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이 있지만 가끔은 타협도 한다.
대학로 소재의 솥밥집이다. 오래된 집으로 근처 설계사무실의 포스터나 건축가의 기사가 실린 신문이 벽면에 붙어있다. 우리나라의 숱한 다세대 주택의 아버지 같은 느낌의 김수근 건축가가 이 일대를 작업한 것이 이런 일상의 밥집에도 자연스럽게 그 영향이 녹아있는 것을 생각하면 문화란 의외의 장소에서 재발견 되기도 하는 법인가보다.
기본 메뉴의 솥밥이 있고, 초밥을 곁들인 셋트나 연어, 버섯등을 올린 메뉴도 있다. 인사동 조금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기분으로, 김장은 하지만 딤채를 쓰는 큰엄마 스러운 정도의 타협이랄까- 쓸데없는 고집은 부리지 않는다. 그래도 가게를 안지 벌써 10여년이 넘었는데 남들 숱하게 하는 리모델링이나 무차별 메뉴변경 같은 것은 일절하지 않았다.
여름엔 모밀이 참 맛있는데, 여름이 끝나면 팔지 않는다. 늦더위가 심한 날엔 아쉬운데, 나의 아쉬움을 받아 은근한 가게 자랑을 하는 주인장 아주머니가 넉살스럽다. 요새는 하도 체인이 많다보니, 예약, 주문, 식사, 계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상대하는 건 줄곧 피고용인들 뿐이다. 한마디로 가게에 들어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가게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등록금때문에, 잠시 취업 준비하느라 일하는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어딘지 스쳐지나가는 기분이다. 만인을 위한 만인에 의한 식당이랄까. 그런 불로소득의 괘씸한 주인들을 생각하면, 역시나 체인은 가급적 가고 싶지가 않다.
양은 보기엔 꽤 작아보이는데 솥이 깊어서 먹다보면 적지않다. 미묘한 소스가 있는데 그 맛이 90년대 후반쯤에 스쳐지나간 가마고을이라는 체인에서 썼는 맛과 비슷하다. 아마도 같은 것이겠지 싶다. 인사동 조금은 이런 소스를 일절 쓰지 않고 종지에 김간장 같은 것을 따로 내어 밥에 살짝씩 뭍혀먹게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도도야 쪽이 더 맛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은 역시 조금쪽의 조리법이 맞는데, 문제는 언제부터인지 재료가 조금씩 질이 나빠진 기분이다. 분명 같은 재료인 것 같은데 어딘지 달라졌다. 미각에 예민한 편은 아닌지라 기우일 수 있지만, 역시 도도야 쪽이 조금 더 내 취향이다.
가을이나 봄, 날씨가 좋은 날 카운터 근처의 테이블에서 먹어보길 권한다. 대학로 특유의 햇살의 느낌과 바람이 잘 분다. 그리고 솥밥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