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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Oct 13. 2016

Art and fear

지은이 / 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

 Art and fear / 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 지음 / 루비박스

 
- 하지만 오늘날은 얘기가 다르다. 오늘날 자신이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는 거의 없다. 예술작품이 확고한 공통의 기반에서 나오지 않는 작금의 눈으로 볼 때, 동굴 벽의 들소는 그저 누군가의 마술일 뿐이다. 이 시대에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에 맞선다는 의미이다. 그 삶은 회의와 모순으로 점철되어있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뿐더러, 청중도 보상도 없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행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이러한 회의들을 제쳐두고 자신이 해놓은 것을 직시함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며,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품 그 자체 내에서 자양분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신앙의 세기도, 진리와 확실성의 세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14~15p]


-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은 불가피하게 상상했던 작품의 다른 가능성들이 사라져 버리는 상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작품은 항상 상상했던 것이나 상상할 수 있는 것, 아니면 상상하고자 했던 것에서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모순을 갖는다.[34~35p]


- 그렇기에 "그렇다면 왜 나는 잘 안 되는가?"라고 묻는다면, "예술창조는 힘든것이니까!"라고 밖에 대답해 줄 수 없다. 즉,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무엇을 하느냐이지, 그것이 어렵냐 쉽냐가 아니다.[50p]


- 재능은 유혹하는 덫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재능에 관해 실질적으로 던질 수 있는 문제는 이러하다. 즉 누가 신경을 쓰는가? 누가 알아줄 것인가? 그리고 재능이 있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으며, 그 어떤 차이도 없다.[50~51p]


- "양" 집단이 부지런히 작품들을 쌓아나가면서, 실수로부터 배워나가는 동안, "질" 집단은 가만히 앉아 어떻게 하면 완벽한 작품을 만들까하는 궁리만 하다가 종국에는 방대한 이론들과 점토 더미말고는 내보일 게 아무 것도 없게되고 만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완벽한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51~52p]


- 관중은 차후문제이다. 유일하고 순수한 의사소통은 창작자와 그의 작품사이에만 이루어지는 것이다.[79p]


- 놀랍게도 이에 대한 결론은 예술작품에서 받는 감동으로부터는 작품창작 방법에 대해 별로 배울것이 없다는 점이다. [84p]


- 오늘날의 예술문제는 광범한 대중에게서 떨어져 나와 오로지 예술가들의 관심으로만 남겨졌다. 예술가들은 빈번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탈선하여 예술 자체의 시간과 장소를 다루어 보겠다는 상당히 지적인 도전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시장 문밖을 나서기만 하면 사라져버리는 인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아트포럼>지의 독자 외에, 중성적인 생체표현주의 신건축운동을 생활에 구현하려는 노력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또 있을까?<뉴요커>지의 기자이자 작가인 아담 고프닉은 말한다. "포스트 모던 예술 post-modernist art은 무엇보다도 관중을 넘어선 예술 post-audience art로 특징지어진다."[87~88p]


- 실제로 오늘날 도시의 예술가들이 30미터 이내에 있는 코요테 늑대와 독일 셰퍼드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작품에 코요테를 아무 생각 없이 그려 넣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공통 전제는 시공간을 넘어 힘을 빌려올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구현한 의미와 참조한 의미는 서로 다르다. 누군가 말했듯이 그리스 어부의 모자는 그리스 어부 이외의 그 누구도 쓸 수 없는법이기 때문이다.[88~89p]


- 여기서의 교훈은 단순히 예술창작 그 자체보다 예술과 관련된 업무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 많은 경우 오늘 만든 예술작품이 내일이면 감상자에게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예술 교육과 투자, 평론, 출판, 전시, 공연 등을 위한 광범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102p]


- 대다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남들의 세계에서 보낸다. 이미 지정된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사전에 조작된 오락으로 휴식을 취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기성세계가아무리 친절하다고 해도, 무언가 모자라거나 옳지 못한 때가 언제나 있는 법이다.그래서 각자는 기존세계의 한 부분을 이루면서 어떤 새로운 부분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예술창조에 대한 평가 중 가장 놀라운 것 하나는,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예술가가 창조한 세계를 방문해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 중 일부 사람은 그 세계의 한 부분을 구입하여 가지고 가서 자신의 것으로 삼기조차 할 것이다. 새로운 예술작품 한 점 한 점은 우리의 현실을 풍요롭게 해준다. 세계는 아직도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107p]


- 즉 예술가와 작품, 예술가와 재료, 예술가와 주제의 관계 속에서 나온 작품은 진실하다는 점이다. 그 작품이 당대의 태도에 맞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런 작품은 세월이 지나도 계속 의미 있게 다가온다.[117p]


- 내 딸이 7살쯤이던 어느 날, 나에게 직장에서 무엇을 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친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딸에는 의심쩍은 눈길로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림 그리는 법도 잊어버리나요?"(하워드 이케모토)
[119p]


- 이렇듯 교육에 종사하는 예술가가 결국에는 점점 퇴락하여, 한때 예술창작을 한 적이 있는 선생이 되어버리고 마는 위험은 극히 실제적인 것이다(그 예도 수많이 들 수 있다). 개인전은 추억으로나 남게 되고 옛 작품들은 형식에 불과한 단체전 속에 나뒹굴다가 마침내는 통째로 사라져 버린다. 신진예술가들을 양산해내는 바로 그 제도가 예술가들을 사멸시키기도 하는 것이다.[123p]


-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졸업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들어가 죽음의 시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약 15년의 교육과정을 마친 후에 추가적으로 이루어지는 후자의 프로그램은 기껏해야 필요이상의 것으로, 실제로 학생들의 예술창장능력에 해가 된다. 제리 율스만은 졸업생들을 부추겨 예술을 하게 하는 것은 "정도이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복귀"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전체 시나리오는 학계가 언급을 피하는 비극이다. 그런데 아무리 비극이라도 교육체계의 실패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대신 교육제도는 안전하게 보존된 유리한 측면만 보며, 그저 학생들의 문제만 통탄한다. 엉터리 의사들은 언제나 환자 탓만을 하는 법이다. -중략- 통계적으로 볼 때, 교직을 목적으로 예술을 배운다면 아마 종국에는 영업직이 되고 말 것이다.그러므로 오직 예술창작을 배우기 위해 예술창작을 공부하라.[131~133p]


-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공예에 대한 정의와 동양의 예술에 대한 정의는 서로 가까이 있다. 동양문화에서는 선대 대가들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는 예술이 경의의 대상이 되는 반면, 서구에서 그것은 파생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부분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을 보면 예술에서 공예로 넘어가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상상이 실천으로 넘어 가듯, 예술가들은 초기에 중요한 발견들을 하며 그 이후에는 그 발견들을 완성하고 다듬는 데 일생을 바친다. 선교리에서 말하듯, 초심자에게는 길이 많지만 경험자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예술가라면 그 길의 어느 지점에서 공예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그 한계에까지 공예를 밀어붙여야 한다. 그 함정은 바로 완벽성이다. 작품이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다음 작품이 이전의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예술과 공예의 차이는 어떤 도구를 들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정신적 지침을 따르는가에 있다. 공예가에게는 공예기술 그자체가 존재이유이지만, 예술가에게 손재주는 자신의 비전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공예기술은 예술의 한 끝자락에 지나지 않는다.[146~147p]


- 과학자는 공중에 던져진 돌의 탄도를 설명할 방정식에 대해 질문하는 동안, 예술가는 돌을 던지는 느낌이 어떤지에 대해 묻는다.
더글라스 호프스타터의 말대로, "명심해야할 것은 과학이 사물현상을 개개의 경우가 아니라 묶어서 다룬다는 것이다." 예술은 정반대이다.[155p]


- 컴퓨터는 무용지물이다.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답뿐이니까.(파블로 피카소)

[167p]


-그림 그리기를 어떻게 배우는지를 보여주는 언어는 있을 수 있어도, 자신의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은 없다.[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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