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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Oct 13. 2016

허울뿐인 세계화

지은이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외 | 옮긴이 / 이민아

허울뿐인 세계화
2006년 12월 31일 7쇄 펴냄
글쓴이/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외
옮긴이/이민아
펴낸이/송대원
펴낸곳/도서출판 따님 (120-012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2가 99-13)


- 공장식 축산의 경우를 따져보자. 많은 동물이 폐쇄된 우리에 갇혀 사육될 때, 언제라도 악성 질병이 창궐할 수 있다. 이 경우 소규모 생산자보다 더 많은 통제 및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규모 생산자는 그들이 좀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드는, 똑같이 엄격한 (그리고 그들에게는 필요하지도 않은) 안전규칙을 따를 것을 강요당한다.
수송과 첨단기술 통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다국적기업이 소규모의 지역 경영자들을 무너뜨릴 수 있게 만든다. 상품의 대부분을 지역에서 사들이는 영국의 한 마을상점의 경우 위성, 대형 고속컴퓨터, 대규모 수송 인프라, 컨테이너선, 엄청난 보조금을 제공받는 항공기연료 등이 필요치 않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형 슈퍼마켓은 이러한 것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10~11p]


-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더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거주지 이동과 기술 재훈련 모두에 있어서- 처지에 놓여 있는 지금, 누구라 할 것 없이 자기의 직업이 이전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느낀다. 직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나 자녀, 혹은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인다. 전에는 노숙 및 절대빈곤 문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부유한 북쪽 국가-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등-에서조차 극단적인 사회적 박탈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 과정 속에서 생산이 제3세계와 동유럽의 저비용 지역들로 옮겨가고 있다. 이들 지역으로 거침없이 밀려든 투자의 물결은 금융혼란을 빚었고, 결국 멕시코와 극동, 중남미, 러시아에서 그랬듯이 경제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남쪽 국가들이 겪게 된 빈곤의 증가는 엄청나다. 농촌에서 내몰린 수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TV와 광고, 관광객이 한결같이 서구적 도시생활과 소비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몹시 민감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거부하도록 설득당하고 마는데, 특히 땅위에서 하는 일은 그 어떤 것이라도 무시된다-이제 이들에게 고기잡이와 농사는 원시적이고 더러운 일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지만 극소수만이 성공한다-그리고 그들은 대개 불안정한 서구시장을 위해 소비상품을 대량생산하는 노동착취 공장에서 일한다. [12~13p]


- "죄송합니다.…하지만 당신은 어느 별나라에서 오셨나요? 당신은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일처럼 말하고 있는데, 세계화는 선택이 아니에요. 현실, 현실이에요.… 내가 시작한 일도, 내가 멈출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물론 당신도요.“
-토마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21p]


- 지역의 작은 상점들은 수입의 매우 큰 부분을 지역경제에 재순환시키는 반면에 기업 체인점들은 단지 지역의 부를 빨아들여 본사 경영진의 손아귀에 쥐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돈은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밑받침하고 주주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 뿐, 그 원천인 지역경제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맥도널드 체인점의 수입 가운데 약 75퍼센트가 지역경제 바깥으로 유출된다는 것이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40p]


- 그러나 무엇이 작은 것이고 무엇인 지역적인 것인가? 그 정의가 자명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미국의 중소기업청이 보여주듯이 여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시골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두세 명으로 운영되는 작은 광고회사나 컴퓨터그래픽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일면 이 사업체들은 ‘작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네 개의 대륙에 걸쳐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면, 과연 얼마나 ‘지역적인’ 사업체라고 할 수 있는가? 다시 과일과 야채를 파는 자영상점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 또한 작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파는 물건이 수십개 나라의 산업화된 농장에서 생산되었고 대규모 도매상이 국제 수송망을 통해서 공급한 것이라면 이 상점은 정말로 ‘작은’ 것인가, 아니면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한 무역시스템의 작은 부품일 뿐인가? -중략- 이러한 사업의 한가지 주요 특징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아주 짧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지역적임’을 가늠하는 가장 실용적인 기준이다.[42~43p]


- 이 주장은 적어도 두가지 이유에서 잘못되었다. 첫째, 사용자 요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기껏해야 직접 비용뿐이다. 승용차나 트럭수송으로 야기되는 오염, 지구온난화에 따른 장기 비용, 석유 채굴과 경제 및 수송으로 인한 환경피해, 중동지역으로부터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군사지출 및 그밖의 많은 간접비용은 간단히 무시하고 있다. 
둘째, 좁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특정 인프라가 ‘스스로 비용을 치른다’는 사실이 곧 그것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사회가 한결 나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어떤 나라가 동네마다 국영 유곽과 마약판매점을 설치하기 위해서 200억달러를 지출한다면, 이 돈을 사용자 요금을 통해서 되찾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공공자금을 현명하게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논리적으로는 이것 또한 사용자 요금을 통해 비용을 충분히 걷어들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프라 투자를 정당화시키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한 사회의 미래 모습은 부분적으로는 오늘 어떤 종류의 인프라에 투자하는 가에 달려 있다. 꽤 많은 인프라가 수지를 맞출 수는 있겠지만, 시민은 자신들이 원하는 미래에 대해 먼저 결정해야 한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인프라 투자는 더 큰 규모,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더 깊고 더 큰 간격, 그리고 기업의 지배가 강화된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54~55p]


- "당신이 무언가 갖고 있다면, 화물자동차가 배달한 겁니다.“ ‘좋은 화물자동차 규약’을 지지하는 Tesco의 전단에서[57p]


- 1922년만 해도 미국에서 차를 소유한 인구는 10명당 1명뿐이었다. 전차 노선의 범위가 넓고 신뢰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도시 안에서는 싼값으로 어디나 오갈 수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동차의 절대적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때로는 한 도시의 노선 끝에서 다른 도시의 노선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속도는 비록 느렸지만 뉴욕에서 보스턴과 그밖의 도시들까지도 전차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전차체계는 장거리 여행이 아니라 지역내 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부터 제네럴 모터스(GM), 캘리포니아 스탠더드오일, 파이어스톤 타이어 등이 주도하는 자동차관련 기업협회가 이러한 전차노선을 사들여 계획적으로 파괴했다. 1946년에 이르러 이들 기업의 간판회사인 내셔널 시티라인은 80개가 넘는 도시의 대중교통체계를 장악했다. 그리고 이것들의 질을 저하시키는 행위가 계획적으로 자행되었다. 운행 횟수를 줄이다가 아예 중단시켰다. 선로는 제거되었고 전차는 불태워졌다. 그리고 많은 경우 GM버스로 대체되었다-이러한 변화를 ‘진보’로 묘사하는 조직적인 홍보활동과 함께. 대중교통은 점차 세계적으로 불충분한 것이 되어갔으며, 자동차는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 되었다.[63p]


- 현대의 통신네트워크는 ‘사람들을 한데 묶는’ 수단으로서 공공연히 조장되고 있다. 광고들은 전화 덕분에 우정을 돈독하게 유지할 수 있다거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어린이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대해서 배운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가장 중요한 효과라면 통신네트워크에 수십억달러의 엄청난 돈이 투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서 산업경제와 다국적기업 그리고 정부들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73p]


- 미국은 이주자들의 나라로 통일성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지역과 민족에 따라 취향이나 선호가 크게 달랐다. 하지만 광고가 이 다양한 취향을 균질화할 수 있는 수단을 기업들에게 제공했다. 이제 기업들은 욕망을 충족시켜줄 상품과 함께 욕망 자체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79p]


- 현대의 삶이 가져다준 서글픈 기적의 하나는 어린이와 십대 청소년, 성인을 가릴 것 없이 기업의 로고가 노골적으로 새겨진 옷을 입음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80p]


- 인터넷이 사람에 의해서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 운영되는 세계적 매체가 될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AT&T의 인터넷서비스 관리자가 지적하듯이, 머지않아 인터넷이 최고의 광고매체가 될지 모른다.[82p]


- 한국은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의 하나인데, 이미 11개가 가동되고 있고 9개가 건설중이다. 그러나 이처럼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95p]


- “우리의 학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생활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원자재를 틀잡아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제조명세는 20세기 문명의 요구에서 비롯하고, 학교가 하는 일은 학생을 정해진 명세에 맞추어 키우는 것이다.” E.P. 큐벌리. 1934
“미국 대기업들의 엄청난 부가 한 사회를 빈곤하고 겁먹고 시샘많고 무료하고 재능없고 불완전한 개체들의 집단으로 양성한 학교교육의 직접적인 결과임은 분명하다.
성공적인 대량생산 경제는 그같은 추종자들을 가져야만 한다.…암만파 신도들의 작은 상점-농장 경제는 지혜와 적성, 사려깊음과 자비심을 요구하고 우리의 경제는 잘 관리된 무리를 필요로 한다. 개성과 활기, 가족, 친구, 공동체, 신을 모르고 유순한 사람들, 말하자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가 논쟁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믿는 사람들이 가장 좋다.“ 존 테일러 가토, 1998[99p]


- 우선 무엇보다도 현대 교육체계는 모든 어린이가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닮은꼴이 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균질로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자립 문화들에서 항상 교육이 맡아온 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교육을 “새로 태어난 개인을 특정 인간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문화적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수렵채집 종족으로부터 현대의 도시인에게까지 똑같이 잘 적용될 수 있는 정의이다. 하지만 미드가 ‘특정’ 인간사회라고 한 점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는 저마다 고유한 환경과 자원 그리고 문화적 역사를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각 사회에 적합한 교육은 당연히 서로 다를 것이다. [101p]


- “내 학생들은 1마일이 실제로 얼만큼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문제가 시험에 나오면 맞출 수는 있을 겁니다. 비슷한 얘기지만, 그 아이들은 민주주의나 돈이 뭔지, 경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며 고장난 것을 고칠 줄도 모릅니다. 모가디슈나 사담 후세인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창 밖에 서 있는 나무의 이름이 뭔지는, 자신이 그것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모르는 아이들이죠.… 어떤 아이는 2차방적식을 풀 줄 알지만 옷에 단추를 달거나 달걀을 부칠 줄은 모릅니다. 사인펜으로 답안지의 동그라미를 칠할 줄은 알지만 담장을 쌓을 줄은 모릅니다.”[103p]


- 기업들의 딱지는 (대학)건물의 일부에 붙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메리카은행은 UC 버클리에 300만달러를 기부했고, 이로 인해 경영대학원의 새 학장 로라 단드레아 타이슨은 공식적으로 ‘아메리카은행 학장’으로 불리고 있다.
기업들의 영향력이 항상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교육체계에 바라는 것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고용주들이 가장 흔하게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기능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한다”는 영국의 한 대학졸업자 고용자격 시험은 “업무에 관한 지식”과 “개인의 일하는 방식” 그리고 “컴퓨터 기술”, 세가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기능들은 지역 특성 같은 것과 전혀 상관이 없고, 비판적 사고나 시민의 의무나 도덕적 분별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어떤 것도 포함하지 않는다.[108p]


-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오로지 거대한 세계화 경제의 환경에서만 실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공자금으로 이루어지는 연구가 낳는 기술의 주요 수혜자는 기업이다. 이러한 기술혁신으로 개인들이 조금의 이익이라도 얻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기업의 늘어나는 제품들의 소비자로 행세할 수 있을 때뿐이다. 과학기술 자체는 기업의 손아귀에 둥지를 틀고, 기업세계에 대한 다른 모든 것의 의존이 심화될수록 그 지배력을 키워간다.[124p]


- 고속철도는 현재 유럽의 나라들을 종횡으로 누비는 많은 열차노선과 달리 주요 대도시에만 멈춰선다. 고속철도가 멈추지 않는 작은 마을과 소도시들은 경제적으로 더 왜소해진다. 동시에 자원과 일자리 그리고 경제력은 도시화가 심화된 지역에 더 한층 집중된다.
계획되어 있는 다차선의 ‘출입 제한’ 고속도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고속도로의 출구가 만들어지지 않은 소도시나 마을은 상거래에서도 제외될 것이다. 새로운 개발은 고속도로 출구 주위에 집중되어 이루어질 것이며(유럽의 기존 고속도로에서 이미 나타난 현상이다), 이로써 이 고속도로의 편의를 제공받는 도시들도 도심지의 활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대규모 소매상-이들이 내세우는 낮은 가격은 부분적으로는 수송부문에 제공되는 보조금의 소산이다-은 더 먼 곳의 고객을 끌어들일 것이고, 자동차 의존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이로 인한 교통량의 증가는 새로운 도로의 건설 요구를 가져올 것이다.[135p]


- 유럽공동체위원회는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가 인프라를 새롭게 만든다는 목표 아래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내세워 이 엄청난 새로운 투자의 요구를 정당화시킨다. 이제 우리는 돌아서 제자리에 왔다. 미국 시민과 유럽 시민들 모두 인프라 개선비용의 지불을 요구받고 있는데, 주된 이유는 상대편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충분한 지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면, 유럽경제공동체가 “싱가포르와 대만, 중국의 일부지역, 아르헨티나 등 최신 기술들을 통합시킨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신흥 공업 세력들”의 위협도 다가오고 있다고 으르듯이 덧붙인다.[137p]


- 인프라 사업은 사회 전체로 볼 때 이롭고, 다만 운나쁜 몇몇만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주류를 이루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사업들은 인근 지역을 훨씬 넘어서 체계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업들은 경제 규모를 크게 팽창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지역사회와 지역경제를 서서히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가능해진 소비의 증가는 지구의 환경 부담을 가중시킨다.[139p]


- 주로 기업계 인물로 구성되는 비선출 ‘무역전문가’ 집단이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정부 결정에 대해 ‘무역장벽’이라는 판정을 내릴 경우 WTO는 그러한 정부 결정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때 노동자 대표나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혹은 지역주민이 그들의 의견을 제시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회의는 공개 되지 않으며 제출된 자료들 역시 비밀에 부쳐진다.[144p]


-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은 한국을 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르댔는데, ‘근검절약’ 운동을 한국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치성 소비를 제한하려는 노력이 수입상품 구매를 줄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무역장벽이라는 것이 미국과 유럽연합의 주장이었다. WTO는 또한 서구의 도시소비자 메시지를 담은 영화와 텔레비전방송 및 그밖의 미디어의 무차별 공격으로부터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려는 제3세계 정부들의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데도 이용될 것이다.[153p]


- “우리 대부분은 우두커니 앉아서 불필요한 ‘개발’과 우리가 원하지 않은 상품에 의해서 지구 생태계가 산산조각나는 것을, 생태계 종들이 유전자공학과 독물에 시달리고 삶터에서 쫓겨나는 것을, 전세계 문화집단의 대다수가 뿌리를 뽑히고 궁핍해지고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우리 대부분은 우두커니 앉아서 효과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새로운 규제를 꿈꾸기만 한다.” 피터 몬테규[157p]


- 현금 기부와 관련되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오늘날 크고 세계적인 기업들은 경제적으로 너무나 큰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정치지도자들은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 1997년 말 아시아 경제위기에 뒤이어 이 지역 국가지도자들은 이 교훈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그 한 예로 한국은 오랫동안 해외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에 대한 자국의 금융시장 개방을 거부했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닥치고, 경제붕괴를 모면하기 위해 수십억달러가 필요하게 되자, 한국은 으름장하기에 딱 알맞은 처지에 놓였다. 원화의 폭락 며칠만에 한국은 시티뱅크와 같은 다국적 은행들이 자국 은행들을 인수하는 데 동의했고, 뉴욕 라이프와 같은 거대 보험회사들이 국내 보험시장을 개발하도록 허용했다.[178p]


- 일반적으로 정책입안자들과 기업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낳는 문제들로부터 충분하게 차단되어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보호된 동네에는 대체로 범죄가 없고, 고용된 정원사들은 잘 자란 나무와 잡초 한포기 없는 잔디밭과 꽃이 만발한 화단이 언제나 ‘자연’을 대표하게 만든다. 이들이 자기 동네나 자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에 들어선 위험천만한 화학공장이나 핵시설과 싸워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특별한 소비생활이 만들어내는 온갖 쓰레기는 도시의 다른 곳이나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너무나 효율적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마치 그들의 동네에서는 재활용이 쓰레기 및 오염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들이 농약과 식품첨가물의 위협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더 비싼 유기식품을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 그러면서 보통시민이 값싼 유해식품을 사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소비자 선택의 풍부함’을 줄곧 찬양할 것이다.[182~183p]


- 경우에 따라서는 힘있는 엘리트들의 혜택받은 삶은 정말로 타인의 고통에 의존하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암과 관련하여 수십억달러 규모의 산업이 만들어졌고, 이로써 이 유행병의 첨단 치료방법을 탐구하는 이들을 위한 훌륭하고 수지맞는 시장이 탄생했다. 이러한 접근은 산업적 패러다임과 잘 들어맞지만, 반면 암의 환경적인 원인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그 때문에 전체 산업 체계가 의존하는 많은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과격하고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쯤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자금을 얻기 위해 고투를 벌여야만 하고, 흔히 그들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사라진다.[183p]


- 스미스의 『국부론 Wealth of Nations』은 산업시대 문턱에서 분업의 미덕을 칭송하면서, 생산단위가 크면 클수록 노동력은 더욱 전문화-따라서 더욱 효율적으로-될 수 있다고 단정했다. 큰 생산단위는 큰 시장을 필요로 했으므로 큰 시장 또한 증대된 효율과 같은 뜻이 되었다.
스미스의 이론들이 아무리 타당했더라도, 그것이 적용되는 규모가 오늘날처럼 커지면 무너지고 만다.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면 더 이상 ‘효율’은 보다 적은 노력으로 필요한 만큼의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필요가 거의 없어서 거대한 세뇌장치-광고산업-로 필요를 만들어내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자동화 기계로 대체하는 것을 뜻하게 된다. 스미스는 또한 의미있는 노동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는데, 흔히 이런 노동은 사람들에게 산업기계가 대량생산해내는 상품들만큼이나 중요하다. 또한 오늘날 전문화되고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반복되는 많은 일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노동을 제공하지 못한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효율’은 주로 인간의 노동을 절약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는 200년 후에는 생산과 소비를 끝없이 늘리기는커녕 줄여야 할 정도로 산업체계가 지구의 자원과 재생능력을 많이 소비했으리라고 내다보지는 못했다.[186~1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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