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정리해 보는 올 시즌 중계

by 이준혁

오랜만에 이 공간에 글을 적는다.


올해는 중계방송을 할 때마다 짤막하게라도 단상들을 쓸 생각이었는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시즌 개막하고 벌써 50일 이상이 흘렀다. 뒤늦게 지금까지 내가 중계했던 경기들에 대해 정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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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2일 / 키움 삼성 (대구)

- 시즌 개막전. 첫 경기의 긴장감은 선수들만큼이나 나에게도 적용된다. 이번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시범경기도 전혀 중계를 하지 못한 채로 개막을 맞이해서 매우 불안한 마음이었다. 특히 피치클록 도입이라는 크나큰 변화가 원래 내가 해오던 중계의 템포를 해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실수하지 않는 데 집중하면서 중계했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사히 마쳤으며 경기는 삼성이 13대 5로 크게 이겼다. 전날 저녁 먹었던 막창이 맛있었다. 이택근 해설위원과 둘이 8인분 정도를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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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30일 KT 롯데 (사직)

- 당일치기 부산 출장이었는데 세 시간 사십삼 분의 연장 무승부 경기를 중계했다. 보통은 한 방송사가 3연전씩 중계를 담당하지만 주말에 지상파 채널이 야구 중계를 편성하면 자연스레 배정이 바뀌게 된다. 작년부터 지상파 편성이 많아지면서 주말에는 하루씩 이동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어느 곳이든 야구장 가는 건 즐겁지만 당일치기로 멀리 다녀오는 일은 솔직히 좀 피곤하다. 올해 우리 방송사에 새로 합류한 최원호 해설위원과 첫 중계였다. 예전에도 오랫동안 해설을 하셨던 분이라 늘상 호흡을 맞췄던 것처럼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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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1일 키움 한화 (대전/신)

- 올해 개장한 대전 한화생명볼파크를 처음 방문한 날. 이날은 만원 관중이 들어찼고 이른 시간부터 북적북적했다. 관중들이 입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내 앞에 있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화 팬 소년이 대뜸 나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나를 알아본 건 아닐 테지만 아마 양복 입은 아저씨가 있으니 뭔가 인사를 하고 싶어졌나 보다. 마침 이른 시간에 관중석 쪽을 돌아보다가 주웠던 공이 내 손에 들려 있어서, 그 소년에게 선물했다. 엄청 기뻐하는 소년의 모습 덕분에 나도 기뻤다. 경기는 한화가 12대 2로 완승을 거뒀다. 사실 새 구장에 와서 너무 들뜬 탓인지 내 중계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올라오는 KTX에서 반성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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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6~27일 키움 SSG (문학)

- 유독 중계 배정이 잘 되지 않는 인천에 정말 오랜만에 갔다. 랜더스필드는 생긴 지 20년이 넘은 구장이지만 갈 때마다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두 경기 모두 키움이 이겼다. 특히 26일 경기는 기억에 남을 만하다. 앤더슨(SSG)과 로젠버그(키움)의 치열한 투수전이었다. 타격전을 더 좋아하는 팬들도 많겠지만, 나는 투수전의 그 긴장감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고, 이 경기는 엄청나게 몰입이 됐었다. 앤더슨이 6이닝을 마친 시점에 삼진을 열세 개나 잡아서, 열세 번의 'K'를 외쳤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요즘 삼진을 많이 잡은 투수에 대한 기사를 보면 제목에 '10K' 이렇게 쓰지 않고, 'KKKKKKKKKK' 이렇게 쓰는 경우가 많아서 '왜 굳이 이렇게 쓰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앤더슨의 삼진 쇼를 보고 그 의문이 떠올라서 갑자기 특이한 시도를 하게 됐다. 횟수를 틀릴까봐 손가락을 접어 가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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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3~4일 NC 롯데 (사직)

- 피카츄와 함께했던 시리즈. 3일 경기는 개인적으로 뜻깊었다. 나와 이름이 같은 NC 투수 이준혁의 1군 데뷔 경기였기 때문이다. 그가 고등학생이던 때부터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1라운드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했던 2022년에는 언젠가 1군에서 만나자는 DM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군대도 다녀오고 오랜 시간 2군에서 담금질을 한 끝에 1군에 처음 올라왔고 마침 내가 그 경기를 중계하게 됐다. 지금은 다시 2군에 내려가 있지만 또 잘 준비해서 좋은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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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5일 / 7일 KIA 키움 (고척)

- 날씨 걱정 없는 고척 스카이돔에서 맞이한 어린이날 시리즈. 5일 경기는 호투한 양현종의 시즌 첫 승과 최형우의 통산 400번째 홈런을 앞세운 KIA의 승리. 7일에는 8회말 믿기 힘든 뒤집기 한판을 보여준 키움의 승리였다. 우리 중계 팀에서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에 '중계석 캠'이 올라오는데, 두 경기를 중계하는 내 표정을 보니 내가 봐도 즐거워 보여서 새삼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날이라 사비로 귀여운 소품을 준비해봤다. 최원호 해설위원이 조금 부끄러워 했지만 어린이들을 위해 머리띠를 받아들이셨다. 머리띠는 중계 끝나고 나와서 지나가는 각 팀 어린이 팬에게 선물했다.



이번주는 내일(13일)부터 포항에서 KT와 삼성의 3연전을 중계하고, 토요일(17일)에는 울산으로 넘어가 키움과 NC의 경기를 중계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틈틈이 더 자주 중계 일지를 올려보리라 다짐하며 짐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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