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각

지은이 / 로저 세퍼드 | 옮긴이 / 김정오

by Joong

마음의 시각
1990 First published in the United States by W.H. FREEMAN AND COMPANY
1993년 3월 10일 인쇄
1993년 3월 15일 발행
저자 로저 세퍼드(Roger N. Shepard)
역자 김정오
발행처 주식회사 동아출판사(서울특별시 구로구 독산1동)


1. 앞글
- 착시, 애매한 도형, 그리고 불가능한 대상을 나타내는 그림은 보는 순간 비상한 주의를 끌기 마련이다. 이런 그림은, 바깥의 현실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즉각적이고 습관적인 인식과 다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심층적인 수준에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눈 앞의 어떤 것이 처음에 그렇게 보였던 것과는 매우 다름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그 견고성과 안정성 때문에 의지해 온 이 세계가 갑자기 흔들리고 마치 꿈 속에서처럼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인다. 이 그림들을 계속해서 자세히 보면, 이러한 착오는 단지 관찰자의 눈에만 존재하고 관찰대상인 이 세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만족하게 된다. [11p]


- 각 상황마다 사람의 지각 체계는 과거에 성공적이었고 지금은 완전히 자리잡은 처리 방식들을 자동적으로 적용한다. 만약 어떤 상황이 우리 조상들이 경험해 왔던 것과 상당히 다를 때, 이 체계는 틀리거나 모순되는 해석들을 내놓을 수 있다. [13p]


- 지가 연구자들은 최근 기술의 향상 때문에, 과거의 화가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화가들은 벽, 캔버스, 또는 종이 위에 형체, 색깔, 그리고 결 무늬들을 원하는 대로 흐트러 놓을 수는 있었으나, 그 결과는 여전히 평평한 이차원 표면으로 남아 있었다.[17p]


- 화가는 나중에 관람자들이 그 그림을 볼 때 자유롭게 택하는 시점(視點)들에서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정보원들을 제어할 수 없다. 따라서 삼차원 장면들을 제대로 나타내려는 화가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람자의 두 눈이 제공하는 양안시차는 그림이 결국은 단지 이차원 평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낸다. 이 같은 정보는 심지어 한 눈만 있는 관람자에게도 주어지는데 이 관람자가 시간을 두고 관람 지점을 바꾸면 운동시차(역자주 : 깊이 단서인데 관찰자가 움직이면 가까이 있는 물체들이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멀리 있는 물체들은 더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로부터 얻는 관련 정보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현 지각 실험실에서 쓸 수 있는 기계장치들, 예를들어 컴퓨터가 제어하는 입체시자극판, 홀로그램 등은 이제 잠재적으로 더 다양하고 더 시각적으로 강력한 예술의 매체로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예술가처럼 심리학 실험실에서 나오는 실험 결과들이나 지각이론들을 연구하기보다는 예술작품이 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주관적 반응의 체험에 더 관심을 가진다. 미술관과 화랑을 방문하는 많은 관람자들은 실험심리학자들이 시지각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보고하는 전문잡지를 찾아 읽을 생각이 별로 없다(이것은 연주회에 가거나 녹음을 듣는 사람들이 악보다 음악학 논문들을 연구할 생각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8~19p]


- 마음은 기계나 몸과는 달리 가시적인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아는’ 한 마음에 관한 각자의 지식은 사적이고 주관적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한, 그 지식은 해당하는 몸들이 장시간에 걸쳐 보이는 행동에 그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 [41p]


2. 그림
A(깊이 착시)
- ‘깊이 착시’는 제시된 어떤 도판에 부여하는 깊이 해석 때문에 생긴다. 그림 1-8에서 접은 카드의 경우에 관찰되는 지각적으로 뒤바뀌는 착시는 ‘깊이 착시’의 한 예이다(물론 애매한 깊이의 예도 된다). 이 절에서 다루려는 시각 도판들은 가능한 삼차원 장면들을 평평한 이차원으로 묘사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자극에게 부과하는 어떤 지각 해석을 일반적으로 자각하지 않으므로 보통 그들의 경험에 어떤 착시적인 측면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착시적인 측면은 예를 들어 어떤 그림에서 매우 다르게 보이는 선의 길이나 모양, 또는 면적이 실제로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이 때문에 여기서 제시되는 착시에는 다른 시각 이상과는 달리 그림에서 어떤 부분이 크기, 또는 모양에서 같은지를 자세히 가르쳐 주는 짧은 설명문이 첨부되어 있다. [54p]


B(애매한 깊이)
- 애매한 깊이로 분류된 그림들은 역시 묘사된 삼차원 물체나 장면의 깊이 해석과 관련된 애매한 그림들이다. 이 애매성은 묘사된 물체나 장면을 보는 관찰지점이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이차원 이미지에 어떤 구체적인 정렬이나 일치를 초래하므로 생긴다. [61p]


C(애매한 대상들)
- ‘애매한 대상’이란 그 깊이상 전역 구조나 형/배경의 체제화에서 애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둘, 또는 그 이상으로 구분되는 대상들 중 하나로 지각될 수 있는 것을 일컫는다. 앞서 살펴본 예들 중 그림 1-11의 토끼/오리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모든 유형의 애매성에서 그러하듯이 대립되는 해석들이 상호 배타적이어서 동시에 경험될 수 없을 때 이 효과는 가장 강력하다. [68p]


D(애매한 형/배경)
- 애매한 그림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어떤 지각적 역전이 잇게 되면 배경이었던 것이 형으로 튀어나오고, 형이었던 것은 배경으로 사라지게 되는 식의 애매성이다. [76p]


E(불가능한 형/배경)
- 이 뭉치의 각 그림은 얼핏 보기에는 삼차원 세계에 실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대상은 전체로서 비대상, 또는 배경으로부터 지각적 분리를 거부하고, 따라서 ‘불가능한 대상’의 명확한 사례가 된다. [86p]


F(불가능한 깊이)
- 이 제목에 묶여진 ‘불가능한’ 대상들은 엄밀히 말해서 있을 법하지 않은 대상-전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이다. 이러한 대상은 배경으로부터 일관되게 분리될 수 있고, 공간에서 삼차원 물체로 실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에서처럼 보이려면, 일반적으로 대상의 모양은 우리가 묘사된 대상에게 기대하는 모양과는 매우 달라야 한다. [97p]


G(자기참조 그림)
- 나머지 그림들의 이상한 면은 지각적이기보다는 개념적이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자기참조’ 그림이 야기하는 ‘무한 퇴행’은 여전히 시각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어 분명히 시각 체계에 관해 어떤 중요한 점을 나타내고 있다. [101p]


H(자기참조 상징)
- 한 도판에서 자기참조는 이 판이 도해적인 복사로 직접 그 자신을 철저히 되풀이하기보다는 문자나 단어 같은 관례적인 상징으로 그 자신을 지칭, 또는 기술하여 자신에게 돌아올 때 회화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 된다. [110p]


I(기괴한 모습바꾸기)
- 이 제목에는 낯익고 동시에 기괴하게 변형된 대상들을 묘사한 그림들을 포함시켰다. 순수한 ‘기괴한 모습바꾸기’의 경우 착시, 애매성, 또는 불가능성과 같은 시각 이상 유형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기괴한 모습바꾸기’는 변형되는 대상의 본래 의미가 상실되지 않을 정도이면서도 다른 대상의 의미가 역시 포착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변형되어있다. [121p]


3. 뒷글
- 조명이 잘 된 어떤 장면을 두 눈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보는 시각 체계를 속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 까닭은 지각심리학자인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이 강조한 바와 같이 이러한 체계가 사용할 수 있는 광학 정보는 장면의 실제 공간 배치를 충분히 조건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잘 조명된 보통의 관찰 조건에서는 눈이 결코 우리를 오도하지 않도록 주어진 정보를 잘 활용하는 시각 체계를 인간에게 마련해 준 자연의 선택이 가진 효과성을 나타낸다. [129~130p]


- 심리학의 큰 관심은 눈에 도달하는 빛의 물리적 패턴에 의해 생기는 착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의 패턴을 해석하는 심리적 과정에서 생기는 착시에 있다. [131p]


-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흑백 잉크 선화로 된 매체는 깊이에 대한 시각 단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한다. 이 단서들로는 투시 화법, 망막 크기(즉 망막에 투영된 상의 크기) 및 엄폐(더 멀리 있는 어떤 물체의 조망이 같은 시선을 따라서 더 가까이 있는 물체 때문에 부분적으로 가려지는 것)라고 알려진 단서들이 있다. 그러나 이 매체는 밝기나 색채 대비와 같은 다른 착시들을 나타내는데 필요한 밝기와 색깔의 농담을 다루기에는 알맞지 않다. 이러한 착시들의 예로, 어떤 표면은 대조가 되는 더 검은 배경이 먼저 제시되거나, 또는 더 검은 배경에 둘러싸여 있을 때 더 밝게 보이며, 대조가 되는 더 초록인 배경이 먼저 제시되거나 또는 초록인 배경에 둘러싸여 있을 때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132p]


- 삼차원 공간에 있는 물체들의 성질에 관해 망막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사용하는 인간의 지각장치는 신경계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적으로 자동으로 작동한다. 우리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심지어는 그 존재에 대한 자각이 없어도 이 장치는 이차원 그림이 주는 시각입력을 포함하여 어떠한 시각 입력에 대해서도 즉시 활동한다. 그 결과, 우리는 그림을 단지 지금의 현 상태, 즉 평평한 이차원 표면에 있는 선들의 패턴으로만 볼 수 없게 된다. 예컨대 그 선들의 패턴이 투시화법의 규칙에 맞는 정도까지 그 패턴은 원근 자극판에 알맞은 삼차원 해석을 내리는 뇌의 회로를 자동적으로 흥분시킨다. 이러한 해석을 무시하려고 의식적으로 형성한 어떤 의도라고 할지라도 이와 같은 배후 지각장치의 재빠른 활동에는 상당히 무력해진다. 이러한 점은 별로 놀랄 바 못 된다. 인간은 이러한 장치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는데, 이들은 그림의 제작이 출현하기 훨씬 전 생존하고 가계를 계승키 위해 자기 주변의 삼차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이 장치의 덕택으로- 충분히 효과적으로 해석하였다. [134~135p]


- 깊이, 크기 및 모양의 이러한 착시들을 그림이 함축하는 특정 관찰 지점을 사용하는 여부에 좌우된다. [139p]


- 진화의 역사에 걸쳐 특히 변하지 않는 한 환경 특성은 지구의 중력장이 부여하는 바로 선 방향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무엇이 한 물체의 내적인 윗부분이지를 정할 때-이 결정은 물체의 정체를 인식할 때 종종 매우 핵심적인데- 이처럼 상당히 믿을 만하고, 환경적으로 결정된 바로 선 방향을 활용하게 되었다. [144p]


- ‘서로 다투는 세로대’에 관한 논의를 마치기 전, 놀라운 현상을 주목해야겠다. 그 색깔들이 실제로 똑같기는 하지만, 흰 띠들은 이들이 대칭적인 상반부에서 더 희게 보이고, 검은 띠들은 이들이 대칭적인 하반부에서 더 검게 보인다. 아마도 한 부위를 형으로 간주하는 지각해석이 이 부위를 구분하는 색깔을 분명하게 강화시키는 식으로 고양된 시각적 현저성을 그 부위에 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151p]


- ‘나를를…보셔요(그림 G1)'와 같은 그림은 어떤 그림에 대한 그림의, 또 그림식으로 무한히 계속되는데, 이런 그림에 있는 기하학적으로 규칙적인 반복과 대칭이 시각적으로 직접 눈을 끈다. 이러한 시각 매력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하학적으로 비슷한 규칙저긴 패턴들이―특히 터널형과 나선형 같은 ’형태 상수(form constat)'를 포함해서―뇌의 시각 회로들이 약물, 열병, 수면 부족, 깜박이는 불빛 등에 자극을 받게 될 때 자연스럽게 경험되는 것과 같다. 진화적인 고찰과 지각 실험 모두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대칭성과 규칙성은 뇌에 깊숙이 박혀 있음에 틀림없는 그러한 유형의 공간적 변형들을 반복해서 적용하기 때문에 생긴다. [157~158p]


- 내 생각은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사람의 반응은 변형되어버린 대상과 변형 그 자체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원래의 대상이 전혀 낯설어 해석될 수 없거나 그 대상에 가해진 변형이 지나칠 경우 그 결과로 순수하게 추상적인 그림이 나온다. 이러한 그림이 시각적으로 주의를 끄는 대칭과 색깔은 갖고 있을지 모르나 인간 진화의 역사를 통해 중요한 물체들이 유발시킨 내적 셰마Schemas, 전형, 또는 느낌을 끄는 능력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원래의 대상이 전적으로 평범하고 이 대상에 가해진 변형이 무시할 만한 것이거나 존재하지 않을 때, 그 결과는 그저 그런 사진이 되어 버리고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 있는 경험을 주지 못한다. 그 장면이나 대상이 즉각적으로 인식되지만 진부하다. [164~165p]


- 우리의 지각/인지 체계에 도전하는 또 다른 사례는 의미 있는 어떤 대상이 변형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원래의 대상을 인식할 정도로 변형되면서 그 변형 결과가 더 이상 낯익은 대상이 아님을 인식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원래의 대상에 처음부터 내재한 잠재성을 알아차리게 된다. 의미 있는 대상이 다른 의미 있는 대상으로 변형됨을 묘사하면 이중으로 의미 있게 된다. [165p]


- 그대신 정말로 속임 효과를 보려면 큰 총천역색 고화질 사진, 사진과 같을 정도의 치밀한 현실성을 가지고 그려진 그림 및 특별한 관찰 조건이 필요하게 된다. 다음에 나열된 내용들은 이러한 관찰 조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속임그림을 더 자세히 충실하게 설명한 것을 보려면 모리스 앙리 피렌Maurice Henri Pirenne의 ‘광학, 회화 및 사진술’ 및 마이클 쿠보비Michael Kubovy)의 ‘원근 및 르네상스 미술의 심리학’을 참조할 것).
1. 해당 그림으로부터 충분히 멀리 떨어져서 그 표면 그 자체의 결특성들―이 특성들은 그 표면이 평평하고 이차원적임을 알려주는 단서를 제공함―을 자세히 볼 수 없어야 한다(가벼운 붓놀림, 붓자국, 또는 화판의 굽음과 튀어나옴 등이 이러한 결 특성이다).
2. 사람의 두 눈 간의 거리와 비교하여 그림으로부터 충분히 떨어져 양안시차의 결과로 두 망막에 맺히는 상들 간에 별달리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 반대로 그림을 단안으로, 즉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멍을 통해 강제로 한 눈으로만 보아야 할 것이다(멀리서는 작음 속임그림을 자세히 볼 수 없으므로, 보통 한 평면 위에 얹혀진 비교적 평평한 대상들만을 묘사하여 양안시차의 역할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비교적 가까이서 보더라도 실상 거의 같은 망막 이미지들이 확보되는 셈이다).
3. 관람자가 충분히 정지하고 있어서 운동시차의 결과로 같은 망막에 시간을 달리하여 맺히는 이미지들 간에 별 차이가 없어야 한다. 고정된 구멍이 이러한 정지 상태의 관찰을 보장할 수 있다.
4. 관찰 위치(또는 구멍의 위치)는 그 그림의 원근이 고려된 그러한 위치 및 방향과 비슷해야 한다. 예를 들면, 관찰 위치는 삼차원 장면의 수평선에 해당하는 선들의 모든 소실점 높이에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분명히 묘사된 수평선 높이에 위치해야 한다.
5. 그림은 창, 문, 또는 어떤 열린 공간에 배치되어 그 그림의 표면이 똑같은 조명을 받지만, 그 모서리들(다른 조건의 경우, 그림의 물리적 표면의 평평하고, 장방향적인 특성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는)이 관찰 위치에서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6. 그림에서 밝은 부분과 그림자의 표현(명암법)은 관찰 공간에서의 실제 조소(소위 주변 조도)와 일치해야 한다. 조도의 대부분이 주로 위로부터 내려 온다면(우리들 조상의 경험에서나 우리가 보통 경험하듯이), 그림에 있는 볼록한 대상들을 나타내는 부위는 그 상단 부분들은 밝게, 그 하단 부분들은 어둡게 표현해야 한다. 예컨대, 속임그림의 코끼리 활차제(그림 H3)에서처럼 대상 그 자체보다는 그림자들의 표현을 적절히 더 낮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시각 체계들은 이러한 조건들에서, 그들이 보통 원래의 삼차원 장면들로부터 광학적 입력을 받게 되면 이 체계들이 궁극적으로 진화하게 된 결과인 추론을 내리게 한다. 즉 입력이 삼차원 장면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추론을 내리게 된다. [169~171p]


- 즉 갈등적인 시각 메시지를 조심해서 피하기만 한다면 인간의 지각 체계는 화가가 그림 그 자체에서 다룰 수 있는 단서들을 이용해서 나타내려는 삼차원 해석을 재빨리, 쉽게 내린다는 점이다. 다음 네 유형의 단서들이 원칙적으로 여기에 해당된다.
1. 선원근(Linear perspective), 이 단서의 경우 삼차원 장면에서 서로 평행의 관계(화면에 대해서가 아니라)에 있는 선들은 그림 Ⅲ-9b에 나타나있듯이 화면의 소실점으로 수렴하고, 이 때문에 어떤 실제 크기의 대상과 결 요소들이 그림 Ⅲ-10a에 나타나 있듯이 화면 뒤로 계속되는 거리에 따라서 적절하게 작아지는 것을 말한다.
2. 농담원근(Aerial perspective), 이 단서의 경우 멀리 있느 물체들(멀리 떨어진 산 같은 것)은 이에 따라 연한 파랑색으로, 또 명도 대비를 줄여서 대기에서 햇빛의 단파장들이 우리 눈과 대상의 중간에 있는 공기를 뚫고 올 때 생기는 산란을 흉내내는 것이다(그림 Ⅲ-10b에 도식으로 제시되어 있음).
3. 엄폐[Occultatio : 어떤 시각 연구자들은 가끔 이를 중첩(occlusion)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단서의 경우 가까이 있는 물체의 어떤 부분을 가려버리는데 예를 들면 그림 Ⅲ-9a에서처럼 가까이 있는 원통 B가 원통 A, 또는 원통 C의 부분을 가리는 경우이다. 따라서 선정된 관찰 위치로부터 어떤 시선의 경우에도 그 시선에 따라 관찰 위치에서 가까운 불투명한 표면이 화폭에 묘사된다. 이 시선을 따라 더 멀리 떨어진 표면들은 감추어진 상태로 있게 된다.
4. 바닥의 지평선 근접(Proximity of base to horizon), 보통의 평평한 땅(또는 마루) 위에 있다고 간주되는 견고한 물체들은 만약 이들이 삼차원 공간상 관찰자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 물체들의 가장 낮은 지점들(바닥에 의해 지탱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지점들)이 그림에서는 높이 있도록 묘사된다. 다시 말하면, 지평선에 더 가까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그림 Ⅲ-10a를 다시 참조할 것). [174~175p]


- 어떤 속임그림을 가까이서 두 눈으로 자유롭게 바라보면 우리가 본 물체들이 삼차원 공간에 견고한 몸체로 존재한다는 원래의 생각이 어리석음을 곧 깨우치게 된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서 그 그림을 원래 지정된 관찰 지점에서 보면, 그림의 이차원 성질에 관해 조금 전에 알게 된 지식이 착각적으로 나타나는 삼차원 성질에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시각 해석을 자동적으로 내리는 장치는 고차적인 지성의 이해를 모른채 공간에 있는 삼차원 물체들에 대한 전망을 앞서와 마찬가지로 강력하게 내놓는다. 이런 그림은 만약 이것이 더 이상 바로 ‘나’를 속이지 않는다면 최소한 눈은 여전히 ‘속인다’ [175~176p]


- 어떤 추리든 쓸모, 있으려면 추리를 함부로 내려서는 안 된다. 그 적용되는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타당한 원리에 따라 추리해야 한다. 그 한 예로서, 내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상당히 많은 내용들에 근본적으로 적합한 원리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떤 유리한 지점에서 보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사람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행위자이기 때문에 이 원리는 일반적으로 타당하며, 따라서 보통 시각 입력으로부터 정확한 추리를 내리게 한다. 물론 이 원리의 전제들에 반해서 이 세상에 대한 관찰이 어떤 특정 지점에서만 한정된다면 지각 체계는 틀리게 추리할 것이다. [177p]


- 인간의 지각 추리가 그렇게 자동적이고, 재빠르고, 무의식적인 이유가 충분히 분명해졌다. 실제 생활에서 급할 때,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생각에 파묻혀버리는’ 위험에 처한다. 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바깥 세상을 더 빨리, 또 더 진실성 있게 지각(정확하고 믿을만한)할 수 있게 된 동물들이 이러한 이유로 생존과 번식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임은 분명하다. 이차원적인 망막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 중요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 이미지들은 우리 조상들이 이러한 망막 이미지들을 초래한 바깥 세상에 있는 삼차원 형상들의 정체를 추리할 때 슬모 있는 정보원으로서만 그 의미가 있다. [179~181p]


- 현실적으로, 진실성을 완전히 보장하는 지각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하다. 경계가 없는 삼차원 세상에 존재하는 테두리가 있는 삼차원 유기체인 사람들은 그 어떤 순간에도 이 세상을 위치가 지정된 관찰 점에서 보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러한 관찰 지점으로부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삼차원 구조에 직접 접근할 수 없고 그 관찰 지점에서 주위 세계가 망막에 투영시킨 이차원 이미지에만 접근할 수 있다. 위상수학의 기본 정리는 삼차원 공간의 물체들간의 관계가 이차원 투영에 그대로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 결과, 우리가 움직임에 따라 공간에 있는 물체들의 고정된 형상조차도 달라지는 패턴으로 감각 표면에 투영되는데, 이 경우 사람이 조망을 바꿈에 따라 각 물체에 해당하는 하위 패턴이 커지거나 작아지고, 때로는 더 가까이 있는 물체들의 엄폐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때때로 우리가 지각적인 위반과 속임수의 영향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받게 되는 것은 한 차원이 줄어든 창문이 이 세상에 관해 제공하는 관찰의 궁극적인 변동성과 불완전성 때문이다. [181~183p]


- 더욱이 속임그림을 평면에만 그려야 한다는 요구 조건은 없다. 실제로 지각되는 것과는 다른 어떤 세상(이 경우에는 정육면체 이외의 다른 것)이 눈을 속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속임그림 세상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속임그림은 단지 두 근본 조건만을 충족시키면 된다. (a) 이 그림이 우리가 지각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투영하는 패턴과 동일한 빛 패턴을 망막에 투영해야 하고 (b) 그러나 이 그림은 그 장면의 삼차우너 구조와 현저하게 달아야 한다. 이 때문에 관찰 지점에서 투영되는 모든 선이 그 표면에서 교차하기만 한다면, 또 그 표면의 조명이 고른 한(다른 말로 하면 이런 그림의 명암법이 그 조명에서 비동질성을 보완하는 한), 그 어떤 형체의 표면에도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185p]


- 내가 지각에 관해 얼마동안 제안해온 주장들과 일치하는 한 해답이 가능하다. 즉 지각 체계는 이 세상에 관해서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지속적인 규칙성을 내면화했다는 답이다. 각 개인 수준에서 의미 있는 부차적인 내면화가 학습을 통해 일어나기는 하지만 특히 자연의 선택을 거친 유전적 내면화가 중요하다. 내면화된 것들 중 어느 정도가 진화와 학습에 의해 내면화되는지를 아직 구분할 수 없으나 학습 원리들이 이 세상의 규칙성에 대한 유전적 조정의 결과로 진화상 발생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0p]


- 이들을 나는 퍼킨스의 규칙이라 부른다(퍼킨스가 이 원리들을 먼저 활자화했다는 점을 인정해서 !).
1. 한 그림에서 삼지창 정점은 이 삼지창의 세 각들 각자가 90도를 넘어서는 조건에서만 공간상 어떤 장방형 모퉁이로 해석된다.
2. 한 그림에서 화살표 정점은 두 작은 각들이 90도 이하이고 이들의 합이 90도 이상인 조건에서만 공간상 어떤 장방형 모퉁이로 해석된다(이 두 규칙에서 그림의 T 정점은 제삼의 선분이 다른 두 선분과 직각의 관계에 있는 조건에서만 장방형 모퉁이로 해석된다는 점을 연역할 수 있다). [191p]


- 그러나 인간이 착시, 애매성, 그리고 오류에 빠지기 쉽지만 여기에는 보상이 있다. 완전히 진실성 있는 지각이 있다면 그 덕택에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지 모르나, 이 경우 미술의 영역은 크게 좁아진다. 회화가 우리를 오랜 옛날로, 이국적인 장소로, 또는 상상의 세계로 더 이상 데려갈 수 없게 된다. 풍자화와 만화는 사람이나 장면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더 이상 유별나게 포착할 수 없게 된다. 사진은 공간, 시간, 그리고 최종 이별과 같은 변천을 통해 우리들의 아동기, 모험, 친구, 그리고 가족을 더 이상 보존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영화와 텔레비전도 이차원 색깔 패턴의 유희에 지나지 않게 된다. 타당한 예인 추상적 표현주의를 제외하고는 모든 형태의 필사 예술들이 없어진다(또는 추상적 표현주의의 우연한 예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린다). 요컨대, 사람들은 장 폴 사르트르Jaen-Paul Sartre의 ‘구토’에서 “만물은 완전히 그 나타나보이는 모습뿐이고 그 배후에는 무無만이 존재한다”고 표현된 그러한 텅 빔에 직면케 될 위험에 빠진다. [194~195p]


- 인류가 출현한 이래 그림의 해석에만 국한해서 잘 적응된 광범한 신경 구조물이 진화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그리고 이에 대한 선택적 압력도 불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다음의 함의含意를 피할 길 없다. 즉 그림은 과거에 다른 목적 때문에 진화한 신경 구조물을 작동시키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들의 주이를 끄는 한 우리의 주목을 받는다. 이 다른 목적들이란 다름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진화해온 삼차원 세계에서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물체와 사건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내 생각에는 음악을 포함한 다른 예술의 감상에 대한 설명도 이와 같은 방향을 택해야 한다). 이러한 진화적 분석이 타당하다면 미술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착시일 수 밖에 없다. 미술은 어떤 다른 것, 즉 삼차원 세계에 있는 보통의 물체들과 사건들을 표상하기 위해 진화한 신경회로들을 흥분시키려고, 예를 들면 인위적인 이차원 패턴을 사용한다. [195p]


- 그러나 애매성이야말로 미술이 가진 무한한 풍요함의 주요 원천이다. 우리가 어떤 음악이나 그림에 빨리 싫증나지 않게 되는 까닭은 우리가 똑같은 색 조각 패턴을 언제나 정확히 보지 않고, 똑같은 음 고저 패턴들을 언제나 정확히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매번 그 패턴에 있는 다소 다른 관계들을 택하거나 이에 공감하다. 물론 감상의 즐거움이 지속되는 까닭은 그 그림이나 음악이 우리가 다른 경우에 즐겼던 그러한 기분과 상황을 우리 내부에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각적 애매성의 표현이다. 그림이나 음악이 제 아무리 미학적으로 따져서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라 할지라도 공간상 추상적인 조각 패턴이나 시간상 음의 고저로 해석될 뿐이다. [196p]


-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삼차원 장면을 나타내는 그림은 그 자체의 틈 구멍을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유발하는 망막 이미지는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택한 독특한 관찰 위치로부터 이를 관람할 때만 해당 삼차원 장면에 대해 생기는 망막 이미지와 같게 된다. 놀랍게도 보통의 그림들을 볼 때 화가이 관찰 위치(또는 극장의 측면에서 영화구경을 할 때 카메라의 위치에서)로부터 상당히 벗어난 위치에서 보더라도 별 커다란 왜곡을 경험하지 않는다. 모리스 앙리 피렌Maurice Henri Pirenne이 처음으로 이처럼 놀라운 사실에 대한 설명을 제안하였는데(말년의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으로부터 받은 아이디어에 부분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함) 이는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그림이 그려지거나 인쇄되거나 투영된 평면의 표면 결과 모서리들에서 나오는 정보를 기초로하여 시각 체계는 시야에 있는 어떤 다른 표면에 대해서도 그러하듯이 그러한 이차원 표면의 상대적 거리와 경사를 계산한다. 그 다음 이 체계는 그림 자체의 원근이 암시하는 관찰 위치로부터 관람자의 이탈이 초래하는 경사진 그림에 관한 망막 투영상의 왜곡을 보완할 때 표면의 공간 배치에 관해 계산된 정보를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그림의 경사를 보완한 다음 시각 체계는 이 체계가 경사지지 않은 그림을 정확한 관찰 위치에서 보는 것처럼 묘사된 삼차원 장면에 대해 정확한 표상을 형성한다. [199~200p]


- 그림의 경사를 교정하여 관찰 지점들에 상관없이 묘사되는 삼차원 장면에 대해 똑같이 정확한 인상을 형성하는 능력을 시각 체계는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을까? 여러분은 내가 앞서 제기한 주장, 즉 인류가 그림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이 그림의 해석에만 알맞은 메커니즘이 진화하기에 시간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의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피렌이 제안한 교정 메커니즘들이 우리의 먼 조상이 그림을 만들기 훨씬 전 그들에게 쓸모있었음을 가정할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대상들을 보는 방향에 상관없이 그 특징적인 표면의 표지들로부터 중요한 대상들(먹이, 육식동물, 같은 종)의 정체를 재빨리 파악하도록 했을 것이다. [203p]


- 어떤 삼차원 장면에 관한 이차원 원근 표상은 그림의 삼차원 관찰 공간에서 반드시 유리한 한 지점을 암시한다. 보통 그림들을 볼 때, 관람자들이 에임스 방, 원근상자, 또는 어떤 속임그림에서처럼 그 관찰 위치에서 물리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음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관람자의 지각 반응은 시각 체계가 암시된 관찰 지점의 위치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한데 바탕을 두고 있다. [205p]


- 미학의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는 일반적인 방향은 앞서 시사한 바 있다. 즉 진화의 역사상 우리 조상들에게 특히 중요했던 물체나 사건들이 신경회로를 흥분시키는 한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감상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물체나 사건들이 그처럼 일반적이고 중요해서 그들에게 공명하는 신경회로들이 우리 조상들이 유산으로 남겨준 심적 구조물의 형성에 구체적으로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조상들의 생존과 그 자손 퍼뜨리기에 중요했던 그런 물체와 사건들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이 물체와 사건들의 일부는 잠재적으로는 위협적이다. 예를 들면, 노하거나 싸우는 동종은 물론 육식 동물과 독성 동물, 가파른 벼랑과 크게 벌어진 협곡, 노호하는 불, 산더미 같은 파도, 억수 같은 대홍수며, 질병, 감염, 죽음, 그리고 썩음의 징표 등등. 이들이 반드시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주의를 끌려면 그림이 반드시 아름다워야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미지는 위협적인 어떤 것들을 나타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의 주의를 끈다. 사람들이 오늘날 생존하게 된 바로 그 이유는 선조들이 이러한 위협들에 대해 적절히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지각적 회로들이 이러한 물체들과 사건들에 선험적으로 조율되어 있고 또한 적절한 정서 반응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예를 들면, 매우 어린 영아는 커지는 시각 자극에 반응하며, 갇혀서 사육된 어린 원숭이들은 난생 처음 그 우리에 뱀을 집어넣었을 때 공포 반응을 보인다. 이보다 더 적절한 것으로, 눈 앞에 나타난 뱀이 유발시킨 공포는 이 원숭이들로 하여금 자신과 침입자간에 안전한 거리를 두고, 또 그 뱀을 주목하도록 한다. [206~207p]
- 어느 정도의 호기심과 새로운 자극들을 탐색하려는 경향 역시 사건들이 장차 중요하게 바뀔 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조상들이 더 잘 대비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유익하였을 것이다. ‘기괴한 모습 바꾸기’라고 내가 명명한 시각 이상에 관한 평에서 암시하였듯이, 이미 중요하게 된 물체와 유사한 어떤 새로운 물체는 특히 자세한 주목을 받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일상적인, 또는 예기된 형태와 얼마간 달라지면서도 여전히 그 ‘자연스러운 유형’으로부터 따라가면 알게되는 그러한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우리 내부의 조율 반응을 유발시키는 자극의 핵심 특성들을 보다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괴한 모습 바꾸기’를 논하면서 시사하였듯이, 피카소와 현대 미술가들이 시도한 인간 형체와 얼굴이 구성, 탈구성 및 재구성은 이런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210p]


- 이러한 성질들이 어떤 구체적인 물체들에 비해 훨씬 더 추상적이지만 최소한 우리의 생존에 중요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 중의 한 추상성은 대칭적이거나 공간적으로 반복되는 입력 요소들이 동일한 외부 물체에 속할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좌우 대칭은 인간이 만든 여러 가공물(보트, 의자, 삼지창, 의복 등)은 물론 대부분의 생물들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더욱이, 회전 대칭에 근사하는 무수한 물체(사과, 복숭아, 팬케이크, 사발, 또는 연필)은 모두 각 물체를 보는 각도와는 무관하게 좌우 대칭인 망막 이미지를 내놓는다. 이와는 달리, 물체들간이 틈과 관련된 망막 이미지는 상당히 있을 법하지 않는 관찰 조건에서만 대칭적이다. 따라서 시각 입력 대칭은 적절한 형과 배경 분리를 잘 안내한다. [211p]


- 중요한 물체들에서 나타나는 대칭성의 우세는 시각 입력이 대칭성에 사람들이 크게 반응하도록 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이보다 더 추상적이고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따라서 인간의 시각 체계에 더 깊게 박혀 있는 성질은 삼차원 유클리드 공간 기하학 및 이와 연합된 운동 기하학이다. 운동 기하학은 공간을 차지한 물체들이 그 공간에서 움직이는 방식을 제약한다. 우리 조상들이 생육하고 번식한 까닭은 이들이 형과 배경을 분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분리된 물체들은 피하고 다른 것들에 접근하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러한 물체들을 성공적으로 피하거나, 접근하거나 다룰 수 있었던 까닭은 이들이 삼차원 세계의 공간 및 운동 기하학을 내면화시켰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족이나 부족에게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거나 큰 나뭇가지들을 엮어 숙소를 만들지 못하거나, 배고플 때 숨겨 두었던 양식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어떤 육실동물이 접근할 때 어린 아기를 보호하지 못하는 수렵채취인이라면 그의 유전인자들을 여러 대에 걸쳐 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심적 회전과 시각적 가현 운동에 관한 실험 결과들을 바탕으로 나는 인간의 시각 체계가 고도로 추상화된 운동 기하학의 원리들을 내면화시켰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211~212p]


- 다른 논문에서 나는 인간의 형체 지각 그 자체가 한 물체의 모든 가능한 구체적인 회전 조건에서 그 물체의 자기 유사성을 암묵적으로 대칭적이거나 무한히 반복하는 패턴인 이러한 운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기 합동을 기록하는 신경 회로에 광범위한 흥분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칭에 대한 신경 수준에서의 광범한 공명은 추상적인 운동 기하학의 원리들을 깊이 내면화시킨 결과이며 인간의 모든 문화권의 예술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대칭적이고 반복적인 패턴들의 출현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명 회로는 상당한 흥분 상태의 결과, 자발적으로, 또는 구분되지 않은 자극에 부분적으로 공명하여 때때로 ‘울리게’ 된다. [213p]


- 뇌의 이러한 잠재적인 만화경적 능력은 사람들이 완전히 무의식 상태에 있지 않고 현재 들어오는 감각 입력을 완전히 분석하고 있지 않는 경우에 그 자신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능력은 수면과 충분한 각성 사이의 전환기적인 입면 후 최면, 또는 각성 후 지속성 상태에 사람이 처하거나, 잠들어 있을 경우 꿈을 꿀 때, 또는 깨어 있을 경우 백일몽에 빠져 있을 때 발휘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러한 상태들에서 과학적 통찰이 빈번히 생긴다는 보고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9p]


맺는 말
-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그림을 관람할 때 택하는 위치와는 별개로 그림은 자체의 암묵적인 관람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이러한 그림은 그 대상인 삼차원 장면 그 자체 앞에서 우리가 즐기는 묘사된 장면과의 관계에서 위와 같은 유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의 바로 이러한 제약이 각 관람자가 이동해서(물리적으로) 한 번에 하나씩 그 고정된 틈을 통해 들여다보는 삼차원 배열방, 원근상자, 또는 에임스 방을 실제로 만들지 않더라도 생태학적으로 타당한 조건들에서 유익하게 이탈하는 손쉬운 방법을 제공한다.
요컨대, 그림이 어떤 면에서는 이 세상에 대해 다소 제한된 창을 마련해 주지만 인간의 마음에 대해 유익한 창이 될 수 있는 것을 제공한다.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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