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대하여

지은이 / 다나자키 준이치로 | 옮긴이 / 고운기

by Joong

그늘에 대하여
지은이 다나자키 준이치로
옮긴이 고운기
초판 1쇄 인쇄일. 2005년 11월 30일
초판 1쇄 발행일. 2005년 12월 10일
펴낸곳. (주)눌와(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67-40, 2층)


-<그늘에 대하여>의 원제는 ‘음예예찬陰翳禮讚’이다.
‘음예’는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이다.
그러나 글을 옮기면서 일단 ‘그늘’이라 하기로 한다.
[7p]


- 그런데 특이한 집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일본식 변소를 이상으로 삼겠지만, 사원처럼 집의 넓이에 비해 사람 수가 적고, 게다가 청소할 손이 갖추어져 있다면 괜찮아도, 보통의 주택에서 그런 식으로 청결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마루를 판자나 다다미로 하면,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하고, 걸레질을 열심히 해도 곧 더러운 데가 눈에 띄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타일을 붙이고 수세식 탱크나 변기를 붙여 정화장치를 하는 것이 위생적이기도 하고 번거로움을 없앨 수 있다지만, 그 대신 ‘단아한 풍취’나 ‘화조풍월’과는 완전히 인연이 멀어져 버린다. 거기가 그런 식으로 두드러지게 밝고 게다가 사방이 새하얀 벽에서는, 소세키 선생의 이른바 생리적 쾌감을 마음껏 향락할 기분이 들기란 어렵다. 역시 구석구석까지 순백으로 보이기 때문에 확실히 청결하기로야 틀림없지만, 자기 몸에서 나오는 것이 떨어지는 지점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미인의 옥 같은 피부라도 엉덩이나 발을 남들 앞에 보이면 실례인 것과 마찬가지로, 저렇게 대놓고 밝게 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자면 무례천만으로, 보이는 부분만 청결할 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끔 한다. 역시 그런 장소는 어스름한 어둠의 광선에 둘러싸여, 어디가 청정하고 어디가 불결한지, 구별을 몽롱하게 놔두는 편이 낫다. [13~14p]


- 종이라는 물건은 중국인이 발명했다고 들었는데, 서양 종이를 대하면 단순한 실용품이라는 것 이외에 아무런 느낌도 일어나지 않지만, 당지나 일본지의 결을 보면 거기서 일종의 따스함을 느끼고 마음이 안정된다. 같은 흰 종이라도 서양 종이의 흰색과 봉서지나 백당지의 흰색은 다르다. 서양 종이의 겉은 광선을 되튕기는 듯한 맛이 나는데, 봉서지나 당지의 겉은 포근한 첫눈의 표면처럼, 몽실몽실하게 광선을 안으로 빨아들인다. 그리고 손에 와 닿는 감촉이 보들보들하고 접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나뭇잎을 만지고 있는 것과 같이 차분하고 촉촉하다. 본디 우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는다. [20p]


- 우리들이 한결같이 빛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옅게 선명한 것보다도, 가라앉아 그늘진 것을 더 좋아한다. 그것은 천연의 돌이든 인공의 도구이든, 반드시 세월의 손때를 연상시키는 듯한 흐릿함을 띤 빛인 것이다. [22p]


- 옛날의 공예가가 그릇에 칠을 바르고, 마키에를 그릴 때는, 반드시 그런 어두운 방을 염두에 두고, 빛이 적은 속에서의 효과를 겨냥했음에 틀림없고, 금색을 호화롭게 사용한 것도, 그것이 어둠에 떠오르는 상태나, 등불을 반사하는 정도를 고려한 것이라 여겨진다. 결국 금 마키에는 밝은 곳에서 한번에 퍼뜩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곳에서 여러 부분이 그때그때 조금씩 빛을 드러내는 것을 보도록 만들어진 것이어서, 호화 현란한 모양의 대부분을 어둠에 숨겨버리는 것이, 말로 할 수 없는 여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저 반짝반짝 빛나는 표면의 광채도, 어두운 곳에 놓고 보면 그것이 등불 끝의 어른거림을 비추고, 조용한 방에도 때때로 바람이 찾아온다고 알려 주어, 어느덧 사람을 명상에 빠지게 한다. 만약 저 음울한 방 안에 칠기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촛불이나 등불이 자아내는 괴이한 빛의 꿈의 세계가 그 등불의 펄럭임이 때리고 있는 밤의 맥박이 얼마나 매력을 감쇄당할 것인가. [26~27p]


- 확실히 요리의 색조는 어느 나라라도 그릇의 색이나 벽의 색과 조화되도록 고안되어 잇지만, 일본 요리는 밝은 곳에서 빛이 바랜듯한 갈색 그릇에 먹어서는 식욕이 반감한다. 예를 들며 우리들이 매운 집안에서 발달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나는 어느 다도회에가서 된장국을 먹은 적이 있는데, 보통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던 걸쭉한 적토색을 띤 국이 촛불 아래에서 검은 칠기 주발에 담겨 있는 것을 보니, 실로 깊이 있는, 맛있을 것 같은 색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간장 같은 것도, 상류 사회에서는 생선회나 데친 푸성귀나 나물에 짙은 맛의 ‘진간장’을 쓰는데, 그 끈적끈적한 광택이 있는 간장이 어떻게 그늘에 어울리고, 어둠과 그리도 잘 조화되는 것일까. 또한 흰 된장이나 두부나 어묵이나 멀건 장국이나 흰 살 생선회나, 그런 흰 껍질을 가진 것도, 주위를 밝게 해서는 색이 돋보이지 않는다. 먼저 밥만 보더라도, 번쩍번쩍 하는 검은색 밥통에 넣고, 어둔운 곳에 놓아두는 쪽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식욕을 자극한다. 다 지은 새하얀 밥이 바로 뚜껑을 열면 그 밑에서 따뜻한 김을 내뿜으며 검은 그릇에서 솟아올라, 한 알 한 알이 진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일본인이라면 누구라도 쌀밥의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요리가 그늘을 기조로 하고, 어둠이라는 것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29~30p]


- 이같이 우리가 주거를 꾸리기에는, 무엇보다도 지붕이라는 우산을 넓혀 대지에 하나의 담장으로 응달을 만들고, 그 어둑어둑한 그늘 속에 집을 짓는다. 물론 서양의 가옥에도 지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햇빛을 차단하기보다는 비와 이슬을 막는 것이 주이기 때문에, 그림자는 가능한 한 만들지 않도록 하고, 되도록이면 내부를 밝게 드러나도록 하고 있는 것이 외형만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일본의 지붕을 우산이라고 하면, 서양의 지붕은 모자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사냥모자처럼 될 수 있는 한 차양을 작게 하고, 햇빛의 직사를 바싹 처마 끝으로 받는다. 확실히 일본 집 지붕의 차양이 긴 것은 기후 풍토나 건축 재로나 기타 여러 가지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벽돌이나 유리나 시멘트와 같은 것을 쓰지 않기 때문에, 옆으로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서는 차양을 깊게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일본인 역시 어두운 방보다는 밝은 방이 편리하다고 생각하였음에 틀림없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생활의 실제로부터 발달하는 것으로, 어두운 방에 사는 것을 부득이하게 여긴 우리 선조는, 어느덧 그늘 속에서 미를 발견하고, 마침내는 미의 목적에 맞도록 그늘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다다미방의 미는 전적으로 그늘의 농담에 따라 생겨난 것이고,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서양인이 다다미방을 보고 그 간소함에 놀라고, 다만 회색의 벽이 있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로서는 아무래도 당연하지만, 그것은 그늘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도, 태양 광선이 들어오기 어려운 다다미방의 바깥쪽으로 차양을 낸다든지 툇마루를 붙이다든지 하여 한층 햇빛을 멀리한다. 그리고 실내는 정원으로부터 반사된 빛이 장지를 통해 약간 밝게 들어오도록 한다. 우리 다다미방의 미적 요소는 이 간접적인 둔한 광선밖에 없다. 우리들은 이 힘없고 초라하고 무상한 광선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다다미방의 벽으로 스며들도록, 일부러 정도가 약한 색의 모래벽을 바른다. 흙벽으로 만든 광이나 부엌이나 복도와 같은 곳을 바를 경우에는 광택을 넣지만, 다다미방의 벽은 대부분 모래벽으로, 절대로 반짝이게 하지 않는다. 만약 반짝이게 한다면 그 부족한 광선의 부드럽고 약한 맛이 없어진다.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빈약한 외광이, 황혼색의 벽면에 매달려서 겨우 여생을 지키고 있는, 저 섬세한 밝음을 즐긴다. 우리들로서는 이 벽 위의 밝음 혹은 옅은 어두움이 어떤 장식보다 나은 것이고, 정말로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래벽이 그 밝음을 흩트리지 않도록 다만 한 가지 색의 무지(無地)로 발라져 있는 것도 당연하고, 다다미방마다 조금씩 바탕색은 다르지만, 그 차이는 미미한 것이다. 그것은 색의 차이라기보다는 아주 작은 농담의 차이, 보는 사람의 기분의 차이라고 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31~33p]


- 그와 반대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는 대단한 걸작 같지 않은 서화라도, 다실에 걸어서 보면 그 방과의 조화가 매우 좋고, 족자도 다다미방도 갑자기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서화, 그 자체로서는 각별하지 않은 족자의 어디와 조화를 이루는데, 그것은 언제나 그 바탕 종이나 먹 색깔이나 표구의 천이 가지고 있는 오래되어 낡은 빛깔에 있는 것이다. 그 빛깔이 도코노마나 다다미방의 어두움과 적당한 조화를 갖는 것이다. [34p]


- 현대인은 밝은 집에 살고 있기 떄문에 이러한 황금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그러나 어두운 집에 살았던 옛날 사람은 그 아름다운 색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실용적 가치까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광선이 모자라는 실내에서는 그것이 반사경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사치로 황금 박箔이나 금은 가루를 썼던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반사를 이용하여 밝은 빛을 보충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은이나 기타 금속은 금방 광택이 퇴색해버리기에, 오래 반짝임을 잃지 않고 실내의 어두움을 비추는 황금히 특별히 귀하게 여겨졌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나는 앞에서, 마키에라는 것은 어두운 곳에서 보게끔 만들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보면 비단 마키에만이 아니라, 직물 같은 것에도 옛날에는 금은사가 넉넉하게 쓰였던 것은 같은 이유가 밑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따. 승려가 걸치는 금란가사金襴袈裟같은 것이 그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오늘날에는 시내에 있는 많은 사원의 본당을 대개 대중을 위하여 발게 해 두기 떄문에, 그런 장소에서는 쓸데없이 현란할 뿐이고, 어떤 사람 좋은 고승이 입고 있어도 고마운 느낌을 결코 가지지 못하는데, 유서 깊은 절에서 옛날 법도를 따르는 불사에 참석해 보면, 주름투성이인 노승의 피부와 부처님 앞의 등불이 명멸하는 것과 금란가사의 바탕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고 얼마나 장엄미를 더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어서, 그런 것도 마키에의 경우와 같이, 화려한 옷감모양의 대부분을 어둠이 감춰 버리고, 다만 금은사가 때로 조금씩 빛나듯이 되기 때문이다. [39~40p]


- 이를 검게 물들이는 화장법이 행해진 것도, 그 목적을 생각하면, 얼굴 이외의 빈틈을 모두 어둠으로 채워 버리고 입 안까지 검게 한 것은 아닐까. [48p]


- 어둠 속에 사는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희읍스름한 얼굴 하나만 있으면, 신체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생각건데 명랑한 현대 여성의 몸매를 칭송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여자의 망령 같은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것은 어류우리라. 또 어떤 이는, 어두운 광선으로 치장된 아름다움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동양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늘을 만들기 시작하고 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긁어모아 묶으면 잡목의 암자가 되고, 풀어놓으면 원래의 들판이 되었구나“라는 옛 노래가 있는데, 아무튼 우리의 사색법은 그런 식이므로, 미는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와 물체가 만들어내는 그늘의 무늬, 명암에 있다고 생각한다. 야광구슬도 어둠 속에 두면 광체를 발하지만, 밝은 대낮에 드러내면 보석의 매력을 잃는 것처럼, 그늘의 작용을 벗어나서는 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결국 우리의 선조는 여자를 마키에나 자개그릇과 같이, 어둠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으로서, 가능한 한 전체를 그림자에 잠기도록 하고 긴소매나 긴 치맛자락으로 손발을 안으로 감싸, 어느 한 군데, 목만을 두드러지게 한 것이다. 과연 저 균형을 잃은 납작한 신체는 서양 부인의 신체에 견주면 추하리라. 그러나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억지로 그 추함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다실의 도코노마에 백열전등을 다는 것과 같이, 그곳에 있는 미를 스스로 쫓아 보내 버리는 것이다. [49~50p]


- 우리도 옛날부터 피부가 검은 쪽보다는 흰 쪽을 존중하고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그래도 백색 인종의 흰 것과 동양인의 흰 것과는 어딘가 다르다. 한 사람 한 사람 접근해 보면, 서양인보다 흰 일본인이 있고, 일본인보다 검은 서양인이 있지만, 그 흰 것과 검은 것의 상태는 다르다. 이것은 내 경험으로 말하는 것인데, 이전에 요코하마의 야마테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그곳 거류지의 외국인들과 행락을 함께하고, 그들이 출입하는 연회장이나 무도회장에 놀러 가던 때, 옆에서 보면 그들 피부의 흰색을 그렇게 하얗다고는 느끼지 못했었지만, 멀리서 보면 그들과 일본인의 차별이 실로 확실히 가려지는 것이었다. 일본인이라도 좀더 나은 야회복을 입고, 그들보다 흰 피부를 가진 숙녀가 있지만, 그러나 그런 부인이 한 사람이라도 그들 가운데 섞이면, 멀리서 건너보았을 때에 바로 구분이 된다. 그 때문에 그런 여자들은 서양인에게지지 않으려고, 등과 두 팔에서부터 겨드랑이 아래까지 노출되어 있는 몸의 모든 부분에 짙은 백분을 바르고 있지만, 그렇게 해도 역시 피부 속에 가라앉아 있는 어두운 색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청정한 물 밑바닥에 있는 오물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잘 드러나듯이 그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손가락 마디나 콧방울 주위 그리고 목덜미나 등줄기 같은 데에 거무칙칙한 먼지가 괸 듯한 구석이 생긴다. 그러나 서양인은 표면이 흐린 것 같아도 피부 밑이 맑게 비쳐서, 몸의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우중충한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 머리끝에서 손가락 끝까지 불순물이 없고 유난히 맑고 희다. [51~52p]


- 그러나 요컨대 이것도 일종의 푸념이고, 나만 해도 오늘날 변화하는 세상의 고마움을 알고 있으며, 지금에 와서 뭐라고 하기는커녕, 이미 일본이 서양 문명의 대열에 발을 내디디기 시작한 이상, 노인 따위는 내버려 두고 용왕매진할밖에 도리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지만 우리의 피부색이 변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부과된 손해는 영구적으로 짊어지고 가는 것이라고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66~67p]


- “동양인이 정신적 또는 도덕적이라 함은 결과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양인은 덧없는 세상을 버리고 산중으로 은둔하고, 홀로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한 사람을 성인이라 부르고 고결한 선비라 부른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그런 인간을 성인이라든지 고결한 선비라 생각하지 않고, 단지 일종의 이기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용감하게 거리로 나가, 병든 자에게 약을 주고, 가난한 자에게 물자를 베풀고, 사회일반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몸을 희생하며 일하는 사람을 참된 도덕가라 이르고, 그런 일을 정신적인 사업이라 이르는 것이다.” [77p]


- 예를 들어 기독교의 운동에 ‘구세군’이라는 단체가 있다. 나는 그 사업 나름대로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경의마저 품고 있으며, 결코 반감이나 악의를 간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 동기가 무엇이든 불구하고, 저토록 거리에 서서 격렬한, 빠른, 성급한 말투로 설교한다든지, 자유폐업의 원조에 분주하다든지, 빈민가를 집집마다 두드려 위문품을 안긴다든지, 한 사람 한 사람 행인의 소매를 붙잡고서 자선냄비에 기부를 권하는 전단지를 나눠 주는 일 같은, 답답한, 자잘하고 바지런한 방식은, 불행하게 동양인의 기풍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이치를 초월한 기질의 문제이고, 동양인으로서는 당연히 서로 풀었을 심리이다. [78p]


- ‘잠만 자는 것은 독이다’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음식의 양을 줄이고 종류를 줄이면, 그것만으로 전염병 같은 위험에 걸리는 경우도 적다. 칼로리나 비타민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시간이나 신경을 쓰는 사이에, 아무것도 안하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쪽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쪽도 있다. 세상에는 ‘게으른 자의 철학’이 있듯이, ‘게으른 자의 건강법’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89p]


- 자신이 즐겁기보다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을 주안으로 삼는 서양의 성악은 이 점에 있어서 어딘가 갑갑하고, 노력적 작위적이다. 듣기에 부러운 성량이라고는 생각해도, 그 입술이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소리를 내는 기계 같은 기분이고, 일부러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노래하고 있는 본인의 삼매경의 마음가짐이 청중에게 전해질 것 같은 느낌은 없다고 말해도 좋다. 이것은 음악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에 있어서 이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90~91p]


- 일본의 다도에서는, 예로부터 다석에 거는 걸개로 글씨든 그림이든 가리지 않는데, 다만 ‘연애’를 주제로 한 것은 금하고 있다. 그것은 곧 ‘연애는 다도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애를 낮추려는 기풍은 일본의 다도만이 아니라, 동양에서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지금까지 허다한 소설이나 희곡이 있고, 연애를 다룬 작품이 적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 정중한 취급을 받았던 것은 서양풍의 사물을 보는 법이 시작된 이후의 일이며, 아직 ‘문학사’라 할 만한 것이 없던 시대에는, 통속문학이라 한다면 아직 문학의 말류, 부녀자의 심심풀이든가, 선비의 취미 정도로 여겨지던 것으로, 쓰는 것도 멀리하고 읽는 것도 멀리하였다. 실제에 있어서는 걸출한 희곡가나 소설가가 있고, 또 그들의 작품이 일세를 풍미한 적이 있었다 해도, 표면적으로는 품위가 낮은 것으로 쳐서, 한 사람 남자의 생애를 걸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경세제국’을 가지고 문장의 본령이라 할 정도로, 중국 문학의 왕좌를 차지한 줄기인 한문학이라는 것은, 경서이든 사서이든, 어디까지나 수신치국평천하를 목적으로 지은 책들이 주였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한문학 교과서로 쓰였던 책들, 사서나 오경이나 《사기》나 《문장궤범》같은 것은 무릇 연애와는 가장 연줄이 먼 것으로, 예전에는 저런 것들이 참 문학, 정통의 문학이라 생각되었던 듯하다. 그것이 메이지가 되면서부터 츠보우치 선생의 《쇼세츠신즈이》가 나온다든지, 셰익스피어와 지카마츠, 무파상과 사이카쿠의 비교론이 시작된다든지 하여, 차례로 희곡이나 소설을 주류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그런 눈은 실은 우리의 바른 전통은 아니었던 것이다. 소설이나 희곡은 ‘창작’이었고, 사학이나 정치학이나 철학은 ‘창작’이 아니고, 그리고 또 창작하지 않으므로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은 보기에 따라서는 무척 옹색하다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우리의 전통에 따라서 서양의 문학을 본다면, 베이컨이나 매콜리나 기번이나 칼라일 같은 이야말로 정통이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같은 것은 살짝 감추어 두는 쪽이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96~98p]
- 시대에 따라 작자에 따라 미인의 형태에 웬만큼 변화는 있을지라도, 저 유명한 다카요시 겐지 이하 마키에에 있는 미녀의 얼굴은 누구라도 같고 전혀 개인적 특징이 없어, 헤이안 시대의 여자라는 것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가 생각할 정도이다. 우키요에에 있어서도, 배우의 초상화는 별도로 하고, 적어도 여자 얼굴에 관한 한 우타마로에게서는 우타마로가 좋아서 그린 얼굴, 하루노부에게서는 하루노부가 좋아서 그린 얼굴이라는 것은 있지만, 동일한 화가는 끊임없이 같은 얼굴만을 그리고 있다. 그들에 제재로 하는 여자의 종류는 유녀, 게이샤, 여염집 처녀, 부인 그밖에 갖가지인 데도, 언제나 같은 얼굴에 다른 옷이나 머리 모양을 준 데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화가가 이상으로 삼아 그린 많은 미녀의 얼굴에서, 그 누구라도 공통된 전형적 ‘미인’을 상상하는 일이 가능하다. 말할 것도 없이 옛 우키요에의 거장들이 모델에 대하여 개인적 특색을 분별해낼 힘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또 그것을 그려낼 기술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개인적 색채를 지워 버리는 쪽이 한층 아름답고, 그것이 그림 그리기의 마음가짐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리라. [133~134p]


- 일반적으로 동양의 교육방침은 서양과는 반대로, 될 수 있는 대로 개성을 죽이는 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문학예술이라 해도, 우리가 이상이라 여기는 바는 이제껏 누구도 가 보지 못한 새로운 아름다움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옛날의 시성이나 가성이 다다랐던 경지에 자신도 도달하는 것에 있었다. 문예의 극치-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예부터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었고, 역대 시인이나 가인은 그 한 가지를 되풀이해서 노래하고, 어떻게 해서든 정상에 이르려고 노력한다.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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