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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Feb 17. 2022

코지마 히데오의 창작하는 유전자

1판 1쇄 인쇄 2021년 12월 1일

1판 1쇄 발행 2021년 12월 8일


지은이 코지마 히데오

옮긴이 부윤아

펴낸곳 컴인(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1길 13 강원빌딩 5층)


- 인터넷 정보는 필터링되어 있어서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만 보게 된다. 반면 서점에서는 관심 없는 장르의 정보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서점에는 인터넷에는 없는 문맥이 있다. 물론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세대가 보기에는 인터넷에도 그만의 문맥이 있고 거기에서 탄생하는 '만남'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역시 서점에서 책을 직접 만나는 것을 고집하고 싶다. [12p]


-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긴 후에도 자택의 우편함을 살펴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전기, 가스, 통신요금 청구서, 카드 명세서, 딜러가 보낸 신차 안내, 신문, 이것이 우리 집 우편함 내용물의 전부였다. 최근에는 홍보 전단지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34p]


- 편지는 여럿을 상대하지 못한다. 쌍방향이 아니며 반드시 시간차가 생긴다. 받는 사람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을지 지정할 수 없다. 일단 손에서 떠나면 지우거나 수정할 수 없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시간과 상황을 공유할 수 없다. 엇갈림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난처한 매체가 편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에 편지를 다시 추천하고 싶다. 일방통행인 편지이기 때문에 비로소 써 내려가는 사람, 읽어 내는 사람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편지를 교환하는 사이에 평소 부족했던 배려하는 힘과 생각하는 힘이 자연스럽게 채워지기 때문이다. [36p]


- 바로 이것이 인생이다. 이 세 번째 선택이야말로 사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연애에서 일상을 지배하는 규범이 아닐까. 모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멍에 빠져들고 말려들어 거기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하지만 구멍에서 나온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바깥 세계에는 다른 새로운 구멍이 뚫려 있어서, 또 다른 그 구멍에 잡아먹힐 뿐이다. [40p]


- '사람 인'자는 긴 막대가 짧은 막대에 기대어 있다. 짧은 막대가 최선을 다해 긴 막대를 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서로를 지지해 준다고 하지만 결코 평등한 것이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부려 먹고, 약한 자는 평생 고생만 하다 끝나는 것이다. [66p]


- 안타깝게도 요즘은 번역물은 물론이고 일본인이 쓰는 소설이라고 해도 외국을 무대로 한 비일상을 그린 소설은 인기가 없다. 현대의 어디에나 있는, 누구나 감정이입할 수 있는 흔한 일상을 그린 작품이 사랑받는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번역물을 읽으며 모르는 세계와 문화, 사상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미지에 대한 지적인 흥분을 느꼈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독서의 참다운 즐거움이었다. [113p]


- 온갖 것들이 디지털화되어 간다. 지금까지 '거기에 존재하는' 물질이었던 다양한 '물건'이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 먼 곳에 놓여진다. 모든 것은 질량을 가진 '물건'이 아닌 가상공간에 '수치'화되어 직접 만질 수 없게 된다. [130p]


- 어렸을 적에는 비 오는 날의 학교를 좋아했다. 악천후가 학교에 커튼을 드리우면 외부 세계와 단절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은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 늘 보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 자체가 어둠 속을 나아가는 우주선이 된 것 같은 감각. 신기하게도 고요하고 쓸쓸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154 ~155p]


- 당시 그들은 영화 해설자였다. 영화평론가와는 달랐다. 직업이 평론가였던 사람도 외화극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해설자였다. 그들은 외국영화를 안심하고 즐길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 사람들이었다. 내용에 대한 상세한 비평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만든 영화다'라고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 주었다. 그것이 당시의 모든 영화 해설자들의 자세였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먹어 본 적 없는 요리도, 싫어하던 요리도, 편식하던 요리도, 처음 보는 요리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평론'이란 먹기 전에 맛을 특정하는 일이다. '해설'은 어느 지역의 식재료로 어떤 요리사가 어떻게 요리를 만들었는지를 요약하는 일이다. 이 차이는 상당히 크다. [197p]


- 직함에 의미는 없다. 사람은 직함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직함은 남지 않는다. 직함은 일회성이다. 상태이지 가치는 아니다. 사람이 느끼고 평가하는 것, 그것은 조직과 지위가 아니다. [250p]


- 만화는 시트콤처럼 다른 사람의 웃음소리에 이끌려 웃는 극장형 매체가 아니다. 우울할 때 혼자 페이지를 넘기면서 자신의 속도로 자연스레 웃게된다. 모두 함께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트리는 것도 소중하지만 때로는 상처받은 자신을 치료하는 듯한 내성적인 웃음도 필요하다. 내일로 이어지는 작은 웃음, 살아 있다는 실감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법한 웃음의 매체, 그것이 아카츠카 후지오의 만화였다. [262p]


- 팔리는 것, 세상에 먹히는 것을 만드는 방법론의 하나로 과거의 성공 체험을 바탕으로 팔리는 요소를 도입하는 마케팅 수법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다. 재미가 없기 떄문이다. [2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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