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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Oct 13. 2016

진보의 미래

지은이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외 | 옮긴이 / 홍수원

진보의 미래
개발과 세계화, 생태환경, 그리고 세계의 미래
1판 1쇄 인새 2006년 6월 23일
1판 1쇄 발행 2006년 6월 30일
지은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반다나 시바 외
옮긴이 홍수원
펴낸이 조추자
펴낸곳 도서출판 두레(서울시 마포구 공덕1동 105-225)


- 예를 들면 순수한 경제적 평가로는 전통적인 자급자족 사회subsistence society를 빈국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로 본다. 이 때문에 부탄의 거의 모든 국민이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고, 정교하고 세련된 미술품과 음악을 즐기며, 또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보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유엔은 부탄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나라로 꼽는다. 현대 경제학에 비춰보면 통화가치로 계량되지 않는 이런 복리의 척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GDP와 1인당 국민소득이고, 그런 점에서 부탄 국민들은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홈리스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로 간주한다.[15~16p]


- 좀더 깊이 살펴보면, 현대적 개발 모델은 삶의 조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서양의 모델을 따르도록 압력을 가함으로써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런 사람들은 사실 서양 모델이 세워놓은 표준을 도저히 지킬 수 없다. 개발도상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눈동자가 푸르거나 금발일 리도 없고, 한 집에 자가용을 두 대씩 굴리면서 살 리도 없다.[20~21p]


- 개발에 대한 이 같은 1차원적 인식은 결국 여러 나라를 ‘앞선’ 쪽과 ‘뒤진’ 쪽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후진’이나 ‘저개발’이란 딱지는 한층 현대적이거나 선진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불러일으킨다. [27p]


- 남반구는 북반구 수출품에 대한 의존도가 이처럼 커지더라도 농산물 증산으로 얻는 부가 그런 의존성을 메우고도 남는다는 그럴듯한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러나 농업 기술자들이 활용하는 방식은 자연계의 복잡한 작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교배종에서 나온 새로운 품종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배된 특정 농작물의 다양한 품종과는 달리 생장 환경 속에서 점진적인 적응과 진화 과정을 거친 산물이 아니다. 이러한 품종은 기후와 해충이 끼치는 영향에 약하기 때문에 수확량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비료와 살충제 사용량을 늘려야 한다. 결국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번영이 보장되기는커녕 오히려 농토의 지력이 떨어지고 서양의 영농 기술에 계속 의존하며, 식량 공급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30~31p]


- 사람들이 공유지를 이용할 수 있는 관습적 권한은 사유재산에 관한 법규로 대체되었다. ‘개인 소유private'란 말의 어원을 따져보면 본래 라틴어로 ’빼앗다‘는 의미이다.[72p]


- 생물공학이란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면서 이 지구상의 풍성한 유전적 다양성은 식품과 의약, 섬유, 에너지 등 산업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원자재로 바뀌었다. 상업화 보존방식은 이제 보존의 값어치를 달러화로 계량하면서 현재 또는 장래의 수익성을 바탕으로 보존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보존활동은 생물 다양성이 그 자체로서 생태환경적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활동은 유전자 다양성을 없애버리는 생산과정의 확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생물 다양상의 보존을 ‘사용 중지’와 ‘보류’ 차원으로만 인식한다.[80p]


- 동물 생명권 보호 활동가인 조이스 드실바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의 윤리의식에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나는 생물공학 연구원들로부터 ‘유전자 변형 동물도 실용적인 살충제를 만들기 위한 생산 시스템으로 간주될 수 있다’거나 ‘새로운 동물이나 로봇이나 다 같이 인간 창의력의 소산인 만큼 로봇의 특허를 낼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동물에 대한 특허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데, 정말 걱정스럽다. 나는 그런 행위가 윤리의식에 크게 위배된다고 믿는다. 동물은 사람에게 쓸모가 있고 이득이 되느냐는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87p]


- 영국의 경우 1985~86년 사이에 아프리카가 전례 없이 광범한 지역에서 최악의 기근사태로 허덕이고 있을 때 오히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원조를 실제로 삭감했다. 존 매들리의 지적처럼 “터키와 멕시코처럼 형편이 좀 나은 나라에 대한 원조를 늘리기 위해서”였다(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형편이 좀 나아야 영국 제품을 사들일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96p]


- 종래의 개발(추진 방식)에 대한 비판 중 상당 부분이 심리적 측면은 대체로 간과한 채 문화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대화를 무리하게 떠맡긴 정치 및 경제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문화를 거부한 채 ‘아메리칸 드림’에 휩쓸린 젊은이들의 가슴에 멋져 보이는 서구의 갖가지 이미지가 크나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점을 부인한 사람은 없다. 람보와 바비 인형이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까지 파고들어 참담한 결과를 빚고 있는 것이다. [113~114p]


- 관광사업과 서방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서양 사람들이 모두 백만장자라는 환상을 심어준 것 외에도, 현대적인 생활에 대한 또 다른 신화를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다. 즉 우리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갖가지 기술이 우리 대신에 일을 하는 것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오늘날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일한다. 그러나 라다크 사람들에겐 그렇게 비치지 않는 모양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일이란 밭을 갈고 물건을 나르며 걸음을 옮기는 육체노동이다. 차량의 운전석에 앉아 있거나 타자기를 두드리는 사람의 동작은 일하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는 것이다. [117p]


- 오늘날 전세계 모든 지역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똑같은 전제와 유럽 중심의 동일한 모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초점은 머나먼 곳이나 오랜 옛날의 사실 또는 수치, 즉 ‘보편적인’ 지식에 맞춰진다. 교과서는 인류 전체에게 알맞을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특정한 생태환경이나 문화와는 동떨어진 지식만이 인류 전체에게 알맞은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배우는 그런 지식은 기본적으로 생활환경에서 유리된 인공적인 것이 된다. 이들 어린이가 고등교육까지 받게 되면 집을 짓는 법을 배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집도 세계 어디서에서나 볼 수 있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기 십상이다. 영농법을 공부할 경우에도 그 대상은 화학비료와 살충제, 덩치가 큰 농기계, 교배종 씨앗을 다루는 기업농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서양식 교육제도는 모든 인류를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활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 대신 똑같은 산업 자원을 활용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은 인위적인 결핍을 만들어내고 경쟁을 유발한다.[122~123p]


-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민요를 부를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영어 노래나 인도어 노래를 부를 때는 굉장한 관심을 기울인다.……그러나 요즘에 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끄러움 때문에 전통 의상을 입지 않는다.”[124p]


- 예를 들어 전통적인 마을에서 관개 수로를 손보는 일은 마을 전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수로가 터져 물이 새면 곧바로 사람들이 삽을 들고 몰려가 손을 보았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관개 수로 보수를 정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수로에서 물이 새더라도 정부가 보수할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둔다. 정부가 나서서 마을 일을 처리해주면 해줄수록 마을 사람들의 상조하는 마음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126p]


- 나는 지난 여러 해에 걸쳐 거세고 외향적인 라다크 여성들의 모습이 그와 다른 새로운 세대로 대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들 새로운 세대의 여성은 자신감이 없으면서 외양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 그 전에도 여성이 남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가 중요시되었지만, (외모보다는) 포용력과 사회성을 포함한 능력이 훨씬 큰 평가를 받았다.
남성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가족 및 지역 공동체와의 유대감이 깨진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남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식과 긴밀하게 접촉하지 못한다. 젊을 때는 강한 남성적 이미지 때문에 애정 표현을 하기 어렵고, 나이 들어서는 일에 파묻혀 가정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131p]


- 그러나 이제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연령별로 쪼개져 있다. 이런 식의 연령별 분류는 매우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학생들은 같은 연령별로 나눠 놓음으로써 서로 도움이나 배움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능력이나 기회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 대신 서로 경쟁을 벌일 조건이 자동적으로 조성된다.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 곁에 있는 학생만큼 잘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연령이 각기 다른 학생 10명이 한 그룹이 되는 경우가 12살짜리 10명이 한 그룹이 되는 경우보다 서로간의 협력이 훨씬 더 잘 이루어진다.
연령별대로 나누는 것이 학교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이제 어디에서나 또래끼리만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노년층과 젊은층이 서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에는 청소년들이 시골에 그대로 파묻혀 있는 조부모들과 만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132p]


- 담배나 화장품, 청량음료, 유아식, 패션 의상, 심지어 디스코 댄싱이나 모터사이클까지도 사회적 지위나 스타일과 연관된 것처럼 의미를 부여한다.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은 그렇지 않아도 월급봉투가 얇은 터에 별로 가치도 없는 이런 제품이나 활동에 적잖은 액수를 뜯기는 바람에 식품비와 건강한 여가활동에 들일 돈과 시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도 용돈을 과자나 청량음료를 사먹는 데 쓰는 것을 좋아하지, 건강에 도움이 되는 먹을거리에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한 많은 어머니들은 분유와 사회적 지위를 연관시킨 터무니 없는 선전 때문에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야말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뿐이다.
새로운 세대가 자라면서 익힌 사고방식은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움켜쥐는 것을 인생의 주된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웃이나 친구들보다 더 좋은 물건을 더 많이 지니고자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위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해로울 경우가 많은 이런 소비문화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이런 소비문화는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낳을 뿐만 아니라, 주택의 크기와 자가용의 메이커, 아내의 미모, 남편의 재력, 자녀의 학업능력 등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들 간의 경쟁심도 유발한다. [145p]


-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정보는 항상 선택된 소수의 특권이었다. 고대에는 문사와 성직자들이 정보를 통제했다. 이런 정보는 신화와 비밀에 휩싸여 있거나 아니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런 형태로 정보와 정보에 대한 접근 자체가 통제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정보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복종시키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정보의 흐름이나 운용 방식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훨씬 세련된 모습으로 잘 포장되었지만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고, 또 다국적기업들의 통제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전세계 신문에 실리는 국제 뉴스의 90% 이상이 UPI, AP, 로이터, AFP 등 서구의 4대 통신사가 제공하는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제 3세계 각국의 가정에서 시청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구미 지역에서 공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 정보는 매스미디어가 좌지우지하고 있다.[146p]


- 요즘에 생산되는 제품들은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고장이 나거나 제구실을 못한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런 제품으로 볼펜부터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승용차는 심지어 새로 샀을 때부터 고장이 나거나 녹이 슬기도 한다. 또한 폭력과 섹스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책과 영화, 만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156p]


-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젊은이들에게는 도회지에 미래가 있는 셈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공동체 생활과 단절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켄야의 처녀들이 농사꾼과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교육을 받는 켄야 남자와 결혼하다는 것은 곧 공동주택 생활과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을 받은 켄야 남자들은 영어를 구사하고 옷을 잘 입고, 또 하이힐을 신고 승용차를 운전할 줄 아는 여자와 결혼하고자 한다. 이들은 도시 출신처럼 현대적인 관습을 익히기 위해 전통적인 관습을 내버리고 있다. 이처럼 교육은 켄야 공동체 문화를 내버리는 과정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만들고 있다.[182p]


- 모든 도시와 도회지, 촌락이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결같이 모호한 익명성을 띠기 시작한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현대화된 도시의 특징으로 꼽히는 현상이다. 4차선 고속도로와 고층건물, 쇼핑 단지, 콘도, 영화관, 슈퍼마켓, 디스코장 등은 국제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특징으로서, 어느 도시도 고유한 특성이나 문화, 매력을 지니고 있지 못해 사람이 살기에 쓸쓸한 곳이 되고 말았다.
광고 활동은 이런 문화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말레이시아를 포함해)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에는 미국계 거대 광고회사들의 사무소가 있다. 원색의 화려한 대중잡지 지면이나 TV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광고 내용을 보면 특정 브랜드의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은 인생은 물론 여자를 아내나 애인으로 삼는 데도 번번이 성공한다. 특정한 향수를 사용하는 광고 속의 여성은 항상 사랑을 많이 받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텔레비전은 항상 가장 인기가 많은 여배우 차지가 된다. 사치스런 이미지로는 수영장과 골프장, 날씬한 승용차, 항공기, 아름답고 세련된 여성들이 활용된다. 마치 성공도 매력도 어지간한 수준의 인물이 특정 제품의 광고에 등장하면 그 제품의 품격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는 인상을 준다.
더욱 교묘한 것은 토착적인 방식을 버려야 한다면서 이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일까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제3세계 전역에서 전통문화는 부정적인 준거집단이 되었다. 즉 진취적이고 야심만만한 사람이라면 모두 그 연관성을 회피하고 부정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특히 학교에 다녀야 할 젊은 세대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전통사회로부터 완전히 유리되고 그로부터 멀어진 나머지 그 사회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학교제도는 사무원이나 엔지니어, 회계사 등 능률적인 부문에서 잘 일할 수 있도록 이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런 능률적인 영역에 바탕을 둔 채 성장했다. 성공 여부를 측정하는 잣대도 한 가지뿐이다. 옷이나 취향, 행태, 고용, 생활방식 등에서 ‘현대적’이면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인 것이다.
이런 지배적인 문화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수단 중 하나가 관광이다. 관광산업은 사람들이 말로만 듣거나 사진으로만 보던 멋진 생활의 온갖 이미지를 보여준다. 관광객의 돈 씀씀이와 생활방식, 그리고 그의 요구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갖가지 오락시설 등이 그런 이미지를 보여준다. 관광사업 자체에 이미 상당히 화려한 면모가 담겨 있다. 해변가의 거대한 호텔과 수영장, 카지노, 스키장, 요트, 억제할 길 없는 그밖의 온갖 재미 등이 그런 것이다.[184~185p]


- 제1세계에서는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과학 기술 때문에 이런 순서가 뒤바뀌었다. 즉 물질적 풍요 때문에 정치가 우선적인 구실을 하면서 인간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199p]


- 실업수당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아무리 열띤 관심을 보인다 할지라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의 ‘소비자 선택권’도 누리지 못한다. 가령 값비싼 발포성 광천수인 페리에Perrier 같은 것을 즐길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실직 위협이나 현실적인 실업 상태를 겪거나 보게 되면 주어진 취업 기회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고, 또 실직에 대한 불안 때문에 더 나은 근로조건을 요구하는 데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어느 지역사회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그 지역은 공해산업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주목을 받을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211p]


- 서릴 조사보고서는 현대 기업의 냉소적 태도만을 깊이 있게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폐기물 처리 업계가 서릴에게 요구한 것은 “한 지역사회를 착취에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하는 점이었다. 서릴이 ‘저소득’만을 꼽았다면 이런 진단은 그릇되고 불완전한 것이다. 미국에는 소득이 낮은데도 폐기물 처리장으로 선정되는 것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지역이 꽤 많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의 궤변은 바로 어느 지역사회를 무력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 유일하게 저소득만 꼽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역사회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 지역 주민들을 경제, 사회, 정치적인 면에서 소외시키고 무시함으로써 이들이 환경은 물론 그들의 건강과 자식들의 건강, 그들의 자부심과 지역사회까지도 착취하는 그런 체제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의미한다. 서릴이 ‘표적’으로 삼은 지역은 바로 이런 무력감과 소외감에 젖어 있는 곳이다. 이런 상태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빚어지는 결과로서 그 원인을 단순히 물질적 결핍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212p]


- 무력화란 단순히 투표권 행사나 민주적인 정부 구성을 거부당한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파워란 어떤 공동체가 자체의 일상생활과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이는 단순히 5년마다 한 번씩 투표를 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공동체 전체로서 자체의 경제, 사회, 정치 문제를 상당한 정도까지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진짜 파워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당 공동체로부터 그런 통제권을 사실상 회수해서, 공동체를 대표하지 않아 사회적 책무가 없거나 또는 그 공동체의 복리에 장기적인 관심이 없는 개인이나 조직에게 넘겨줄 때 이런 무력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 같은 파워 교체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낳기 마련이다. 이 공동체가 재편되면서 지난날 충성을 바쳤던 대상과 과거의 여러 가지 관계도 변화하게 된다. 사람들이 실제적인 힘을 갖거나 아니면 무력화되는 정도는 투표소가 아니라 이 같은 사회의 재편에 의해 좌우된다.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이런 무력화를 일으킨 가장 큰 단일 요인은 시장경제의 등장이었다. 지역 경제가 공식적인 경제로 대체되면서 과거 사회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던 경제활동은 통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상호 협력이나 의존이 아니라 임금과 현금이 생계 유지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과거에는 미묘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유대 때문에 전체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대립적이고 분열적인 성격이 강한 새로운 관계 형성으로 그런 유대가 약화되고 있다. 또한 모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토지와 물 같은 자원도 상품화함에 따라 이제는 인간관계가 아닌 시장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역 공동체는 자체의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 지역사회의 파워도 줄어들게 된다. 이들의 삶은 시장에 의존하게 되지만 이들은 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런 시장은 이들이 관여하지 않는 (관여할 수 없는) 쪽의 결정이나, 아니면 이들은 물론 경제 전문가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중략-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경제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많은 불만을 털어놓고 있지만 시장은 국가의 관여가 없이는 재구실을 할 수 없다. 시장경제의 모순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다. 사실 국가는 시장이 양산하는 ‘인간 쓰레기(무위도식자나 쓸모없는 사람)’를 수거하고 돌보는 구실을 하고 있다. 시장은 비참한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어 이제 선진공업국내 많은 도시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지만 이런 빈곤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바로 국가다. 이런 역할을 떠맡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의 무력화가 심화되면 관료기구에 대한 의존도도 커지게 된다. 이제 관료조직은 한정된 시간과 재원으로 수많은 요구를 감당해야 하는 만큼, 냉담하고 비인간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어 사람들을 ‘문젯거리’ 그 이상으로 대하지 못한다.[214~215p]


- 생태학은 자연계가 생존을 위해 모두가 서로 싸움을 벌이는 서로 다른 종의 단순한 집합(도시적 시각으로 풀이하는 이 세계의 모습이라 할까?)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가 저마다 이룬 공동체로 이 유기체 세상이 이루어져 있고, 온갖 종은 모두 서로 다르지만 없어서는 안 될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생태계는 일종의 만다라로서, 그 속에는 유익하면서도 강한 힘을 발휘하는 복합적 관계가 이루어진다. 만다라 속에 있는 개체 -조그만 쥐나 새-는 저마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채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생태계는 에너지의 순환이라는 측면과 전체적인 견지에서 보면 위계적인 시스템으로 비쳐지긴 하지만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는 대등하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상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자연계의 주된 활동은 에너지 주고받기, 즉 많은 생물체가 다른 생물체를 잡아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함을 의미하는 먹이사슬을 뜻한다. 우리의 신체-또는 그런 신체가 나타내는 에너지-는 이처럼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잔치 자리의 손님이면서 동시에 그런 손님이 먹어치울 음식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생물계는 거대한 제식, 즉 바침과 나눔의 의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호 연결성과 취약성, 피할 수 없는 비영구성, (그리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장대한 과정과 결국 공허함으로 남는 상황) 등은 연민과 동정심을 일깨우는 체험이라 할 수 있다. [221~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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