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E.H. 곰브리치 | 옮긴이 / 차미례
예술과 환영
회화적 재현의 심리학적 연구
E.H. 곰브리치 / 차미례 옮김
초판 1쇄 발행 - 2003년 8월 1일
초판 2쇄 발행 - 2008년 7월 1일
발행처 - 열화당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20-10 파주출판도시)
서문
- 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민족들에 의해서 그처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던 것일까. 우리가 실물 그대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그림들도, 미래 세대에게는 우리가 이집트 그림들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감 안 나는 것으로 보이게 될까. 미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일까, 아니면 그런 것에도 객관적인 기준들이 있는 것일까. 그런 기준이 있다면, 만약 오늘날의 인체 데생 교실에서 가르치는 기법들이 고대 이집트인들이 채택했던 관습보다 자연을 더 충실하게 모방할 수 있다면, 왜 이집트인들은 그런 기법을 미처 채택하지 못했던 것일까. 현대의 만화가가 암시해 주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받아들였던 게 사실일까. 그러한 예술적인 시각의 다양성이, 현대의 미술가들이 창조해낸 당혹스러운 이미지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어 주지는 않을까.[29p]
- 즉 이 그림의 해석과 관계없이 그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된다. 정말이지, 우리는 이 두 가지 해석의 사이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왕복할 수도 있다. 또 오리를 보는 동안에 토끼를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좀더 면밀히 관찰할수록, 우리는 이 두 가지 해석을 동시에 체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환영이란 설명하거나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지적으로는 어떤 주어진 경험이 환영임에 틀림없다고 알고 있는 경우에도, 스스로로 하여금 그런 환영을 갖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은 엄격히 말해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1p]
- 시각 이미지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 시대처럼 값싼 것이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우리는 포스터와 광고물들, 만화책과 잡지의 삽화들에 포위되어 공격당하고 있다.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과 영화 스크린 위에, 우표와 식료품 포장지에 그려진 것을 통해 재현된 현실세계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본다. 그림은 학교에서도 가르치며, 집에서도 치료법이나 소일거리의 하나로 그려지고 있다. 수많은 아마추어 화가들까지도 지오토(Giotto)에게는 순전한 마법으로 보였을 여러 가지 수법들을 이미 습득하고 있다. 우리가 아침식사용 인스턴트 식품의 종이포장에서 보게 되는 가장 조잡한 채색 그림조차도 지오토 시대의 사람들을 놀라서 숨이 막히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이런 사실에서 그 포장지 그림이 지오토의 것보다 우수하다고 결론짓는 사람들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느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나는 재현기법의 그러한 극복이자 비속화(卑俗化)가, 미술사가와 평론가 양쪽 모두에게 문제거리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3p]
- ‘양식(style)’은 물론 로마의 필기도구였던 ‘스틸루스(stilus)'에서 파생된 말이다. 로마인들이 말하던 ’완성된 양식‘이란, 그보다 더 나중 세대에서 ’유창한 펜‘을 말하는 것과 똑같은 식이다. 고전시대의 교육은 학생의 표현력과 설득력 배양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고대의 수사학(修辭學) 교사들은 말하기와 쓰기의 모든 형태의 양식에 대해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들의 토론은 예술 및 표현에 대한 아이디어의 거대한 보고(寶庫)를 제공해 주었으며, 그 이후의 평론계에 대해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쳐 왔다. 이와 같은 노력의 대부분은, 여러 가지 다양한 양식상의 고안과 전통의 심리학적 효과를 분석하는 일, 그리고 화려하고 소박한, 고상하고 과장된 여러 가지 ’표현상의 카테고리‘를 묘사하는 풍부한 어휘들을 개발하는 일에 관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표현의 성격이란 묘사하기 어려워서, 비유법으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즉, 우리는 ’불꽃처럼 번득이는‘ 양식이라거나 ’양털처럼 희미한‘ 양식이라고 말한다. 이럴 필요가 없었다면 양식에 관한 용어들은 시각적인 미술의 영역에까지 결코 전파될 수가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고대의 수사학자들은 양식을 특징짓는 생생한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주시하고, 그림이나 조각과의 비교를 끌어들이기 좋아했던 것이다. [34p]
- 엄격히 말하면, 거기서 제기된 질문에는 아직까지도 해답이 없는 것이다. 화가들이란 ‘더 잘 볼수 있기 때문에’ 현실의 모방에 성공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방의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 양쪽의 견해 모두가 상식적인 경험에 의해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미술가들은 그들이 자연을 치밀하게 바라봄으로써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미술가가 그의 직업 전부를 배우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고대에는 미술에 의한 환영의 정복이 너무나도 최신의 성과였기 때문에, 회화와 조각에 관한 토론은 필연적으로 모방, 즉 미메시스(mimesis)에 집중되었다. 실로 그 당시 고대세계에서 그 목표를 향한 미술의 진전은, 오늘날 세계에서의 과학기술의 진보와 맞먹는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진보의 한 모델이었던 것이다. [35p]
- 예컨대 “마사치오는 휘장을 그릴 때, 그것이 마치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실물인 것처럼 주름이 별로 없이 느슨하게 내려뜨려진 모습으로 그렸다. 이 수법은 그후 미술가들 사이에 매우 유용하게 쓰여 왔으므로, 마사치오 자신이 창안한 업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했다.
바로 이러한 순간에 독자는, 이런 간단한 사물의 초상을 그리는 데 어떤 장애가 있었기에, ‘마사치오 이전의 미술가들은 휘장의 내려뜨려진 모습을 그들 힘으로는 보지 못했던가’ 자문해 보게 될 것이다. 이 의문이 명확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까지는 한동안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체계적인 설명이나 해답을 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지금까지도 아카데믹한 미술교육전통의 일환으로 되어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것’에 어떤 과정이 내재해 있는가 하는 문제, 즉 오늘날 우리가 지각심리학이라고 부르는 문제가 처음으로 양식에 관한 토론 가운데 등장한 것은, 미술교육에서의 실기상의 문제로서였다. 재현의 정확성에 전념하던 전통주의적 교사들이 발견한 사실은(앞으로도 여전히 발견하게 되겠지만), 자기 제자들의 난관이 자연을 복사하는 능력의 결핍뿐만이 아니라 자연을 볼 수 있는 능력의 결핍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견해를 논의하면서, 조너선 리처드슨(Jonathan Richardson)은 18세기초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무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없으며, 그 사물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사람도 없다는 것은 분명 정확한 금언이다. 이 금언이 진리라는 것은, 인체의 구조라든가 뼈대의 짜임새, 해부학에 무지한 사람이 그린 교습용 그림과, 그런 것들을 철저하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린 것을 비교해 보면 당장 나타난다. 양자가 모두 똑같은 생명체를 보고 있지만, 서로 전혀 다른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36p]
- 그리고 무지(無知)의 시대와 지식의 시대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무수한 차이점들은, 우리들의 시야의 확대 또는 축소가 단지 타고난 시각에 지나지 않는 수상(受像) 이외의 다른 조건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그러한 시대의 사람들은 오직 그만큼밖에 볼 수가 없었으며, 그것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이상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38p]
-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과 지력(知力)을 통해 추론하는 것의 구별은, 지각에 대해 인류의 생각이 미친 것만큼이나 오래 된 것이다. 플리니우스는 “시각과 관찰의 진정한 기구는 마음이며, 눈은 인식에서 보이는 부분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용기(容器)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고전시대의 전형적인 입장을 간명하게 요약한 바 있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는 그의 저서 『광학(Optics)』에서, 시각 인지의 과정에서 판단력의 역할에 대한 고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가장 위대한 연구가인 아라비아의 알하젠(Alhazen, 965?-1038)은 중세기 서양인들에게 감각과 지식과 추리의 구분 그 모두가 지각인지(perception)의 한몫을 맡고 있음을 가르쳤다. 그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시각의 감각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다만 빛이나 색채는 예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존 로크가 모든 생득관념(生得觀念)을 부정하고, 모든 지식이 감각을 통해 얻어진다고 주장하여, 종래의 정설(定說)에 새로운 긴급 과제가 등장함으로써 문제가 제기되었다. 왜냐하면, 만약 사람의 눈이 빛이나 색채에 대해서만 반응을 보인다면, 삼차원을 알고 있는 우리의 지식은 무엇을 통해 얻어지는 것일까 하는 것 때문이었다. 이 분야에 대해 밑바닥부터 새로 탐구해서, “우리들의 공간이나 입체성에 대한 지식은 촉감이나 운동에 의해서 얻어지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버클리(G. Berkeley)의 『새로운 시각이론(New theory of Vision)』(1709)에서였다. 영국의 경험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된 이와 같은 ‘지각통계(sense data)’의 분석은, 그후에도 계속되어 헬름홀츠(H. von Helmholtz)와 같은 천재적인 지성이 생리광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을 개발하는 19세기까지도 심리학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버클리도 헬름홀츠도 ‘보는 것(seeing)'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과 지각의 정신적 활동의 차이는 헬름홀츠가 표현한 바대로 ’무의식적인 추리‘에 의해 서로 구별된다는 것이, 19세기 심리학의 상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인상파 화가들이 그들의 그림을 ‘우리들이 실제로 본 그대로’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 심리학적 주장에 대해서는, 그와 대등한 효력을 갖는 심리학적 주장, 즉 전통 미술은 지적인 지식에 의존한다는 주장을 갖고 어렵지 않게 반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말경에 시작된 이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자연의 모방이라는 안이한 사고는 미술가들과 비평가들을 난처하게 만든 채 송두리째 와해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 가운데서는 두 명의 독일인 사상가가 두드러진다. 그 중 한 사람은 평론가 콘라드 피들러(Conrad Fiedler)다. 그는 인상주의자들과는 반대로, “단순히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게 될 원료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가장 단순한 감각인상도, 사실은 이미 하나의 정신적 인 요소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외부세계도 실제로는 복잡한 심리학적 과정에서 비롯된 결과다”라고 주장했다. [39p]
- 촉각에 의존하는 것은 시각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좋을 것도 더 나쁠 것도 없다. 양쪽이 모두 그 고유의 권한, 그 시대에 따라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41p]
- 이집트 미술은 이러한 태도를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집트 미술에서는 시각(vision)이 극히 보조적인 일부분으로서만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물은 그것들이 촉각으로 봐서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표현된다. 이 촉각은 이동하는 시점에 관계없이, 사물을 영구불변의 외형으로 파악하는 한층 ‘객관적인’ 감각이다. 이집트인들이 왜 삼차원의 표현을 기피했는가 하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뒤로 들어간 부분이라든지 원근법에 의한 단축은 주관적인 요소를 도입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이 모델링(modeling)을 지각하는 데 한몫하도록 하는 삼차원을 향한 진일보는 그리스에서 이루어졌다. [41p]
- 로위도 역시 힐데브란트의 영향을 받았는데, 감각자료 심리한(sense-data psychology)의 견해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가 있었다. 당대의 다른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힐데브란트 역시 아동미술의 특징을 어렴풋한 기억 속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이미지들은 원래 수많은 감각적 인상의 잔여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마치 많은 사진들을 겹쳐 인화해서 전형적인 이미지를 창조해내듯이, 거기서 하나로 합체되어 전형적인 형상을 이루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로위는 이러한 과정에서, 기억의 여과작용으로 그 대상의 개성적인 특징들, 가장 특색있는 형태를 나타내는 측면을 정선(精選)해낸다고 생각했다. 원시 미술가는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이같은 기억 속의 이미지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따라서 인체는 정면에서, 말[馬]은 옆에서, 도마뱀은 위에서 본 대로 재현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아르카익 화법’에 대한 로위의 분석은, 아직까지도 근본적으로는 인정을 받이 있으나, 그의 설명은 실제로 순환논증(循環論證)이다. 즉 원시 미술가는 명백한 외부세계를 복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심상(心象, mental image)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이 심상이, 원시인들의 전형적인 회화를 논증하기 위한 유일한 논거가 되기 때문이다. 로위의 이론이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 같은 인체나 말, 도마뱀들의 도식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우리들 중에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명칭들이 우리에게 상상으로 그려내는 것들은 전혀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경 포착하기 어려운 무상한 사건들의 혼동이며, 결코 완전하게 전달되지는 않는 것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도 어린이들, 교습을 못 받은 어른들, 원시인들의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그 특성에 대해 로위가 행한 분석의 가치를 조금도 평가절하시키지는 못한다. [45p]
- ‘자연의 모방’이니 ‘이상화(理想化)’니 ‘추상’이니 하는 개념 전체는, 맨 먼저 ‘감각인상’이 나타난 후에 그것이 정교하게 다듬어지거나 왜곡되거나 일반화한다는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포퍼는 이와 같은 가정들을 가리켜 ‘정신의 두레박설(設)’이라 지칭했다. 즉 정신의 영상 속에서 감각 자료들이 침전되어 가공된다는 설이다. 그는 이 근본적인 가정이 과학적인 방법론이나 학문이론의 분야에서 비현실적임을 지적하면서, 이른바 ‘탐조등 이론(searchlight theory)'을 주장했다. 즉 살아 있는 유기체는 항상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면밀히 조가 검토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접근방식이 심리학의 많은 분야에서 얼마나 풍부한 결실을 가져오는가는 점점 더 높게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와 다른 학설들도 대단히 분분하며, 각 이론도 꾸준히 자극으로부터 유기체의 반응 쪽으로 논점이 옮겨져 가는 추세에 있다. 이 반응도 처음에는 모호하고 일반적인 것이었다가 점차로 더 정밀하고 분회되어 간다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깁슨은 “배움의 과정은 불명확한 것으로부터 명확한 것으로의 진행이지, 감각으로부터 지각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각대상들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구별해내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라고 시각을 논하는 가운데 쓰고 있다.
베르탈란피(L. von Bertalanffy)는 “맨 처음엔 아직 조직되지 않은 무정형한 전체가 존재하다가, 그것이 점점 서로 다르게 분화되어 간다는 것이 현대의 연구 겨로가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그의 이론 생물학에 대한 고찰에서 기술했다. [49p]
제1부 유사성의 한계 THE LIMITS OF LIKENESS
1 빛으로부터 물감으로 (FROM LIGHT INTO PAINT)
- “만약 이 분야의 진정한 권위자가 그림을 그리는 데 기억력이 어떤 역할을 해내는가를 유심히 조사해 본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는 정신을 집중해서 그림의 대상을 바라보고, 그 다음엔 팔레트를 주시하고, 세 번째로 캔버스를 주시한다. 그 캔버스는 보통 몇 초 전쯤에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발신되었던 메시지를 그때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도중에 한 우체국을 거쳐 전신약호(電信略號)로 송신되어, 빛으로부터 물감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문(電文)은 캔버스 위에 암호문으로 도달한다. 이것은 캔버스 위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제 위치에 놓이기 전에는 해독될 수가 없으며, 그 의미가 드러나지도 않으며, 단순한 그림물감에서 다시금 빛으로 이행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빛은 이제 자연의 빛이 아니라 예술의 빛인 것이다.”[60p]
- 우리는 코로(Corot)의 풍경화(도판 22)같이 훨씬 더 밝은 그림들도 해독할 수 있으며, 한때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생각됐던 명암의 대비를 아쉬워하지 않고서도 빛의 표현을 즐길 수가 있다. 새로운 표시법을 배워서 인식의 영역을 더욱 확장한 것이다. [71p]
- 우리는 어떤 주어진 물체로부터 반사되는 적당량의 빛에 대해서 보다는 소위 ‘명도’라는 빛의 격차에 대해서 더 잘 반응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심리학자들이 제시한 질문에 대해서 그처럼 순순히 대답을 내놓는 새로 깐 병아리라든가 다른 생물들을 모두 포함한다. 쾰러(W. Köhler)의 고전적인 실험에 따르면, 한 장은 좀더 밝고 한 장은 더 어두운, 회색 종이 두 장을 가져다가 병아리들에게 두 장 가운데 밝은 종이 위에 모이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런 다음, 짙은 색의 종이를 치워 버리고 남아 있는 종이보다도 더 밝은 색의 종이를 갖다 놓으면, 거기 현혹된 병아리들은 그들이 언제나 보아 왔던 먼저의 회색 종이가 아니라 양자의 관계 속에서 그들이 모이를 먹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 즉 두 장 중에서 더 밝은 쪽 종이 위에서 모이를 찾는다. 그들의 조그만 두뇌들은 개별적인 자극보다는 정도의 구분에 더 알맞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연의 여신이 그렇지 않고 다르게 해 놓았더라면, 그 병아리들은 무사히 잘 살아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똑같은 자극에 대한 정확한 기억력이 그 병아리들이 문제의 종이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태양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림 때문에 그 밝기가 변할 수도 있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거나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변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그 ‘동일성(identity)’이라는 게 주위환경과 항구적인 관계속에 정착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두 번 다시 반복되는 법이 없는 수많은 인상(impression)의 소용돌이치는 혼돈 속에 먹혀 버리고 말 것이다. [74p]
- 사물의 색깔, 형태, 밝기는 우리에게 항상 일정한 것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거리, 조명, 시각(視覺)등이 변하는 데 따른 어느 정도의 변화를 눈치 채고 있을지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리들의 방은 새벽부터 한낮을 거쳐 석영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방으로 남아 있으며, 그 안의 물건들도 그 형태나 색깔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특별한 일에 직면했을 때에만, 비로소 그 불확실성을 깨닫게 될 뿐이다. [75p]
-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입장이 뒤바뀐 것 같다. 처음엔 인상주의, 다음엔 20세기 회화들(포스터나 네온사인 불빛은 말할 것도 없고)이 우리에게 익숙하도록 단련시켜 놓은 보다 밝은 색조, 아주 강하고 요란스럽기 까지 한 색채들은, 우리가 초기 양식의 조용한 색조의 농담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지금에 와서는 우리가 옛날 그림들을 바라볼 때 어느 정도의 적응능력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다. [77p]
- 나는 그 이유가 정확히, 우리들 자신의 기대가 그 미술가의 암호문을 해독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미 조율된 수신기를 가진 채 그들의 작품에 임한다. 특정 표시법, 특정 기호의 상황을 기대하면서 거기 대처할 만반의 준비를 한다. 여기서는 조각작품이 회화보다도 더욱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흉상 앞에 설 때,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보려고 기대하고 있는가를 잘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절대 그것을 몸통에서 잘린 머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우리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것이 우리가 자라기 전부터 항상 친숙한 것이었던 ‘흉상’이라고 불리는 어떤 전통이나 제도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이와 똑같은 이유 때면에, 우리는 흑백사진에서 만큼도 대리석상에 색깔이 없다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쉽게 여기기는커녕 그 반대이다. 그런 식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엷게 채색된 흉상을 발견했을 때 반드시 즐거운 것만은 아닌 어떤 충격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러한 흉상은 그들에게 오히려 기분 나쁠 정도로 실감나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이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상징적 영역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중략-
미술의 경험 역시 이러한 일반법칙으로 면제되는 건 아니다. 양식(style)도 문화나 여론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어떤 기대의 지평, 즉 정신적 반응기제를 설정하는데, 이것은 또한 변형이나 일탈을 과장된 민감함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마음은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데서 어떤 경향들을 기록하게 된다. 미술의 역사는 오직 이 방법으로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는 다양한 반응들로 가득차 있다. 이른바 ‘치마부에’(도판 32)라고 불리는 양식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 또 그와 비슷한 표현법으로써 묘사되기를 기대하는 데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오토의 그림(도판 33)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실물 그대로라는 강한 감명으로 받아들여졌다. 보카치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지오토는 인간의 눈을 속이는 표현방식을 통하여, 어떤 것도 그려내지 못했던 것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역시 그보다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기는 하나 그와 비슷한 충격을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영화가 처음으로 ‘삼차원의 세계’를 소개했을 때, 우리들의 기대와 체험의 거리는 너무나도 좁혀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완벽한 환영의 전율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기대치가 한 단계 올라가면, 그 환영은 낡아서 희미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다. [82~83p]
- 어떤 비평가들, 특히 앙드레 말로 같은 사람은 이같은 사실에서 과거의 미술은 우리들에게는 완전히 문이 닫혀 있다는 결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즉 과거의 미술은 항시 변화하는 역사적인 만화경의 맥락 속에서 발견되는 것같이 변형되고 변질된 소위 ‘신화(神話)’로서만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 비관적이지는 않다. 나는 역사적인 상상력이 이러한 장벽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가 정신적 반응기제를 여러 가지 상이한 매체와 표현법들에 적응시킬 수 있는 것에 못지않게, 우리 자신을 여러 가지 상이한 양식에도 조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노력은 내가 보기에 탁월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것이 내가 재현의 문제를 이 강연의 주제로 선택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다. [84p]
2 진실과 전형 (TRUTH AND THE STEREOTYPE)
- 결국 리히터의 이야기의 가장 핵심은, 미술가가 자연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싶어하는 곳에서조차도 양식이 지배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이 객관성에 가해지는 제약들을 분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우리가 양식의 수수께끼에 보다 가깝게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86p]
- 명백히 미술가는 그의 도구와 매체가 그려낼 수 있는 것만을 그려낼 수가 있다. 그의 기법이 선택의 자유를 구속한다. 연필이 집어낼 수 있는 특징이나 그 상호관계들은 붓이 보여줄 수 있는 그것들과는 다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연필을 손에 쥐고 모티프 앞에 앉아서 미술가는 선(線)으로 그릴 수 있는 변모를 찾아보게 된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 미술가는 자기의 모티프를 선의 언어를 통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손에 붓을 든 미술가는 면(mass)의 언어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다. [86p]
- 이렇게 조심스레 사진과 그림을 맞춰 보는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양식화’의 오류를 날카롭게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과연 그 사진이 ‘객관적인 진실’을 재현한 것이고, 반면에 그 그림은 미술가의 주관적 시각, 즉 ‘그가 본 것’을 나름대로 변형시킨 것이라고 믿어도 괜찮을까. 여기서 우리는 ‘망막 위의 이미지’와 ‘마음속의 이미지’를 비교해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추론들은 쉽사리 증명 불가능한 것들의 늪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예를 들어 미술가의 망막에 비친 이미지를 보자. 그것은 얼핏 듣기에는 꽤 과학적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사진이나 그림하고 비교해 보기 위해 골라낼 수 있는 그런 뚜렷한 ‘하나의’ 이미지가 존재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그 화가가 자기 앞의 풍경을 세밀하게 쪼개서 보는 동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연달아서 존재했던 것이며, 이 이미지들이 시신경을 통해서 화가의 뇌에까지 자극의 복합적인 패턴들을 전달한 것이다. 미술가 자신조차 이같은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들은 더욱 모른다. 그의 마음속에서 형성되었던 그림이 그 사진과 얼마나 일치되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물어 봤자 더욱더 소용이 없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이 미술가들이 자연속으로 그림의 소재가 될 만한 것을 찾아 나섰으며, 그들의 예술가다운 지혜가 인도하는 대로 풍경속의 여러 요소들을 조직해 놀랄 만큼 복잡한 미술작품 속에 집어 넣었다는 사실뿐이다.[87~88p]
- 이제 역사가들은 그림들이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정보가 상이한 시대에 따라 대단히 폭넓은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에는 그림들이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이 그것들의 설명문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역시 드물었다. 자기들의 통치자들의 초상을 알아볼 정도로 그 실물에 충분히 가까운 장소에서 그를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또 이도시와 저 도시를 구별할 만큼 널리 여행을 다닌 사람은 몇이나 되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나 장소를 그린 그림들이 진짜 사실을 당당하게 무시해 버리고 멋대로 설명들을 바꿔 붙였던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못 된다.[89~90p]
- 나는 이 조잡한 목판화를 좋아한다. 그것은 바로 그 미숙한 점이 도리어 느린 화면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모사(模寫)의 메커니즘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술가가 자기 기분이나 심미적인 선호 때문에 주제로부터 이탈해 버렸다든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이 목판화를 고안해낸 사람이 로마를 정말로 보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는 아마도 그 센세이셔널한 뉴스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 도시의 경치를 번안해냈을 것이다. 그는 산 탄젤로가 성(城)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전형들(stereotypes)의 서랍 속으로부터 성에 어울리는 적절한 상투어들, 이를테면 목조로 되어 있고 물매가 가파른 독일의 축성도시를 골라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자신의 전형을 되풀이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로마의 그 특정 건물에 속해 있다고 자기가 알고 있는 뚜렷한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전형을 특별한 기능에 맞게 번안해냈다. 그는 다리 곁에 성이 있다는 사실 위에, 그것에 대한 그 이상의 몇 가지 정보를 덧붙이고 있다.
우리가 일단 적용된 전형의 원리에 주목하면, 우리는 그 원리를 거의 예상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즉 너무나 유연하게 그려져 그럴듯한 그림의 화풍에서도 그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91~92p]
-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앞에 언급한 보잘것없는 자료들은 어떤 개개의 형태를 충실하게 기록하고 싶은 모든 미술가들의 작업 진행과정에 대해서 우리에게 실로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믿는다. 그는 시각적인 인상들을 가지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품고 있는 사상이나 관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93p]
- 도식이란 ‘추상화’의 과정에서나 ‘단순화’ 경향에서 생겨난 산물이 아니라 최초의 근사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것이 재현해내려는 형태에 맞도록 엮어 나가는 것이다. [94p]
- 그 이미지를 거듭 베끼고 또 베끼는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독자적인 도식으로 동화해 갔다는 사실은, 독일 목판화가 산 탄젤로 성채를 목조 축성도시로 변형시켰던 것과 똑같은 경향을 역력히 보여준다. 이 ‘조형의지’는 오히려 ‘순응의지’, 즉 어떤 새로운 형태라도 미술가 자신이 다룰 줄 아는 도식이나 모형에 비슷하도록 근접시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95p]
- 1601년의 한 이탈리아 판화(도판 54)에 붙여진 그림설명 역시 위의 독일 목판화만큼이나 명쾌하다. 그 설명에 의하면, 이 판화는 그 해에 언코나 근처 해안으로 밀려 올라온 거대한 고래를 재현한 것으로, ‘실물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진 것(Ritratto qui dal naturale appunto)’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만약에 1598년 네덜란드 해안에서 취재한 이와 비슷한 ‘특종기사’를 게재한 인쇄물(도판 55)이 앞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더욱 믿을 만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16세기 말엽의 네덜란드 화가들, 그 사실주의의 대가들은 고래를 제대로 그려낼 수가 있었던 걸까. 확실히,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동물은 마치 귀가 달려 있는 것처럼 수상쩍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내가 보다 높은 권위를 빌려 단언하건대 귀가 달린 고래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도안사(圖案師)는 고래의 지느러미 중 하나를 귀로 잘못 알고 그것을 너무 지나치게 눈에 가까이 붙여 놓았을 것이다. 그 역시 자기에게 친숙한 도식, 전형적인 두상(頭像)의 도식에 의해 오도된 것으로, 낯선 것을 보고 그린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흔히 인식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99p]
- 이제, 과학적인 삽화의 국면에서 볼 때는, ‘투트모세 대왕 시대의 미술가들이나 중세의 비야르조차도 현대의 삽화가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을 그 당시에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그들은 적절한 도식들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그들의 출발점은 그들의 대상(motif)으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었고, 양식(style)은 너무나도 엄격해서 유연하게 응용하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만한 표현들은 분명히 미술에서 정확한 모사(模寫)의 연구로부터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독자 여러분 역시 충실한 이미지라는 것을 무(無)로부터 창출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여러분이 보았던 다른 그림에서만이라도 뭔가 비결을 배웠음엔 틀림없다. [102p]
- 미술가란 자기 자신의 관용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모티프에만 이끌리게 마련이다. 그가 풍경을 면밀히 바라보는 동안, 자기가 배워서 다룰 줄 알고 있는 도식과 성공적으로 부합될 수 있는 광경들만이 관심의 중심이 되어 앞으로 튀어나온다. 양식은 매체와 마찬가지로 어떤 선입감을 만들어냄으로써, 미술가로 하여금 자기 주변의 장면들 속에서 자기가 그릴 수 있는 확실한 모습들만을 찾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하나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미술가는 자기가 보는 대로 그리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그리는 대로 보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103p]
- 우리는, 풍경화의 대가였지만 인물화는 보잘것없었던 클로드 로랭의 미술이나, 거의 배타적일 만큼 초상화에만 집중했던 프란스 할스(Frans Hals)에게서 어떤 전문성을 발견해낸다. 이런 유형의 기호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그들의 의지 못지 않게 그들의 기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과거의 미술에서 모든 자연주의가 다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105p]
- 이 결론은 18세기에 흔히 논의되었던 언어와 미술의 차이점, 즉 전통적인 기호 자체로서의 말(spoken words)과 현실을 ‘모방’하기 위해 ‘자연적 기호들(signs)'을 이용하는 그림 사이에 대한 전통적인 구분과 상당한 충돌을 일으킨다. 그 구분은 매우 그럴듯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난관들을 초래해 왔다. 만약 워리가 이 전통적인 구분에 따라서, 자연의 기호들이란 자연으로부터 간단히 베껴낼 수 있는 거라고 가정한다면, 미술의 역사는 완벽한 수수께끼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원시미술과 아동미술이 ’자연의 기호들‘보다는 오히려 상징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19세기말 이후로 점점 더 명확하게 된 사실이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지식에 기초를 둔 특별한 종류의 미술, 즉 ’관념적인 이미지‘들을 갖고 작용하는 미술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전제조건이 되었다. 그 주장대로라면 어린이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며, 어떤 나무의 ’관념적인‘ 도식, 여러 가지 나무 개개의 특징은 고사하고 자작나무인지 밤나무인지 하는 특징들조차 구체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현실(reality)과도 부합되지 못하는 그런 도식에 만족해 버린다. 이처럼 모방보다는 구성에 의존하는 것은 자기 자신 특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들과 미개인들의 특유의 지적 수준의 탓으로 돌려졌다. [106p]
- 구스타프 브리쉬(Gustaf Britsch)와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어린이가 만들어낸 미숙한 세계지도와 자연주의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보다 풍요로운 지도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관계가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모든 미술의 기원은 눈에 보이는 세계 자체에 있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에,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반응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모든 미술이 다 ‘관념적’이며, 모든 표현은 다 그들의 양식에 의해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출발점, 어떤 중요한 도식 없이는, 우리는 도도한 경험의 흐름을 결코 파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범주들이 없다면, 우리의 인상을 구별해서 분류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이 최초의 범주들이 무엇인가는 상대적으로 거의 중요하지 않다는 게 밝혀졌다. 우리는 그것들을 필요에 따라서 언제나 수정할 수가 있다. 실로, 만약 그 도식이 계속 엉성하고 유동적이라해도, 최초의 모호성은 방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된다는 게 증명될 수도 잇다. 전적으로 유동적인 체계라면, 이미 그 도식으로서의 구실을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분류된 정리함들이 없기 때문에, 사실을 기록해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맷 첫 번 서류정리의 체재를 어떻게 해 놓는가 하는 것은 별로 관계가 없다.
배움의 진전, 시행착오를 통한 수정의 과정이란, 우리가 어떤 분류의 그물망을 따라가며 그 안에 포함시키고 제외해 가면서 어떤 대상의 정체를 알아맞히게 되는 ‘스무고개’ 놀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성, 식물성, 광물성’을 묻는 최초의 전통적인 도식은 확실히 과학적인 것도 아니고 별로 적절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들을 ‘예’나 ‘아니오’로 정정해 나가는 테스트에 붙임으로써 우리들의 개념들을 좁혀 내려가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되는 게 보통이다. 여기서 에로 든 이 실내 게임은 우리가 이 세상의 무한한 복잡성에 적응하는 방법을 어떤 식으로 배워 나가는가 하는 세분화 과정을 예시해 주는 것으로서, 최근에 와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것은 아무리 조잡할망정, 유기체뿐 아니라 기계들까지도 시행착오에 의해서 ‘배운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과 그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자동제어장치’, 즉 스스로 적응해 나가는 기계들을 다루는 스릴 만점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은 기계편에서의 일종의 ‘우선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러한 기계가 맨 처음에 하는 동작은 되는 대로 선택된 움직임, 즉 어둠을 향해 쏜 총알과 같은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여기서 성공이나 실패, 명중과 빗나감에 대한 보고가 기계로 되돌아가 입력되면, 그 기계는 점점 더 잘못된 움직임을 피하고 정확한 움직임을 반복해 나가게 된다. 이 분야의 한 개척자는 최근에 와서 이 기계상의 도식과 정정의 리듬을 충격적인 언어상의 공식으로 표현했다. 즉 그는 모든 배움을 ‘이 세상에 관한 나뭇가지 모양의 층을 이루는 추측’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나뭇가지 모양이라는 것은 ‘스무 고개’의 도식적인 설명을 통해서 묘사될 수 있는 것과 같은, 분류와 세분의 점진적인 창조과정을 묘사하는 말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106~107p]
- 만약에 모든 미술이 다 관념적이라면 문제는 상당히 간단할 것이다. 왜냐하면 관념이란,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진실이나 거짓의 어느 쪽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오직 설명을 빚어내는 데 더 유용하거나 덜 유용할 따름이다. 언어를 구성하는 어휘는 그림으로 된 공식들과 마찬가지로, 앞서 예로 든 ‘스무고개’ 놀이에 참여하고 있는 참석자에게 방향제시를 해주는 데 필요한 몇 개의 이정표들을 수많은 사건들의 흐름 속에서 골라내 준다.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비슷한 곳에서는, 이 이정표들도 서로 일치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우리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에서 대개 대등한 어휘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에 따라 관념이란, 언어와는 독립되어 ‘현실’의 한 구성요소로서 존재한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려 왔다. 그러나 독일어에는 ‘우어(Uhr, 시계)’라는 단어 한 가지밖에 없는 곳에다, 영어는 ‘클록(clock)'과 ’워치(watch)'라는 갈림길을 만들고, 그 위에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중략- 만약 우리가 스웨덴어로 스무고개 놀이를 하려면 우리는 그 시계에 관한 ‘사실’에 도달하기 위해 몇 가지의 질문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 간단한 예는 최근에 벤자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가 강조했던 사실, 즉 언어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물이나 관념에 대해 이름을 붙여 주기보다는 우리의 경험세계를 세분화할 따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제기해 준다. 우리가 추측하기에 미술의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식의 차이나 언어의 차이를 반드시 정확한 해답이나 묘사를 가로 막는 장애로 여길 필요는 없다. 세계란 상이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며, 주어진 정보 역시 똑같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보의 관점에서 본다면 본 대로 그리는 것을 논하는 데 하등의 어려움도 없을 게 확실하다. 어떤 그림을 지적해서 그것이 티볼리의 정확한 풍경이라고 할 경우, 물론 티볼리가 철사 같은 선으로 경계 지어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 말은, 그 표기법을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그 그림으로부터, 그것이 몇 개의 선(線)으로 윤곽을 그린 것이든, 리히터의 친구들이 하고 싶어한 것처럼 ‘풀잎 하나하나를 전부’ 끄집어낸 것이든 간에, 결코 ‘그릇된 정보’를 이끌어내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다. 완전한 회화적 묘사란, 우리가 그 미술가가 섰던 위치에서 실물을 보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똑같은 만큼의, 그 장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묘사일 것이다.
양식(style)이란 언어와 마찬가지로, 미술가가 질문할 수 있게 허락된 문항의 숫자와 세분의 순서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도달하는 정보는 너무나도 복잡하기 때문에, 어떤 그림도 그것 모두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게 마련이다. 이는 시각(vision)의 주관성 때문이 아니라 그 풍부함 때문이다. 미술가가 인간의 생산품을 배껴낼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물론 원래의 것과 구별할 수 없는 모조품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지폐를 위조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격과 시대양식의 한계를 말살해 버리는 데 너무도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정확한 초상화란 쓸모 있는 지도와 마찬가지로, 도식과 수정을 거친 길고 긴 여정(旅程)의 최종생산물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시각적 경험의 충실한 기록이 아니라, 어떤 상호관련된 모델의 충실한 구성이다.
시각의 주관성이나 전통의 지배력 등을 운운할 것까지도 없이, 초상화의 모델을 그것에 필요한 정도의 정확성에 맞춰서 구성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분면 ‘필요한’이라는 단어이다. 표현의 형태란 그 표현의 목적, 그리고 기존의 시각언어가 통용되고 있는 그 사회의 요구와 결코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08p]
3 피그말리온의 힘(PYGMALION'S POWER)
- 정말이지, 인간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미술의 힘은 그에게는 미술의 징표로 해석된다. 또한 그는, 시인과 달리 화가는 인간의 마음을 너무나도 철저히 정복할 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 여인을 재현한 것도 아닌 그림과 사랑에 빠지게도 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또 그는 이어서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 종교적인 그림을 하나 그린 적이 있는데, 그것을 사 간 사람은 그 그림을 어찌나 사랑했던지 자기가 거북스런 생각을 갖지 않고도 거기 키스할 수 있도록 신성한 표현을 제거해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결국에는 그의 양심이 그의 욕망과 탄식을 제압했지만, 그는 그 그림을 자기 집에서 치워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우리가<성 요한>같은 작품이<바쿠스>(도판 67)로 변형되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레오나르도의 말도 상당히 신빙성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112~113p]
- 아마도 이 말은, 레오나르도의 자기 예술에 대한 깊은 실망, 그리고 완성이란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기를 왜 그처럼 망설였던가 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은연중에 나타내 주고 있는 것 같다. 즉 모든 미술가들의 지식이나 상상력이 아무 소용도 없으며, 그가 지금까지 그리고 있었던 것은 한낱 그림일 뿐이고, 결국 납작하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와 동시대 사람들이, 만년의 레오나르도를 화필(畵筆)을 들고는 참지 못하는 사람, 오히려 수학에만 전념했던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수학은 그가 진정한 창조자가 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중략- 창조자, 사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주장은 화가로부터 기술자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미술가들에게는 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조그마한 위안밖에는 남겨 주지 않게 된 것이다. [113p]
- 침대를 만드는 목수는 침대라는 이데아 혹은 개념을 실물로 옮겨 놓는다. 이 목수가 만든 침대를 그림으로 그리는 화가는 단지 어떤 특정한 침대의 외양을 모사하는 데 불과하다. 그는 이렇게 해서 그 이데아로부터 두 배나 멀리 떨어지게 된다. 플라톤이 미술을 비난한 형이상학적 의미에 대해서 여기서는 깊이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그가 말한 것을 플라톤의 이데아하고 관계없는 보통의 어휘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목수에게 전화로 침대 하나를 주문해 보라. 그러면 그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당장 알 것이다. 또는 좀더 현학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는 ‘침대’라는 개념하에 어떤 종류의 가구들이 포함되는지를 알 것이다. 어떤 방의 내부를 그리는 화가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물건들에 대해 가구업계에서 어떤 이름들을 붙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다. 그는 개념이나 분류보다는 특정한 물건들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바로 이같은 분석이 너무나도 그럴싸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더욱 주의 깊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침대를 만드는 목수와 그것을 모방하는 화가 사이에는 이같은 차이가 실재하는 것일까. 확실히 그 차이는 매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침대가 우선 디자인되고, 실재로 만들기 전에 청사진을 통한 계산을 거친다. 이럴 경우, 플라톤은 그 디자이너 역시 그의 이상국가(Ideal State)에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디자이너 역시, 불확실한 어느 현실보다도 침대의 이데아를 더욱 잘 모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장에서 언급한 인네스의 원형기관차 차고 그림에 대한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어떤 특정한 경우에 그 디자인이 계몽을 위한 것인지, 모방을 위해 그린 것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상품 카탈로그에 그려져 있는 여러 개의 침대 그림들은 그런 가구들을 주문에 따라서 만들어 준다는 약속일 수도 있고, 그런 가구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약속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삽화가 들어 있는 영어사전에서였다면, 그 그림들은 그 낱말의 뜻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 주기 위해서 고안된 ‘도상 부호(iconic sign)'일 수도 있다. [113~114p]
- 다시 말하면, 플라톤이 ‘실재(reality)'라고 부른 것과 ’외관(appearance)‘이라고 부른 것의 사이에는 그 기능에 따라서 아주 순조롭고 원활한 전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상점의 쇼윈도뿐 아니라 연극무대 위에서도 실제 침대가 부서지기 쉬운 모조품이나 뒷배경막에 그려 놓은 가구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의 유형에 대한 정보를 캐묻는다면, 그것들은 어떤 것이나 우리에겐 하나의 부호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에게는 모형 비행기가 참고자료로서 흥미가 있는 반면, 어린이에게는 진짜로 작동하는 하나의 장난감이 될 뿐인 것이다. [114p]
- 인간의 세계란 단지 사물의 세계만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의 세계란 현실과 인위적 거짓의 구별 자체가 비현실적인 상징들로 이루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건물의 주춧돌을 놓는 저명인사는 은으로 만든 망치를 가지고 세 번 그 돌을 두들긴다. 그 망치는 실제의 것이지만, 그러한 것으로 정말로 때리는 것인가. 이같은 상징세계의 어슴푸레한 잔광(殘光)속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따라서 아무런 대답도 제시될 필요가 없다. [115p]
- 그러나 우리가 눈사람을 만들 때 아직도 뭔가를 거기 대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플라톤의 목수가 침대의 이데아를 모사해냇듯이, 이 경우 역시 어떤 인간의 이데아를 본떠서 우리의 창조물을 빚어내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거부한다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인간의 초상을 모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통적인 대답은 이것이지만, 우리는 이미 바로 앞장에서 그것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그런 대답은 새로 창조된 상을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어떤 것의 복제판(replica)으로 만든다. 즉 구체화하기 이전에 머릿속에 넣고 다니던 눈사람의 복제로 만드는 것이다. 사전에 미리 존재하고 있었던 눈사람 같은 것은 없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오히려, 우리가 눈[雪]을 가지고 놀고 싶은 유혹에 이끌린 다음 그 형태의 균형을 맞추어 가다가 마침내 인간의 모습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눈더미가 우리에게 최초의 개요를 잡아 주고, 우리는 그것이 최소한의 정의에 부합되도록 수정해 나간다. 이것은 분명 상징적인 인간이기는 하나, 그래도 인간의 종(種)에 들어가는 눈사람이라는 아종(亞種)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상징성에 대한 연구로부터 배운 바에 의하면, 여러 가지 정의(定議)의 한계라는 것은 대단한 융통성을 갖는 것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115~116p]
- 우리는 사고에서도 지각에서도 일반화하는 방법은 결코 배우지 못한다. 다만 예전에는 오로지 미분화한 집합체에 불과했던 것을 특수화하고 분류하고 구별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116p]
- 피코 델라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a)가 느낀 바와 마차가지로, 인간의 존엄성이란 정확히 그 무궁무진한 변화의 능력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내부에 동전이 들어오면 찰칵 거리기 시작하는 단순한 슬롯 머신이 아니다. 큰가시고기와 다릴, 우리에게는 현실을 시험하고 이드(id)로부터 나오는 충동을 형태짓는, 정신분석학자가 자아(ego)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징이나 대용품이란 위조 동전에 절반쯤밖에 승복하지 않을 동안에는 가만히 자제하고 있을 수가 있다. 동물성과 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이중적 본성은, 상징주의와 불신에 대한 그것의 의도적인 부유(浮游)라는 이중적 세계로 표현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충분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생물학적 중요성을 지닌 어떤 외형에 대해서는 특별히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은 전부터 주장되어 왔으며, 또 그렇게 주장할 만도 하다. 이 논법으로 보면, 인간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전적으로 학습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타고난 기질 같은 것에 근거하는 것이 된다. [117p]
- 우리가 이와 같은 투사의 메커니즘이나 정신의 집합체계 속에서 미술의 뿌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최근에 제창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오백 년도 더 전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의 글 속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던 설이다. 이 글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안은 것은, 그것이 알베르티의 유명한 회화론이 아닌 조각에 관한 소논문 「조각론(De Statua)」에 나오기 때문이다.
“자연의 창조물을 모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의 기원은, 다음과 같은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즉 나뭇등걸, 흙덩이, 또는 다른 어떤 것에서 어느날 우연히 아주 조금 변화시켰더니 자연의 대상과 충격적일 만큼 똑같아 보이는 어떤 형상의 윤곽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완벽한 유사함을 위해서는 뭔가 첨삭함으로써 아직도 미진한 부분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알아보려고 시도했다. 이리하여 인간들은 물체 자체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윤곽이나 면을 수정하거나 제거해 나가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것도 적지 않은 즐거움을 가지고 얻어낼 수가 있었다. 그날부터 초상을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며, 마침내 어떤 물체 속에 도움이 될 만한 희미한 윤곽선조차 없을 때에도 어떤 초상이든지 만들어낼 수가 있게 되었다.”[120p]
- 황도십이궁 가운데 고대인들이 사자좌라고 불렀던 한 별자리가 좋은 예이다. 만약 거기에 적절한 정신적 반응기제(mental set)로 접근한다면, 여러분은 거기 있는 한 무리 가운데 주요한 별들의 사이에 선을 그음으로써, 사자 또는 최소한 네 발 달린 짐승의 형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도판73) 남미 인디언들은 이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그것을 옆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자의 모습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이 짐승의 꼬리와 뒷다리라고 부르는 것들을 무시하고, 나머지만으로 위에서 내려다본 가재의 모양을 만들기 때문이다. 약 오십 년 전쯤 민속하자인 코흐-그륀베르크(Koch-Grunberg)에게 경험이 많은 인디언 사냥꾼들에게 밤하늘을 그려 달래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은 주요한 별자리들을 늘어놓아 천체도를 그려냈다. 거기서 그가 그린 것은 가재였는데, 누구나 아주 쉽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도판 74) 다른 부족 출신의 인디언 한 명은 상상력이 좀더 뛰어났지만, 별들의 실제 위치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도판 75) 이 사람이 그린 가재는 훨씬 더 실감나는 생물로 보였는데, 이것은 그가 자기가 알고 있던 동물의 이미지를 얼마나 명쾌하게 성좌에다 투사했는가를 입증해 준다. [121p]
- 그러므로 나는 이 초기의 미술가들이 도식이나 수정의 리듬으로부터 면제됐었다는 사실을 믿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인디언이 가재를 별들 가운데서 발견한 것처럼, 일단 동물의 형태가 바위 위의 어딘가에서 발견된 다음에는 그것을 응용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마침내는 그 종족이나 어떤 주술의식에 종사하는 무당 같은 계급이 그러한 초상을 제작하는 특별한 기술을 획득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동굴미술이란 결코 원시미술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대단히 발달된 양식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투사의 적절함 여부가 여전히 그 양식의 성격을 결정짓는지도 모른다. [122p]
- 그렇다면 재현이란 모사는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대상(motif)과 똑같을 필요가 없다. 예리코의 그 장인은, 피카소가 비비를 자동차와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눈이 별보배조개껍질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전후관계에서는 전자를 후자가 대신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124p]
- 우리는 어학이나 문학의 영역 안에서도 상징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야기되는 비슷한 긴박사태가 있음을 알고 잇다. 어떤 어휘들은 마법의 힘을 발휘할지 모르기 때문에 입 밖에 내서는 안되며, 성자의 이름들은 종이 위에 두기에는 너무나도 신성하고 위대하기 때문에 문자로 된 글 속에 기입해 넣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례는 인류문명의 여명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이와 비견되는 좋은 에를 하나만 들어 보자. 피라미드에 새겨진 상형문자 명문(銘文) 가운데에는, 유해한 동물들의 초상으로 형성된 부호는 전부 기피되거나 아니면 ‘생략되어’ 있다. 즉 전갈은 위험한 꼬리가 없이 몸만 남겨져 있으며, 사자는 두 토막으로 잘려 있다. 여기에서 그 초상이 단순히 하나의 부호 이상으로 여겨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죽은 자를 해칠지도 모르니까 전갈은 무덤에 새겨 넣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125p]
- 아마도 우리 미술가들은 초상에 대한 이 같은 생명력의 박탈에 크게 반발하고, 잃어버린 피그말리온의 힘의 비밀을 훨씬 더 애타게 갈망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고대 초상 제작의 마술을 우리가 ‘미술’이라고 부르는 더 예민한 마술과 바꾸어 가진 것은, 상당히 득을 보는 거래였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회화’라는 이 새로운 카테고리가 없었던들, 초상 제작은 아직도 많은 터부들에 의해서 제한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가가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누려온 것은 오로지 꿈속의 영역에서뿐이었다. 나는 그 차이를 마티스에 관한 다음의 일화가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인이 그의 화실을 방문해서, “하지만 분명히 이 여자의 팔은 너무 길어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마티스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부인, 부인께선 잘못 아셨습니다. 이것은 여자가 아니라 그림입니다.”[128p]
4 그리스 혁명에 대한 반성
- 만약 앞장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만들어내는 것은 그대로 똑같이 맞추는 것 이전에 이뤄진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가들은 가시세계의 광경을 적절히 옮겨 놓고 싶어하기 이전에, 자기 나름대로 사물을 창조해내기를 원했다. 과거의 어느 신화시대에서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어떤 점에서 우리들의 공식이 이 앞의 장에서 발견한 것들, 즉 묘사과정 자체도 ‘도식과 그 수정’의 단계들을 거쳐서 진행된다는 사실과 꼭 부합되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가도 자기의 도식을 알고 구축해 놓은 다음에야 그것을 초상 제작의 필요에 맞추어 갈 수가 있다.
우리는 플라톤이 이런 변화에 대해서 반대했음을 이미 보았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미술가가 그대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외형’뿐임을 환기시켰다. 미술가의 세계는 환각의 세계, 사람의 눈을 속이는 거울의 세계이다. 만약에 그 미술가가 목수와 마찬가지로 제작자라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도 그를 참아 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덧없는 감각의 세계를 모방하는 자로서, 그는 우리를 진실로부터 멀리 유도하기 때문에 마땅히 국가로부터 추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129p]
- 역사가들로서 우리는 ‘설명(explanation)’이란 말을 대단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왔다. 과학자는 자기의 설명을 실험에서 여러 조건들을 체계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검증할 수가 있지만, 역사가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진화’니 ‘그리스인들의 정신’과 같은 사이비 설명들을 거부할 수 없다거나, 설명 대신 자연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이런저런 방법을 선택하게 된 조건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탐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고대 그리스인들을 갈라 놓고 있는 시기 내에서는 인류가 거의 변화할 수 없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이미지의 역할이 그 형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간단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아직도 그 당시의 이러한 조건들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31p]
- 우리가 그리스 이전 시대의 미술에 이와 같은 각도에서 접근하자마자, 아동미술의 관념적인 형태와 고대 오리엔트 미술의 그것과의 낯익은 비교가 곧 우리를 실망시키게 된다. 기능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시대의 아동미술은 가장 불순한 실례라고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린 목적과 동기가 대단히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지가 이미 그 다목적적인 기능, 즉 묘화(描畵), 삽화, 장식, 감정유발, 정서표현 등의 기능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는 우리들의 세계 속에서 자라난다. 현대의 어린이들은 그림책과 잡지, 영화와 텔레비전의 스크린들을 알고 있어서,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아동심리학자가 깨닫고 있는 것 이상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경험들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모자이크 시험’ 에서는, 주어진 기하학적 문양들을 구성해서 뭔가 제 앞에 놓인 것을 바라보고 있는 여우의 뒷모습을 표현한 어린이가 가장 높은 점수를 땄다. 물론 그 해답이 상당히 천재적이며 높은 점수를 딸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어린이가 그린 태도를 취하고 있는 여우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느냐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 아이는 그림책들을 보았을 것이고, 그 중 어떤 것이 모자이크라는 매체에 응용하기에 아주 편한 기존의 도식을 제공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은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나 자랑하기 위해서, 아니면 엄마가 조용히 놀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린다. 그들은, 이제 이야기하려는 어떤 독일 철학자의 네 살배기 아들처럼 세련되고 영악하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시종일관 어른 세계의 기준들이나 도식들을 흡수하여 응용하고 있다. 그 네 살배기 아이는 그의 그림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게 뭐니?” “기선이요.” “그럼 그 배 위에 휘갈겨 놓은 건?” “그건 예술이에요.” 그러한 ‘창조적인 활동’이 어린들에게 용인되는 덕분에 그 어린이는 실생활에서보다는 종이 위에 장난을 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을 곧 확인하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로 이것을 인정하는 생각 자체가, 미술이란 일종의 바보들의 낙원이며, 우리들의 꿈을 펼치는 환상의 왕국이라는 믿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한 믿음은 바로 플라톤의 항의를 불러일으킨 것이기도 하다. [131~132p]
- 우리는 그리스인들로부터 추출해낸 모든 선입관을 가지고 이집트 미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집트의 초상이 후기 그리스 세계의 초상과 완전히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상정하는 한, 그것들을 어린이와 같이 천진난만하다고 보게 마련이다. 19세기의 관측자들은 이런 실수를 아주 흔히 범하고 있다. 그들은 이집트의 고분 안에 있는 부조들이나 그림들을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로부터의 장면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프랑크포르트-그뢰네베겐(Frankfort-Groenewegen) 부인은 그녀의 저서인 『정지와 움직임(Arrest and Movement)』에서 이러한 습관적인 해독(解讀)은 우리들 자신의 그리스식 훈련 탓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모든 초상들을 마치 사진이나 삽화인 것처럼 보고, 그것을 실제나 상상 속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데 익숙해 있다. [133~132p]
- “그것들은 ‘읽혀’야 한다. 즉 추수는 쟁기질, 파종, 수확 등을 필요로 하며, 가축을 치는 것은 시냇물을 건너거나 젖을 짜는 일을 필요로 한다. …그 장면의 상황은 순전히 관념적인 것이지, 설명적인 것이 아니다. 또 대단히 극적인 성격을 가진 문장조(文章調)도 아니다. 그 행동을 밝혀 주는 신호들, 글귀들, 이름들, 노래나 감탄사들도 어떤 사건들을 연결해 주거나 그 전개과정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상황에 속해 있는 전형적인 말이다.”
프랑크포르트 부인은, “특정 시간을 나타내지 않는 전형적인 사건의 묘사는 죽은 자를 위한 기쁨의 근원과 영원한 존재를 동시에 의미한다”라고 결론짓고 있다.[136p]
- “침대는 여러분이 옆쪽이나 앞쪽이나 그 밖의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데 따라 본래의 모습과 다르게 변하는가? 아니면 서로 다르게 보이는데도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미술가가 허상(phantom)의 제조자로 지탄받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것, 즉 침대 자체를 실제 그대로 재현하는 데 실패하고, 자기 그림 속에 단 한쪽 면밖에 포함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추축컨대, 똑같은 크기라도 가까이서 보느냐 멀리서 보느냐에 따라 똑같지 않게 보인다.(절대로 같지 않다) 그리고 똑같은 물건도 물 속이나 밖에서 보는 사람, 오목렌즈나 볼록렌지로 보는 사람에 따라서 휘어 보이기도 하고 똑바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색채에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착각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모든 면에 걸쳐서 이와 같은 종류의 혼동이 분명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 성질의 약점을 이용한 무대의 그림은 마술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사기성 있는 요술이나 수많은 다른 고안물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 작용을 한다.” -플라톤- [138p]
- 나는 자기 집에 많은 크리스마스 카드들이 배달될 때면 근심스럽고 우울해지는 한 작은 소녀를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성탄의 밤을 ‘정확하게’ 그린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은 자연스러운 질문이며, 동서를 막론하고 기독교 신학자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던 의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을 철저히 진지하게 묻는다면,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삽화란 존재할 수 없다. 성스러운 아기가 말구유에 누워 있고 양치기들이 와서 경배했을 때 과연 어떤 광경이었을까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미술가에게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자유가 고대의 동방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중략 - 이집트 미술은 우리들의 의미에서의 설화적 도해(圖解)를 알지 못한다. 거기에 신과 영웅의 공적을 말해 주는 신화적인 시대란 없다. 다만 진실을 상징화하는 걸로 생각되었음이 분명한 획일화한 상형문자들이 약간 있을 따름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작화(作畵) 태도 역시 이에서 크게 다를 수 없다. [139p]
- 우리는 화가들이나 조각가들이 맨 처음 순수한 신화적 서술의 영역 안으로 탐험을 시도했을 때, 이와 비슷한 성스러운 힘을 빌렸는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추종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설화적인 삽화에서는 ‘무엇’과 ‘어떻게’ 사이를 구별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천지창조를 그린 그림은 오로지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라고만 말해 줄 수 없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는 하느님이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하셨는가에 대해 의도치 않았던 정보를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으며, 정말이지 그 창조의 날에 하느님과 세상이 “어떻게 보였는가”를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 교회는 성서시대의 바로 초창기부터 이 반갑잖은 부수물과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초창기의 문명이 성스러운 주제들에 관한 회화상의 설화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억제한 것도 바로 이와 똑같은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이 신화를 다채롭게 윤색하고 서사시 이야기를 설명하는 ‘방법’을 먼저 착수한 시점에서는, 시각예술가들에게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140p]
5 공식과 경험(FORMULA AND EXPERIENCE)
- 독자적인 영감의 필요를 강력하게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는, 어떤 예술적 전통도 고대 중국의 전통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나 학습으로 얻은 어휘에 가장 완벽하게 의존하는 게 발견되는 곳이야말로 바로 그곳이다. 최근에 17세기 중국의 대표적인 화법서(畵法書)가 영역(英譯) 출간되었는데,(도판 104) 이 책은 서구인들로 하여금 일점일획(一點一劃)에도 독자성을 존중한 것이 전통과 어떻게 결합했는가에 대해 연구하기 쉽도록 해주었다. 그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글을 쓰는 법을 배우는 데, 우선 자획이 적은 간단한 문자부터 시작하여 점차 획이 많은 복잡한 문자로 진행해 나아간다. 꽃을 그리는 법을 배울 때에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우선 꽃잎이 적은 것에서 시작하여 꽃잎이 많은 것으로, 작은 잎사귀에서 큰 잎사귀로, 한 줄기의 가지에서 여러 송이로 된 다발로 나아간다. …초보자가 그 기초단계를 다 배운 다음에는, 경험과 숙련을 쌓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해야 될 것이다.” -중략- 이집트 미술에 의해 전개된 방식이 그들의 목적에 걸맞게 응용되었던 것처럼, 중국 GLH화의 기법 역시 이 아름답고 연면한 문화 속에서의 미술의 기능에 맞게 감탄할 만큼 잘 응용되어 왔다는 사실은, 비전문가들에게도 명백해 보인다. 중국 미술의 으뜸가는 관심사는 이미지의 영속화나 설득력 있는 서술도 아니고, 최소한 ‘시적인 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었다. 중국 미술가는 의연히 산이나 나무, 꽃 들을 ‘제작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자연물의 존재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상상만으로 그려낼 수 있다. 그러나 다만 그 기법은 삼라만상의 본질에 관한 중국인의 사상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어떤 분위기를 나타내고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158~159p]
- 그렇지만 그들이 가시세계의 뒤에서 발견해냈던 어떤 모형은 천상(天上)에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린시절에 배워서 기억해 두었던 형태들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중국인도 자기 자신이 흡수해 두었던 법칙에 가장 가깝게 일치하는 난초를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 역시 어떤 인체들을 판단할 때, 전통적으로 미의 규범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져 온 그리스 조상(彫像)들과 그것들이 닮았는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닐까. [164p]
- 그러나 어떤 ‘형태의 계보(family of forms)’에 골똘히 몰두해 본 적이 있는 미술학도라면 누구나 그러한 영향력의 예를 체험했을 것이다. 사실은 나 역시도 통통한 어린이들의 공식을 연구하는 동안 경험했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아이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으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돌연히 어느 곳에서나 그런 아이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경험을 이미 알려진 것과 관련해 분류하고 기록하려는 우리의 심리적 경향은, 미술가가 어떤 특정한 것과 마주치게 될 때 현실적 문제를 제기하게 마련인 것이다. 정말이지, 미술에서 공식의 붕괴는 바로 이 어려움 때문에 초래되었을 것이다. [174p]
- "지각(知覺)이란, 어쩌면 본래 어떤 예상(기대)의 수정작업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결같이 능동적인 과정이며, 기대에 의해 조건지어지고 상황에 따라서 순응하는 것이다. 봐서 아는 것(seeing and knowing)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차라리 봐서 알아본다(seeing and noticing)고 이야기하는 게 좀더 나을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아볼 때에만 그것을 알아볼 수 있으며, 우리가 어던 것을 보는 것은 어떤 불균형, 즉 우리들의 기대와 눈에 들어오는 메시지 사이의 차이에 의해서 주의가 환기될 때인 것이다. 방 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무엇인가가 변화했을 경우에는 그것을 알아본다. 우리는 어떤 두상의 모든 이목구비를 다 기록해 둘 수는 없으며, 그것들이 우리의 기대와 일치하는 한 조용히 우리 감각기관의 흡입구로 빠져들어 가고 만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림 속의 특정 형태들을 두상을 재현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주의가 환기되기 전에는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어떤 사람이 방 안에 달걀 모양의 머리통, 또는 심지어 프라이슬러의 그림처럼 위치가 잘못된 입을 하고 들어선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177~178p]
- "미술에서도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그 목적을 지향하는 데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한 가지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을 응용하거나, 그들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그것들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취사선택하거나 복합하는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미술가 자신이 가장 원시적인 자료인 ‘자연’에서 그 우수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전자는 그림을 공부하는 데 한 가지 양식을 형성하며, 이른바 모방주의 또는 절충주의 미술을 낳게 된다. 그러나 후자는 자연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거기에 내재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려진 적이 없었던 특성들을 발견하며, 그렇게 해서 독창적인 한 양식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이 일련의 강좌를 시작할 때 언급했던 그 구절로 다시 되돌아가 보면, 그의 인용구 가운데에서 컨스터블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진정한 예술과 매너리즘 사이에 선을 그으려고 줄곧 노력해 왔지만, 가장 위대한 화가들조차도 전적으로 어떤 타성에 물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회화는 하나의 과학이며, 자연의 법칙을 파고드는 하나의 질문으로서 추구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회화 자체를 자연과학의 한 지엽으로 간주하여 개개의 그림들은 단지 그 실험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해서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컨스터블은 어떻게 해서 ‘매너리즘’이 없는 미술이란 없다는(우리 같으면 전통적인 도식이 없는 미술이란 없다고 말할 것이지만) 그의 인정과 실험을 위한 기원을 한데 연결하게 되었을까. 내 생각에 그는, 아마도 과학의 역사야말로 한 사람의 관찰자의 업적이 다음 사람에 의해서 이용되고 확대되어 나가는 끊임없는 발전의 역사라고 느꼈던 것 같다. 과학자 중에 전통의 노예가 될까봐 선배들의 저서를 이용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컨스터블에게도 그와 똑같은 태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우연하게도 발견되고 있다. 런던에 있는 코톨드 미술연구소(Courtauld Institute of Art)에는, 내가 보기에 그 심리학적 가치가 미미한 덕분에 아직까지 한 번도 출판되지 않은 살앙 lT는 증거가 하나 보존되어 있다. 그것은 자기 제자들을 위해 일련의 구름의 도식들을 그려 출판했던 18세기의 풍경화가 알렉산더 코존즈(Alexander Cozens, 도판 142)의 그림책에서 컨스터블이 베껴 그린 일련의 모사들이다. [180p]
6 구름 속에 들어 있는 형상(THE IMAGE IN THE CLOUDS)
- “대답해 보게, 다미스, 회화라는 것이 세상에 있는가?” “물론 있습니다.” 다미스가 말한다. “그렇다면 그 예술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그건, 색의 혼합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왜 그 일을 할까?” “모방을 위해서지요, 개나 말이나 아니면 사람, 배한 척, 하여간 하늘 아래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닮은 모습을 얻기 위해서.” 아폴로니우스가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모방 즉 미메시스란 말인가?” “그렇지요, 아니면 달리 무엇이겠습니까?” 조수는 다시 이렇게 대답한다. “모방을 해내지 못한다면, 그건 물감을 가지고 괜스레 우스꽝스런 장난이나 하는 것에 불과하겠지요.” “그렇지.” 그의 선생이 말한다. “그러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생각해 보세. 그들은 켄타우로스처럼도 보이고, 숫사슴, 들소 그리고 늑대나 말처럼도 보이지 않는가? 그것들로 모방행위로 인한 작품들인가? 하느님이 화가가 되어 그런식으로 심심함을 달래시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 두사람은, 이러한 구름의 모습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단지 순전한 우연으로 생겨나는 것들일 뿐이며, 이러한 구름들을 그렇게 세분하고 있는 것은 선천적으로 모방지향적인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말은, 모방의 기술이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 한 면은 모방을 만들어내는 데 손과 마음을 다 사용하는 것, 그리고 또 한 면은 마음만으로 ‘닮은꼴’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라며 아폴로니우스는 면밀히 분석한다. 보는 사람의 마음 또한 모방행위에 한몫 거들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색깔만으로 그려진 그림, 또는 청동부조 작품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실물과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형태와 표현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184~185p]
-이보다도 더욱 흥미로운 다른 구절들이 있는데, 그것은 레오나르도가 구름 혹은 흙탕물 같은 ‘혼돈스런 형태들’이 지니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새로운 창조력으로 이끄는 힘에 대해 논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는 예술가에게 세심하게 소묘를 해야만 했던 전통적인 방식을 버리라고까지 충고한다. 재빠르고 엉성한 스케치가 오히려 예술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9p]
- 레오나르도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보티첼리’는, 단지 물감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를 벽을 향해 던지기만 하면, 훌륭한 풍경을 보여주는 얼룩이 생겨나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가 무익하다고 하는 지론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 얼룩 속에서 ‘ 그 안에서 찾고자 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기는 하지만, 그 세부를 어떻게 마무리지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190p]
- 르네상스 시대에 성행했던 여러 이론과 편견들의 전후관계 속에서 영감과 상상력에 대한 강조는, 고도의 지적 행위로서, 그리고 단순한 손재주의 거부로서 예술에 대한 강조와 궤를 같이한다. 세심하게 마무리된 것은 길드의 규칙을 준수해야 했던 기술공의 작품임을 드러낸다. 진정한 예술가는, 진정한 신사처럼 여유있게 일을 할 것이다. 이것이 카스틸리오네(B. Castiglione)의 그 유명한 강령인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즉 완전한 귀족과 완전한 미술가의 징표인 ‘태연함’이다. “아주 간편하게 그어져서 어떤 노력이나 기술을 들이지 않고 저절로 화가가 의도한 목표에 도달한 것 같은, 자연스럽게 그은 하나의 선, 한 번의 붓질이 예술가의 탁월함을 드러내 준다.”
여기서 전혀 새로운 예술의 개념이 형성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것은 암시를 주는 화가의 기술이 그 암시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기술과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곧이곧대로 따지는 바리새인들은 이 페쇄된 집단에서 제외된다.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투사를 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스프레차투라’의 마력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적절한 정신상태를 결여하고 있으므로, ‘무심하게 그린 작품’의 그 느슨한 붓자국에서 예술가가 의도한 이미지를 찾지 못한다. 더욱이 그가 이러한 미완성인 듯한 작품 뒤에 숨겨져 있는 은밀한 기술이나 재치를 음미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193~195p]
- 이러한 변형의 마력 때문에 티치아노의 후기 화풍은 예술이론상 일종의 격언이 되었다. 로마초(G. P. Lomazzo)는 일찍이 아우렐리오 루이니(Aurelio Luini)가 그 나이 든 대가의 작업장을 방문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서 그는 기적과도 같은 풍경화를 한 점 보았다. 그것은 첫눈에는 그냥 물감을 문질러 놓은 것처럼 보였으나, 뒤로 멀찌감치 물러서서 보니 마치 태양이 내면을 비추고 있는 듯하고, 그 때문에 여기저기 길들이 화면 안쪽으로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195p]
- 위대한 프랑스 비평가 케뤼스(Caylus) 백작은 그와 다른 사람들이 왜 마무리되지 않은 속필 스케치, 즉 단순한 암시를 명쾌한 이미지보다 좋아하는가에 대해 훨씬 더 명민하게 밝히고 있다. ‘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197p]
- 나는 왜 이러한 회화양식이 이러한 효과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흐릿한 양식에는 일반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가정되어 있다. 보는 사람 자신에게 예술가가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해낸 것보다 더 정확하지는 못하더라도 더 만족스러운 정도이다. 그와 동시에 이 양식에는 한 가지 약점이 뒤따른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겠다. 실물에 대해 알기 전에 그 초상화를 본다면,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지니게 될 것이고, 실물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모든 사람이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그 희미함이 상상력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그 성격과 형태를 취하도록 거대한 폭을 허락해 주기 때문이다.“[198p]
- 그러나 인상주의는 붓자국을 읽어내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요구한 것은, 굳이 말하자면 ‘붓자국을 건너서’ 읽는 것이었다. 유행의 첨단에 있던 19세기의 대가들 중에는, 볼디니(G. Boldini)와 사젠트(J. S. Sargent)처럼, 다소 대담한 붓놀림을 구사하여 투사라는 놀이를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 좋은 화가들이 많이 있다. 대가 중에서는 도미에(H. Daumier)의 화법(도판 26)이 이런 유에 속하며, 형태를 따라 붓이 힘차고 대담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상주의 회화의 핵심은 붓놀림의 방향이 형태를 읽어내는 데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보는 사람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시세계의 기억을 동원하여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화폭의 선과 점묘(點描)의 모자이크 안으로 투사시키는 구조물에 의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한다. 따라서, 이미 도출된 투사의 원리가 그 절정에 도달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다. 즉 이미지는 닻을 내릴 탄탄한 정박지를 지니고 있지 못하며(도판 23), 단지 우리가 마음속에서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서 변형이 일어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객은 미술가가 주는 암시에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즐기는 가운데 이제까지 논해 온 시대에서는 거의 주의를 끌지 못했던 미술의 새로운 기능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미술가는 갈수록 보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할 일’을 맡긴다. 그는 보는 사람을 창조라는 이름의 마술무대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전에는 미술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던 ‘만드는’ 쾌감을 어느 정도 맛보도록 허락해 준다. 그것은 우리의 창의성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찾아내게 만든 20세기 예술의 그 시각적 수수께끼로 연결되는 전환점이다. [198~199p]
7 환영의 조건(CONDITIONS OF ILLUSION)
- 투사의 작용이 시작되려면 우선 충족되어야 할 두 가지 조건이 확실히 있다. 하나는, 보는 사람이 그 간격을 메우는 방법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에게 텅 빈 공백이나 불확실한 어떤 영역, 즉 그가 기대한 이미지를 그 위로 투사할 수 있는 ‘스크린’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어떠한 미술전통도 내가 말한 ‘스크린’에 대해서 극동의 미술만큼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중국의 화론(畵論)은 수묵(水墨)의 ‘부재(不在)’를 통한 표현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인물은 비록 눈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어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며, 귀가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더라도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몇 천 번의 붓놀림으로도 그려낼 수 없으나 정확한 붓놀림 몇 획만으로도 잡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정녕 보이지 않는 것에 표정을 부여해 주는 일이다.”(도판 167) 이러한 견해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다음의 잠언(箴言)을 이 단원의 모토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사상이 깃들어 있으면, 붓을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이로 하여금 완성하고 투사하도록 호소하게 된 것은 아마도 서예와 계열을 같이하는 중국미술의 제한된 시각언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204~205p]
- 가시세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므로, 미술가의 매체는 필연적으로 제한된 것, 세세한 알맹이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어떤 세심한 사실주의 화가라도 단지 제한된 수의 표지(標識)들만을 패널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물감자국들 사이의 변화를 문질러 없애 가시성의 문턱을 넘어서려고 애를 쓴다 할지라도, 그는 결국 무한히 작은 것들을 재현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예외 없이 암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211p]
- 그러나 우리 자신이 그 환영에 기여하지 않는 한, 그 속임수는 분명 성공할 수 없다. 그 재현된 표면의 양식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면, 우리가 내리는 해석은 여전히 전혀 엉뚱한 방향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왔을 때의 체험기에서 로이 캠벨(Roy Campbell)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눈[雪]이 지니고 있는 그 묘하고 바삭바삭하고 소금 같은 단단함 또한 수수께끼였다. 그림을 보고 내가 상상했던 그것은 왁스 같은 것이었고, 눈송이는 촛농 같은 것이었다.” 눈 내린 장면을 그린 화가 중에, 필로스트라투스가 말했던 그 ‘우리들의 모방 기능’, 즉 눈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에 의존해서 그 환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몇 명 안 될 것이다. [215p]
- 우리는 안과의사가 시력검사를 할 때, 왜 임의의 글자를 보여주는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미리 예측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보는 것과 아는 것, 아니 기대하는 것과를 따로 떼어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피참은 거리가 지니고 있는 ‘일반화하는 경향들’을 설명하면서 보는 과정에 대한 이러한 ‘개념적인’ 지식의 우위를 자신도 모르게 지적하고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그가 설명하고 있는 그 세부사항드리을 우리가 ‘잃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우선 교회 뾰족탑에 달린 시계의 문자판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것이고, 점차 시계가 시야로부터 사라질 것이고 마침내는뚜렸했던 교회의 모습이 아주 흐려져서 무슨 건물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을에 접근해 갈 경우, 같은 과정이 그와 반대의 순서로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이다. 적어도 그 과정이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처럼 질서정연하리라고는 절대 확신할 수 없다. 어떤 환경에 처하면 우리는 쉽사리 바위를 건물로 잘못 보거나 건물을 바위로 오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까지 이러한 잘못된 해석에 내내 집착하게 될 것이다. [216~217p]
- 우리가 ‘정신적 반응기제(mental set)'라고 불렀던 것은, 아마도 정확히 말하면 투사를 시작하고, 우리의 지각 주변을 항상 맴돌고 있는 환상적 색채와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한 촉각을 내밀 ’준비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미지를 해독‘ 한다는 것은, 이미지의 잠재적 가능성을 시험하면서 무엇이 딱 들어맞는가를 시험하는 행위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러한 환상들을 활성화하는 것은 스크린 위에 단지 잠시 동안 어떤 이미지를 비추어 주는 수많은 심리학 실험에서 자주 시험되었다. 이 경우 피험자가 ’보았다‘고 보고하고 있는 것은 천차만별로 광범위하다. 다시 말해서, 피험자들에게 제시된 단서에 의해 스크린 위에 투사하도록 유도되었던 이미지는 가정을 유발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했지만, 그것을 검사할 만큼은 여유가 없던 것이다. 만약 그 그림이 충분히 빠른 속도로 제거된다면 네거티브 형태, 즉 배경의 우연한 형태들이 이러한 환상을 유도하는 것 같다. 이러한 오독(誤讀)들이 항상 우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이보다도 더 일관되고 더 조리있는 가정에 압도되기 때문에 보통은 우리가 눈치 채기도 전에 폐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20p]
- 이미지에 대한 모든 인식이 투사와 시각적인 기대감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최근 실험의 결과로 더욱 확실해졌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손이나 화살의 이미지를 보여주면, 관찰자는 그것의 위치를 어느 정도 운동의 방향 쪽으로 놓으려는 경향을 보이게 될 것이다. 기대하는 형태 속에서 잠재적인 운동감으로 보는 우리들의 이러한 경향이 없었다면, 예술가는 결코 고정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운동감의 암시를 창조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221p]
- 그러나 대중적인 비속한 취미에 양보하는 것을 비예술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도, 이해에 대한 양보를 비예술적이라 할 수 없다. 모든 의사전달이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지식에 ‘양보하는 행위’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골라내야 하는, 가능한 여러 개의 해독들에 대한 인식과 맥락에 의해 이루어진다. 보는 사람이 미술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술가가 보는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226p]
- 예술의 언어와 말[言]의 언어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증거를 요한다면, 그 증거는 이 소묘에서 찾을 숭 lt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기 준거(self-reference)를 당혹시키는 효과는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역설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크레타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하는 크레타 사람, 아니면 그 위에 씌어진 글이라고는 “이 칠판에 씌어진 유일한 글은 거짓이다”밖에 없는 칠판 따위가 그것이다. 씌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면 이치에 닿지 않으며, 사실이 아니어야 이치에 닿는 것이 된다. [230p]
- 미술에서 어떻게 공간감을 창조해낼 것인가에 대한 묵직한 저서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터이지만, 스타인버그의 감쪽같은 소묘들은 다행스럽게도 ‘재현되는 것은 결코 공간이 아니라 상황 속에 들어 있는 낯익은 물체들이다’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232p]
- 스타인버그는 여기서 엄지손가락 지문을 엄지손가락 지문으로 볼 수도 있고, 반 고흐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반 고흐 자신의 발견이 한없이 더 위대하다. 그는 우리가 가시세계를 선(線)의 소용돌이로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그루터기 벌판이나 삼나무 수풀은 반 고흐를 상기하게 한다. 재현이란 항상 두 갈래 길의 작업이다. 그것은 하나의 해석에서 또 하나의 해석으로 교체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233p]
8 삼차원의 모호성(AMBIGUTIES OF THIRD DEMENSION)
- 기억하고 있겠지만 말의 잡음을 하나의 언어로 변화시키는 것이 라디오 모니터의 ‘추측’이었듯이, 잡다한 형태와 색깔의 뒤엉킴을 검사하여 이치에 맞는 의미를 찾아내고 일관된 해석을 찾았을 때 그것을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짐작이다. [234p]
- 이 판화는 우주에 대한 한 미술가의 명상지만, 동시에 보는 이의 역할에 대한 실증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가 해 놓은 배열의 패러독스를 깨닫게 되는 것은, 사물과 광경의 의도된 관계를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그 노력 속에서인 것이다. [236~237p]
- 에임스와 그의 동료들이 이러한 예시들로써 밝히고자 한 요점은,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지각(知覺)은 발각(發覺)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요지경 구멍을 통해서 보이는 것이 우리에게 ‘그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직접적 즉시적으로 드러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며, 그 추측은 우리의 기대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의자는 알지만, 어떤 한 각도에서 보면 ‘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 엇갈리고 뒤엉킨 선들에 대해서는 경험한 바 없으므로, 그 의자를 엇갈리고 뒤엉킨 선으로 상상하거나 볼 수 없고, 언제나 가능한 형태들 중에서 아는 형태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 예들은 모든 이미지 안에 내재해 있는 모호성을 예증해 주고 있으며, 또한 왜 우리는 그것을 좀처럼 의식하지 못하는가 하는 이유를 상기시켜 준다. 모호성은, 이미 앞장에서 관찰한 바와 같이, 그 자체로 우리 눈에 띄지는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의 해석에서 다른 해석으로 옮겨감으로써, 그리고 두 해석이 모두 똑같이 이미지에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간파할 뿐이다. [240~241p]
- 원근법은 어려운 기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초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모서리를 돌아볼 수 없다는 단순하고 뒤집을 수 없는 경험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의 고정된 눈으로 보는 한, 물체를 한쪽 측면에서만 볼 수 있으며, 그 뒤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단지 추측하거나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이런 불행한 무능에 기인한다. [241p]
- 이른바 ‘외관’이란 것은 언제나 이러한 양상들의 연속, 다시 말해 우리로 하여금 거리와 크기를 가늠하도록 해주는 하나의 멜로디와 같은 것이며, 이 멜로디는 무비 카메라로는 모사할 수 있지만 이젤과 씨름하는 화가가 그것을 모사해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만일 화가들이 곡선이 직선의 투영보다 더 신빙성있게 선의 운동감을 암시해 준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곡선은 하나의 측면이 아니라 여러 측면을 재현해 주는 타협의 소산이다. 이러한 체계나 다른 어떤 체계도 세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해 준다고 주장할 수 없고, 정통적인 원근법의 배열 내에서 우리는 손에 느껴지고 측정할 수 있는 상호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247p]
- 예술의 환영은 인지(認知)를 전제로한다. 필로스트라투스의 말을 되풀이하자면, “말이나 소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른다면 어느 누구도 그림으로 그려 놓은 말이나 소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수많은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말이나 소를 멀리 떨어져 있는 말이나 소로 해석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지식,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의 짐작이다. 따라서, 원근법이 가장 그럴듯한 환영을 만드는 것도 보는 사람 쪽의 어떤 뿌리깊이 스며든 기대감과 가정에 그것이 의존할 수 있을 때라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250~251p]
-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형태심리학자들은 우리가 경험상 그러한 유의 형태를 보았을 리가 없는 경우에도 단순한 형태를 선택한다는 것을 즐겨 예시해 준다. 그 중 가장 명백한 보기가 장사방형 무늬이다.(도판 217)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을 장사방형이 연결된 것이라기보다는 규칙적인 장방형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이어진 띠로 볼 것이다. 더군다나 공간에 놓인 규칙적인 띠를 읽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한데, 그것은 둘 다 거의 임의적으로 채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고, 아니면 앞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별다른 노력 없이도 그것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애써도 할 수 없는 것은, 그 장사방형들이 어떤 중간적인 입장에라도 들어맞기 위해서 만들어내야 할 여러 가지 불규칙적인 모양들을 보거나 상상하는 일이다. 비록 이성과 수학덕분으로 이러한 불규칙적인 모양들이 분명 무한히 존재하고 있으며, 해석될 수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252p]
- 우리가 모호성을 간파하는 데 무력한 탓에, 종종 ‘순수한’ 형태는 무한히 많은 공간적 해석들을 허용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방해를 받아 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형태와 색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동력이 날로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왔고, 삼차원적인 형태가 여전히 비재현적인 전후맥락 안에서도 애매모호하지 않은 형태로 암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은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안을 주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나는 미술가가 추상적인 삼차원의 형태를 ‘재현’했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생각에 동이하거나 반박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단순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찌 어찌하여 단순한 경우에서라면 분명 해석에 길잡이가 되어 줄지라도, 그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쉽사리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3p]
- 공간의 상황증거가 많을수록, 그와 반대로 양자택일의 해석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256p]
- 원근법의 발명이나 명암법의 발전이나 모두, 독자적으로 가시세계에 대한 명료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는 충분하지 못하다. 자연주의적 이미지에 대한 해석에 익숙해져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상호반응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는 단순성 준거만으로도, 올바른 판독이 가능한 윤곽뿐인 선획에 만족하기 일쑤이다. [257p]
- 여기서 이른바 ‘과학적 훈련’은 실제로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을 이미 보았다. 그 일본인 화가의 아버지가 본, 원근법에만 의존했을 뿐 명암처리가 젼혀 되어 있지 않은 투시도 상자 그림은 분명 장방형의 올바른 투시도였을 것이다.(도판 224) 따라서 그것은 그러한 모양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찌그러진 상자들이 그와 동일한 모습으로 투사될 수 있음을 우리는 에임스의 원근법 이론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이미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마키노의 아버지는 두 번 모두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으로서 그 그림이 찌그러진 상자를 재현한 것이라고 판단했을 때에도 옳았고, 후에 스스로 훈련을 통해 그 제대로 그려진 그림책에 대해 의심스러운 판단을 내렸던 것을 의아해 했을 때에도 그는 옳았던 것이다. [258~259p]
- 왜냐하면 그의 시각이 예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유형을 알고 가정을 세워 검증하는 법을 배워 왔기 때문이다. 동물이나 인간에게 그 존재가치를 특히 과시한 것은 ‘사물의 불면성’에 대한 가정이다. 우리는, 저 바깥에 있는 사물은 위치를 바꿀지언정 좀처럼 모양을 흐트러뜨리지는 않을 것이며, 조명이 달라지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그 고유색은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가시세계에 놓여 있는 사물의 안정성에 대한 이 확신은 우리의 언어구조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인생관의 바탕을 이루어 왔다. [260p]
- 어떤 최초의 체계, 누군가 반박을 하지 않는다면 고집할 수 있는 어떤 최초의 가정이 없다면, 우리는 주변환경으로부터 우리 자신에게 엄습해 오는 무수히 애매모호한 자극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알고자 한다면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자연이 우리에게 주입할 수 있었던 가장 유익한 오류는 아마도 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보다 더 단순한 것에 대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신경학 분야에서 형태학파의 운명이 어떻게 되건 간에, ‘단순한 가정’이 배워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형태학파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아직도 옳다고 입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학습의 조건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하며, 구멍 안을 탐사할 경우 우리는 우선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 곧은 막대기를 사용한다. 가시세계를 탐사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다르게 판명될 때까지는 사물이란 단순한 것이라는 가정을 원용한다. [261~262p]
- 일반적으로 회화는 요지경 구멍을 들여다보는 식으로 전시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정물화의 대상들이 상호관계에서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움직이는 순간 그 환영은 사라질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사실적 인 눈속임 화가는 편지꽂이(도판 165)와 같은 얕은 배열이나, 혹은 평평한 부조처럼 작품 내의 움직임 부족이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경우에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단지 이러한 불리한 조건이 그보다 더 심각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이 경우도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 가운데 저장되어 있는 기대로부터 상상된 움직임의 일부를 각출해내는 것 같다. 이 효과의 일부는 판탱라투르의 그림을 여러 각도에서 보는 것으로도 감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두드러지는 예는, 가리키는 손가락이나 총부리가 항상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포스터(도판 80)와 그림, 혹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그림 속의 ‘그 눈초리들이 우리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초상화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모든 초상화들은 명백히 ‘다른 곳을 보고 있지’ 않는 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이 책에 실린 레이놀즈(J. Reynolds)가 그린 초상화(도판 19)로 되돌아가 시험해 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네거티브 테스트(negative test)'의 중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의 지각에 관해서 우리는 철두철미하게 자기 중심적인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즉 우리는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는 사물들 때문에 세계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것이다. 반박할 좋은 증거가 없는한, 우리는 어떤 눈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거나 혹은 총부리가 우리를 겨냥하고 있다고 가정할 것이다. 그 그림이 이와는 반대의 증거를 제공하지 않고, 또한 우리의 투사 시험들도 그것을 발견해내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는 그 환영에 굴복할 것이다. 왜 눈이나 총구가 우리의 움직임 테스트에 감응하는 데 실패하는가 하는 데는 기하학적인 이유가 있다. 실제의 총은 시점의 각도가 증가함에 따라 총구가 점점 더 작아 보이게 된다. 그려진 총의 구멍은 불안하게도 그렇게 되지 못한다. 따라서 상상력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눈의 경우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으며, 특히 예의 피그말리온이 바라는 수단에 호소하는 안내인으로부터 말로 암시받게 될 경우는 더욱 그렇다. [264p]
- 그러나 평면과 전쟁터의 말을 동시에 ‘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만약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 온 것이 옳았다면, 그 요구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요구이다. 전쟁터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잠시나마 그 평면을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 [266p]
- 나는 입체파가 모호성을 근절하고 그림에 대한 한 가지 일기, 즉 채색된 캔버스라는 인위적 구성으로 읽기를 강요하기 위한 가장 급진적인 시도라고 믿는다. 만약 환영이란 것이 단서들의 상호작용과 모순된 증거의 부재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 변형시키는 영향력과 맞서는 유일한 방도는 그 단서로 하여금 서로 반박하도록 만들고 현실의 긴밀하게 결합된 이미지가 평면에 있는 패턴을 파괴하는 것을 막는 것뿐이다. 판탱 라투르와는 달리 브라크(G. Braque)의 정물(도판 229)은 원근법과 질감, 명암 등의 모든 힘들이 서로 조화되지 않고, 실제의 정돈상태를 분쇄하도록 배열한 결과이다. 아마 이런 상황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것은 브라크의 빛 처리일 것이다. 판탱 라투르가 하이라이트로 처리했던 사과 위에는 대신 검은 반점이 있다. 이렇게 상호관계를 전도함에 따라, 화가는 이 작품이 환영이 아닌 그림에서의 실행(exercise in painting)이라는 메시지를 통감케 하는 것이다. [268p]
- "하나의 관점에서 볼 때, 미술사는 외관에 대한 단계적인 발견의 역사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미술은, 아동미술처럼 개념의 상징들로부터 시작된다. 어린이가 그린 얼굴에서 동그라미는 얼굴 윤곽을 상징하고, 두 개의 점은 두 눈을, 두 개의 선은 코와 입을 상징한다. 점차로 그 상징주의는 실제 겉모습에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삶의 필수적인 요소인 개념적인 습관 때문에, 심지어 미술가라 할지라도 사물이 선입견 없는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발견해내기란 무척 힘들다. 실제로, 이러한 ‘발견’을 완성하는 데는 신석기시대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이 걸렸다. 지오토 시대 이후의 유럽 미술은 어쨌든 지속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원근법의 발견은 중요한 단계를 차지했고, 한편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채 그리고 색채 원근법의 완벽한 구사는 프랑스 인상파가 등장해서야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몇 세기에 걸친 과정 속에서 컨스터블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술에서 관습의 지배에 대한 로저 프라이의 설명은, 고전고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보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한 옛 구분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이 재현의 문제들 그리고 초보자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에 대해 논의하고 하는 미술가나 비평가 그리고 교사들에게 극히 간편하게 여겨지지만 않았더라면, 글너 사람들 모두에게 크게 활용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용어법을 따르자면, 단순히 ‘지식’에 의지하는 이미지는 ‘순수하게 개념적’이며, 앞서 언급한 대로 미술사는 이러한 ‘침입자’를 쫓아내는 배척의 역사가 된다. [276~277p]
- 그러나 우리는 모든 양식에서 미술가가 형태의 어휘들에 의존해야 하며, 숙달된 미술가와 미숙한 미술가를 구분짓는 것은 사물에 대한 지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어휘에 대한 지식임을 이미 보았다. 주어진 건물이나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에서의 쉽고 어려움을 설명해 주는 것은, 지식의 방해라기보다 도식의 부족인 것이다. [277p]
- 어린이가 만들어낸 그 와이벤호 공원은 쉽사리 ‘도려내기’ 놀이로 바뀌어, 어린이 방의 바닥 위에 버텨 세우는 공원으로 만들 수 있다. 컨스터블의 그림은 그렇게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그림에서 미술가는 자신이 바라본 지점이라는 그 우연성에 다라 변화하는 모양과 색깔을 참작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대상의 실제 모양은 물론 인정하면서, 그는 주어진 순간의 모습, 그 장소에서의 외관을 포착하기 위해서, 심지어 그 기능적인 명료성마저 희생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 대상을 변경한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과정에서, 컨스터블은 실제로 다른 것들도 전제로 해야만 했다. 그는 두치오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우리의 해석 능력에 의존해야 했다. 두치오의 그림에서 우리는 설령 다른 정보가 사라졌더라도 나무로 만든 배의 본질적인 구조는 추론해낼 수가 있는데, 컨스터블의 경우에는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컨스터블의 라이벌인 대화가(大畵家) 터너(Joseph M. W. Turner, 도판 240)에 오게 되면, 대상의 구조는 왕왕 그 순간에 일어난 변화, 즉 안개, 빛 그리고 현란함 따위에 완전히 가려져 버린다. 여기서는 어울리게 하는 것이 제작을 압도하는 것이다. 터너가 자신이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극도로 자제하고, 오로지 자신이 본 것에만 집중했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280p]
- “견고한 형태에 대한 지각은 전적으로 경험의 문제이다. 우리는 단조로운 색깔 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검은색이나 회색 자국이 고체의 어두운 면을 나타낸다는 것, 혹은 희미한 색깔은 그 물체가 멀리 떨어져 있음을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일련의 실험을 거쳤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림을 그리는 데 기술적인 역량은 소위 말하는 ‘눈의 순진함(innocence of the eye)'을 회복하는 데 달려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이러한 단조로운 색깔 얼룩 그 자체만을 지각하는 일종의 어린이 같은 마음, 즉 색이 의미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보는 지각을 말한다. 이는 장님이 갑자기 시력을 얻었을 때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80p]
- 보는 행위란, 눈의 뒷부분을 자극하는 빛의 패턴에 대한 유기체의 반응이다. 실제로 최근에 깁슨은 버클리의 가설과는 달리 망막 자체를 개별적인 빛의 자극에 반응하는 기관으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그 빛들끼리의 관계 혹은 기울기에 반응하는 기관으로 설명한 바 있다. 우리는 심지어 갓 부화한 병아리조차도 자신이 받은 인상을 상호관계에 따라 구분하고 있음을 보았다. 감각과 지각을 확연히 구별하는 것은, 처음엔 그럴듯했지만, 인간과 동물에 대한 실험의 결과로 나온 증거와 비교되자 단념될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시감각(視感覺)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인상파 화가들도, 대단한 창의력을 발휘하며 자신들의 목표물에 접근해 갔음에도 보지 못했다. -중략- 모든 보는 행위가 해석하는 행위라면, 개개의 해석 방식은 모두 똑같은 유효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81~282p]
- 사고 행위란 모두 가려내고 분류하는 행위이다. 모든 지각행위는 기대하는 것, 따라서 비교하는 것과 연관된다. 사람들이 공중에서 보면 집은 장난감처럼, 사람은 개미처럼 보인다고 말할 때, 그것은 아이 방의 바닥에 있는 낯익은 장난감의 모습과 비교하여, 익숙치 않은 집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식이 없었다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집을 장난감으로 혼동할 뻔했다고 느낀다. 그것들을 시험하는 우리의 방법과 추측이 다소 불안정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속을 스쳐 지나간 그 가능성들을 암시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묘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자면, 인간에게 ‘개미의 크기’를 볼 수 있는 객관적인 감각이란 없다. 베개 위를 기어가는 개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 비교해 본다면, 거인처럼 보일 것이라는 그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보링(E. G. Boring) 교수의 언급처럼, “현상적인 크기는 물리적인 크기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며,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로서의 크기 이외에는 의미가 없다.”[284p]
- 가시세계에 대해 우리가 갖는 상(像)을 결정하는 것은 망막에 와 닿는 자극 패턴들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 사물의 ‘실제’ 모양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이, 그것이 지닌 메시지를 수정하는 것이다.
토울레스 교수의 실험 결과는 자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해석하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실제’ 물체에 대해 말하면서, 문제를 어느 정도 미리 판단해 버린 감이 있는 것이다.
일 페니짜리 동전은 위에서 그것을 바라본다고 해서, 옆에서 봤을 때보다 더 현실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우연히도 정면에서 본 모습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모습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그 사물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부르고 있는 측면이며, 우리 세계의 사물들을 구분짓고 이름을 붙이는 근거가 되는 그 현저한 양상들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한 측면(혹은 두 가지 측면)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원시미술은 이러한 현저한 양상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은 원시미술이, 보이는 것보다 아는 것에 의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분명한 분류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285p]
- 세잔느가 베르나르(E,. Bernard)에게 조언해 준 것으로, 빈번히 인용되는 “자연을 보려면 낯익은 성질을 지닌 단순한 모양들, 즉 원통형, 원추형, 그리고 구형(矩形)으로 환산해서 보라”는 충고는 정확히 똑같은 ‘재분류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것은 큐비즘과 관계가 있는 충고라기보다는 프랑스 미술교육의 한 전형과 관계가 있는 것이며, 세잔느가 어렸을 때 이미 보급되어 있던 방법으로 그는 이것을 자신을 따르는 젊은 후배인 베르나르에게 전달해 주고 싶어했다. [288p]
- “형태는 절대적이다. 따라서 어떤 선을 긋더라도 그것이 옳게 그려졌는지 틀리게 그려졌는지를 단박 알 수 있다. 반면에, 색깔은 완전히 상대적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모든 색깔은 다른 곳에 무엇을 첨가함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조금 전만 해도 따뜻한 색깔이었던 것은 다른 장소에 더 뜨거운 색깔을 칠하게 되면 차가운 색깔로 변해 버리고, 그대로 놔두었을 때 조화를 이루던 것은 그 곁에 다른 색깔을 칠할 경우 부조화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붓질은 그때그때의 효과르 감안해서 가해지면 안 되고, 미래에 나타날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 즉 그 후에도 가해질 그 모든 붓질의 결과를 미리 생각한 후에 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오로지 자신의 생애를 바치고 또한 위대한 천재성까지 지니고 있어야만 색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290p]
- 맛을 보지 않고는 음식의 재료가 내는 정확한 효과를 알 수 없듯이, 실험해 보지 않고는 형태와 색채가 상호간에 지니는 효과를 알 수 없다. 그 둘은 모두 수많은 자극제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오는 ‘총체적인’ 인상이다. 따라서 의상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는 여성이라도, 거울 앞에 서 보지도 않고 자기에게 어떤 모자가 어떻게 어울릴지 미리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선이나 색조라도 아주 의외적인 방법으로 그녀 외모의 모양새(gestalt)를 바꾸어 놓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291p]
- 실제로 순진한 눈의 업적, 즉 현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자극집중(stimulus concentration)' 행위는 심리학적으로 해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임이 판명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자극이란 무한한 모호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모호성은, 이 책의 주제를 되풀이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같은 윤곽형태에 합당한 각기 다른 해석을 시도함으로써만 추론될 수 있다. 정말로 미술가의 천부적인 재능이란 이런 차원의 것이라고 믿는다. 미술가는 비판적으로 사물을 보고, 장난 삼아 하는 경우이든 진지한 경우이든 탄력성 있는 해석방법으로 자신의 지각을 면밀하게 살피는 법을 배운 자이다. 회화가 환영을 창조하는 수단을 획득하기 훨씬 이전에, 인간은 가시영역 속에 있는 모호성들의 존재를 인식했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신화는 말할 것도 없이 직유나 은유, 시(詩) 등은 새로운 분류법을 창조하거나 해체하는 창조적인 인간의 능력을 증명해 주고 있다. 비실제적인 인간이나 몽상가는 좀더 능률적인 유능한 사람, 예를 들면 바위를 소[牛]로 보고 또한 소를 바위로 보는 가능성을 가르쳐 준 인간의 반응에 비해, 그 반응의 방법이 덜 엄격하고 확실성이 떨어진다. 우리와 동시대의 미술가 중 하나인 조르주 브라크는 최근에 우리가 지닌 카테고리의 유동성, 즉 서류철이 구두의 주걱이 되는가 하면, 양동이가 브래지어로 되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전율과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찾아내고 만드는 능력을 예술가의 발견뿐만 아니라 어린이가 발견한 것 가운데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확실히 찾아낸다는 것은 만드는 것보다도 앞서서 벌어지는 행위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시세계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일은 오로지 사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른 어떤 것처럼 만들려고 애쓰는 행위 안에서만 가능하다.[293~294p]
- 미술에서 양식의 안정성이 워낙 두드러지는 현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자기강화(自己强化)의 가설이란 것은 필요로 할 만하다. [295p]
- 칼 포퍼가 강조했듯이, 모든 관찰은 우리가 자연에 묻는 의문의 결과이며, 모든 의문은 임시적인 가정들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무엇을 찾는 것은 우리가 세운 가정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결과를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과가 되는지 어떤지 한번 보자.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수정하고 가능한 한 엄격하게 다시 한번 관찰을 검사해 봐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반증하기를 시도함으로써, 쓸모없는 것을 떨쳐 버리는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가정은, 우리가 일시적으로 견지할 만한 것이 된다.
과학이 밟아 온 길은 미술에서의 시각적 발견의 변천에도 두드러지게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든 도식과 수정에 대한 공식은, 바로 이 과정을 보여준다. 만드는 것과 맞추는 것 그리고 다시 만드는 것 등을 거쳐 마침내 완성된 이미지를 구현하는 그 과정을 시작하려면, 우선 출발점 즉 비교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미술가는 무(無)에서 출발할 수는 없지만, 선배화가들을 비판할 수는 있다. [301p]
- 자연주의적 이미지는, 우리가 본 대로, 일정 한계 이상으로 변화하게 되면 미술가 자신이나 대중들 모두에게 이해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마는 매우 밀접하게 짜여진 관계들의 윤곽형태이다. 라파엘로 작품의 구성적 도식을 수정하는 데 마네가 행한 행동은, 그가 ‘한 번에 한 가지씩’이라는 격언의 가치를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언어는 새로운 단어들을 도입함으로써 커 단다. 그러나 오로지 새로운 단어와 새로운 구문들만으로 이루어진 언어는 뭔가 뭔지 알 수 없는 횡설수설과 다를 바 없다. [303p]
- 나는 여기서 모든 보는 행위는 목적을 지닌 행위이며, 미술가의 가능한 대체물을 찾는 데, 미술가가 아마추어보다 반드시 더 많은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오히려 덜 본다고 할 수도 있다.(눈을 가늘게 뜨고 사물을 보는 듯한 경우가 그 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에게도 ‘통할’ 수 있는 어떤 등가물을 자신의 매체 안에서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의 경험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의 그림을 보고 진정으로 시도를 해본 후, “내게는 이렇게 보이지 않던데” 하고 말하는 사람은 미술가의 적이 아니다. 그는 등가물 게임에 그와 함께 참여하는 그의 동반자이다.[305p]
- “내 생각에 시각영역이란, 단지 시지각의 회화적 형식이며, 그것은 결국 자극의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자세의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다. 시각영역은 문명인이 지니고 있는, 세계를 그림으로 보는 고질적인 습관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일상적인 지각의 바탕이기는커녕, 일종의 대체물에 지나지 않는다.”[307p]
- “나는 비례의 법칙은 전혀 모르면서, 다만 참고 봐줄 수 있을 정도로 빛을 배치하는 기술만 약간 습득했을 뿐인데도 꽤 쓸 만한 작품을 창조하고 명장(名匠)으로 평가받는 많은 화가들을 보았다.”
이렇게 빛이 형태를 압도하는 이유를 추측해 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질감의 등가(等價)는 우리 의식의 심층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설령 그것이 금(金)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반짝임이 적어도 어떤 매끈함, 찬란함을 뜻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윤곽에 반응할 때보다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따라서 분석하기가 좀더 어려운 감각적 질감이다. 촉촉함이나 매끈함에 반응을 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총체적인’ 특질 그 자체이지 고유색과 반사의 각개 요소들은 아니다. 이 사실에서 회화적 환영의 그 야릇하고 강력한 효과가 유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감의 인상 이상으로 더 분석하기 어려운 효과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관상학적인 인상의 효과이다. 이 경우 우리는 더욱더 깊이 말려들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인상의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떻게 반응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따라서, 미술에서의 얼굴 표정 묘사는 결코 자명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놀랄 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 가장 초기의 회화론인 알베르티의 『회화론(Della Pittura)』을 읽으면, 화가로서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얼굴 표정의 정확한 뉘앙스를 묘사하는 일은 어려운 일에 속한다. 초상화가들은, 그 초상화를 보고 “그가 이렇게 생겼던가?”라든가 “입 가장자리가 저렇지는 않잖아?”하는 등 불평을 말하는 초상화 모델의 번거로운 관계자들을 알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실물을 모사하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막스 프리들랜더(Max Friendlander)는, 독일은행 지폐에 얼굴 초상을 계속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한 은행관리에 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위조지폐범이 모방하기에 가장 애를 먹을 것은 바로 그 예술적으로는 전혀 보잘것없는 이러한 얼굴 초상화들의 정확한 표정이며, 단지 그러한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위조지폐를 찾아내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이다. [311~312p]
- 우리는 전체로서의 얼굴에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정확히 어떤 면모들 혹은 관계들이 그러한 직관적 인상을 만들어내는가를 알기 훨씬 이전에, 친절하거나 근엄하거나 아니면 간절히 바라는 얼굴, 슬프거나 혹은 빈정대는 듯한 얼굴을 보게 된다. 나는 우리가 단순히 주위 사람을 관찰해 본다고 해서 그 얼굴이 반짝 미소를 머금거나, 아니면 우울한 기분의 암울한 표정이 되게 하는 그 정확한 변화들을 인식하게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간다. 왜냐하면 앞의 보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전체적인 인상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거리이지 크기의 변화가 아니며, 빛이지 색조의 수정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환한 얼굴이지 근육 수축상의 변화가 아니다. 인상의 바로 그 직관성이 분석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그 때문에 얼굴 표정의 발견과 단순화 과정은 예술적인 창조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예를 제공해 준다. 그것은 또한 이러한 유의 역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창조의 일례이기도 하다. 언급한 바로 그 이유들 때문에, 그 역사를 진지하게 연구하려면 큰 어려움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표정을 분석하기란 어려우며 명료하게 설명하기는 더욱 어렵다. 더욱이, 우리의 직접적인 반응이 확고한 신념들로 끝을 맺지만, 그 신념들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성질의 것일 경우가 많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모나리자의 미소에 대한 해석은 얼마나 다양한가. [312p]
- 퇴퍼는 예술에서 만나건 실제에서 만나건 간에 우리가 반응을 보이는 그 ‘최소한의 단서들’(이것은 심리학 용어이지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서들이 체계적으로 변화할 때, 낙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아보려고 애를 쓰면서, 퇴퍼는 그것들을 관상학적 지각의 여러 비밀들을 탐사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318p]
- 렘브란트의 예술이 보여주는 이러한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18세기 비평가는 렘브란트의 비범한 시각적 기억력, 즉 아주 보유력이 강해서 어떤 동작의 어떤 면이라도 지닐 수 있었고, 자신의 예술에 활용할 수 있었던 그런 기억력을 들고 있다. 렘브란트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후브라켄의 의견에 대해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하고 잇는 설명은 여전히 설득력이 없다. 우리도 정확히, 렘브란트가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기계적인 장치를 갖고 있다. 동작을 정지시켜 영원히 그것을 정착시키는 스냅 사진이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또한 렘브란트의 그림이 이러한 스냅 사진과 얼마나 다른지도 알고 있다. 오토 베네시(Otto Benesch)가 렘브란트의 그림에 대한 자신의 명저 속에서 위의 소묘를 ‘실물을 보고 그린 습작(study from life)'이라고 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말이 지닌 가장 고도의 의미에서 발명된 것이다. 후브라켄이 ’이러한 것들이 눈에 뜨인 사물을 그대로 전사(轉寫)한 것일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은 분명 옳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기억된 사물을 전사한 것일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것과 기억한 사물을 재현하는 것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 중 어느 것도 하나의 언어, 이 경우에는 렘브란트가 자신의 예술 속에서, 그리고 예술을 통해서 독자적인 것으로 만든 그 표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힘이 없이는 그런 모습으로 전사될 수 없다. 어디서나 그렇듯이 여기서도, 미술가 자신의 것과 전통의 것을 모두 포함하는 성공적인 해결 사례들에 대한 기억이 관찰들에 대한 기억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 위대한 진리는, 다른 많은 사실들과 마찬가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다. 자신의 『회화론』에서 관상학을 위한 기억에 대해 논하면서, 레오나르도는 미술가에게 분류체계, 즉 이러한 목적을 위해 얼굴을 머리, 코, 입, 뺨의 네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준비하고 사용 가능한 형태들을 연구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여기 제시된 삽화(도판 279)는 그가 인정하는 코의 카테고리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단 사람 얼굴의 이러한 요소들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고 나면, 한 번만 보고도 얼굴을 분석하고 간직할 수 있다. [324p]
- 미술가는 대상의 ‘언어를 배워야’ 하며, “가능하면 그것들에 통하는 문법을 찾아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미술가는 자신의 머릿속을 우리가 말한 그 ‘도식’으로 잘 채워야 한다. 그리고 호가스는 분명 그 중에서도 ‘성격’과 ‘표정’에 관련된 도식에 우월한 위치를 부여했다.
따라서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호가스는, 한편에는 레오나르도와 르 브룅(그는 이 둘을 다 인용하고 있다)을 두고 다른 편에는 퇴퍼를 두는 그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 레오나르도에게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었고 맞수였다. 그리고 기억력 훈련이니 하는 것은 형태학에 대한 그의 관심의 부산물이었다. 르 브룅에 이르게 되면, 예술은 이미 고상한 언어가 되어 있었고, 특권 계급의 손실없이 그것에서 멀어지는 것은 위험했다. 호가스는 언어로서의 예술 개념을 받아들였고, 인물 성격들을 창조해내 자신의 상상적인 무대 위에 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것의 가능성에 몰두했다. [325p]
-'되는 대로 선을 긋고 어떤 일이 벌이지는지 지켜보는‘ 퇴퍼의 방법은 정말로 예술의 언어를 확장시키는 정평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피카소가 “나는 찾지 않는다. 다만 발견할 뿐이다”라고 말할 때, 내 생각에 그것은 그가 창조 그 자체가 탐구라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계획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손에서 온갖 기묘한 존재들이 솟아나와 그들 자체가 생(生)을 갖는 것을 지켜본다. [331p]
- 미술가에게 무의식 속에 있는 이미지란 망막에 맺힌 이미지 못지않게 허구적이고 쓸모 없는 개념이다. 그것을 명확히 표현하는 데 지름길이란 없다. 미술가가 어디에 시선을 돌리든, 그는 다만 만들고 맞출 수 있을 뿐이며, 개발된 언어로부터 가장 가까운 등가물을 골라낼 수 있을 뿐이다. [333p]
- 플라톤이 살던 당시에는 말의 언어, 즉 사물의 이름들이 창조에 의해 생겨난 것이냐 아니면 자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냐 하는 것이 많이 논의되던 문제였다. 그것은 ‘말[馬]’이라는 말[言]과 한 마리의 말 사이에 어느 정도 실질적인 유대가 있는가, 아니면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이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런 형태로 던져질 때, 그 질문은 약간 유치해 보인다. 우리들 대부분은 소[牛]를 의미하는 ‘음매(moocow)'와 같은 의성어를 제외하면, 사물의 명칭이란 사물의 어떤 부류를 지칭하기 위해 우연히 붙여진 것으로, 우리가 발음하는 법을 익힌 소리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이런 맥락에서 영어의 ’호스(horse)'니 프랑스어의 ‘슈발(cheval)'이니 하는 우연적인 이름과 미술가가 그린 말의 시각적 이미지를 대비함으로써, 언어가 갖고 있는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성격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종래부터 취해져 온 관례였다. 그리고 이것(미술가의 시각 이미지-역자)은 관습적이 아닌 실제적 유사함, 즉 자연적 기호 혹은 이른바 도상(icon)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335p]
- 그것은 말[言]의 언어와 시각적 재현 사이에 우리가 종종 쉽게 인정하는 것 이상의 공통점이 있다는 결론이리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이렇게 의견일치를 보았을 것이다. 기차는 닮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린이방 바닥 위에서 기차 대용품으로 쓰일 수 있도록, 나무토막을 자유롭게 배열하고자 하는 하나의 의도인 것이다. 그 증거로, 어린이는 “아빠, 나무토막으로 기차를 재현해 볼까?” 같은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아빠, 우리 기차 만들어 봐.” 이렇게 말한다. 이 말로 어린아이가 뜻하는 것은, 초보적인 모형 같은 것, 즉 밀며 놀 수 있고 상상으로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일렬로 연결된 나무토막이다. [336p]
- 홰를 치는 수탁의 쉰 듯한 소리를 내가 지각한 것은, 습관적인 해석에 영향받은 것이다.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가는 자연과 습관 사이의 문제이다. 그것에 진정한 답변을 하려면 그것이 진짜로 내는 소리와 우리가 듣는 소리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그 문제의 어려움 아니면 그 문제 자체의 바보스러움이 눈앞에 선해진다. 해석이 없다면 실재도 없는 것이다. 선입견 없는 눈이란 존재할 수 없듯이, 선입견 없는 귀도 존재할 수 없다. [337p]
- 실제로, 플라톤의 저서 『크라틸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오노마토포에이아(onomatopoeia)의 원리, 즉 소리를 흉내내는 의성어의 원리가 내가 인용한 명백한 예들보다 더 넓게 적용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즉 음성의 모방이 소리영역이 끝나는 곳에서 급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동작의 영역으로까지 계속된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r'라는 글자는 뭔가 흘러가거나 움직이는 것을 암시하며, ’i'라는 글자는 뭔가 날카롭거나 선명한 것을 암시해 준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곳은 괴짜 그리고 심지어는 미친 사람이나 잘 들락거릴 위험한 지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이 우리가 언젠가는 횡당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소리들이 정말로 시각적 인상들을 흉내내거나 거기에 맞출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깜박거리다(flicker)' ’깜박이다(blinking)' '번쩍이다(scintillating)' 등의 단어는, 적어도 ‘째깍째깍(tick-tick)’ ‘칙칙폭폭(choo-choo)' 따위의 의성어가 언어학상 청각적 인상에 꽤 접근한 언어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받는 시각적 인상에 매우 가까운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소위 ’공감각(synesthesia)'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 즉 하나의 감각 양식에서 나온 인상과 다른 감각 양식에서 나온 인상이 뒤섞여 있는 현상은 모든 언어들이 입증해 주고 있는 터이다. 언어에서는 시각에서 소리로, 소리에서 시각으로 양쪽에 작용한다. 요란한 색깔이니 맑은 소리니 하는 말을 사용해도, 누구라도 말뜻을 알아듣는다. 더욱이 귀와 눈만이 서로 수렴되어 공통적인 중심에서 만나는 유일한 감각기관인 것도 아니다. ‘비단 같은 목소리’니 ‘차가운 빛’ 같은 말 속에는 어떤 촉감이, 그리고 색깔 혹은 소리의 ‘달콤한 하모니’ 같은 말 속에는 어떤 미각이 들어 있으며, 그 외에도 이러한 유의 언어는 수없이 많다. [340p]
- 왜냐하면 이러한 분석은 세 가지 요소들, 즉 매체, 정신적 반응기제, 그리고 등가의 유의해 두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개 이 세 가지 문제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이 세 가지는 물 속에 잠겨 있어 우리의 의식에 드러나지 않는 빙산의 구분의 팔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많은 미학자의 배[船]들은 이것을 무시하다가 좌초당하고 말았다.
내가 몬드리안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 누가 나에게 “몬드리안이 부기우기의 한 부분을 그토록 정확히 재현했기 때문에, 당신은 제가 그것을 연주하기만 하면 그 즉시 그것이 부기우기 스타일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고 진지하게 묻는다면, 나는 그 물밑의 빙괴(氷塊), 다시 말해서 그 의사전달이 가능해질 수 있는 전후맥락에 대해 언급해 주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가 그 전후맥락을 충분히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면 나는 그것이 부기우기임을 알아볼 수 있다. 나는 누군가 대조적인 두 개의 곡, 예를 들어 하나는 느리고 우울한 곡, 다른 하나는 빠르고 시끄러운 곡을 연주한다면 그 중 맞는 것을 다시 한 번에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몬드리안이 내게 하나의 힌트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리학자들이 ‘맞춤(matching)'이라고 부르는 게임을 위한 힌트이다. 단순한 선택이 주어지게 되면 몬드리안은 음악의 어떤 부류, 카테고리, 아니면 어떤 분류함 속에서 그 등가를 찾아야 할지를 내게 말해 준다.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이러한 유형의 재현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에 대한 지식에 의존하는 것임이 밝혀진 그 가시세계의 재현보다도 더 나을 게 없다.
그러나 우리의 분석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작품에 대한 나의 이해는 나의 기대와 가능한 음악 형태에 대한 경험에 좌우될 뿐만 아니라, 가능한 그림 유형에 대한 나의 지식-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몬드리안에 접근해 갈 때의 그 정신적 반응기제-에도 좌우되기 때문이다. [341~343p]
- 공감각이 상호관계들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준 사람은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 교수였다. 나는 짝짓기 게임에서 이러한 암시를 시도해 본 바 있다. 그것은 여전히 표현될 수 있는 상호관계내에서, 상상 가능한 가장 단순한 매체 즉 단지 두 가지 단어로 이루어진 말을 창조하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그것을 핑퐁(ping-pong)이라는 단어에서의 ‘핑’과 ‘퐁’이라고 하자. 만일 사용하는 말이 이 둘밖에 없다고 치고 우리가 코끼리와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한다면, 그 중 어떤 것이 ‘핑’이고 어떤 것이 ‘퐁’이 될 것인가, 내 생각에 그 대답은 분명하다. 뜨거운 수프와 아이스크림은 어떤가. 적어도 내게는 아이스크림은 핑이고 수프는 퐁이다. 그러면 렘브란트와 바토(J. A. Watteau)는 어떤가. 분명 그런 경우엔 렘브란트가 퐁이 될 것이고, 바토는 핑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계속 작용해 나간다고, 즉 두 개의 구역으로 충분히 모든 관계들을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낮과 밤 그리고 남성과 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질문이 좀더 다른 틀을 지니게 된다면, 이러한 서로 다른 답변들은 아마도 만장일치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예쁘장한 소녀들은 핑이고 나이 지긋한 부인은 퐁이다. 그것은 그 여성의 어떤 면모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에 좌우되는 것인 듯하다. 마치 밤이 지닌 그 어머니 같은 감싸 주는 듯한 면모는 퐁이지만, 그것이 날카롭고 춥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어떤 사람에게는 핑이 되는 것처럼. [344p]
- 우리는 도리아식이 신의 엄격함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건 그렇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단지 그것이 그 척도상 좀더 엄격한 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지, 그 군신(軍神)과 도리아 양식 사이에 반드시 공통점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와 비슷한 사고경향을 따라, 니코라 푸생은 한 유명한 편지에서 형태와 색깔의 표현적인 특성과 고대 음악의 이른바 양식들(modes)을 비교했던 적이 있다. 도리아 양식은 역시 엄격한 것이므로 엄숙한 주제에 어울리고, 프리기아 양식은 열정적이므로 호전적인 주제를 다루는 데 적합하다고 되어 있다. 그는 이러한 양식의 변화를, 단어를 발음하는 음성을 자신의 테마에 맞추는 시인들의 방법과 비교하고 있다.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가 사랑을 읊을 때면 그의 음성은 감미롭고 조화롭지만, 전쟁이 시의 주제가 되면 그 시구(詩句)는 격력하고 진취적이다. 이 매체는 푸생이 말한 대로 ‘열정을 그리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베르길리우스의 시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관습에 의존하는 표현이다. 라틴어 운문이 지닌 이와 같은 잠재력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베르길리우스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구의 음성과 그가 전쟁을 다룰 때의 음성이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혹시 비평가가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픈 기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베르길리우스의 시구 두 편의 차이는 사랑과 전쟁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푸생이 느꼈던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가 말했던 그 ‘열정의 묘사’를 이해하는 데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347p]
- 그러나 변론가가 관찰하게 될 주된 구별은 실제로는 사회적인 구별, 즉 고귀한 것에서 천한 것까지의 음계 변화였다. 똑같은 의미라도 이러한 음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언어들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얼굴’이라고 할 수도 있고 ‘상판’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소녀’라고 할 수도 있고 ‘계집애’라고도 할 수 있다. 웅변에 관한 대화 중 알맞은 언어 선택에 대해 토론하면서, 키케로는 평범한 양식, 중간 양식, 그리고 화려한 양식의 세 가지로 웅변양식을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구분에 자상한 설명을 가해 주고 있다. “사내가 계집애를 만나다”는 비속한 문체이며, “청년이 처녀를 만나다”는 화려한 문체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에도, 고풍이고 구식인 용어가 일상용어보다 더 고상하게 들렸다. 역점을 두는 곳이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문체 연구가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흠정역성서(欽定譯聖書, Authorized Version-1611년 영국와 제임스 1세의 재가에 의해 편집된 영역 성서-역주)의 문체가 지니는 그 힘과 장중함에 경탄하기 전에,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 그 복음의 비천한 어투를 아르카이즘의 고상한 양식으로 변화시켜 주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만 한다. [348~349p]
- 언어에는 언제나 동일한 사회적 역사적 윤리적 척도로 다루고자 하는 유혹이 있어 왔는데, 예를 들면 고어(古語)는 숭고하고 절제력있는 것으로, 현대어는 비속하고 방종한 것으로 대별하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경향은 이따금씩 평범하고 비속한 문체를 좋은 것으로, 화려한 것을 과장되고, 거짓되고, 타락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에 의해 중화되곤 했다. [349p]
- 예술에서나 사회에서 좀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는 과다한 소심성과 과다한 순응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하여’ 보수주의자가 된 것이다. [353p]
- 앞에서 프로이트의 이름을 들었는데, 다음과 같은 훌륭한 이미지를 원용한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도 여기서 꼭 언급해 두고 싶다. “벌떼가 층을 이루며 서로 뒤엉켜 있을 때, 이 큰 무리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에 발을 붙이고 있는 벌이 극히 소수인 것처럼, 우리가 사고하고 있는 대상도 마찬가지다. 즉 그 대상들은 연상(連想)의 고리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전체의 ‘원초적인’ 출처는 가장 최오의 것이 한 번 소유했던 그 선천적인 관심인 것이다.”[354p]
- 18세기 사람이었던 게인즈버러는, 두뇌의 소산인 상상력의 언어에 관계하는 미술가로서 실제 광경을 그냥 모방하는 일은 아무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컨스터블도 그와 똑같은 어려움을 지각하고 있었으며, 그 어려움은 자기 저택의 모든 뚜렷한 특징들이 미술가의 화폭 위에 충실하게 기록되기를 바라는, 그 융통성 없는 후원자의 가혹한 요구 때문에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그에게 그 일은 어떤 모욕이 아니라 도전이었다. 위즈워스와 동시대 사람으로서 자연을 비할바 없이 사랑한 그는, 진실하면서 동시에 시정(詩情)이 풍부한 언어를 스스로 고안해냈다. 그것은 정확하기를 바라는 후원자의 요구와 시정에 대한 자신의 충동을 다 충족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언어였다.[358p]
-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얼굴 표정이나 말소리에 보이는 반응 못지않게, 빛이나 형태가 상호작용하는 자극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언제나 직접적이고 전체적이며 분석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직관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악구(樂句)의 의미나 음성의 억양을 이해하듯이,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단지 신비주의자나 비합리주의자가 이러한 직관이 언제나 이성보다 우월하며, 절대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거짓된 반응이 따로 있듯이, 표현의 오해라는 것도 있다. 합리적인 접근방법은, 하나의 미술작품이 그 양식과 상황의 틀 안에서 볼 때, 의미할 수 있는 한계가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잘못들을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오해의 영역을 좁혀 주고 나면 그것은 물러나야 한다. 왜냐하면 특수한 것은 어느 정도 풍성해지면, 스무고개 질문에서 만들어지는 그 일반적인 개념으로 짜인 엉성한 그물을 빠져 나가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물의 세계를 해쳐 나가기 위한 도구로서 창조된 우리의 언어는, 알다시피 내부세계를 분석하고 분류하고자 할 때는 정말 볼품 없고 쓸모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359p]
- 실제로 우리가 연필을 들고 그리기 시작하자마자, 이른바 감각적 인상을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따라 그린다는 생각 자체가 참으로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창문을 열고 바깥의 경치를 내다볼 때, 우리는 수만 가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 그 중 과연 어던 것이 진정한 감각적 인상이란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느 하나부터 그리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길 건너의 집과 그 앞에 나무가 있는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그림을 그리든지 간에, 우리는 ‘관습적인’ 선이나 형태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 속에 있는 ‘이집트인’은 억눌려 있을지는 모르나 쫓겨난 것은 결코 아니다.“[36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