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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Oct 13. 2016

타인의 고통

지은이 / 수전 손택 | 옮긴이 / 이재원

타인의 고통
지은이 : 수전 손택
옮긴이 : 이재원
펴낸이 : 이명희
펴낸곳 : 도서출판 이후
편집 : 김은주, 신원제
첫 번째 찍은 날 : 2004년 1월 7일
다섯 번째 찍은 날 : 2009년 9월 7일
주소 : 121-754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65-8 엘지팰리스 827호


- 2001년 9월 11일 세계 무역센터가 공격당했을 때 그 건물에서 간신히 피해 나왔던 사람들이나 근처에서 그 장면을 그대로 봤던 사람들은 처음 그 공습을 설명하면서 “믿을 수 없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영화 같다”라고 말했다(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할리우드 재앙 영화가 만들어진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결국 어떤 재앙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자신이 짧은 시간 동안 겪었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재앙을 “마치 꿈처럼 느껴져요”라는 말 대신에 “마치 영화처럼 느껴져요”라는 말로 표현하는 상황이 닥쳤다).[43p]


- 쉴새없이 밀려드는 (텔레비전, 스트리밍 비디오, 영화의) 이미지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진이 가장 자극적이다.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것의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 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사진은 인용문, 그도 아니면 격언이나 속담 같은 것이다. [44p]


- 그렇지만 상업적 가치가 득세해 문화가 급격히 개조되어 버린 상황에서 이미지는 신경을 거슬리고, 소란을 불러 일으켜야 하며,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것 자체는 훌륭한 상업적 감각일 뿐만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요청이었다. 그밖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생산물이나 예술에 주목하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쉴새없이 이미지가 자신을 드러내는 상황, 한줌의 이미지들이 반복해서 과잉 노출하는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겠는가? 충격적인 이미지와 판에 박힌 이미지는 동일한 존재의 두 가지 측면이다.[45p]


- 카메라가 발명된 1839년 이래로, 사진은 죽음을 길동무로 삼아 왔다. 카메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말 그대로 렌즈 앞에 놓인 그 무엇인가의 흔적이었기 때문에, 사진은 사라져 간 과거와 떠나 간 사람을 추억케 해주는 데 있어서 그 어떤 그림보다도 탁월했다. -중략- 사진 촬형은 소름끼치기 이를 데 없는 몰살 장면을 설명해 주는 그 어떤 말보다 훨씬 뛰어난 신속성과 권위를 얻게 됐다.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을 그저 기록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뚜렷이 보여주는 사진의 힘이 갖가지 복잡한 이야기들을 물리친 해를 하나 꼽으라면 4월과 5월 초에 해방된 처음 며칠 동안 베르겐-벨젠, 부쉔발트, 다카우의 강제수용소를 사진에 담은 1945년이 바로 그 해가 될 것이다.[46p]


- 사진에는 두 가지 모순된 특징을 하나로 묶어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진은 애초부터 객관적이라는 공인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사진은 언제나 특정한 시점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카메라가 기록을 하는 기계였기 때문에, 사진은 현실의 기록이었다(제 아무리 부분적일지라도, 말로 된 설명과는 달리 이 점에는 논박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사진은 현실을 증명해 준다. 사진에 찍힌 누군가는 틀림없이 그곳에 존재했던 인물인 것이다.[48p]
- 사진은 전문적인 훈련이나 수년 동안의 경험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전혀 훈련받지 않고 경험 없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점, 즉 아마추어들로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이점을 갖게 되는 건 아닌 유일한 주류 예술이다. 그 이유는 다양한데, 특히 우연(그도 아니면 운)이 사진 촬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무의식적이고 거칠며 불완전한 것[사진]을 둘러싼 세간의 선입견도 이에 일조한다(전혀 우연이나 운에 기대지 않을뿐더러 언어의 조탁이 특별히 불리한 점으로 작용하지 않는 문학, 철저한 훈련과 일상적인 연습 없이 진정한 성취를 이룰 수 없는 공연 예술, 그도 아니면 동시대의 상당수 예술사진을 둘러싼 반 예술적 편견이 뭔가 주목할 만한 영향을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영화 같은 분야에서는 이에 필적할 만한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사진이 소박한 대상으로 이해되든지 경험이 풍부한 숙련자의 작품으로 이해되든지 간에, 사진의 의미(그리고 관람자의 반응)는 그 사진이 얼마나 공명을 불러일으키느냐에 달려 있다. 즉, [그 사진을 설명해 주는] 단어에 달려 있다. 주최자의 아이디어, 주최 시기와 장소, 헌신적인 대중들이 이 전시회를 뭔가 특별한 일로 만든 것이다.<여기가 뉴욕이다>를 관람하려고 2001년 가을 내내 매일처럼 프린스 가에 몇 시간이고 줄을 선 채 엄숙함에 젖어 있던 일군의 뉴욕커들에게는 사진 설명이 결코 필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빌딩이면 빌딩, 거리면 거리 모두 다 말이다. 화재, 파편, 공포, 피로, 슬픔 모두 다. 그렇지만 물론 언젠가는 사진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둘러싼 그릇된 이해, 그릇된 기억, 이데올로기적 용도가 장차 뭔가 새로운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흔히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둘 경우, 사진이 ‘말해주는 것’은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사진이 말해 줘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을 읽게 된다. 김이 나는 수프 접시, 관에 뉘인 여성, 장난감 곰을 갖고 노는 어린아이, 그리고 관람객들처럼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쇼트를 먼 거리에서 찍은 몹시 무표정한 배우의 얼굴과 맞대어 놓을 경우(최초의 영화 이론가인 레프 쿨레쇼프가 1920년대 당시 모스크바에 있던 자신의 작업장에서 훌륭하게 보여준 바 있듯이), 우리는 그 배우의 얼굴이 자아내는 미묘함과 다양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스틸 사진의 경우, 우리는 [이 사진을 이해하는 데] 그 사진이 나오게 된 드라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사용한다. 「토지 분재를 위한 오미, 에스트레마두라, 스페인, 1963년」이라는 제목을 달고 대량 복제된 데이빗 세이무어(‘칭)의 사진은 가슴팍에 아기를 안은 채 위족을 쳐다보며 서 있는 어느 수척한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그녀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무엇인가를 근심하고 있는 것일까?). 이 사진은 비행기가 공습 중인 하늘을 두려움으로 가득 차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누군가를 연상시키곤 한다. 확실히 그녀의 얼굴 표정, 그리고 그녀 주변의 얼굴들은 무엇인가를 우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억은 칭의 이 사진에 상징적인 지위를 부여하며, 기억 자체의 필요에 따라 이미지를 뒤바꿔 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진에 묘사된 실제의 내용(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기 4개월 전에 옥외에서 열린 정치 집회)이 아니라,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스페인에서 곧 일어나게 될 일을 보게 된다. 유럽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종의 전쟁 무기로 사용된 공습, 즉 오로지 완전한 파괴만을 목적으로 촌락과 도시에 쏟아진 공습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늘은 이 사진에 찍힌 사람들과 같은 농민들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비행기들의 집합 장소가 되어버렸다(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이 어머니를 다시 살펴 보라. 깊게 주름살이 패인 이마, 뭔가를 곁눈질하는 듯한 표정, 반쯤 열린 입을. 아직도 그녀가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햇빛이 눈을 찔러 눈을 게슴츠레 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가?)
울프는 자신이 받아본 사진들이 전쟁에 관해 뭔가를 보여주는 창문인 양 대했다. 피사체를 투명하게 비춰 주는 광경으로. 그녀에게는 각 사진들에 ‘창조자’가 있다는 사실, 각 사진은 그 누군가의 관점을 재현할 뿐이라는 사실이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51~55p]


- 어딘가에 손을 대거나 부정확하지만 않다면, 사진은 그 자체로 진실이다.[74p]


- 예술가는 데생이나 그림을 ‘제작’하고 사진작가는 사진을 ‘찍는다’라는 관습적인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일상 언어는 고야의 동판화처럼 손으로 만든 이미지와 사진 사이의 차이점을 뭔가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지만 사진 이미지도 (그 어떤 것 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한 모사로 만든 구성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일종의 모사라는 점에서,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 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진에 손장난을 치는 일은 디지털 사진과 포토샵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도 있었다. 사진이 부정확할 가능성도 늘 존재해 왔다. 회화나 데생은 그것을 제작했다고 알려진 예술가가 직접 제작한 것이 아니라고 밝혀질 때 위조품이라고 판명된다. 그러나 사진(아니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영상기록)은 그것이 묘사하려고 했다는 장면을 둘러싸고 뭔가 관람객을 속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위조품이라고 판명된다. 
프랑스 군인들이 그림에서 그려진 것과 정확히 똑같은 잔악행위를 스페인에서 저지르지 않았다(그러니까 그들의 희생자가 정확히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으며, 나무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해서 「전쟁의 참화」가 지닌 품격이 손상될 일은 결코 없다. 고야의 이미지들은 일종의 종합이다. 그 이미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장의 사진이나 영상 필름은 카메라의 렌즈앞에 놓인 것을 정확하게 재현해야 한다. 사진은 뭔가를 환기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사진이 손으로 만든 이미지와는 달리, 뭔가를 증명해 준다고 여겨질 수 있는 이유가 보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무엇을 증명하는가? 카파의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카파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어느 믿을 만한 편집물에는 「쓰러지는 병사」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이 보이는 바를 그대로 보여준 것은 아니라는 의심은 전쟁 사진을 논할 때마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어떤 가설에 따르면, 이 사진은 전선 부근에서 실시된 군사훈련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한다). 사진에 관한 한, 모든 사람들은 전혀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74~75p]


- 사람들은 이 사진작가가 사랑과 죽음이 펼쳐지는 장소를 드나드는 스파이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사진에 찍힐 인물들이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방심 속에서” 사진작가에게 찍히기를 바랬던 것이다. 제 아무리 사진은 무엇이다, 혹은 사진은 무엇이 될 수 있다, 라고 정교하게 말할지라도, 우리는 재빠른 사진작가가 이제 막 진행되고 있는 어떤 예상치 못한 사건을 포착해 놓은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만족감을 결코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87p]


- 때떄로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훨씬 더 잘’보게 되며, 혹은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된다. 실제로, 보통보다 사물을 더 잘 보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사진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실물보다 좋게 보이지 않는 사진에 늘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뭔가를 미화하는 것은 카메라의 전통적인 기능으로서, 이런 기능은 보여진 것에 대한 사람들의 도덕적 반응을 하얗게 표백해 버린다. 뭔가를 최악의 상태로 보여줘 그것을 추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좀더 근래에 등장한 기능이다. 사람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이런 기능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뭔가를 고발하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의 행동까지 변화시키려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125p]


- 그렇지만 궁금증은 남는다. 도대체 얼마나? 이런 충격이 무한정 지속될까? 만약 캐나다의 흡연자들이 이런 사진들을 보게 된다면, 지금 당장은 넌더리를 치며 움츠러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부터 5년이 지난 뒤에도 흡연자들이 그런 사진들에 계속 불편함을 느낄까? 충격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충격은 점점 엷어지는 것이다. 혹시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런 사진들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 경우에는 계속 흡연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정보)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이런 일은 흔한 일로서,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은 적응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실제 생활에서의 공포에 익숙해질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가 건네주는 공포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충격적이거나 슬프거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뭔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더라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을 억누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습관화된 반응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식과 삽입이 가능한) 이미지는 실제 현실과는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재현해 놓은 표현물은 신자들에게 전혀 진부한 것이 될 수 없다. 그 사람이 진정한 신자라면 말이다. 연출된 재현물에는 이런 법칙이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 일본 문화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일 추신구라를 재현한 공연물은 영주인 아사노가 할복을 하러 가는 도중 벚꽃의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 장면에서 일본인 관람객이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그 이야기를 (가부키나 분라쿠, 혹은 영화를 통해서) 제 아무리 많이 보고 들었더라도 매번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가정한다. 마찬가지로, 이맘 후사인이 배신을 당하고 살해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타지아라는 극은 이 순교자의 고통을 그린 수난극을 수십 수백 번 봤다 할지라도 이란인 관람객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상황은 정반대이다. 어떤 면에서 이란인들은 그 수난극을 여러 번씩 봐 왔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즉, 그들은 울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형태를 띤 비애감은 좀체 옅어지는 법이 없다.[126~128p]


-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도 없다. 기억이란 것은 그 기억을 갖고 있는 개개의 사람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우리가 집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 즉,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이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우리의 정신 속에 꼭꼭 챙겨두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뭔가를 구체화 할 수 있는 이미지, 즉 중요하기 그지없는 공통 관념을 담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예측 가능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재현적 이미지의 저장소를 만들어 둔다. 곧장 포스터로 만들 수 있는 사진들, 가령 원자폭탄 실험 뒤에 생긴 버섯구름,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연설하고 있는 마틴 루터 킹 2세, 달에 착륙한 우주 비행사 등의 사진들은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을 기념 우표들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상기시켜 준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순간들,(원자폭탁 사진을 빼고는) 일종의 개선식 같은 이 순간들은 기념 우표에 담겼다. 나치의 강제수용소 사진이 실린 전지 우표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131p]


- 공포의 순간을 모아놓은 각종 기록물들 가운데에서도, 집단 학살을 담아놓은 사진들이야말로 제도적으로 가장 발달된 기록물이다.[132p]


- 뭔가를 영원이 기억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그 기억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창조할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종의 도상 같은 사진이 자아내는 감동의 힘을 빌어서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찾아가기를, 그리고 새롭게 되살리기를 원한다. 오늘날 수많은 희생자들은 기념과,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알기 쉽도록 연대기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이야기해 주는 일종의 사원을 원한다. 예를 들어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기념할 수 있는 박물관을 워싱턴에 세워달라고 오래 전부터 아우성쳐 왔다. 그렇지만 이 미국의 수도에, 그러니까 이미 미국계 흑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도시에 아직까지도 흑인 노예사 박물관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실제로, (지하철도 같이 부분적으로 선별된 부분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자행된 노예 무역에서부터 노예 제도의 전말을 모두 들려주는) 흑인 노예사 박물관은 미국 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흑인 노예를 둘러싼 기억은 사회의 안정에 지나치게 위험하기 때문에 그 기억을 자극하거나 새롭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됐을 것이다.<홀로코스트 기념관>, 그리고 언젠가 개장될지 모를<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 박물관>은 미국에서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추모 작업은 국내 대중들을 몹시 격분시켜 당국에 맞서게 만들 위험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만든 미합중국의 엄청난 범죄를 연대기별로 기록해 놓은 박물관을 세운다는 것은 바로 이곳 미국에서 악이 행해졌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저곳, 그리고 미국이 개입되지 않는 곳에서 행해진 악을 사진으로 찍기를 더 좋아한다(미국은 그야말로 독특한 나라이다. 건국 이래로 사악한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는 그런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다른 모든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비극적인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은 예외라는 건국 신조, 즉 지금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나라의 믿음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를 진보의 역사로 보려는 국가적 합의는 비참한 광경을 담은 사진들이 맞닥뜨린 새로운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사람들은 그 어느 곳에서 벌어졌든지 간에 그릇된 일들에 온 정신을 뺏길 것이다. 단, 미국 자체를 유일한 해결사이자 구원자로 보는 한에서만 말이다.[133~134p]


- 가슴이 미어질 듯한 사진들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줄 수 있는 능력을 좀체 잃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사진들은 뭔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사는 우리가 뭔가를 이해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은 뭔가 다른 일을 수행한다. 사진은 우리르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것이다. 보스니아 전쟁을 찍은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 중의 하나, 즉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 존 키프너가 다음과 같은 언급을 붙여놓은 사진을 생각해 보라. “이 적나라한 이미지는 발칸 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을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만들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세르비아의 어느 민병대 병사가 죽어 가고 있는 이슬람 여인의 머리를 무심하게 발로 차고 있다. 이 이미지는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당연한 말이지만, 이 이미지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137p]


- 사진이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 설명하는 두 가지 잘 알려진 사고방식을 살펴보자(이 두 가지 사고방식은 오늘날 급속히 진부해져 가고 있다). 사진을 다룬 내 에세이(30여 년 전에 쓴 최초의 에세이)에서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을 정식화한 이래로, 나는 그 사고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픈 유혹을 견딜 수 없었다.
첫 번째 사고방식은 대중매체(좀더 명확히 말하면 이미지)가 주목하는 것들을 대중들도 주목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어서, 사진에 찍혀야만 그 전쟁이 ‘현실적’인 것이 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을 일으킨 것도 이미지라는 말이 된다. 보스니아 전쟁에 관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정서도 언론인들이 그 전쟁에 주목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거의 3년 동안 매일 밤마다 포위 상태에 놓인 사라예보의 이미지를 수십 억 인구의 거실 텔레비전에 비춰줬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이다(어떤 사람들을 이것을 일컬어 ‘CNN 효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어떤 재앙과 어떤 여론에 사람들의 온 이목이 쏠리는가, 사람들이 무엇을 걱정하게 되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어떤 갈등을 어떻게 평가하게 되는가 등이 결정되는 데 사진이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잘 보여준다.
두 번째 사고방식은 방금 묘사했던 사고방식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사고방식으로서, 이미지로 뒤덮인 세계에서는, 아니 그것도 사방팔방이 모조리 이미지로 뒤덮인 세계에서는 우리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인가의 영향력이 점점 떨어져 간다는 사고방식이다. 예컨대 우리는 완전히 무감각해져 버리는 셈이다. 결국 우리의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이미지는 뭔가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서 서서히 앗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지금은 그런지 잘 모르겠다. 사진이 주는 충격이 점점 줄어든다는 무슨 증거가 있을까? 모두 방관자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문화가 잔혹한 행위들을 찍어놓은 사진들의 도덕적 힘을 무효화해 버린다는 무슨 증거가?[155~156p]


- 텔레비전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당연히 얼마 안 가서 싫증나기 마련인 이미지이다. 원래 텔레비전 자체가 시청자들의 집중력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러니까 넌더리날 만큼 이미지로 사람들을 자극해대 곧 싫증나도록 만들기 때문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미지는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가 마구 범람하게 된다면 사람들의 주의력은 변덕스러워지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며, 내용 자체에는 상대적으로 별다른 관심을 안 기울이게 된다. 즉, 이미지 자체가 흘러 넘치면, 특권적인 이미지가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채널을 돌리도록 만드는 것, 끊임없이 채널을 돌리게 해 잠시도 쉬지 못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따분해지게 되는 것이 당연해지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텔레비전의 핵심이다. 소비자들을 축 늘어지게 만드는 것이 말이다. 소비자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이리저리 넘나다니게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용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을 자극할 수 없다. 훨씬 더 반사적으로 내용에 옭아매려면 사람들의 의식을 강렬하게 때릴 뭔가가 필요하다. 대중매체가 내용에서 여과한 뒤 퍼뜨려 놓은 이미지,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감정을 둔하게 만들어 버릴 수밖에 없는 이미지 때문에 박력을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를 다시 강렬하게 만듦으로써 말이다.[157p]


- 보들레르가 이 글을 썼을 당시에는 아직 신문에 사진이 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전 세계의 끔찍한 소식들이 실린 조간 신문을 든 채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부르주아지를 힐난하는 보들레르의 묘사가 오늘날의 비판, 즉 우리가 매일 조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받아보는 끔찍한 소식들이 우리의 감수성을 얼마나 무디게 만들어 버리는가에 대한 비판과 뭔가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 단지 최신 기술이 그런 소식들을 쉴새없이 제공해준다는 점만을 빼고는 말이다. 그 덕택에 우리는 눈만 돌리면 수많은 참사와 잔악 행위를 볼 수 있게 됐다.[159p]


- 매우 영향력 있는 어느 분석에 따르면, 우리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각각의 상황은 스펙터클로 변신해야만 우리에게 현실적으로(즉,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스스로 이미지가 되기를, 즉 유명인사가 되기를 갈망한다. 이렇게 현실은 위신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재현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대충매체를 통한 재현만이 말이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다.[161p]


-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재현되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뭔가 유일무이한 것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165p]


-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 [잔악 행위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어느 지옥이 더욱 나쁜가?)이었다. 사라예보 주민들은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발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라예보 주민들의 분노에는 인종주의의 기미가 엿보였다. [166p]


- 사람들은 저 멀리 떨어진 채 고통을 쳐다본다는 이유로 이미지를 비난해 왔다. 마치 다른 식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한 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이미지를 통하지 않은 채) 가까이에서 본다고 해서 그냥 보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171p]


- 뒤로 물러선 채 사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옛 선인들의 말을 빌려 말해보자면,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와 동시에 누군가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172p]


- 진지하고 가슴이 미어질 듯한 제재를 지닌 사진이 예술로 대접을 받을 때까지는(누가 뭐라고 비난하든,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벽에 걸릴 때에야 사진은 그런 대접을 받는다), 공공 장소의 이곳 저곳에 붙여지거나 길바닥을 굴러다니는 것이 사진의 운명이다. 즉, 공공 장소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흔히 사람들의 손에 들려 다니다가) 만나게 되는 일종의 정거장인 셈이다. 예술이 발견되어 수많은 논평을 받게 되는 수수께끼와도 같이 혼란한 사회적 상황 아래에서야 사진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남몰래 볼 수 있거나, 오랫동안 천천히 볼 수 있는 책에서는 이런 사진의 무게감과 진지함이 어느 정도 훨씬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렇지만 특정 시기가 되면 책장도 덮여지기 마련이며, [사진을 보고 받은] 강렬한 감정도 곧 사그라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진이 고발한 특정 사건들도 곧 뇌리에서 잊혀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갈등과 특정한 범죄의 속성을 둘러싼 비난은 인간의 잔인함, 인간의 야만성 자체를 둘러싼 비난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렇듯 광대한 과정 안에서라면 사진작가의 의도라는 것은 거의 무의미해진다.[177~178p]


- 이 사진속의 죽은 병사들은 놀랄 만큼 살아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 자신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 즉 우리에게 말이다. 그렇지만 왜 그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인가를 꼭 들려줘야만 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해준다 해도]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에 포화 속에 갇혔으나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쓰러뜨린 죽음에서 벗어난 모든 군인들, 모든 언론인들, 모든 부역 노동자들, 독자적인 모든 관찰자들이 절절히 공감하는 바가 바로 이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184p]


- 모든 폭력이 똑같이 비난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전쟁이 똑같이 부당한 것도 아니다.
어떤 국가가 자국 시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도 그 국가를 힘으로 응징하면 결코 안 된다고?(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대개 이런 양상을 띤다. 국가들간의 전쟁이라는 양상을 띠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폭력의 주된 사례는 정부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자국 국경 내부에서 저질러진다. 이런 일에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내전을 통해서, 그것도 ‘낡은 인종적 증오심’을 통해서 이런 살육을 처리하는 것은 받아들일 만한가?(어쨋든 반유태주의도 유럽의 낡은 전통이었다. 사실 반유태주의는 발칸 반도를 휩쓸고 있는 증오심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독일 내의 유태인들을 모두 살육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정당화되어야 하는가?). 전쟁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진실일까?(미국 흑인들에게 물어 보라. 남북 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전쟁은 단순한 의사소통상의 실수이거나 의사소통의 실패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근본적인 악이 있다. 그래서 정당한 전쟁도 존재하는 것이다. [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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