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미림 Aug 19. 2020

우리집에 귀여운 도둑이 들었다

암스테르담 집에서 쥐와의 한바탕 소동

오빠 이리 와봐!!


주말 아침 다급한 목소리로 집사람이 날 깨웠다. 우리 집 거실 가운데에는 집주인이 집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충동구매로 산 듯한 큼지막한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항상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과일과 빵들이 즐비해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1919년에 지어진 집이었고, 암스테르담의 오래된 집들은 대부분 구조가 나무로 되어있었다. 걸을 때 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윗집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가 수면 중 무호흡을 걱정해 드려야 할 만큼 가깝게 들렸으며, 아이들이 뛰놀면 마치 전쟁터 같았고, 식사 시간 중 끼익! 의자끄는 소리에 가끔 신경질이 나기도 했다. 다만, 이사를 갔는지 최근들어 조용했다. 


근데 웬일로 평온한 우리 집에 누군가의 침입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어렸을 적 요구르트를 위쪽이 아닌 아래쪽으로 찢어 먹던 청개구리 시절이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반항이라도 하듯 빵 봉지 아래쪽 모서리를 뜯어 일부분을 가져간 것이다. 분명 난 어제 술을 먹지 않았다. 내가 식빵의 바삭한 양 끝부분을 좋아하지만, 그걸 기억 못 할 만큼 정신없이 바쁠 시기도 아니었다.


설마 우리 집에 쥐가?


우리 두 부부가 손대지 않았다면 유력한 용의자는 그 친구였다. 우리가 초대하지 않아도 우리 집에 들어 올 수 있는 그분, 고양이라고 하기엔 그만큼 큰 구멍이 우리 집에 존재하진 않았고,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 몰래 우리 집에 같이 살 만큼 비밀공간이 존재할 큰 집도 아니었다. 아직 우리 집에 자리를 잡고 있을까 싶어 옷장, 찬장, 소파 밑을 다 뒤져 보며, 집에 몰래 침입 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작은 구멍을 찾아 모두 막아 두었다. 우선 집을 빠져나간 듯했고, 구멍은 전부 막아 두었으니 안심이었다. 


우리 집은 길쭉한 12평짜리 집이었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식탁과 베란다가 바로 보이는 한국으로 치면 길쭉한 원룸 형태지만, 더블 침대가 겨우 들어간 방이 따로 하나 있으니 투룸이라 하겠다. 

우리 부부는 영화를 좋아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종종 영화 삼매경에 빠져들곤 했다. 어느 날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빠져들고 있을 무렵 거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소리 잠깐 줄여 봐봐! 


음 소거 버튼을 누르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방금 듣던 영화의 잔 음이 내 귀에 웅웅 머물기는 하지만, 분명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다시 영화를 틀고, 집중할 무렵. 부스럭! 우리 부부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말하지 않고 몸짓으로 소리를 조금씩 줄이자는 제스쳐를 나누고, 소리를 한 단계씩 줄여나갔다. 소리 레벨이 줄어드는 화면을 보면서 내 귀는 거실 쪽으로 초집중 상태였고, 잠시 숨을 멈춘 것 같기도 하다. 부시럭, 부스럭!


도둑은 반드시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고 하더니, 우리 집 빵 맛을 못 잊은 그가 또 우리 집을 방문했고, 우리 집 보안에 또다시 큰 구멍이 난 것이다. 분명 구멍들을 다 막아 두었는데 말이다!! 불을 켜고 주변을 살피자, 역시나 순식간에 집을 빠져나갔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내가 그를 너무 쉽게 본 것이다. 며칠을 안심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기간 동안 우리 집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전쟁이다! 그날 이후로 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모를 그가 자유롭게 우리 집을 침입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순 없었고, 먼저 그의 동선 파악이 시급했다. 난 집에 있던 밀가루를 거실 바닥에 뿌렸다. 어디서 들어 왔는지 모르니 거실 구석구석 하얀 밀가루를 뿌려 두었다. 눈 위에 사람 발자국이 생기는 것처럼 그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집안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거실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어디로 들어오고 어디로 나갔는지, 우리 집 어느 부분에 특히나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 그의 발자국들이 말하고 있었다. 구멍을 다 막은 줄 알았지만, 상상도 못 할 곳에 출입구가 존재했다. 그 부분을 다시 보안하고 밀가루를 뿌려 두었다. 이를 몇 번 되풀이하니 결국 어느 순간 더는 발자국이 없었다. 다만, 밤만 되면 우리 집을 들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현란한 몸짓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도둑을 잡자! 


구멍만 막을 게 아니라 우리가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필요했다. 그를 잡고 어떻게 설득시킬지는 우선 잡고 생각해 보자며, 막아 놓은 구멍 중에 이동 소리가 가장 많이 들리는 곳의 구멍을 해제시키고, 그 앞에 덫을 놓고, 치즈에 참기름을 뿌려 넣어 두었다. 다음날이 되자, 덫은 그대로 열려 있었고, 치즈만 없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살짝만 건드려도 문이 닫히는 민감한 덫이었는데 귀신같이 치즈만 빼갔다!!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특수 훈련을 받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우리에겐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잠복근무를 서볼까?


잠복근무를 서며 내가 직접 그를 맞이 하리라 다짐하고 그 구멍 앞에 자리를 잡고 어둠 속에 위장을 한 채 나는 철창 안에 치즈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올지 기약은 할 순 없었지만, 가장 자주 오는 시간대에 그렇게 잠복을 하고 있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고요한 어둠 속에서 한 곳만  바라보다보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며 꿈인지 생시인지 뭔가 순식간에 왔다 감을 인지하던 찰나, 없다. 내 바로 앞에 있던 치즈가 없어졌다. 내가 잠에 정신이 혼미하던 그 틈을 타 순식간에 치즈를 빼간 것이다. 


다음 날 난 덫에 줄을 매달았다. 그가 들어오면 내가 직접 문을 잡아당겨 철창을 닫는 방식이었다. 또다시 어둠 속 그 자리에 앉아 뚫어지게 철창을 응시했다. 늘 반복되는 그 시간 멀리 감치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숨죽이며 덫의 입구 부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코 부분이 보였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치즈에 묻은 참기름 향에 킁킁거리며 들어올까 말까를 반복했다. 아마도 새끼 인 듯 생각보다 몸집이 아주 작았다. 


내 손에 매달린 끈이 팽팽해지고 조금만 힘을 주어도 문은 닫힌다. 다만 아직 몸의 3분의 1밖에 안 들어왔고, 이 정도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치즈에 입이 닿기를 기다리며 손에 땀을 쥐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이 치즈에 아주 조심 스럽게 닿는 순간 손에 움켜쥐고 있던 끈을 힘껏 잡아당겼다.


후다닥!!


닫힌 철창에 아무것도 없다. 또 놓친 걸까 생각하며 깊은 한숨과 함께 이 상황을 정리하던 찰나, 안에 무언가가 움직였다, 꼬리다!!! 순식간 도망치다가 꼬리가 걸린 것이다!! 그를 살고자 발버둥을 쳤고, 그 처절한 눈빛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와 눈도 마주 쳤으니 내 경고도 확실히 받았으리라. 그렇게 그와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났다. 우린 검은 봉지에 그를 넣어 분리수거 통에 두었고, 그 후론 한동안 우리 집에 문을 두드리는 방문자는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린 네덜란드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