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한 국민의 식사의 기분.
미대 학부생 시절, 실제로는 대학원 시절에 을지로 3가~4가에 이르는 화공, 철물점들을 종종 돌아다녔다. 특히 건축학과 스튜디오 설계수업에서 세운상가 리모델링을 주제로 했을 때는 주변 사이트 분석까지 참여했다. 매번 올 때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내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손을 씻었던 세면대가 실제로는 어디를 거쳐왔는지, 새로 인테리어를 단장한 가게의 타일이 어디서 왔는지는, 대충 이 거리를 돌다 보면 느낌이 온다. 매일 같이 알 수 없는 흥정이 계속되고 퀵 오토바이들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걸 몇 번 겪고 나면, 아슬한 기분이다. 삶의 과적이 현상화되어서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뭐랄까. 굉장한 보통의 맛이다. 실상 이렇게 깊은 안쪽 골목까지 신선한 생선을 서배 해 오는 것이 어렵거니와, 그런 재료를 공수해 온들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을 것 같다. 찬은 다들 악에 바쳤는지, 새빨간 것들만 나와서 나는 괴롭기만 한데 옆 테이블 아저씨들은 안주삼아 흥건히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이 가게는 맛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류의 경험은 잠실 포차(지금은 제2 롯데월드 공사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나 가락시장 노점 횟집(아마도 가락시장 현대화 공사가 마무리되어 점점 없어질 것 같다)에서 먹는 그런 기분의 맛이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격해지는 감정의 기분이 - 혹은 쉽게 하소연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그런 맛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생태탕은 맛없는데, 그런 맛이 있다. 오히려 더 맛이 없었으면 울면서 먹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제육볶음이나, 오징어볶음이 있었는데, 이쪽 상권의 사람들은 그런 기본 메뉴를 점심에 많이들 배달시켜 먹곤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좁은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고,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건네면 사무실 한편에서 온 신경을 곤두 서운 채로 후다닥 먹어치우고 마는 그런 식사. 그런 식사도 있다.
가게 서빙은 의외의 건장한 젊은 남자들이 도맡아 하는 것으로 봐서는 주인장이 나이가 들어 물려받은 건지, 싶다. 특히 바캉스에서나 쓸법한 밀짚모자는 어딘지 엇박자의 기분- 이 가게를 둘러싼 반경 1km 내외가 어수선한 분위기라서 제대로 닦지 않은 테이블이 용서가 되고, 역으로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에 집중하고, 효 율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근면하게 살아간 다는 것은 숙연해진다. 그것이 꼭 좋은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인생을 쉴 수 없는 식사를 하고 나온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