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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림 Aug 21. 2020

창문 너머의 사람들

네덜란드 소도시의 몇몇 시내 광장에는 주중에 한번 큰 시장이 열리고 그사이로 출근하는 사람들, 관광객들, 장 보러 나온 사람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자전거로 고개 운전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리고 그 주변에 위치한 집들을 보면 종종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베란다에 놓인 편안한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고 계신다.

거동이 불편하셔 밖을 자주 나가지 못하시니 그렇게라 사람들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시는 걸까? 자식들은 다 출가하고, 저분들은 집에 쓸쓸히 혼자 계시는 걸까? 그분들을 보며 가끔 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 얼마 전 많이 걸을수록 아이도 쉽게 낳을 수 있다는 말에 만삭인 아내와 마포에서 홍대까지 운동 삼아 걸을 때도 베란다에 앉아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종종 봤다. 나도 나중에 늙으면 저렇게 번화가에 위치한 집에 살고 싶으니 지금부터 돈을 많이 벌어두어야겠다고 우스갯소리로 집사람에게 말한 게 기억이 난다.

난 어려서부터 외동으로 자랐고, 우리 집은 큰집이라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때나 설과 추석 같은 명절에 친척들이 왔었다. 집은 북적였고, 작은 집은 당시 딸이 셋이었기에 항상 우리 집 방구석구석을 탐험하고 다녔다. 명절에는 오후쯤 고모들이 왔고, 늦게까지 술을 드시고, 화투를 치시다 가끔 잠도 자고 가셨다. 그래서 우리 집 옷장에는 지금도 이불이 한가득이다.

친척분들이 집에 가시고 엄마는 설거지를 하시고 아빠와 난 집을 정리했다. 우리 집은 당시 20평대 작은 집이었지만, 친척들이 나간 후의 공허 함은 마치 100평 이상으로 느껴졌다. 난 그때 그 기분이 너무 싫었다. 시계를 몇 번이나 쳐다보고 친척분들이 가실 시간이 다가오면 그 더러운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마치 방금 연인과 헤어진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20대 때는 외로운 게 싫어 항상 화려한 불빛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큰 거리 옆에 살았는데, 나이가 들며 점점 조용한 곳을 찾게 된다. 일이 바빠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지금은 어릴 적 그 기분을 머릿속으로는 기억을 해도 가슴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나중에 우리 딸이 결혼 해 출가를 하고 우리 집사람과 둘이 우리가 꿈꾸던 세계여행을 다니다가 어느덧 걷는 게 불편해지고,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도 버거울 때, 우리 둘도 저렇게 창문 너머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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