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브루노 무나리 | 옮긴이 / 김윤수
예술로서의 디자인
초판 1쇄 펴낸 날 2012년 10월 30일
지은이 브루노 무나리
옮긴이 김윤수
펴낸곳 두성북스(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499-1)
- ‘아름다움’이란 바로 ‘정확성’의 결과다. 정확한 설계는 아름다움을 낳는다. 그것이 조각 작품 -현대 조각일지라도- 과 같기 때문에 아름다운게 아니라 무엇에도 비할 바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고도 미에 관해 무언가를 더 알고 싶다면, 정확히 미가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면 미술사를 보라.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이상적인 비너스를 가지고 있고, 또 모든 비너스(혹은 아폴로)를 한데 모아놓고 그 시대를 넘어 비교해보면 일군의 괴물에 지나지 않음을 알 것이다. [33p]
- 당신은 ‘시간은 추상적이어서 너무 어렵다’고 말하겠지. 그러면 어디 한번 시험해볼까? 당신 아이에게 다음 문장을 읽게 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알아보라.
너의 심장이 펄떡펄덕 뛴다. 그것을 들어라. 그 위에 손을 얹고 심장의 고동을 느껴보라. 그리고 맥박을 헤아려보라. 하나, 둘, 셋, 넷……60을 헤아렸을 때 1분이 지날 것이다. 60분 후에는 1시간이 지날 것이고 1시간 동안에 식물은 1밀리미터가 자란다. 12시간이면 해가 돋았다가 진다. 24시간이면 하루 낮 하루 밤이 된다. 이후부터는 시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달력을 보아야 한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이 한 주가 된다. 4주가 한 달이 된다. 1월, 1월 뒤에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이 온다. 이제 열두 달이 지났다. 그래도 너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초와 분의 1년이 지나갔다. 1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시계는 우리에게 시간을 보여주고, 달력은 날짜를 보여주며, 시간은 흐르고 흘러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102~104p]
- 모든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변한다. 즉 물건을 두는 방은 작으면 작을수록 비용도 적게 든다. 같은 이유에서 주택 건축도 계획되는데, 그것은 과거보다 더 작지만 작아진 것에 못지않게 안락하다. 하늘처럼 높은 천장과 넓고 컴컴한 회랑이 있는 큰 집이나 개인 정원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별장과 같은 건물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114p]
- 한 민족의 어떤 특성을 연구할 경우, 그리고 적어도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가장 우수한 면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추한 것은 세계 어디서나 대개 똑같이 추하다. 가장 좋은 것만이 우리를 가르치며, 가장 좋은 것은 특수성이다. 어느 나라이건 저마다 무엇엔가 뛰어난 것이 있으며 그 밖의 것은 다른 나라와 비슷하다. [127p]
- 문화에 이르기 전에 많은 돈이 들어오면 우리는 금으로 된 전화기를 사는 현상이 있다. 내가 말하는 ‘문화’는 아카데믹한 지식이 아니고 정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생활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들에 관한 정보 말이다. [155p]
- 원시시대부터 권력은 마술적인 상징을 매개로 기초가 마련되었다. 기이한 차림을 한 부족의 주술사는 전신에 깃털과 가죽, 그리고 사납고 희귀한 동물의 이빨을 등에 찼다. 그때부터 노예들은 정해진 일을 강제적으로 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었다(오늘날에도 노예는 있다). 그들은 항상 권력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살았다. 이러한 권력은 복종하는 개인의 문화적인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지배계급은 나폴레옹의 순백색의 털가죽 망토 같은 상징으로 혹은 오늘날 대기업 회장의 으리으리한 책상의 형태로 그 힘을 과시하였다. 오늘날의 어떤 경우든 값비싼 재료를 볼 수 있는데 가죽, 휘귀한 카펫, 다마스코 천, 금, 거울, 고가의 예술품들이 그것이다. 부족의 주술사의 깃털이나 동물의 이빨에서 형태를 바꿀 수 있지만 요컨대 그 목적은 한결같다. 무지한 사람들이 암암리에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너희는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식으로.
그러나 점차 사회가 발전하면서 문맹은 줄고 사람들은 인간 본래의 양심을 깨닫게 되었다. 암시는 메시지로 바뀌고, 반대로 권력의 메시지는 진정한 권위가 결여된 메시지가 되었다(권력을 표현하는 상징이 아니라 권위가 없는 메시지로 지배자들의 메시지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제 인류의 후예라면 누구라도 의당 단체의 회장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권만 없을 뿐이다. -중략-
진정한 권위의 한 예는 과학자에게 있다. 실제로 그의 진가는 그의 업적을 입증하는 결과로 매겨지지 정치적인 책략이나 능한 처세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투표로 뽑히는 과학자는 없으며 권력자에게서 임명되지도 않는다. [156~161p]
- 지난날의 미술(회화와 조각)은 우리에게 자연을 정적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게 했다. 해넘이, 얼굴, 사과, 모두가 정적이다. 사람들은 자연과 접해서도 이와 같은 정적인 것으로서의 이미지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실제로 한 알의 사과는 사과 씨에서 사과나무가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과정이 한 순간이다. 자연 속에 멈춰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5p]
- 늘 똑같은 배색은 어떤 것이든 처음 색채 선택이 완벽한 듯 보였더라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참기 어려워진다. 색채 지각은 형태 지각과 마찬가지로 공간-시간의 연속(4차원)에서 일어난다. 공간에만 관련하여 그것을 다루는 것은 불완전한 접근방식이다. / 리하르트 노이트라. 『디자인의 생존』[220p]
- 이 아이디어를 미술 분야에 가져와보자. 가령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고 가정하고, 그럼에도 손에 쥐고 있는 몇 개의 기본 요소를 제공하는 구조적·재료적인 자료에 따라 공상적이고 예기치 않은 것을 만드는 복원 작업을 상상해보자.
우리가 그 기능도 모르고 기원도 불명확한 단편들을 토대로 어떤 상상적인 것의 이론적인 재구성을 실제로 해보자. [244p]
- 미술가는 미술이 바로 장사일이 된 순간 전에 지녔던 겸손을 되찾아야 하며, 대중들을 경멸하는 대신 그 요구를 알아내 다시 그들과 접촉하게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2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