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은이 / 토머스 네이글 | 옮긴이 / 조영기

by Joong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판 1쇄 찍음 2014년 1월 22일
1판 1쇄 펴냄 2014년 2월 7일
지은이 토머스 네이글
옮긴이 조영기
주간 김현숙
편집 변효현, 김주희
디자인 이현정, 전미혜
펴낸곳 궁리출판(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31-4 우남빌딩 2층)


1.서문


2.우리는 어떻게 무언가를 아는가?


-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그것이 해, 달, 별에 관한 것이든 혹은 살고 있는 집과 이웃이나, 역사, 과학, 타인, 심지어는 내 몸의 존재에 관한 것이든 간에), 그 믿음은 우리의 경험, 생각, 느낌과 감각인상(sense impression)에 바탕을 두고 있다. [15p]


- 과학이 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사유방식은 다음과 같은 양상을 띤다. 즉 설명의 일반 원리들에 의존하면서,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에서 출발하여 이와는 다른 세계의 진짜 모습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려 한다. 우리는 현상의 배후에 있는 실재를 기술하는 이론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이때 우리는 실재를 직접 관찰할 수 없다. 물리학과 화학은 주변의 모든 사물은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원자들로 이루어졌다고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외부세계에 대한 믿음 역시 원자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과학적으로 지지받는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회의론자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과학적 추론 과정 역시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했던 회의주의와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고, 즉 과학은 지각과 마찬가지로 회의주의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어떻게 마음 밖의 세계가 우리의 관찰을 이론적으로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우리의 관념들과 대응하는지 알 수 있을까? 우리의 감각 경험들과 외부 세계 간의 관계를 신뢰할 수 없는 한, 우리의 과학적 이론 또한 신뢰할 만한 이유가 없다. [23~24p]


- 그러나 이 모든 논의를 거친 후에도 여전히 나는 다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 안의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심각하게 믿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외부 세계의 존재를 본능적이고도 강하게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그것은 철학적 논변으로 제거될 성질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존재한다고 단지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심지어는 이러한 우리의 믿음이 근거 없음을 보여주는 듯한 논변들을 검토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27p]


3.타인의 마음


- 컴퓨터의 경우는 어떠한가? 컴퓨터가 발전하여, 복잡한 방식으로 환경에 반응하며 여러 면에서 개처럼 행동하는 개 모양의 로봇을 조종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컴퓨터의 내부는 여전히 회로와 실리콘칩으로 가득 차 있다. 이처럼 기계가 의식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앞서 열거한 경우들 간에는 모두 차이가 있다. 만일 사물이 움직일 수 없다면, 그 사물은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지각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줄 수 없다. 그리고 그 사물이 자연적 유기체가 아니라면, 사물의 내부는 우리와 매우 다르게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행동하고, 그것의 물리적 구조가 우리와 비슷한 것들만이 어떤 경험이란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무는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데 우리가 그것을 전혀 모를 수도 있지 않은가? 나무의 경우에는 나무가 갖는 경험과 관찰 가능한 현상(manifestation) 또는 물리적 상태와의 상관관계를 찾아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으려면, 경험과 그 경험에 상응하여 외부로 명시되는 것, 둘 다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신의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경험 자체를 직접 관찰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경험이 부재(absence)한다는 것 역시 관찰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경험과 물리적 상태 사이의 상관관계가 부재한다는 사실 또한 관찰할 방법이 없다. 이는 나무의 경우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나무의 내부를 들여다보고서 나무가 아무런 경험도 갖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없다. 이는 당신이 벌레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그 벌레가 경험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39~40p]


4.마음과 몸의 관계


- 만일 과학자가 뇌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한다면, 그년 여러 종류의 복잡한 물리적 과정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고 초콜릿 맛도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초콜릿 맛을 당신의 뇌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초콜릿 맛에 대한 당신의 경험은 당신 마음 안에 갇혀있어, 다른 누구도 (과학자가 당신의 두개골을 열어 뇌 안을 들여다보더라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마음 안에 있는 방식은 뇌가 당신의 머리 안에 있는 방식과는 다르다. 당신 외의 누가 머리를 열어 그 안에 든 것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구도 (적어도 머리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듯이) 마음을 열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중략-
우리가 무엇을 경험할 때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다면, 경험을 비롯한 마음의 상태가 곧 뇌의 물리적 상태라고 할 수는 없다. [46~47p]


- 많은 물리적 요소들이 적절한 방식으로 결합하면, 그 요소들은 단지 기능만 하는 생물학적 유기체가 아닌 의식을 가진 존재를 형성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우리가 설명할 수 있기 전에는 세계에 대해 적절하고 일반적인 개념을 가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지금까지 물리학은 마음을 설명의 대상에서 배제해왔고 또 그렇게 해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세계에는 물리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 [54~55p]


5.단어의 의미


- 정의를 통한 의미 부여가 순환에 빠지지 않으려면 결국 정의를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의미를 갖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
쉬운 예로 '담배(tabacco)'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이는 일종의 식물을 지칭하며, 그것의 라틴 이름은 우리 대부분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것의 잎은 시가와 궐련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우리 모두는 담배를 보거나 그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담배라는 단어는 우리가 보았던 담배나 그 단어를 사용할 때 주변에 있었던 담배들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 단어는 모든 담배를 지칭한다. 당신이 그 모든 담배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당신은 그 단어를 몇 개의 담배들을 보고 배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그 단어를 몇몇 담배의 이름으로만 생각한다면, 아직 그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어떻게 단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단순한 소리 혹은 낙서가 그렇게 널리 미칠 수 있을가? 분명한 것은 그것의 소리나 모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접했거나, 그 단어를 발화했을 때 같이 있었던 비교적 적은 수의 담배들 때문도 아니다. 거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무엇이다. 당신과 나는 전혀 만난 적이 없고 다른 담배들을 경험했지만, 같은 뜻으로 그 단어를 사용한다. 만일 우리 둘 다 중국과 서반구와 관련하여 질문할 때 그 단어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며 거기에 대한 답 역시 같을 것이다. 나아가 중국어 사용자는 같은 의미를 지닌 중국어 단어를 사용하여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단어 '담배'와 그 단어가 지칭하는 물질 자체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다른 단어들 역시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과 그 같은 관계를 가질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자연스럽게 과거, 현재, 미래를 거쳐, 단어 '담배'가 담배, 궐련, 시가와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그 단어를 사용할 때, 배후에는 그 단어와 그 단어가 지칭하는 것을 연결해주는 무엇이 있다. 우리는 이를 흔히 개념, 관념 혹은 생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우주 안의 모든 담배에 어떻게든 연결된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이 중개자(middleman)는 어떤 종류의 존재인가? 그것은 당신의 마음 안에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마음 밖에 있으며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과 나 그리고 중국어 사용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일 것이다. 담배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이 같은 것을 의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ㄸ허게 그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그 단어와 그 식물과 관련하여 서로 매우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를 설명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단어 혹은 단어들을 다르게 사용하면서도 넓은 지역에 흩어진 엄청난 양의 같은 물질(즉 담배)을 지칭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처럼 어떻게 단어가 관념 혹은 개념을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의미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앞에서 어떻게 단어가 그 식물이나 물질을 의미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때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뿐만 아니라, 이 관념 혹은 개념이 어떻게 실재하는 모든 담배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도 문제다. 어떤 종류의 존재가 이처럼 다른 것들은 배제하고 오직 담배하고만 배타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또 다른 문제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단어 '담배'와 담배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관념 혹은 개념을 그것들 사이에 놓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단어와 관념 사이의 관계 그리고 관념과 그 물질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설명해야만 한다. [58~62p]


- 언어가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은 물론 중요하다. 언어는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언어라는 기존의 체계에 접속한다. [66p]


6.자유의지


- '내가 복숭아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 당신이 과일을 선택했던 때를 살펴본다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말은 "만일 그때 더 열심히 고민했더라면 혹은 우주 적게 먹는 친구가 옆에 있었다면 복숭아를 선택했을 것이다"는 말과도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바로 그때 모든 상황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초콜릿 케이크 대신 복숭아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실제로는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한 그 시점까지 정확히 같은 상태였더라도, 당신은 복숭아를 고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아마도 '뭐, 어때' 하고 생각하면서 케이크에 손을 뻗는 대신 '안 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복숭아를 집었다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사람에게만 (그리고 아마도 몇몇 동물종을 포함해) 적용하는 '할 수 있다' 또는 '할 수 있었다'의 개념이다. [71p]


- 우리는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일이 먼저 다른 양상으로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실제로 하지 않은 많은 일들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이것의 부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선택한 시점까지 아무것도 확정적으로 당신의 선택을 결정하지 않았다. 당신이 실제로 초콜릿 케이크를 고르는 순간까지 당신이 복숭아를 고를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당신의 선택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일어나는 일들 중 어떤 것들은 미리 결정된다. 예를 들면 태양이 내일 뜨는 시간이 미리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태양이 떠오르지 않고 그냥 밤이 계속될 가능성은 열려 있지 않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까닭은 지구가 자전을 멈추거나, 태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은하계 안에서 이 둘 중 한 가지가 일어날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지구는 멈추지 않는 한 계속 자전할 것이고, 내일 아침에는 자전의 결과로 태양계 바깥족이 아닌 태양이 있는 안쪽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지구가 멈추거나 태양이 사라질 가능성이 없다면 태양이 내일 떠오르지 않을 가능성도 없다.
당신이 초콜릿 케이크 대신 복숭아를 집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 부분적으로 뜻하는 바는 태양이 내일 떠오른다는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달리 당신의 선택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하기 전까지 당신의 선택을 불가피하게 만든 과정이나 강제력은 없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전부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신이 의미하는 바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당신이 케이크를 고를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당신이 과일을 고를 수도 있었다는 것이 참이 될 수 있겠는가? 만일 케이크 대신 복숭아를 골랐다면, 그때 당신이 복숭아를 고르는 것을 실제로 방해할 것이 없었다는 것이 참이다. 그러나 이처럼 '만일'이라는 조건을 붙여 말하는 것과 그냥 "당신은 복숭아를 고를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케이크를 골라 복숭아를 선택할 가능성이 없어지기까지 복숭아를 고를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당신은 복숭아를 고를 수 없었을 것이다. [72~74p]


- 어떤 사람들은 결정론이 옳다면, 비가 내리는 것과 칭찬하거나 비난할 수 없듯 행위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불가피한 행위라도 좋은 행위는 칭찬하고 나쁜 행위는 비난하는 것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누군가 나쁘게 행동하게끔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그가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일 그가 당신의 음반을 훔쳤다면 그것은 그가 사려 깊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 행위가 미리 결정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별개의 문제다. 또한 만일 우리가 그를 비난하지 않거나 처벌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가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할 위험이 있다. [77~78p]


- 인과적 결정 자체는 자유를 위협하지 않는다. (특정 종류의 원인만이 자유를 위협한다.) 만일 누가 케이크 쪽으로 당신을 밀어 당신이 케이크를 집었다면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유로운 행위가 되기 위해 결정의 원인이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행위의 원인은 우리가 익히 아는 심리적 원인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82p]


7.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 부당하다는 것이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당하지 않은 것을 금지하는 규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비판을 금지하는 법률들이 그 예이다. 또한 어떤 규칙은 부당한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쁠 수 있다. 호텔과 식당에서 인종 분리를 요구하는 규칙이 그렇다. 정당하고 부당하다는 것은 규칙에 찬성하고 어긋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만일 다르지 않다면 그 개념들이 행위와 더불어 규칙을 판단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 [86p]


- 우리가 얼마나 공평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평가할 기준 역시 불분명하다. 개인적 관심과 공평성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하나의 옳은 방법이 있을까? 아니면 여기에 대한 답은 개개인이 가진 동기의 차이와 그 동기의 강도에 따라 사람마다 달라질까? [98p]


- 당신이 속한 사회의 도덕적 기준들을 이처럼 비판할 때에 당신은 그 사회의 대부분 사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반대되는 보다 객관적인 기준, 즉 실제로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의 개념에 호소해야 한다. 이 기준이 무엇인지 말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기준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말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한, 우리 대부분이 이해하는 관념이다. [102p]


- 도덕을 정당화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하나의 동기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동기들을 가졌기 때문이다. [105p]


8.정의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불평등의 원인들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시간과 돈을 사용할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삶을 영위할지에 대한 선택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런 선택들은 상대적으로 악의가 없다. 사람들은 어떤 상품들을 살지, 어떻게 자신의 자녀를 도울지, 또는 얼마나 많은 임금을 종업원들에게 지불할지 등을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에 개입하는 것은, 그들이 은행을 습격하려고 할 때 또는 흑인이나 여성들을 차별하려 할 때 그 행위에 개입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개인의 경제생활에 보다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방법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특히 재산세와 증여세 그리고 몇 몇 소비 등은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로부터 더 많이 돈을 거두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와 같은 세금은 (사람들이 그들의 돈을 모두 가지도록 두지 않음으로써) 부의 불평등이 세대를 거쳐 더 커지는 것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시도해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세금을 통해 걷힌 공공 재원을 사용하여 교육을 받지 못해 놓친 이익들을 일부 보상하고, 교육을 감당할 수 없는 가정의 자녀들에게 교육을 보조해주는 것이다. 공공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일을 실행하며, 세금 수입을 사용해 의료보험, 음식, 주거, 교육과 같은 기본적 복지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이는 불평등한 결과를 직접 없애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능력의 차이로 인해 생겨나는 불평등의 경우에는, 그 원인들이 경쟁적 경제 체제를 해치지 않는 한 그 원인들에 개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 사람들끼리 직장을 구하기 위해, 기업끼리 고객 유치를 위해 경쟁할 때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다. 유일한 대안은 중앙 집권적 경제 체제일 것이다. 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대략적으로 같은 급여를 받고, 중앙의 권위에 의해 직업을 부여받는다. 이와 같은 경제 체제가 시도되었지만, 자유와 효율성 면에서 그 대가가 너무 컸다. 내가 보기에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컸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114~116p]


9.죽음


- 삶이 끝나는 것에 대해 갖는 유감과는 달리,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더 오래 살기를 원하며 삶이 가져다주는 것들을 더 많이 원하기 때문에 죽음을 소극적인 의미에서 악으로 여긴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왜 당신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전망이 적극적으로 두려움을 가져다줄가? 만일 우리가 죽는 순간에 정말로 존재하기를 멈춘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거기에 두려워할 무엇이 있겠는가?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두려운 무엇이 되려면,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어떤 형태로 살아나 끔찍한 일들을 겪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소멸은 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129~130p]


10.삶의 의미


- 문제는 우리 삶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크고 작은 대부분의 일을 정당화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어떤 설명도 인생 전체가 갖는 의미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활동들, 성공과 실패들, 갈망과 실망들은 인생의 부분들이다. 만일 인생 전체를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없을 것이다. [132p]


- 먼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경우(이때 다른 사람은 먼 미래의 사람들까지 포함한다), 나는 이미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하였다. 누군가의 인생이 보다 큰 어떤 것의 부분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큰 부분이 갖는 의미를 물을 수 있다. 우리는 다시 그것보다 큰 것을 통해 여기에 답하거나 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만일 그것보다 큰 것을 통해 답한다면,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을 물을 수 있다. 만일 답이 없다면 삶은 결국 의미 없는 어떤 것의 부분이 되는 셈이다. 만일 우리의 삶을 부분으로 갖는 보다 큰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 삶전체가 의미 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1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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