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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Oct 13. 2016

예술과 문화

지은이 / 클레멘트 그린버그

예술과 문화/ 클레멘트 그린버그 지음/ 경성대학교 출판부


문화의 곤경
T.S엘리엇의 [문화의 정의를 위한 소고Notes Towards the Definition of Culture]에 대해 그린버그는 그를 비판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확한 쟁점을 정확한 시점에 제기했다고 평가.
이책의 본문 내용중
- 우리가 얼마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주장은 우리 자신의 시대가 몰락의 시대라는 것, 문화의 기준들이 50년 전보다 낮아졌다는것, 그리고 이러한 몰락의 증거들이 인간 활동의 모든 부문에서 보인다는 것이다.[36p]


- 압도적인 증거가 보여주는 것은, 지난 50여년간 과학과 학문, 치료술과 공학에서 일어난 문화적 쇠퇴의 정반대일 것이 확실하다. -중략- 그가 기준의 쇠퇴는 무관심적인 문화의 최고 수준들에서 일어났다는 말만을 했더라면, - 중략- 나는 그 어떤 향상도 문화의 최상 수준에서 일어난 악화를 보상할 수는 없다는 점에 우리 모두가 동의하리라고 확신한다.[37p]


- 마르크스는 -중략- 가장 선진화된 사회들에서조차도 낮았던 생산성이었다는 점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상가였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온종일 노동을 해야했고, 이는 그들 자신에게는 생필품을 공급하고 소수에게는 여가와 안락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러한 소수는 특정한 활동을 수행했으며 이러한 활동을 통해 문명에 특색이 부여되었다.[39p]


- 기술혁명의 효과가 일시적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기술의 진보는 누적되어서 마침내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점도 알게 된다.[39p]


- 이러한 사실은, 좀 더 낮고 대중적인 수준들에서 우리 문화가, 찾아볼 수 있는 과거에는 알려진 바 없는 상스러움과 그릇됨의 심연을 헤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도 있다. 로마에서도, 극동에서도, 또는 다른 어디에서도 일상생활이 지난 19세기와 이번 반 세기 동안의 서구에서처럼 그토록 빠르고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자 해온 것처럼 득이되는 결과들도 있었는데, 이러한 결과들도 그 규모 면에서는 적어도 똑같이 새로운 것으로 보인다. -중략- 그러나 앨리엇이 고급 문명의 필수조건이라고 여기는 첫 번째 조건, 즉 “사회 계급들의 존속”을 심각하게 의문시할 만큼 이 상황이 정말로 새로운 것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40p]


- 산업주의 아래에서는 앨리엇이 염두에 둔 것 같은 고급 문명, 지난 4천년 동안의 과거를 바탕으로 해서 알아낸 종류의 고급 문명이 살아남을 수가 없고 회복될 가망도 훨씬 더 적은 것이다. 하지만 만일 고급 문명 그 자체가 사라질 운명인 것은 아니라면, 산업주의에 의해 놓여진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유형의 고급 문명이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41p]


- 산업주의는 사회 복지를 증대시키지만, 바로 그만큼 전통적인 문화를 공격한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중략- 그러나 산업주의와 산업화는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이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은 인류에게 지금도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거의 우주적인 폭력을 쓰지 않고서는 어떤 식으로도 산업주의와 산업화의 추구로부터 등을 돌릴 수는 없다.[41p]


- 한편, 반대 입장의 해결책, 사회주의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인 해결책은 산업주의를 강화하고 확장시키는 것인데, 이는 산업주의가 종국에는 복지와 사회적 존엄을 보편화시킬 것이고 그때가 되면 문화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상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중략- 너무 먼 일이다.[42p]


- 여가의 질이 사회적․물질적 상황들에 의해 결정되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반면, 여가의 질이 훨신 더 큰 부분에서는 여가를 발생시키는 활동의 질에 의해 결정되다는 사실은 이해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말을 바꾸면, 여가는 노동과 상관을 맺고 있는 요소이자 노동으로부터 생겨나는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 그래서 노동 자체가 변하면 여가도 변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자유주의자들=문화적 자유주의는 자신의 양심과 생활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개인의 권리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성적인 자유, 종교적인 자유, 사상의 자유, 정부로부터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자유등이 예이다. 문화적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문학, 예술, 학문, 도박, 성, 성매매, 낙태, 피임, 술, 마약, 안락사 등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반대한다.의 오류)[42p]


- 산업주의 이전에 여가는 인생의 긍정적인 측면이자 인생 최고의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인 반면, 노동은 부정적인 측면을 이룬다는 느낌이 대부분이었다. -중략- 이와 동시에 노동은 지금처럼 시간이나 태도의 면에서, 여가와 아주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그래서 여가와 문화 자체의 일부 무관심적인 태도들은 노동 속에도 잔존하여 노동 강도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 -중략- 과거에는 노동이 지금보다 신경을-근육은 아니더라도-덜 소모 시켰다는 점이다. 노동하는 이들이 과거에는 더 비참한 삶을 영위했다면, 그것은 노동을 절약하는 장치들이 없어서라기보다 물질적 재화가 부족했기 때문이었고, 물질적 재화의 부족 자체는 노동자들이 충분할 만큼 열심히, 다시 말해 충분할 만큼 합리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42~43p]


- 지금처럼 그때도 부자들은 대부분 사욕을 챙기는 활동을 떠나 오락과 스포츠를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시간을 “죽이고” 있었거나 진정한 문화로부터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43p]


- 산업주의가 (개신교 신앙 및 합리주의와 더불어) 일상생활에서 일으킨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노동과 여가를 근본적으로 또 거의 절대적으로 분리시킨 일일 것이다. - 중략 - 즉 더욱 효율적인 것이 되어야 했다. -중략- 더욱이 효율성의 규칙 아래에서는, 진지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활동 일반이 노동과 비슷해져 가는 경향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로, 여가는 훨씬 더 수동적이기만 한 것으로, 즉 숨돌릴 틈이나 막간으로 축소되었고, 주변적인 것이 되었으며, 노동은 여가를 대신해서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중심적인 인생의 측면으로 들어섰다. 따라서 노동이 더 순전한 노동, 더 순전히 목적의식적인 활동이 됨에 따라, 여가도 더 순전한 여가, 즉 비활동 또는 목적없는 활동이 되었다.[44p]


- 부자들 자신도 더 이상 노동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중략- 이제는 위신이 점점 더 사회적 지위보다는 성취로 가고 있기 때문에, 부자 자신들도 구식의 태평스러운 여가는 빈둥거리는 것이라고, 즉 진지한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분개하기 시작한다.[44p]


- 이러한 조건들 아래에서 내가 문화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문화의 무게중심을 여가로부터 옮겨서 노동의 한 가운데에다가 놓는 것이다. -중략- 일정한 수준의 경제 발달에 이르지 못한 사회들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노동을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노동과 문화가 하나의 기능적 복합체 속에 녹아 있는 경향이 있다.[45p]


그의 한계
- 이러한 사색, 물론 도식적이고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색이상으로 나는 나아갈 수가 없다.[46p]


더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
- 대부분의 경우 순수주의는 미술의 운명에 대한 극도의 염력와 근심,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표명된 것이다.[325p]


Ⅰ.
- 유럽에서는 17세기까지 문학이 주도권을 잡았다. -중략- 당시 사회에서 가장 창조적인 계급으로 부상중이던 상업 부르주아 계급은 아마도 종교개혁의 도상파괴주의(장세니즘Jansenism=당시 인문주의화한 프랑스의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엄격한 윤리로 되돌아갈 것을 촉구하였고, 또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로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듯한 학설을 부르짖었다.에 근거하여 회화를 멸시한 파스칼Pascal은 한 징후이다)에 의해, 그리고 인쇄술의 발명 이 후 물리적 매체의 값이 전보다 싸지고 이동성이 좋아진 데 힘입어 그 대부분의 창조력과 성취력을 문학에 쏟았다.
그런데 하나의 예술에 지배적인 역할이 부여되는 일이 벌어지면, 그 예술은 모든 예술들의 원형이 된다. 즉 다른 예술들은 자체의 특성을 던져버리고 주도적인 예술의 효과를 모방하려고 하는 것이다.[326p]


- 그렇더라도 종속적인 예술들이 이런 식으로 잘못 다루어질 수 있는 경우란 오직 그 예술들이 자체의 매체들을 짐짓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된 기교를 성취했을 때뿐이다.[326~327p]


- 모든 강조점은 매체로부터 벗어나 주제로 옮겨진다.[327p]


- 우리들 자신 역시 오늘날에도 문학에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문학이 지배적인 예술의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올바로 평가할 수가 없다. -중략- 중국에서는 문화가 발전에가는 과정에서 회화와 조각이 지배적인 예술의 역할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328p]


Ⅱ.
- 낭만주의의 부흥 혹은 혁명은 당초 회화에 어느 정도 희망을 주는 듯했다. 그러나 낭만주의가 끝날 즈음 예술들 간의 혼란은 더욱 악화되었다. 낭만주의 예술론에 의하면 예술가는 어떤 감정을 느끼며 이 감정 자체 -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이나 사물이 아니라-를 청중에게 전달한다. 감정의 직접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매체의 역할을 그 전보다, 즉 예술이 의사소통이라기보다는 모방이었던 때보다도 훨씬 더 억눌러야만 했다. 매체는 예술가와 청중 사이에 놓인, 필수적이긴 하나 유감스러운 물리적 장애물이었으므로, 이상적인 단계에서라면 관람자나 독자의 경험이 예술가의 경험과 똑같아지도록 완전히 사라져버려야 할 것이었다.[329P]


- 예술들은 다양하게 발휘되는 개성의 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329p]


- 감상적인 문학적 회화가 최악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이미 18세기말의 회화, 특히 영국에서였는데, 이 부활은 최고의 영국 회화 가운데 몇 점을 생산하기도 했으나 퇴보의 과정을 부추기는 데에도 역시 효과적이었다. -중략- 19세기의 관제 회화가 되었다. 이전에도 아카데미는 있었으나 아카데미시즘이 나타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회원들은 어떤 면에서는 회화를 사상 최저의 수준으로 하락시켰다.[329~330p]


- 해로운 것은 사실적인 모방 그 자체가 아니라 감상적인 연설조 문학에 봉사하는 사실적 환영이다. -중략- 서양회화는 그것이 합리주의와 과학적인 사고에 근거한 도시 문화의 산물이었던 한, 매체를 제압함으로써 암시를 이룩하고자 했던 사실주의로 기우는 경향을 항상 지녀왔고, 지금도 대상의 외양을 감상하기보다는 대상의 실천적 의미를 이용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330p]


Ⅲ.
- 1848년에 이르면 낭만주의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 후 추진력은 -중략- 자본주의가 침범하지 못하는 예술의 성소, 즉 보헤미아로의 이주였다.[331p]


- 낭만주의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부정이기도 한 아방가르드는 예술의 자기보존 본능을 구현하게 된다. 아방가르드는 오직 예술의 가치들에만 관심을 가지며, 예술의 가치들에 대해서만 책임을 느낀다.[331P]


- 이것은 형식을 새롭게 또 훨씬 더 강조하는 것을 의미했고, 또한 예술들은 독립적인 직업, 규율, 기술로서, 절대적으로 자율적이며 그 자체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한갓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문학의 지배에 대항해 일어날 반란의 조짐이었다. 왜냐하면 문학은 가장 압도적인 주제였기 때문이다.[331p]


- 쿠르베라는 사람에게서 회화가 정신으로부터 물질로 돌아섰을 때 처음으로 문학과 결별했다. + 사진술, 산업혁명 [332p]
- 한편 쿠르베에 좀 더 가까운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 주제를 포함시킨 다음 그 즉시 주제를 근절시킴으로써 주제의 영역 안에서 주제를 공격하고 있었다. 소재에 대한 그의 뻔뻔 스럼 무관심[333p]


Ⅳ.
- 각각의 예술들에 공통적인 점 하나는 그것들이 관념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 가운데에서 환원될 수 없는 요소인 감각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매체의 표현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다.[333p]


- 그러나 음악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관심이 아방가르드를 이끌어 음악이란 효과의 한 종류라기보다는 예술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도록 햇을 때에야 비로소 아방가르드는 자신이 찾아헤매던 것을 얻었다. 그것은, 음악의 이점은 음악이 “추상” 예술, 즉 “순수한 형식”의 예술이라는 사실에 있다는 점이 발견되었을 때였다. 음악이 그와 같은 이유는 객관적으로 음악은 감각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전달할 수 없고, 또 이 감각은 그것이 의식으로 들어갈 때 경유하는 감각기관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감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335p]


- 예술들 사이에서 일어난 최근의 혼란은 음악이 직접적으로 감각적인 유일한 예술이라는 잘못된 생각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다른 예술들도 감각적일 수가 있다.[335p]


Ⅴ.
- 이제 예술들은 각각의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안전하게 놓여 있고 자유무역은 자급자족으로 대체되었다. 예술의 순수성은 그 특정 예술의 매체가 지닌 한계를 기꺼이 수용하는 데 있다. -중략- 동양미술, 원시미술, 아동미술을 예로 들어 순수성이라는 그들의 이상은 보편적이며 자연스럽고 객관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과연? [336p]


- 순수한 회화와 순수한 조각은 다른 무엇보다도 관람자에게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려 해야 한다.[337p]


- 말라르메 -중략- 그에 의하면 소리는 시의 보조물일 뿐, 그 자체는 시의 매체가 아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시가 눈으로 읽히지 낭송되지 않는다. -중략- 단어들을 논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의 매체는 연상을 불러일으키며 뜻을 암시하는 단어의 힘 속에 격리되어 있다. 시가 존재하는 곳은 더 이상 의미로서의 단어들 간의 관계 속이 아니라, 소리 그리고 의미의 역사 및 가능성들로 구성된 개성적 존재로서의 단어들 간의 관계 속이다.[337p]


- 독자의 정서는 마치 하나의 독특한 대상인 것처럼 보이는 시에서 나오는 것이지, 시 바깥에 있는 지시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338p]


- 그림이나 조각상은 -중략- 분간하거나 연관짓거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단지 감각으로 느껴야 할 것들이 있을 뿐이다.[338p]


- 원색, 즉 “본능적”이며 단순한 색채가 톤과 색조를 대신한다. 자연에는 윤곽을 결정짓는 선이 존재하지 않기에 회화에서 가장 추상적인 요소들 중의 하나가 되는 선은 유화에서 두 개의 다른 색채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색채가 된다. 캔버스의 직사각 형태의 영향을 받아 형태들은 기하학적으로 되어가는 - 그리고 단순화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왜냐하면 단순화 역시 매체에 본능적으로 적응해가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 면 자체가 점점더 얕아져서, 깊이의 효과를 내는 가상의 면들이 실제 캔버스의 표면인 진짜 물질 면 위에서 하나로 만날 때까지 평면화되고 한 데 압착된다는 사실이다.[339p]


Ⅵ.
- 나는 그것들이 단지 현재 가장 유효한 기준들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중략- 나는 여전히 렘브란트의 작품을 그것이 추상적인 가치를 획독해서가 아니라 그 표현적인 성질들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이다.[342p]


- 그 명령은 역사로부터, 즉 특정한 예술의 전통 안에서 도달된 특정한 계기와 연관된 시대로부터 비롯된다.[342p]


- 그러나 추상미술은 단순하게 회피한다고 해서, 혹은 부정한다고 해서 처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추상미술을 소화함으로써, 즉 그것을 뚫고 헤쳐나감으로써만 추상미술을 처분할 수 있다.[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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