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바구니 없는 강남한복판에도 어떻게든 각오한 가게가 있다.
강남 소재의 일본 소바/우동 전문점이다. 줄지어 서 있는 끝없는 빌딩 숲 사이, 담배자욱을 피해가기 어려운 매캐함을 걷고 한발자국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의외의 장면이 언제나 보이는 법이다.
지하에 매장이 있는 관계로 좋은 맛에 비해 줄을 설 정도는 아니다. 이런 대도심에서 적당히 갈만한 식당은 언제나 지하나 뒷골목의 오래된 건물 따위에 있다. 나쁜 식재료를 피하려면 비싼 임대료부터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건물에서는 좋은 것이 나올 수가 없다. 그 비용은 어떤 식으로든 최종 소비자에게 부과된다. 아무리 쿠폰과 이벤트로 눈속임을 한들, 피할 수 없다. 그런 비지니스는 산사람이 피해를 보거나 판사람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최근에 정통 일본식 그대로의 소바를 내어놓는 집들이 꽤 많이 생겼다. 문제는 이전까지 있던 한국의 분식류에서 탄생한 모밀국수를 완전히 없던 셈 쳐버린다는 것이다. 이미 식민지 시절부터 이 나라는 일본음식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어렸던 90년대도 분명 백화점 식당가에 우동/모밀 전문집이 있었다. 다만 한국에 맞게 수정된 것으로 원래의 뚝뚝 끊어지는 면보다는 쫄깃하게 탄력을 준 면에 쯔유도 달달하게 내어놓았다. 나는 그 맛에 이미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처음 일본에 가서 모밀을 먹었을 때에는 다 남기고 말았다. 도무지 기대했던 맛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고, 이미 취향이 성립된 후인지라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한다는 얄팍한 생각뒤로 역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목구멍에 숨기고 살았다.
르네상스 운동이란 '쨘' 하고 새로운 혁명을 시도한 것이 아니다. 잘못된 학문과 예술, 문화를 바로잡아 재창조하자는 의지로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면, 큐피트같은 도상은 그 당시에 꽤 왜곡이 심했던 편이였다. 눈을 가린 큐피트가 아무렇게나 활을 쏴, 노인과 소녀를 사랑에 빠지게 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기의가 도상에 붙어버려 거의 악마에 가까운 형상으로 변형중이였다. 그런 상태를 바로잡아내었으나, 정말로 과거의 '순수'한 큐피트의 동상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였다. 이야기는 지울 수 없는 것이기에, 본래의 큐피트상과 눈을 가린 큐피트상을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그렇다고 그 두 도상이 이전의 고딕시대의 화풍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도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기법으로 새로 그려졌다. 이에 반해 앞서 말한 그런 뜬금없는 전통 일식류의 소바집들은 그 이후에 나온 신고전주의에 가깝다. 이런 생각은 뭐랄까 강요하는 기분이다. 이게 진짜 소바다. 나머진 다 가짜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아 건방지다. 모든 음식은 카피의 카피, 현지 적응과 각 지방의 고유한 취향, 사회 문화적 사건들과 더불어 서서히 진화해온 것이지 맥락없이 던져지는게 아니다. 하물며 먹는 것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바뀔 필요가 있다.
주인장은 일본에서 제면기술울 배워온 모양이다.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주장보다는 권유로, 이런 적절한 중간단계를 만들어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감사를 표한다.
가게안은 꽤 소란스러운 편으로, 오래된 회사의 사원들이 주로 회식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메뉴엔 여느 일식집 못지 않은 회정식 코스같은 것도 있다. 아예 접대식 룸도 몇군데 존재하고, 일반 테이블 석도 꽤 길게 늘어선 것이 딱 회식용이다. 우동/소바 전문집에 맥주와 소주병을 늘어놓고 마시는 것도 꽤 기이한 풍경이지만, 어쩐지 만화책 심야식당이 생각나는 것은 고단한 인간사를 느꼈기 때문일까.
*참고로 심야영업은 하지 않는다. 일찍 닫는데다 소바도 재료가 떨어지면 주문 받지 않으니,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