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품평 / 페이야드

Place

by 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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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영업을 종료한 명동 신세계 백화점 명품관에 위치한 까페이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명동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 중에 하나는 지난날 절친한 건축과 친구와 서울의 거리와 도심지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나온 것이다.


대부분 명동이 일제시대 일본인의 중심지로 발돋움 한 사실까지만 알지만, (구)부촌인 북촌의 한옥마을에서 어떻게 권력을 넘겨받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지금의 인사동거리의 시작이다. 집안이 몰락하면서 과거 조선의 값비싼 서화나 보물들을 내다팔아야 할 곳이 필요했는데 명동과 북촌의 중간쯤에 위치해 하나 둘 거리 노점 처럼 팔아치우던 곳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화랑가 거리로 탈바꿈 한 것이 2000년대 이전의 인사동이고, 그 이후로는 서울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저급한 관광거리가 되었다. (내가 어릴땐 그래도 '낭만'이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실질적인 장소를 남기면서 넘겨받은 부와 권력은 광복 이후로도 그대로 장소에 남아 이어져 내려와 강남일대 거리가 생기기전의 근대적 부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변화가 빨라서 조금이라도 괜찮다 싶으면 이미 거리가 변질되거나 가게가 사라졌거나, 그 흐름은 옆 동네로 쫓겨나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대부분은 못된 부동산 업자들 탓이지만 실은 모두가 일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제는 ㅇㅇ상회 어제는 ㅇㅇ슈퍼 오늘은 ㅇㅇ마트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내가 실제로 얻어가는 무엇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아무 이유 없이 아이스크림 가격이 올라도 다들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그 간극에 구도심과 신도심의 미묘란 격차가 있었다. 강남이 미국발 신자유주의에의해 2000년대 동안 빠르게 바뀌어 가고 인사동이 변질될 동안, 명동은 상대적으로(노점상 제외) 그 어떤 자존심때문에라도 변화가 더딘 것이였다. 실제로 몇몇 의류업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아직도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신축과 개축으로 새로운 가게나 유행이 유입되었지만 그것이 인사동의 그것만큼 이질적이거나 기존 가게들을 압도해 버리는 모습은 아니여서 개선에 가까운 변화로 읽혔다.


아직도 태리가 처음 차를 샀다며 기념으로 맛있는 거나 먹자고 이 까페를 소개시켜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작년 내 생일에도 난 여기에 있었고, 더운 여름날 사이에 넓직한 정원과 친절한 안내, 상징적인 장소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 변하지 않는 맛


솔르웟의 작품이 까페로 향하는 복도에 붙어있고, 오래된 인테리어 겠지만 하나도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던 마지막 명동의 상징적인 보루가 사라졌다. 나중에 나는 어떤 서울을 추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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