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위한 디자인

지은이 / 나이젤 화이틀리 | 옮긴이 / 김상규

by Joong

사회를 위한 디자인
나이젤 화이틀리 지음
김상규 옮김
초판 1쇄. 2004년 8월 14일
2판 1쇄. 2012년 10월 25일
홍디자인(서울시 강남구 삼성1동 153-12 우)135-878)


- 옮긴이의 글
결론적으로, 이 책이 원저자의 시점에서 20년 번역자의 시점에서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의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책 속의 낱말들은 그대로 이지만 그것의 독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7p]


서론
- 재평가의 첫 번째 단계는 ‘디자인’과 ‘디자이너라는 말만큼이나 남용되어온 ’창의적creative'라는 단어를 유보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 디자이너와 디자인 언론은 -죄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패키지의 아주 사소한 부분을 바꾸는 일마저도 ‘창의적인 리디자인’이라며 환호했다. ‘창의적인 전문직’은 허영에 찬 황제를 위해 새로운 디자이너 의상을 성공적으로 디자인하는 직업 같고, ‘창의적인 회계’라는 말은 합법적으로 재정적인 난국을 피해가는 것에 대한 완곡한 표현쯤으로 들린다. 본질적인 오류를 지닌 체계를 단순히 표명하는 것에 불과한 피상적인 지적에서 나아가 이제는 좀더 깊이 있는 평가를 내려야 한다. [18~19p]


- 실로, 디자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 - 디자인의 명시적이고 암시적인 가치 및 우선순위,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자신과 사회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 - 는 디자인 잡지나 책에서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모의의 결과라는 것이 아니라, 리디자인과 재포장, 변경이라는 표피적인 활동과 최신 디자이너 제품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이 더 이상 화젯거리나 흥미로운 일이 못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디자인 언론은 디자인의 본질과 역할, 사회적 위치에 대해 논쟁을 벌일 공간을 너무나 조금만 만들어놓았다는 데 대해 공정한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출판사는 애초에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시장의 힘에 부응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갖고 있다. [22~23p]


1 소비자 주도 디자인
- 브로이어는 모더니스트 디자인을 “목적과 그에 따라 요구되는 구조를 벗어나서는 어떤 특정한 스타일도 표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스타일이 없다 styleless'"라고 기술했다. [28p]


- 만약 가장 간결하고도 폭넓은 용어로서 디자인 프로세스가 창자고가 생산, 소비를 중재하는 것이라고 하면, 모더니스트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창의성(그들이 제기한 창의성은 주관적인 변덕이라기보다는 객관적인 분석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과 대량생산의 프로세스에서 발생된 요구에 치우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소비는 제조되었을 때를 가정한 일종의 추정된 결과였으며, 실제로도 대부분의 모더니스트 디자인은 단지 프로토타입 단계에 물러서서 공예적 방법으로 만들어졌고, 생산되더라도 아주 적은 수량에 불과했다. 사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주관적인 반응 - 사물의 사회적이거나 모더니스트 세계 - 이성적이고 비감성적이며 기능적이고 진지한 것으로 추측되는 - 의 디자인은 사람들이 살아야 할 바를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느꼈느냐 하는 것이었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성적 미학이 함께하는 이성적 세계에서는 물질문화의 심리적 역할이 인식되지 않았다. [32p]


- 1920년대 후반과 공황기의 미국에서 제조업체들은 디자이너 또는 흔히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이 요즘 말로 ‘부가가치’라고 할 어떤 것 - 당시에는 ‘눈길 끌기 eye appeal'라는 말로 통용되었다 - 을 제품에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스타일리스트란 제품을 더욱 호소력 있고 그래서 더욱 사고 싶게끔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것을 얻고자 미국디자이너들은 소비자가 이해할 만한 - 그리고 즐길 만한 - 상징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1930년대에 그러한 상징은 운송수단과 고속 여행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곧 속도, 역동성, 효율, 모더니티를 함축한 유선형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이 대유행은 라디오나 전기 히터, 진공청소기, 다리미, 토스터, 물주전자, 선풍기, 조명, 금전 등록기, 심지어는 스태플러와 연필깎이에 이르기까지 기능적으로 필요하지도 않거나 심지어 대단히 부적절한 유선형 스타일의 제품을 번성시키는 동기를 유발했다. [35p]


- 게다가 제품에 최신 유행의 외양을 부여함으로써 로위는 그것이 2, 3년내에 유행에 뒤쳐져 보일 것이라는 점을 사실상 보증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스타일 진부화를 구축하였다. 『소비자 설계』에서 셸던과 아렌스는 생산자들이 스타일 진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례를 제시했다. 그러한 것이 ‘자신의 사업을 잠식해 들어온다.’면서 무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부화는 또한 긍적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데 예전에는 닫혀 있단 많은 분야들을 개방시켰고, 어떤 것이 폐기될 때마다 그것을 대신해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것을 존재하게 했다. 그는 우리 모두가 몇 년씩 같은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씩 쓰고 버리는 것을 목격한다. 그가 자동차를 새로 바꾸는 것은 기계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는 많은 물건들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외형이 진부해진다는 점을 깨닫는다.
[37~38p]


- 한 비평가는 고소비/‘역동적인 경제’ 접근이 어떻게 자동차 디자인의 토대가 되었는지를 지적하면서 1950년대의 자동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언급했다.
…역사적인 물자 부족이 가져다 준 제한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경제 상황에서, 소유주에게는 소비를, 제조회사에게는 생산을 하도록 가르쳤다. 과소비를 통한 낭비가 경제의 필수적인 부분 중 하나가 되게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게 했다.
[40p]


- 리핀코트는 디자이너들이 ‘상품과 서비스의 흐름을 가소고하하기 위해 새로운 구매 저항을 제거하기’라는 보편적인 목적을 가지고 연구원과 광고인 주변에서 일해야 한다고 파악했다. 눈여겨볼 것은 이것이 심리적 차원에서 발생해야 하는 것임을 리핀코트가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42p]


- 테렌스 콘란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기를 멈추고 필요가 욕구로 변해가던 1960년대 중반쯤은 무언가 묘한 시기였다. …욕망을 창출해야 했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보다 ‘원하는’ 물건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디자이너들이 더욱 중요해졌다.” 라고 회상한다. 해비태트는 사회적으로 유동적이고 젊은, 중산층의 새로운 사회가 나타날 것을 예고했다. 콘란은 해비태트를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을 위해 자체 가구와 텍스타일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만든 것도 판매하는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판매점으로 설명했다. [44p]


- 해비태트는 자체 디자인뿐만 아니라 목재 성형 가구, 르 코르비쥐에와 비코 마지스트레티의 의자, 조명, 장난감, 밝은 색의 양철제품, 직물, 부엌용품(특히 ‘프랑스 농가품’ 변형), ‘아류below stairs' 빅토리아풍의 흔한 모조품도 팔았다. 이는 스타일과 시대를 절충적으로 혼합한 것이었다. [45p]


- 기본적으로 해비태트의 제품군은 각각의 물건이 나머지 것들과 잘 ‘어울릴 만한’ 것으로 선별되었다. 이는 1980년대의 넥스트 같은 회사가 채택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종합 의상실’ 같은 접근법을 예고해 주었는데, ‘장식 계획을 선택하는 일이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것처럼 쉬워지도록’ 하려고 의상에 쓰이는 접근 방법을 가정용품에 적용한 것이다. [45p]


- 해비태트는 단순히 판매하기 위한 상점에 머물지 않고 일종의 사회적 확인을 구입하는 라이프스타일 클럽 같은 곳이었다. [45p]


- 레빗의 말을 인용하자면, 철저하게 마케팅 지향적인 회사는,
… 소비자들이 사고 싶어하는 가치 만족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려고 애쓴다. 회사가 판매를 위해 내놓은 것은 일반 제품과 서비스만이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얼마간의 유통기한으로 생산되었는가 등의 소비자에게 유효한 생산 정보 또한 포함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판매하기 위해 내놓은 것은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로부터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판매자는 제품이 마케팅 노력의 결과가 되는 식으로 구매자에게서 단서를 얻는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디자인은 기업의 전략적 비즈니스 계획의 일부가 된다. [48p]


- 『디자인 디멘션』(국내에는 『산업디자인』-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88-으로 번역된 바 있다_옮긴이)에서 크리스토퍼 로렌즈는 레빗의 통합 마케팅 철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몇몇 회사 - 소니 필립스, 포드, 존 디어, 베이커 퍼킨스 - 를 다루었으며, 독자들은 기업이 이론을 실전에 적용한 방법을 묘사한 이 뛰어난 책에서 가닥을 잡아 나가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마케팅이 어떻게 소비자 주도 디자인의 개념 정립에 기여했는가 하는 점이다. [49p]


- 버처는 “소비자가 지금 원한다고 여기는 것에 반응하는 것”은 좋은 디자인이 아니며 “미래에 그가 원하게 될 것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52p]


- 1980년대 소비자 주도 디자인의 최대 성공 사례중 하나는 스와치 시계였다. 스와치 시계는 1983년에 출시되었고 그 이후 신제품 개발은 스위스 회사 에타 Eta의 성장 가능한 미래를 보장했다. 70년대 스위스 시계 산업은 값싸고 정확한 디지털 시계의 압력으로 인해 붕괴 위험에 직면했는데 당시 디지털 시계는 극동 지역에서 제조되어, 일반적인 소매 유통을 벗어나 창고 같은 매장에서 충동구매에 의해 팔려나갔다. 스위스 기업은 높은 임금과 제조비용 부담으로 인해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 대신, 라이프스타일 제품 - 전 세계 젊은 층과 디자인 감각을 지닌 소비자를 위한 패션 액세서리 - 으로 스와치를 시장에 내놓았다. 스와치에서 연상되는 다양한 생김새와는 달리, 자동 생산 공정에 따른 모듈 구성 방식의 표준화 덕택에 평균 90개에 이르던 시계 부품이 단 51개로 줄었다. 초음파 용접과 리뱃팅이 포함된 새로운 정밀 금형 공정으로 인해 새로운 기술을 갖춘 에타는 - 제품 지향적이기보다는 소비자 지향적이 되라는 레빗의 접근법을 기억하며 - 정밀 금형 제작사로서 발돋움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전자 측정과 조절 설비에 대한 다른 산업 분야들의 수요까지 충족시키게 되었다. [53~54p]


- 레빗은 “꽤 많은 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 나라의 특성에 융화하려는” 다국적 기업이 ‘글로벌 기업’에 의해 대체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데, 글로벌 기업은 “모든 나라에서 절대적인 것으로 통하는 물건을 알고 있고 어디에서나 판매되는 절대적인 물건 하나에 자본을 투입하여 모두가 길들여지게 만든다.” 피자, 중국음식, 코카콜라, 랭글러 청바지와 록 뮤직이 에스페란토어만큼이나 보편적인(그리고 뿌리 없는) 언어가 되면서 지역적 전통과 관습이 세계화의 상황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56p]


- 로스 사가 추진한 연구 결과에서, 라디오 청취자들은 텔레비전 시청자와 달리, 정기적으로 고정 청취를 하며 특정한 시간에 (욕실, 침실, 부엌 등의)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채널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유형의 청취 습관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가족 구성원, 부부 또는 개인이 청취자 가까이 라디오를 옮겨가며 듣는 것이 아니라 몇 대의 라디오를 특정한 몇 군데에 고정시켜 둔다는 점이다. 행동 패턴에 근거를 둔 이 결론에서, 디자이너들은 전원 스위치를 쉽게 누를 수 있게 하는 반면, 채널과 음량을 포함한 조절장치는 덮개 뒤쪽으로 보이지 않게 배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59~60p]


- 실질적인 쟁점은 소비자 주도 디자인이 과연 사회 문제의 해결책에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그 문제의 원인이지는 않은가 하는 것이다. [62p]


- 어떤 이들은 소비자 주도 디자인도 착취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비판할 것이다. 즉, 세련되게 만드는 방법들이 조작에 잘 넘어가는 대중을 현혹시키고 꾀어내는 데 이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대중이 구입을 종용하는 디자인 유형을 실제로 원하지는 않으면서도 원한다고 믿게 된다는 데까지 확대된다. 이 주장은 대중을 수동적이고 조작에 잘 넘어가는 존재로 가정하며, 제대로 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적으로 합리적인 소비자들이 될 것이라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다. 조작성은 익히 거론된 단어이고 소비자 주도 디자인에 아무런 조작이 없다고 변명할 여지 또한 없다. 우리가 ‘기교를 부린다’거나 ‘반응을 형성한다’는 식으로 그 낱말을 좀 더 얼버무려 사용한다면 거기에는 확실히 많은 조작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종종 조작된 것을 즐거이 받아들이고 또 기꺼이 그것에 참여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거나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고, 또 물건을 살 때도 그런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삶에는 소비자 주도 디자인을 통해 접하게 되는 유희와 욕망에 대한 요구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소비자 주도 디자인이 필요보다 오히려 욕망을 채우므로 비도덕적이라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조율하는 가치 체계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오히려 강력하고 암시적인 가치로서 지배적인 문화적 사회적 기준이 되어왔다는 수준까지 이르러야 한다. [64p]


- 캠벨은 필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쾌락에 초점을 맞춘 관심으로의 환은, (필요조건들이기는 하지만) 부유함과 풍족함뿐 아니라 (정해진 대로 질서정연하게 반응하는 고전적이고 귀족적인 관습을 대체하여 자리 잡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적 본성에 대한 낭만적 강조, 그리고 산업화의 영향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캠벨이 기술한 포괄적인 역사적 조건은 당대의 소비자연구에 특히 적합하다. 현대 소비자의 정신은 “이처럼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현대 소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고 할, 이론의 여지가 없이 끝없는 욕구 추구”라고 캠벨은 단정한다. 현대 소비자는 “한 가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곧장 그것을 대신하려는 몇 가지가 더 쏟아져 나오는 뻔한 대체의 과정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술이나 마약에 물리적으로 중독되는 식의 단편적인 시각으로 정의된 편협한 중독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66~67p]


- 미국의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레이먼드 로위는 자서전의 제목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말라Never Leave Well Enough Alone』(1951)라고 붙였는데, 이유인즉 제품의 외형을 계속해서 새롭게 고치면 디자이너에게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갱신updating은 소비자 주도 디자인의 접근방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색이다. [70p]


- 앞에서 언급한 아동복 가게 안에서 유행에 뒤처져 보이는 이미지를 접하고서 요즘의 쇼핑객이 정말로 불안을 느낄까?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의 변화를 소비자가 주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 회전목마에 올라탄 이상, 제조업체는 거기에서 내려오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은 회전목마가 약속하는 매혹적인 쾌락에 대해 도덕적인 가책을 느끼지만, 제조업체와 기업들은 그들에게 자리를 깔아주고 있고 누군가 거절하더라도 다른 디자이너들이 그 기회를 붙잡으려고 달려들 것이다. 결국에는, 소비자들이 목마에 올라타게 된다. 하지만 소비자는 자신이 운임을 지불하는 범위(제조업자나 디자이너들이 판매한 탑승권에 상응하는 정도)에서만 회전목마를 통제한다고 말할 수 있다. [75p]


- 시장(또는 마케팅) 세분화는 사회적 다원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시장에서는 당신이 돈을 충분히 가졌을 때에나 권한을 갖게 된다. 장애인 집단과 노인들부터, 상당수의 소수 민족들, 늘어나는 ‘하위계층’에 이르기까지, 사회 내의 많은 집단들이 최저 생계비 정도의 수입(세금을 공제한 실소득은 말할 것도 없다)에 의존하고 있고 다라서 시장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83p]


- 디자이너들은 대개 스스럼없이 자신을 그런 요구에 맞추어 나간다. 디자인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나 디자인 언론의 통신란을 보면 디자인과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의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이데올로기적인 언급에는 무심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디자이너들이 곧잘 논의하는 것은 클라이언트와 클라이언트의 소비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 즉 성공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그것을 구입하는 사람을 만족시키고 또 그것이 이윤을 보장하기 때문에, 그 기업을 만족시키게 된다는 식의 내용이다. 이것은 도덕관념이 없는 디자이너의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서,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면서도 이 욕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사회적으로 득이 되는지, 자원이 소모되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84p]


- 제품들의 이미지는 점차 피상적인 환경 친화성을 끌어들여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후의 체제는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87p]


- …문화적 시각에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소비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미국으로부터 배우기 때문에 세계화는 실제로 미국화를 의미한다. 물론 많은 제품들 - 일본의 VCR, 네덜란드의 면도기, 독일의 커피 메이커 - 은 미국산이 아니지만, 그 제품들이 조장하는 라이프스타일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모델을 따른다. 1930년대를 돌이켜보면 … 미국의 산업 디자이너들은 제품을 차별화하고 시장을 세분화하고, 제품에 감성적 가치를 더하는 기술을 이미 개척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시장이 전지구적인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다른 나라의 사업가와 디자이너들이 미국의 경험을 훌륭하게 학습한 덕이다. [89p]


- 문화적 관습은 부분적으로 경제 체제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체제만큼이나 바꾸기 힘들다. [89p]


2 그린 디자인


- 통칭 ‘녹색’이 20세기말의 키워드가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 저널의 조사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에 신문과 잡지에서 ‘녹색’이라는 단어가 한 달 간 3,617번이나 사용되었다고 한다. 80녀대말에는 3만 777번으로 빈도가 한결 높아졌다. 그린 디자인 비평은 의미심장한가? 아니면 베일리가 고집하듯이 황제의 새로운 이론인가? ‘상식적인 디자인’은 늘 재료를 경제적이고 건전하게 사용해 왔으며 자연 및 자연의 원칙과 조화를 이루어 왔다고 그는 믿고 있다. 베일리는 “그린 디자인은 워킹 슈즈나 음료수 따위의 동어반복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결론짓는다. 그런데 오늘날의 소비자들이 구두 한 켤레가 진짜로 걷는 일을 위해 만들어졌다거나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이 마시기에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91p]


- 그렇지만 녹색이라는 말을 남용하고 정확치 않게 사용하는 위험을 강조했다는 면에서는 베일리의 지적이 옳다. 이는 특히 디자인에 적용되는 말인데, 디자인에서 녹색성은 비교적 부유한 중산층에 호소하기 위해 도입된 마케팅 책략에 지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92p]


- 두 지적 모두가 테크놀로지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집약된 경제 정치 사회체제의 일부라는 건강한 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신 화학공장은 지역사회의 고용창출을 뜻할 수도 있지만 그 지역 주변 대기와 수질의 오염, 일부 직원과 거주민의 장기적인 건강 훼손, 다국적 기업의 세력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94p]


- 『단 하나뿐인 지구』같은 책이 보여준 관심은 당연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곧 했으나 지구 전체에 대한 것이었고,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생활과는 분리된 관념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95p]


-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태학적 체계의 동기와 영향의 연동적인 복합성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거시적 환경 쟁점에 대한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유례없이 풍성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관계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이다. [95p]


- 보고서는 만약 녹색 소비자가 정말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생태학적 중요성의 평가에 따라 결정하는 소비자를 뜻한다면, ‘녹색 소비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종만큼이나 드물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렇지만, 그 용어가 생태학적 관심을 그들의 구매 동기 중 하나로 받아들일 법한 소비자들을 포함하는 데까지 확장된 것이라면 녹색 소비자는 이제 자리를 잡았을 뿐 아니라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99~100p]


- 불교 녹색인들은 가장 기본적인 물건 이외에는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보며 무소유의 간소하고 명상적인 생활 방식을 설파한다. 이 집단에 있어서는 소비 자체가 쇠퇴하는 문명화의 징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적 사회적 소비 습성이 여전히 우세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우리가 더욱 책임감을 갖고서 소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핵심에 놓여 있다. [106~107p]


- 풍요와 세련됨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과 ‘갖고 싶은 것’의 혼돈으로부터 벗어나기란 간단하지도 않고 분명하게 짚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남의 이목, 체면, 사회적 지위와 자존심을 탐색하는 것은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필요인가, 아니면 탐욕스러운 제조업체와 사악한 광고업체가 만들어낸 사회적으로 조장된 원치 않는 요구인가? 그도 아니면 그 탐색은 역사적이고 보편적인 것인데 다만 우리 사회의 물질주의에 기반한 해결책들이 우리 자신과 지구의 평온함을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112p]


- 일반적인 법칙으로 보면, 작업이 특화된 품목일수록 다른 모든 기능들에는 더욱 쓸모가 없다. [114p]


- ‘나는 이 물건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유일하거나 명확한 답은 없다. 물질과 비물질의 기준에 대해 사람들-녹색인들을 포함해서-이 저마다 다른 가치관과 기대와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물을 필요가 잇는 질문이기도 하다. [116p]


- 가정용 기구의 에너지 소비는 복잡한 문제가 되곤 한다. 에너지 효율 램프의 경우, 일반적으로 제조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투입된다(심지어는 플라스틱, 타르와 다양한 잠재적 독성 요소를 포함한다). 의외로, 저효율 텅스텐 전구의 생산과정은 이에 비해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무독성 재료를 사용한다. [119~120p]


- 소비 제품을 생산 수단이나 생산에 필요한 재료, 또는 폐기된 후의 결과와 별개로 여겨서는 안 된다. [121p]


- ‘난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라는 식의 태도를 버려야 하며 디자인한 것이 무엇이 되었든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수명이 다하는 동안 보다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147p]


- 브루넬 대학 생물공학 연구소에 기반한 에덴EDEN 프로젝트(생태학적 필요를 위한 환경 디자인 Environmental Design for Ecological Need)와 아인트호벤 유럽 디자인센터에 속한 밀리온 MILION프로젝트(‘환경을 위한 디자인’을 뜻하는 네덜란드어의 약자에서 딴 이름)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디자이너들이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게 해주는 데이터 베이스를 제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정보 교환과 인식확산을 위해서 디자이너들(그리고 관련된 다른 집단들)은 미국 보스턴에 기반을 둔 코드 CODE(환경을 위한 디자인 연합 Coalition on Design for the Environment), 생태학적 디자인 협회와 같은 국제 네트워크도 형성했다. [148p]


- 클라이언트가 무엇이라도 하게 되는 경우는 오로지 정부나 EC 규제가 구속력을 발휘할 때뿐이다. [149p]


- 아크사
데이비드 데이비스에서 패키지를 디자인한 아크제품은 녹색 미학이 굳이 서민적이거나 소박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환경친화적인 제품에 화려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도입한다. [154p]


- 이제 단일한 ‘녹색 미학’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미와 샌들’부터 ‘디자이너 스타일/멋들어진 것’으로 이어지는 전면적인 스타일의 다변화가 있다. [155p]


- 아직까지 모더니스트와 그린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반목관계에 있다. 모더니스트 디자이너들은 대량생산 과정의 논리 때문만이 아니라 감성을 넘어선 이성, 혼동을 넘어선 질서, 심지어는 자연을 넘어간 인간 의지의 승리를 스스로 표출하는 형태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간결하고 표준화된 제품을 추구한다. 산업주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가졌던 모더니스트들은 그들의 디자인이 과학적인 합리주의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내린 ‘기계미학’을 통해 기계시대를 표현하고자 했다. 녹색 디자이너들은 산업주의와 구습, 즉 자연을 ‘정복’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태도가 빚어낸 생태학적 불균형의 원인이 되는 ‘사람’ 중심의 과학적 이성주의를 거부한다. 녹색인들은 ‘사람man'을 ’인간human'으로 대치할 뿐 아니라, 점진적으로 진보하고 교화된 문명화의 정점으로서의 인류human sapiens를 제시하는 이상주의적 피라미드를 전면적으로 재구축하고자 한다. 인류는 더 이상 자연과 분리될 수 없으며 생태학적 체계와 혼연일체를 이룬다고 이해되어야 한다. [158p]


- 모더니스트들은 ‘재료의 진실성’, ‘표면의 정직함’을 포함해서 ‘미학적 도덕’ 원칙으로 기술될 수 있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런 원칙들은 고전적인 미학의 가치들과 이성주의를 들먹이면서 쉽사리 정의될 만한 것은 아니고 디자이너가 수용한 도덕적으로 우세하다고 추론되는 접근방법, 예를 들어, 시선에 들어온 재료가 다른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식으로 보는 이들을 ‘속이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석조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돌 외장재로 덮은 철골 구조로 된 건물은 미학적 도덕의 견지에서 보면 구제불능으로 여겨졌다. 목재나 베니어 합판 같은 질감의 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녹색 디자이너들은 포스트 모더니스트, 포스트 팝 세대에게는 당치 않은 이런 식의 지침, 즉 디자이너가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만 특별히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은 더 이상 ‘재료의 진실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으며 다른 재료를 흉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원목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베니어가 점점 더 흔하게 사용된다. 영국의 목재 무역 연합에 따르면, 베니어 사용이 근래에 증가하고 있으며 가공 기술이 발달해서 MDF 같은 성형목재에 얇고 장식적인 원목 표면을 말끔하게 밀착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일 뿐 아니라 최종 제품이 저렴하기까지 하다. 모더니스트들이 멸시한 디자인 유형의 가장 혐오스러운 특징인 위장하는 것과 흉내내는 것 두 가지는 몇몇 녹색 미학에서는 수용할 만한 부분이 된 것 같다. [159~160p]


- 녹색 문제들은 모두에게 닿아 있으며 필연적으로 소비와 디자인의 모든 국면에 존재한다. 그런 디자인은 마치 별개의 디자인 범주나 유형인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기능’이나 ‘스타일’의 의문들이 모든 디자인 문제를 아우르는 것처럼 ‘녹색’ 요소들도 빼놓을 수 없는 - 실제로 중심이 되는 - 부분이어야 한다. 어떤 특정한 측면이 그 자체로는 대수롭지 않지만 보다 크고 상호 연계된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녹색 문제들이 갖는 특성이다. [162p]


3 책임 있는 디자인과 윤리적 소비


- 장애인을 위한 제품들은 소비주의를 전제로 하는 이윤 동기의 가혹함을 보여주곤 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10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으면서, 기본적으로 그와 똑같은 부품으로 구성된 단순한 보청기가 300달러에서 1,100달러 사이에 판매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파넥은 묻고 있다. 그 대답은 어느 정도는, 생산 규모 때문이다. 라디오의 경우 수백만 개의 똑같은 제품이 국제적으로 제조되고 판매되는 반면, 보청기는 극히 소량만이 국지적으로 제조, 판매되는 것이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민간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보청기를 생산하여 매우 싸게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니면 국제적으로 제조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각 부품 단가가 자연히 낮아지게 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디자인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쟁점 - 공공 영역에서 자원의 소유, 통제, 분배 문제 - 에 직면하게 된다. [175p]


- 누구도 파파넥이 그의 디자인 해결책을 가지고 불합리한 이윤을 얻으려 한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특허와 저작권 제도가 사회의 계몽적인 디자인 역할에 이롭지 않다고 파파넥은 주장했다. [179p]


- 심리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심리와 사회 속에 오락과 환상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인식해왔다. 사실, 예술과 장식은 이것들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초이성주의와 진지함으로 묘사되는 파파넥의 디자인관은, 그가 우리의 문화에서 멋들어진 스타일의 자동차나 카세트 라디오 같이 의식적인 디자인된 소비주의 품목으로 곧잘 접하는 재미와 판타지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볼 때, 확실히 한계점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즉, ‘재미’만 지나치게 추구하면 소비주의 가치관에 빠져들게 되는 한편, 파파넥식으로 재미를 거부하면 (그저 말로만 그치는 것이라 해도) 진지한 것을 더 신중하게 만들고 ‘군자연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신중함이 바로 상상력 없는 이류 디자인식 해결안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184~185p]


- 비록 소비주의가 소비자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메커니즘 - 소비자를 ‘왕’으로 모신다거나 ‘소비자 주권’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언급된다 - 으로서 우익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제조업체나 생산자가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바로 그들이 자원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조합이 제시한 제품들에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각별한 소비자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의 계획서에 자원을 위임할 의사가 없었던 루카스 항공사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196p]


- 생산자의 관점에서 ‘최고’였던 기계가 ‘소비자’의 관점에서 ‘최고’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므로, ‘소비자 선택’이라는 허울은 ‘생산자 선택’이 되기 쉬우며, 이는 자원 집약적인 제품의 경우 특히 심하다. [197p]


- 디자이너들에게 있어 한 가지 훌륭한 절충안은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전략적으로 두 가지 이유에서 효과가 적었다. 첫째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공 영역이 ‘사유화’ 결과로 감소추세에 있으며, 둘째로, 남아 있는 공공 영역도 사용가치가 교환가치로 대체되는 ‘기업 문화’ 기준에 맞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공공 영역에서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199p]
- 집합적인 ‘우리’의 개념은 특히 ‘우리’가 ‘노동자로서 우리’를 지칭할 때는 복수적이고 다문화적인 사회 현실에 정착하기 쉽지 않다. 사회에 대한 지극히 단순하고 시대책오적인 시각 - 노동자 대 압제자 - 은 자본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거나 전혀 거부하지 않는 양극단을 조성할 뿐 두 측면의 장점을 결합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유용한 제품 운동에 걸림돌이 된다. [201~202p]


- 제3세계 국가들 - 대개 정의상 - 은 과잉이라기보다 결핍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특정한 모양이나 스타일로 물건을 구입하기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소유한다. 그러나, 디자인이 서구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은 제3세계는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는다. 지위와 권력을 부여하는 제품의 역할은 서구 텔레비전 프로그램, 특히 멜로 드라마에서 날마다 전파되며 이것이 인도에서 브라질에 이르는 빈민촌에서 탐욕스럽게 추종되고 있다. [205~206p]


- 개별 제품보다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인다는 점이 ‘윤리적’ 소비와 ‘녹색’ 소비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오존에 해가 되는 에어로졸이라든가 열대성 활엽수와 재활용되지 않는 소재를 사용한 제품 반대 캠페인은 특별한 제품의 디자인이나 부품을 변경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제품들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회사보다 제품을 검토할 때의 분명한 단점은 몇몇 환경친화적인 제품들이 환경친화적인 기업에 비해 보잘것 없는 노력을 기울인 회사에서 생산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218p]


- 달리 말하면, ‘클라이언트’라는 용어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사용자, 수용자 또는 구매자들이 아닌 디자이너의 고용주를 뜻한다. [225p]


- 1980년대의 디자인 붐, 정부의 규제 철폐와 기업 문화의 성장에 뒤이어,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전문직으로 보기보다는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이 사회가 디자이너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바를 분명히 해주었다면 반드시 유감스러워할 만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마케팅 주도 디자인의 가치관이 현재와 미래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전적으로 전문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디자이너의 역할과 윤리의 문제와 직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 디자인에 대한 가장 흔한 정의 중 하나를 뒤튼다면 - 디자인은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로 남게 될 것이다. [227~228p]


4 페미니스트적 관점


- 디자인을 철저한 문제해결 활동으로 생각하는 관점은 항상 한계를 지녀왔다. 제품은 기본적인 기능과 사용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구매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제품은 지위를 입증하고, 위신을 부여하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잠시뿐일지라도)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구매되기도 한다. 어쩌면 많은 제품들 - 예를 들어 세제 같은 것 - 은 본질적으로 고정관념화되어 있지는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지만,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제품의 이미지에서 기능을 분리해내거나 교환가치에서 사용가치를 깔끔하게 구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당신이 미디어와 광고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보호막을 갖추지 않는다면, 물건을 구입할 때 제품과 제품의 의미가 전적으로 혼합된 상태를 소비하는 것이 된다. 코카콜라와 같은 라이프스타일 제품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광고인과 마케터들의 바람은 시장에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게 되도록 그들이 의미를 고착시키는 것이다. 물론 독자들은 이런 사실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제품의 의미가 단지 개별적인 형태와 장식의 분석을 통해 나올 수만은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현대문화 비평가들은 우리가 형식주의 비평가들이 상정했듯이 추상 형식에 맞추어진 사심 없는 미학적 능력으로 미술갤러리 - 시장은 차치하고 - 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소비주의 제품이든 우리의 지각과 이해를 형성하는 외부의 사회문화적인 요소들로 분석한다. [236~237p]


- 옷은 성 정체성 구성과 여성성에 형태를 부여한 가장 가시적인 수단일 것이다. 여성의 옷은 ‘예쁘고’, ‘섬세하고’, ‘장식적’이거나 ‘섹시하다.’ 그것은 (여성) 착용자의 편안함보다는 (남성) 감상자들의 만족을 위해서 디자인되었다. [239p]


- 전자레인지는 편리한 데다 시간을 절약시켜 준다고 여겨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가사부담을 늘리는 또 하나의 제품이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둘러 앉아 같은 음식을 먹기보다 ‘융통성’을 제공한다며 전자레인지가 판매되었는데, 이는 사실상 가족 내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들이 가사노동을 나눠서 한다면 주부의 가사 부담이 줄어들겠지만, 가족들이 식사할 때마다 주부가 매번 챙겨주어야 한다면 시간을 다 빼앗겨버리고 마는 것이다. 전자레인지의 이점과 융통성은 결국 생산자 (주부)의 시간을 대가로 고스란히 소비자(가족들)의 혜택으로 넘어간다. [247p]


- '무엇인지 아는 것‘과 ’방법을 아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무엇을 실행하는 것에 대한 공개적으로 정리된 규칙을 칭하고, 후자는 잠재적이고 내면화된 지식을 의미하다. ’암묵적 지식‘은 ’알고는 있지만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비언어적인 것으로서 경험에서 비롯되며 종종 어떤 일을 적합한 방식대로 하는 것과 그것을 잘 하는 것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요리나 테니스는 규칙을 알거나 교육을 받음으로써 누구라도 습득할 수 있지만, 경험, 평가 및 ’교정‘의 필요에 근거해 한 번 규칙을 내면화하여 그 행위를 위한 감feeling을 개발하고나면 그것을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50p]


-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지만 그곳은 분명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꽤 성공한 남성 기업가의 세계는, 공영 주택단지에서 혼자 자녀를 키우는 실업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페미니스트의 세계와는 정말로 많은 차이가 있다! [257p]


- 1950년대의 몇몇 가옥은 부엌을 앞쪽에 두어서 주부들이 길가와 어린이 놀이터를 내다볼 수 있었고, 따라서 여성의 고립감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266p]


5 앞으로의 길?


- 현재의 상황은 흔히 ‘포스트모던’하다고 형용되지만,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가 남용되면서 상황을 명료히 설명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미국의 문화사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의 영향력 있는 에세이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의 두 번째 부분을 대입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제임슨이 지적하듯이 ‘후기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말기가 인라, 이 책이 말하고자 한 소비주의 사회와 소비자 주도 디자인의 발전 분석과 일치하는 성숙기를 의미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오늘늘 미적 생산은 대체로 일용품 생산으로 통합되었다. 유례없이 높은 폭의 매출 변동에 따라 언제나 새로워 보이는 상품들(옷에서 비행기까지)의 신선한 유행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경제적 절박감은, 이제 점점 필수적으로 되어가는 구조적 기능과 위상을 미적 혁신과 실험에 할당하고 있다.
우리가 구체적인 정의를 통해 깨닫고 있듯이, 이것이 디자인의 심미화와 점점 더 급속한 제품 혁신이 이루어지는 마케팅 주도 디자인의 상황이다. [273~274p]


- 소비자들은 정보에 접근할 필요가 있고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책임 있고’ 환경적으로 깨어 있으려 하는 디자이너들이 느끼게 되는 되풀이되는 좌절 중 하나는 정작 재료, 생산 공정, 에너지 소비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술적으로 복잡해서 이해하고 해석하기 아주 힘든 경우도 많다. [289p]


- 우리 모두가 어쩌면 때때로 ‘패스트푸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 하나의 체계로서 불만족스럽고 유해한 것이다. [290p]


- 하지만 음식에 대한 지나친 다이어트가 곧 개인의 병을 부르듯, 재미와 치장에 대한 지나친 절제는 사회와 환경의 병을 불러오게 된다. 다이어트와 디자인의 근본적 요점은 재미와 상상이 곧, 건강유지를 위한 필수 구성 성분이라는 것이다. [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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