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ject
수묵화 붓의 종류중에 장류라는 것이 있다. 오랫동안 붓을 사용해 왔으나, 딱히 붓의 장르에 대하여 일가견이 있는 편은 아니고 손에 가는대로 쓰는 편임에도 이 붓의 종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랑 잘 맞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미대입시를 준비할 때, 처음 손에 쥐어본 남사군자라는 특대형 사이즈의 붓을 손에 쥐었을 때의 난감함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꼬꼬마때야 장난으로 아버지 그림 그리시는 틈에 붓으로 장난질 쳐본적이 있었으나, 이런 큰 붓은 기껏해야 제일 큰 붓털의 길이가 4cm 정도였던 수채화붓을 만지작 거리던 나에게는 거의 멘탈붕괴 수준이였다. 당연히 물조절은 실패요, 붓끝이 서지도 않고 이러저리 휘둘리기 일쑤였다. 한번 붓이 꺾이면 논리적으로는 어떻게 세우는지 알겠는데 순식간에 번져나가는 종이 위에서 논리란 퍽 쓸데없었다.
꽤 오랜 시간 고생 끝에 어느정도 붓이 손에 익을 무렵에 아버지에게 장류라는 붓을 선물받았다. 그렇게도 힘들던 붓끝이 자연스럽게 쑥쑥 나왔다. 또한 선을 긋기도 채색을 하기에도 딱히 무리가 없어 왠만한 입시그림은 이 붓 하나면 거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가끔 부드럽게 색이 번지는 효과를 내기 위해 보조붓이 필요하거나 붓에 물이 긴급 수혈이 필요할 때, 혹은 파필을 맛깔나게 쓸 때를 제외하고는 - 그러고 보니, 그 때도 그 붓은 일본산(왠지 모르겠으나 스님이 그려져 있는 스티커가 붓에 붙어있었다)이였다.
한참 후에 2007년이 되서 도쿄에 갔을 때 대략 100년이 된 일본전통 화방에서 선붓을 다시 구매하게 되었는데, 그 때 일본 붓이란 칼과 같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다. 붓을 어지간히 거칠게 써도, 물량이 적건 많건 끝까지 붓끝이 살아있었다. 같은 붓을 약 8년정도 사용했는데도 끝끝내 붓끝이 날카롭게 빠지는 것을 보고 올 봄에 다시 붓을 사러갈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이 결심의 이유는 단지 일본붓이 매력적이여서, 혹은 일말의 허영심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요즈음의 한국필방들에서 더 이상 매력적인 선붓을 구할 수 가 없게된 까닭이다. 그 기저의 이유에는 관광지가 되어버린 인사동의 높은 임대료로부터 기인한 것도 있겠으나, 그 보다는 그네들의 마음가짐이 그저 유통업자에 가까울 뿐인 사람들인 것이 크다.(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내 기준은 중국인 관광객 상대의 중국산 싸구려 물품들을 버젓이 가게 앞에 진열해 놓는 가게들을 말한다.) 나는 그런 류의 장사치들을 경멸하는데, 자신이 파는 물건에 대한 이해없이 그저 저곳에서 이곳으로 무언가를 옮길 뿐인 상인은 잇속빼면 시체일 뿐이라 그렇다. 자신이 무엇을 파는지도 모르는데 사는 사람은 더 알길이 없다. 운좋게 좋은 물건을 터무니 없는 가격에 구할 수 있을지라도, 이는 나로하여금 그 물건을 오히려 무가치하게 여기고 무관심하게 만들 뿐이다. (식수의 소중함을 당연시 여기는 것처럼)
그렇게 오른 여행길에 유일하게 장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곳은 ‘채운당’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교통의 전통화방이였는데, 원래 구글에서 검색했던 곳이 아니라 현지에서 다시 일어로 검색한 후에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도움을 준 태연이에게 문득 감사를 표한다. 이 매력적인 오래된 재료상에 관해서는 다른 재료들도 조금 더 써보고 다음에 따로 포스트를 하도록 하겠다.
무사히 국내로 들여온 후 사용해본 결과 가장 마음에 드는 붓은 이 장류였다. 일전에 동경에서 구매했던 붓은 너무 날카로운 느낌이였는데, 지역 특색이 또 조금 다른 건지 조금 더 부드러운 기분이다. 어쩌면 장류라는 붓의 장르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수묵화의 대가들은 붓에 이러한 장르를 세세하게 구분할 만큼 민감하게 필을 놀릴 줄 알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직 무지하여 잘 모르겠다.
이것으로 꾸준히 이미지들을 베어버리다 보면 무엇이 남고 무엇이 보이려나- 그 이름처럼 어쩌면 길게 흘려보낼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