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점점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시기가 왔다. 날도 추워지고 보일러 돌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gas bill을 신경 써야 할 시기가 온 거다. 가스 요금이 아까워 집에서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고 다니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걱정 없이 빵빵하게 피서온 마냥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가정도 있을 듯싶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오고 나서 2년 정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보일러를 켰다. 매달 일정한 돈을 내고 사용량은 연 단위로 측정하니 얼마나 쓰고 있는지 확인도 안 했고, 심지어 집의 가스미터기가 고장 나 2년 동안 우리가 얼마큼의 가스를 썼는지는 에너지 회사에서조차 파악이 안 돼 지금 싸우는 중이다. 가스 회사는 고장 난 미터기 대신 스마트 측정기를 추천해 줬고, 지금은 자동으로 사용량이 그 회사로 넘어간다. 다만, 청구서를 분석해 보니, 설치 전에 공지가 없었던 네트워크 사용료도 포함되는 것 같다.
미터기 교체 이후 최근 가스 회사에서 2년 치 추가 청구서를 내밀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고 나서야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가 생각났다. 당시 나는 방 3개짜리 집을 렌트하고, 방 2개를 세를 줘서 생활비를 조금 아꼈다. 각 방의 월세에는 세금이 포함되었고, 겨울이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월세를 제외한 세금이 줄어야 그만큼 내 용돈이 늘어나는 것이었기에 겨울이면 밖에도 안 나가고 집 순이 집 돌이가 되는 우리 하우스 메이트들이 너무 미웠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난방비 줄이는 법에 대해서 알아봤다.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큰 핵심은 집안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나와 집사람은 집 안의 어느 부분에서 열기가 빠져나가는지 조사를 시작했고, 2층 큰 방의 창틀과 문 사이 틈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몇십 년 동안 교체하지 않은 나무 창틀이기에 구조가 조금 뒤틀렸고, 그 벌어진 사이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은 방과 거실의 창문들은 양호했다. 창틀과 창문 사이에 튜브형 차단막이 있어 우리 집에 몰래 들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현관문의 틈은 어마어마했다. 약 2~3mm 정도의 틈이 눈으로도 훤히 보였고, 그 사이로 찬바람이 미친 듯이 들어오고 있었으며, 현관문 앞에 붙어 있는 라디에이터가 그 한기와 이기지 못할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며 복도가 유난히 추웠는데, 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전에 한국에서 가져온 문풍지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바로 Gamma에 달려갔다. 매장을 구석구석 뒤져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몇 가지 재료를 샀다. 한국과 같은 문풍지도 있었고, 두툼한 튜브형의 차단막도 있고, 창문 전체를 비닐로 막을 수 있는 패키지 박스도 있었다. 튜브형과 일반 문풍지를 여러 개 사고, 비닐 패키지도 하나 샀다. 창문에 붙일 뿅뿅이도 찾아봤는데 그건 없었다. (Tip : 구글에서 bubble wrap, Noppenfolie 으로 검색하면 온라인으로 쉽게 주문할 수 있다, Praxis에도 있다.)
먼저, 튜브형 차단막은 틈새가 큰 곳에 적당하다. 현관문 틈에 붙여 보았는데, 문이 닫히지 않아 다시 뜯어냈다. 문풍지는 한국 것보다 폭도 얇고 질이 조금 떨어진다. 가격은 비싸지만, 그나마 바람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비닐 패키지는 몇 가지 크기가 있었는데, 가장 큰 거를 샀다. 1.5*4m짜리였는데, 창문의 높이와 폭이 1.5m가 넘어 아직 붙이지 않고 있다. 아주 얇은 비닐에 양면테이프만 들어 있는 패키지인데, 창문틀에 양면테이프를 붙이고 전면에 비닐을 붙여 유리면과 비닐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어 한기를 차단하는 방식인 것 같았으나, 효과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집은 바닥 난방이다. 이사 오자마자 거실 및 방에 있는 라디에이터를 전부 뜯어냈고, 바닥 난방을 직접 설치했다. 한국에서는 집 평수에 따라 설치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온라인으로 팔고 있어 주문할까 고민했지만, 배송비가 너무 비싸 로컬 업체를 찾았고, PVC 호스, 알루미늄판, 스티로폼 베이스, 모터를 주문한 후 유튜브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며 직접 설치해 2년 동안 고장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바닥 난방의 장점은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듯함이다. 온돌 문화에 익숙해진 몸인 만큼 뜨끈뜨끈한 바닥에 누워 있으면 잠이 솔솔 쏟아진다. 추운 겨울 라디에이터에 등을 딱 붙일 때의 그 희열을 알긴 하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이길 수는 없는 듯하다.
온라인으로 뿅뿅이를 빨리 주문해 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창문에 덕지덕지 붙여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