
- 제의가치는 최후의 보루로 물러서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 그 초창기에 초상 사진이 사진의 중심부를 이루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이미지의 제의적 가치는 멀리 있거나 이미 죽고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거의 의식적인 행동에서 마지막 도피처를 찾았다. 초기 사진에서 아우라가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간 것으 사람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에서이다. 초기 사진에 나타나는 멜랑콜리하고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의 비결은 바로 이러한 아우라이다. 그러나 사진에서 사람의 모습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자 비로소 전시적 가치는 처음으로 제의적 가치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아제이다. 아제가 지니는 비견할 수 없는 의의는 그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1900년경의 파리 거리를 포착했다는 점에 있다. 그가 마치 범행 현장을 찍듯이 파리의 거리를 찍었다고 한 말은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 범행 장소에는 사람이 없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사진촬영은 아제에 와서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사진의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 의미이다. [58~59p]
8
- 이처럼 영화는 개선 가능성이 가장 큰 에술작품이다. 이러한 개선 가능성은 영화가 영원한 가치를 극단적으로 포기하는 것과 연관된다. 이 점은 반대 실험을 통해 분명해진다. 예술이 영원한 가치들을 만들어내는 데 의존했던 그리스인들에게는 개선의 능력이 가장 적은 예술, 즉 조형예술이 여러 예술들 가운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형예술의 창조물들은 말 그대로 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조형예술이 조립 가능한 예술작품의 시대에 몰락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61p]
9
- 일찍이 사람들은 사진이 예술이냐는 물음에 많은 통찰력을 쓸데없이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이에 선행되어야 할 물음, 즉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성격 전체가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은 제기하지 않았다. [62p]
10
- 사진이 그림에 대해 행하는 복제는 사진이 영화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장면에 대해 행하는 복제와 종류가 다르다. 전자의 경우 복제된 것은 예술작품이고, 작품을 생산하는 일이 복제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카메라맨이 렌즈를 가지고 한 작업은 지휘자가 교향악단을 데리고 하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맨의 작업은 잘해야 예술적 작업을 연출할 뿐이다. 영화 스튜디오에서 하는 촬영 작업은 이와는 경우가 다르다. 여기서 복제된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며, 그림을 복제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복제 과정이 예술작품인 것도 아니다. 예술작품은 영화의 경우 몽타주(Montage)의 결과로 생겨난다. 이 몽타주를 이루는 개별 조각들은 어떤 과정의 복제, 그 자체가 예술작품도 아니고 사진에서 예술작품과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도 않는, 어떤 과정의 복제이다. 이처럼 영화에서 복제되는 과정들은 예술작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64~65p]
11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배우가 깜짝 놀라는 장면을 연출해야 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러나 이때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연기가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 그는 배우가 다시 스튜디오에 나오는 기회를 잡아 아무런 예고 없이 그의 등 뒤에서 갑자기 총을 쏨으로써 그 배우의 놀라는 모습을 찍어 영화에 끼워 넣을 수 있다. 예술이 지금까지 그것이 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으로 여겨져 온 “아름다운 가상”의 왕국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71p]
12
-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동안 자기가 결국에는 이 대중과 관계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 대중이 바로 그를 컨트롤할 존재이다. 그리고 이 대중이야말로 그들이 컨트롤할 연기를 배우가 마치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으며 아직 현존하지 않는다. 이 컨트롤의 권위는 대중이 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통해 상승된다. 물론 이 컨트롤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영화가 자본주의적 착취의 사슬에서 해발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영화 자본을 통해 이 컨트롤의 혁명적 기회들이 반혁명적인 기회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영화 자본에 의해 장려되는 스타 숭배는 이미 오래전부터 상품성의 부패한 마력에 지나지 않았던 그런 개성의 마력을 보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 숭배의 상보물인 관중에 대한 숭배는 그와 동시에 대중의 부패한 상태를 촉진하고 있다. [74p]
13
- 현대의 인간은 누구나 영화화되어 화면에 나올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오늘날 글쓰기의 역사적 상황이 어떠한가를 일별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수백 년에 걸쳐 문필 분야(Schrifttum)에는 소수의 글 쓰는 사람에대해 그 수천 배에 달하는 글 읽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세기 말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정치적·종교적·학문적·직업적 제분야의 기관지와 지방지를 독자에게 보급하게 된 신문의 점진적인 확장으로 인하여 점점 더 많은 수의 독자값처음에는 소수의 독자가 그랬지만―필자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일간신문이 그들에게 ‘독자 투고란’을 개설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에 와서는 직업을 가진 유럽인치고 직업 체험담이나 항의, 르포르타주와 이와 유사한 것들을 발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필자와 독자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필자와 독자의 차이는 이제 다만 기능상의 차이가 되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게 되었다. 독자는 언제든지 필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 고도로 전문화된 노동 과정에서 싫든 좋든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비록 하찮은 분야의 전문가일망정―독자는 필자가 될 기회를 얻게 된다. 노동 자체가 곧장 말로 표현된다. 노동을 말로 서술하는 것은 노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의 일부가 된다. 글을 쓰는 권한은 이제 특별한 전문교육이 아니라 종합기술교육에서 그 기반을 얻게되고, 그럼으로써 그러한 능력은 공동재산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글쓰기에서는 수백 년이 걸렸던 변화가 영화에서는 십 년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실제를―특히 러시아 영화의 경우를―보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이미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영화에서 보게 되는 배우의 일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의 배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특히 노동 과정 속에서의 자신을―연출하는 사람들이다. 서구에서는 영화의 자본주의적 착취로 인하여 복제되기〔자기자신을 연출하기〕에 대한 현대인의 정당한 요구는 무시되고 있다. 그 밖에 거대한 대중의 무리들이 생산현장의 작업 과정에서 복제되기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을 텐데 바로 그 생산현장에서 그들을 퇴출시키는 실업으로 인해 그 권리가 무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산업은 환상은 불러일으키는 생각들과 애매한 투기로써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영화산업은 엄청난 홍보장치를 동원하였다. 즉 영화산업은 스타들의 경력과 애정행각을 이용하였고, 스타를 뽑는 투표를 실시하는가 하면 누가 더 아름다운지 경쟁을 시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대중이 영화에 대해 갖는 원초적이고 정당한 관심, 즉 자기인식과 더불어 계급인식을 얻는 데 대한 관심을 부패한 방식으로 왜곡하는 데 쓰인다. 따라서 파시즘 일반에 통용되는 것이 특히 영화 자본에 대해서 통용된다. 즉 새로운 사회적 상태에 대한 물리칠 수 없는 욕구가 은연중에 소수의 유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착취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77~78p]
14
- 외과의사는 마술사와는 극단적으로 대조가 되는 사람이다. 손을 얹어 환자를 낫게 하는 마술사의 태도는 환자의 몸에 깊숙이 손을 대는 외과의사의 태도와는 다르다. 마술사는 자신과 환자 사이의 자연스러운 거리를 계속 유지한다. 더 정확히 말해 마술사는 환자 위에 얹은 손을 통해 환자와의 거리를 좁히기도 하고 또 그의 권위를 통하여 그 거리를 크게 벌리기도 한다. 이에 반해 외과의사는 환자에게 정반대의 태도로 접근한다. 즉 그는 환자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감으로써 환자와의 거리를 크게 좁힌다. 물론 그가 환자와의 거리를 약간 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다만 그가 환자의 내부기관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룰 때뿐이다. 요컨대 외과의사는 마술사와는 달리 (일반의一般醫에게도 마술사적인 면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환자를 인간대 인간으로 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수술을 통하여 그의 내부로 파고들어 간다. 마술사와 외과의사의 관계는 화가와 카메라맨의 관계와 같다. 화가는 주어진 대상에 자연스러운 거리를 유지하는 데 반해 카메라맨은 작업할 때 주어진 대상의 조직에까지 깊숙이 침투한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이 얻게 되는 영상은 엄청나게 다르다. 화가의 영상은 하나의 전체적 영상이고, 카메라맨의 영상은 여러 개로 쪼개어져 있는 단편적 영상들로서, 이 단편적 영상들은 새로운 법칙에 의해 다시 조립된다. [79~80p]
15
-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피카소와 같은 회화에 대해서 가졌던 가장 낙후된 태도가 채플린과 같은 영화에 대해 갖는 가장 진보적 태도로 바뀐 것이다. [80p]
- 중세의 교회와 수도원, 18세기의 영주의 궁정에서만 하더라도 회화의 집단적 수용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위계적 매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러한 회화의 상황이 오늘날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면, 여기에는 영상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으로 인하여 회화가 휘말려들게 된 특수한 갈등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설령 그 당시 그림을 화랑이나 살롱에서 대중에게 보여주려고 시도했었다고 하더라도 대중에게는 그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들 스스로를 조직하고 또 서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똑같은 관객이 괴기영화 앞에서는 진보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초현실주의 앞에서는 낙후된 관객이 될 수밖에 없다. [82p]
16
- 우리들의 술집과 대도시의 거리, 사무실과 가구가 있는 방, 정거장과 공장들은 우리를 절망적으로 가두어놓은 듯이 보였다. 그러던 것이 영화가 등장하여 이러한 감옥의 세계를 10분의 1초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함으로써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진 감옥세계의 파편들 사이에서 유유자적하게 모험에 가득 찬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클로즈업된 촬영 속에서 공간은 확대되고 고속촬영 속에서 움직임 또한 연장되었다. 우리는 확대촬영을 통해 “어차피” 불분명하게 보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혀 새로운 물질의 구조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고속촬영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는 움직임의 모티프들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알려진 모티프들 속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모티프들, 다시 말해 “빠른 움직임을 천천히 진행시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는 듯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그리고 이 세상 밖에 있는 듯한 움직임”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카메라에 나타나는 것은 육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임이 분명하다. 다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의식이 작용하는 공간의 자리에 무의식이 작용하는 공간이 대신 들어온다는 점에서이다. [83p]
17
- 따라서 위기의 시기, 특히 이른바 퇴폐기에 생겨나는 예술의 괴상하고 조야한 형식들은 실제로는 그 시기의 가장 풍부한 역사적 에너지의 중심부에서 나온다. 최근에도 그러한 야만적 에너지에서 즐거움을 찾았단 예술운동을 볼 수 있는데, 다다이즘이 바로 그것이다. 다다이즘이 지닌 충동은 최근에 와서야 인식되었다. 다시 말해 다다이즘은 오늘날 대중들이 영화에서 찾고 있는 효과를 회화나 문학의 수단을 통하여 만들어내려고 했다. [87p]
- 즉 그 정신분산적 요소는 보는 사람의 눈에 단속적으로 밀려들어 오는 영화 장면들이나 시졉카메라 앵글〕들의 교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89p]
18
- 사람들이 영화에서 개탄하는 것은, 예술 애호가가 예술작품에 정신집중의 태도로 접근하는 데 반해 대중은 예술작품에서 정신분산〔오락〕을 찾는다는 점이다. 대중에게는 예술작품이 오락의 한 계기이고, 예술 애호가에게는 경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이 문제는 보다 자세히 살펴봐야 할 문제이다. 정신분산(Zerstreuung, distraction)과 정신집중(Sammlung, concentration)은 서로 상반된 개념이다. 우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작품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하는 사람은 그 작품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옛날 중국의 전설에 어떤 화가가 자기가 완성한 그림을 보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는 식으로 예술작품 앞에서 정신집중을 하는 사람은 그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오게 한다. 대중은 예술작품을 그들의 파도로 둘러싸며, 그들의 밀물로 감싸 안는다. 이러한 사정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건축물이다. 예로부터 건축은 정신분산 속에서, 그리고 집단적 방식으로 수용이 이루어지는 예술작품의 원형이었다. 건축의 수용이 이루어지는 법칙들을 보면 우리는 이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따.
건축물들은 태곳적부터 줄곧 인류를 동반해왔다. 그 사이 수많은 예술형식들이 명멸하였다. 비극은 그리스인들과 함께 생겨난 후 그들과 함께 사라져갔고 수백 년이 지난 뒤 다시 부활하였다. 여러 민족의 초창기에 생겨났던 서사시는 유럽에서는 르네상스의 종말과 더불어 사라졌다. 패널화는 중세의 창조물이지만, 그 어떤 것도 그것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주거에 대한 인간의 수요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건축술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건축술의 역사는 그 어떤 예술의 역사보다도 장구하다. 그리고 건축술이 미친 영향을 떠올려보는 것은 대중과 예술작품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모든 시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건축물의 수용은 두 가지 측면, 즉 사용과 지각, 더 정확히 말하면 촉각과 시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수용방식은 우리가 이를테면 관광객들이 어떤 유명한 건물 앞에서 주의력을 집중하여 그 건물을 수용하는 식으로 상상하면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각적인 면이 갖는 관조에 해당하는 것이 촉각적인 면에는 없기 때문이다. 촉각적 수용은 주의력의 집중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습관〔Gewohnheit, 익숙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건축에서는 심지어 습관이 시각적 수용을 규정하기도 한다. 시각적 수용 역시 본래 긴장된 관찰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심코 주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처럼 건축물을 통해 형성되는 수용방법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규범적 가치를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역사의 전환기에 인간의 지각기관에 부과된 과제는 단순히 시각, 다시 말해 관조를 통해서는 전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제는 촉각적 수용의 주도하에, 즉 습관을 통해 점차적으로 극복된다.
정신이 산만한 사람도 익숙해질 수 있다. 아니 어떤 과제를 정신분산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이미 하나의 습관이 되었음을 입증해준다. [90~92p]
19
- 전쟁의 파괴성은 사회가 기술을 사회의 기관(器官)으로 병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으며, 또 기술이 사회의 근원적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그 가공할 양상을 두고 볼 때 엄청난 생산수단과 이 생산수단을 생산과정 속에서 충분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 사이의 괴리(바꾸어 말하면 실업과 판매 시장의 결핍) 때문에 생겨난다. [95p]
- 일찍이 호메로스의 시대에 올림포스 신들의 구경거리였던 인류가 이제 그 스스로 구경의 대상이 되었다. 인류의 자기소외는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쾌락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96p]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930, 제3판)
1
2
- 가장 완벽한 복제에서도 한 가지만은 빠져 있다. 그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성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이다. 그러나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이 일회적인 현존재에서 그 작품이 존재하는 동안 처했던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 이 역사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예술작품이 물질적 구조에서 겪어온 변화들뿐만 아니라 그것이 편입된 소유관계의 변화도 포함된다. 물질적 구조에서 일어난 변화의 흔적은 화학적 또는 물리적 종류의 분석들을 통해서만 발굴할 수 있으며, 이러한 분석은 복제품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소유관계에서 일어난 변화의 흔적은 어떤 전통의 대상으로서, 이 전통을 추적하는 일은 원작이 있는 장소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원작(Original)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이 원작의 진품성(眞品性)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룬다. 어떤 청동작품의 녹청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그 작품의 진품성 여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세의 어느 특정한 필사본이 15세기의 서고에서 나왔다는 증거 또한 그 필사본의 진품성 여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진품성의 영역 전체는 기술적 복제의 가능성에서 벗어나 있고, 물론 기술적 복제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복제의 가능성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러나 진품은 손으로 이루어진 복제에 대해서는 이것을 위조품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완전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서 수공적 복제보다 더 큰 독자성을 지닌다. 예컨대 기술적 복제는 사진에서는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렌즈로는 포착되지만 인간의 육안에는 미치지 못하는 원작의 모습들을 강조해서 보여줄 수도 있고, 또 확대나 고속촬영술과 같은 기계적 조작의 도움을 받아 자연적 시각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이미지들을 포착할 수 있다. 이것이 첫째 이유이다. 둘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이 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원작의 모사(模寫)를 가져다놓을 수 있다. 기술적 복제는 원작으로 하여금 사진이나 음반의 형태로 수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해준다. 사원은 제자리를 떠나 예술 애호가의 작업실에서 수용되고, 음악당이나 노천에서 연주된 합창곡은 방 안에서 들을 수 있게 된다. [103~105p]
- 영화의 사회적 의미는 바로 그 긍정적 형태에서조차도―아니 특히 그 긍정적 형태에서―그것의 파괴적인, 카타르시스적 측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데, 곧 문화유산이 지니는 전통가치들의 청산(Liquidation)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위대한 역사영화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하게 된다. 그리고 아벨 강스가 1927년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시자, 모든 종교까지도 필름을 통해 부활될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모든 영웅들이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고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그는―물론 그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광범위한 전통의 청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106p]
3
- 비교적 큰 규모의 역사적 시공간 내부에서 인간 집단들의 전 존재방식과 더불어 그들의 지각의 종류와 방식도 변화한다. 인간의 지각이 조직되는 종류와 방식―즉 인간의 지각이 조직화되는 매체―은 자연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다.[107p]
4
5
6
7
8
- 따라서 배우의 연기가 카메라라는 수단을 통해서 보이게 된다는 점이 이러한 사정의 첫 번째 결과라면, 두 번째 결과는 자신의 연기를 관중에게 직접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배우는 무대배우에게 주어져 있는 가능성, 즉 공연하는 도중에 맞추어 자신의 연기를 조정하는 그런 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관중은 배우와의 어떠한 개인적 접촉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는 감식자의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다. 관중은 그들이 카메라와 일치감을 느낄 때라야만 배우와도 일치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관중은 카메라의 태도를 취한다. 즉 관중은 테스트한다. 이러한 태도는 제의가치들이 드러날 수 있는 태도가 결코 아니다. [122p]
9
10
- 글을 쓰는 권한은 이제 특별한 전문교육이 아니라 종합기술교육에서 그 기반을 얻게되고, 그럼으로써 그러한 능력은 공동재산의 성격을 띠게 된다. [130p]
11
12
13
14
15
- 영화는 관중으로 하여금 비단 감식자(鑑識者)의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만이 아니라 그와 아울러 이러한 영화관에서이 관중의 감시자적 태도가 주의력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제의가치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관중은 시험관인데, 정신이 산만한 시험관이다. [146p]
추기(追記)
사진의 작은 역사
- 아라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새로운 도구를 발명한 사람들이 이 도구를 자연을 관찰하는 데 응용한다면, 그들이 그 도욱에게서 바랐던 것은 이후에 이 도구를 시발로 해서 이루어질 일련의 발견들과 비교해볼 때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157p]
- 초기의 사진판은 감광도가 낮았기 때문에 옥외에서 오랫동안 햇빛에 노출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로 인해 사진에 찍힐 사람을 가능하면 한적한 곳, 그가 조용히 집중하는 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장소로 데려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초기의 사진술을 두고 오를릭은, “이러한 사진들이 단순한 성격을 띠면서도 보는 사람에게, 잘 그려진 소묘나 초상화와 똑같이, 최근의 사진들보다 더 강렬하고 오래 지속되는 감동을 주는 주요 원인은 모델을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에서 얻어진 표현의 종합에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촬영방식 자체는 모델들을 순간에서 벗어나 살도록 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속으로 들어가 살도록 하였다. 이 촬영 시간이 오래 지속되는 동안 그들은 마치 영상 속으로 성장해가는 듯했으며, 그리하여 스냅촬영에서의 모습들과는 전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냅촬영은 변화된 환경에 상응하는데, 이 환경이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어떤 스포츠맨이 사진사들이 화보잡지의 위탁을 받아 그릴 찍을 정도로 유명해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를 결정하는 것은 노출에 걸리는 몇백 분의 일 초에 달려 있는 환경으 ㄹ가리킨다. [170~171p]
- 아제가 살던 시대에 출판계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자기 사진들을 가지고 주로 아틀리에에서만 작업했고, 몇 푼 안되는 돈을 받고 팔았으며, 떄로는 달을 덧칠해 넣은 푸른 밤에 잠긴 아름다운 도시 풍경들을 보여주는 1900년경의 사진엽서 한 장 값 정도만 받고 팔아치우기도 했다. 그는 최고 장인의 경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는 늘 그늘에서 살아가는 탁월한 명인의 끈질긴 겸손함으로 그 정상에 깃발을 꽂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제가 이미 밟았던 그 극점을 자기가 발견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렇다 아제의 파리 사진들은 초현실주의 사진의 선구들이다.[182~183p]
- 아제는 “거창한 광경들이나 이른바 상징적 기념물들”은 지나쳐 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칸칸이 구두들이 늘어서 있는 신발장이라든지, 저녁부터 아침나절까지 손수레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파리의 안뜰, 식사를 하고 난 후의 식탁과 치우지 않은 채 수도 없이 널려 있는 식기들, 5라는 숫자가 건물 벽면 네 곳에 엄청나게 크게 씌어 있는 무슨무슨 가(街) 5번지의 성매매 업소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이 모든 사진들이 공허하다는 점이다. 파리 성곽의 포트르 다퀘유(Porte d'Aqueil) 성문도 비어 있고, 호화로운 계단도 비어 있으며, 안뜰도 비어 있고, 카페의 테라스도 비어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도 비어 있다. 이 장소들은 쓸쓸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정취도 없다. 사진들에 보이는 도시는 아직 아무 세입자도 찾지 못한 집처럼 말끔히 치워져 있다. 바로 그러한 성과물들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사진이 세계와 인간 사이의 유익한 소외를 준비하고 있다. [184~185p]
- 우리 시대에 자기 자신과 가까운 친지와 친구들, 연인의 사진만큼 주의 깊게 관찰되는 예술작품은 없다“고 리히트바르크가 이미 1907년에 쓰고 있는데, 이로써 그는 사진 연구를 미적 특성의 영역에서 사회적 기능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사진 연구는 오직 여기서부터만 진척될 수 있다. ‘예술로서의 사진’의 미학이 문제가 되면 논쟁이 가장 경직되었던 데 반해 예를 들어 ‘사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훨씬 덜 문제가 되는 사회적 정황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작품들을 사진으로 복제하는 작업이 예술의 기능에 끼치는 영향은 체험을 ”카메라의 노획물“로 만드는 사진을 다소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수많은 독창적인 예술 사진들을 찍어 집에 돌아오는 아마추어 사진사는 많은 들짐승을 잡아가지고 매복터에서 돌아오는 사냥꾼―그는 그것들을 장사꾼에게만 팔 수 있는데―보다 더 기뻐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들짐승이나 날짐승을 파는 가게들보다 화보가 든 신문·잡지가 더 많아지게 될 날이 목전에 닥친 듯이 보인다. 스냅사진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해두자. 그렇지만 우리가 예술로서의 사진에서 사진으로서의 예술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강세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의 이미지, 특히 조각물이나 심지어 건축물까지도 현실 속에서보다 사진 속에서 훨씬 더 쉽게 포착된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예술적 감각의 몰락과 현대인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복제기술의 발달과 함께 위대한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도 거의 동시에 변화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배치된다.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더 이상 개인들의 창조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들은 집단적 구성물이 되었고, 너무 강력해져서 그것들을 동화시키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축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에 걸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기계적인 복제방식들은 일종의 축소기술인 셈이고 또 그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작품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러지 않고서는 그 작품들은 전혀 이용할 수 없게 된다. [188~189p]
- 카메라는 점점 더 작아지고 더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은밀한 이미지들, 그 충격이 관찰자의 연상 메커니즘을 정지시키게 될 이미지들을 붙잡을 것이다. 이 자리에 사진의 표제가, 사진을 모든 삶의 상황을 문자화하는 일에 포괄시키는 그 표제가 들어서야 한다. 그 표제 없이는 모든 사진적 구성은 불확실한 것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195p]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관련 노트들
- “미란 껍질도 아니고 껍질에 싸인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미란 껍질 속의 대상이다.”―이것이 고대 미학의 정수이다. 다름 아닌 아우라인 그 껍질을 통해 미가 비쳐 나온다. 미가 비치기를 그만둔다면 아름답기를 그만둔 셈이다. [202p]
- 예술작품의 지속된 삶(Fortleben)을 예술작품의 생존경쟁의 관점에서 서술할 필요가 있다.
예술작품의 실제적인 인간성은 그것이 지닌 무한한 적응력에 있다.
예술작품이 끼치는 영향의 생산성을 재는 기준은 그 영향의 소통가능성이다.
예술의 교육적 가치와 소비적 가치는 최적의 경우(브레히트의 경우) 수렴할 수 있되 그 둘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스이들은 오직 유일한 (기계적) 복제형식만을 갖고 있었는데, 동전이 그것이다.
그들은 예술작품을 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작품은 지속성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영원한 예술.
그리스인들의 예술이 지속성에 의존하듯이, 현재의 예술은 소모성에 의존한다.
이 소모성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하다. 즉 유행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또는 정치 속에서 그것을 기능 전환(Umfunktionierung)함으로써
복제 가능성-정신분산-정치화
교육적 가치와 소비적 가치는 수렴한다. 이로써 새로운 종류의 학습이 가능하다.
예술은 상품과 접촉하여 등장하고, 상품은 예술과 접촉하여 등장한다.
[206~207p]
- 임시적 명제들
①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재조립하는 데로 이끈다.
②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현재화한다.
③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정치화한다(혹은 문자화한다).
④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소모시킨다.
⑤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그 최적의 작업 가능성을 영화에서 구현한다. 영화는 예술작품의 기술복제시대에 어울리는 예술형식이다.
⑥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정신분산(오락)의 대상으로 만든다.
⑦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지난 시기의 예술작품들 사이의 생존경쟁을 극대화시킨다.
⑧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회화 앞에서 낙후했던 관계가 이를 테면 희극영화 앞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관계로 변한다.
[208p]
- 광고 그래픽에서 시작하여 신문광고를 거쳐 라디오 방송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중요한 요소들이 자본의 이해관계와 점점 더 혼합되고 있는 것을 추적할 수 있다. 이것이 결코 단순한 해체 과정이 아니라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자명하다. 정신이 산만한 개인들의 집합을 겨냥하는 광고 속에서 예술은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을 통해 인간적인 시험을 하게 될 표본에 대해 상업적인 시험을 해보고 있다. 곧 대중을 통한 수용의 표본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광고와 예술 사이에 근본적인 경계를 긋고자 하는 태도가 비생산적임을 내포한다. 그에 비해 생산적인 것은 예술 생산의 극단적 형식들, 예를 들어 예배의 이미지와 광고의 이미지를 서로 대립시키고 또 예술작품 앞에서 집중하는 사람의 태도는 언제든지 종교적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반면에 예술작품을 자신에게 작용하도록 하는 산만한 대중의 태도는 언제든지 정치적 태도로부터 그들의 인간다운 형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일이다. 우선 세계사적 상황에서 극단은 서로 통한다는 사실의 확인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플래카드 앞에서 일찍이 예배의 상 앞에서 그랬듯이 예술 애호가도 없고 속물도 없다. [214p]
- 새로운 것이 승리하는 것을 도와주는 가장 확실한 중개자는 옛것에 대한 지루함이다.
예술의 두 기능 : 1) 인류를 특정한 이미지들과 친숙해지도록, 그것을 추구하다 보면 똑같은 이미지들이 생겨나게 될 어떤 목적들이 의식에 주어지기 전에, 친숙해지도록 만드는 일. 2) 그것들이 실현되면 사람들 스스로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하게 될 어떤 사회적 경향들로 하여금 이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갖도록 도와주는 일. [219p]
러시아 영화예술의 상황에 대하여
오스카 슈미츠에 대한 반박
채플린
채플린을 회고하며(1929)
미키마우스에 대해(1931)
- 따라서 여기서 미키마우스 영화들의 엄청난 성공의 토대가 된 것은 “기계화”나 “형식적인 것”, “오해”가 아니라 관객이 자신의 삶을 그 영화들 속에서 재인식한다는 데 있다. [260p]
연극과 방송
그들 교육 작업의 상호 컨트롤을 위하여
- 즉 라디오 방송을 연극과 비교할 때 더 새로운 기술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더 명백하게 드러난 기술을 나타낸다. 라디오 방송은 연극과는 달리 고전기를 겪지 않았다. 그러면서 라디오 방송이 포괄하는 대중은 훨씬 더 크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라디오 방송의 장치가 바탕을 두는 물질적 요소들과 그것의 작품들이 바탕을 두는 정신적 요소들은 청취자들의 이해에 맞게 서로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렇다면 연극은 그에 대해서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수단을 투입하는 일 말고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연극의 상황은 위기 국면에서 다른 어떤 물음보다 다음의 물음에서 가장 단호하게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연극에서 살아 있는 인물을 투입하는 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265p]
[서평] 지젤 프로이트의 『19세기 프랑스에서의 사진-사회학적·미학적 에세이』
- “한 작가가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그만큼 그의 작품의 성격은 더 뚜렷하고 확연하게 그 시대의 성격에 좌우된다. 달리 말하자면(강조는 필자) 사람들이 ‘개인적’이라고 칭할 수 있을 요소를 그만큼 더 그 작품에서 찾아낼 수 없다. [274p]
파리 편지Ⅱ
- 그렇지만 잘나가는 화가들은 자신의 인격을 걸고 시장에 진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거래 상인과 살롱이 있다. 어쨌거나 그들의 떠돌이 동료들은 아직 가장 많이 멸시를 받는 상태에 있는 회화와는 좀 다른 것을 전시하고 있다. 그들은 팔레트와 화필을 다룰 줄 아는 중간급의 능력이 얼마나 확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점에서 그들은 앞서 언급한 토론들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앙드레 로트(André Lhote)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들에게 그런 자리를 인정해주었다. “오늘날 회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조만간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 그렇지만 한 아마추어가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날부터 회화는 말하자면 그것이 범속한 사람에게 지니는 종교적 매혹과 같은 것을 그 아마추어에게 미치기를 그만두게 된다”(『앙트레티앙』, 39쪽). 한 사람이 스스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고서 회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에 대한 관념을 따른다면, 사람들은 길드제도의 관념에 이르게 된다. [278~279p]
- 회화는 “거의 지난 시대의 잔재에 불과한 것이 되었고, 회화에 빠진다는 것은 …… 개인적인 불행이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회화가 아니라 예술평론계가 늘어놓고 있는 생각들이다. 예술평론은 겉보기에만 관객에 봉사하지 실제로는 예술 거래상에 봉사한다. 예술평론은 개념이란 것을 모르며, 계절마다 바뀌는 은어만 알 뿐이다. [281p]
- 왜냐하면 그러한 복제는 수많은 경로를 통하여―산업적인 그래픽의 경로든 광고 그림의 경로든, 민중이 하는 도해의 경로든 과학적 도해의 경로든―사회의 생산 수준과 교양 수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처럼 이미지의 쓸모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원초 개념이 사진을 통해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이 확장된 형태가 그 개념의 현재 형태이다. 현재의 토론은 그 토론이 사진을 분석에 끌어들이면서 사진이 회화에 대해 갖는 관계를 밝혀주는 곳들에서 정점에 이르고 있다. [283p]
- “하나의 예술이고자 하는 사진의 요구는 바로 사진을 가지고 장사를 했던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었다”(프로인트, 49쪽). 달리말해 하나의 예술이고자 하는 사진의 요구는 사진이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286p]
- 쿠르베의 특수한 위치는, 그가 사진을 추월하려고 시도할 수 있던 최후의 화가라는 점에 있다. 이후 사람들은 사진을 피하려고 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제일 먼저 그러했다. 그려진 그림은 도안적 장치를 벗어나고 있다. 그림은 그로써 어느 정도 카메라와의 경쟁을 피하게 된다. 사진은 사진 나름대로 세기 전환기에 인상파 화가들을 모방하는 시도들을 통해 시험을 한다. -중략- 아라공은 이 맥락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화가들은 …… 사진기에서 경쟁자를 보았다. …… 그들은 사진기와는 다른 것을 해내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그들의 거창한 구상이었다. 인류의 중요한 이기(利器)를 그렇게 오해한다는 것은 …… 결국 …… 그 화가들에게서 반동적인 태도를 …… 낳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다. 화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 진짜 무지한 자들이 되었고, 이 점은 대개 재능 있는 화가들에 해당되었다.”[2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