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은 진흙 속에서 핀다.
성수동 건대입구역 근처의 신문화공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은 정립이 되지 않았고, 그들 스스로도 무엇이다라고 규정하지 않은 채 '창고'라는 옛 이름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아 결정을 유보하였거나 결정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이다. 간단한 맥주와, 이탈리안식 메뉴(피자나 파스타 등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내부 곳곳에 작품으로 보이는 미술품이나 전시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공간 그 자체이다. 이곳은 한국 건축학과를 나온 누구라면 꿈꾸었을 법한, 리모델링의 교과서 같은 결과물이다.
천장은 PVC 계열 재질의 반투명 패널로 마감했는데, 덕분에 층고가 높아도 전체 공간에 빛 밀도가 낮지 않다. 가격 면이나, 어울림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다만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하중을 견딜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직 오픈한 지 1년이 안되었으니, 지극히 비효율적일 수도 있는 난방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뒤따라 줘야 할 것 같다.
건물 이곳저곳에 식물들을 배치해둔 것이 인상 깊었는데, 테이블에서 그렇지 않은 공간까지 미묘한 단계가 존재한다. 약간 오래된 아파트에서나 볼 수 있는 화단의 너른 경계면이 재현된다.
주말에만 받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입장료로 1만 원을 받고, 1 bottle free를 하는 정책을 택했다. 아마도 SNS 같은데 소문이 나서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고 공간만 부유하는 인간들을 방지하기 위함인듯하다. 나는 이 결정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 부담은 지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저 부유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문화적인 움직임에 별 필요가 없다. 아니 악영향만 남기고 사라지곤 한다. 그들이 지나고 간 자리에는 찌그러진 맥주캔, 시뻘건 얼굴, 즐비한 담배와 소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다가 공허함만 남는다. 모두가 떠난 자리는 적막해질 뿐이다. 어쨋거나의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면, 이런 정도의 장치는 괜찮은 것이 아닐까.
안쪽에 전시장도 있어서 들어갔더니 드로잉 관련 전시였다. 많이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드로잉 자체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도 나는 싫다. 굉장한 수준급 연주자가 그냥 흥에 겨워서 자연스럽게 열어본 재즈풍 정도가 좋다. 그림일기는 제발 자신의 사물함에 간직하는 것으로 하자.
그에 반해서 뭔가 방직기스러운 작품은 꽤 마음에 들었다. 나무의 탄성을 재밌게 살린듯했다. 다만 규모에 비해 메시지가 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류의 작품을 보다 보면 '그래서 뭐'라는 느낌이 드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 아니쉬 카푸어의 작업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은 들 겨를도 없다. 시선이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야기 흐름을 배제하려면 미장센이 압도적이어야 한다는 걸 다시 곱씹게 된다.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평범하다는 이야기이고- 또 다른 말로 하면 아직은 발전할 요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체성이 모호하게 출발한 좋은 느낌의 공간과 시도는 한해를 지켜보아야 가늠이 좀 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안공간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본과 문화 사이에서 잘 균형 잡아 자리 잡았으면 한다. 너무 시크하지도 말고,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은 열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