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왕을 기억한다.
송강호가 열연했던 반칙왕이라는 영화는 그 당시 생각보다 저조한 실적으로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어딘지 느슨한 룰탓에 일단 누구라도 링위에 올라서서 경기를 할 수있는 레슬링처럼 카페도 작금의 그런 양상이다. 문턱은 낮고 경쟁은 치열하다.
소위 별다방 마크만 있어도 손쉽게 만석을 달성할 수 있던 2000년대 후반과 달리, 같은 별다방이라도 되는 곳은 잘 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어렵다. 몇몇 커피 체인은 꽤 힘들다는 이야기를 재작년즈음부터 들어온 것 같다.
내가 가는 까페 리브레는 고속터미널 지하에 위치한다. 커피맛에 꽤 둔감한 편인데다 아이스커피를 주로 즐기기 때문에 딱 두가지만 구분한다. 쓴가, 신가.
위장이 약해진 요즈음의 나는 당연히 후자를 선호하는데, 생각보다 그런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때는 더치커피라면 대부분 신 맛을 내는 줄 알았으나, 요새 유행하는 체인점의 쓰디쓴 콜드브류 몇잔을 마시면서 틀렸음을 깨달았다.
나는 쓴커피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하는데, 원래 자극이 강한 섭취물에 몸이 잘 못받아주는 것도 있지만 커피의 특성상 생활리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너무 쓰디슨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쿵쾅거리다가, 속이 아려오기도 하고, 눈을 감아도 무엇인가 어른거린다. 그렇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간밤을 지새고 나면 다음날 주간 일정도 꽤나 고달프다.
문제는 소량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탓에 한모금 들이키는 순간, 망했음이 뇌리에 각인된다. 그런 날은 일찌감치 주간활동 시간에 뭐라도 더 열심히 살아본다. 별로 소용은 없지만-
까페 리브레는 후자다. 좋은 원두를 쓰는 것이 분명한 것은 먹고 난 후에 내가 별 탈이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조금이라도 저급액체가 들어가면 술이든 커피든 리트머스 종이 처럼 그날 밤 당장 문제가 생긴다.
꽤 작은 체인점치고는 규모가 있는 편인지 원두를 공급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덕분에 안정적인 맛을 공급받는다. 같은 체인이라도 오늘의 커피가 오늘의 운세가 되기 쉬운데, 그런 면에서는 지점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같다. 비슷한 수준의 커피 브랜드로는 빈브라더스 정도일까. 나머지는 너무 지점 수가 적거나, 안정적이지 못하다. 적정한 규모의 체인을 지지하는 편이다.
지점장은 30-40대 사이의 여성분인데, 꽤나 마른 체형치고 단단한 느낌의 사람. 20-30대의 귀여운 남자직원이 같이 일한다. 캣우먼과 로빈을 보는 것 같다. 배트맨이 있었다면 커피는 쓰고 말았을 꺼야...
안쪽의 테이블석보다 바깥은 바자리가 꽤 넓직하고 좋다. 어딘가 안에 들어가서 마신다는 기분때문에 언제나 테이블석이 먼저 만석이다. 사실은 이미 실내에 존재하는 유닛형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넓은 실내이다 보니 집속의 집으로 느끼는 현상은 흥미롭다. 특히 바는 원형이라 옆에 모르는 사람이 앉아도 딱히 신경쓰이지 않는다. 분위기상 뭐라도 키핑하고 싶은데 카페이니 그런건 삼가자.
* 참고로 위의 가게는 고속터미널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