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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Oct 13. 2016

인간을 위한 디자인

지은이 / 빅터 파파넥 | 옮긴이 / 형용순, 조재경

인간을 위한 디자인(원제:Design for the Real World)
2009년 2월 25일 1판 1쇄 발행
지은이 빅터 파파넥
옮긴이 형용순·조재경
발행처 미진사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64-41 미진빌딩


- 방법Method
도구, 작업과정, 그리고 재료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재료를 정직하게 사용하는 것, 즉 그 재료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 않는 것이 훌륭한 방법이다. 최적의 재료와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즉, 가장 저렴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야 한다. 가짜 나뭇결이 칠해진 강철빔, 비싼 유리잔처럼 보이게 만든 플라스틱 병, 마티니 잔과 재떨이를 놓기 위해 20세기 주택의 거실로 들여 놓은 1967년 뉴잉글랜드의 구두 수선공 의자 복제품(‘벌레 먹은 구멍은 1달러 추가’) 이런 것들은 모두 재료와 도구, 그리고 작업과정을 오용한 예이다. 적절한 방법을 상용하려는 원칙은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도 자연스럽게 찾아볼 수 있다. 알렌산더 콜더Alexander Calder의 조각<말The Horse>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것이다. 콜더는 회양목이 그의 조각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색체와 질감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양목으로는 작은 크기의 폭이 좁은 판자만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나무로 중간 크기의 조각품을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린이들의 장난감 같은 방식으로 그 조각조각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말>은 방법에 의해 그 미적 측면이 크게 좌우된 조각인 것이다. 미술관 후원자의 요청으로 최종 완성품은 회양목과 비슷한 얇은 호두나무를 재료로 만들어졌다. [32~33p]


- 요구Need
최근 디자인은 우리의 덧없는 욕구와 욕망만을 만족시켜 주었을 뿐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경시해 왔다. 인간의 경제적, 심리적, 정신적, 사회적, 기술적, 그리고 지적인 요구는 대개 조심스럽게 가공되고 조장되어 일시적인 유행이나 패션에 의해 주입되는 ‘욕구want'보다 만족시키기가 더 어렵고 이익도 더 적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진지한 사고보다는 백일몽을 좋아하고 합리적인 것보다는 신비한 것을 추종하듯이 평범한 것보다는 꾸민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군중 속에서 즐거움을 추구하고, 사람이 적고 외진 길보다는 교통량이 많은 길을 선택하듯이 군중 혹은 붐비는 공간 속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다. 공백 공포Horror vacui는 바깥에서 느껴지는 것뿐만 아니라 안에서 느껴지는 공허 상태에 대한 공포이다.
사람들이 옷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요구는 단지 역할 연기를 해보는 것으로 전락하였다. 소비자들은 이제 인조가죽 부츠, 가짜 군복, 벌목꾼들의 셔츠, 각종 ‘생존 복장’, 그리고 데이비 크로켓Davy Crockett이나 미국 재향군인회 회원, 코사크의 헤트먼Hetman 또는 존 웨인의 복장으로 꾸미면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한다. 털파카나 사슴가죽 부츠는 분명히 이러한 연기를 위한 소도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기후 조절로 인해 이러한 것들이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육체적 건강함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매우 큰 디자인적 발전이 조깅 신발에서 이루어졌고(독일의 아디다서와 푸마에서 시작되었다), 운동선수용의 옷들이 향상되거나 새로 개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짜 운동복 패션은 사람들이 그들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열광하면서 이야기하듯이 급속도로 커져왔다.
20여 년 전 스코트페이퍼컴퍼니Scott Paper Company는 99센트짜리 일회용 종이옷을 처음 소개하였다. 1970년 나는 20달러에서 149달러 50센트에 이르는 종이 파티복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 역겨움을 느꼇다. 소비가 늘어나 50센터 이하로 더 가격이 떨어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사이에 종이옷의 기능적인 요구가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제 병원, 의원, 의사의 사무실에서 종이 가운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일회용 종이옷은 컴퓨터 조립이나 우주 비행 시설을 위한 청정실에 널리 쓰이고 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 변화는 결국 기술의 페물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전자공학적으로 발전된 전화기들의 급격한 확산은 지난 두해에 걸쳐 상황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뉴잉글랜드에 있는 통신 판매 회사에서는 1년에 4번 오로지 전화기들의 목록만 실려 있는 42쪽의 카탈로그를 보낸다. 여기에, 통화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에 반응해 자동으로 전화를 걸 수 있고, 자동 다이얼 장치가 내장된 전화기, 자동 응답 기능, 초소형 녹음기와 스피커폰, 즐겨 거는 전화번호를 72개까지 미리 저장해 전 세계 어디에서든 버튼을 누르거나 다이얼을 돌릴 필요도 없는 휴대용 컴퓨터, (연기 감지기와 연결되어) 당신이 집에 없을 때조차도 자동으로 지역 소방서에 전화를 거는 전화기 등등이 실려 있다. 그러나 시장의 경제는 여전히 ‘임대-사용’의 동적인 철학보다는 ‘구매-소유’의 정적인 철학에 맞물려 있으며, 가격 정책도 소비자 가격을 낮추지는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이 때마다 새로운 것으로 바꿀 만큼 충분한 기술적 발전을 보여준다면, (영국에서 그런 것처럼) 임대 계약이나 저렴한 가격들로 이러한 점을 반영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레샴의 디자인 법칙 Gresham's Law fo Design의 일종으로, 진정한 것의 중요한 가치가 거짓된 것의 날조된 가치에 의해 배격되고 있다.[40~41p]


-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어떤 사물이나 도구, 제작품을 단순히 옮기고,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국적인 장식물이나 예술품은 이런 방식으로 옮겨질 수 있으나, 이국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달리말하면, 낯선 문맥 속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문화가 진정으로 혼합될 때, 두 문화 모두가 풍부해지고 서로에게 유익함을 준다.
그러나 일상적인 물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나, 환경적 맥락 없이 문화가 다른 사회에서 잘 기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통적인 일본 가정의 바닥은 다다미라고 불리는 매트로 덮여 있다. 다다미는 한 개의 크기가 3x6피트로, 골풀로 짜인 덮개 내부에 볏짚이 서로 촘촘하게 엮여 있다. 긴 쪽에는 검정색 아마포 띠가 부착되어 있다. 다다미는 하나의 기본 단위를 제공하는 한편(일본에서는 6장, 8장, 혹은 12장 같은 식으로 집의 크기를 말한다.)기본적으로 소리를 흡수하고, 또 깔개의 표면을 통해 먼지 입자를 여과하고 짚단 내의 가장 깊은 곳에 그것을 쌓는, 바닥에 까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한다. 정기적으로 다다미는(그 속에 있는 먼지들과 함께) 치워지고 새것이 깔린다. 일본인은 양말처럼 생긴 다비를 발에 신는데(샌들처럼 생긴 바깥용 신발인 게다는 문간에 벗어 둔다) 이것 또한 이러한 시스템에 알맞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서구식 가죽 밑창을 지닌 구두나 뾰죽한 굽은 다다미의 표면을 상하게 하는 동시에 집안에 더 많은 먼지를 유입시킬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일반적인 신발의 사용이 증가하고 산업의 급격한 촉진으로 다다미의 사용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므로, 일본에서조차 쉽지 않은데,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데 터무니 없이 비싼 비용이 드는 미국에서는 다다미의 사용이 더더욱 불가능하다.-중략- 
다다미가 깔린 마루는 일본 주택의 전반적인 디자인 시스템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연약하고 매끄러운 종이 벽과 다다미는 악기의 디자인과 발달에 영향을 주었고 또 나아가 일본인의 언어, 시, 연극의 멜로디 구조에까지 영향을 끼친 명백하고 중요한 음향적 특성을 일본의 주택에 부여했다. 울림이 있게 방음된 서구식 가정과 음악회 홀을 위해 디자인된 피아노는 일본 가정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의 경쾌한 음향을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로 만들을 위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 사미센의 섬세한 음조는 미국 주택의 반향식 벽에서는 완벽하게 즐길 수가 없다. 이국적 취향을 위해 자신들의 생활 경험에다 일본식 인테리어를 접목시키려는 미국인들은 이러한 것들에서 디자인의 목적 지향적 요소를 제거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43~44p]


- ‘도시 재개발’과 ‘빈민 철거’ 계획은 고립된 빈민가를 획일적인 고층 건물들로 바꾸어 그 안에 강제로 살게 되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사회적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는다. 자살, 소외, 공격성, 강간, 살인, 마약 사용, 그 외의 다른 성적 일탈 행위들이 도시 재개발 계획에 뒤이어 일어나고 있다.[51p]


- 산업계는 새로운 것, 종전과 다른 것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과 인위적으로 가속화된 소비자의 변덕이 홉합되면서 스타일화와 폐물화라는 어두운 쌍둥이를 낳았다. 폐물화에는 세 가지의 종류가 있다. 즉, 기술적 폐물화(더 좋은 혹은 더 정밀한 제품이 발견되는 것), 재료적 폐물화(제품은 곧 낡게 되는 것), 그리고 인위적 폐물화(제품의 폐기율, 재료가 수준 이하여서 곧 낡아 없어지거나 중요한 부분을 대체하거나 수선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가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우리의 주된 계획은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 인위적인 폐물화였다(아이러니컬하게도 기술 혁신의 가속화로 종종 인위적 폐물화 또는 스타일의 폐물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제품을 폐기시키고 만다).
-중략-
기술적 폐물화는 비율과 규모 양쪽 모두에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가정용 컴퓨터, 텔레비전, 오디오 기기, 카메라, 그 외 다른 전자 장치들의 근본적 변화는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체에서 새로운 방향, 구매에 대한 커다란 저항이 대중의 한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자 기기를 사기 전에 한두 해를 더 기다리면, 두세 세대의 발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늘어난 생산량과 발전된 생산 기술이 소비자가를 낮추고 있기 때문에 더 싼 값으로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83년 영국산 단순한 가정용 컴퓨터 키보드는 50달러였고 휴대용 타자기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다. 비슷한 장치가 13년 전에는 거의 9000달러에 가까웠고 큰 방 하나를 차지할 만큼 컸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디자인 활동을 하는 사회적 환경 그 자체가 불황, 새 투자 규칙과 세법으로 인해 더욱 다극화됨으로써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났다. 중산층은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19세기 뉴잉글랜드의 오두막에 가둔 정신 나간 여자처럼 수겨 왔던) 절망적인 가난이 주요한 삶의 현실로 부상했다. 미시시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굶주리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도시의 빈민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시골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은 ‘예순 다섯 살이 되면 월 150달러의 연금으로 우아하게 은퇴 생활을’ 하려던 꿈은 사라지고 씁쓸한 감정으로 ‘좋았던 옛 시절’을 회복시키려는 편집광적인 꿈을 안은 채 플로리다, 택사스 남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카운티 등의 허울 좋은 휴양지들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간격은 무서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1960년 이래로 이 간격은 벌어져 왔고,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의 출산율은 낮아졌으나 그 나머지의 세계는 거의 광적인 인구 폭발을 경험하고 있다.[65~66p]


- 관람객 그리고/또는 소비자를 희생시켜 가며 자아중심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창조적 개인이라는 현상은 암세포처럼 미술계에서부터 비롯되어 대부분의 공예 부문을 침식했고, 결국에는 디자인 분야까지에도 퍼졌다. 이제 더 이상 화가들과 공예가뿐 아니라 극단적인 겨웅에는 디자이너들까지 소비자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대신에 많은 창조적 표현들이 더욱 더 고도로 개인주의화 되고 예술가가 자기 스스로에게 처방하는 자기치유적인 사소한 코멘트가 되어 버렸다. 일찍이 1920년대 중반 회화의 데 스테일 운동의 결과로서, 네덜란드의 리트벨트가 다지인한 의자, 테이블, 스툴 등이 시장에 등장했다.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진 이 사각형 추상 작품들은 사람이 앉기가 거의 불가능했으며, 아주 불편했다. 날카로운 모서리는 사람들의 옷을 찢기 일쑤였으며, 우스꽝스러운 전체적인 구조는 신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테오 판 두스부르호Theo van Doesburg의 2차원 회화를 ‘집 안의 가구’로 변형시키려 하는 오늘날의 잘못된 시도들과 비교할 수 있다. 이익을 남기려는 작은 산업체들이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이런 1920~1930년대의 왜곡된 의자들과 탁자들의 값비싼 모조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Intosh가 1902년에 디자인한 왕좌 같은 글래스고우 의자들(오렌지색 나무틀에 안감이 감싸여 있고 6.5피트짜리 사다리꼴 등받이가 달린)이 이탈리아에서 생산되었다. 스페인의 가우디나 프랑스의 르 코르비쥐에가 디자인한 기형적인 작품들도 이때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엘리트주의적 향수에 대한 열광은 고문대와 ‘오브제 미술’ 중간에 놓인 최신식의 값비싼 지위 상징물의 유행을 따르는 사람이 만든 일련의 불편한 의자 디자인에 의해 고조되었다. 그 의자들은 매우 고가인 반면 말할 수 없이 불편하였고, 그 운동은 단지 뉴욕, 밀라노, 파리의 작은 집단에만 영향을 미쳤다. -중략- 예술가, 공예가,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작업 과정들과 끝도 없이 많은 새로운 재료들로 인해 절대적인 선택의 공포를 경험하고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해졌고 모든 제한이 사라졌을때 디자인과 미술은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만이 유일한 기준이 될 때까지,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탐구로 쉽게 변질되고 말았다.[73~74p]


- 이것은 첼리니 대 자동터릿 선반에 대해 가치 평가를 해 보자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완벽함’이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조형 예술의 두 번째 목표인 ‘완벽함에의 추구’를 앗아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좋든 싫든 현재의 화가들은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인간은 기계가 인간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이 기계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제 풍경 속에서 풍경 그 자체보다도 인간이 만든 사물들이 더 많이 들어차 있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영국의 콘월에 살고 있는 풍경화가조차 암소보다 자동차를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따라서 어떤 화가는 기계를 하나의 위협으로 보고 또 어떤 화가는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또 다른 어떤 화가들은 기계를 하나의 구원으로 보기도 한다. 아무튼 이들 모두는 기계와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강구해 내야만 한다. 환경상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더 이상 개인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되어, 현대의 예술가들은 그들 스스로를 위한 심리적 도피 기제를 창조해 냈다. 불가피하게도 예술가들은 과학기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표면상으로 기계라는 위협을 없애 버리는 단순한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을 조롱해 버리는 것이다. -중략-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역시 재미있다. 1920년대 중반 네덜란드에서 기계로 이루어진 정밀성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피에트 몬드리안은 기계에 자신을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한두 가지 원색의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이 역동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좁고 검은 선으로 분할된 그의 흰 사각 캔버스는 마땅히 기계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스위스의 바젤에서는 현재 컴퓨터가 몬드리안 스타일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컴퓨터 대 몬드리안이라는 창조성의 문제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와병 중인 그를 방문했을 때, 그가 조용히 침상에 앉아 두 명의 시중드는 이들에게 그 선과 색 부분이 완벽한 균형을이루었다 여겨질 때까지 앞뒤로 움직이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약 그가 살아서 그래픽 판독 컴퓨터를 보았다면 그는 아주 즐겁고 새로운 장난감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의 미완성 백색 캔버스 위에 남아 있는 테이프의 흔적들에서 우리는 몬드리안 그 자신이 컴퓨터와 같은 행동 패턴을 좇았고 회화 과정 속으로 그가 불러온 창조성은 전적으로 미적인 결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몬드리안의 작품들은 오늘날 건물 외관, 크리넥스 포장지와 인쇄물의 레이어웃 등에 그 품격이 떨어진 채 응용되고 있다.
기계에 대처하는 세 번째 방법은 기계를 완전히 피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다다이즘의 비합리적인 면을 계승해, 반은 시궁창이고 반은 정원인, 무의식 또는 이드id라 알려진 세계에 뛰어들기를 시도했다. 잠재의식적인 상징들을 고도로 사실적인 그들 캔버스의 토대로 삼음으로써 자신들을 현대의 의사, 마술사, 안료의 샤먼으로 변화시키려 했다. 이러한 개념에서 생기는 문제점은 무의식에 모티프를 둔 그들의 감정이 개인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살바도르 달리는 불타는 기린을 그린 자신의 그림에서 관능적인 성적 세계를 체험했을지도 모르나(사실 그 그림은 회화로 표현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성적 자극이라 평가되고 있다), 모든 관람객들이 그와 같은 성적 경험을 느낄 수는 없다. 화사한 1890년대식 세일러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은 벌거벗은 12세 소녀가 빨갛게 불타는 스토브 파이프를 감각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 도로시아 타닝Dorothea Tanning의 그림 역시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 -중략-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많은 이론으로 그들의 작품을 무장했다. 이상한 것을 평범한 것으로 끌어내리고 평범한 것을 비범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그들의 시도는 빛을 잃어 가고 있다.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50번 스텐실 기법으로 찍어낸 것은 그녀가 여러 사람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동시에 대부분의 할리우드 섹스 심벌들에 가해지는 비난일 뿐 말년의 먼로에게 행해지는 비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의 감정을 만화 속의 에피소드로 끌어내리는 것은 그 캐리커처의 익명성 속에 우리의 진정한 감정을 은페하려는 시도이다. 마르셀 뒤샹은이런 얘기를 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50개의 캠벨 수프 캔을 갖고 그것들을 캔버스 위에 늘어놓았다면, 그 캔들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캔버스 위에 50개의 캠벨 수프 캔을 늘어놓고자 한 그의 의도이다.” -중략-
앞서 우리는 절대적인 선택의 공포에 고통을 당하는 예술가들에 관해 얘기했었다. 그러나 만약 예술가가 기계를 조롱하거나, 기계 그 자체가 되거나, 사이비 마술사로 변신하거나, 작은 상자에 소우주를 창조하거나, 일상적인 것을 진부한 상징으로 끌어올리거나 또는 무감각해진 중산층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데 흥미가 없다면 그의 선택의 영역은 갑자기 제한되고 만다. 이제 단 한 가지, 즉 우연만 남았다. 왜냐하면, 잘 프로그램화된 컴퓨터는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 디자인된 기계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수를 찬양하고 우연을 숭배하는 것보다 더 논리적인 것이 무엇인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취리히에서 있었던 다다 운동의 창시자 중 한사람인 장 아르프Jean Arp는 최초로 그러한 것을 시도했다. “형태란 우연의 법칙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중략- 1940년대와 1950년대 초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물감을 뿌리고 흘른 회화가 발표된 이후 다른 화가들이 그것을 실수, 우연, 그리고 무계회적인 것을 격찬한 것은 아마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그룹의 한 사람은 붓을 끈으로 왼팔뚝에 묶은 채 그림을 그리면서 “왼손으로는 그 능력을 다 퍼뜨릴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화가들은 캔버스 위에 나체의 모델들을 이러저리 구르게 한다든지, 채 마르지 않은 그림위를 모터사이클, 스쿠터, 롤러스케이트 등으로 지나간다든지, 혹은 눈신발을 신고 자신의 작품들을 밟든지 함으로써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이 행해지고 있다.
점점 우리들 중의 많은 수가(특히 젊은 층에서) 물질적 소유만을 축적하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이런 정서는 대개 우리가 기계 장치나 장식품, 사소한 제조품들이 범람하는 후기 산업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파생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을 낳기에 이르렀다. [77~83p]


- 우리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당신의 라디오가 낳을 결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라디오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롱아일랜드 시에 공장을 짓고 있고, 또 600명의 새 근로자를 고용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많은 주, 즉 조지아, 캔터키 앨라배마, 인디아나 등에서 근로자들이 이주해 왔음을 뜻합니다. 그들은 옛집을 팔고 여기에 새 주거지를 정할 것입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다니던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새 주거단지에는 새로운 슈퍼마켓, 약국, 그리고 기타 서비스 시설들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문을 열게 됩니다. 이제 그 라디오가 팔리지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년도 못 가서 우리는 그들을 해고해야 될 것입니다. 그들은주택과 자동차의 월부금을 못 내게 됩니다. 새로 문을 연 가게와 서비스 시설들도 점차 문을 닫게 됩니다. 그들의 집은 치명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팔아야만 하게 됩니다. 새 직장을 이곳에서 구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자녀들 또한 다른 곳으로 다시 전학을 가야 합니다. 회사의 주주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곳곳에서 마음 아픈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당신의 디자인에 실수가 있었던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당신의 진정한 책임감이 놓여 있는것입니다. 당신들은 학교에서 결코 이러한 사실들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편협하고 협소한 관점에 불과하다. 디자이너의 책임감은 이러한 관점들을 훨씬 더 뛰어넘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의 사회적, 도덕적 판단은 그가 디자인을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디자인 혹은 리디자인 하는 제품이 그의 관심과 일치하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사전에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디자인이 사회적으로 좋은 측면에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91~92p]


- 다년간의 경험상 나는 ‘임시 전문가들’이 결코 쓸모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외국인 전문가들이 개발도상국에 와서 새로운 문제들을 맞닥뜨릴 때, 자주 그들은 상식적이고 실현 가능해 보이는 답안들을 제공한다. 문제의 핵심은 그러한 그들의 능력은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금기, 경제적인 조건, 그리고 다른 많은 지역적인 고려에 익숙하지 않으면서 그들은 설득력 있어 보이는 답안을 전달한다. 하지만 3주 뒤 그들이 실버버드Silver Bird를 타고 제네바, 파리, 빈, 뉴욕에 있는 그들의 유엔 본부로 돌아갔을 때, 현지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들의 ‘해결책’이 20개 또는 30개의 새로운 문제들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다.[122p]


- 사람들이 고장 나기 전에 차를 바꾸고 최신 유행의 요구에 옷을 내다 버리고 최신식의 장비가 고안되어 나올 때마다 가전제품을 새로 장만하도록 광고와 선전을 통해 설득당하고 기만당할 때, 페물화된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가구, 자동차, 옷, 그리고 가전제품을 이렇게 쓰고 버리는 것은 곧 우리로 하여금 결혼관계(그리고 다른 인간관계들)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또한 전세계적 차원에서 국가와 작은 대륙 전체까지 크리넥스처럼 쓰고 버리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우리가 버린 것은 우리가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버려질 것을 디자인하고 계획할 때 우리는 디자인에 대한 배려를 불충분하게 하거나, 안전 문제를 고려하지 않거나, 노동자/사용자들의 소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125~126p]


- 오늘날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근교의 주택들은 보통 20~30년 담보를 잡히고 구입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 보통 가정이 56개월마다 이사를 하고 있으므로 그 주택들은 여러번 팔리고 또 팔리는 샘이 된다. 자동차들은 대부분 48~52개월 할부로 구입된다. 그 차들은 대개 계약 완료를 몇 개월 남겨두고 거래되고, 아직 부분적으로 지불이 끝나지 않은 차들도 거래는 가능하다. 고도의 이동성을 지닌 사회에서는 자동차, 주택, 대형 가전제품들의 소유 개념이 단지 하나의 허구로 되어 버렸다.[138p]


- 빵은 충분하되 이상이 결핍된 곳에서 빵은 이상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빵이 부족한 곳에서 이상은 곧 빵이다.(예브게니 에브투센코Yevgeny Yevtushenko,[조숙한 자서전Precocious Auyobiography]) [145p]
- 더 나은 타이피스트 의자를 디자인할 때 여직원들 스스로가 디자인 팀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보통 ‘평균적인’ 타이피스트들은 새로운 의자 위에 앉혀 놓고(단 5분 정도만 앉아 있게 한 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만약 그녀가 “글쎄요, 이 빨간 커버는 아주 다른데요”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이 곧 중요한 평가로 받아들여지고 대량생산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타이핑이란 [5분이 아닌]매일 8시간의 긴 노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 여성 직원들을 그 의자 위에 직접 앉혀 보고 테스트를 한다 해도 결국 그들이 직접 구매를 결정한다는 보장 또한 없는 것이다. 대개 그러한 결정은 고용주나 건축가, 또는 (놀랍게도) 실내장식가가 내리고 있다.[155p]


- 초음속 여객기는 비행을 지독히 두려워 하여 죽음 공포의 시간을 8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이고 싶은 줄이고 싶은 사람들에게나 매력적이다. 비행선이 더 안전하고 편안하며 동시에 생태학적으로 더 신뢰할 만한 대안이다.[190p]


-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을 여러 방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분석적 사고가 있을 수 있다(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곳 까지 운전해서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우리는 판단적 사고를 하기도 하며(이 세 스테이크 중에 어떤 게 가장 덜 익은 것일까?), 또한 기계적 사고도 한다(합금강을 담금질 할 때 온도를 어느 정도에 맞추고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두껍게 해야 하는 것일까?). -중략-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의적 사고방식이 있다. 이것은 세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천재적인 영감의 불꽃’이라 할 수 있는 갑자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통찰이 있다. 이런 것은 가끔 우리에게 눈부신 계시의 섬광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심리학자나 혁신가 자신들도 이 과정을 명확히 설명해낼 수 없다. [199~200p]


- 사실상 획일화는 전체 사회 구조를 한데 모아주게 하는 가치 있는 인간의 덕목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동에서의 획일화와 사상에서의 획일화를 혼동하는 가장 심각한 착오를 겪었다.
많은 심리학 실험은 ‘창의적 상상’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날 때부터 존재하지만 결국 한 개인이 6살에 이르면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교의 환경은 아이들의 마음에 거대한 장막을 쳐서, 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방해한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금지사항들 중 몇몇은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도덕주의자들은 우리에게 그러한 금지사항들이 아이들에게 양심을 심어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하고 있고,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초자아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할 것이며, 종교 지도자들은 이것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 혹은 영혼이라고 말할 것이다. -중략- 너무나도 많은 장애물들이 효과적인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 문제에 대한 잘못된 진술 또한 효과적인 해결 방법을 막는 것이다. ‘더 좋은 쥐덫을 만들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의 집으로 달려올 것이다’라는 격언은 이런 문제에 해당되는 한 사례이다. 여기에서 진짜 문제는 쥐를 잡는 것일까 아니면 몰아내는 것일까? 아마 도시가 해충들에 의해서 점령당한다면, 나는 분명 더 나은 쥐덫을 발명할 것이나, 결과적으로 나는 천만마리의 쥐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나의 문제해결 방식은 매우 혁신적일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진술은 처음부터 그 문제를 잘못 파악된 것이다.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생쥐와 시궁쥐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203~204p]


- 문제해결과정 [224~238p]


- 산업 디자인을 ‘종합 디자인total design'이란 관점에서 말할 때, 그것은 두 가지 다른 개념을 가리킨다. 첫 번째로 스팀다리미 하나를 디자인한다고 했을 때 로고 디자인, 제조업체의 마크, 다리미의 포장, 매장 전시, 제품의 상품화 전략 관리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종합 디자인‘은 공장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즉 스팀다리미 제조 공작기계, 안전장치, 공장내에서 이루어지는 작업과정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래의 ‘종합 디자인’은 다리미(그 공정과 판매 활동을 포함하여)를, 과거로 돌아가서는 달궈진 돌과 인두 다리미를, 미래로 가서는 다림질이 필요 없는 ‘퍼마 프레스perma-press'와 ’스테이 프레서stay press' 직물의 대량 도입 또는 급격한 변화에 따른 ‘다리미’의 최종적인 멸종단게까지를 그 범위로 한, 긴 생물형태적인 계통발생의 연쇄와 연결시켜 보는 것을 의미한다.[249p]


- 건물의 실내를 다시 페인트칠하려 할 때 우리는 페인트의 가격, 노동 비용, 최종적인 감각상각 등을 고려해야만 한다. 페인트는 벽에 처음 칠했을 때는 좋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지 않아지는 물질이다. 이 문제를 (빌 고든Bill Gordon과 함께) 명확히 해 보자. 처음 벽에 칠했을 때에는 좋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자기개선과 자기 유지를 해나가는 물질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해조류와 균류 사이에서 공생적인 성장 관계를 유지하는) 이끼는 자연적으로 ‘기분 좋은 장식 색채’이다(밝은 오렌지, 보라, 빨강, 엷은 회색, 담녹색 등 118가지의 색깔이 존재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우리는 원하는 색채의 이끼를 선택하고 (그것을 영양분과 함께) 벽에 분사한 뒤에 앉아서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 벽은 처음에는 분명히 얼룩져 엉망진창으로 보일 것이지만 이끼가 자라면서 점점 그 색이 퍼져 나올 것이다. 불행히도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이끼로 된 벽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곳에 응용될 수 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이끼는 1과 1/2인치의 높이로 자라며, 화씨 -30도나 146도 같은 극한의 온도 속에서도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이것들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끼를 잔디 대신에 뉴욕 고속도로의 중앙에 심는 것이다. 뉴욕 고속도로 당국이 잔디를 심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은 연간 2백 50만 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로 큰 절약이 될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색을 이용할 수 있다. 버크셔Berkshire 길에는 파랗게 심고 오하이오 길에는 붉게 심는 것이다.
이러한 이끼 벽 페인트는 마침내 응용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이끼 안료는 미술관의 벽을 덮는 훌륭한 재료가 되어 주었다. 못이 박힌 자국을 감추기 위해서 계속해서 페인트를 칠해야 했던 벽은 이제 ‘자체 치유self-healing'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서베를린, 암스테르담,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몇몇 다른 지역들에서 사용되고 있다.[259~260p]


- 1.동맥이 두 갈래의 동일한 가지로 갈라진다면, 이 가지들은 중심 줄기로부터 똑같은 각도로 갈라지게 된다.
2. 하나의 가지가 나머지 다른 가지들보다 작다면 중심가지, 혹은 원래의 동맥이 계속 연속되는 가지는 그 가장 작은 가지보다 나머지 가지들과 더 작은 각도를 이룬다.
3. 너무 얇아 중심 줄기를 약화시키지 못하거나 가늘게 하지 못하는 가지들은 70~90° 정도의 큰 각을 이루게 된다. 
런던의 수도 공급은 다음과 같은 법칙을 따라 설치되었고, 어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하지만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안정적인 시스템이다. 반대로 뉴욕의 수도 공급은 직각구조로 되어 있다. 도면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특히 공학자들에게) 더 비효율적으로 작동하며 소용돌이나 ‘마찰에 의한 손실’이 발생한다.[268~269p]


- 현대의 건축가는 기껏해야 각 요소를 조합하는 자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건축가들은 그의 서가에 대부분의 건자재와 건설 기기들이 모두 나열된 스위트 카탈로그Sweet's Catalogue(총 26권이며 빌딩의 구성 요소, 패널, 기계 장치 등을 수록하고 있다)를 구비하고 있다. 그 책의 도움을 받아 건축가는 대부분 산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스위트 카탈로그 내의 10,000개 아이템에 각 요소들을 끼워 맞춤으로써 ‘주택’, ‘학교’ 혹은 무엇이라고 불려도 상관없는 건축물을 조립하는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건축 사무소에서는 건축을 의뢰받은 건물의 경제적, 환경적 조건을 스위트 카탈로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컴퓨터에 집어넣어 그것으로 하여금 그 건물을 디자인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놀랍게도 몇몇 건축가들은 “컴퓨터는 뛰어난 일을 한다”고 말한다.[274p]


- 동물들 가운데서 인간이 환경과 맺는 관계는 독특하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겨울에는 더욱 외피가 두꺼워진다거나 50만년 주기로 완전히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식의) 자기조형적으로autoplastically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간다. 오직 인간만이 지구 자체를 그들의 요구와 욕구에 맞추어 이식조형적으로alloplastically 변형시킨다. 이제는 형태를 부여하고 재형성하는 작업이 디자이너의 책임이 되어 간다. 100년 전만 해도 새로운 의자, 마차, 주전자, 신발이 필요하면 소비자는 수공업자에게 찾아가 원하는 바를 설명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 물품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수많은 일상용품들이 소비자의 요구와는 전혀 무관하기도 한 실용성과 미적인 기준에 맞추어 대량생산된다. 그러므로 매디슨 애비뉴에서는 이러한 물건들을 탐나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277~278p]


- 모든 것에 있어 내용보다는 형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중략- 위에서 언급한 은색 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포장 안에 있는 그 펜의 소매가격은 기본적인 필기구의 거의 1,450배에 달하는 높은 가격이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값싼 펜을 이용 가능하며 위의 에는 단순한 ‘선택의 자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의 자유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선택이라는 것이 150달러와 39센트의 차이가 하찮은 사람에게만 열려 있기 때문이다.[279~281p]


- 우리는 선진국에서 높은 자살률, 반달리즘vandalism[문화나 예술을 파괴하려는 경향], 장기 결근, 사보타주, ‘불법’파업, 알코올 중독, 대중 스포츠 주변에서 벌어지는 무의미한 폭력, 개인 범죄, 아동 방치와 학대,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혼율과 비정상적인 성행위, 마약 중독, 자아정체성의 상실이 초래되고 결국에는 혼돈 상태에 빠져 살면서 우리는 풍요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우리가 ‘제품에 의한 오염’이라고 말할 때 그 순환 구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최소한 7가지 부분으로 구성된다.
1. 천연자원이 파괴된다. 게다가 이러한 자원들에는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2. 이런 자원들은 광산 채굴이나 노천 채굴 등을 통해 파괴되며 이 채굴 작업들은 오염을 야기한다(1번과 2번에 첫 번째 단계를 형성한다).
3. 제조과정 자체도 환경을 오염시킨다(두 번째 단계).
4. 제조과정에서 공장 근로자들은 소외와 공황을 겪게 된다.
5. 제품 포장(본질적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의 반복과 같다).
6. 제품 사용으로 환경오염이 야기되며 사용자 역시 소외와 공황을 겪게 된다(세 번째 단계).
7. 마지막으로 제품 폐기과정에서 영구적인 환경오염이 초래된다.(네 번째 단계).[311~312p]


- 재개발 이전의 빈민가는 그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의식과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것마저 완전히 파괴되었다.[334p]


- 이러한 규모의 문제는 다양한 문제점들이 있는, 거대한 교외주택지로 변모해가는 우리의 교외와 준교외에서 특히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공장들은 점점 대도시에서 이전되어 오고 있다. 값싼 노동력과 세금감면 때문에 공장들은 공업단지로 이주한 것이다. 점점 많은 공장들이 이러한 공업단지에 밀집되어가면서도 계획도, 이유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없이 건설된 서비스 산업, 상점, 주택 단지가 생겨났다. 교통망이 곧 이런 생산 단지와 도시를 연결시켜 주었고, 곧 도시 근교와 위성 공업단지 사이의 황무지에 소규모의 조립 공장, 정비 공장, 창고 등의 새로운 2차 단지가 생겨나게 된다. 합리적인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그 도시는 20~30배 사이로 불어나 버린 것이다.[339p]


- 포스트모더니즘은 65년 전의 괴이하고 퇴폐적인 스타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과거에는 명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던 현대 운동이 이제는 난잡하고 우연적이며 파편적인 것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파편화를 불러온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경제발전이다. 주택, 아파트, 관청, 숙박업소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소비재는 항상 새롭게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변화된 것이나 새롭게 변화된 것처럼 보이는 상품만 구매하거나 임대하려하기 때문이다. 광고 그리고 마케팅과 결탁한 기업들은 우리 소비자들에게 이러한 표피적인 변화들을 찾아내고 인식하게 하며, 또 그런 변화들을 기대하게 함으로서 결국에는 그 변화를 스스로 요구하게 한다. 진정한 변화(기본 변화)란 재정비retooling하고 재편성rebuilding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드는 비용은 엄청나게 크다. 반면에 (내부 또는 외부의) 외관에 다시 색상을 입히거나repaint 재배치rearrange하여 소비자들을 더욱 쉽게 조작할 수 있으며 비용도 줄일 수 있다.[359p]
- (도구와 틀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변화를 주지 않는) 작동 기관과 제품의 외관을 분리함으로써 더 심각한 전문화와 외양에만 치중하는 미학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외관skin' 디자이너들(디트로이트 스타일)은 ’내부구조guts' 디자이너들(공학자들과 연구자들)과의 타협을 모색하지 않는다. 형식과 기능이 인위적으로 분리된 것이다. 그러나 외양과 내부구조가 분리되어서는 생물이나 제품 그 어떤 것이라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다.[360~361p]


- 많은 대학과 디자인 학교에서 철학과 도덕 교육 역시 붕괴되고 있는 이유는 디자이너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넓고 수평적인 제너럴리스트와는 반대로 점점 학생들을 좁고 수직적인 스페셜리스트로 훈련시키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거의 모든 학교가 일반적인 통합과는 반대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필수과목, 공통과목, ‘선택’과목, 학과장과 교수들의 이해관계에 얽힌 기득권이 폭넓은 교육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학생들이 직업과 고용보장을 더욱 더 걱정하게 됨으로써 교육의 전문화는 1980년대 초반부터 점점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직업을 얻기 위해서 더욱 더 전문화된 교육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장기적으로는 틀린 것이다. 여러 산업체와 현직 디자이너들은 폭넓고 일반적인 배경과 지식을 가진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도로 전문화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보통 처음에는 직장을 쉽게 얻게 된다. 그러나 그 후로 5년에서 10년이 지나게 되면 디자인과 건축의 사회적 측면과 관련된 폭넓은 경험을 통합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승진하는 동안, 그 또는 그녀는 중도에 탈락할 것이다. 어떤 생물학적 종의 분화specialization는 항상 멸종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다면, 전문화specialization에 필사적인 대학의 행보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367~368p]


- 그 학생이 이제 예쁘고 섹시한 토스트 기계를 디자인하게 된다면 평생 수치스러워 할 것이다.……[392p]


- 기능과 사물의 외관에 대한 분열증적 몰두가 인류를 어디로 이끌었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창밖을 내다보거나 어떤 사람의 방 안을 훑어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게다가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지도 않다! [400p]


- 오늘날 산업 사이클에 있어서 대부분의 연구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는 것이 아닌, 이미 생산된 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선전하느냐에 치중되어 있다. 만약 모든 국가 산업이 정말로 필요한 것들만을 생산해 낸다면 미래의 전망은 훨씬 더 밝아지지 않겠는가.[407~4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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