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전설의 책방지기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
초판 1쇄 펴낸날 2016년 7월 15일
지은이 이시바시 다케후미
옮긴이 정영희
펴낸이 정은영
펴낸곳 남해의 봄날 (경상도 통영시 봉수 1길 12, 1층)
좋아하는 이음책방에 들렀다. 좋은 작은 책방은 메인 책장이라 할 법한 곳에 절대로 똑같은 책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그 점이 매번 같은 작은 책방에 가도 질리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신권들 속에서 주인장의 큐레이션이 훌륭하게 느껴지는 서점은 생각보다 몇 군데 없다.
프레임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컨텐츠를 신중히 하나의 작은 소우주처럼 불안반, 기대반위에 올려놓을 뿐이 아닐까.
이 책은 작은 서점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그것도 망하지 않고) 회자된 사바타 신이라는 사람에 대한 인터뷰이다. 여기에는 창고와 재고같은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점원이 객을 어떻게 상대하는가, 어떤 객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미묘한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까지 들어있다.
그리고 나이 든 사람 답지 않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보통 평범한 사람도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의 네트워크 수준으로는 이제 감당할 수 없이 커져버린 대자본, 신자유주의 시장선도 시대에 오래된 인문서적 서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모습이 드러나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다분히 꼰대스러운 부분도 보인다. 모든 것을 분류하고 나누기 좋아했던 시대의 산증인의 사람이기에 당연할 걸지도 모르지만, 그런 시대의 어른들에게는 선택이라는게 꽤나 분명했다. 요리칼은 요리에만, 컷터칼은 종이자르는 것에만 썼던 시대라면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에, 작은 원룸에 모든 삶을 밀어넣었다. 돈이라는 가치교환수단 자체에 가치를 밀어넣어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나, 어떤 책임도 지지않는 소비, 비루한 상품들은 마찬가지로 유보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한철을 채 다 입지 못하고 새로 구매하는 유니클로 티셔츠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자면, 내가 어떤 선택도 하지 않았고 그저 유예였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뭐 먹을래'로 대표되는 선택에 대한 책임유보 현상들은 불안정하고 변화의 폭과 속도가 빠른 시대의 필수적인 덕목이거나 산물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만큼은 뒤로 갈 수 없고, 인간은 언제나 죽는다는 대전제가 역설적으로 인간의 유한한 삶속에서 벌어지는 선택들이 위대한 삶의 업적을 남길뿐.
한 발은 이상에, 다른 한 발은 현실에 시바타신은 그렇게 서 있는 사람이였다.
- "아르바이트와 정규직을 대할 때 다른 점이 있나요?"
"내 생각에 아르바이트와 사원의 차이는 '판단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야. 아르바이트생은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 뭐든 시라이나 야마모토에게 묻지. 그리고 그 판단에 따르고. 낮은 임금으로 고용한 주제에 스스로 판단하라는 곳도 많지. 틀린 점이 있으면 '네가 잘못했다'며 추궁하기나 하고, 그래서는 아르바이트생들도 곤란할 수밖에 없어.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르바이트든 정규직이든 사람으로서는 다 똑같아. 나는 파트 타이머를 포함해 이와나미 북센터의 모든 직원과 정기적으로 점심을 먹고 있어. [40p]
- 장사의 세계란 기본적으로 '야생동물의 길'을 걷는 험난해. 지금의 불황을 극복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는 거지. 낙천적으로 믿는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이렇게 하고, 내일은 저렇게 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찾아가는 거지. 작은 규모의 장사를 하는 사람은 다들 그렇지 않을까 싶어. [53p]
- 어느 거리건 정보와 인맥의 교차점이 되는 가게 혹은 사람이 존재한다. [75p]
- "지금 세대의 서점은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지금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머지않아 보통으로 돌아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서점을 저는 해 왔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93p]
- 물론 아무리 숫자를 오나벽히 파악한들, 끊임없이 매장에 들어오는 책을 '이 책은 반년 이내에 반드시 누군가에게 팔린다.', '이 책은 한 권도 팔리지 않는다'고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다. 단 각각의 책이 몇 권 팔렸는가 하는 '결과'와 매장에 몇 권 남아 있는가 하는 '현재 상황'을 파악해 자료를 축적해 둠으로써, 모 작가의 신간이 출간될 때 판매 수량을 예측하거나 팔릴 전망이 없는 책이 서가에 눌러앉아서 정작 진열해야 할 책이 뒷전으로 밀리는 사태를 가능한 줄이고자 했다. '왜 반품하는가, 남겨 두는가'의 근거가 명확하다면 서점의 재고는 의미 있는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129p]
- 그에게 질려서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시바타 신은 '사람이 품고 있는 에너지 안에는 좋고 나쁨이 혼재되어 있다. 그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사람과 사귀는 것'이라 여기며 그런 관계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158p]
- 일단 정해둔 것은 그만둔다는 것뿐이었다. 중학교 교사를 그만뒀을 때와 마찬가지로 갈 곳 없는 신세였다. 마흔여덟을 목전에 두고 갑작스레 한가해졌고, 경마장에 가서 어이없을 만큼 돈을 땄다. 이대로라면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 퇴지금 정도는 금방 벌겠다며 즐거워했지만 그런 날은 채 한 달도 이어지지 않았다. [163p]
- "이와나미 북센터 근처의 서점만 봐도 그렇긴 합니다. 도쿄도 서점은 1층에 카페를 마련했고 위층은 임대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산세이도 서점도 1층을 새로 꾸며 잡화 판매를 보다 강조하고 있죠.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책만 팔아서는 지속할 수 없다. 그 생각을 확실한 형태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극복해 가려는 게 아닐가요."
"지금까지 해 온 대로 '보통의 서점'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인 거지. 꽤 오래 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이렇게 현실로 다가왔어. 그런 가운데 이와나미 북센터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물론 우리도 자비 출판 사업 같은 것도 하고 있지.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 하던 그대로 하고 있어. 주로 인문사회학 책을, 보통 그러했듯 들여와서, 보통 그러했듯 팔고 있지. 지금 시대에 그걸로 통용될 수 있을지가 관건일 테지. 보통이라는 것이 희귀해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가지 그랬듯 매일 일을 반복하며, 언젠가, 어떤 박자를 타고, 엄청나게 돈을 벌 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견디는 거지.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고 말야." [169p]
- "돈을 버는 순간이 온다는 건 그리 쉬빚 않지. 그럼에도 기다릴수밖에 없어."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신다는 겁니까?"
"보통의 서점을 계속해 왔던 곳에만 찾아오는 '은혜'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자네가 고민할 정도로 심원한 이야기는 아냐. '그러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다. 어? 이상하네. 왜 아직 안 오지?' 이런 소리를 하며 어떻게든 매일 유지하고, 견디고, 그러다 죽는 거지. 이게 내가 생각하는 '보통'이야. 폼을 재다가도 뭔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찾아오면 거기에 홀랑 올라타기도 하는 거지. 하지만 말야, 내가 몇 번이나 했던 말이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 날지 모른다는 게 내가 아는 세상이라는 거야."
"'보통'이란 무엇인가. 역시나 이 이야기로 돌아오는군요. 기다린다는 말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팔짱만 기고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닐 텐데요."
"늘 하던 대로, 지금가지 하던 대로, 매일 최선을 달한다. 이런 말이지. 출판에는 도박 같은 면이 있잖아? 출간한 책이 베스트셀러로 뜨느냐, 사장되느냐, 서점도 그런 면이 약간은 있지만 아무래도 출판사보다는 담담한 일상 쪽의 비중이 훨씨 높지. 물론 그 책이 잘 팔릴지, 팔리지 않을지는 누구도 몰라. 하지만 서점은 팔리지 않으면 다시 돌려보내면 되는 시스템이니까. '양서란 잘 팔리는 책을 말한다.' 예전에 시바타 료헤이 시가 한 말이야. 나도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해. 여기서 말하는 '잘 팔리는 책'이란 이래저래 광고해서 필요 이상으로 팔리는 책이 아니야. 인기 있는 작가가 쓴 좋은 작품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지. 세상에 해야 할 말을 제대로 된 문장으로 표현한 책, 제대로 편집한 책이라면 그 책을 사는 손님은 반드시 있다. 이런 이야기야. 겉만 번드레한 이상론이라 생각하면 곤란해. 확실히 그런 책은 지금까지도, 길게, 꾸준히 팔리고 있으니까. 나름 오래 서점을 해 온 내 감각에 비춰 보자면 말이지." [171~172p]
- "살아남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있겠죠. 살아남지 못하는 게 너무 당연할 정도로, 거대 자본이 넘기 힘든 벽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서점은 그 나름의 개별 조건을 끌어안으면서, 그 서점주에게 있어서의 '보통'을, 자기가 가진 최선을 다해 온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 서점도 마찬가지지."
"진보초라는 입지,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의 영향력, 물론 큰 자본은 아닐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의 자본력, 거기에다 시바타 신의 교섭력, 시라이 씨를 비롯한 현장의 서가 진열 능력 등을 강점으로 지금까지 해오신 거죠."
"우리가 가진 힘이란 게 정말 보잘것없지만 말야, 그래서 그리 대단한 체는 못해. 나만 해도 그래.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진심이야. 기본적으로 나는 장사란 그런 거라고 봐. '이 코너는 살리고 저 코너는 없애고' 뭐 이런 식이 아니라, 서점의 개별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보는 거지. 이는 작은 서점을 지켜 달라며 동점심을 일으키자는 게 아냐. 거대 자본을 가진자만이 서점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책의 세계는 아마도 망가지고 말 거라는 그런 이야기지." [175p]
- "자산과 자본이 풍부하다면 그런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보통의 소상업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혼자서는 자금이 약할 수밖에 없어. 이상한 싸움 같은 거 하지 말고 가능한 주변과 사이좋게 지낼 필요가 있어. 돈이 도는 흐름에 관여해 내가 거기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들어 두는 것도 중요해. 그러기 위해서도 결국 중요한 건 인품이지. 인품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의미가 아니야. 나만 해도 여기저기 사람 기분 맞춰주고 다니니까 경계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시간을 내준다. 이 정도는 하며 살고 있어. 선심 쓰듯 척척 돈을 쓰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방법이지. 요전에도 전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다가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노선을 바꿔 그와 함께 전철을 타고 가며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어. 뭐 그리 자랑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야." [184~185p]
-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8년 후에 돌아가셨어. 마지막 몇 년 동안 자주 하신 말씀 중에 '생명 보험만은 절대로 들지 마라'라는 말이 있었지. 지금까지 쌓아 놨던 것들이 종전으로 무효가 된 것들이 많았으니까. 여관이 기운 것도 그 영향이 컸고 말이야. 그런 기억이 강하기 때문에 건설적인 척하는 거대한 이야이일수록 듣지 않는 거야. 앞날의 일은 그다지 믿지 않지.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내일 그 건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판단은 언제나 빨랐다고 생각해. 그런 쪽이 내게는 확실한 것들이었고, 좋은 결과를 낸 적도 많았지.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임기응변과는 약간 달라. 진보초 북 페스티벌도 달아오른 분위기로 무턱대로 시동을 걸고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어. 그 이후는 늘, 현장에서 바로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지. 그런 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이었어. [233p]
- 일본도 한국과 출판계 사정은 비슷합니다. 과거에 비해 책은 잘 팔리지 않고, 출판 시장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서점과 출판사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독립출판 분야는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쓰타야 같은 서점은 대자본이 투자된 곳이기 때문에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입니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사업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일본 출판 업계의 미레를 작은 출판사나 작은 서점에서 찾고 있습니다. 시장이 축소되고 침체되더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책방을 열고, 출판을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246p]
- 일본에도 북 디렉터, 북 코디네이터라는 직함을 달고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책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저나 시바타 신이나 둘 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책이 그 사람에게 좋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방은 최소한의 필터링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25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