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큰집은 성수동 이였다. 뚝섬이라는 섬아닌 섬(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진짜로 섬이였는데 개간사업으로 섬이 아니게 되었다고...) 근처는 설날 아니면 추석에 가곤했다. 그때만해도 응답해라 1988처럼, 1~2층으로 이루어진 개인주택이 주를 이루었고, 낮은 건물과 한강주변의 뷰덕분에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참 시원했다. 이 일대는 오래된 공장지역과 맞물리는 곳으로 그 삶을 멀리서 떨어져 보면 다소 할렘스럽고, 한꺼풀 들어가보면 정감이 있다가, 더욱 밀착하게 되면 아마 불편한 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시커먼 남자들이 골목에 삼삼오오 몰려다니고 있었고, 차도와 인도는 뒤섞이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던 터라, 골목을 돌아 실제로 가게를 맞이하기까지- 이곳에 비스트로가 들어왔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몇 번인가 성수동이 핫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상적으로 들어오기에는 이 주변 장소성을 이해하기가 난해했을 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거품따위 꺼졌다는 소문만 무성했다.(아마 스타벅스가 들어오면 그제서야 수긍할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인지, 좀 더 천천히- 좀 더 산발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가진 가게들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살아있기에, 무엇이라 결론내릴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건물은 1층으로 원래 창고였던 곳을 개조한 것으로 보였다. 창고이기 때문에 층수가 낮고 층고는 다소 높을 수 있는 기능적인 측면때문에 리모델링이 훨씬 수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메뉴 구성이나 퀄리티는 내노라 하는 압구정/청담 지역의 쉐프급(실제로도 쉐프가 운영한다.)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으나 장소성을 기반으로 거품없는 가격이 특징이다.
가장 신선했던 메뉴는, 아스파라거스에 치즈와 사과를 얇게 져며 시원하게 내놓은 애피타이져였는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가 만나 식감이 아삭하니 맛이 좋았다. 그외의 단품요리들은 바우하우스의 철학처럼 메뉴 그대로의 것이 나온다. 스테이크를 시키면 정말 기본 소스와 좋은 육질의 스테이크만, 버섯 파스타를 시키면 정직한 모듬 버섯을 듬뿍 넣은 진한 크림 파스타가 나왔다.
나는 이런 가식없는 기타노 다케시의 직언같은 느낌의 서비스를 사랑한다. 마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처럼, 격식이나 문화적인 것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던 것을 묵직하게 내리쳐 주는 맛이있다. 가게는 모던하다라는 표현보다는 신고전주의 느낌의 인테리어로 되어있는데, 색이 파스텔톤이라 한 층 편안한 분위기이다. 30 전후의 여성들 혹은 유복해 보이는 30대 남자를 동반한 커플이 주를 이루었다. (주차를 어디에 한 것인지 궁금하긴 했다. 대체 다른 남자들은 다들 어디에 그렇게 주차를 잘하고 다니는 걸까.)
후식이나 음료 메뉴가 조금 아쉽지만,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2배쯤 좋아할 것 같다. 이 가게의 성장을. 이 주변의 변화를 앞으로 지켜봐야 겠다.
*예약이 없이는 저녁은 다소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