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에케하르트 캐멀링 | 옮긴이 / 이한순 외
도상학과 도상해석학
1997년 3월 15일 초판 발행
에케하르트 캐멀링 편집·이한순 외 네 사람 옮김
펴낸이 : 김영종/펴낸곳 : (주)사계절출판사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2가 1-181
도상학의 역사
Jan Bialostocki
- ‘도상학Ikonographie'이란 단어는 그리스어인 아이코노그라피아에서 유래되었다. 도상학은 현대어로 미술 작품의 내용적 서술과 해석을 의미하기 때문에, 도상학의 역사는 관념사에 속한다. 본문에서는 도상학의 두 가지 개념적 유형, 즉 ’의지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함축된 도상학 die beabsichtigte oder miteinbezogene Ikonographie'과 ‘해석적 도상학 die interpretierende Ikonographie'을 구분하고자 한다. 첫 번째 개념은 시각적 상징과 그림이 지닌 기능 및 의미에 대해 미술가, 주문자 혹은 당시 감상자가 취한 자세를 말한다. 이들의 자세는 때로 계약서 같은 문서 등의 글에서 관찰된다. -중략- 그 외에도 각 시대에 통용된 철학, 신학 혹은 문학적 관념들을 끌어들여 역사학적 방법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 두 번째 개념인 해석적 도상학은 미술을 역사적으로 연구한다. 이 연구 방법은 우선, 그림의 확인과 서술을 목표로 하는 것 외에도 작품의 내용 (Inhalt, 혹은 의미 내용 Gehalt)에 대한 해석을 추구한다(오늘날 이와 같이 작품의 내용 해석을 목표로 하는 해석적 도상학을 ’도상해석학 Ikonologie'으로 부르는 경향이 크다). 이 ‘해석적 도상학’은 미술 연구의 역사학적 접근을 의미하며, 반면에 ‘의지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함축된 도상학’은 각 역사 시대의 일반적 세계관과 일반 미학적 자세를 포함한다. 미술의 내용적 문제에 접근하는 인간의 의식 수준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천하게 마련이다. [17~18p]
- 이런 과정에서 의인화와 알레고리라는 도상학의 형태가 발생하였고, 이들은 유럽 미술에서 긴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고대의 신들은 자연 현상을 나타내거나 추상적 개념으로 표현됨으로써 새로운 알레고리적 기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추상적 관념들도 의인화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20p]
- 2. 고대 이후 도상학의 역사는 고전의 전통을 수용하는가 아니면 거부하는가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이교도의 우상 숭배와 관련된 것은 제외되었으며, ‘형상 imago'의 의미는 전적으로 회화에 국한되었다. 그려진 그림은 평면적이어서 그 물질적 측면으로 볼 때 표현된 대상과 유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림은 성스러운 인물의 외적 형태만을 암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미술은 이교도 전통에 속하는 그림들과 그림 기능을 수용해서 고유한 알레고리적 그림 언어를 확립시켰는데, 이는 역사 이야기뿐 아니라 예수, 성모 마리아, 또 성자들의 이콘을 포함한다. 형상 숭배 Bilderkult는 이교도 전통에서 출발한 듯하며(군주 초상들과 고인의 초상), 이미 기독교 초기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Grabar, 1968). 5-6세기경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형상 숭배와, 그림에 재현된 성인들의 성스러움이 그 그림 안에 내재한다는 믿음은 오랫 동안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로 서유럽과 동유럽은 종교적 도상학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비잔틴 제국에서는 종교적 그림이 격렬한 신학적, 정치적 논쟁의 주제로서뿐만 아니라, 종교회의의 결정 대상으로서 두드러진 의미를 갖게 되었다(Grabar, 1957). 730년, 754년 및 815년의 종교회의에서는 형상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787년의 종교회의(니케아)와 843년의 종교회의에서는 형상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787년의 종교회의(니케아)와 843년의 종교회의에서는(콘스탄티노플에서 소집 -역주) 형상이 다시 허용되었다. 결국 친형상파가 승리하게되었지만, 엄격한 도상학적 교리가 확립되어 동유럽 교회를 장식하는 종교 미술에 대해 지극히 까다로운 규칙들이 마련되었다. 이 규정들은 이후 그리스 정교에서 엄격히 준수되었다. 비잔틴 도상학이 강한 전통적 특성을 지닌다는 점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입증된다. 즉, 푸르나 Fourna의 디오니시우스가 집필한 도상학 참고서 『도상 해석의 방법 Hermenaia tes zographikes technes』은 오랫 동안 초기 비잔틴 미술의 기록으로 여겨졌는데, 1909년 파파도포울로스 케라메우스 A. Papadopoulos Kerameus는 이 책이 분명 매우 오래 도니 전통을 보여주긴 하지만, 실상 18세기의 저작임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리스 정교의 미술이 중요한 예술적 발전을 경험했고, 또 종종 서구로부터-이따금 도상학적 견지에서조차-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아토스산 수도원의 벽화에서도 독일 동판화로부터 받은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비잔틴의 경직된 도상적 사고의 세계에서는 그저 미미한 변화만을 찾아볼 수 있다. [21~22p]
- 3. 중세 시독교 사상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상징으로 풀이되었다. 사물이나 인간, 현재 혹은 과거의 사건은 다른 사물, 인간 그리고 사건의 상징으로, 또는 개념과 관념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보편 상징성 Universalsymbolik'이론은 그 기원을 아우구스티누스(『삼위일체설 De Trinitate』)에 두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시적인 것은 비가시적인 아름다움이 형상화된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 위僞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 Pesudo-Dionysius Areopagita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에서 구체적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22~23p]
- 세상의 모든 창조물은
우리에게 한 권의 책이자 그림이며
거울과 마찬가지이다.
성 보나벤투라는 창조된 아름다움이 영원의 표시이며, 인간을 신에게 인도한다고 보았다. 신학자들은 크게 두 종류의 상징성을 구분하였는데, 의미가 부여된 존재적 사물 기호(사물과 상징 res et signa)와, 약속에 의거하는(관습적 knoventionelle/konventionale) 기호가 그것이다(Chydenius, 1960). 그러나 미술에서 상징을 실제 적용할 경우, 우리는 이 밖의 다른 상징을 발견하게 된다. 즉, 아리스토텔리스적 합리적 경향과, 신플라톤주의의 비합리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경향들이다(Gombrich, 1948, 1965). 전자는 그림을 일종의 언어로 보았다. 그림은 일종의 약속에 의거한 기호와 암호를 의미하며, 종교적 복음전달이 목적이다. 후자의 경우 상징적 그림을 경험함으로써, 말보다는 그림으로 인해, 어떤 다른 더 높은 지식이 감상자에게 전달된다고 본다. 상징적 그림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직접 추상적 관념과 황홀경에 빠진 듯한 열광적 접촉을 할 수 있고, 또한 그 추상적 관념은 그림에 구현된다. 중세 미술에서는 상징적 그림이 일반적으로 기호 체계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상징 그림은 문맹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중세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상징 개념은 신비주의적 추구에 나타난다. 감각에 의해 인식되는 그림은 육신적 세계를 넘어 정신적 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여러 신학자들이 그림의 이러한 기능에 대해 언급하였다. 예컨대 장 제르송Jean Gerson은 15세기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통해 가시적 물테로부터 비가시적 물체로, 육신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여기에 그림의 목적이 있다.”(Ringbom, 1969, p. 165) [23~24p]
- 고딕 미술은 상징적 사고 방식을 따르는데, 이는 신학뿐 아니라, 기독교 예식, 세속적 의식, 그리고 기타 생활 영역에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었다. 미술은 중세 신학자들이 파악한 대로 우주의 추상적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로써 누구나 그것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세의 상징이 누구에게나 모두 이해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극히 신학적인 문제들과 논쟁들이 도상학에서 다루어졌고, 오늘날의 도상학자의 해독에 의해 복잡한 종교적, 정치적 상황들을 나타낸다고 밝혀졌다. [25p]
- 신비적 상징과 유사한 영역 가운데 수數상징학이 있다. 사람들은 성서에 등장하는 수나, 건축의 비례 관계에 등장하는 수에 대해 신비적 의미를 부여해왔다. “신적 지혜는 수를 통해 드러나고, 수는 모든 사물에 내재한다.”(아우구스티누스, 『자유 의지론 De libero arbitrio』 Ⅱ, XVI) 수의 신비주의적 의미에 대한 믿음은 피타고라스주의에서 시작되어, 신플라톤주의에서 활기를 찾았으며, 중세의 교부들이 그 맥을 이어왔다(Male 1818, 영어판 1958, p.10). 자우어 J. Sauer(1924)와 에밀 말르 E. Male는 중세 건축도상학 영역에서 수상징학의 다양한 갈래들에 대해 연구하였다. 예컨대 교부들은 8이라는 수를 새로운 생의 관념으로 풀이하면서 - 그 숫자는 인간과 세게의 긑을 의미하는 숫자 7뒤에 오기 때문이다- 부활과 영생을 의미하는 세례의 개념으로 파악했다. 이에 따라 세례당과 세례반은 8각형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Male, p.14). 이러한 수상징학은 교육적 의도보다는 신비적 의도를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 [26p]
-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세인이 상징적 사고를 했다고 해서, 실제적 사건들을 전혀 그림에 표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세 미술은 전통을 엄격히 지키고, 엑셈플라 exempla(모범적 선례, 모방을 의미하는 중세의 복합 개념적 미술 용어-역주) 혹은 도상 구성의 전통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표현 대상으로 채택된 사건들을 때로 관례적인 전통 도안으로 변형하여 적용하였을 뿐이다. 성자들의 일생에 대한 기록은 문헌 전통이나 구전 신화의 공식에 따라야 했다. 미술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관찰된다. 새로운 대상을 그려야 할 경우, 이미 존재하는 본보기에 따라 형태를 만들어냈다. [26~27p]
- 4. 르네상스 미술의 도상학에서는 상징 대신 ‘역사 Historie'가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상징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림 알레고리와 상징은 인문주의 미술 개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제 ’역사 istoria'가 새로운 미술 이론의 중앙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알베르티에 따르면, 미술 작품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역사 혹은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었다(『회화론 De pictura』, 1435 ; 이탈리아어판 Della pittura, 1436). 역사는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간에 신뢰할 만한 문헌에서 발췌되어야 했다. 역사화는 성서에 실린 역사 혹은 성서와 관련된 이야기와 고대 이야기 그리고 신화나 전설에서 유래되는 사건을 최대한 설득력 있고 풍부한 표현으로 묘사해야 한다. 이후 300여년 이상 도상학 문제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역사라는 새로운 개념은 문학이 조형미술에 앞선다는 르네상스 사상으로부터 야기된 것이다(역사 istoria, 혹은 storia 개념의 의미는 물론 이 시기에 변화되었다). 문학 우선의 원칙이 수용된 원인은 수없이 많은데, 그 중 한가지는 당시 사람들의 고대의 미술 이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고대의 미술 이론 대신에 시문학과 수사학의 이론들을 조형예술의 지칭원칙으로 택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는 그림과 같다. ut pictura poesis.”라는 호라티우스의 원칙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원칙에 의거해서 조형예술이 문학 이론의 규칙을 다르게 되었다. 문학과 미술을 동일하게 간주한 것은 1766년 레싱이 『라오코온, 혹은 회화와 시의 경계에 관하여 Laokoon, order : uber die Grenzen der Malerei und Poesie』에서 그에 반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28p]
- 중세 이후의 도상학이 문학에 대해 지닌 의존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였다. 17세기에 문학적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그 진실도가 조형예술 작품의 최고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었다. “역사와 그림을 동시에 읽으십시오.”라고 니콜라 푸생은 그의 작품 수집가 샹틀루 M. de Chantelou에게 쓴 적이 있다. 프랑스 왕립 회화와 조각 아카데미에서 그림과 문헌 원전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논의 되었다. 시에서 유래하는 주제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서 작가는 ‘박사 예술가 doctus artifex'가 되어야 했다. 즉 미술가는 여러 영역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춰야만 했던 것이다. [29p]
- 5. 언어로 사용되는 미술은 크거나 작은 집단을 위해 매우 유용한 것이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의사 전달의 능력 때문이었다. 미술은 일종의 전달체로서 많은 대중을 상대로 이용될 수 있지만, 그 전달력에 따라 소규모의 감상자들로 구성된 그룹에 제한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적 미술과 소수 정예만이 이해할 수 있는 엘리트 미술로 나눠져, 두 그룹의 양극화가 초래될 수 있다. 중세 미술은 대체로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며, 르네상스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32p]
- 6. 르네상스에 일어난 미술의 혁신은 북유럽 예술가(루벤스 이전)로 하여금 한편으로 새로운 자연 연구를 하게 했고, 다른 한편 물질적 세계를 환상적 그림으로 재현하기 위한 정확한 방법을 마련하게 했다. 중세의 전통적 상징이 특별한 방식으로 재정비되었는데, 파노프스키는 이를 1953년에 ‘숨겨진 상징 disguised symbolism'이라 칭했다.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전달하는 상징의 의미는 계속 존재했지만, 위대한 젊은 예술가들은 상징적 대상을 고도의 사실주의를 통해 새로이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실주의적으로 상징화된 대상은 상지이적 의미를 그다지 갖지 않는 다른 대상들과 더 이상 명백히 구분되지 않게 되었다. 표현된 대상의 상징적 의미가 때로 전통적 도상학을 통해 명백히 드러날 수도 있었고, 그림이나 액자 위에 표시된 문구에 암시되기도 했다. 오늘날 흔히 감상자는 이러한 그림을 보면 당혹스런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감상자가 감상하고 있는 그림이 단지 현실을 재현하고 있는지, 혹은 특수한 은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몇몇 대상의 묘사, 혹은 일상 생활을 재현한 묘사가 특별한ㅇ 상징적(혹은 역사적)내용 이외의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Gilbert, 1952). 전통적 상징의 의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18세기나 19세기의 감상자들은 15세기나 16세기에 제작되던 많은 그림들은 단순히 일상 생활의 재현으로 보았다. [37p]
- 네덜란드의 17세기 사실화는 도상학의 범위가 확장됨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풍경화, 바다 그림, 월하의 풍경,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스케이트를 타는 거대한 장면, 시장의 풍경, 교회 내부의 모습, 정원의 장면, 어부, 채소 다듬는 소파, 식기가 화려하게 정리된 식탁, 상인들과 수공업자, 방문을 허가받기 위해 우아하게 의상을 차려입은 신사, 놀랍게도 거리에서 수술을 벌이고 있는 외과 의사들이 그렇다. 이 모두는 19세기 말까지 화가들이 끊임없이 묘사한 가치있는 주제들이었다. 애초 네덜란드에만 국한되었던 일상적 주제들이 종교적, 신화적, 알레고리적인 주제보다 경시되었던 것은 물론이지만, 점차 외국의 미술 이론가들도 그 진가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상적 주제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널리 애호되었다. [39p]
- '그려진 수수께끼‘는 다양한 해석을 요구했고, 해석자로 하여금 그들의 지식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림뿐 아니라 해석도 상당히 다양한 의미가 작품에 내포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듯하다.
우리는, 17세기의 미술 작품이 명백한 상징으로 감상되었다고 가정한다. 당시의 해석자는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상징들을 기독교 교리의 알레고리나 혹은 자신을 후원하는 후견인의 찬양으로 풀이했다(Montagu, 1968, p334).
이와 같은 상황이 자주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추정되며, 실제로도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반대편의 극단적 예는 리파의 상징이나 혹은 기타 널리 유행되던 저자들의 상징을 특별한 의미 없이 일상적인(그리고 매우 진부한)주제의 그림에 적용시킨 것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18세기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알레고리가 지극히 명백해야 한다는 주장도 높아졌는데, 이는 계몽주의 이념에서 유래되었다. 많은 이론가들이 새로운 주제를 구하기 시작했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켈뤼 백작 Comte de Caylus은 『일리아드 그림 연자 Tableaux tries de l'lliade(1755)』을 출판했으며, 빙켈만 역시 알레고리를 새로이 활성화시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는 때늦은 시도였다. 18세기에 이르자 도상학 체계는 총체적인 인문학 전통의 체계와 함께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전통이 붕괴하면서 도상학도 함께 무너졌다. 당시 엠블렘적 특성은 고야의 상징화나 계몽주의 이성과 연관된 알레고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들은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혹은 당시까지 적용되지 않던 새로운 기원을 찾기 위해 매우 활발한 노력을 했다. 그런 예는 매우 독특한 개성을 지닌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이나 다비드의 고전주의적 주제와 같이 전통적 주제를 다시 선택하여 새로이 그림에 표현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다.[41~42p]
- 낭만주의의 미술은 과거와의 결정적인 이별을 의미한다. 이 결별은 낭만주의 화가들이 과거를 지향해서 중세나 라파엘로 이전 작가들이나 혹은 바로크 미술에서 영감을 얻었던 양식적 문제의 영역보다는, 관념과 도상학 영역에서 더욱 뚜렷이 볼 수 있다. 상징과 알레고리는 모든 것을 파고드는 감정에 기여한 바가 컸으며, 종교적, 알레고리적, 신화적 그리고 역사적 도상학의 전통적 주제들이 새로운 도상학으로 대체되어야 했다. 물론 소수의 기독교적이거나 인문주의적인 그림들이 잔존하기도 했지만, 이들 역시 새로운 내용을 담게 되었고, 또 본질적으로 그 특성을 바꿔야 했다. 세계와 자연 그리고 역사, 사회와 운명, 시간과 죽음, 혹은 자유를 향한 추구(이는 당시 인간 행위의 모든 영역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을 의미했다.)에서 비롯된 새로운 문제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개인의 새로운 관점들은 작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이를테면 「폭풍의 배」,「계곡의 고독한 산책갯혹은「영웅의 죽음」같은 주제를 택하게 했다(Eitner, 1955 ; Hofmann, 1960 ; Bialostocki, 1966). [42~43p]
- 낭만주의 전성기에 등장한 새로운 관념과 그림 세계가 폭넓은 시민 사회를 대상으로 대중화되자, 낭만주의의 이데올로기와 도상학 내용은 본래적 진실성을 잃게 되었다. 이와 같은 낭만주의적 내용은 애초의 그림들이 보여주었던 낭만주의의 새로운 체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결국 멜로드라마적 경험을 추구하고, 극적 제스처가 팽창하도록 야기시켰다(Hofmann, 1960 ; Bialostocki, 1966). [43p]
- 새롭지만 짧은 순간 지속되었던, 지난 백 년간의 유럽 미술사를 형성한 예술적 동향들은 도상학적 관심의 결핍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당시의 도상학에 대한 관심의 결여를 차치하고라도, 양식과 도상학이 서로 묘하게 얽혀 있었음을 시사한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특수한 예술적 목적과 수단을 필요로 하는 주제들을 선택해서 널리 확산시켰으며, 오직 자신들의 관심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상주의자들은 강둑의 장면이나 풍경화, 장르화를 통해 예술적이고 지적인 환경의 생활을 보여주려 했다. 입체주의자들은 정물화 주제의 특수한 레퍼터리를 구상했고, 화가의 아틀리에와 보헤미안적 생활의 상징인 병, 악기, 서적, 과일, 꽃, 신문을 대상으로 선택했다. 이러한 소재들이 입체주의의 특수한 양식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었는가 하는 것은, 입체주의의 원래 구성원들보다 이들을 모방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후자의 예는 체코의 작가들로, 에밀 필라 Emil Filla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우선 입체주의의 도상학을 입체주의의 양식과 함께 채택했다. 추상미술 운동의 조각 분야는 상징적 경향에 대해 베타적이지 않았지만(브랑쿠지, 무어), 일반적으로는 도상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1950-1970년까지 20년에 걸쳐 상징성이 더욱 강하고 다양하게 체계적인 형태로 다시 변신하게 되었다. 상징이 이렇게 재등장한 것은 부분적으로 도상학과 상징 영역에서 1950-1975년 사이에 전개된 연구 발전에 기인한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44p]
- 중세 기독교 미술을 진지하게 연구했던 프랑스 학자들은 대부분 성직자들이었고, 그들의 저서는 19세기 도상학 연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다. 이들 저술가는 대부분 전문 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글은 종종 아마추어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떤 학자들은 도상학 지식의 견구한 틀을 마련했고, 이를 토대로 20세기 학자들이 현대적이고 포괄적인 구조 체계를 완성해낼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47~48p]
- 파노프스키가 정리한 미술 작품의 해석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단계에서의 해석 대상은 ‘일차적인 혹은 자연적인 주제’이다. 이것의 해석 목적은 ‘전前도상학적 기술 vor-ikonographische Beschreibung'이다. 이 단계에서 정확한 해석을 하려면, 해석자는 실제 경험을 쌓은 상태라야(대상과 사건에 대해 익숙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적어도 같은 문화적 환경에 살고 있는 살마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그런 상태에 처해 있다. 그렇지만 해석자는 ’양식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통해 자신의 관찰을 보완해야 한다(즉, 해석자는 ’대상과 사건이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어떻게 형식을 통해 표현되는가를 깨닫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두 번째 단계의 해석 목적은 ’도상학적 분석‘이다. 여기서 대상은 그림, 역사 그리고 알레고리를 형성하는 ’이차적 혹은 관습적인 주제‘이다. 이 경우, 해석자의 도구는 ’일정한 주제나 관념들에 숙지하도록‘ 만드는 문헌적 원천에 대한 지식이다. 해석자는,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특정한 주제나 관념이 어떻게 대상과 사건을 통해 표현되는가.”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자신이 관찰한 바를 검증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의 해석 목적은 ’깊은 의미의 도상학적 분석‘ (1939) 혹은 ’도상해석학적 분석‘(1955)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것의 대상은 미술작품의 ’본래 의미‘ 혹은 ’의미 내용 Gehalt'이다. 이 단계에서 해석자의 도구는 ‘인간 정신의 본질적 성향들에 대해 숙지하는 것’인데, 이 때 그는 ‘인간 정신의 본질이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특정 주제와 관념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통찰하여’ 자신의 해석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전체 시대, 즉 파노프스키가 ‘전승의 역사’라 부른 것을 살펴봄으로써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일차적’이고 ‘이차적인’ 주제들을 인간 정신의 기본 성향을 드러내는 징후로 파악해야 한다. 이 징후는 한 장소, 시대, 문명 및 예술가에 속하는 전형적 특성을 말한다. 파노프스키에게는 ‘도상해석학이 분석 작업보다는 오히려 종합을 통해서 가능한 해석 방법’ 이었다. [51~52p]
- 그 중 한가지는 도상해석학이 미술을 역사의 여타 부분들과 연결시키는 하지만, 미술작품과 다른 사물과의 연결 요소는 손상시킨다는 것이다(Kubler, 1962). 도상해석학은 의미에만 집중하고, 형식으로서의 미술, 개인적 표현으로서의 미술에는 무관심하며, 또 인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과 예술적 형식 간의 이성적 관계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쿠블러는 1962년에 ‘도상해석학적 축소’라는 표현으로, 오직 의미에만 치중되어 있는 도상해석학 연구의 제한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도상해석학의 과잉 해석 경향도 비판되었다. 그 첫 번째는 도상 해석자가 때로 어느 특정한 상징을 여타의 모든 것에 적용시킨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어떤 도상해석자들은 미술 분야에서 인간 행위의 다른 영역과 구분되는 미술의 중요한 특성을 간과하고, 오히려 미술을 관념사와 같은 다른 영역과 연관시켜 파악한다는 것이다. [60p]
기독교 미술의 상징 사용과 도상학. 기독교 도상학의 방법
칼 퀸스틀레 Karl Kunstle
- 1-3 : 도상학은 구상 미술의 제분야를 구분하지 않는다. 작품에 동원된 기술적인 차원은 도상학에서는 아무런 분류 기준도 되지 못한다. 또한, 도상학은 구상 미술의 역사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루는바 주제 主題의 역사 Geschichte der Themata를 목표로 삼으르모, 연구 대상을 역사적 연관이 아닌 내용적 연관에 입각하여 분류한다.
1-4 : 도상학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고학과 일맥상통한다. 이 두 분야에서는 어떤 작품이 기념비적인 작품이건, 아니면 수공예품에 불과하건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도상학은 주로 오늘날까지 그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거나, 적어도 오늘날에도 통요되는 화면의 맹아격에 해당하는 기념비만을 다룬다는 이유에서 고고학과 구별된다.
우리는 단순히 고고학적인 것, 예를 들면 초기 기독교 미술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표지나 물고기 표지처럼 초기 기독교 문화가 쇠잔함에 따라 없어져버린 그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겠다. 그러한 것들은 고고학의 영역에 속한다. [72~73p]
- 고대 내지 중세의 기독교 미술 작품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늘 종교적 이념을 전달하려 한다는 점에서 고대나 근대의 세속 미술과 구분된다. 고대 미술이나 르네상스, 근대 미술은 형식을 통해 호소하며, 우리의 감각에 대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다가든다. 예를 들어 라오콘 군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 신화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탄생 장면을 감상하는 경우, 작가의 의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일화에 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중략- 그러나 기독교 미술을 연구하다 보면 그것이 실제로 ‘가르치려는’ 경향을 지녔음은 인정되지만 주로 ‘최후의 심판’ 같은 주제와 연관된 진리에 국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73p]
- 신학은 당대의 미술에 단지 개괄적으로 반영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단을 추적하던 시대에는 호교론자들이 반복하여 강조하곤 하였던 종말론적 진리를 대변하는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그것들이 결코 이레노이스 Irenaus나 오리게네스 Origenes가 쓴 지침서 같은 것은 될 수 없다. 4세기와 5세기경에 그려진 일련의 대규모 시리즈 그림들에서는 우리는 신학 부흥기의 기념비적 구현을 목격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괄적인 수준을 넘지 않는다. 7세기에서 10세기경에는 신학이 단지 그 명맥만을 간신히 유지하였는데, 미술 또한 그와 비슷하게 모방과 표절을 일삼는 실정이었다. 초기 스콜라 사상은 교회당 문을 장식하는 일련의 대규모 조각이다 『가난한 자의 복음』의 원형에 드러나는 것과 같은 표지적인 그림들을 통해 반영되었다. 미술이 본격적으로 포괄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은 -신학과 마찬가지이지만- 13세기와 14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전성기 중세에서만큼 신학과 미술이라는 두 분야가 밀착되었던 적은 없었다. [75p]
- 왜냐하면, 상징의 사용은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에 관여하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난 대상의 느낌과 그것이 함축하는 이념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며, 그런 의미에서 미술 일반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미술이 상징적인 성향을 지니는 근원적인 이유는, 그것이 이미 그 자체로 상징적 속성을 지닌 종교와 관련되어 있음에 기인한다. [83p]
- 상징을 동원하는 것이 그 나름의 약점을 지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상과 형태는 결코 필연적인 이유에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유사성이나 다소간의 자의성이 개입된 외적 상황에 의해 연결되는 것이다.”(기크만 Gietmann, Allgemeine Asthetik, Freiburg i. Br. 1899, p 253). [85p]
-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구체적인 형태를 띠되 단순히 장식적 의미만을 지니는 구상적 형태와, 특정 내용을 구현하려는 형태군을 구별하는 것이 급선무이다.”(Uber die Quellen der Kunstdarstellungen, p.2)[85p]
- 그 어떤 예술가도 상징적 모티프를 채취할 때 당대에 통용되는 것에 준한다는 사실은 절대 불변의 원칙이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초기 기독교 미술이나 중세 미술 분야가 난해하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이 전혀 다른 문화적 조건과 세계관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간과한 채 과거에 제작된 작품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기인한다. “그 내용이 단지 암시적으로만 드러나는 그림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그림들조차 원래는 작가가 감상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려하여 구성하고, 감상자에게 그 형태나 의미가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제작한 것이다. 작가에게 모티프를 제공하는 원전은 당대 사람들의 교양에 합치되는 것으로 채택되며, 한 시대의 세계관은 작가의 의도에 확고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배경을 토대로 하여 특정의 모티프를 설명하여야만 한다. 한 시대의 의식에 부재한 요소는 결코-예술가가 감동시키고자 하는-민중의 호응을 얻어낼 수 없으며, 작가의 상상력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Ikonographische Studien", p.31). [86~87p]
- 심리학이나 미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순수시각’이라는 개념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하나의 추상적 개념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은 보는 행위에는 늘 경험적인 요소가 개입되므로 ‘단순히 보이는 것’이라는 개념을 결코 체험의 차원과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처럼 추상적으로 분리하여 거론하는 대신 각각의 대상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시점을 택하여 구체적이고 도구적인 의미를 띤 대상에 대한, 미학과 역사학에 공히 유용한 범주를 설정할 수 있다. [94p]
- 피셔는 상징이란 우선 어떤 이미지와 의미를 특정의 공통점을 매개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 이 때 ‘이미지’란, 어떤 보이는 대상을 의미하며, ‘의미’란 -그것이 어떤 세계관에서 유래한 것이건 불문에 부치고 - 특정의 개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 다발의 화살을 단결이라는 개념과 연결시킨다거나, 별과 운명, 배와 기독교 교회, 칼과 폭력 내지 분열, 그리고 사자와 용기, 관용을 연결시키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단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은 이와 같은 정의가 ‘이미지와 의미를 연결하는 제반 방식을 구분하는’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우리는 이미지와 의미의 연결 방식이 변하면 이미지 개념이나 의미 개념 자체도 변함을 알게 된다.
피셔는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종교적인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는 그것을 ‘어두운 혼동 상태’라고 불렀다. 바르부르크는 후에 그것을 ‘주술적인 연결 단계’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는 이미지와 의미는 하나이다. 예를 들어 황소는 -피셔의 말에 따르면 - 그 힘과 생식력 때문에 근원력의 상징이기도 하며, 그 결과 성스러운 것으로 추앙을 받는다. 뱀은 - 바르부르크의 예이지만 - 그 생긴 모습이나 위험성으로 인해 번개의 상징으로 등장하여 기우제의 춤에서 잡아먹힌다. 이처럼 인간이 추구하는 어떤 힘을 상징하는 대상은 먹고 마시는 행위 - 이것 또한 소유의 상징이다 -를 통해 몸으로 직접 취해지곤 한다. 피셔는 말하기를, “나비 인형은 부활과 불멸의 상징이지만, 종교적인 상징으로 모셔지지는 않는다. 만일 그것이 종교적인 상징으로 여겨졌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불멸성을 얻으려는 소망에서 관례대로 먹히고 말았을 것이다.”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여기는 성찬식에 대한 교리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을 띤 것임을 피셔는 각별히 강조한다.
그러나 바로 성찬식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에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빵과 포도주가 축성의 순간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그것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인지 -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이는 내 피요 살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서술인지 비유인지 - 하는 문제는 상징의 본질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견해를 야기하는 위기를 내포한다. 그 두 가지 상이한 방식 중 하나는 주술적인 연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지와 의미를 동일한 것으로 치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논리적 구별의 방식으로서 비유의 양상을 명시화한다. 첫 번째 입장은 종교적 의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서 주술적인 힘을 지닌 제관의 말은 본질상의 변화를 수반한다. 이 경우 - 피셔는 말하기를 -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빵과 포도주가 기적이 벌어지는 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견해는 종교적 체험과 의식 절차를 동일시하지 않으므로 이 두 물건을 냉담하게 해석한다. 즉, 이 경우 빵과 포도주는 단지 지성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하나의 기호일 뿐, 결코 은밀한 위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여 물체와 의미 사이의 뗄 수 없는 동일성을 근간으로 하던 상징은 이제 양자가 뚜렷이 구별되는 일종의 우의로 전환된다. 즉 의례적인 위력을 의미하던 이미지는 이제 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하나의 기호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극단적인 양 단계 사이에는 중간 단계가 존재한다. 피셔는 이를 가리켜 ‘유보하는 단계’라고 하였다. 그것은 어떤 이미지의 주술적인 생명력을 믿지 않으면서도 거기에서 전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시인이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불길한 예감이 드는’ 빛 운운하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이 시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언어에는 혼이 깃들지 않은 대상에 그처럼 혼을 불어넣는 경우가 많아, 예를들면, “포도 송이는 따뜻한 기운을 원한다.”거나, “못이 나무판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혹은 “짐이 보퉁이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따위의 표현을 한다. 우리가 만일 그와 같은 비유를 남김없이 해채시켜 버린다면, 우리의 살아 있는 언어는 단지 우의로 이루어진 죽은 체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그와 같은 비유의 생생한 위력에 압도되어 그것이 지니고 이쓴 비 본래적인 의미를 더 이상 알아채지 못할 정도라면, 우리는 이미 주술적인 사유 방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시인이 자신의 정서를 채우는 영웅이나 신 또는 그 이미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제사장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전적으로 주술적인 경향을 띠게 되는 것은, 그가 자신이 노래하는 신에게 자신을 바치거나 또는 바칠 것을 강요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고정적이고 생명이 없는, 명확하게 확정적인 기호인 -상징의 질료와는 거의 무관한 - 순수 개념에서 출발하여 - 상징의 위력이라는 절대 절명의 원칙을 가지고 - 상징을 문자 그대로 집어먹거나 그 앞에서 죽기까지 하는 의식적인 행위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단계는, 상징이 기호로 이해되면서도 그 생명성을 잃지 않는 단계, 즉 영혼의 동요가 양자 사이를 넘나들며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곧장 행위로 옮길 정도로 비유의 통합적인 위력에 압도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개념을 통해 상징의 위력을 증발시킬 정도로 관념의 분리적 질서에 연연해하지도 않는 중간 단계이다. ‘그림’(예술적 의미와 가상 이미지)이 그 의미를 발휘하는 것도 바로 이 중간 단계에서이다. [98~101p]
- 우리는 단지 개별 자극에 대하여 고도의 근육 운동 반응을 보이며 학습을 통해 각 근육이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 신체의 기능방식만을 살펴보면 충분한 것이다. 헤링 Hering은 단련을 통한 근육의 강화를 가리켜 ‘조직적 물질에 대한 일반 기능으로서의 기억’이라는 말을 했다. 동일한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인간의 근육은 순수한 신체적 기능 외에 그와 같은 흔적을 토대로-또는 ‘기억 기능’을 토대로- 또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바로 표졍을 통한 표현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윈 Darwin 이래 위의 양대 기능이 서로 어떠한 관련을 갖는지에 대하여 많은 논쟁을 거듭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생리적 기능과 표현 기능이 많은 경우에 동일한 근육을 통해 일어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불쾌감을 드러낼 때 쓰는 근육은 우리가 실제로 생리적인 불편함을 느껴 얼굴을 찡그릴 때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근육과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체를 사용하는 것에도 일종의 비유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목격한다. 근육 운동을 통한 표현은 모두 비유적인 것으로, 상징의 양극성이라는 원리를 따른다. 즉, 표현해야 할 감정의 자극이 크고 진할수록 그것을 상징하는 반응은 생리적인 반응과 흡사하다(감정적으로 극단적으로 혐오스러울 경우, 우리는 실제로 메스꺼움을 느낀다). 반면, 자극이 약하고 옅을수록 표정은 미미하게 드러나 심하면 일시적인 표정이 지속적인 얼굴 모습에 눌려 거의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는 표현을 위한 용이한 기관이되 결코 유일한 기관은 아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조작하는 동물로서( 칼라일 Carlyle이 「Sartor Resartus」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했듯이) 도구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신체의 기능을 확장하고 보강한다. 그러나 도구의 사용에서도 우리는 근육 운동에서 발견한 것과 비슷한 상황을 목격한다. 즉, 도구는 그 실용적 목적외에도 일정한 표현적 의미를 띠는 것이다. 칼라일은 특히 의복을 통해 그와 같은 사실을 규명하여, 어떤 의복은 그것을 입은 사람에게 위엄을 부여하며, 어떤 경우에는 비천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어쨌든 의복은 이 경우 어떤 인물을 규정하면서 은폐하고, 그 인물에 대해 암시하면서도 결코 그와 동일하지는 않은 양극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으로 굳어진 몸짓을 통한 언어 또한 표정 언어를 보충하고 확장하여, 예를 들면 모자를 벗은 것은 겸손함을, 홀 笏을 쥐는 것은 존엄성을,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의기 양양함을 의미한다. 이 모든 행위들 역시 상징의 양극성이라는 원리를 따른다. 즉, 사회적으로 형성된 몸짓은 가속화되거나 정체되는 정도, 혹은 어떤 특정 지점에서 방향을 선회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친근함을 표현하는 것에서 이별을 뜻하는 것으로, 획득과 쟁취를 의미하는 것에서 해방과 석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또 추격과 정복을 의미하는 것에서 주저와 관용을 의미하는 행위로 다양한 의미를 띠는 것이다.
그러나 도구 역시 그와 같은 단계를 넘어선다. 사람들은 막대기를 가지고 행위하고 옷을 입는 등의 의미를 넘어, 즉 자신의 신체를 통한 표현 수단을 확장하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대상화하여 거리를 두고 감상하려는 의도에서도 도구를 제작한다. 이러한 단계야말로 슐라이어마허가 예술적인 것이라고 칭한 단계의 시발점이 된다. 여기에서야말로 정제된 표현이 일종의 의식적인 의미를 띠며 등장한다. 이러한 정의가 다분히 형식적인 규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성찰을 통해 지양되어 드러나는 고도의 분리 단계와, 자극과 분방한 표현이 전적으로 상응하는 강한 연계 단계 사이에는 분명히 두 단계가 더 개입된다. 그 중 하나는 긴장된 표정과 진정된 표정 사이를 넘나드는 근육 운동의 단계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동화 의욕과 사회적인 고립 의욕 사이를 넘나드는 표현적 조작의 단계이다.
바르부르크는 바로 이 두 단계가 이미지의 각인이나 기억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를 - 다시 고대의 잔존이라는 예를 통해 - 입증해 보였다. 바르부르크가 격정 공식 Pathosformel이라고 이름 붙이 고대의 몸짓표현은 후대의 미술에 재삼 수용되어 일정한 대결 과정을 겪으며 양극화되었다. 고대의 격정 공식은 조작하는 인간의 모습을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경우라면, 다듬어진 돌의 형태이건 그림이 그려진 종이의 형태이건, 역시 조작하는 인간에게 걸맞는 도구적 의미의 예술 작품을 통해 매개되었다. 그것은 한 시대가 어떠한 공간적, 구체적 형태로 그와 같은 격정 공식을 수용하였건간에 관계없이 - 예를 들면 고대의 예술품을 학문적이고 고고학적인 대상으로서 박물관에 모아 놓았건, 재산을 과시하려고 정원에 세웠건, 심지어 조그맣게 본떠 벽난로 위에 장식품으로 얹어 놓았건 간에 - 고대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에서 늘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러한 대상들에 대한 긴장 관계는 그것을 조작적인 측면에서 사용하는 것을 관찰하며 그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의 격정 공식이 주는 자극적인 위력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였으면서도 그것을 화면에 수용하는 데는 단색화 Grisaille라는 지극히 조심스런 형식을 취하였던 점은 무척 특기할만하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미학이라는 개념을 가장 좁게 - 의식적인 취미의 형성과 추상적인 미적 감각에 대한 이론으로서 - 정의하더라도, 표정이나 도구적인 의미의 표현 같은 기본적인 형식을 돌아보지 않고서는 그 타당성을 얻어내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기본 형식을 주술적인 주문을 통한 비유뿐만 아니라, 섬세한 구조물까지 배태하고 있는 토대인 것이다. 그와 같은 것들이 더욱 분화되어 발전하는 데에는 그러한 토대의 초월이 요구되지만, 그렇다고 그 토대를 영 저버려서는 그것들은 사멸하고 만다. [103~106p]
바르부르크의 문화학 개념과 그 미학적 의의
에드가 빈트 Edgar Wind
- 이러한 요구를 따른 이라면 아마 바르부르크가 양극 이론을 철저하게 전개시킴으로써 전통적인 미술사의 영역을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새로운 영역은 직업적 미술사가들은 대부분 꺼리는 영역으로, 종교적 의례의 역사, 축제 의식의 역사, 서적과 교육 제도의 역사, 주술과 점성학의 역사 등을 포함한다. 그에게는 긴장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 관심사였으므로 무엇보다 중간 단계가 커다란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축제 의식은 사교와 예술의 중간 영역이며, 점성학과 주술은 종교와 과학의 중간 단계를 의미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과도기, 갈등기로 부를 만한 역사적인 중간 시대, 예를 들어 피렌체의 초기 르네상스 시대, 동방화된 고대 후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시대 등을 연구하였다. 게다가 그는 한 시대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도 직업이나 숙명상 중간적인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 예를 들면 미술 애호가인 동시에 상업적인 이해 관계를 지니고 있었던 상인들, 종교 정책과 과학을 결합시켜 그들 고유의 ‘이중적 진리’ 개념을 창출해낸 점성가들, 자신들의 구상적 상상력을 논리적 질서에의 욕구와 대결시킨 철학자 등을 주로 연구하였다. 바르부르크는 개별적인 예술 작품을 대함에 있어서도 형식적이고 미적인 관점에서 훈련된 이들에게는 납득되기 어려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택했다. 즉, 그는 예술적으로 보아 형편없는 작품에 대해서도, 그것이 어떤 정보를 명료하게 -대개는 훨씬 더 잘- 보여준다는 이유에서 열광하였다. 그는 자신에 의해 결국 명쾌하게 규명된 팔라초 스키파노이아 Palazzo Schifanoia의 저 수수께끼 같은 프레스코들을 도상학적으로 연구할 때에도 예술적으로 가장 형편없어 보이는 화가의 작품부터 분석하였다. 왜였을까? 그것은 훌륭한 작품들에 비해 열악한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단면들이 예술가가 거쳐야만 했던 대결과정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품들을 통해서는 그와 같은 문제가 훨씬 해결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위대한 작품들의 경우에 위와 같은 문제는 예술가에 의해 이미 너무도 능란하게 극복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발견된다. 물리학도 광선 현상을 규명할 때, 비균질적 매질을 통해 굴절 형상을 연구해내었다. 현대 심리학의 영혼의 기능을 인식하는 데서 올린 가장 큰 개가는, 개별 기능들이 통일적으로 결합된 상태가 아니라 서로 흩어져 있는 영혼의 장애 상태를 연구함으로써 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예술의 위대한 국면만을 보아서는 - 바르부르크의 주장에 따르면 - 구석진 곳에 있는 골동품 속에 진귀한 의미가 숨어 있음을 간과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대립 개념조차 이를 데 없이 탁월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레오나르도나 라파엘로, 홀바인 같은 경우만을, 역시나 하나의 일시적인 대립 해소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그와 같은 기분에 취해서 다르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행복한 느낌에는 젖을 수 있으되, 예술의 본질을 인식해야만 하는 미학의 과제를 결코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7~108p]
조형예술 작품의 기술과 내용 해석
에르빈 파노프스키 Erwin Panofsky
- 모든 서술 Deskription 행위는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순수한 표현의 요소들을 표현될 대상에 관한 상징들로 해석해버리고 만다. 즉, 표현의 임의성에 따라 순수한 형태 서술은 어느덧 의미로 충전된 서술의 또 다른 영역으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말에서 형태 관찰(뵐플린이 쓰는 의미로)이라고 부른 관찰 방법은 순수한 형태(여기서 형태에 대한 더 이상의 분석은 다루지 않겠다.)를 관찰하기보다는 오히려 형태가 지니는 의미를 작품 서술의 대상으로 본다. 한 가지 짚어둘 것은, 형태 서술 단계에서 말하는 의미를, 그 다음 단계인 이른바 도상학적 관찰에서 말하는 의미의 개념과는 다른, 말하자면 일차적인 수준의 의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가운데에 있는 밝은 색깔 덩어리를 “손과 발에 못 자국이 난 사람이 공중에 떠 있다.”고 서술한다면,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런 서술은 순수한 형태서술의 경계를 넘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관찰자가 자신의 시각과 촉각, 운동성을 매개로 하여 존재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감관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림 위쪽의 밝은 색깔 덩어리를 ‘부활 예수’라고 서술한다면, 이 표현은 이미 감관을 통한 체험의 단계를 훌쩍 넘어서 특정한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어떤 지식을 전제로 한다. 예컨대 복음서의 내용을 전혀 대할 기회가 없었던 어떤 사람이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본다면, 그는 탁자 주변에 모여 있는 여러 사람들이 몹시 격앙된 감정을 보인다는 사실과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돈 주머니를 들고 있다는 사실만 관찰하고는, 아마 그림에서 재현된 사건은 돈 문제로 생생한 존재의 체험, 즉 감관 기능을 거쳐서 수용되는 일차적 의미 단계를 현상 의미의 영역이라고 부르자. 현상 의미는 다시 사실 의미와 표현의미로 나뉜다.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우리가 어떤 조형 기호를 인식할 때 그것이 어떤 ‘사람’을 그려낸 것인지(사실 의미), 또는 ‘잘생긴’, ‘못생긴’, ‘슬픔에 잠긴’, ‘기쁨에 차 있는’, 혹은 ‘미련한’ 사람을 표현한 것인지(표현의미)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이차적 의미 단계는 우리에게 문헌 기록으로 전승된 문헌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서야 비로소 접근이 가능한데, 이 단계는 주제 의미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주제 의미를 다룰 때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제아무리 미술사가라 하더라도 자의적인 판단으로 예술 작품의 주제를 제공하는 개개 문헌 기록들을 보고 어떤 것이 예술적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주제 의미를 밝히는 작업에서 성서와 같이 중요도가 높은 문헌 기록에는 큰 관심을 두면서, 우리에게 생소해보이는 알레고리나 기상천외한 상징 Symbolik들은 비본질적인 것처럼 무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우리가 여러 전승된 문헌 기록의 가치에 차이를 두는 행위가 사실 그 기록이 당초에 그 작품의 발생 환경에서 본질적인 기여를 했느냐의 기준과는 전혀 무관할뿐더러, 그 기록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우연히(개개 문헌 기록의 생명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보존되어서 우리의 의식 세계에 다소 친숙하거나 생소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또는 오늘날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 전거들까지 힘 닿는 대로 발굴하고, 또 발굴 성과를 다시 주제 의미를 밝히는 작업에 끌어야와 할 것이다. 추측컨대, 서기 2500년 경의 인류에게 성서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마치 오늘날 우리가 16세기의 반종교 개혁기에 성행한 종교적 알레고리나 1500년을 전후 한 뒤러 주변의 인문주의 알레고리가 생산하는 관념에 대해 생소한 것 이상으로 까마득히 잊혀질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의 날개가 모든 문헌 지식을 다 지워버린다 하더라도,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정 프레스코에 그려진 선악과 나무 아래 펼쳐지는 ‘원죄’이야기가 성서라는 문헌 기록에 바탕한 것이지, 결코 알몸의 남녀가 벌이는 ‘풀밭 위의 식사’로 주제 의미가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이 바로 미술사의 당위이다. [115~117p]
- 그러나 잠깐! 이처럼 수월해보이는 현상 서술도 만만치 않은 문제를 내포한다. 그림을 앞에 세워두고 그 안에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공포’나 ‘공간 속의 부유’가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지 누구나 경험의 세계에 비추어 아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림으로 주어진 사실과 경험으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과연 어떤 기준에 따라 연관짓는가에 있다. 그뤼네발트의 그림을 잠시 치우고, 프란치 마르크가 그린 「비비」를 보자. 함부르크 현대 미술관 Hamburger Kunsthalle에 걸린 이 그림은 우리가 작품의 현상 서술에 필요한 경험 세계의 지식을 아무리 넉넉하게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 작품에나 무비판적으로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교훈을 준다. 한마디로, 「비비」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비비라는 동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당시로서는 낯선 이른바 표현주의식이 표현 방법, 즉 그림에 작용하는 특정한 양식 기법을 읽는 눈이 열려야 비로소 그림에 그려진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오늘날 우리 눈에는 마르크가 그린 비비가 예사롭게 보이지만, 작품 구입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비비의 주둥이가 어디에 붙었는지, 어떻게 몸을 틀고 있는지 머리를 갸웃거렸다. 1919년에는 아직 표현주의식의 화풍이 동시대의 시각 원칙을 앞서고 있었던 것이다.
비비의 그림은 앞서 인용한 루키아누스의 경우와 정반대의 예가 된다. 1919년의 함부르크 사람들이 프란츠 마르크의 그림에 무엇이 그려져 잇는지 알 수 없었던 이유를 표현주의식 표현 기법이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본다면, 루키아누스가 제욱시스의 그림에서 앞에서 뒤쪽으로 이어지는 공간 구성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그리스 초기 미술의 표현 기법이 서로마 제정기에 이미 잊혀진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두 가지 예에서 공통점이 있다. 우리의 경험으로 아는 사실과 그림으로 제시된 사실을 의미있게 연결해서 “이것은 무엇을 그린 것이구나.” 하고 읽어내려면, 작품의 생성 과정을 지배했던 보편적인 표현 기법, 다시 말해 양식 기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양식 기법은 역사적 상황을 투시할 때 얻어진다. 마르크의 그림은 우리가 새로운 표현 기법에 무의식적으로 적응되면서 이해되었지만, 제욱시스의 그림은 과거의 표현 기법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발굴하면서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상황이 전도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낯선 작품이나 시간적으로 가깝지 않은 작품을 서술할 경우에는 먼저 양식사적 기준에서 작품의 분류가 끝난 다음에야 서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증면된 셈이다. [118~120p]
- 요약해보자. 어떤 미술 작품을 정확하게 서술하는 작업에서 - 비록 서술이 순수한 현상적인 영역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 서술하는 사람은 아주 짧은 순간에 그리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대상 작품을 양식사의 관점에서 분류하고 나서 시작한다. 그렇지 않다면 ‘빈 공간에 위치한 물체’를 현대적 의미에서 말하는 자연주의 양식의 잣대로 서술해야 할지 또는 중세의 정신주의 양식의 잣대로 서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무덤을 열어제치고 날아오른다.”라는 서술은 얼핏 보기에 단순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평면과 공간, 인물과 환경, 정체성과 역동성 등의 관계에 관한 보편적이면서 난해한 문제에 대해 해결을 미리 갈고 난 다음에 진행되는 서술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술 작품을 관찰할 때 미술이 갖는 기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문제 해결의 고리는 바로 우리가 ‘양식’이라고 부르는 수단일 것이다. [121p]
- 현상 의미를 밝히는 작업 단계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바로잡는 보완책이 양식사적 인식이었다면, 주제 의미를 발견하는 일에서 오류를 피하기 위한 보완책으로는 유형사적 지식 Typenlehre이 요구된다. 여기서 유형 Typus이란 용어는 특정한 사실 의미가 특정한 주제 의미와 어울려서 나타나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예컨대 ‘사자 가죽을 쓰고 방망이를 든 헤라클레스’, 또는 ‘마리아와 요한을 좌우에 둔 예수의 십자가 책형’ 등의 주제는 이미 미술의 역사에서 독립된 유형으로 굳어진 것들이다. 여기서는 사실 의미가 전통적인 주제 의미를 담는 그릇(기표)으로 기능한다. [123p]
- 유사 형성은 전통적인 조형 모티프가 새로운 맥락 안에서 원래의 의미가 전환되거나 부활되어 재사용되는 현상이다. 모티프를 사용할 때, 원래의 문헌 기록에 꼭 부합해야 할 필요는 없다). 유디트가 접시를 들고 나타나는 그림 가운데, dba가 옆에 서서 그림의 주제에 관한 의혹을 씻어주는 예는 로마니노 Romanino가 그린 그림과 베를린 달렘에 소장된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Bernardo Strozzi의 그림이 있다. 마페이가 그린 그림이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담아 들고 있는 유디트’를 주제로 삼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유일한 길은 유형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일단 새로운 관점에서 그림을 관찰하기 시작하면, 접시 위에 올려진 사내의 머리가 세례자의 전통적인 유형보다 오히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도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압제자의 유형에 접근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페이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 단순한 경우(문헌 기록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고 유사 형성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간단히 해결되는)로 비칠지 모르지만, 실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로, 마페이가 그린 그림은 주제 의미가 전혀 생소하다든지 해서 숨어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을 발굴해야 했던 난감한 경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대에 활발히 다루어졌던 생생하고 분명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유형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주의를 게을리했더라면 주제 확인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저질렀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도상학적 연구가 작품에 대한 미적인 판단을 얼마나 본질적으로 좌우하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페이의 그림을 ‘살로메와 세례 요한’으로 보는 사람은 성자 요한의 의연한 죽음을 깔보며 비웃는 탐욕스런 여인의 시선에 전율을 느끼겠지만, 같은 그림을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로 보는 사람은 저주스런 반역자 홀로페르네스를 내려다보며 떠올리는 유디트의 미수에서 신의 충만한 은총이 내린 기적의 힘에 감동을 느끼는 이른바 상반된 미적 판단을 내릴 것이다. [125~126p]
- 현상 의미를 열거하는 작업, 즉 그림을 서술하는 작업은 언뜻 보기에 문제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어를 통한 서술을 통해서 그림을 재현하는 일은 말할 수 없는 것(도상)을 말할 수 있는 다른 것(언어)을 통해 드러낸다는 점에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해석의 ‘폭력’을 요구한다. [129p]
- 해석 행위의 원천은(그림을 서술하는 문제에 한해서)언제나 해석 주체의 인식 능력과 능력 보유 여하에 달려 있다. 현상 의미를 찾아내는 데에는 살아가면서 경험으로 축적된 정보가 필요하고, 주제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문헌 기록에서 얻는 문학적 지식의 소양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해석 주체가 소유하는 해석 행위의 원천, 다시 말해 주관적 인식을 만든다. 주관적 인식이 그릇된 판단을 바로잡고 인증하는 객관적인 보완책을 세워야 하겠다. 여기서는 보완책을 전승사라고 부르자. 전승되어온 역사는 해석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바르게 비추어주는 객관의 거울이다. 현상 의미를 읽어내는 단계에서 전승사는 형상의 역사이고, 주제 의미를 찾아내는 단계에서 전승사는 유형의 역사이다. 전승사는 우리가 해석을 내리는 작업에서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폭력이 학문적 허용 경계를 넘지 않도록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해석 작업을 통해서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그림)을 말로 표현(서술)할 때, 해석 주체로서 당연한 권리와 요구로 삼으려 하는 것을 전승사는 견제한다. 예컨대, 어떤 시기, 어떤 장소에서 이러저러한 경우는 달리 전승된 작품의 예가 없다고 전승사에서 확인되는 경우, 해석자 역시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나온 어떤 작품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것이 표현되었다거나 작가의 상상력에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식의 자의적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해석 작업에서 항상 부딪치는 상황을 정리해보자(해석 상황 자체를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양식이나 주제 유형에 관한 정보는 결국 개별 작품에 관한 연구가 축적되어야 얻어지는 것이고, 거꾸로 개별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개별 작품의 연구에서 시작되어 축적된 양식사나 유형사적 지식을 도구로 삼아야 하는 상호 협력 상황은 어느 학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양식사와 유형사(인식의 도구)와 개별 작품(인식의 대상)은 서로를 조건짓는 동시에 상호 입증의 수단이 된다. 예컨대, 물리학자가 사용하는 실험 도구라고 해서 자연 법칙의 적용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실험 도구를 사용해서 물리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인식 도구와 인식 대상이 서로를 조건짓는 이런 상황은 주제 의미의 단계를 넘어서 한층 높은 해석 단계, 칼 만하임 Karl Mannheim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기록 의미 Dokumentsinn의 단계 또는 본질적 의미 Wesenssinn의 단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길에서 마주친 어떤 남자가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사건의 주제 의미는(이 상황에서의 사실 의미는 모자를 벗어내리고 미소 띤 표정으로 머리를 수그리는 동작이 될 것이다. 또한, 표현 의미는 다정함, 감격스러움, 무관심, 아이러니 등등 여러 심성의 표현 가운데서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예의바른 행동거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의미를 떠나서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어떤 느낌, 즉 인상을 갖는다. 다시 말해, 인사하는 사람의 인격적 존재의 본질 Ontogon을 훔쳐본다. 그의 정신적 편력, 성품, 출신지, 삶의 환경, 운명의 관한 여러 정보들이 그 사람이 원했건 말건, 드러내보이려고 의도했건 말건 상관없이, 그의 행동거지를 통해서 칼 만하임의 표현대로 기록되는 dokumentiert 것이다. 비단 인사 행위만 그의 본질에 대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다른 행동을 취하더라도, 그의 인격적 본질이 뿌리는 기록 의미는 항상 같다. 미술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술 작품의 사실 의미나 표현의미, 그리고 주제 의미를 넘어서 예술의 보다 보편적이고 보다 깊은 의미는 마지막 단계, 즉 본질에 관한 내용에 기초해야 한다고 본다. 작품을 완성한 개별 작가의 의도성 인식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시기에 어느 민족에 의해, 어느 문화 단위체의 어떤 역량으로 작품이 만들어졌는가는 작품의 본질적 의미의 단계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세상을 향한 기본적 태도가 작품에 저절로 침윤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술적 업적의 위대함이란, 결국 작품에 침윤한 ‘세계관의 에너지 Weltanschauungs-Energie'가 작품이라는 마테리아를 통해서 얼마만큼 형상화되어 있으며, 작품을 보는 사람들을 향해 그 에너지를 얼마만큼 발산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해도 좋다(본질적 의미의 차원에서 본다면, 세잔의 정물화는 예술적으로도 성공한 경우로 볼 수 있지만, 라파엘로가 그린 마돈나 글미에 못지않게 세계관적 에너지로 충만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품 해석의 마지막 단계는 본질적 의미 Wesenssinn의 심층으로 파고드는 작업이다.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해석 요소들을 빠짐없이 세계관적 에너지의 증어능로 인정하고, 가치 있게 평가해야 한다. 해석 요소는 이를테면 재현된 대상이나 모티프, 도상학적인 요소들을 위시해서 빛과 어둠의 짜임새, 평면 구획 등등 순수 형태적인 요소들, 그리고 붓놀림이나 끌과 정을 다루는 기법에 이르는 모든 조형 요소들을 망라한다. 가능한 모든 해석 요소들을 동원해서 작품의 심층으로 파고든다면, 미술 해석도 철학적 체계나 신학적 관조에 뒤지지 않는 학문적 깊이에 이를 수 있다. 심지어 작품에 꼭 들어맞는 문헌 기록이 유실되어서 찾기 어려운 경우에도 우리는 본질적 의미로의 접근을 통해 작품의 본래적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뒤러의 동판화 「멜랑콜리아I」를 예로 들어보자. 작품의 주제 의미를 밝혀줄 꼭 들어맞는 문헌 기록을 찾아낼 가능성은 언제라도 있다. 그러나 작품의 기록 의미(또는 본질적 의미)를 밝혀줄 꼭 들어맞는 문헌 기록은 누구라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뒤러 스스로 자신의 동판화가 이러저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작업했다고 작업 기록을 남겼다고 생각해보자(뒤러 이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해설을 붙이는 화가가 여럿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경우가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뒤러의 기록은 그의 동판화가 담는 본질적 의미에 대한 단서나 정보를 우리 손에 쥐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경우에야말로 해석의 요구가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인사를 건네는 사람 이야기를 다시 하자. 인사를 건네는 순간, 그 남자는 자신이 어느 정도의 정중함을 행동을 통해서 나타낼 것인지 당연히 의도하겠지만, 자신의 행동에서 풍겨나오는 느낌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재치 있는 미국 학자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예술가는 ’자신이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자신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129~133p]
- 형상의 역사는 사실 의미와 표현 의미가 역사의 전개에 따라서 어떤 현상으로 적용되는지 형상의 적용성을 밝혀준다. 그리고 유형사는 사실 의미와 표현 의미가 역사의 전개에 따라서 어떤 주제 의미로 적용되는지 유형의 적용성을 밝혀준다. 마지막으로, 보편적인 정신사는 주제 의미들이(주제 의미에는 언어 개념이나 음악의 멜로디도 포함된다.) 역사의 전개에 따라서 어떤 세계관적 내용을 충족시키는지 주제 의미의 적용성을 밝혀준다. [134p]
조형예술에서의 시각 상징 해석
루돌프 비트코버 Rudolf Wittkower
- 앞을 못 보는 장님은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감지할 수 없다. 나는 이 명백한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우리는 무한한 시각 메시지를 접하고 있으면서도 그들 대부분을 보지 못한다. 시각을 통해 알려지는 것 모두에게 일일이 반응을 보인다면, 아마도 삶은 전혀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변하고 말 것이다. 이는 마치 수백 가지의 말소리들을 계속해서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몹시 다행히도-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유용하다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시각 메시지에만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뇌가 반응을 하게 되면, 그 시각적 기호 또는 상징은 하나의 의미를 전달해 주게 된다.
이는 길거리의 신호등에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렘브란트의 그림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신호등 같은 관례적인 기호의 경우엔 그 의미가 확실히 정해져있고 일반의 동의를 얻어 통용되고 있는 반면, 예술의 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의사 소통 방법이 존재하지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다. 미술 작품의 의미는 해석에 따라 좌우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호 혹은 상징은 그 메시지의 수취인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일반적인 의사 소통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 먼저 ‘시각 상짱과 ‘해석’이라는 개념에 관해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 나는 ‘시각 상짱이라는 용어가 아주 광범위한 의미로 이해되었으면 하다. 한 편의 그림은 그것이 아무리 원시적이거나 유치하다고 해도 한 가지 생각을 실체화한다. 하나의 원 또는 타원형, 혹은 눈, 코, 입을 최소한의 수단으로 표현하는 원시 미국의 조개 마스크 같은 물체는 ‘사람의 머리’를 의미한다(도 1). 그리하여 이 형상은 인간의 얼굴을 상징하는 기능을 지닌다.
모든 관찰은 해석 행위라고 주장해서는 분명 안 될 것이다. 기본적인 감각경험은 평범한 대화 과정에서나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에나 서로 동일하다. 우리 주변의 물체나 또한 벽에 걸린 그림도 해석을 거치지 않고서는 단지 이해할 수 없는 형태와 색점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미술 작품 자체는 미술가의 머릿속에서 정리되고 구성되고 심사숙고되었던 생각이나 표상 그리고 지각 등이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해석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데 동참하기를 요구받는다. [161~163p]
- 일차적 차원에서는 사람, 소 牛, 나무 등등 무엇이 재현되어 있는가를 알아내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대상적 의미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이제 한 어린이가 그린 드로잉(도 2) 과 레어나르도 다 빈치의 소묘 작품(도 3)을 관찰해보자. 이 두 편의 그림이 그 예술적 완성도에서 서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간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두 그림이 한 가지 주제, 즉 인간을 재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해석 능력이 대단히 커다란 활동 공간을 갖고 있다는 증거(만일 증거가 요구된다면)이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실제로 우리는 감각으로 얻어지는 모든 경험의 조각들을 본능적으로 하나의 논리적 표상으로 전환시키려 애쓴다. 이 때문에 어린이가 끄적거려 놓은 몇 개의 선은 레오나르도의 드로잉과 마찬가지로 대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임무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데, 그 이유는 그것이 글과 그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지적해주기 때문이다. 언어적 기호는 임의적으로 선택되는 반면(‘인간’이라는 단어는 인간이라는 실체와 아무것도 공유하는 게 없다). 그림은 그 대상의 본질적 특성에 속하는 것을 담아낸다.
재현된 물체는 우리로 하여금 그 원래 물체를 연상케 한다. 전자는 때로 후자와 너무도 유사해서 환영적 그림이 진짜 물체로 착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 동일성이나 유사성이 메타포적인 성격 이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사람은 결국 어린아이가 그린 인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찰이 옳은 것이라면, 시각 상징은 입이나 문자를 통해 표현되는 언어와는 달리 무한하다고 성급히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여기에는 물론 한 점 진실이 담겨 있고, 바로 여기에 상형문자 같은 시각 상징의 ‘언어’가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을 가리키는 상징이 가장 기본적인 기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것은 전세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선사 시대의 동굴에 그려진 동굴 그림이나 남태평양 열도에서 발견되는 사람의 형상처럼 지극히 서로 다른 재현물을 제대로 알아보는 데 어떤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아무리 단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164~167p]
- 그러나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은 비교적 적은 그리고 비교적 단순한 주제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갖는 유일한 경험, 즉 인간 자체에만 제한되어 있음이 거의 틀림없다. 한 번도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부쉬맨이 그린 이 동물의 상형문자를 이해할 수 없다(도 4). 그것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낼 수 있는지조차도 도무지 의심스럽다. 이전에 산이나 바다 같은 생명이 없는 물체를 전혀 본 일이 없다면, 그것을 재현한 상징을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경험과 연관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한 특정 문화나 시대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혹은 관례화된 공식을 알고 있는 경우에만 그 시각적 상징을 해석해낼 수 있다. 터너의 그림에 나타나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색채가 바다를 의한다는 것을(도 6)알고 있어야 하거나 또는 그렇게 인식하는 법을 배웠어야 하는 것처럼, 11세기의 밤베르그 요한 계시록에 그려진 구불구불한 선이 ‘바다’를 가리킨다는 것도(도 5)똑같이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알고 있지 않다면, 관람자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재현된 현상만을 마주하게 된다. 비전통적이거나 혹은 아직 관례화되지 않은 공식을 사용하게 되면 그것을 해석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또한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예컨대, 티치아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혹은 인상주의나 입체파 시대의 관람자들은 각기 이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 그와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167~169p]
도상해석학과 일반 미술사학
에릭 포르스만 Erik Forssman
- 대상적 차원에서 정확히 기술하자면, 이 세밀화에는 둥근 물체를 가지고 바다위를 거니는 한 명의 날개 달린 인물이 재현되어 있다. 그런데 ‘날개 달린 인물’은 다중적 의미를 갖는 상징이다. 시 詩, 미덕, 명성, 천재성, 평화, 성스러움, 역사 등등의 아주 여러 가지 다양한 개념들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과 성인전 聖人傳에 관해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다면(이 경우 우리가 어린 시절에 획득한 지식), 날개와 후광이라는 두 모티프가 서로 합쳐저 ‘천사’를 의미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 전통을 모르는 사람에게 ‘천사’라는 개념과 그 시각적 표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된다. [175p]
- 미술 작품의 거의 대다수는 의도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비유적 의미-그 성격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간에-를 갖고 있다. 맷돌이 바다에 던져지고 가라앉은 것과 똑같이, -이렇게 요한 계시록에서는 계속된다.-“큰 성 바빌론이 이 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요한 계시록 18장 21절)이 비유는 시각적인 수단을 통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글을 기억 속에 간직하여 맷돌을 던지는 천사의 그림에서 바빌론의 무참한 운명을 읽어내도록 요구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분석을 통해서 글과 그림이 서로 불일치하는 희귀한 경우가 드러나게 된다. 이 성경의 비유에서 ‘제 3의 비교tertium comparationis'에 해당하는 것은 맷돌뿐 아니라 도시도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 비유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어쩔 수 없이 그 핵심 자체가 빠져나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력은 아주 강해서 재난을 바로 눈앞에 둔 순간을 그냥 그 재난의 순간 자체로 전환시켜 받아들인다. 더욱이 시각적 관념은 커다란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그 어떤 미술가도 이 복잡한 비유를 다른 공식으로 바꿔 표현하려 해본 적이 없다(도 12). 여러 가지로 시각적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은 것이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함축적 의미를 단 하나의 텍스트를 통해 설명하기가 늘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역사적, 종교적, 문학적 그리고 철학적 연관 관계에서 서로 혼란스럽게 얽혀 있는 것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나는 한 실례를 통해 이것을 분명히 설명하고자 한다. 즉, 라파엘로가 바티칸의 한 스탄자에 교황 레오 1세와 아틸라(5세기경의 흉노의 임금-역주)의 상봉 장면을 그렸는데, 이로써 흉노족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르가 기적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난 후 로마의 성문에서 철수했던 치명적 사건이 다시금 상기되었다(도 13).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전설적으로 전승되는 것(바티칸은 이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였다.)과 시각적 표현 수단을 통해 시적으로 해석 묘사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레오 1세의 얼굴은 레오 10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레오 10세는 이 벽화가 제작되던 해인 1513년 당시 권자에 있었기 때문에, 이 그림이 당대의 사건도 암시하고 있음은 전혀 의심한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라파엘로의 벽화는 교황의 군대가 1513년 노바라에서 프랑스 침략군에게 아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사실을 역사적 비교라는 수단을 통해 찬양하고 있다고 결론지어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당대의 사건이 칭송받을 만한 역사적 사건의 모습으로 재현됨으로써 고상하게 승격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다른 것으로 표현하고 이로써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함’으로써 이 그림은 오히려 한 고귀한 신비의 상징으로 승화된다. 다시 말해, 452년이건 1513년이건간에 모든 시대를 거쳐 항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저 경탄스러운 교회 권력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당대의 사람은 전혀 어려움 없이 이 작품의 다중적 의미를 찾아냈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해석을 하기 위해 우선 예술 외적 문제인 당대의 공식적 견해와 사건들-이번 경우 특히 정치적, 종교적인 것들-이 어떻게 작품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자세하고 정확하게 규정지어야 한다.
더욱 어려운 경우는 작가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암시를 하고 있을 때 그 전의적 轉義的인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왜냐 하면, 그것을 해석해내는 가능성은 작가의 일생에 관련된 기록이 우연히도 보존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전형적인 예로 아마 미켈란젤로가 그의 젊은 친구 토마소 카발리에리 Tomaso Cavalieri를 위해 그린 드로잉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도 14와 15). 우리가 이에 관련된 상황을 알고 있지 않다면 이 작품들은 단순히 신화적 주제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이 소묘 작품들을 플라톤적 사랑을 표현하는 알레고리로 생각했을 것임은 틀림이 없다. 가니메드는 신적인 혼을 가진 정신적 사랑을 상징하고, 티티우스는 육체적 사랑을 의미하며, 이 상징들은 미켈란젤로가 카발리드와 티티우스를 플라톤적 개념의 옷을 입은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일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반면, 여기서의 부차적 의미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어서 미켈란젤로와 가까운 주변 사람을 제외하고는 알려질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부차적인 의미 덕분에 이 드로잉들이 탄생되었던 것지, 신화적 테마에 관한 막연한 관심 때문은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미술가들이 신분 해방을 이룩하기 전까지는 이와 같은 개인적 감정 고백은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 그리고 추측컨대 바로 미켈란젤로 자신, 이 위대한 개인주의자가 최초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개인적인 상징을 표현했다. 그러나 현대 미술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반전통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상징 방법과는 대조적으로, 미켈란젤로는 개인적인 의미를 전통에서 유래되는 주제를 매체로 하여 투사시켰다. 이 매체는 문자 그대로의 수준에서 볼 때 고전 문화에 관한 교육을 받은 사람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고, 개인적인 차원은 아닐지라도 알레고리적 의미층에서 볼 때 당시의 전문가들에 의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 [177~181p]
- 지금까지 이성적 해석의 문제들에 관해 논의하였다. 여기에 모아진 결론들을 잠시 요약해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대상적 의미의 차원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객관적 해석을 할 수 있다. 몇 가지 제한적인 요소를 감안한다면,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역사적 순간에서 미술의 재현관습을 ‘읽기’위해서 비교적 적은 경험이 요구된다. 그러나 주제적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적다. 이것은 우선 그 작품이 속하는 문화의 종교적, 신화적, 문화적 및 사회적 조건에 대해 익숙히 알고 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나아가 작품을 통해 재현되고 있는 과거의 유산-그것이 입을 통해서건 또는 글로 전해지든 간에-에 대해서도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다. 제3의 범주, 즉 다우적 의미에 다다르게 되면 전문가의 범위는 더욱 좁아지게된다. 이 다중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비교적 적은, 대부분 지극히 극소수의 동시대인과 과거를 아주 조심스럽게 연구 조사하여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듯 증거를 수집하는 학자뿐이다. 마지막으로, 선, 형태 그리고 색채가 한 특정한 맥락에서 갖는 표현적 기능과 의미는 기술적으로 분석될 때보다 해석적인 차원에서 객관적인 검토가 더욱 어렵다.
대상적인 의미에서 주제적인 의미로, 그리고 다시 다중적 의미와 예술 표현적 의미로 진전하면 할수록 그 연구 결과를 객관적으로 검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한 상징의 의미를 더 깊이 파고들려고 하면 할수록 그 접근 경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따라서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될 공간은 커지게 된다.
이 네 가지 의미층을 구분하는 것이 인식적인 면에서 그저 국한된 가치만을 지닌다는 사실을(이는 하나의 단일적인 정신적 행위를 해체하는 경우 모두 해당된다.) 구태여 강조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무엇’은 ‘어떻게’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고, 따라서 완벽히 규명해낼 수 없는 ‘어떻게’의 문제는 일차적 요인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술은 형태를 통하지 않고 제작될 수는 없지만, 현대 미술에서 흔히 발생하듯이 객관적 주제를 제외시킬 수는 있다. 또한, 다중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꼭 대상적 주제가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의도되고 있는 주관적 상징 내용이 그것에 이미 내재하고 있던 잠재의식적 상징 내용과 서로 섞이게 될 경우, 비대상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어디서 의도된 상징 의미가 끝나고, 어디서 잠재된 의식적인 상징 의미가 시작되는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우리는 현대의 추상 회화를 통해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를 명백히 알게 되었다. [182~183p]
- 지금까지는 이성적 해석의 경계를 규정하고자 하였다. .이제, 감정적 반응은 그 관찰자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덜 개인적이라는 견해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의식 儀式과 습관은 감정적으로 관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하나의 단위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에 모두 해당된다. 사회적·정신적 해방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개인적인 반응과 연상 작용이 펼쳐지는 공간은 더 커진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 금기 요소, 관습, 취향, 유행 그리고 그 외의 느낌에 의한 반응에 속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방향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이 문제의 두 가지 측면에 관해 몇 가지 언급을 해보겠다. 이 측면들은 18세기 이래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미술사가와 비평가가 미친 영향과 미학적 이론이 끼친 영향을 말한다. 오늘날, 직관이라는 재능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미술 문제에 고나해 거론하는 문필가나 변사는 미술품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중개인이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는 미개지에서 의술에 종사하는 마술사와 같아서, 현대인이라는 원주민의 감정을 미리 준비된 길로 인도하고, 또 종종 상징을 창조하기도 한다. 그 진행 과정은 지극히 복잡하다. 왜냐 하면, 관람자가 실제로 행하는 것은 이미 사회에서 상징적 존재로 인정된 해석자의 해석을 다시 한번 모방하여 해석하는 일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184p]
- 모든 세대는 전해지는 상징들 중에서 각기 자신의 마음에 끌리는 것에 고유한 의미를 첨가하여 해석할 뿐 아니라, 과거를 이용하고 변경하고 변형시킴으로써 또한 새로운 상징들을 만들어낸다. 이와 동시에, 전래된 상징이 그 뜻을 잃은 채로 계속 남아 있기도 한다. -중략-
그리스·로마 건축에서 합각 머리형의 회랑은 신전 건물에 속한다. 그것은 건물을 신전으로 특징짓게 하는 요소이다. 16세기에 팔라디오 Palladio가 이 모티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일반 건물에 이 모티프를 적용시켜 그 소유자의 높은 신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도록 한 것이다. 자유 진보주의 시대에 이르러서 예술과 교육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신성한 영역으로 간주되었고, 그래서 예술과 지혜를 위해 ‘신전’이 세워졌다. 마침내 이 상징은 기차역, 은행 그리고 증권 거래소로 전이되었다. 이 상징이 이와 같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그 고귀한 기원을 상징시켰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미와 함께 새로 태어날 때마다 이 상징은 언제나 품위, 고귀함 등과 연관되었고, 그 해당 문화 영역에서 강한 효력을 지니던 가치들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늘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새로 태어나던 이 상징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그 힘을 잃어버리는 상징의 예도 있다. [186~187p]
- 근간에 혹은 아주 먼 옛날에 만들어진 미술 작품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될 때, 그것을 잘못 해석할 가능성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릇된 해석이 집단적으로 통요될 경우는 그 의미의 중요성이 결코 과장될 수 없을 만큼 크다. 과거의 그림들 중 상당히 많은 수가 이러한 경우의 덕택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도 하였고,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 자극을 주기도 했다.
르네상스 미술은 고대 문화에 대한 그릇된 평가를 기반으로 성립하였다. 또한, 모슬렘, 중국, 힌두, 이집트, 일본과 아프리카 미술이 연속적인 물결을 타고 유럽으로 전해 들어왔다. 그들은 원래의 상징적 문맥에서 떨어져나와 해석이 잘못되었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상징이 탄생될 수 잇엇다. [188~189p]
- 시각 상징의 본래 의미가 우연히 재발견되거나 혹은 기억되는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와 같은 경우는 빈번히 일어나며, 미술가와 시인의 특권인 듯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모두 오랫동안 잠재의식 속으로 사라져버렸던 상징의 힘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관습이라는 차원으로 저하된 의식으로 채워져 있다. 착삯을 지불할 때, 우리는 돈이라는 교환 수단이 우리의 손에서 남에게로 넘어간 것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액을 막는 부적이 우리에게 떨어져나간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식을 하지 못한다. 편지에 우표를 붙일 때, 우리는 그 편지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 그래도 우표가 거꾸로 붙여진 편지를 받게 되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찰칵거리고 돌기 시작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행동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그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경우라도 관찰하게 되는 것일까? 의미심장한 그림으로 가득 찬 잠재의식이라는 창고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범법자는 발이 거꾸로 매달린 채 처형되었다. 고대 로마에서 밑으로 향한 엄지손가락은 수난자의 사형을 의미했고, 이 손짓은 오늘날까지도 패배라는 뜻을 전달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거꾸로 놓은 로마식 기둥 위에서 십자가를 세웠다 등등. 이 우표의 경우에서 상징은 그 힘을 다시 한번 발휘하였다. 관습에 어긋난 행동이 그 상징을 다시 소생시키게 된 것이다. [189~190p]
- 실제로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잠재적으로 마술적 성격을 띠는 동시에 잠재적으로 심미적 특성을 지닌다. 하나의 우상은 심미적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성립한다. 교회는 미술품의 기능이 이와 같이 내재적 불명료성을 지닌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그에 대항하는 조처를 취한 적은 없다. 성모 마리아 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우상이 되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미술사의 흐름에서 대부분 심미적인 기능과 마술적인 것 사이의 경계선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그어야 하는가를 알아낼 수 없다. 이 두 가지 기능은 왕왕 아주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어서 분석을 통해 구분할 수가 없다. [192~193p]
- 전문 감식가와 양식사 그리고 도상해석학자의 미술사적인 연구 논문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의 기본 자세가 유력한 가운데 늘 다른 두 사람의 의견이 병행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작품을 작가의 필치로 식별하여 분류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전문 감식가, 미술작품에 관한 식별 능력이 없는 양식사가, 양식사를 배격하는 도상해석학자를 생각할 수 없다. [202p]
- 파브노프스키는 미술 작품의 기술과 내용 해석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번째 단계’는 작품을 처음 대할 때 보고 느낀 점을 기술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단순히 무엇이 그림에 그려졌는지, 그림이 주는 인상 가운데 어떤 표현이 관람자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지를 발견하게 되면, ‘사실 의미와 표현 의미’로 이루어진 ‘현상 의미’가 파악된다. 물론 이러한 ‘무엇’과 ‘어떻게’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이해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화폭 위아래로 나타나보이는 물체가 실제로는 위아래가 아니라 어쩌면 앞뒤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 때 보이는 것을 바로 양식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 단계’는 화가가 그림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우리가 알 경우에 이해될 수 있는 ‘주제 의미’를 다룬다. 미술 작품의 이러한 대상은 종종 쉽게 파악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숨겨져 있거나 후세 사람에 의해 이해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그 대상은 문헌적인 원천의 도움으로 설명되어야만 한다. 이 설명이 옳은지, 혹은 화가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문헌으로 그림의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지는 도상학적 유형의 역사를 통해 검토될 수 있다. 양식적으로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하지 않듯이, 모든 주제가 항상 도상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같은 그림의 유형으로만 표현되지도 않는다.
‘세번째 단계’는 앞의 두 단계를 정신사적인 관점에서 포괄한다. 서로 다른 시대의 인간 정신이 ‘세계관’으로 표명되어왔듯이, 우리는 인간 정신의 기본 자세를 개별적인 미술 작품의 의미 내용과 형태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이로써 우리는 ‘최후의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본질적 의미’의 영역이라 일컬어진다.
파노프스키는 이 세 단계를 짧게 ‘전前도상학적 기술’, ‘도상학적 분석’ 그리고 ‘도상해석학적 해석’으로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미술작품들의 접근 방법을 외부의 껍질로부터 내부의 핵심에 이르는, 결국은 덜 근본적인 지식으로부터 보다 더 근본적인 지식에 이르는 발전 단계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지중에 괴테의 예술심리하적 세 단계를 떠올리게 된다. ‘자연의 단순한 모방’은 ‘사실 의미와 표현 의미’에 어느 정도 일치하며, 그림에 나타난 사물 자체로 이해되는 가운데 어떠한 해석도 요구하지 않는다. 예술적인 행위의 보다 높은 단계는 ‘개인 양식’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것은 언제나 개별적인 예술가의 작품에 근거하고 있는 고유 양식이다. 예술의 본질적 의미는 괴테가 은밀히 ‘양식’으로 부르고 있는 세 번째 단계에서 비로소 파악된다. ‘양식’은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이며, 여기서 예술은 최상의 인간적 노력과 동등해진다.” 이것은 아마도 “도상해석학적 해석”이 추구하는 본질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괴테를 인용하는 의도는 세 가지의 단계적 체계가 분명히 낮은 단계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의 발전을 표명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동일한 하나의 대상을 두 가지 측면에서 언급할 경우, 이 관점은 예컨대 내용과 형식이라는 사고 패턴에서처럼 동시에 함께 작용하고 대등한 가치를 지닌 듯이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의 대상은 세 가지 측면을 지니지 않는다. 따라서, 세 범주 가운데 세 번째 단계는 앞의 두 단계를 통합하거나 이들 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부지중에 파악될 수 있고, 이 경우 항상 새로이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 [209~210p]
- 첫 번째 단계는 형태와 양식 관찰을, 두 번째는 내용설명을, 세 번째는 정신사적인 토대의 확보를 목표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미술 작품은 처음의 두 단계에서 ‘기념물’로서, 세 번째 단계에서는 ‘기록 증서’로 파악된다.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기념물’로서의 미술 작품은 연구 관찰의 일차적 대상에 해당하며, ‘기록 증서’로서의 미술작품은 이차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그 무엇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처음 두 단계는 작품을 가깝게 접하며, 마지막 단계에서의 관찰은 개별 작품에서, 심지어 미술에서 벗어나고 있다. 간단히 요약해보면, 세 단계는 양식사, 도상학 그리고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의 세 방법론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 [211p]
- 오히려 의문스러운 점은 다음과 같다. 렘브란트는 어떻게 ‘복잡한 성서의 줄거리를 일상적인 이야기로’ 그리고 어떻게 “역사적인 유일성을 평범한 인간성과 보편성으로 바꾸어버렸는가?”
성서의 소재를 일상적인 이야기로 바꾸기 위해 렘브란트가 일부러 이해하기 어려운 모든 쓸데없는 도상학적 짐들을 내던져버렸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현상 의미는 (여기에 본래의 그림 제목이 속한다.) 종교적인 주제를 가리키고 있으며, 주제 의미의 연구 결과는 반대로 세속적인 풍속화로 유도되고 있다. 렘브란트가 거꾸로 세속적인 풍송화를 종교적 차원으로 높이려 했다면, 그 단계 역시 반대로 전도되어버린다. 즉, 풍속화는 현상 의미가 되며, 야곱의 축복은 비로소 도상학적 해석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상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렘브란트 그림의 착상은 정확히 들어맞는 도상해석학적 단계를 쉽게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그림의 주제와 그 역사적 유래에 관한 필연적인 질문이 해결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화가 자신이 본래 무엇을 의도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이 작품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소위 ‘도상학적 의미’로 부를 수 있다.
도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렘브란트 그림은 같은 주제를 다룬 그 이전의 작품들보다 표현해내는 것이 별로 없다. 예를 들어 구에르치노 Guercino(본명은 Giovanni Francesco Barbieri : 1591-1666, 북부 이탈리아 화가- 역주)의 작품 「야곱의 축복」에서는 구약 성서의 이야기가 아직도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야곱은 두 팔로 십자가 형태를 만들고, 요셉은 격렬히 아버지의 팔에 안기며, 성경에 근거해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렘브란트 그림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여, 대상이 그 현상 의미와 주제 의미에 있어서 변했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구에르치노의 인물들은 성경의 문헌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설고, 그들의 제스처는 굳어 있는 반면, 렘브란트의 인물들은 소박하고 조용한 동작과 함께 언제나 감동을 준다.
그림의 내용이 개성적일수록 그리고 그 주제 의미가 독특하고 복잡할수록 그림은 더욱 빨리 잊혀지고 사라져간다. 많은 비유로 얽혀진 작품이 도상학을 통해 밝혀지기를 원한다면, 이것은 단지 왕왕 언급되고 있듯이 후대의 교양이 감소된 탓만은 아니다. 대단히 복잡한 도상학적 소재들은 무지로 인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물론 희미한 기억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그림들을 진단할 필요가 없을을 뜻하지 않으며, 이 때의 의학적 착상은 파노프스키에게서 유래한다. 그러나 타고난 생명력, 즉 미술작품의 수준을 측정할 때 도상학적 진단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중요하며, 이것은 이미 빙켈만은 알고 있었다.[217~218p]
- 초시간성에 해당하는 것은 결코 미술 작품이 아니고 오히려 무형적 문제들인데, 이것은 만들어진 모든 창작물들, 심지어 아주 근소한 가치를 지닌 작품에도 내재한다. 반면에 가시적 작품에서는 오로지 시간적, 공간적인 조건, 즉 주문, 주제, 재료, 기술 등이 학술적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예술적인 국면과 그 수준은 시간을 초월하여 유효하지도 않고 역사적으로 제한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우리를 방법의 올가미 사이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영구 불변성’은 역사적 개념으로 통용될 수 있다. 반면, 범주적 초시간성으로부터, 미술에서의 예술적인 것의 역사를 다루는 미술사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미술 작품은 많은 시간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래 된 과거를, 또한 아픙로도 그렇게 길게 지속될 미래를 가질 수도 잇따. 작품의 역사적 수준은 이 두 가지 경우에 근거한다. 수준의 여부는 과거로 묻게 되며 미래로 대답된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 안에서는 개별 작품의 전통으로서, 즉 창조된 소재로서 계속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 모두 요약 된다. 이로써 질적 수준의 일부를 이루는 작품의 독창성을 추론해낼 수 있다. 미래가 뜻하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작용하고 있는 작품의 영향력이며, 이러한 작품은 모방되는 대신에 새롭고 독창적인 창작품을 유발시킨다. [225p]
- 예술가가 어떻게 이전의 양상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는지, 그가 어떻게 자신의 과제를 부여하고 성취해나가는지, 바로 여기에 글자 그대로 ‘시대를 만드는’ 획기적인 요속 놓여 있다. [228p]
- 따라서 전통적인 도상학적 자료들은 공식화되고 있으며(사실 의미 + 주제 의미 = 소재상의 공식), 이 공식들은 어느 정도 올바르게 이해된다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형은 이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이것은 단 한 번에 확립된 전례가 아니며, 오직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전제 조건 안에서 표명된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을 도상학적 공식에서 바라보면, 항상 ‘최후의 만찬’에 관한 그림들만이 계속해서 그려질 것이며, 이들을 전례가 되는 레오나르도의 작품과 비교를 하면, 그 부족함은 더욱더 드러나게 된다. 전례가 되는 작품을 유형이나 전前형태로 받아들여야만 새로운 미술 작품이 생산될 수 있다. 여기서 주제 의미는 지속되지만, 반면 형태를 레오나르도에 의해 완전히 소진되지 않은 가능성이 다시 철저히 활용됨으로써 완전히 변할 수도 있고(조지오 마조레 교회에 소장된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 또는 근본 핵심만을 알아볼 수 있으며, 이로부터 유형상으로 비슷하지만 도상학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주제 의미가 전개될 수도 있다 (렘브란트의 「클라우디우스 치빌리스」). 따라서, 이러한 경우 도상학적으로 ‘오역’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두 번째의 도상학적 단계는 접근조차 되지 않는 셈이다. 렘브란트가 「최후의 만찬」의 서술적 주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종적 판단의 열쇠가 되는 초기 표현은 그의 창조적인 작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간트너의 예에서 도상학은 이미 유형학으로 확대되었으며, 우리는 이러한 의미에서 두 번째의 도상학적 단계를 자연스럽게 변형시킬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적이고 도상학적인 공식을 총괄할 수 잇을 뿐 아니라 형성된 유형을 그 역사적인 변화 안에서 관찰하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미술뿐 아니라 역사도 이 단계에서 통합했을 것이며, 이 때문에 근본적 내용인 주제 의미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상학과 유형학은 미술 작품의 주제 의미를 해명하기 위한 두 가지 극단적인 가능성일 수도 있다. 여기서 순수한 도상학은 서술적인 내용이 예술로부터 자유러워진 한 극을 대표하고, 반면 반대극의 유형학에서는 예술적인 형태가 -필요할 경우- 주제 의미를 전혀 함축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관찰의 방향이 어떤 극으로 향해야 할지는 각 개별 작품의 성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230~231p]
- ‘모든 것을 포괄’하려 한다면, 도상해석학은 ‘건축사’ 역시 방법론적으로 합병해야 한다. 건축에서의 사실과 표현 의미가 첫 번째 단계에 상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건물은 실제 목적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는 어떤 식으로든 형태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건축은 세 번째 단계에 상응하는 본질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본질 의미는 조형예술에서 보다 더 쉽게 파악되는데, 건축은 여하튼 목적에 구속되어 있으므로 환경과 시간, 그리고 다른 역사적 표현과 좀더 친밀하고 명백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목’예술과 공간 예술로서의 건축은 글자 그대로 환경을 창조하지만, 추상적이지 않고 언제나 시간 속에 존재한다. [232p]
- 팔라디오가 비첸자에 지은 궁 「포르토 페스타 Porto-Festa」를 도상해석학의 세 단계로 관찰해보면 아래와 같은 결론을 얻게 된다. 이러한 귀족의 저택이 지니는 우아함은 현사으 의미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거친 사각의 돌로 견고하게 다져진 받침대 위에 우뚝 서 있는 일층은 이오니아식 원주로 장식되어 피아노 노빌레 piano nobile, 즉 건물의 가장 중요한 층임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두 번째 단계인 주제의미를 연구하게 위해서는 『콰트로 리브리 Quattro Libri』에서의 팔라디오 해석과 다른 건축론들이 문헌과 기록으로 요청된다. 여기서 돌을 거칠게 처리한 것과 이오니아식 기둥을 사용한 것이 이론적으로 설명되고, 회랑과 안마당 (완성되지 않은)도 고대의 저택과 동일시되는 가운데 해석되고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보이는 모든 것의 기반을 제공하는 유형이 이제는 모든 개별 형태를 담지하는 매체로 나타난다. 세 번째 단계는 마침내 이 궁전 건축의 본질적 의미를 설명해준다. 우리는 이 본질 의미를 특정 양식의 유출로 이해하며, 이 양식을 팔라디오가 쟌조르조 트릿시로 Giangiorgio Trissino를 통해 일찍이 경험하게 되었던 당시의 인무주의와 병행하는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16세기 중반의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나타난 모든 정신적인 현상들과 유럽 대륙의 건축 양식을 상징할 수 있는 범주들을 발견학 위해 노력해야하며, 이로써 우리는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35~236p]
-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괴테의 말을 상기하게 된다. “탁월한 예술작품에 관해 말하려 한다면, 거의 예술 전체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예술 전체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242~243p]
- 따라서, 도상해석학은 해석학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하이데거 Heidegger가 언급했듯이, 모든 해석은 비공개적인 것을 설명하고자 하며, 다라서 모든 해석에는 강제적 행위가 내포된다. 물론 해석자의 사고는 강업적으로 도입되어야 하며, 객관적으로 잘못된 사고조차 관철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을 피하기 위해 도상해석학적인 연구 결과와 마찬자기로 전前도상학적인 기술과 도상학적인 분석을 검토해야만 한다. 전前도상학적 기술의 정확성이 양식사적인 자료를 기반으로(다시 말해, 해당 작품이 당시의 시대 양식과 일치하고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도상학적 분석은 도상학적 유형의 역사와 일치하고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도상학적 분석은 도상학적 유형의 역사와 관련되어(다시 말해, 주어진 문제가 동시대의 묘사 방법과 일치하고 있는지의 여부) 검토될 수 있는 반면, 도상해석학적 해석은 ‘상짱의 역사, 즉 동시대의 전체적인 문화사와 관련되어 확인된다. [252p]
도상해석학
미하엘 립만 Michael Liebmann
- 피치노의 저서 『세 가지의 삶』을 근거로 아그리파는 창조성을 지닌 천재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전개시켰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멜랑콜리한 광기’에 의해 ‘최상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든다. 아그리파는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세 가지 단계를 규정하였다. 첫 번째 낮은 단계에는 예술가, 두 번째는 지식인, 세 번째 가장 높은 단계에는 오직 천상의 영역으로 솟아오를 수 있는 신학자가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뒤러의 ‘멜랑콜리’는 ‘첫번째’ 단계에 속하며, 따라서 우울한 상태에 있다. 힘과 이해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멜랑콜리는 천상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작업 기구와 학술 도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것들 조차 진리를 구현하기 위한 예술가의 꿈을 도와주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이 아름다움인지를 나는 모른다. 그것은 신만이 아는 것이다.”라고 뒤러는 절망적인 순간에 말하고 있다. 이 판화에 관한 표제로서 다음과 같은 화가의 말이 들어맞을 수 있다. “허구한 인식 속에서 우리는 고통스럽게 암흑에 휩싸인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멜랑콜리아 I」에는 뒤러의 매우 복잡한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는 파노프스키의 주장은 옳으며, 그는 이 판화를 ‘뒤러의 정신적인 자화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멜랑콜리아 I」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가운데 이 천재적인 화가가 지녔던 세계관의 중요한 관점뿐 아니라, 그의 대단히 복합적인 성격이 밝혀지고 있다. 발견해낸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다시금 절망의 한계에 이르는 그는 영원히 찾아헤매는 자이다. 그는 모순적인 시대에 살았던 한 인간이었으며, 그 시대에는 대립적인 요소들, 즉 회의와 광신적인 믿음, 합리주의와 무한한 꿈의 세계, 인간 오성과 극단적인 불가지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확고히 믿었던 신념이 병행하며 존재하고 있었다. 파노프스키의 분석에는 마치 소우주처럼 전 시대가, 바로 북부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가 반영되고 있다. [257~258p]
- 그러나 도상해석학적인 분석에서 양식적인 분석들은 사실상 무시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무엇보다도 「천상과 속세의 사랑」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도상해석학자는 미술 작품의 미적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색채로 이루어진 티치아노의 대작에서도 연구가를 사로잡는 것은 단지 주제일 뿐이다. [267p]
예술학 상징 이론 비판
로렌츠 디트만 Lorenz Dittmann
- 우선 피셔를 보자. 그는 상징을 그림과 의미 사이의 부적합성 Unangemessenheit이라고 설명한 헤겔의 입장에서 출발한다. 상징적 예술 형식에서는 의미와 형상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 의미와 형상의 관계는 기껏 여운적이거나 다소 추상적인 연상 관계에 불과하다. 예술 형식이 상징성을 갖는 경우, 예술 형식의 의미와 형상은 서로 일치하지도 않고 일치될 수 없을뿐더러, 그 둘의 외형과 이질성, 부적합성이 상호 교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276~277p]
- 카시러의 상징 개념은 범위를 넓게 잡았다는 데 특징이 있다. “인간 정신의 모든 에너지를 상징 형식으로 보아도 좋다. 정신에서 나온 의미 내용이 구체적으로 감각되는 기호와 연결되면 의미가 기호 속에 녹아들게 된다. 그리고 언어의 영역에서, 신화 종교적 영역, 그리고 예술에서 특수한 상징 형식으로 우리와 만난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근본적인 현상은 우리가 외적인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형태에서 얻는 개별적인 인상을 표현의 자유로운 실행과 결부시키고, 형태 뒤에 숨은 것을 꿰뚫어본다는 데 있다. 이처럼 스스로 만들어진 그림들과 기호들은 통칭 객관 세계라고 불리는 자연의 세계와 대치하면서 이것과 구별되는 자신의 독자적인 역량과 근원적인 힘을 소유하는 새로운 세계를 주장한다.” “예술이나 신화, 아니면 언어에서처럼 어떤 특별한 영역에서의 상징이 여하한 의미를 갖고 힘을 발휘하는가를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체로서의 언어, 전체로서의 신화, 전체로서의 예술이 어느 정도까지 상징적으로 형상화되는 보편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가하고 질문하는 것이 타당하다.”[279~280p]
- 위의 두 인용에서 보이는 모순은 그리 심각해보이지 않는다. 카시러는 순수한 의미 영역을 ‘온당한 eigentliche' 진리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이 다른 정신적 삶의 여러 단계에 비추어 두드러지는 점은, 학문이 기호나 상징을 통한 어떤 매개를 필요로 하는 대신 오히려 가식 없는 진리, 물자체의 진리와 대면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학문은 학문이 요구하는 상징들을 다른 정신적 삶의 여러 단계들과는 다르게, 또 보다 철저히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징을 상징으로 인지하고 이해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282p]
- 문화적 의미는 파노프스키의 생각처럼 문헌 지식을 통해 습득된다고 보아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선례가 되는 선대의 삶의 양식이 일찌감치 한 사람의 체질 안에 완성되어 내려온다고 보아야 한다. 제아무리 문헌을 통해서 어떤 문화를 익히 습득했다고 치더라도, 이것이 그 사람의 삶의 실제를 형성하기에는 무리일뿐더러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무의미할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하는 문화는 쓸모없는 문화이기 때문이다.[287p]
- 애당초 신화적 내용이 생성되었을 당시의 일차적 의미와 그것이 세월을 지나면서 수용되는 이차적 의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이해의 격차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수용자의 이차적 의미를 기준으로 대상의 중요성을 본질적인 또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가 본질적인 내용이다, 비본질적인 내용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다. 우연히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현재의 인식에 익숙하지 않고 문헌 기록의 도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낯설게 되어버린 것들을 끌어들임으로써 현재의 인식을 넓히는 일이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살아 있는 내용과 의미가 상실되어버린 내용을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성서의 내용을 비의적인 알레고리와 동일한 위치에 둘 수는 없다는 말이다. [288p]
- 도상학적 연구는 그림의 내용에 얽힌 수수께끼를 푼다. 그러나 해석이 가해지기 이전이나 해석이 행해진 다음에도 마찬가지로 의미 내용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파노프스키를 인용해보자. “해석자가 틀림없이 확신하고 어떤 내용에 대해 해석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보통 상식을 가진 평범한 - 아무런 편견도 없이 직관적으로 작품을 대하는 -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해석이 도무지 얼토당토 않거나, 심지어 해석자 마음대로 지어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수 세기 전에 훌륭한 교육을 누렸던 식자들은 똑같은 대상을 놓고도 현재 우리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거나 읽고, 나름대로의 지식을 이끌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수 세기 전에 훌륭한 교육을 누렸던 식자들은 똑같은 대상을 놓고도 현재 우리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거나 읽고, 나름대로의 지식을 이끌어 냈을 것이다. 그러니 특히나 해석이 난해하기 그지없는 그림들, 예컨대 알레고리적 의미에 깊숙이 젖어 있는 그림들을 다룰 경우에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들보다 오히려 아무런 교육의 기초가 없는 사람들의 눈에 이런 그림들이 훨씬 자연스럽고 무난하며 심리적인 동조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면, 우리는 그림의 올바른 해석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고 거의 확언해도 좋다.”
위의 인용에서 파노프스키는 여러 관점들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과거의 식자들과 오늘날 해석자가 향유하는 교육의 차이점에 문제를 한정하기로 하자. 파노프스키가 말하는 도상학적 연구는 과거의 식자들이 소유했던 우리와는 ‘다른’ 사고의 내용과 ‘다른’ 지식을 오늘날 해석자의 의식에 그 내용 그대로, 그 때의 진실 그대로 옮겨오는 작업이 아니다. 도상학이 과거에서 현재로 어떤 내용을 ‘매개하는 사상적 도구’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징성’의 세 번째 의미가 끼여들면서 제 몫을 담당한다. 앞에서 테오도르 피셔가 신화와 밝게 깨우친 의식의 차이를 설명할 때 말했던 상징의 뜻에 맞아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화를 신앙의 대상으로 신봉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정확히 구분하는 일이다. 후자는 신화를 신봉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의식과 상상 세계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들이다. 전자에게는 신화의 주역들 - 신적 존재들, 정령들, 영령들, 전설의 영울들 - 이 실재하는 역사적 인물들이지만, 후자는 신화적 존재들을 진정한 사실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때때로 자신의 심경을 신화를 믿는 자들의 그것으로 바꾸어보기도 하고, 신화에 대한 신앙이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환상을 피워내는 힘이 된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파노프스키는 도상 해석이 주제 의미를 밝히는 단계에 그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한 걸음 나아가서 세 번째 의미 단계를 설정한다. 도상학은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서 비로소 도상해석학으로 완성된다. [290~291p]
- 작가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자신에게서 드러나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A.G. 94) [292p]
- 주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기원이 되는 문화적 상황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복원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는 그 자체로 온전하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재구성 작업이 완성된 연후에야 해석 정신은 제약 없는 자유를 누린다. 역사의 흐름 바깥 어딘가에서 아르키메데스의 받침점을 구하기보다는 과거의 역사를 재생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303p]
도상해석학의 목적과 한계
에른스트 곰브리히 Ernst Gombrich
- 조각은 색채와 질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크기 외에는 그 어떤 규모도 나타낼 수 없다. [312p]
- 글과 그림은 물론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며, 언어를 통한 묘사는 결코 그림처럼 하나하나 개별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글은 미술가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동일한 글이 그림에서는 한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미술 작품 하나에 근거해서 그것을 통해 표현되고 있을 글을 재구성한다는 일은 단연코 불가능하다. 우리가 유일하게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그림에 나타난 모든 요소가 전부 글에 씌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것이 글에 명시되었고 또 어느 것이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제 3의 수단을 통해 원래의 글을 찾아내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312p]
- 시각 예술의 전통과 기능이 문학의 그것들과 비록 상당히 다르기는 하지만, 범주나 장르가 해석 작업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두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에로스 상이 기념 분수대의 전통이나 제도에 속한다는 사실을 일단 확실히 하고 나면 그 해석은 더 이상 완전히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것을 유흥가의 광고물로 간주할 경우에는 원래 의도된 의미를 되찾을 수가 없게 된다. [316p]
- 도상해석학자는 이야기가 한 특유한 문맥에서 갖는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즉, 우리의 예를 통해 보자면, 분수대 위의 에로스 상에 어떤 숨은 뜻이 의도 되어 있는지를 다시 찾아내는 것이다. 빅토리 시대의 추도위원회가 작가들에게 요구했을 법한 프로그램 종류에 대해 별로 알려진게 없다면, 도상해석학자가 그 뜻을 복구시킬 가망은 거의 없다. 작품을 작품 그대로 받아들이면 거기서 읽어낼 수 있는 참뜻은 한도 없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물고기 같은 동물들을 우리는 장식이라고 간주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왜 예수의 물고기 상징을 암시해서는 안 되며, 또는 거꾸로, 괴물로 고안된 것이어서 에로스의 박애 정신이 그 위에 승리하고 있다고 하면 안 되는가? [319p]
- 여기서 처음부터 시사하고 있는바, 즉 이미지가 원래의 문맥에서 분리되고 떨어져 나오게 되면 제대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카로의 프로그램이 확증해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찰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여하튼 한 글귀를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조차도 그 문장 구조 내에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다. 글래드스턴이 셰프트베리 경을 ‘그의 계급 사람에게 모범’적인 인물이라 칭했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해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계급order'이라는 영어 단어는 오로지 그 문맥으로부터만 확정적인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이 단어는 고립될 경우 명령, 질서 혹은 공로 훈장이라는 뜻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어떤 단어든지 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여기서도 역시 내가 교차의 원리라 불렀던 것이 적용된다는 것을 그는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의미 규정의 가능성이 대단히 다양해서 이로부터 주변 글의 뜻이 요구하는 듯한 의미를 선택한다. 만일 셰프트베리 경이 수도승이었다면, ’그의 계급‘이라는 용어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336~337p]
- "권위 있는 저서가 없어서 정신적 의미로부터 강력한 논거를 유추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의미는 유사성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유사성의 본질 자체에 오히려 그 원인이 놓여 있다. 한 물체는 많은 것과 유사점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서에 언급된 그 어떤 물체로부터도 명백한 의미를 끌어낼 수 없다. 예를 들어 사자는 한 가지 유사한 점을 근거로 그리스도를 의미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유사점으로 인해 악마를 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지할 수 있었듯이, 성 토마스는 다시 ‘물체’가 확정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을 메타포 이론과 연결시킨다. 그러나 메타포가 신성한 기원을 갖는다고 파악되는 시점에서 바로 이 애매모호함이 성서를 읽는 사람에게 일종의 도전으로 다가선다. 그는 인간의 지력이 하느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의미 또는 복잡한 의미 구조를 남김없이 모두 논할 수는 없다고 느낀다. 이러한 상징들 모두는 의미로 가득 찬 그 무엇인가를 드러내며, 이 의미들은 사색이나 연구를 통해서도 결코 부분적인 것 이상으로는 밝혀질 수 없다. [340~341p]
파노프스키와 그림 해석
데이빗 매닝스 David Mannings
- 작가의 생각은 이랬을 것이다. “그림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작가야. 그림을 직접 완성한 장본인이니까.” 그러나 비평가들 편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작가들의 입장을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작품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는 일이 비평가의 몫인데, 이 과정에서 작가들에게 낯설겠지만 이들은 비평의 테크닉을 구사한다. 비평가는 작품을 해석하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단지 해부하려고 사람을 잡는다는 비난을 불식하기 위해 노력한다. [372p]
- 파노프스키 분석틀의 기초 단계이자 전도상학적 단계에서 등장하는 두 가지 개념을 분석하면 벌써 몇 가지 문제들이 드러난다. 우선 ‘기술적 시각’에서 시작하자. 이것은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보는’ 행위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기술 행위를 그림의 의미 가운데 일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그림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우리의 눈앞에 놓인 이것이 그림이라는 사실을 우선 전제하고 시작해야 한다. 간단하게 이런 식으로도 대답할 수 있다. “이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회화적 가치나 그림 속에 담긴 의미 따위를 찾기에 앞서 그림 자체로 간주되는 그런 것.” 그러나 대답을 조금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어떤 초상화에서 머리 부위를 가리키는 어떤 색면이 있다고 치면, 이것은 단순히 색으로 이루어진 면으로 파악되지 않고 용적을 지니는 어떤 형태로 보여지기 쉽다. 그렇다면 색이 칠해진 캔버스의 바닥면, 즉 아마포나 나무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미술 작품도 결국 물리적인 성질을 가진 물건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뒷부분에서 논의가 옆으로 빗나갔지만, 앞서 제기했던 문제를 다시 상기해보자. 그림이 캔버스 위에 그려질 때, 화면의 표면성을 기술적인 시각에서 같이 다루어야 한다는 전제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못한다면 이는 잘못이라기보다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화가 조토 Giotto를 보자. 파도바의 프레스코 그림에서 조토는 표면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한다. 그의 그림들에서 발산되는 엄청난 힘과 감동은 바로 조토 회화의 양면적 성격이 지탱하는 긴장과 균형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프레스코의 이차원성과 그려진 형태의 삼차원성이 맞물려 형성하는 양대 지층이 충동하고, 충돌의 틈새에서 우리는 조토의 프레스코와 만나는 것이다. 책에 복사된 도판을 들여다보지 말고 직접 파도바에 가서 석회벽에 이마를 대고 프레스코를 감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도판이 실린 책장 낱장도 엷은 벽과 비슷한 느낌을 미약하나마 전달하기는 한다. 어떤 그림이든지 화면이 갖는 물리적인 성질이 있는데, 이점을 잊지 말 것을 재차 강조한다. [375~376p]
-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련한 순례자는 절대로 미학적인 견지에서 프레스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대상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한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 역시 우리가 에로틱한 미술을 다루면서 취하던 방식과 비슷하다. 남성 잡지를 뒤적이며 군침을 삼키는 젊은 사내를 한편에 두고, 다른 한편에는 티치아노의 벌거벗은 다나에를 감상하는 미술 애호가를 두고, 둘 사이의 관점에 차별성을 부여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실제로 작품의 예가 구체화하면 할수록 두 관점의 차이를 갈라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우리가 아는 대로 미켈란 젤로나 티치아노가 「최후의 심판」이나 「다나예를 그리면서, 나중에 그들의 그림을 보게 도리 관찰자에게 무관심을 유도하기보다는 일정한 반응을 부추키려는 의도를 이미 제작 과정에서 품었으리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티치아노가 그린 상당수의 여성 누드들은 터놓고 말하자면 그야말로 핀업 모델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의 그림들도 마찬가지이다. 대가의 심오한 종교성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작가가 오로지 순수하게 숙련된 애호가들의 명상을 목적으로 작업했다는 주장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을 모조리 핀업이나 아이콘으로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그림이 하나 있다고 치자. 그림의 의미는 그림이 실제로 소비되는 용도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377~378p]
-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림에 대한 반응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반응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 그림 앞에서 마음의 동요와 함께 수반되는 심리적 반응이 꼭 그림 해석과 유관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림의 의미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로 반응을 위한 반응에 그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378p]
- 예절 교육이 엄격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왕조기에는 티치아노의 그림들이 점잖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경스런 그림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예컨대, 클로드 필립 경은 티치아노의 그림을 놓고, ‘보잘것없는 육체미와 노출욕구가 표현되었을 뿐, 여성의 품격이 도무지 결핍된’ 것으로 평가했다. 이 시기 미술 비평의 기준은 으랬다. 관찰자의 욕망을 부추기는 그림은 좋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그림을 보면서 어떤 것을 의식하고 못 하느냐를 성급하게 단정짓지는 않게 되었다. -중략- 대개 그림을 볼 때, 우리는 이것을 그림이라는 대상으로서만 보지 않고 그림의 장르를 같이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 그림은 어느 장르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림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결정되고 만다. 감상의 첫단계에서부터 일찌감치 우리가 가진 미술사적인 지식으로 그림을 분석하고 마는 것이다. 곰브리히의 말이다. “도상해석학적 연구에서 우리는 예외없이 이미 작품을 만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확신의 눈으로 작품을 조망한다.” [379~380p]
- 숙련된 해석자는 작품의 관점들에 개별적인 분석을 가하기보다는 항상 작품의 전체성이 만드는 그림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해석을 시작할 때, 형태(형식)에 관한 언급부터 다루어나간다. 여기 보이는 이 색깔과 저쪽의 저런 형태에 대한 언급이 기술의 시작이다. 그리고 부분적인 관심사가 옮겨지는 대로 다른 해석들이 덧붙여지지만, 중요한 것은 해석이 진행되더라도 전단계의 기술에서 확인된 의미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석이 전개되는 단계에서도 색이나 형태에 관한 기초적 기술이 정교한 의미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브라운의 그림에서 우리가 작가의 발언에 현혹되어서 이 그림은 양치기 여인들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풍경화라고 결론 짓는다면, 우리는 그림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 방법을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대로 여인 하나, 아기 하나, 양 두 마리, 하녀 하나, 그리고 풀밭이 재현되어 있다는 기술 의미를 해석의 진행 과정 동안 머리 한구석에 항상 담아둘 필요가 잇다. [381p]
- 어떤 목적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것은 그 목적을 상징한다는 주장이 여기서 나왔다. 예컨대, 의자는 앉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의자는 앉는 행위를 상징한다. 이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의자와 앉는 행위 사이에 아무런 유사점이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여기서 우리가 찾는 것은 유사성이 아니라 목적성이기 때문이다. [383p]
- 상징의 문제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상징과 상징이 아닌 것의 경계선을 긋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주제 전체를 다루다 보면 항상 해석이 지나칠 위험이 있다. 어떤 것도 예외없이 상징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 다음에, 일단 잠정적인 정의내림을 시도해보자.
이자벨 훙어란트는 시의 상징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썼다. 상징에 관한 준準행동주의적 주장을 내세웠는데,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 대상을 다른 대상과 어떻게 연결짓느냐의 방법에 따라서 상징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대단히 요긴하게 보인다. 시의 상징을 넘어서 보다 확장된 영역에 그녀의 주장을 적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분신 자살이라는 행위는 자유를 부르짖는 애국적 동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얀 팔라흐의 경우에는 상관이 있다고 간주되었다. 여기에 의도적 동기가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팔라흐 자신이 분신의 행위를 그렇게 해석해달라는 의도를 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행위자가 행위의 의도를 통해 상징을 생산하려고 했다는 사실과 상징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이야기이다. 그림의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자. 어떤 사람이 정사각형을 그려놓고 자신이 그린 도형을 통해서 인류애를 상징하려고 의도한다고 말했다고 치자. 그럴 경우, 이런 대답을 듣기 쉬울 것이다. “자네한테야 그렇겠지.” 여기서 우리는 인류애를 상징하는 정사각형이 사실은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적인 상징에 머물고 만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개인적인 상징은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한 법이다. 내가 가치를 두는 어떤 대상이나 사건이 나에게는 무엇의 상징이 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왜 이것이 저것을 상징해야 하는지 아무래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비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해석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상징이기에 앞서 단순한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마치 깨어진 거울이나 나룻배, 새 같은 것들이 단순히 대상이기도 하면서 자주 상징적으로 해석되는 것처럼. [383~384p]
- 우리가 어떤 한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같은 작가가 그린 다른 그림들을 반드시 비교해야 옳은가? [390p]
- 오늘날 광범위하게 보급된 복제 그림이나 슬라이드 또는 엽서 사진을 통해서 그림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불행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작품의 크기에서 비롯되는 실제적이고 압도적인 느낌을 얻을 기회가 박탈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림의 규격이 전달하는 일회적인 또는 반복적인 특성도 파악할 수 없다. 예컨대, 어떤 초상화가 위용을 뽐내기 위해 실물대 이상으로 부풀려서 주문되었든지, 혹은 어떤 사랑스러운 여인의 초상을 손에 들고 보기 위해서, 아니면 주머니에 몰래 간직하려고, 자그마한 포켓 규격으로 주문했다면, 도판이나 슬라이드를 통해서 이런 그림의 원래적 기능을 복원하는 일이 여의치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그림의 규격도 도상학적 요인이 된다. [391p]
- 우리가 작품을 볼 때, 작가가 의도했던 것 이외에 다른 것을 본다면, 우리는 작품을 잘못 이해하는 것일까? [394p]
- 예술가가 이러이러한 것을 그리려고 의도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의도intention의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는 진술이다. 우리는 그림이 한 개인이나 개인 집단 - 예컨대, 르네상스 화가의 작업실 - 의 작품이라고 보아왔다. 우리는 작품을 볼 때, 작품을 생산한 예술가를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을 관찰하는 동안 작가나 그 시대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수가 있다. 그들이 뻔한 것들을 흘려보거나 보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연히 있는 것을 어쩌랴. 카라밧지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드러내는 선정성은 좋은 예가 된다. 카라밧지오의 그림에 찬탄을 금치 못했던 사람들이나 심지어 화가 자신도 작품의 선정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카라밧지오 연구에서 선정성의 문제를 관찰하고 해석의 관점으로 채택한 다음에는 그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화가가 애당초 작품의 주제를 다루려 했을 때 선정성을 드러낼 의도가 전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경우를 살펴보자. 선행 문화에서 그림의 모티프를 빌려오는 경우이다. 파노프스키가 각별한 관심을 쏟았던 카테고리이다. 카롤링거 시대에 만들어진 작은 상아 조각 가운데 날개 달린 사람의 형태가 성서 주제의 내용이 끼여 있는 예가 있다. 원래 고대에 빚어진 승리의 여신인데, 수 세기가 지난 다음 새로운 주제 맥락으로 재활용되어서 기독교 시대의 천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승리의 여신을 빚어낸 고대의 이름 모를 조각가는 자신이 후세의 천사를 빚어내고 있다고는 털끝만치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라밧지오와 카롤링거 천사는 상반된 경우이다. 여기서는 두 경우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둘 다 작가에 의해서는 의도되지 않았던, 그러나 해석자에 의해 관찰된 숨겨진 의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해석자는 작가가 애당초 의도한 바를 자의에 의해 다르게 해석하고 주장하도록 유도된다는 점이다.
의도의 개념을 창작의 원인 Grund으로 파악한다면, 다시 말해 작품의 제작 행위에 선행하고 작품의 생산을 야기시킨 상념들을 작가의 의도라고 본다면, 앞서 말한 고대의 조각가의 경우 기독교의 천사를 빚어내려는 의도를 갖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조각가는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카라밧지오 역시 프로이트 후파들이 주장하는 성적인 암시를 그림에서 의도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의도의 개념을 작품 제작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지 않을 경우에 상황은 달라진다. 간단히 도식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림의 의도를 원인으로 보는 관점은 그림의 제작 행위 뒤에 숨겨져 있는 의도와 관련된 문제들을 그 제작 행위를 수행하는 인물에게 제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림의 의도를 묻고 난 다음에도 그림 그 자체에서 관찰되는 것에 대해서 우선적인 관심을 소홀히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충분히 설명했던 대로, 상징이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에 의해서 실현되기도 하지만, 한편 작품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의해서도 결정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면, 고대에 빚어진 승리의 여신은 새로운 줄거리 맥락에서는 당연히 천사의 의미를 충족시키는 상징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런 예를 일일이 들자면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카라밧지오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선정성의 문제는 종교적인 주제와 일견 모순된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화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의미의 심층부를 들여다보는 순간 모순은 자연스레 극복된다. [395~397p]
- 과잉 해석은 작품마다 고유하고 순수한 본래적인 상태가 있다고 전제하고 이것을 넘어서는 지나친 해석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왔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어떤 그림들은 미완성의 상태로 전해진다. 어떤 그림들은 또 고쳐지고 변형되어왔으며, 수정 작업이 원작자 자신에 의해 실행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도 작품의 순수한 원래 상태를 말할수 있을까? 문제는 오히려 작품의 의미를 복원-사실은 파괴-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중략-
작가가 의도한 것 이상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다른 한편으로 의도를 덜 읽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주 논란이 되는 문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작가가 의도한 방식 이외에 다르게 작품을 보는 경우, 우리는 올바른 이해를 기대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가 자신의 발언이나 기록이 해석에 종종 인용되는 현상은 받아들여도 괜찮을까? 이런 인용은 작가를 빼놓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특이한 것일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문제이다. 작가의 변을 전하는 그대로 수용한다고 치자. 그런 인용들이 정말 작품해석에 도움이 될까? 차라리 신변잡기나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것들이 주종이다. [397~398p]
- 의미의 개념을 그림 또는 그림의 일부가 가지고 있는 형식적 가능성이 기능으로 보자는 뜻이다. 나아가서, 형식적 요인들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관찰자의 관점으로 끌어내는 방식의 기능으로 간주하자는 뜻이다. 그림이 언제 어떤 용도로 주문, 완성되었는지는 여기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전혀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의미 해석에서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포드 매독스 브라운은 자신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 이상을 추측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그의 언변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트릭에 놀아나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른바 직관적인 오판에 의존하는 길만 남는다. 철학이 미술 비평을 학문적으로 불신하고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경향으로 매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술 관람자와 작품을 익나하는 이질적 사고’에 대해 브라운이 경고했던 것을 다시 적지 않았다. 예술은 모름지기 순수한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칸트의 발언이야말로 미술의 이해를 심각하게 저해해왔던 것이다. [399p]
도상해석학에서 미술사적 해석학으로
오스카 배치만 Oskar Batschmann
- 도상해석학을 그림에 관한 학문으로만 정의할 경우, 그것이 후에 건축 분야로 확장도리 때 나타나는 문제는 포함하지 못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단 여기서는 이상과 같이 주요 문제성을 살펴본 것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추정을 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즉, 미술사적 해석학은 개별 대상이 지니는 특유성을 도외시함으로써 해석론을 일반화시켜서는 안 되고, 오히려 여러 다양한 해석론들을 구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403~404p]
- 카시러의 다음과 같은 문구를 대할 때 분명해진다. “예술적 관조는 그림을 꿰뚫고 그 안에 표출되고 재현되어 있는 또 다른 것을 보는 게 아니고, 그림 자체의 순수한 형태로 침잠하여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있는 것이다.” 파노프스키의 문제는 카시러의 문제와는 다른 듯 하다. 카시러의 문제는 의식이 필연적으로 표출되고 감각적인 존재가 의미로 채워지는 것 및 그 역사에 관해 이해하는 데 있다. 반면, 파노프스키의 문제는 의미 형성체를 그 안에 표현된 또는-파노프스키의 표현에 따르면-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숨겨진 정신 Logos으로 해독해내는 것이다. [418p]
- 즉, 의미는 시간의 지층 속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 ‘영향’이라는 임재하는 개념에 의해 흡수된다. [423p]
부록
-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어떤 수단을 통해서, 그리고 미술 작품의 어떤 구성 요소 Komponente를 가지고 의미를 생산하는가?(여기서 미술 작품이라고 일컫는 것은, 그것이 회화 작품이건 조각 작품이건 하나의 복합적인 예술적인 메시지의 성격을 띠고 특정한 역사적, 물질적 조건하에서 한 명 또는 일군의 관찰자들에게 수용되는 것을 가리킨다.)
- 미술 작품에서 실제로 여러 단계의 의미들이 존재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각 의미 단계 사이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을까?
- 우리는 과연 의미 분석을 하기 위하여 연구 대상에 적합한 다양한 방법들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이러한 방법들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다양한 방법들 사이에 논리적-분석적 연결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 미술 작품의 기초 의미와 복합 의미에 관한 주장을 다만 담론을 통해서 학문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 입증하려면 어떤 전제가 충족되어야 하는가?
- 해석의 가설들을 검증하는 일이 원칙적으로 가능한가? 각 의미 단계나 해석 단계에 따라서 달라지는가?
- 앞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결론으로서 다른 문제를 제기하자. 각 단계에 따라 커지거나 감소하는 검증 자능성의 개념 또는 해석적 진술의 상대적(관찰자나 해석자 집단의 선별에 따른 상대적 성격) 확인 가능성의 개념을 도입해도 좋은가?
- 우리의 주장이나 다른 연구자들의 주장들(도상해석학적)은 어떻게 검증하나?
- 우리에게 개관적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나 비경험적 기준이 있어서 해석에서 내놓은 주장의 진위를 가릴 수 있을까?
- 조르조네가 그린 「뇌우Tempesta」를 예로 들자. 작품을 제작한 작가나 작품의 주문자가 당시에 의도했던 메시지나 의미들을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혹은 모호한 추측으로 짐작하는 데 그치는 경우에, 과연 미술작품의 복합적인 의미 구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 작품의 의미를 과잉 해석하는 위험은 늘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과잉 해석을 통제할 기준을 가질 수 있을까?
- 작품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작품과 관련된 모든 사실을 숙지해야 하는 것일까? 예컨대, 어떤 작품이 당시의 주문자에게(혹은 관찰자에게) 어떤 기능을 혹시라도 충족시켰는지, 그리고 조각 작품을 완성할 대리석 덩어리가 누구의 주문으로 조달되었는지 이런 세세한 문제까지 빠짐없이 알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문제들은 차라리 전혀 다른 학문적 이해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 하나의 기호에는 반드시 물리적으로 확인 가능한 요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 매개, 수용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조형예술 작품에서 이른바 이와 같은 기호의 물리적 요소 Zeichenmaterie는 의미를 표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까? 혹은, 기호들이 의미 표현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다시 말해,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재료 선택, 재료의 크기나 규격-작품은 반드시 크기를 가진다.- 따위가 이미 기호로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 구상 미술에 국한시켜 생각한다고 치자. 예컨대, 브라크가 그린 정물화에 기타를 그린 것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려진 기타를 실제 기타와 비슷하다고 보는 주장은 도대체 어떤 뜻에서 나온 것일까? [444~44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