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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May 19. 2016

일상품평 / 송

Place


삼청동 현대백화점 식당가에 위치한 오래된 우동/모밀집이다. 90년대 중/후반의 강남 사무 지역 끝자락인 이 삼성동 주변에 위치한 식당들은 대체로 양질의 식당들이 많았다. 식당들의 이름은 애석하게도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제대로 우린 사골 국물의 도가니탕 집과 풍미가 대단했던 은대구 구이를 내놓은 일식집, 대구매운탕에 민물새우와 배추를 넣은 식당가 일식집도 기억에 남는다. 


요즈음에는 식당의 내실보다 브랜드가 앞서는 탓에, 맛을 깊게 음미하고 추억을 곱씹어 보기도 전에 가게가 사라져 버리기 일 수이다. 부동산업자와 인테리어 업자들 같은 소위 '꾼'들만 좋은 이런 비즈니스 모델에서 상처받지 않는 소비자와 요리사는 몇이나 될까.


이러한 작금의 시대에, 옛날 분식집 우동, 모밀 맛을 간직한 채로 2016년을 고스란히 맞이한 가게는 마치 쿠바 재즈의 원음을 간직한 Buena vista Social Club의 음악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우동은 약간의 푸석한 면발에 다소 심심한 듯, 다시마의 도움을 받은 듯한 국물 맛에, 백화점 지하에서 구할 수 있을 간단한 해산물 베이스의 재료 고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요새는 쑥갓을 얹어 내어 놓는 집이 드문데, 이것이야 말로 심심한 분식집 우동의 하이엔드로 가는 문턱이 아닐까 싶다. 거의 기능성은 0에 가깝지만 보는 맛과 멋은 전체 식사 경험을 한층 풍부하게 해준다. 결과적으로는 꽤 가성비가 높은 재료인 것이다. 이 경험 덕분에 자칫 '단조롭고, 심심할 뻔한' 일상의 맛을 단숨에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게에서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것은 쟁반 메밀국수 한 그릇과 만두 한 접시를 시켜서 번갈아 먹는 것이다. 차갑고, 뜨거운 맛을 번갈아 가며 적당히 서로 미지근해질 때쯤 식사는 끝난다. 이가 얼얼한 상황이지만 그런 강렬한 흑백 대비의 맛 같은 것이 있다. 진한 육즙과 시원하고 쫄깃한 한국식 메밀면의 교차점에서 신선한 야채 식감이 더해지면, 번호표 뽑는 기계가 절로 이해가 될 것 같다. 


오랜 세월 함께한 가게가 부디 변한 듯 변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있을 수 번의 백화점 식당가 개편에도 살아남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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