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uhausbucher

지은이 / Theo Van Doesbufg 외

by Joong

Bauhausbucher
새로운 조형예술의 기초개념 1-2
2002년 9월 20일 인쇄
2002년 9월 23일 발행
저자 : Theo Van Doesbufg 外
발행자 : 이기복
발행처 : 이엔지·북(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1457-11)


- 공간을 경험하지 않은 어린이는 예를 들면 달과 같이 멀이 있는 것을 가지려고 한다. 어린이는(가지고, 달리고) 느리기는 하지만 어느것은 가까이 있고, 별도의 것은 멀리 있다는 것을 안다. 물건은 『옆에 있다』,『멀리 저쪽에 있다』그것에 의해 공가노가 그들(어린이) 자신과의 관계가 경험되는 것이다. [10p]


- 모든 예술은 같은 종류의 내용을 갖는다. 표현방법과 표현수단만이 다르다. [14p]


- 모든 예술이 가장 강렬한 표현형식은 오직 그 고유의 수단을 사용할 때에 생긴다.
미적인 현실경험의 조형이 각각의 예술 한계 내에서 고유의 표현수단을 질때. 개개의 예술은 그 자체가 순수하고 현실적이다(그림 1-4참조). 어느 예술에 고유의 표현수단의 한계를 초월할 때 이 예술은 불순하고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하여 음악의 순수한 표현수단은 『음향(능동적)과 비음(非音)(수동적)』이다. 작곡가는 자기의 미적인 경험을 음향과 비음과의 관계에 따라 표현하고 있다.
회화의 순수한 표현수단은 색채(능동적)와 무채색 「조형의 평면」(수동적)이다. 화가는 자기의 미적인 경험을 유색평면(有色平面)과 무색평면(無色平面)과의 관계에 의해 표현한다.
건축의 순수한 표현수단은 평면, Mas(능동적)와 공간(수동적)이다. 건축가는 자기의 미적인 경험을 평면, 마스와 내부공간, 공간과의 관계에 따라 표현한다.
조각가의 순수한 표현수단은 볼륨(능동적)과 무볼륨(공간)(수동적)이다. 조각가는 자기의 미적인 경험을 볼륨과 공간과의 (공간의 내부에 대한)관계에 따라 표현한다.
이들의 예술이나 기타의 예술(문예, 무용, 연극, 영화)은 우리들이 미적으로 현실을 경헝하는 조형(방식 혹은 표현방식)에 속하는 것이다. [14~15p]


- 농민은 암소(목장소)의 특징은 종자소(번식소)와 젖소로 본다. 이와같은 태도는 동물을 종축이나 젖소를 준다는 가치성에서만 본다. 농민이 암소를 아름답다고 할 때 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동물의 입수(入手) 미치는 점, 건강한 점. 우유를 잘 내는 점, 큰 것 등과 관계된다.
수의사의 태도는 별도이다. 그에게 있어서 특히 흥미가 있는 것은 암소의 건강상태에 관계되는 점이다. 동물을 해부학자나 생리학자 등의 관저메서 보기로 한다. 그가 동물을 기르는 것은 암소가 건강하고 튼튼하며, 골격이 좋을 때이다.
소를 매매하는 사람은 암소를 상품의 대상으로 본다. 그가 동물을 기르는 것은 그것이 상거래에 필요하며, 이윤을 가져올 때이다.
식육점은 이 암소에서 몇 근의 고기, 몇 근의 지방, 몇 키로의 뼈다귀가 나오는가 하는가를 본다.
관찰자는 각각 암소를 자기의 직업이나 체질에 관계시켜 본다. 개개의 개인적인 경험이 암소라고 하는 『현실』을 규정하는 것이다.
화가는 위에서 말한 특징을 별로 보지 않는다. 그도 동물을 일정한 형식으로 경험하나, 이 대상으로의 특징으로 농민, 가축상인, 수의사와는 다른 가장 일반적인 특징에 관심을 표시한다. 보다 일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화가는 이 특징을 완전히 다른 관계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조형예술가는 암소를 평쳐진 공간과의 관계속에서 측면에 닿는 빚의 움직임을 보는 것처럼 관망한다. 그는 먹이 기구나 융기(隆起)를 조각과 같이 느낀다. 전각(前脚)과 후각 중간의 동체를 측면이나 가슴이 아니라 긴장(緊張)으로서 느낀다. 동물이 사는 지면을 평면으로 본다. 그에게는 대상의 특별한 특징은 흥미가 없기 때문에 개개의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동물도 주위의 세계에도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그것을 느낀다. 동물이 움직일 때 그는 새로운 경험을 거기에서 얻는다. 불규칙한 운동이 잠시 계속되며 그것이 되풀이 될 때 예술가는 리듬을 체험한다. 동물의 몸체는 예술가에게는 이미 그와 의식되는 일은 필요 없으며 공간속에서 움직이는데 따라 다양한 것이 된다. 그것은 물질적 존재라는 것을 중시하고 추상적으로 예술가의 창조적 이미지 속에서의 존재물이 된다.
이 미적인 혹은 조형적으로 보는 방법 중에서 창조의 법칙이 확실하게 된다. 예를들면 조형예술에서는 크기, 색채, 공간 등의 균형관계이다. 이 관계는 미적 강조라 부르는 것으로 그밖에 조형예술에 관계되는한 각각의 예술가에게 있어서 다소라도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는 것이다. [16p]


- 미적경험을 예를들면, 쾌적·불쾌의 감정 대상에 대한 동정 등, 기타의 구성요소가 들어오면 미적경험은 약해지며 때로는 소멸되는 수도 있다. 여기에 미적인 강조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경험은 다른 내용을 가지며 예술작품은 이미 오직 미적은 아닌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18p]


- 미적강조가 약하고 명확하지 않으며 혹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을 때 또는 다른 강조에 의해 배제될 때, 작품의 예술적인 의미는 그것에 따라 소멸된다.
그것에 대해서 미적강조가 명확하며 다른 것과 혼합되지 않을 때,-예를 들면 색채와 공간, 필름과 색채라는 2가지의 조형요소가 조화된 관계에 있을 때-그리고 이 미적강조가 조형적인 통일을 형성하고, 그 예술장르에 어울리는 표현수단과 결합될 때, 그것은 엄밀히 조형된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림 9-11)[18p]


- 어떤 화가가 걸인을 만나서, 남자의 초라한 모습에 감정이 옮겨져서 인간으로서 마음이 움직일 때, 화가는 빈곤하고 궁핍한 체험과 더러운 옷을 걸친 남자의 모습과 결부시킨 이미지로 옮겨져서 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빈곤하고 궁핍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생기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예술적인 조형과는 거의 혹은 완전히 관계가 없다.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은 미적강조가 작품에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며 완전히 없다고 하는 것은 미적강조가 예를들면 논리적, 정서적, 혹은 사회적인 다른 강조에 의해 배제되기 때문이다. 미적강조가 강렬하게 더구나 남자의 모습의 묘사와 결부되어 있어도 이 혼합적 경험에서 자연, 모방, 예술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혼합된 예술조형이 등장한다.
이와같은 경우를 미적강조가 불명료하게 표현된다고 한다(그림 12, 13).
이 화가는 회화의 수단으로 남자의 빈곤하고 궁핍함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예를들면언어와 같은 다른 수단에 의해서도 같은 감동을 불러 일으킬 수가 있을 것이다. [19~20p]


- 여기에서는 묘사(모방)는 없어지며, 특별의 우연저인 것보다 깊은 다른 현실성의 우주적인 현실성에 대한 미적 변경(묘사)이 시작된다. [20p]


- 최초의 경우 대상은 표현방식의 최종 목표인데 대해서 둘째의 경우는 다만 수단에 불과하다. 최초의 표현방식을 간단히 『물질표현』이라고 부르며, 두 번째의 것을 『이념표현』이라 부른다(그림 18-19) [22p]


- 물질을 표현하는 묘사가 어디까지 예술인가 하는 문제는 그만 두더라도 여기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념을 표현하는 묘사는 예술표현으로서 가치가 높은 점이다(예술의 목표는 자연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의 외면적인 현상을 되풀이하는 이상의 부분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22p]


- 그리스 사람에게 있어서는 물질을 표현하는 형태가 우세하다(그림 21). 자연적인 현상형시이 우주적인 기본형식을 배제한다. 그 근저에는 자연적인 현상형식과 대단히 밀접하게 결부된 生의 의식이 있다.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더구나 이상적인 자연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집트 사람에게는 보다 상징적인 디폴메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스 사람의 예술은 그렇기 때문에 같은 견해의 민족에 따라 환영되었다.
그것은 르네상스나 심적 물질적 기초에 의거하는 모든 문화이다.
그에 대해서 중세에는 새로운 이념이 등장된다. 그것이 예술적(미적)이념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라도 예술의 표현형식에 영향을 준 것이다. 형태와 색채는 긴장되고 심화되어 심적인 것은(우수하여 종교적인 태도로) 제약된다. 윤곽은 모나고 단단하며, 색채는 명확하다(그림 22). [23~24p]


- 예술작품을 창출하는 유일한 것은 능동적 창조적인 경험이며 수동적인 경험은 아니다.
수동적인 경험이 가져오는 것은 경험대상의 반복 혹은 중복 뿐이다. [25p]


- 미적이념이 직접적으로(즉, 각 예술의 표현수단에 의해, 예를들면 소리, 색, 평면, 마스(되)에 따라 표현되는 예술작품을 현실적으로 엄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념을 보조수단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예술작품과는 반대의 것을 엄밀한 것이라고 한다. 보조수단과는 예를들면 감정의 연합이나 관념연합과 결부된 상징, 이미지, 기분, 성향과 같은 것이다.
조형수단이 단순히 작품의 유기적 통일의 운반자 뿐 아니라 이류죤적 묘사기능을 갖는 예술작품과는 반대의 것을 현실적이라 부른다(예를들면 색채를 사용할 때 돌, 나무, 천(그 소재성)의 이류죤, 겉보기의 속길이의 표현, 혹은 회화의 수단에 따라 조각이나 건축의 이류죤의 표출 등을 낳게 한다).
그와 같은 보조수단은 미적경험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회구, 대리석, 돌 등의 조형재료가 표현의 직접적인 운반자가 되는 것이다.
예술가가 그와 같은 보조수단을 이용할 때 예술작품의 본질이나 예술이념의 실현도 그에 따라 잃어버리게 된다. 조형예술의 전개는 결국 조형이념의 엄밀하고 현실적인 표현으로 그치는(일정하지 않고 변화가 많은) 접근이다. 모든 예술의 전개에 대한 이 현실적인 표현을 위한 구체적인 수단에 대한 과정에 있어서는 항상 재료가 앞으로 나오게 된다. [26~27p]


- 이와같은 회화는 고도로 자연에 충실하나 화가의 일정한 의도에 따라 자연에서 떨어져 있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화가가 작업을 하는 것은 예술적 미적인 법칙(계획)에 따라(구성적으로 조정되어) 있어서 대상의 자연다운 명료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화가가 노력하는 것은 자연의 형태보다도 미적인 의도인 것이다(그림 25).
화가는 자연의 회화적인 우연성이나 다양성에 정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인물을 질서있게 세부적으로 정통시키는데 따라 일반적인 이념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표출은 예술적(미적) 조형의 법칙(이념)에 대해서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가는 자기의 예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연의 형태를 수단으로서 이용한다.
목표는 조화적인 전체를 만드는 것이다. 거기서는 회화속의 인물이 서 있는 상태와 장소, 공간의 위치, 운동의 양과 방향이 여러 가지로 변화되고, 소멸되는데 따라 전체의 미적조화가 균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예술적 (미적)조화는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달성된다. 어느 정도까지라고 하는 것은 예술적 목표는 직접적으로 예술적 수단에 따라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자연의 형태의 배후에 은폐되어 입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색채나 형태도 순수하게 색채나 형태로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색채나 형태도 예를 들면 잎새, 유리, 지체, 천, 돌 등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사용된다.
이런 종류의 예술작품은 자연주의적 수단이며, 예술적 (미적)이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미적 자연주의적인 예술작품이다.
그것은 미적(보다 내면적)이기 때문에 외면적인 자연에서 떨어지며 자연주의적인한 미적인 이념에서 떨어진다. 말하자면 분열되었으며 일의적으로 엄밀히 조형되는 일은 없다.
조형예술가의 목표는 자기의 미적 현실경험을 혹은 살펴보면 사물의 기본 존재의 창조적 경험으로 형태를 줄 수가 있는 것이다. [28~29p]


- 팔, 다리, 수목, 풍경은 결코 회화적 수단은 아니다. 회화의 수단이란 색채, 형태, 선, 그리고 평면이다. [29p]


- 엄밀히 조형된 예술작품에 있어서 조형이념은 표현수단의 끊을 수 없는 상쇄에 의해 직접적으로 현실적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하여 수평의 상태는 수직의 위치와 상쇄되며 마찬가지로(큰 마스와는 작다) 마스나(넓은 비례관계와는 좁다)비례관계도 상쇄되는 것이다(그림 27). 평면은 그것을 한정하는 평면 혹은 그것과 관계되는 평면인 것과 상쇄되며 동일한 것은 색채에도 있다. 어느 색채는 다른 것에 의해(예를 들면 황색은 청색과 백색은 흑색과)상쇄되며, 어떤 색채군은 다른 색채군과 모든 색면은 무채색의 평면과 상쇄되며 그 반대로 생긴다. [30p]


- 예술가는 자기 작품을 『정신적으로』강조하기 위해서는 문학적인, 상징적인, 종교적인 혹은 대상에 따라 이미지를 각성시키는 수단을 이용한다.
본래의 이미지를 조형하는데 대해서 모사(模寫)가 있으며, 전설 기술에 대해서 뒤에는 재현이 있으며 노래의 창안에 대해서 뒤에는 가창이 있는 것처럼 엄밀한 조형예술에 대해서는 엄밀하지 않은 이미지와 결부된 예술이 있다. [32p]


- 그리스 조각에 대한 반응이 감각적·연상적이라는 점은 그의 주의가 신체형태의 아름다운 자태에만 향하며 그것을 직접적으로 현실과 관계시켜 거기에서 관찰되는 신체형태로 도모되기 때문이다.
이집트 조각에 대한 반응에서 우세한 것이 감각적·연상적이라는 점은 거기에서 지각되는 형태나 상징도 간접적으로(나일강, 태양, 달, 농업 등의) 현실에 결부되기 때문이다.
첫째의 현대회화에 대한 태도가 감각적·연상적이라는 것은 시각적으로 지각되는 트럼프의 카드라는 테마가 즉시 카드 승부의 이미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조형적인 예술작품에 대한 반응이 감각적·연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것은 시각적인 지각이 다만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예술수단에 한정되며, 그 수단이 창조력 속의 지각적인 평면의 사용이 현실로 관찰되는 어린이의 완구인 나무상자를 쌓는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33~35p]


- De Stijl 그룹의 회하는-직선, 직각, 삼원색, 3무채색이라는 대단히 한정된 도형적 어휘에서 출발하여 그것에 의해 구성된 추상적인 구성이다.-최초의 건축설계나 초기의 조각과 같이 보편적인 조화의 신앙이었다. 이와같이 한정된 언어수단은 개인적인 표현을 한층 좁히게 되어 그 결과 De Stijl의 작품은 전체에 있어서 공동체의 작품과 같이 보이는 것이다. [72p]


- Doesburg는 회화의 역사를 다음 3단계로 나누었다.
1. 시각적으로 지각되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
2. 시각적으로 지각되는 것을 통하여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
3.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따라 직접적으로 정신적인 것을 표현코자 하는 소망. [76p]


-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조형예술이 과거의 예술과 다른 점은 그것이 개념의 예술이며, 형태·공간·색채의 조형적 상호관계의 예술이다. 이 「관계」는 대상의 조형적·,미적 그리고 보편적인 본질을 조용히 명상하는데서 탄생된다. 새롱ㄴ 조형예술의 형태는 자연대상 중에 존재하는 이와같은 내면적인 관계를 나타내며 안에서 밖으로의 움직임을 표시한다. 말하자면 「메타자연적인」형태가「조형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이것이 새로운 조형예술의 미적원리인 것이다. 그리고 예술작품의 미적기능과는 이와같은 정신적인 요구에 응답하는 일이며 이렇게 하여 예술작품에는 정신적인 효율이 요구되는 것이다. 조형적이란 단순한 외적형태의 수준은 아니며, 대상의 안과 밖의 관계 위에 성립되는 개념인 것이다. [77p]


- 그것은 그가 수학적인 조작법에 고집하면 완성된 작품의 질이 경화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은 그것을 이 시기의 스탠드그라스 시리즈의 끝의 작품「콤포지션 5」에 대한 구심적인 경향의 출현에서 파악할 수가 있다. 그는 1919년에 쓴 「새로운 회화를 보는데 있어서」라는 하나의 문장에서 단순한 수학적인 구도의 작품과 예술적인 회화작품과 비교를 통하여 예술작품에는 「다양한 통일이라는 미적균형」이 표현되었다고 한다. [82~83p]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상해석학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