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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추남 Sep 13. 2024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 그 이후

제주, 그 이후

같은 제목은 글을 썼다가 지우곤 했다.

남편의 이야기만 있었어서.

허양의 이야기 없이 이 글은 완성되지 않으니까.


오랜만에 허양에게서 일기가 왔다.

그래서 지난 제주 이후의 이야기를 잠시 올려본다.


허양의 일기를 보기 전에 근황을 이야기하면,


이후부터 지금까지 물론 굴곡은 있었지만 우상향 하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약이 줄었고 의사를 보는 주기가 길어졌다.

카페인과 수면제를 끊었으며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걷기도 힘들어하던 허양은 이제는 하루에 수키로를 걷고 간혹 뛰기도 한다.

무엇보다 건강해지겠다란 의지가 생겼다.

남편은 그녀의 ‘건강해질 거야!’란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8월이 되어서야 ‘쉰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음이 좀 더 편해지고 쉬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전에는 몸은 쉬어도 불안해서 종일 게임을 붙잡고 있거나 했는데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녀의 휴가는 이제 시작이다.

다른 환우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렇게 되기까지 자신보다 빠르다고 했다.

아직은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스스로가 무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다.

이제는 좀 멀리도 외출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물론 아직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든다)

활자를 읽는 게 어려웠는데 짧은 에세이 한 권정도는 하루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필사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한다.


더디지만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허양은 매일 최선을 다 하고 있다.




8월에는 연재글을 모아 출판사에 투고를 하였다.

출간 기획서를 만들고 투고할만한 출판사들을 찾았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

58곳을 추려 50곳에 보냈고 (85%)

그중 17 곳이 지금까지 회신을 줬고 (32%)

그중 3곳은 아직 확답은 없고

2곳은 의향을 보였고 나머지는 아쉽게도 거절

2 곳 중 종이책을 내겠다는 곳은 계약초안까지 줬지만 무언가 감성이 끌리지가 않고

나머지 한 곳은 최근 유사내용의 출간물과 겹쳐 종이책은 어렵지만 오디오북과 전자책은 좋다고 하셨다.

좀 더 기다려 볼 텐데 종이책은 어려울까?

꼭 종이책이어야 하나? 고민이다.

(책이 나오면 구매해 주실 거죠?)


녕하세요! 먼저 출간 문의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데 공감합니다. 다만 xxx가 투고 원고를 검토하여 책을 내는 구조의 회사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일년에 2권 정도 내는 1인 출판사이고, 소수의 책을 미리 계획한 기획 방향에 맞춰 내고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책을 좀더 활발히 출판하는 회사에 투고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내내 평안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원고 투고해주셨던 ooo입니다.

소중한 원고 내부에서 잘 검토하였고 아래와 같이 회신드립니다.죄송하지만 해당 도서의 종이책 출간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 원고는 충분히 좋고 완성도도 높습니다. 종이책 출간이 어려운 이유는 기존에 저희가 출간한 <xxxxxxx>와 비슷한 도서를 내는 것이 상도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우울증 환자의 남편 관점의 도서를 저희가 추가로 내는 것은 기존 작가님에 대한 상도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해당 도서는 이제 출간 반 년을 갓 넘긴 도서로, 저희가 비슷한 카테고리의 도서를 내기는 어렵습니다.실제 저희는 그동안 기존 도서 카테고리와 겹치는 책을 추가로 내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님의 종이책 출간이 어려운 점 깊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단, 작가님께서 종이책을 배제한 전자책과 오디오북 출간만 원할 경우는 저희와 진행이 가능하오니 다른 출판사들과 종이책 출간 협의가 잘 안되면 말씀주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저희에게 좋은 제안을 주셨는데 기대하셨던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작가님 가정에 건강과 평화가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의 편집자 ㅎㅈㅇ이라고 합니다.먼저 저희 출판사의 책을 눈여겨봐 주시고 귀한 원고를 투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꼼꼼하게 정리해주신 기획서와 원고 잘 살펴보았습니다.그런데 저희 출판사는 개인적 에세이는 거의 출판하고 있지 않아, @@에서의 출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매력적인 기획이니 더 잘 맞는 출판사와 연이 있으시리라 믿고, 좋은 책 출간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편집부입니다. 

좋은 원고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부에서 함께 검토하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저희가 잘 만들어내고 또 잘 판매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논의해 보았지만, 장점이 많은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 원고에 적합한 또 다른 빼어난 출판사가 있어서, 

성공적으로 발행되고 독자들에게 널리 전해지길 기원합니다. 여러 출판사들이 있는데도, &&를 기억해서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추후 또 다른 기획으로 다시 말씀을 나누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합니다.좋은 날 보내십시오. 



안녕하세요, 님.

₩₩입니다.

저희 출판사에 공들여 쓰신 소중한 원고의 

검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희 출판사의 방향과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아쉽지만 이번에는 출간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긍정적인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원고를 읽으며, 아내분의 우울증을 함께 이겨나가는모습과 부부의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모쪼록 두 분 모두 몸 건강, 정신 건강 잘 챙기시고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앞으로도 저희 ₩₩을 아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모쪼록 원하시는 좋은 결과 얻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aa출판사입니다.

우선, 저희 출판사에 귀한 원고를 투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요즘 우울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작가님의 글은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의 입장이 아니라 직접 이 글을 아내 분이 쓰시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가 그 일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해야, 독자들이 더 몰입해서 읽고, 공감도 더 할 것입니다.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남이 설명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찰의 입장에서 표현되는 현상보다는 직접 겪고 있는 당사자 스스로 자신의 심리에 더 초점을 맞추면

더 훌륭한 원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한 번 투고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다음 기회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슨 형태든 출판사와의 작업물이 나오면 그에 대한 후기도 따로 쓸 예정이다.




추석을 끼고 유럽 여행을 간다.

파리 - 함부르크 - 하노버 - 헤이그 - 파리 일정이다.

보름이란 긴 시간 동안 해외에 있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허양은 비행기를 타는 것이 불안하다만 잘 다녀오면 남편과 허양 모두 한 발짝 더 성장 할거 같다.

가면 친척, 후배, 옛 동료들을 만날 텐데 둘 모두에게 리프레시가 되는 시간이길.



아래는 허양이 보낸 일기.

제주를 가기 전과 후이다.

요새 허양은 글을 쓰지 않는데 남편은 그것이 마음속에 태우거나 분출할 것을 다 소진해 버려 안정되어서이길 바란다.


20240701

며칠 전에 상담에서 그런 얘길 하더라,

갑자기 찾아오는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 것 같냐고.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지.

아직 나는 일을 관둔 게 너무 억울하고, 아쉬워하는 것 같더라.

일하는 내가 스스로 자랑스러웠고,

일을 하나씩 해내면서 묘한 희열도 느꼈었는데.

왜 나는 그 힘듦을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아프고, 일까지 관두게 된 걸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그 상황을 버텨내는데

이것을 버티지 못한 내가 너무 작아 보이고,

관두는 것이 맞았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더라고.

내가 환자가 된 게, 이렇게 나를 내버려 둔 상황들이 야속하고,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너무 밉더라고.

아직도 회사를, 그들을 미워하고 있고, 화가 나고, 화가 풀리지 않았더라고.

어디 시원하게 나쁜 새끼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

욕해본 적이 없더라고. 같이 욕해준 사람도 없고.


그냥 이만 잊고 푹 쉬어라는 말이 왜 불편했는지 이제 알겠더라고.

난 그냥 무조건 내 편 들어주면서 같이 욕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더라고.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관뒀을 거다.

이 말을 내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더라고.


잠시 내가 모든 것들을 받아들인 양 나아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더라고. 웃기지?


오늘 그래서 점심때 만난 부사장님한테 물어봤다?

제가 힘들게 일해왔던 게 맞는 거죠?

그렇다고 대답해 주시더라.

엄청 고맙더라고.



20240809

이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면 된다.


나는 나한테 참 모질었던 사람

- 나는 남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익숙한 사람이었다. 혹자는 이타적인 성향이니 그럴 수 있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돌이켜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주는 게 익숙해져 버려서, 남에게 받은 선물에 진심으로 행복감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날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던 선물은 내가 나를 갈아 넣으며 힘들게 번 돈으로 나한테 사줬던 것들이다.


남에게 호의/선물을 받은 행복보다 내가 더 뭘 해줘야 되나?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것이 항상 마음의 부담이었고 그래서 남에게 받은 호의가 마음의 짐이 되었었다.


나 참 나에게 모질게 굴었었구나.. 상담하면서 문득 든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서로의 호의에 진심으로 기뻐할 줄도 알아야 관계에 신뢰가 쌓이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남이 주는 호의에 진심으로 화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또다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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