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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코엑스 근처의 절이다. 대도심 한복판에 있는 절로서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혹자는 그래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또 다른 이들은 그래서 좋아한다. 나는 무교이지만 어릴 적에 할머니 손잡고 돌아다니곤 했던 제삼자이면서 동시에 후자에 속한다.
세계사나 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항상 정신적인 안식처를 위해 탄생하고 이내 인간이기에 타락하거나 핍박받는 순환 구조의 종교사가 한축으로 섞여있다. 그만큼 사실 정신적인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애연가들의 식후땡만큼이나 본능적인 것일 수 있겠다.
그래서 특별히 종교를 가진 적은 없으나 성당에 가면 초에 불을 붙였고, 절에 가면 향을 하나 꽂았다. 불이라는 것을 매개로 정신이나 생명을 은유하는 것은 너무 구태의연할 지경이지만 매번의 재현은 매혹적이다. 보고 있자면 알 수 없는 빠져듦의 시간에 잠시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올 수 있다.
절문화는 근대 이전의 한국문화, 특히 식문화와 밀접하게 발달해온 경향이 있어 초파일날 봉은사 주변에는 아주 맛난 것들이 많다. 절음식이 맛있다는 것의 이면에는 이름 없는 '아주머니'들의 솜씨가 들어있다. 유모차 하나 까다롭게 고르는 요즈음의 '젊줌마'들은 공유할 수 없는 그네들의 삶에서는 웅크린,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어떤 맛이 난다. 쌀알이 제대로 씹히는 식혜 한 접시를 들이키고, 겉보기엔 투박해 보여 망설여지는 수박 한 조각을 아삭하게 씹고 나면 이 시간 한정의 축제를 매해 아쉬워하게 된다.
예전에는 절간의 툇마루에 앉아 비도 피하면서 가만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건만, 이제는 '현금 입출금기'와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팻말 앞에서 자본주의적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여전히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많은 절이다. 절 풍경에 들어가 맞은 편의 고층빌딩들을 보고 있자면 느끼는 바가 많다. 이런 느낌은 경북지역의 대형 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작은 선사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이런 극명함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제사상에 절하는 나의 현실을 곱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