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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Oct 13. 2016

핑퐁

지은이 / 박민규

핑퐁
초판 1쇄 발행 /2006년 9월 25일
초판 3쇄 발행 /2006년 10월 4일
지은이·일러스트 / 박민규
펴낸이 / 고세현
펴낸곳 / (주)창비 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13-11


- 아무렴 어떠냐는 것이다. 누가 따를 당해도, 누가 자살을 해도, 누가 살해되거나 누가 잠적을 해도 - 실은 그것이 인류의 반응이다. 60억이다. 인류라는 전체가 개인(個人)을 굽어보기에는 개인이란 개체가 너무나 많다. 비록 이상한 일이긴 해도 - 개인은 확실히 인류보다 많다. 다양하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은 그래서 분명 인류와는 전혀 다른 생물이다. 동떨어진 종(種)이다. 즉 누구도 자신의 일을 인류에게 통보하지 못한다. 할 수, 없다. 분홍색 국수 같은 게 항문을 자주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실은 그런 이유로 꼭지가 돈 인간에게-못이 박히듯 맞고 산다는 사실을. 실은 그런 이유로, 개인은 세계로부터 배제(排除)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외가 아니고 배제야 [58p]


- 왜냐하면, 이 세계를 손에 쥔 게 노인(老人)들이기 때문이야. 학생회장은 잠시 어라, 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런 얘긴... 이상하잖아. 게다가 세계의 주인은 시민(市民)이야. 시민단체가, 또 시민대표가 대부분의 사안을 결정해가고 있어. 이를테면 나 역시도 시민대표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 노인이라면 오히려 사회의 배려가 필요한 계층 아닐까? 산재한 노인문제를 생각해도 그렇고... 그런 얘기가 아냐.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세상의 돈을 노인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거야. 결국 세 명의 노인이 세계를 쥐고 있다는 얘기 몰라?[75~76p]


- 모아이의 집은 시의 외각에 있었다. 정말 멀었다. 시의 지도를 같은 크기의 세계지도와 겹친다면 북극, 정도와 일치할 것 같았다.[80p]


- 백만원을 손에 쥐면 백만원어치의 유전자가 업그레이드되는 게 아닐까. 인간이란, 의외로 그런 게 아닐까, 뒤척이는 중국인 여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계단을 내려왔다.[83p]


- 누구라도... 결국 인간을 기다리는 건 매수(買收)야. 
매수라니?
돈을 가진 노인들이지. 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도... 모두를 매수해나갈 뿐이야. 이 세계는 매수된 인간들로 가득 차 있어. 그들에게 매수된 인간들이 또 매수를 하고, 그 인간들이 다시 매수를 일삼는 거야. 심지어 이젠 노인들조차 자신이 도대체 누구까지 매수한 건지 파악을 할 수 없는 거지. 그건 클리어랜드의 디디티맨과 같은 거야. [87~88p]


- 눈물이 나왔는데, 어느정도 그냥 울어버렸다. 야야, 왜 그래? 치수가 면박을 주었지만 그 야야, 왜 그래를 가지고도 세 곡 이상의 발라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야, 못... 그러니까 따를 당하는 거야 이 바보야, 널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냐? 아, 아니. 말하자면 저건... 무슨 이미테이션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었어. 이미테이션? 그러니까 진짜 너는 어딘가 다른 곳에 살고, 눈앞의 이건 짝퉁이다... 뭐 그런 느낌이지. 예를 들어 어쩌다 동전이 여러개 생겨 심심풀이로 뒤집어보다가... 그런 거 있잖아, 믿기지 않을 만큼 오랜 1977 같은 숫자가 찍힌 거... 그런가 하면 정말 눈부신 바로 올해의 연도가 찍힌 것도 있다는 얘기야, 그런데 너는 봐도 아무 느낌이 없는 연도, 말하자면 2003이라든지...[102p]


- 저는 전철을 탑니다. 보호받는 그 느낌이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133p]


- 조건반사만으로도 탁구를 치는 건 가능하단다. 조건반사만으로도 삶을 사는 일이 가능하듯이. 그래서 실은 비둘기도 탁구를 칠 수 있는 거란다.[150p]


- 아, 이젠 못당하겠구나. 먹고살고자 하는 이 조건반사를... 내가 당해내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 비둘기는 어떻게 되었나요? 어떻게 되긴,
그렇게 살다 죽었지.[151p]


- 자, 미안하지만 세상은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습니다요. 세상이 왜, 어쨋다는 것지? 저걸봐. 돌을 갈아 사냥이나 하던 우리가 어떤 세계를 만들었는지. 도로를 만들고, 구역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설계와 건축을, 응? 항만항공을 건설하고, 체계적인 무역을 하고, 에애 에애애에. 법률과 조례... 응? 국제법을 만들고, 자동차와 저 건물들을 봐, 저속에 전부 전기와 인터넷이 공급되고 상수도와 하수도가 연결되어 있어. 저 바보들이 도시의 지하는 어떤 걸까, 상상이나 한 적이 있겠냐구? 흥, 투시도를 본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을걸? 이게 전부가 아니잖아. 공항과 공항사이를, 나라와 나라를, 대륙과 대륙 사이를 매일매일 응? 에애 에애애에. 그런데, 지금 듣고 있습니까? 
지구라는 곳이 말이에요. 응? 세균이 참 번식하기 좋은 곳입니다요. 알지? 그 정도는 배웠을 테고, 바이러스는... 운석에도 막 묻어들어오고 그래요, 중력., 또 중력하고도 인간은 얼마나 싸워왔냐고. 추락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 지구란 말씀이야. 에애 에애애에. 응? 암과 AIDS, 뭐 위염이나 궤양, 설사, 장염, 고혈압, 동맥경화, 응? 뭐야... 또 저혈당, 뇌졸중, 결핵, 후두염, 에애 에애애에. 천식,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하여간에 많습니다. 또 뭐? 파라티푸스, 디프테리아, 폴리오, 홍역, 풍진, 간염, 파상풍, 말라리아, 인풀루엔자, 비브리오 패혈증, 공수병, 레지오넬라, 랩토스피라, 쯔쯔가무시... 에애에에 애 에애애에에애. 예? 그러니까 금속 알러지도 있고 한 것들이... 평균수명 칠팔십세까지... 예? 뭐 실례지만,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의학과 약학의 종사자들이 지금도 ... 에애 에애애에. 하물며 피를, 서로 피를 나눠가며 서로의 삶을 보존해주고 있습니다요. 민간인들조차도, 그런 인류의 힘을 터득하고 있다는 말씀. 말하자면 에애 에애애에. 
인더스트리얼, 인더스트리얼 아냐? 아시냐구요. 산업이 그냥 발전한게 아니잖아. 말하자면 동력도 운송수단도 모두 그냥 얻어낸 게 아니라는 거야. 봐, 작은 바퀴하나에서 응? 어떤 결과들을 도출했는지, 넌 식기세척기가... 실은 얼마나 복잡한 작동원리를 가진 건지 아십니까? 예? 에애 에애애에. 산업과 기업이 없었다면 인구의 절반은 굶어 죽었을걸. 아마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나머지가 무사해? 어림없지, 어림없이, 어림없습니다. [161~163p]


- 어쩌라는 걸까? 그리고 그 사이는 전부 빈 공간이 아닐까. 라는 게 내 생각이야. 즉 너와 나 같은 인간들은 그냥 빈 공간이란 얘기지. 그렇지 않을까? 즉, 보이지 않는 거야. 멀리서 보면 그저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렇게 존재해. 그럼 우린 뭘까? 보이지도 않고, 아무 존재감 없이 학살이나 당하고... 영문도 모른 채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고... 뭐 그래서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도 200km는 떨어져 있는 탁구공과 같은 게 아닐까? 또 그 사이는 역시나 비어 있는 게 아닐까? 왜일까... 말하자면, 어쩌라는 걸까? 그런 공간, 즉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인데, 왜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 걸까? 이토록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주의 대부분인 빈 공간들이.. 어떤 노력을 한다고는 볼 수 없잖아. 그런데도 이것은 우연일까? 이곳에 존재하고, 서로를 견제하고,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고, 자원을 이용하고, 구분하고, 차별하고, 우월해지고, 뺏고, 차지하고, 죽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살기 위해서? 이렇게 빈 공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저 어둠처럼 왜 우리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을까?[171~172p]


- 못, 그래서 묻겠는데 우린 왜 탁구를 치는 걸까? 생각할수록 그것은 우연이고, 생각할수록 그건 고안된 일이었어. 여기 이곳엔 왜 탁구대가 놓여 있을까? 왜 세상엔 탁구대를 제조하는 회사가, 라켓과 공을 언제든 고르고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는 걸까? 우리에겐 왜 그걸 살 수 있는 돈이 있을까? 탁구는 왜 그렇게 오랜 룰을 지니고 있는 걸까? 우린 왜 팔다리가 있을까? 우린 왜 라켓을 쥘 수 있는 손이 있을까? 우린 왜... 인간일까?[172p]


- 하지만 그에겐 시간이 부족했지. 이유는 생활, 바로 생활 때문이었어. 마침 이웃의 월터씨가 지붕손질을 부탁하기도 했고, 비서실의 마거릿이 함께 술 한잔 하는건 어떠냐고 전화로 물어왔기 때문이야. 게다가 일요일엔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대규모 예배가 있었지. 예배를 마치고 나니 또 어지간히 피곤이 몰려왔어. 부족한 잠을 자느라 또 지구에 대해선 까마득히 잊어버렸지. 다시 한주가 시작되었어. 쉴새없는 출근과 업무와 볼링이 여지없이 시작되었지. [175~176p]


- 우주의 대부분은 빈 공간, 인간과 인간의 사이도 대부분은 빈 공간이야.[179p]


- 인간의 해악(害惡)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행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 있을까? 학살을 자행한 것은 수천볼트의 괴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 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요는 인간에게 그 배치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이기(利己)가 있다는 거야.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한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感電死)할 수 있는 거니까. [180~181p]


- 그만 까, 죽겠다,라고 침을 뱉듯 종모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왜, 죽이지 않는 걸까? 저런 생각까지 할 수 있게끔, 왜 만들어놨을까. 아예 죽이게끔 만들어 놓든가... 안그러냐고, 나는 뇌만을 사용해 중얼거렸다. 분하지도, 억울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나는 안타까웠다. 신은, 팔십밖에 못 달리는 오토바이를 만들었어야 했다. 위스콘신에도 휴스턴에도 없는, 신은.[183p]


- 나는
가만히 있었다 [p189]


- 너와 나는 세계가<깜박>한 인간들이야.[219p]


- 그럼 인간은 오로지 우리 둘만 남는 거군요. 넌 인간이 뭐라고 생각하니? 어떤 의미에선 그렇지만...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어. 너희 각자의 몸속엔 세포수보다 많은 미생물이 공존하고 있으니까. 그들은 인간이 아닐까? 아님 그들을<깜박>한건 아닐까? [2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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