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에르빈 파노프스키 | 옮긴이 / 이한순
도상해석학 연구 : 르네상스 미술에서의 인문주의적 주제들
STUDIES IN ICONOLOGY : Humanistic Themes In the Art of the Renaissance
2001년 12월 25일 초판 1쇄 발행
2009년 4월 21일 초판 5쇄 발행
지은이 : 에르빈 파노프스키
옮긴이 : 이한순
발행인 : 전재국
발행처 : (주)시공사·시공아트(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682-1 우편번호 137-879)
- 앞서 우리의 실제 경험을 수정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물체와 사건이 다양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어떤 방식으로 형태를 통해 표현되는가에 관한 통찰력, 즉 양식사를 참고할 수 있었듯이 문헌 원천에 관한 지식을 수정하고 통제하는 데 있어 특정 테마나 개념이 다양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어떤 방식으로 물체와 사건을 통해 표현되는가에 관한 통찰력, 즉 유형사를 동원할 수 있다. [37p]
- 앞서 보았듯이 실제 경험과 문헌 지식은 무비판적으로 미술작품에 적용될 때 그릇된 해석을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오로지 직관만을 그대로 믿는 경우 그 위험성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물체와 사건이 다양한 역사 조건 아래서 어떠한 방식으로 형태를 통해 표현되는가(양식사)를 꿰뚫어 봄으로써 우리의 실제 경험을 바로 잡고, 특정 테마와 개념이 다양한 역사 조건 아래서 어떤 방식으로 물체와 사건을 매개체로 표현되는가(유형사)를 투시함으로써 문헌 지식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과 같이, 그보다 더 조심스럽게 우리의 종합 직관을 검증하고 보완해야 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수단은 인간 정신의 일반 본질적 성향이 다양한 역사 조건 아래서 특정 테마와 개념을 매개체로 표현될 때 어떤 방식을 취하는가에 대한 통찰력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문화적 징후(또는 에른스트 카시러적 의미의 ‘상징’)의 역사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사가는 자신이 연구하는 어떤 미술작품이나 작품군에서 본래 의미로 여겨지는 것을 확보하는 한편, 또한 그 작품 또는 작품군과 역사적으로 연관된 문화의 여타 증거기록들을 가능한 한 많이 조사하여 본래 의미라 여겨지는 것을 확보하는 한편, 또한 그 작품 또는 작품군에서 본래 의미라 여겨지는 것을 정제한 후 양편을 대조하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증거기록들은 연구 대상으로 다루어지는 인물이나 시대, 혹은 국가의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 사회적 성향 등에 관해 증거를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정치나 문학, 종교와 철학 및 사회 상황에 관하여 연구하는 역사가들도 유사한 방법으로 미술작품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말한 나위도 없다. 다양한 인문과학 분야의 학자들은 본래 의미나 의미 내용을 추적함으로써 단순한 상호 보조를 넘어서 하나의 공통된 활동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40~41p]
- 어떤 상황을 매우 엄격하게 표현하고자 하면(물론 평상시의 대화나 글에서는 문맥을 통해 단어들의 의미가 분명해지므로 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주제나 의미의 세 가지 층을 구분해야만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는 대체로 형태와 혼돈되며, 두 번째 단계는 좁은 의미에서의 도상학이라는 특별 영역에 속한다. 두 단계에서의 확인과 해석 작업은 주관적 도구에 의해 좌우되며,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역사적 진행 과정(이를 모두 종합하여 전통이라 부를 수 있다)에 대한 통창력으로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 설명했던 것을 요약해서 개관적 도표로 작성해 보았다. 그러나 이 도표가 보여 주는 단정하게 구분된 범주들이 세 개의 독립된 의미 영역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 이 범주들은 한 가지 현상, 즉 하나의 완전체인 미술작품에 속하는 여러 측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무관한 세 개의 연구 작업처럼 보이는 접근 방법은 실제로 상호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적 과정으로 합쳐지는 것이다.
해석의 대상
해석 행위
해석 도구
해석의 수정 원리
Ⅰ.일차적 또는 자연적 주제-(A) 사실, (B) 표현 의미-로 예술의 모티프의 세계를 구성한다.
전도상학적 기술(일종의 형식적 분석)
실제 경험(사물과 사건에 관한 친밀성)
양식사(물체와 사건이 다양한 역사 조건 아래서 어떠한 방식으로 형태를 통해 표현되는가에 관한 통찰력)
해석의 대상
해석 행위
해석 도구
해석의 수정 원리
Ⅱ. 이차적 또는 관습적 주제로 이미지, 이야기, 알레고리의 세계를 구성한다.
좁은 의미의 도상학적 분석
문헌적 지식(특정 테마나 개념에 관한 친밀성)
유형사(특정 테마나 개념이 다양한 역사 조건 아래서 어떠한 방식으로 물체와 사건을 통해 표현되는 가에 관한 통찰력)
Ⅲ. 본래 의미 또는 의미 내용으로 ‘상징’ 가치의 세계를 구성한다.
깊은 의미의 도상학적 해석(도상학적 종합)
종합 직관(인간 정신의 본질적 성향에 관한 친밀성)으로서 개인의 심리와 ‘세계관’에 의해 좌우된다.
문화적 징후 또는 일반적인 ‘상징’의 역사(인간 정신의 본질적 성향이 다양한 역사 조건 아래서 어떤 방식으로 특정 테마와 개념을 통해 표현되는가에 관한 통찰력)
[40~42p]
- 중세 사람들이 고전 미술의 뛰어난 조형 가치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고전 문학의 지적, 시적 가치에 대해서는 오히려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중세 전성기(13-14세기) 동안 고전 모티프가 고전 테마를 재현하는 데 사용되지 않았고, 또 반대로 고전 테마가 고전 모티프를 통해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43p]
- 이와 같이 고전 모티프는 비고전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고, 고전 테마는 비고전적 무대를 배경으로 비고전적 인물에 의해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이 신기한 분리 현상의 원인은 분명 조형 전통과 문헌 전통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던 사실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헤르쿨레스 모티프를 예수의 이미지로 사용하거나 아틀라스 모티프를 복음서 저자의 이미지로 이용했던 미술가들은 도 7-10 전적으로 눈앞에 세워 둔 시각적 모델로부터 영향을 받고 작업했다. 그들은 직접 고전 기념물에서 복사하기도 했고 또는 변형된 형태를 통해 고전 원형을 간접적으로 접함으로써 제작된 최근의 다른 작품을 재모방하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메데아를 중세의 공주 모습으로, 유피테르를 중세의 재판관으로 재현했던 미술가들은 오로지 문헌에서 발견되는 내용을 형상 이미지로 번역해 냈다.
고전 테마, 특히 고전 신화에 대한 지식을 중세에 전달하고 보존한 것은 문헌 전통이며, 그 문헌 전통은 주세 전문가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의 도상학자에게도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심지어 15세기의 이탈리아 사람들도 대부분 원래의 고전 원천보다는 바로 이 복잡하고 때로는 상당히 변질되어 버린 문헌 전통을 통해 고전 신화나 그것과 관련된 주제에 관한 지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47~52p]
- 조형 전통과 텍스트 전통의 대비는 이렇듯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중세 전성기 미술의 특징인 고전 모티프와 고전 테마의 기묘한 분리 현상이 온전히 설명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설령 어떤 고전 이미지 영역에서 재현전통이 잔존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중세 고유의 양식이 확립되면서 그것이 의도적으로 제거되고 대신 완전히 비고전적인 성격의 재현 방식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56p]
- 이 모든 것이 시사하는 바는 고전 테마와 고전 모티프의 분리가 재현 전통의 결여로 인해 야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재현 전통이 잔존하던 경우에도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고전 이미지(즉 고전 테마와 고전 모티프가 결합된 것)는 카롤링거 시대에 열병이 걸린 듯 고전에 심취했던 예술가들에 의해 복사되었지만, 중세 문화가 절정에 다다르면서 곧 관심 영역 밖으로 사라졌고, 15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탈리아에서 다시 등장할 수 있었다. 고전 테마와 고전 모티프가 완전히 무(無)로 돌아가 버린 후 그것을 다시 재결합한 것은 본래의 르네상스가 누렸던 특권인 것이다.
중세 사람들에게 고전 고대는 아주 먼 과거의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퇴색한 역사 현상으로 보기에는 매우 강하게 현존하고 있었다. 고전 문화가 한편으로 단절되지 않은 채 연속성을 지니고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의 황제는 케사르나 아우구스투스의 직속 계승자로 간주되었고, 언어학자들은 키케로와 도나투스를 그들의 선조로 보았으며, 수학자들은 그들의 조상을 유클리드에게서 발견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교와 기독교 문화 사이에 극복될 수 없는 괴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두 문화 성향이 미처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역사적 거리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전 세계는 많은 중세인에게 당대의 이교도 동방과 같이 머나먼 동화 같은 성격을 띠고 있었다. [59~61p]
- 중세 미술에서는 고전 모티프가 깊은 사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전용(轉用)되었던 반면, 르네상스 인들은 그러한 전용 작업을 이론적 근거에 입각해서 정당화하려 애썼다. 그래서 뒤러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교인들은 그들의 신 아블로(Abblo)에게 더없는 아름다움을 부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인 주 예수를 위해 아블로의 이미지를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교인들이 베누스를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재현했듯이 우리는 성스러운 동정녀, 신의 어머니를 재현핧 때 그 베누스의 아름다운 특징들을 고귀하게 그려 내야 할 것이다.”
고전 이미지들이 이렇듯 신중히 재해석되는 한편 또 다른 쪽에서는 재생된 고전 전통이 잔존하는 중세 전통과 아주 자연스럽게, 또는 심지어 자동적으로 융합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고전 인물이 중세 시대에 철저히 비고전적으로 변신한 후 (제1장에서 간단히 설명되었듯이) 르네상스에 이르러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맨마지막에 탄생한 이미지는 흔히 그 진행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 주곤 한다. 어떤 중세 시대의 복장이나 상징물은 새로 만들어진 형태 속에서도 없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게 되었고 또 그렇게 전승된 중세적 요소는 새로운 이미지의 일부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내가 위(爲)변형(pseudomorphosis)으로 칭하려는 것이 발생하였다. 어떤 르네상스 인물 모티프는 전적으로 고전적인 모습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 원형에는 없고 고전 문학에서만 종종 예시되었던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중세 선조 덕분에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고전 시대에 미술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을 때로 그림으로 번안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저서의 제3장과 4장에서는 고전 인물로 알려진 두 개의 이미지를 분석함으로써 ‘위변형’의 전형적인 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두 인물은 같은 종류의 많은 이미지들과는 달리 19세기 말 인무주의 주제가 미술에서 대대적으로 추방될 때 퇴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오늘날까지도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어서 발렌타인 데이나 연하장 카드 외에도 만화나 진지한 광고 매체에까지 등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두 인물은 아버지 시간(Father Time)과 앞 못 보는 쿠피도(Blind Cupid)이다.[128~129p]
- 예를 들어 바워리 저축은행의 광고에 등장하는 아버지 시간은 삽화1 그 전형적 본보기 가운데 하나이다. 의인상임을 확인해 주는 상징물들 가운데 여기서는 노년과 긴 낫만이 표현되어 있다. 전통적 형태는 그러나 일반적으로 더 다양한 상징물들을 갖춘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에서 아버지 시간은 보통 날개가 달려 있고 대부분 나신이다.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시간(Time)의 상징물은 긴 낫(scythe) 혹은 작은 낫(sickle)이며, 여기에 모래 시계,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이나 용, 또는 12궁(zodiac)이 경우에 따라 첨가되거나 대체되곤 한다. 또한 목발에 의지하고 걷는 모습도 빈번히 관찰된다.
이와 같이 비교적 정교한 이미지에 속하는 특징 가운데 어떤 것은 고전이나 고대 말기에 재현된 시간의 모습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의 아버지 시간 유형이 보여 주는 독특한 상징물 결합 방식은 고대 미술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고대 미술에서는 대략 두 가지 주요 유형의 개념과 이미지가 전개되었다. 하나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로 재현한다. 카이로스는 인간의 삶이나 우주의 발전 과정에서 전환점을 기록하는 W랍고 결정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통속적으로 기회(Opportunity)로 알려진 인물 모티프로 표현되었다도35. 기회의 의인상은 잽싸게 움직이고 있는 남자(원래는 나신)로 묘사되었다. 이 인물은 시간이 그리스 시에서 때로 폴리오스(백발의 인물)라 일컬어지는데도 일반적으로 젊게 표현되며 아주 늙은 모습을 한 경우는 결코 없었다. 그는 또한 어깨와 발목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 기회의 상징물로는 먼저 저울을 꼽을 수 있는데, 이 물체는 애초에 면도날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형태로 묘사되었다. 다소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한두 개의 바퀴가 상징물로 포함되었으며, 그 외에는 속담에서 언급되듯이 머리에 머리 타래가 달려 있어 이를 낚아챔으로써 대머리인 기회를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난해한 알레고리적 특성으로 인해 카이로스나 기회의 이미지는 고대 말기와 중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이미지는 11세기까지 계승되었으며, 그 후에는 행운(Fortune)의 의인상과 융합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렇듯 융합 형태가 선호된 이유는 카이로스를 뜻하는 라틴어 오카시오(occasio)가 행운을 의미하는 포르투나(fortuna)와 마찬가지로 여성 명사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카이로스의 정반대 개념도 고대 미술에 재현되어 있다. 이는 이란에서 통용되던 시간 개념 아이온(Aion)으로서, 영원하며 고갈되지 않는 창조성이라는 신적인 원리를 의미한다. 아이온의 이미지는 우선 미트라(Mithra) 숭배(이란의 태양신 숭배 전통-옮긴이 주)와 연계성을 지니며, 이 경우 사자의 머리와 발톱을 지니고 날개를 단 섬뜩한 인물이 커다란 뱀에 의해 몸체가 단단히 감긴 채 손에 열쇠를 쥐고 등장한다. 또 아이온은 보통 파네스(Phanes)로 알려진 오르페우적 신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때는 날개달린 아름다운 젊은이가 12궁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우주적 힘을 뜻하는 여러 상징물을 지니고 나타나며 이 인물 역시 뱀에 휘감겨 있다도36.
이와 같은 고대 그림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서도 결코 모래 시계, 긴 낫 혹은 작은 낫, 목발, 특히 고령임을 가리키는 표시 따위의 모티프가 발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고대의 시간 이미지는 순간적인 속도와 불안정한 균형을 상징하는 물체로 설명되거나 보편적 힘과 무한한 생산력을 상징하는 모티프로 그 성격이 결정되지만 쇠퇴나 파괴를 상징하는 요소를 통해 표현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시간의 가장 고유한 이 상징물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흐르노스(Chronos)가 신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고 무서운 크로노스(Kronos, 로마의 사투르누스)의 이름과 매우 유사했던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크로노스는 농업의 수호신이었으므로 일반적으로 작은 낫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 가운데 연장자에 속하기 때문에 본래 늙은이였으며, 그래서 뒤에 고전의 대표 신들이 하늘의 천체로 연결될 때 사투르누스는 가장 높고 가장 느린 혹성과 연결되었다. 종교적 숭배 관습이 점차 해제되어 마침내 철학적 공론으로 대체되었을 때, 흐로노스와 크로스느 두 단어가 우연히 지녔던 유사성은 두 개념이 사실상 동일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인용되었으며 그들은 실제로도 특징을 일부 공유하고 있었다. 두 개념이 동일함을 처음 글로 기록한 작가 플루타르쿠스에 따르면, 헤라가 공기를 그리고 헤파이토스가 불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로노스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이 견해를 물리적인 근거보다는 형이상학적 이유에서 수용하였다. 그들은 신과 인간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누우스, 즉 우주 지성(Cosmic Mind)으로 해석하였고(반면 그의 아들 제우스 내지 유피테르는 그 ‘유출물emanation', 즉 프시케, 또는 우주 영혼Comic Soul으로 비유했다.). 그래서 이 개념을 흐로노스, 이른바 ’모든 사물의 아버지‘, ’지혜로운 노장 건축가‘의 개념과 쉽게 융합시킬 수 있었다. 기원 후 4세기와 5세기의 지식인 문필가들은 크로노스-사투르누스에게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이나 용 따위의 모티프를 새로운 상징물로 첨가하기 시작했는데, 이 모티프들은 그의 시간적 속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크로노스-사투르누스 이미지의 원래 특징들을 시간의 상징으로 재해석하기도 하였다. 크로노스의 상징물인 작은 낫은 전통적으로 농기구나 거세 도구로 설명되던 것이었는데 이제 ’마치 낫처럼 스스로에게 되돌아오는 시간(tempora quae 냐쳣 falx in se recurrunt)'의 상징으로 설명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시모니데스는 이미 시간을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그리고 오비디우스는 ‘사물을 남김없이 먹어 치우는(edax rerum)'이라는 형용구로 묘사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크로노스-사투르누스가 자신의 친자식들을 집어삼켰다는 신화는 시간이 자신에 의해 창조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본래의 시간 도상학이 아니라 크로노스-사투르누스의 도상학에서 증거를 찾아 보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시간의 이미지를 궁극적으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낸 종합의 과정은 많은 변천을 겪으면서 진행되었다. 고전 미술에서 크로노스나 사투르누스는 완벽한 위엄을 갖추면서도 다소 침울한 임물로 묘사된다. 그의 특징으로는 작은 낫과 머리를 덮은 베일을 꼽을 수 있으며 도 38, 앉아 있는 자태일 경우 턱을 손에 괴고 슬픔에 잠긴 모습을 하고 있다. 날개를 단 자태는 일절 보이지 않으며 지팡이나 목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같은 모습은 중세 시대 동안 변화되었다. 제1장에서 간단한 정리된 바 있는 정상적인 변천의 개요에 따르면, 사투르누스의 고전 이미지는 카롤링거와 중기 비잔틴 미술에서 때로 재생되었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에만 생존할 수 잇었다. 사투르누스의 고전 유형에 대한 가장 훌륭한 예는 폼페이의 디오스쿠리 저택(Casa dei Dioscuri)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러한 고전 유형을 거의 문자 그대로 반복해서 재현하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기 354년의 연대기(Chronograph of 354)' 또는 ’필로칼루스 달력(Filocalus-Calendar)으로 알려져 있는 4세기의 한 달력 도 39을 복사한 작품들이다. 둘째, 카롤링거와 비잔틴에서 유래한 점성한 논저에 등장하는 ‘혹성의(儀, planetaria)'들이다. 셋째, 11-12세기에 제작된 성 그레고리우스의 『설교집 Homilie』필사본에서도 그와 같은 사투르누스 그림이 발견되는데, 여기서는 사투르누스 신화이 사건들이 세속 신들의 불명성을 암시하는 다른 장면들과 함께 등장한다. 이러한 세밀화에서 사투르누스는, 어린 유피테르를 대신해서 천에 싸인 돌을 먹어 삼키고 있다 도 42. 넷째, 라바누스 마우루스의 백과사전 『우주에 관하여』는 현재 별개의 두 복사본으로 보존되어 잇다. 하나는 1023년 몬테카시노에서 도 40, 그리고 다른 하나는 15세기 전반에 남부 독일에서 도 41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몬테카시노 필사본에서 고전의 작은 낫(뒤에 제작된 독일 판에서는 충실히 보존되어 있다)이 이미 현대적인 긴 낫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카롤링거 미술은 중세 전성기를 거치면서 서양 미술의 영역에서 추방당한 후 15세기까지 잊혀졌고, 그 기간에 완전히 비고전적인 유형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유피테르나 베누스처럼 사투르누스도 혹성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신화해설서는 물론 점성학 저서에 삽입된 그림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이미지로 등장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혹성으로서의 사투르누스는 묘하게 불운한 인물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요즈음도 우리는 ‘나태하고 침울한 기질’(옥스퍼드 사전을 인용하자면)을 말할 때 ‘사투르누스적(saturi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투르누스의 세력 아래 있는 사람들은 권세와 부를 얻을 수는 있으나 친절하거나 관대하지는 못했고, 지혜를 소유할 수는 있으되 행복해질 수는 없었다. 사투르누스의 별자리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우울한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조건부적인 장점들조차 단지 극소수의 사투르누스 ’자식들‘에게만 허락되었다. 혹성들 가운데 가장 차갑고 건조하고 느린 사투르누스는 일반적으로 노년, 비참한 빈곤, 죽음 등과 연관되었다. 사실 죽음(Death)은 사투르누스는 홍수나 기근 따위의 모든 재난을 들고 등장했었고 도 43, 사투르누스는 홍수나 기근 따위의 모든 재난을 야기하는 장본인으로 간주되었다. 그의 위력 아래 출생한 사람은 가장 비참하고 기피하고 싶은 인간 유형으로 분류되어, 예컨대 절름발이, 구두쇠, 거지, 범죄자, 가난한 농부, 변소 청소부, 무덤 파는 사람 등이 그 범주에 속했다. 15세기 말엽에야 비로소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자드은(그들이 르네상스 미술에 끼친 영향에 관하여는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에서 다시 다루어질 것이다) 플로티노스적 사투르누스 개념으로 관심을 되돌렸다. 그들은 사투르누스를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명상의 대표젹 인물이자 후원자로 보았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유피테르는 좀더 실제적이며 합리적인 지성으로 이해하였다. 신플라톤주의의 이러한 복귀 움직임은 사투르누스적 우울성을 궁극적으로 천재와 동일시하기에 이르지만, 사투르누스가 혹성들 가운데 가장 심악하다는 대중적 믿을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하였다.
점성학 관련 그림들에서(이들은 부분적으로 아라비아 원천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비우호적인 의미들은 계속해서 강조되었다. 사투르누스는 대체로 침울하고 병든 노인으로 등장하며 흔히 투박한 자태를 보인다. 그의 작은 낫이나 큰 낫 대신 곡괭이 홉은 삽이 빈번히 재현되곤 하는데, 심지어 사투르누스가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재현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 44. 그리고 이 삽은 지팡이나 목발로 변형되는 경향을 띠며, 이로써 늙음과 일반적인 노쇠 개념이 표현되었다 도 48. 마지막 결과로 나타난 사투르누스의 모습은 목발을 단 절름발이로서, 이는 그가 더욱 혐오스러운 불구가 되리라는 것을 예시해 준다 도 49. 인간의 성격과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곱 혹성의 이론은 15세기와 16세기 초 이탈리아 미술에서뿐 아니라 특히 북구에서 매우 대중적 인기를 누린 주제이며, 그와 같은 세밀화나 판화에서 묘사되는 사투르누스의 ‘자식들’의 특징적 요소들은 ‘아버지’의 부정적 속성을 다채롭게 반영한다. 그러한 그림들에는 가난한 농부들, 목재 벌채인, 죄수들, 절름발이, 교수대 위의 범죄자들 등이 모여 있으며, 거기에 유일하게 구원의 요소로 등장하는 모티프가 수도승이나 은둔자로서 이들은 관상적(觀想的)삶(vita contemplativa)의 하위급 대표자에 속한다 도 48.
오로지 문헌 원천을 근거로 해서 성립되고 전개된 신화해설서의 세밀화에서 사투르누스의 모습은 환상적인 것에서 끔찍하고 불쾌한 것으로 변화발전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초기의 본보기는 앞서 언급했던 서기 약1100년경의 레겐스부르크 드로잉이다. 도 13. 여기서 사투르누스는 펄럭이는 커다란 베일을 쓰고(이는 ‘베일을 쓴 머리 caput velatum' 혹은 ’푸른 덮개를 두른 glauco amictu coopertum'이라는 구절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은 낫과 큰 낫을 들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외에도 자신의 꼬리름 nf고 있느 s용의 모티프를 지니고 있다. 그 표준 유형은 『오비디우스의 도덕적 신화 이야기』와 그로부터 파생된 필사본들이 세밀화로 장식되기 시작하던 14세기에 발전되었다. 이 그림들은 보통 사투르누스 신화와 연관된 부수적 인물들을 포함하였는데, 이로써 그의 불운한 성격 묘사에 극적인 효과가 더해졌고 점성학 세밀화보다 훨씬 날카롭게 그의 잔악하고 파괴적인 속성이 강조될 수 있었다. 삽화가들은 끔찍한 거세 과정이나 아이를 산 채로 먹어 삼키는 행위를 서슴없이 묘사했는데, 이러한 장면은 고전 미술에서는 전혀 재현되지 않았었다. 이와 같은 식인 풍습의 이미지는 후기 중세 미술에서 고정적 유형으로 수용되기에 이르렀고 도 45, 마침내 점성학 그림과 융합되어 때로 거세 장면과 아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결합하거나 도 46 먹는 행위와 목발 모티프가 연결된 경우를 접하게 된다. 먹어 삼키는 장면과 거세모티프는 둘 다 다소 고전주의적인 형태로 전성기 르네상스 도 47와 바로크 뿐 아니라 그 이후의 미술에까지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고야의 무시무시한 사투르누스는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고, 거세 장면은 줄리오 로마노의 것으로 추정되는 빌라 란테(Villa Lante) 벽화에서도 발견된다.
화가들이 페트라르카의 『승리 Trionfi』를 세밀화로 장식하기 시작할 즈음의 상황은 이상과 같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정숙(Chastity)은 사람(Love)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죽음은 정숙에 대해, 명성(Fame)은 죽음에 대해 그리고 시간은 명성에 대해 승리의 개가를 올리지만 결국 영원(Eternity)에 의해 정복당하고 만다. 페트라르카는 “그가 이끄는 대로 귑게 가며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andar leggiero dopo la guida sua, cha mai non posa.)"라는 언급 외에는 달리 시간의 모습에 관해 묘사하지 않았으므로 세밀화가들은 시간을 원하는 대로 자유로이 재현할 수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본래적 의미의 시간이 몇몇 형태의 스콜라적 의인상으로 고안되어서, 1400년 경 제작된 한 프랑스 세밀화에서는 시간(Temps)이 세 개의 머리(과거, 현재, 미래를 가리킨다)와 네 개의 날개를 지닌 모습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네 날개는 각기 사계절을, 그리고 깃털은 각기 열 두달을 상징한다 도 50. 그러나 이와 같이 이론적 성격을 띤 이미지들은 페트라르카가 생각하던 위세 당당하고 무자비한 파괴자의 본질적 속성을 표현하기에 부적당한 듯 보였다. 페트라르카의 시간은 추상적인 철학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경종을 울리는 힘이었다. 그러므로 세밀화가들이 온순한 프랑스 식 시간의 의인상과 사투르누스의 불운한 이미지를 결합하기로 한 일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프랑스 식 시간에서 날개의 모티프를 받아들이고, 사투르누스로부터는 섬뜩하고 노쇠한 외모와 목발, 그리고 큰 낫과 먹어 삼키는 모티프 따위의 매우 사투르누스적인 특징들을 수용했다. 이 새로운 이미지가 시간의 의인상임을 강조하기 위해 그 외의 모티프들도 동원되었는데, 가령 이 새로운 삽화에서는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모래시계가 빈번히 관찰되며, 때로 12궁이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용이 발견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페트라르카 세밀화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본보기를 이루는 다섯 작품에 국한하여 언급하겠다. (1) 15세기 말의 베네치아 목판화. 이는 중세 프랑스 식 시간의 의인상과 연계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인물이 경직된 정면의 자세를 취하고, 사계절을 상징했던 네 개의 날개를 달고 있다 도 52. (2) 페셀리노(Pesellino)의 것으로 추측되는 카소네 패널. 여기서 날개가 다시 두 개로 줄어들어 정상화되었다 도 54. (3) 야코포 델 셀라이오(Jacopo del Sellaio)의 카소네 패널.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새롭고 생소한 상징물들이 잠입해 들어왔다. 모래시계 외에도 해시계와 두 마리의 쥐가 등장한 것이다. 쥐는 검은색과 흰색이며, 매일 낮과 밤에 의해 파괴되는 생명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도 55. (4) 또 다른 베네치아 목판화. 이 그림에서 날개는 사라졌으나 큰 낫은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자신의 꼬리를 문 용 모티프를 통해 무한한 순환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앞서 본 베네체아 목판화처럼 여기서도 시간의 파괴적 위력은 메마른 가지와 건물 폐허가 있는 황폐한 자연 광경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도 53. (5) 페트라르카의 16세기 발행본에 실린 목판화. 여기서 시간은 중세 말의 사투르누스 전통에 따라 어린아이를 먹어 삼키는 날개 달린 인물로 재현되었다. 그러면서도 노쇠한 늙은이는 비록 목발을 짚고 있을지언정 여전히 건장한 나신의 이미지로 변형됨으로써 전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적 성향을 분명히 드러낸다 도 56.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아버지 시간의 기원이다. 반은 고전적이고 반은 중세적이며, 반은 서구적이고 반은 동방적인 이 인물은 한 철학적 원리의 추상적인 장엄함뿐 아니라 파괴적인 악마의 사악한 탐욕도 명료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이미지의 풍부한 복합성을 통해 아버지 시간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에 빈번히 등장하고 다양한 상징 의미를 전달하게 된 이유를 추정해 낼 수 있다. [129~159p]
- 아버지 시간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일견 순전히 고전의 성격을 지니는 듯한 이미지 속에 중세의 특성들이 침투해 있다는 점이 입증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단순한 ‘도상학’과 본래 혹은 본질적인 의미 간에 연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예증되는 것이다.
시간이 오직 빠르게 움직이는 기회(‘카이로스’)나 창조적 영구성(‘아이온’)으로만 재현되었던 것은 고전 미술의 특징이다. 그리고, 프랑스 식 ‘시간’의 의인상과 무시무시한 사투르누스를 융합시켜 ‘아버지 시간’ 유형에 다양한 새 의미를 부여하면서 만들어진 파괴자 시간의 이미지는 르네상스 미술 고유의 창조작이다. 시간은 날조된 가치 요소를 파괴함으로써만 진리의 베일을 벗기는 그의 임무를 수행한다. 오로지 변화의 원리로서 시간은 진정 보편적인 자신의 위력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아 푸생이 묘사한 시간의 이미지 역시 고전과는 다르다. 푸생은 시간의 창조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 파괴적 위력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가지 대조적 기능을 서로 융합시켜 하나의 단일체를 이룩해 낸다. 푸생의 경우에도 시간의 이미지는 고전의 아이온과 중세의 사투르누스가 융합된 형태에 머무르고 마는 셈이다. [182~183p]
- 앞장에서 아버지 시간의 이미지가 본래 서로 무관했던 두 요소의 융합을 통해 탄생하였고, 그래서 다소 복합적인 과정의 산물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쿠피도는 일견 훨씬 단순한 경우로 보인다.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날개를 단 조그마한 소년은 헬레니즘과 로마 미술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 못 보는 모습의 쿠피도는 고전 문학에서 극히 찾아보기 힘들고, 고전 미술에서는 아예 발견되지 않는다. [185p]
- 고전의 그림을 본보기로 삼은 게 아니라 문헌 원천을 기반으로 하여 자유로이 복원된 중세의 쿠피도의 모습은 물론 텍스트가 제시하는 바를 따른다. 트로이 전설을 각색한 여러 이갸디르처럼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의 소재를 직접 다루는 서사시에서는 쿠피도가 고전 판테온의 구성원으로 등장하며, 그에 부응하여 묘사된다. 이와 같은 서사시를 제외한다면 중세에 문헌 원천으로 사용된 텍스트들은 크게 두 범주로 분류된다. 하나는 조그만 세속적 쿠피도의 이미지를 ‘풀어 설명한(paraphrase)' 그룹이다. 어린아이 유형의 세속적 쿠피도는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었으나 원래의 의미를 상실함으로써 은유적이거나 우화적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고귀한 사랑이라는 중세 특유의 개념을 확립시킨 텍스트 그룹이다. 이러한 중세적 사랑이 의인화되는 경우, 고전 이미지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하지만 이른바 실제적 감정이 부여된 환상적 인물로 출현하였다. 전자의 그룹은 교훈적인 신화해설서에서 완성되고 전승된 쿠피도의 해석적인 묘사를 전해 준다. 반면 후자는 사랑을 형이상학적으로 찬양하는 문헌으로 구성된다. 형이상학적 사랑은 설령 그 세부 묘사에 있어 많은 부분이 고전 문학이나 고대 말 내지 중세의 학문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상주의적 시에서 전개된 것이다. [193~194p]
- 두 활은 각기 알맞은 화살을 동반하는데, 황금 화살은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고 납으로 된 검은색의 화살은 그 사랑을 끄기 위한 것이다. 사랑의 아름다움은 흔히 천사의 그것과 비교된다. [200p]
- 현대의 관람자에게 쿠피도의 눈가림띠는 기껏해야 사랑의 느낌과 선택에 수반되는 비이성적이고 흔히 다소 당혹스러운 특성을 재미있게 상징적으로 전달할 뿐이다. 그러나 전통적 도상학의 기준을 따른다면 쿠피도의 맹목성은 그를 도덕 세계의 그릇된 쪽에 서도록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눈먼(caecus)이라는 형용사는 ‘앞을 볼 수 없는(좁은 의미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눈먼)’, 혹은 ‘보여질 수 없는(숨겨진, 비밀의, 비가시적인)’, 또는 '눈이나 마음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어둡고, 빛이 없고, 까만)‘ 따위의 의미로 해석되곤 하는데, 여하튼 그 어느 경우라도 맹목성은 “우리에게 무언가 부정적인 것을 표현할 뿐이며 절대 긍정적인 의미는 전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님은 일반적으로 (중세 도덕주의자의 말을 빌자면) 죄인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앞을 보지 못함은 항상 사악함과 연계된다. 여기서 예외가 되는 경우는 감각적 욕구로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는 호메로스의 실명(失明), 그리고 공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뿐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해석은 고전이나 중세의 사상계에서는 생소한 것이다. 특히 눈이 가려진 정의의 인물은 아주 최근에 만들어진 인문주의적 날조이다. [212~213p]
- 그리하여 중세에 이르러서 우리는(태양에 의해 지배되는) 낮(Day)이 삶(Life) 및 신약(New Testament)과 연결되고, (달에 의해 지배되는) 밤(Night)이 죽음(Death) 및 구약(Old Testament)과 확고히 결합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조합들은 수많은 십자가상 주제에서 강조되는데, 이 그림들에서 교회(Church)의 의인상을 포함한 다양한 선의 상징들은 예수의 오른손 족에 등장하는 반면 그의 외속 쪽에는 시나고그(synagogue)의 의인상을 포함한 악의 상지이들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구성을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 주는 예는 우타복음성경(Uta Gospels, 11세기 초)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교회의 의인상은 삶의 의인상과 짝을 이루며, 경건한 은총은 해뜨는 데에서 일어난다(Pia gratia surgit in ortu)라는 명문을 통해 여명의 개념이 표현되고 있다. 다른 한편 시나고그의 의인상은 죽음과 쌍을 이루며 법은 해지는 데에서 유지된다(Lex tenet in occasum)라는 명문에 의해 황혼의 개념이 소개된다. 이 경우 시나고그 도 78 는 아직 눈이 가려지지 않은 모습이다. 그녀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은 단지 지는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눈을 포함한 그녀 머리의 위 부분을 그림 틀 뒤편으로 사라지게 함으로써 암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거의 같은 때, 혹은 심지어 좀더 이른 시기에, 앞 못 보는 사실은 눈가림띠라는 새로운 상징을 통해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이 상징물은 가령 행운의 바퀴, 사려 분별(Prudence)의 거울, 철학(Philosopy)의 사다리 따위와 같이 주엣 특유의 모티프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떠한 기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메타포를 시각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고전 의인상들의 상징물들과 구별된다. 눈가림띠는 약 975년에 제작된 세밀화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여기서 밤(고전 문학에서 항상 앞 못 보는 밤 caeca nox이라 일컬어졌듯이)은 눈이 가려진 여인으로 재현되어 있다. 도 76. 또한 앞서 언급한 상호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 새로운 모티프가 어떻게 처음부터 ‘어둡고 어리석은(benighted)' 시나고그 도 79에게 옮겨지고 거기서 다시 의미가 확장되어 불신(Infidelity)과 같은 의인상,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죽음에게 적용되기에 이르렀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14~215p]
- 그러나 여기서 쿠피도는 눈이 가려 있을 뿐 아니라 악마나 때로는 죽음의 이미지에서 사용되었던 맹금의 발톱을 보이고 있다. 이 새로운 치욕적 특징에 의해 쿠피도는 페데리코 델 암바가 그의 소네트 한 편에서 비교했던 악마(diavolo)로 사실상 변해버리고 말았다. [226p]
- 이 시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현자들이 사랑의 효능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 냈던 바로 그 이미지와 동일한 모습으로 사랑을 묘사합니다…그리고 내가 그린 이미지를 보게 될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단순히 변화시키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해석을 통해 새롭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고안해 낸 것은 그들의 완벽하고 뛰어난 지성 덕분에 지극히 찬양할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사랑까지도 어떻게 그를 아름답게 그려 낼 수 있는지 나에게 지시하고 알려줍니다. 그는 지혜롭게도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왔습니다. 즉 날개 달린 나신의 앞 못 보는 소년으로서, 움직이는 받침대 위[다시 말해 말 위에] 똑바로 서서 화살을 쏘는 중입니다. 나는 지금 그의 이러한 특징들을 바꾸지도 않으며 보태거나 빼지도 않습니다. 나는 나만의 무엇을 재현하고 그것을 스스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목표물을 잘 맞추기 때문에 나는 그를 앞 못 보는 모습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는 법이 없어 완벽해 보입니다. 물론 모든 불결험이 제거된 장소를 제외하고 말입니다…나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사랑을 소년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소년의 모습은 분별력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를 거의 청년이라 할만큼 성숙한 모습으로 그립니다…그가 매의 발톱을 갖추도록 한 것은 그를 확실히 지지해 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잡을 때 아주 강한 힘으로 움켜쥔다는 사실을 상징하려는 뜻에서입니다…나는 그를 나신으로 묘사하였는데, 이는 그가 갖춘 덕목들이 정신적 특성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 주며, 화가들이 휘장이 아니라 화환으로 그의 몸을 살짝 가려 그린 것은 어떤 특별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좀 점잖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화살통에 화살을 채워 말에게 걸어준 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은 후에 그가 맞게 될 것을 이미 몸에 지니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다시 말해 사랑은 이미 잠재적으로 그것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옵니다].”[234~235p]
- 전통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눈이 가려진 이 나신의 소년 이미지가 도처로 퍼져 나가면서 눈가리개 모티프가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게 되었다. 이 모티프는 시문학에서 ‘앞 못 보는 소년(il fanciul cieco, 'the blind boy', le dieu aveugle)'이라 이름 붙여진 것처럼 미술에서도 거의 일반화되고 별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다수의 르네상스 미술가들(페트라르카에 주석 설명을 첨가했던 인문주의자 안드레아 제수알도 Andrea Gesualdo의 표현을 빌면 ’다수의 현대 화가들 vulgo de' moderni pittori')은 앞 못 보는 쿠피도와 앞을 보는 쿠피도를 거의 무작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페트라르카의 『승리』에 삽입된 그림에서 두 유형은 모두 구분 없이 등장한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못 보는 쿠피도와 앞을 보는 쿠피도의 본래 차이는 결코 잊혀진 적이 없었다. 문필가들과 비교적 교양 있는 미술가들이 두 유형의 원래 의미를 변함없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피도가 앞을 보는지의 여부에 대한 논쟁은 사실상 르네상스 문학에서는 뜨겁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차이는 그 논의가 이제 완전히 인문주의적인 차원으로 전환되어 단순히 지적 놀이의 하나로 타락해 버리거나 또는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신플라톤주의의 사랑 이로과 결부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239~241p]
- 이 주제를 다룬 한 텍스트 유형은 『장님들 가락에 맞추는 춤』의 르네상스적 변형의 일종으로서 유능한 미술가들에 의해 그림으로 표현될 경우 실로 강한 인상을 전달한다. 즉 사랑과 죽음이 함께 사냥을 떠나는 장면으로서, 죽음은 두 개의 화살통을, 작은 쿠피도는 두 개의 활을 지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앞을 보지 못하므로 실수로 무기를 서로 바꿔버리고 만다(그 밖에 다른 텍스트 유형에 따르면, 고의적으로 무기를 바꾸기도 한다. 다시 말해 죽음이 쿠피도가 잠든 사이 그의 무기를 훔치고는 자신의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든 노인이 사랑에 빠지고 젊은이는 삶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도 102, 104 [245~246p]
- 그 결과 이 동판화에서 눈이 가려진 쿠피도(세속적 사랑 L'Amour mondain)는 인간의 심장을 낚고 있고, 그와 경쟁하는 사랑의 성자(Saint Amour)는 앞을 분명히 보며 후광을 두르고 있지만 쿠피도처럼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한 채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Mittam vobis piscatores multos, 예레미야서 16장 16절)’라는 명문을 동반한다. 도 97, 103 [253p]
- 앞 못 보는 쿠피도에게 승리하는 상대방은 때로 확실하게 플라톤적 사랑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한 동판화에서 플라톤적 사랑(Amor Platonicus)은 두 개의 횃불을 휘두르면서 눈을 가린 그의 적을 쫓아버리고 있다 도 101.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알레고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은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에 의해 고안되었다 도 106. 펜실베이니아 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작품에서 작은 쿠피도는 손으로 직접 눈가리개를 떼어냄으로써 ‘앞을 보는’ 사랑의 신으로 스스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쿠피도는 정말 문자 그대로 플라톤에게서 기반을 구하고 있다. 즉 『플라톤 저작집 Platonis opera』이라 씌워진 위압적인 책 위에 서서 그곳으로부터 좀더 고결한 영역으로 ‘날아오르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255~256p]
- 사실 알렌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는 이미 유태교(또는 유태교와 헬레니즘 신비주의 숭배의 합성 형태라 일컬어야 할 것)를 플라톤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었고, 기독교 사상가들에게는 점점 증가하는 고전의 이념들을 그들의 사상적 틀에 편입시키는 일이 근본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완벽한 경지에 도달해 있던 기독교 신학과 이교도의 위대한 철학을 모두 그 개별성과 완전성을 손상시키지 않은 채 융합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일은 일찍이 없었다. 피치노는 ‘플라톤적’ 체계와 기독교를 단순히 화합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완벽히 조화로운 화음’을 입증해 내고자 노력했으며, 그의 이러한 야망은 바로 『플라톤적 신학 Theologia Platonica』이라는 그의 가장 자랑스런 저작의 제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피치노의 체계는 (대략 얘기하자면) 신이 유한한 우주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믿는 스콜라적 사상과, 우주는 무한하며 신은 곧 우주라고 파악하는 후대의 범신론적 이론 사이에서 중개자 위치를 차지한다. [261p]
- 사랑은 항상 일종의 욕망(desiderio)에 속하지만, 모든 욕망이 곧 사랑은 아니다. 욕망이 인신력과 연관되지 않으면 식물을 성장시키거나 돌을 땅으로 떨어지게 하는 맹목적 힘처럼 단순한 자연적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 욕망이 인식 능력이 이끄는 데 따라 궁극적 목표에 관해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 궁극적 목표는 아름다움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신적인 선이기 때문에 사랑이란 ‘아름다움의 열매에 대한 희구’, 혹은 단순히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desiderio 야 bellezza)로 규정되어야 한다. 이 아름다움은 주지하듯이 온우주에 퍼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며, 플라톤이 『향연』에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와 아프로디테 판데모스로 논의했듯이 ‘두 베누스’(신플라톤주의자들이 흔히 일컫듯이 ‘쌍둥이 베누스’)로 상징된다.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혹은 천국의 베누스(Venus Coelestis), 즉 천상의 베누스는 우라누스의 딸이다. 그녀는 어머니 없이 태어났는데, 이는 그녀가 완전히 빗물질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마테르(mater, 어머니)라는 단어가 마테리아(materia, 질료, matter)라는 단어와 연계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천국의 베누스는 우주에서 가장 높은 초천상 지대, 다시 말해 우주 지성의 영역에 거주하며, 그녀가 상징하는 아름다움은 신성의 근원적, 보편적 광휘이다. 따라서 천상의 베누스는 인간 지성과 신 사이의 조정자, 즉 ‘자애’에 비유될 수 있다.
아프로디테 판데모스 혹은 일반적 베누스(Venus Vulgaris)로 불리는 또 하나의 베누스는 제우스(유피테르)와 디오네(유노)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그녀가 거주하는 장소는 우주지성과 월하계 사이에 위치한 지역, 다시 말해 우주 영혼의 영역이다(그녀의 이름을 ‘지상의 베누스 terrestrial Venus'라 번역하는 것은 사실 정확하지 못하고, 차라리 ’자연적 베누스 natural Venus'라 이름 붙여야 한다). 그녀가 상징하는 아름다움은 따라서 근원적 아름다움이 개별화된 형상이며 더 이상 물질계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그 안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천상의 베누스는 순수한 지능(intelligentia)인 데 반해, 이 베누스는 생산력(vis generandi)이며 루크레티우스의 어머니 베누스(Venus Genetrix)처럼 자연의 사물에 생명과 형체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지각과 상상력이 지성적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
두 베누스는 각기 알맞은 에로스나 아모르를 동반한다. 에로스나 아모르는 베누스의 아들로 일컬어지며, 이는 모든 아름다움이 그에 상응하는 사랑의 형태를 낳기 때문에 옳은 표현법이라 할 수 있다. 천국의 사랑 혹은 신성한 아모르(amor divinus)는 인간의 최고 능력, 즉 지성이나 지력을 점령하고서는 지적으로 파악되는 신적인 아름다움의 광휘에 대해 관조하도록 몰아댄다. 다른 베누스의 아들, 즉 일반적 아모르(amor vulgaris)는 인간의 중재능력, 다시 말해 상상력과 감각적 인식 작용을 관장하며 신적인 아름다움과 유사한 것을 물리적 세계에 생산하도록 그 능력들을 다그친다.
피치노는 두 네누스, 그리고 두 사랑이 똑같이 ‘훌륭하고 찬양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설령 방식은 다르더라도 양자 모두 미의 창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시적이고 개별적인 것에서 지성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관상적’ 사랑의 형태와, 시각 영역 안에서 만족을 얻는 ‘행동적’ 사랑의 형태 사이에는 가치면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시각 영역에서 촉각 영역으로 가라앉아 버림으로써 자부심에 가득 찬 플라톤주의자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조차 허락하지 않는 단순한 욕정에는 그 어떠한 가치도 인정될 수 없다. 지성적이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향하여 내딛는 첫걸음으로서 어쩔 수 없이 시각 경험을 동원하는 자만이 오로지 그 ‘신적인 사랑’의 단계에 도달하여 성인이나 예언자들과 동등하게 되는 것이다. 가시적 아름다움에 만족하는 사람은 ‘인간적 사랑’의 영역에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가시적 아름다움조차 감지하지 못하거나 방탕에 굴복하거나, 더 심한 경우 감각적 쾌락을 위해 이미 성취된 관상적 상태를 포기해 버리는 자는 ‘동물적 사랑(amor ferinus)’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피치노에 의하면, 이는 악덕이기보다 오히려 질병에 속한다. 마음 속에 해로운 체액이 정체됨으로써 야기되는 광기의 한 형태인 것이다. [274~2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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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치 노
피 코
사랑의 종류
상응하는 인간
영혼의 능력
상응하는 베누스
상응하는 인간
영혼의 능력
상응하는 베누스
신적사라
(Amore divinus,
Amore divino)
지성(Mens,
지력 intellectus)
천국의 베누스
(Venus Coelestis)
우라누스의 딸
지력 Intelletto
제 1의 천국의 베누스
(Venere Celeste I,
우라누스의 딸)
인간적 사랑
(Amore humanus,
Amore humano)
그 외 인간 영혼
제반 능력
일반적 베누스
(Venus Velgaris)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
이성(Ragione)
제2의 천국의 베누스
(Venere Celeste Ⅱ, 사투르누스의 딸)
동물적 사랑
(Amor ferinus,
Amore besti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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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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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감관(Senso)
일반적 베누스
(Venere Volgare,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
[278p]
- 이러한 대비는 각기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두 편의 미술작품에서 함축적으로 관찰된다. 두 그림은 모두 신플라톤주의 사랑 이론을 시각언어로 번역한 것이며, 그들의 상호 관계는 사랑에 관한 정통 피렌체식 논저와 피에트로 벰보의 『아솔라니』간의 관계로 비교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바초 반디넬리(Baccio Bandinelli)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해서 제작된 동판화로서 바사리가 ‘여러 신들 속에서의 쿠피도와 아폴로의 격투’라 묘사했던 작품이다 도 107. 이 그림은 깊은 골짜기의 양편 둑에서 각기 참호를 지키고 있는 두 진영의 고전 신들을 보여 준다. 왼편 그룹에는 사투르누스, 메르쿠리우스, 디아나, 헤르쿨레서(다시 말해 깊은 사유, 명민acuteness, 정숙, 남성적 덕목을 상징하는 신들)가 포함되며, 이들은 유피테르와 아폴로의 지휘를 받는다. 아폴로는 지금 막 적에게 화살을 소았다. 오른편 그룹은 주로 불카누스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익명의 여러 남녀 나신들로 구성되며, 여기서는 베누스와 그리고 사티로스 같은 모습의 쿠피도가 지휘를 맡고 있다. 쿠피도는 베누스의 선동에 따라 유피테르에게 화살을 겨냥하고 있다. 아폴로 그룹 위로는 하늘이 밝게 갠 반면, 오른편의 배경은 베누스 신전과 불타는 폐허가 차지하고 그 위로 거대한 트럼펫에서 연기가 흘러나와 하늘이 어둡게 가려지고 있다. 그림 중앙에 위치한 구름에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고통의 손짓으로 왼팔을 들어올리고 있다. 아래를 향한 그녀의 눈길은 베누스 그룹으로 가고 잇지만, 오른팔을 뻗어 아폴로의 지지자들 위편으로 항아리를 쳐들고 있으며 그 안에서 그을음이 없는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이 동판화가 의미하는 내용은 다음의 2행 연구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여기 신성한 이성(Reason)과 말썽 많은 인간적 욕망(Lust)이, 그대 관대한 지성을 심판자로 하여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여기서 위대한 행동에는 빛을 보내고 세속적인 행동은 구름으로 덮어 버린다. 만약 베누스가 승리한다면 지상에서 그녀의 영광은 한낱 연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 인간이여, 경건한 이성이 더러운 욕정 위편에 서 있듯이 별들은 구름 위에 높이 위치함을 알라.”
이 구절은 정통 피렌체 신플라톤주의의 체계와 개념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해석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피치노와 피코를 부지런히 읽은 독자들은 쿠피도, 베누스, 불카누스(불카누스는 여기서 쿠피도와 베누스의 병기공으로 등장한다)가 보다 지혜롭고 덕 있는 신들이 추종하는 태양신 아폴로에 대항하여 벌이는 전투를 보고 즉시 두 가지 사실을 알아낼 것이다. 즉 이 장면에서 하급 영혼과 이성 사이의 긴장된 관계가 묘사되고 있다는 것과 지성의 독특한 위치가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성과 비열한 충동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에서 지성이 그 어느 쪽 편에도 서지 않으며 그 결과에 대해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기억할 것이다(‘자유로운 그대 arbitrio tuo'라는 표현은 여기서 유래한다). 그러나 지성은 밑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으며(그래서 ’지성‘을 의인화하는 여인이 눈길을 아래로 보내면서 당황하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다), 신적인 지혜의 불꽃을 사용해 이성을 밝게 비추어야 한다.
이 동판화를 기억하면서 티치아노의<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보르게세 미술관 소장)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이 작품은 늦어도 1515년경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서, 이 시기는 벰보의 『아솔라니』가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정에 달햇던 때이다 도 108. 반디넬리와 티치아노의 작품은 설령 양식이나 분위기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큰 차이를 보인다 하더라도 몇 가지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두 경우에서 모두 천상의 불꽃으로 가득 찬 항아리가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의 손에 들려 있다. 또한 두 그림에서 모두 숭고한 원리와 덜 고귀한 원리 사이의 대비가 표현되어 있다. 게다가 두 경우에서 모두 이 대조적 특성은 이분법적인 ‘교훈적 풍경(paysage moralise)’에서 즐겨 사용되는 수단에 의해 상징된다. 티치아노의 그림 배경 역시 양편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한쪽은 희미하게 빛이 비치는 풍경으로서 요새화한 마을과 두 마리의 산토끼나 집토끼(동물적 사랑과 번식력의 상징)가 보이며, 다른 쪽은 보다 순박하며 덜 화려하지만 훨씬 환한 풍경으로서 양떼와 시골 교회가 보인다.
티치아노 그림의 두 여인은 리파가 영구한 지복과 짧은 또는 일지적인 지복이란는 표제어 아래 설명한 한 쌍의 의인상과 밀접한 유사성을 지닌다. 영구한 지복은 금발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며, 그녀의 벌거벗은 몸은 그녀가 결국 소멸하고야 마는 현세의 사물들을 경멸함을 뜻한다. 그녀가 오른손에 든 불곷은 신의 사랑을 상징한다. 짧은 또는 일시적인 지복은 ‘품위 있는 숙녀’의 모습이며 드레스의 노랑과 흰색은 ‘만족’을 의미한다. 귀금속으로 치장하고 손에 든 그릇에는 헛되고 짧은 행복의 상징인 금과 보석이 가득 차 있다.
이상 기술된 것을 통해 16세기 말에도 여전히 불꽃(반디넬리 동판화에서 ‘지성’의 상징물이자 또한 기독교 신앙과 ‘자애’의 상징물)을 든 나신의 여인과 화려하게 성장을 한 고상한 여인이 나란히 등장하는 경우 영구한 가치와 일시적 가치 간의 반립 개념이 표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리파의 용어들로는 티치아노 그림의 내용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는다. 영구한 지복과 짧은 또는 일시적인 지복이 이루는 대비는 도덕적이거나 신한적 성격까지 띠며, 그 화합 불가능성은 현재 파리의 공예박물관에 소장된 두 작품의 프랑스 태피스트리에 표현되어 있는 것에 견줄 수 있다. 이 태피스트리에서는 노동과 자발적 고행, 믿음과 희망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고 신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신사가, 현세적인 추구에 탐닉하면서 앞 못 보는 구피도와 어울리고 있는 숙녀와 대조적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도 116-117. 그러나 티치아노의 그림은 신중세적 도덕주의가 아니라 신플라톤적 인문주의에 관한 기록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과 악의 대비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원리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원리는 두 가지 존재 방식과 두단계의 완벽성을 지니는 것이다. 고귀한 정신의 나신은 세속적 피조물을 경멸하지 않고 그와 함께 자리를 나누지만 부드럽게 설득하는 눈초리로써 그녀에게 상위 영역의 비밀을 나누어주는 듯 보인다. 뿐만 아니라 두 인물이 자매 이상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티치아노의 작품에는 쌍둥이 베누스(Geminae Veneres)라는 제목이 붙여져야 한다. 피치노적 의미에서의 ‘쌍둥이 베누스’와 그것에 함축된 일체의 의미를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신의 인물은 ‘천상의 베누스(Venere Celeste)'로서 보편적이고 영구하며 온전히 지성적인 아름다움의 원리를 상징한다. 다른 인물은 ’일반적 베누스(Venere Volgare)'로서 소멸하되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지상에서의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생산력(generative force)'을 상징한다. 이 생산력을 통해 인간과 동물, 꽃과 나무, 금과 보석, 예술이나 기술에 의해 창작되는 작품 등이 창조된다. 그러므로 양자는 모두 피치노가 말했듯이 ’각기 나름대로 훌륭하고 찬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283~289p]
- 이상 제시된 모든 예에서뿐 아니라 ‘세속적 행복(Worldly Happiness)'과 ’천상적 삶(Heavenly Life)‘ 사이에 성 바실리우스가 등장하는 재미있는 한 비잔틴 세밀화에서도 도 109 옷을 입은 여인이 보다 고귀한 원리를 의미하는데 반해, 티치아노의<쌍둥이 베누스>에서는 두 인물의 역할이 뒤바뀌어 있다. 이는 나신 모티프의 모호한 도상학적 의미를 고려해 볼 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성경뿐 아니라 로마 문학에서도 실제 나신은 배격되어야 할 것을 생각되었는데, 그 이유는 나신이 빈곤이나 뻔뻔함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유적 의미에서는 대체로 단순함, 진지성, 그 외 사물의 참된 본질, 가령 핑계, 속임, 외모 따위와 반대되는 속성과 동일시되었다. 모든 사물은 신의 ‘눈에는 벌거벗고 드러나는’ 것이다. 귐노스 로고스(벌거벗은 말이라는 뜻-옮긴이 주)란 직선적이고 정직한 언어를 말한다. 벌거벗은 덧(Nuda virtus)은 진정한 덕목으로서 물질적 부나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지 않던 흘러간 옛날 그 좋았던 시절에 존중되던 것이다. 그리스 문필가들은 이상하게도 비록 진리를 소박한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 냈지만 호라티우스에 이르러서는 벌거벗은 진리(nuda Veritas)가 거론되었다.
고전 시대 말기에 이르러 실제 나체 모습을 공공 생활에서 마주치는 일이 매우 드물게 되자 나신의 상징적 의미도 여타의 ‘도상학적’ 특징들과 마찬가지로 설명을 필요로 하게 되엇으며, 이때 제시된 설명은 부정적일 수도 긍정적일 수도 있었다. 쿠피도와 베누스의 나신을 격렬하게 헐뜯던 바로 그 작가들은 삼미신의 벌거벗은 자태를 고결한 사랑스러움이나 성실성의 표식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중세 사람들은 몬테 키발로의<말 길들이는 자들>이 파디아스와 프락시텔레스라 불리는 젊은 철학자들이 재현했다고 믿었는데, 그 철학자들은 세속적 소유물이 필요하지 않고 또 모든 것이 ‘그들의 눈에 벌거벗고 드러나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 나체로 그려지길 원했다고 전해진다.
중세의 도덕 신학에서는 나신의 상징적 의미가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자연적인 나신(nuditas naturalis)은 인간의 자연적 상태로서 인간을 겸허하도록 이끈다. 둘째 일시적인 나신(nuditas temporalis)은 속세적 물질의 결여를 뜻하며(예수의 사도들이나 수도승들처럼) 잘발적으로 성취되거나 가난에서 기인한다. 세 번째의 덕스러운 나신(nuditas virtualis)은 결백의 상징이다(여기서의 결백은 무엇보다 신앙 고백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죄적인 나신(nuditas criminalis)은 욕정이나 허영, 그 외의 모든 덕이 결핍된 상태를 가리틴다. 그러나 이 네 가지 범주 가운데 마지막 유형은 미술 분야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으며, 중세 미술에서 나신과 옷을 입은 인물이 의도적으로 대비될 경우에는 언제나 후자가 부정적인 의미 쪽을 표현한다. 자연적인 나신에 해당하는 좋은 본보기는 앞서 언급했던 ‘자연’과 ‘은총’ 또는 ‘자연’과 '이성‘ 사이의 대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先)르네상스 정신을 통해서야 비로소 쿠피도의 벌거벗은 모습은 사랑의 ‘정신적인 특성(spiritual nature,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노)’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엇고 또 완전한 나체의 인물이 선덕을 재현하는 데 사용되게 되엇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덜 충격적으로 보였다 -중략-
벌거벗은 진리(nuda Veritas)의 이미지는 이와 같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의인상의 하나가 되엇다. ‘신간에 의해 장막이 벗겨지는 진리’라는 주제를 다룬 수많은 그림들에서 이미 이 인물을 접한 바 있다. 그리고 나신의 모습은 특히 옷을 입은 인물과 대비될 때면 일반 철학적의미에서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적 매력과 대조를 이루는 내재적 아름다움의 표현으로 해석되엇다. 그리고 신플라톤주의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이상적이고 지성적인 것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이때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다루어진 이유는 단순하고 ‘참된’ 본질이 가지각색의 변화무쌍한 ‘형상들(images)'과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티치아노의<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을 거론한 최초의 문필가(1613, 프랑쿠치 S. Francucci라는 이름의 시인)가 어떻게 해서 나신의 여인을 치장되지 않은 아름다움(Belta disornata)으로 해석하게 되었고 또 호사스럽게 차려 입은 그녀의 동반자와는 대조적으로 그녀를 찬양하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92~301p]
- 쿠피도는 본래 정의상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통 지니고 있는 무기 대신 여기서 그가 어깨에 매고 있는 막대기 다발은 결합을 가리키는 유명한 상징이다.[306p]
- 이때 각각의 개별 시각들은 다른 시각들만큼 똑같이 흥미로운 동시에 모두 똑같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과연 그 조각상 둘레를 따라 둥글게 돌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매너리즘 시대에는 분수대나 공공 기념상 따위의 독립 조각상(free-standing statuary, 사면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 배치된 조각 작품-옮긴이 주)이 풍부한 데 비해, 전성기 르네상스의 조각상들이 되도록 감실 안에 세워지거나 또는 벽 앞에 배치되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다시각’ 혹은 차라리 ‘회전식 시각’이라 이름해야 할 매너리즘 원리와는 대조적으로, 바로크 미술은 단시각 원리를 다시 회복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때 토대가 되는 원리는 전성기 르네상스에서 주로 수용되던 부조 바라보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바로크가 뒤엉킨 구성과 뒤틀린 몸 자세의 매너리즘적 취향을 포기하는 대신 추구했던 것은 고전적 규율과 균형보다는 구성, 조명, 표현 등에서 무한한 것처럼 보이는 자유였기 때문이다. 바로크 조각상은 더 이상 그 주위를 따라 움직이도록 우리를 충동질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조형 단위들이 마치 실제 부조 평면에 맞춰 순응하는 것처럼 평평하게 구성되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공간과 융합함으로써 하나의 일관된 시각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각상은 오로지 망막 위에 맺힌 상과 같은 의미에서, 그리고 그것만큼 이차원적이다. 따라서 바로크적 구성은 우리의 주관적 시각 경험에 맞춰 적응하는 한 평면적이지만 객관적으로 보아서는 평면적이지 않다. 바로크적 구성에서 제공되는 장면은 부조보다는 오히려 연극 무대의 그것에 비유할 수 있다. 심지어 독립 기념상들조차(가령 베르니니가 제작한 나보다 광장의 네 강 분수대나 또는 17세기의 수업이 많은 정원 조각상들) 여러 개의 단시각적인 감상면들을 제공하며(각 장면들은 체계적 혹은 준체계적 주위 환경과 관련하여 ‘만족스러운’ 듯 보인다), 그와 유사한 매너리즘 양식의 작품들처럼 무한한 많은 회전식 시각을 소유하지 않는다. [331~332p]
-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그의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 신플라톤주의를 특정 관점에서만 받아들이지 않고 전체로서 수용했던, 그리고 그 사상을 당시의 유행으로서 접근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설득력 있는 철학 체계로 이해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서 받아들였던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감정적 체험은 토마소 카발리에리에 대한 사랑에서 처음으로 그 절정에 달했고 다시 비토리아 콜로나와의 우정에서 두 번째로 정점에 이르게 되는데, 그의 이러한 체험은 플라톤적 사랑 이념을 순수한 의미에서 접근한 것이었다. ‘물질 속에 존재하는 정신’에 대한 신플라톤주의적 신조는 미켈란젤로가 심미적이고 열정적으로 아름다움에 탐닉할 수 있도록 철학적 배경을 제공해 주었던 데 반해, 그와 정반대되는 신플라톤주의의 측면, 즉 인간의 삶이 실재가 아닌 파생적이고 고통스런 존재 형태이며 따라서 저승의 삶에 비유될 수 있다는 해석은 미켈란젤로가 자신과 우주에 대해 지녔던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의 불만(이는 바로 그의 천재성을 보여 주는 표식이기도 하다)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피에로 디 코시모가 루크레티우스의 영향을 받은 많은 미술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순수한 에피쿠로스주의자로 일컬어질 수 있듯이,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많은 미술가들 중 유일하게 순수한 플라톤주의자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338p]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삶에 있어서나 예술에 있어서나 미켈란젤로의 적이엇으며 그러한 그가 신플라톤주의와 정반대되는 철학을 공공연히 지지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레오나르도의 인물들은 미켈란젤로의 인물들이 ‘억제’ 당하는 만큼이나 속박에서 자유로우며 그의 스푸마토원리는 입체와 공간을 서로 화해시키는데, 그는 영혼이 육체에 의해 속박당하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육체가, 좀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육체의 물질 요소인 ‘진수’가 영혼에 의해 구속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레오나르도에게 있어 죽음이란, 육체가 영혼을 풀어 줄때에 그 영혼이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하는 신플라톤적 교리와는 달리 영혼의 구출과 귀환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오히려 영혼에 의해 묶여 있는 상태가 그치고 그로써 자유로워진 물질 요소가 구출되고 귀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340p]
- 고전 문화의 쇠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일어났던 동방 사상의 침투 과정에서 흥미로운 현상 하나가 관찰된다. 즉 묘장 미술이 다시 과거 대신 미래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미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 전환된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영원한 것으로 인정된 이승의 삶이 그대로 지속되는 것으로 파악되지는 않았다. 이집트 묘장 미술이 망자에게 육체적 능력과 물질적 소유를 공급하기 위한 마술적 방책이었던 것과 달리, 고대 말기와 초기 기독교의 묘장 미술에서는 죽은 자의 영적 구원을 예기하는 상징들이 만들어졌다. 영구한 삶은 마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과 희망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었으며, 특정 인물의 불후화라기보다는 불멸하는 영혼의 승천으로 이해되었다. [342~343p]
- 여러 세기 동안 기독교 묘장 미술에서는 죽은 자의 과거 삶을 묘사하는 일이 자제되고 있엇다. 물론 여기서 예외가 되는 경우로는 성인들의 행적을 꼽을 수 있는데 그들의 묘지는 사실 무덤이기보다는 사당이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엄격하게 교회의 견지에서 보아 기념할 만한 덕목이나 행위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경우도 예외에 속햇다. 이를테면 교회의 기증자들은 그들의 후원하에 건축된 교회 건물의 축소판 모형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무덤 위에 재현될 수 있었다. 또는 덕망이 높은 대주교가 그의 홀(笏)로 악덕이나 불신(Infidelity)의 상징을 찌르는 모습으로 묘사될 수도 있었다. 자애로운 사제가 살아 생전 도와 주었던 걸인들이 그 사제를 위해 애도하는 장면의 재현은 도 134 서기 1200년경의 기준에서 보아 최대한으로 허용될 수 있는 찬양방법에 속했다. [343~344p]
- 15세기 피렌체에서는 위엄 있는 단순함과 디자인의 순수성을 선호하여 호화로운 14세기 분묘의 복잡한 도상학을 자제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베르나르도 로셀리노가 제작한 레오나르도 브루니의 무덤에서 그 절정기를 맞이햇다(1444). 그리고 15세기의 마지막 삼십 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전의 주제들은 기독교적 해석이 허용되어 처음에는 다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부터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엿다. [347p]
- 그런데 원숭이의 가장 보편적인 상징 의미(이 의미는 여타 조형 예술이나 공예는 물론 회화 예술과의 상징적 연계성보다 훨신 일반적인 것이다)는 교훈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엇다. 원숭이는 모양이나 행동에 있어 그 어떤 동물보다 인간과 유사하지만 이성이 결여되고 속담에서도 표현되는 호색적 성향으로 인해(우리와 아주 흡사한, 추잡하기 짝이 없는 짐승 turpissima bestia, simillima nostri) 인간에 내재하는 모든 인간 이하의 것, 가령 욕망, 탐욕, 폭식, 그리고 그 밖의 아주 폭넓은 의미의 뻔번함 등을 상징하는 데 사용되엇다. 그러므로 원숭이가 상징하는 개념 가운데 노예들이 ‘공통분모’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동물적 본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플라톤주의자들이 ‘하급 영혼(Lower Soul)’을 동물과 공통되는 것(commune cum brutis)으로, 즉 인간이 말 못하는 짐승과 공유하는 것으로 규정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하급 영혼을 뜻하는 원숭이는 속박된 포로들의 상징물로서 완벽한 논리성을 지닌다. [364~366p]
- 앞서 언급했듯이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물질 영역을 지하세계il mondo sotterraneo)라 일컬었고, 인간의 영혼을 육체에 '갇혀 있는‘ 한 저승에서(apud inferos)의 삶에 비유했다. 그러므로 기도실의 맨아래 부분에 위치하는 강의 신들을 하데스의 네 강, 즉 아케론, 스틱스, 플레게톤, 코키투스의 의인상으로 해석해도 별다른 무리가 야기되지 않는다. 하데스의 강들은 플라톤의 『파이돈 Phaedo』뿐 아니라 단테의 「지옥편 Inferno」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지만,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자들에 의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엇다. 플라톤과 단테에게 하데스의 강은 사후에 인간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네 단계의 속죄를 위한 처벌을 상징한다. 반면 란디노와 피코에게는 인간 영혼이 출생하는 순간 그것을 노예화시키는 물질의 네 측면을 가리킨다. 영혼은 초 천상의 집을 떠나 이전 존재의 행복을 망각하게 만드는 레트 강을 건너게 되면서 곧바로 ’기쁨을 박탈당하게‘된다(아케론). 그리고 슬픔에 사로잡히게 되며(스틱스), ’미친 듯한 분노나 격분 같은 타오르는 격정‘의 희생물로 던져지고(플레게톤은 불꽃이라는 그리스어 플록스에서 유래한다), 결국 끝없이 슬퍼하는 비탄의 늪에 잠겨 있게 된다(코키투스는 애도를 뜻하는 그리스어 코키마에서 유래되엇으며, 도한 란디노의 표현을 빌자면 만성적 고통을 뜻하는 슬픔 il pianto 촏 significa confermato dolore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데스의 네 강은 ’물질이라는 단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모든 불행‘을 의미하며, 이 불행으로 인해 영혼의 행복이 파괴된다. “감각의 깊은 골짜기는 늘 아케론, 스틱스, 코키투스, 플레게톤의 물살로 요동친다.”고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표현한다. 그리고 지하의 네 강에 대한 이와 같은 신플라톤적 해석은 당시 대단한 대중적 호응을 얻어 빈첸초 카르타리의 『신들의 형상』에까지 등장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강의 신들이 이처럼 피코가 소위 지하세계라 일컬엇던 순수한 물질의 영역을 가리킨다면, 공장의 추도 기념비에서 다음 단계를 차지하고 있는 하루의 시간들은 지상 세계, 즉 물질과 형태로 구성된 자연 영역을 상징한다. 지상에서 인간의 삶을 포함하는 이 영역은 사실 유일하게 시간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순수한 물질은 순수한 형태에 못지 않게 영구하고 파괴될 수 없으며, 친구는 시간을 생산하므로 그것에 지배되지 않는다. 자연에서의 물질과 형태의 일시적 결합만이 오직 시작과 종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새벽(Dawn), 낮(Day), 저녁(Evening), 밤(Night)의 인물이 본래 시간의 파괴적 위력을 상징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사실은 미켈란젤로의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입증된다. “낮과 밤은 말한다. 그들의 빠른 운행으로 줄리아노 공이 죽음으로 인도되었다고.” 또한 낮과 밤이 함께 모든 것을 소모시키는 시간(il Tempo 촏 consuma il tutto)을 상징하기 위해 고안되엇다고 언급한 콘디비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그 두인물에 쥐 한 마리를 첨가하려는 계획까지 세웠엇는데 “그 이유는 이 작은 동물은 모든 것을 먹어 삼키는 시간처럼 끊임없이 갉아먹고 소모시키기 때문”이엇다.
그러나 메디치 기도실에서 이 개념은 원래 계획햇던 대로 사계와 같은 관례적인 시간의 알레고리나 의인상이 아니라 이전의 도상학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네 인물로 실체화됨으로서 강렬하고 치유 불가능한 고통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율리우스Ⅱ세 무덤의 노예들과 비슷하게 ‘꿈꾸고, 잠자며, 괴로워하고, 격분한’듯 보인다. 새벽(Aurora)은 삶 전반에 대한 깊은 혐오감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낮(Giomo)은 이유도 없고 쓸모도 없는 노여움에 치를 떨며, 저녁(Crepuscolo)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에 지쳐 있고, 밤(Notte(조차도 눈을 완전히 감지 못한 채 참된 휴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네 강의 신은 잠재적 불행의 근원인 물질의 네 가지 국면을 묘사하는 반면, 네 가지 하루의 시간들은 실제 고통 상태로서의 지상의 삶의 네가지 국면을 표현한다. [381~384p]
- 비활동적인 질료 영역으로부터, 그리고 고통과 시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자연 영역으로부터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이미지가 나타나는데, 특히 로렌초는 16세기부터 ‘생각 깊은 사람(Pensieroso)' 혹은 ’생각에 잠긴 사람(Pensoso)'으로 알려져 있었다. 두 이미지는 개인적 특성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미켈란젤로 시대의 사람들은 놀라게 했고 또한 저급한 존재 형태로부터 좀더 높은 단계로의 전환을 알리는 인물들을 좌우 양편에 두고 있으므로, 생존하는 개인의 초상도 아니고 추상적 이념의 의인상도 아니다.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이미지가 그들의 실체적 인격보다는 망자의 불멸화된 영혼을 묘사하고 있다는 지적은 옳은 것이다. [387p]
- 두 공작이 불멸화된 영혼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과 줄리아노를 행동적 인간(vir activus)으로, 그리고 로렌초를 관상적 인간(vir contemplativus)으로 특징짓고 있다는 사실은 신플라톤주의적 견지에서 보아 서로 모순이 아니다. 이 같은 유형 묘사는 오히려 정반대로 두 인물의 신격화를 정당화하는 근거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지하듯이 오직 진실로 행동적인 삶과 진실로 관상적인 삶(이들은 각기 정의와 신앙에 의해 통치된다)을 영위함으로써만 인간은 단순한 자연적 생존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한시적 지복뿐 아니라 영원한 불멸도 획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관상적 인간과 이상적인 행동적 인간은 어덯게 신플라톤주의적 규범에 따라 묘사될 수 있을까? 그 유일한 방법은 전자를 사투르누스의 완벽한 숭배자로, 후자를 유피테르의 완벽한 숭배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플로티노스가 이미 사투르누스를 누우스, 즉 우주 지성(Cosmic Mind)으로 그리고 유피테르를 프시케, 즉 우주 영혼(Cosmic Soul)으로 해석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결과, 인간 영혼은 지상으로 하강하는 과정에서 사투르누스로부터 ‘인식과 사유의 능력’을 부여받고 유피테르로부터 ‘행동 능력’을 나누어 받는 것으로 이해되엇다. 그리고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자들 사이에서 사투르누스의 ‘자식들’(이들은 일반 사법 점성학에서 가장 불운한 인간으로 통한다)은 실제로 지성적 관상의 삶을 영위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반면 유피테르의 자식들은 이성적 행동의 삶을 누릴 운명을 지닌다는 점은 당연한 사실로 통했다.
이 신조는 모든 위대한 인간은 멜랑콜리 기질을 지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이론의 ‘재발견’과 결합하면서 천재라는 현대적 개념으로 전개되기에 이르는데, 여기서 그 사상의 좀더 보편적인 측면들을 논하기는 어렵고 관련 문헌들을 수집하여 예를 들면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단지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베니비에니 주석 Commentary on Benivieni」에서 특징적인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사투르누스는 오로지 이해와 관상에만 몰두하며 열중하는 지성적 특성을 의미한다. 유피테르는 행동적 삶을 가리키며, 행동적 삶은 그것에 종속되어 있는 사물을 그 규칙에 따라 감독하고 관리하며 계속 작용하도록 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 특성은 사투르누스와 유피테르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두 혹성에서 발견되다. 왜냐하면 사투르누스가 관상적 인간을 생산하는 반면 유피테르는 국민의 지배권, 통치권, 행정권을 인간에게 준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암시되는 원전은 점성학 관련 문헌과 그림이며, 거기서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나 유피테르적 인물은 현대 심리학자들이 ‘내향적’ 및 ‘외향적’ 유형이라 부르는 특성과 뚜렷한 유사성을 지닌다. 고대의 점성학자들은 이처럼 기본적인 차이점들이 돈에 대한 자세와 같은 생활습관에도 반영되어 있다는 개념을 예견하기까지 했다. 그들에 의하면 관상적인 사투르누스적 인간은 ‘세상에 대해 폐쇄되어’있다. 그는 침울하고 과묵하며 전적으로 자신에만 몰두해 있고, 고도고가 암흑의 벗이며, 탐욕스럽지 않으면 적어도 인색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행동적인 유피테르적 인간은 ‘세상에 대해 개방되어’ 있다. 그는 빈틈없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쉽게 벗이 되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쏟을 뿐 아니라 지극히 관대하다.
메디치 기도실에서 이와 같은 반립 개념은 일반적으로 줄리아노 상의 ‘개방적’ 구성 도 155과 ‘생각 깊은 사람(Penseroso)'의 ’폐쇄적‘ 구성 도 154 사이에서 관찰되는 대비에 의해 표현되며, 두 조각상을 함께 연결짓는 두 쌍의 의인상에 의해서도 암시된다. 다시 말해 줄리아노는 활기 왕성한 낮과 다산의 밤(고전의 시에서 메테르 뉙스나 마테르 녹스 Mater Nox, 둘 다 어머니 밤을 의미-옮긴이 주)위에 위치하고, 반면 로렌초는 순결한 처녀 새벽(그녀의 ’지대‘에 주목하라)과 초로의 저녁(그의 나이와 분위기는 새벽과 그녀의 나편, 즉 영원한 생명은 부여받았으되 영원한 젊은은 허락되지 않은 티토누스의 신화를 상징할 수도 있다) 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초상 조각의 사투르누스적이고 유피테르적인 의미는 좀더 구체적인 특징들에 의해서도 강조되고 있다. 우선 뒤러의<멜랑콜리아 Melencolia>의 얼굴처럼, ’생각에 잠긴 인물‘의 얼굴은 무거운 그림자로 인해 어둡게 됨으로써 사투르누스적인 멜랑콜리 기질의 검은 얼굴(facies nigra)을 암시하고 있다. 그의 왼손 집게손가락은 사투르누스적인 침묵의 제스처로 입을 가리고 있으며, 그의 팔꿈치는 닫힌 돈상자 위에 놓여 있는데, 이는 사투르누스적인 인색함의 전형적 상징에 속한다. 그리고 상징성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돈궤의 앞면은 뒤러의 동판화<멜랑콜리아 I>에서 엠블렘적 동물로 등장하는 박쥐의 머리로 장식되어 있다. -중략-
줄리아노 조각상의 구성이 일반적으로 보아 성 마르코 대성당의 피사드에 장식되어 있는 두 비잔틴 부조(성 게오르기우스와 성 데메트리우스)에서 착안한 것일 수 있다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도 157. 이 가설은 미켈란젤로가 줄리아노 상의 작업을 시작하기 바로 전에 베네치아를 다시 방문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으며, 만약 그것이 사실일 경우 미켈란젤로가 두 성자의 상징물인 검을 유피테르적인 관대함의 상징으로 대체시켰다는 점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관상적으로 사유하는 자와 관대하게 행동하는 자는 모두 신플라톤주의적인 신격화의 자격을 갖춘 인물이다. [392~400p]
- 뱀보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의 몸으로 자신의 고통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그의 고뇌는 커져만 간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간을 매에게 먹이는 티티우스인 것이다.” 그리고 리파의 ‘사랑의 고뇌(Tortures of Love)’에 관한 알레고리는 “가슴을 열어 매에 의해 찢겨지고 있는…슬픔에 잠긴 남자”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두 드로잉은 비록 제작 기술의 측면에서는 아니더라도 내용적으로 보면 사실상 하나의 ‘대비쌍’을 구성한다.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 하늘을 오르는 가니메데스는 플라톤적 사랑의 황홀경을 상징하며, 이 황홀경은 완전한 소멸에 다다르게 할만큼 막강한 것이지만 영혼을 육체적 속박에서 해방시켜 올림포스의 지복의 영역으로 데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지하계에서 매에 의해 고문당하는 티티우스는 감각적 격정의 고뇌를 상징하며, 이 고뇌는 영혼을 노예화하고 심지어 정상적인 지상 세계의 상태 이하로까지 격하시킨다. 이 두 드로잉을 한 쌍으로 본다면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Amore Sacro e Profano)' 테마의 미켈란젤로 식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08~409p]
- 파노프스키의 이론 정립 과정은 뵐플린의 양식 개념 비평으로부터 시작된다. 뵐플린은 양식의 두 근원을 내용과 형식으로 간주하고 전자를 표현적 해석이 가능한 감정내용으로 후자를 심리적으로 무의미한 시각적 관찰형식(Anschauunsform)으로 이해한다. 뵐플린에 의하면 양식의 변화는 형식의 변화, 다시 얘기해서 순수한 시각 작용의 변화에 기인한다. 이러한 순수형식주의 입장에 대해 파노프스키는 이의를 제기하면서, 본다는 행위는 생리적 과정 그 자체만으로서는 표현행위와 무관하고 다라서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양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양식 변화는 시각을 통해 감지된 것을 정신적 힘에 의해 해석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미적인 선택이 변화함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이 미적 선택에서 시각 세계에 대해 갖는 인간 정신의 특정 자세가 표현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양식이란 인간 정신에 의해 형성된 표현의지에 기인하므로 미술작품은 표현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531~532p]
- 다시 얘기해서 미술작품은 본질적 의미의 표현이며 한 작가와 시대의 세계관을 담고 있으므로 해서 하나의 ‘기록(Dokument)’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53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